구약 구속사

말일의 구원

찬미예수님 2026. 7. 23. 22:27

제목: 말일의 구원

성경: 이사야2:1-4

 

이사야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남북의 자기 백성에게 마지막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의 의로움으로 알고 부를 의지하고 자랑함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더했습니다. 그래서 북쪽은 호세야 임금 때 앗수르에게 망했고, 남쪽 유다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하신 크신 긍휼을 따라 히스기야 때 크게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을 것이나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 구원은 천하만민이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우주적인 평강의 나라가 될 것임을 반복하는 것이 이사야서의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이사야서는 크게 1-39장까지 그리고 40장 이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36-39장까지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했을 때, 하나님께서 남쪽 유다는 히스기야의 믿음과 이사야 선지자의 지도를 통해서 앗수르 군대를 멸망시키고 유다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기 백성은 심판하시지만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큰 구원을 받았던 히스기야가 교만해져서 자기 국력을 바벨론 사신에게 과시했합니다. 하나님은 그 때문에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빼앗길 것이라고 말함으로 39장 전반부가 끝납니다. 그리고 40장 이하에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신실한 여호와의 종의 수고를 통해서 다시 돌아올 것이고, 어떻게 가나안 땅이 에덴처럼 축복의 땅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40장 이하에서 강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과 관계에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과 그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이사야만이 아니라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는 주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이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서 수도에다 바알의 신전을 짓고 여호와의 종교를 괴멸시키는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심판과 남은 자에 대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이것이 선지자의 주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때 북쪽만 하나님 앞에 패역한 것이 아닙니다. 남쪽 유다도 여호와를 대항하는 북쪽과 싸우지 않고 잃었던 땅을 찾으려고 서로 연합했기 때문에 크게 곤욕을 당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멸망과 남은 자에 대한 구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선지서들의 주제가 되는데, 특별히 이사야서에서 아주 광대한 범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기 백성에 대한 탄식과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과 맺은 언약을 끊으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짐승보다 못한 자식이고, 가나안 땅을 에덴처럼 구별해서 참포도나무를 심었는데 들포도를 맺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멸망받은 소돔 고모라의 백성들을 모델로 해서 설명하고,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물도 받지 않고 기도도 듣지 않겠다. 내 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그들의 죄와 심판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냥 재판관으로서 판결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식을 고치려는 아버지처럼 예루살렘을 정결한 성, 공의로운 성읍으로 다시 새롭게 해서 복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한 자들은 아무리 힘을 써도 불탄 삼오라기처럼 사라질 것이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한 사람들은 그 땅을 상속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보십시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해서 유다 왕 웃시야 때,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서 본 이상이라.“ 1장1절과 연속되도록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자들은 아무리 강한 자도 심판해버리시고, 예루살렘을 의롭고 공평한 성읍으로 다시 구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를 2장2-4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5-에서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변론합니다. 그래서 너희들의 모든 죄들이 깨끗함을 받아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런 관점에서 4장까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못된 자식을 책망하는 논쟁을 하고 나서, 5장에서는 마치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해서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그들이 범죄 해서 포도원에 대한 노래를 부른 내용들이 한 단락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6장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도록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증거토록 하고 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2장2-4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예루살렘을 깨끗이 청소해버릴 것입니다. 마치 은을 불로 녹여서 찌거기를 제거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불로 정결케 해서 다시 의가 거하는 새로운 나라로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그 나라의 종말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은 모습을 2-4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여기서 말일은 당시에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비로소 예수의 재림이 우리에게 열린 것이지 구약 때는 그런 것이 열리지 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시고 다윗 때에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 나라가 완전하게 되면 그때 땅의 모든 백성들은 복종하게 될 것이고 그 땅은 에덴처럼 낙원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구약 백성들이 소망했던 구약 역사의 완성을 구약 성경은 말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단어를 신약에서 다시 예수님의 재림으로 바꾸어 쓰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새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해석의 빛이 있기 때문에 구약의 언어를 예수의 재림에 비추어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자체가 예수의 재림을 직접 예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구약 때는 전부 신전들이 산에 있고, 여호와의 전도 시온 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편의를 위해서 하나님을 섬겼던 모든 신당들도 전부 산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이 모든 산위에 높아질 것이라는 말은 모든 작은 산위에 뛰어나리니에서 설명하고, 그 뛰어남은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만방을 통치하실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여기서 많은 백성은 숫자가 많다는 개념보다도 천하 만민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하나님께 경배하러 여호와의 전에 나오는 모습이지요.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전에는 이방인들은 물론, 이스라엘까지라도 시온 산에 계신 여호와를 거역하고 대항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만방에 높아지신 여호와의 전에 이르러 그의 통치를 받겠다는 말씀이지요. 출애굽기를 보면 시온 산에서 율법을 선포하신 하나님이 모세로 그 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성소의 보좌에서 휘장 밖에 있는 모세에게 말씀하심으로 백성을 통치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여호와께 가까이 나가도 백성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방인까지라도 그 뛰어난 권세를 가지신 분의 전으로 나와서 배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전에 여호와의 전에서 나온 말씀은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여호와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장자로 통치하심으로 그들을 통해서 열방을 통치하셨습니다. 직접 열방에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만방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 시온산에 있는 하나님의 전으로 나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천하 만민이 그의 백성이 된다는 말씀이 되겠지요.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판결하는 왕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심판주가 아니라 판결하시는 왕입니다., 항상 구약의 왕들은 하나님의 판결을 대신했는데, 그가 열방을 재판하시고 많은 백성을 재판하십니다. 그가 통치하시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 분쟁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리들이 전에 있던 모든 무기들을 녹여서 농기구로 만들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칼을 들고 전쟁하는 모습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땅이 여호와의 나라로 통치를 받기 때문에 평화의 나라가 되고 안식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약속이 구약 때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가 곧 그 날인가, 하고 기대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와 함께 이런 영광스러운 왕의 통치에 대해서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도 그가 참으로 열방을 통치하시는 왕으로 오셨는가,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많이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은 그런 힘을 발휘하지 안했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잡혀 재판을 받으니까 가이사 외에 우리의 왕이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세상의 임금을 그들의 신으로 섬겨서 하나님을 완전히 배반했습니다. 구약 때는 조상들이 하나님의 전을 강도의 굴혈로 더럽히더니, 이제는 후손들이 육체로 임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거역하여 죽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활하신 아들 안에서 제자들을 대면하도록 새로운 성전을 지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이 분은 시온 산이 모든 산위에 높아진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들이 복종하는 능력 있는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이제는 땅의 예루살렘에서 율법이 선포된 것이 아닙니다. 보좌 우편에 오르신 예수께서 너희는 가서 천하 만민으로 제자삼아 삼위 하나님에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서 우주적인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이제는 천하 만민이 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통치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분의 권세 아래 열방은 복종하지 않고, 만물은 썩어짐의 종노릇하고 있는 가운데 신자들의 생명까지 삼켜버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군왕들은 자기 힘으로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그가 다시 강림하시면 그를 거역한 열방을 철장의 권세로 심판하실 것이고, 다시는 싸움이 없는 평강의 왕국이 될 것이다. 특별히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자들이 천년 왕국을 먼저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메시야의 나라는 그의 승천에서 시작됐지만 그의 재림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시작한 나라가 가나안 땅에서 완성된 것처럼 항상 어떤 역사든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어요. 그래서 예수의 부활로 시작된 나라가 그의 강림하심으로 열방을 통치하는 평강의 왕국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물론 계시록에서는 그 후에 반란과 큰 심판을 통해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할 것으로 분명히 말씀하지만, 이사야서는 그것을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구약의 문자적인 성취는 예수님 재림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에덴에서 시작한 가나안 땅의 나라를 상속받았고, 이제는 하늘의 예루살렘이 땅으로 와서 우주적인 성소가 됨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그때 땅도 낙원보다 더 탁월한 방식으로 회복이 될 것이고, 만만이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천년왕국을 믿지 못합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은 똑같이 예수 믿고 똑같이 구원을 받아야 된다. 그러면 지금 예수 오셔서 마지막 시대가 왔는데 또 다른 무슨 시대가 있다고 그러느냐. 지금 예수 믿는 구원 외에 무슨 그때 예수님 보고 믿는 구원이 따로 있냐, 그것은 아주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 그런 식으로 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식으로 천당 간다는 개인 구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와 함께 역사를 경영하시는 구원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로 모세와 우리는 하나님을 누리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만일 모세가 우리와 똑같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모세가 하나님께 항의할 것이어요. 왜 우리는 그렇게 살도록 했느냐고. 모세 때는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도 없었고, 상에 앉지도 못했거든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도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는 요한처럼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때는 휘장으로 가리고 빽빽한 구름으로 가려서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역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세 때는 모세 율법 아래서 하나님과 동거했고, 신약 시대는 예수님의 증거에서 아버지와 동거하고, 예수님의 재림 때는 하늘에 계신 자가 직접 땅에 오시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찬란하게 될 것이어요. 그러니까 구약 때도 역사적인 발전이 있는 것처럼, 신약 때도 예수의 부활과 그의 강림까지 역사적인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열방이 그 권세에 복종하게 되었을 때 다윗의 후손을 통치하신 중보적인 나라가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때 구체적으로 서울이 예루살렘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구약 때는 가나안 땅을 중심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아니면 성소를 지을 수 없습니다. 구약 언어로 보았을 때는 시온산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전이 있다고 했지만, 신약적인 방식으로 보았을 때 문자적인 그런 보증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신약과의 관계에서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생각을 해야 되겠지요. 가령 구약에서 메시야가 나귀타고 오신다고 했을 때 구원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거의 비슷한 시대에요. 그러니까 나귀 타고 그대로 오시지요. 또 예수님 재림 때도 구름타고 오십니다. 그러나 그건 구약의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보증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을 구별하면 구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빛 가운데서 다시 읽을 수 있지요. 이 말씀은 분명히 초림을 말하지 재림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부활에서 하늘에 속한 나라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이 본문에서 예수의 강림을 통한 천하 만민이 복종하는 나라를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자체가 예수의 초림을 뛰어 넘어서 재림을 예언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신약 시대가 그것을 다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세우신 의미가 무엇인가를 기억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바벨론에 포로잡혀 갔습니다. 다시 왔을 때도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거역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나라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천하 만민 중에서 부으심을 받은 백성들이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그의 통치를 받는 그의 거룩한 나라가 됐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구약 때 자기 백성을 통해서 이방인과 싸우셨던 것처럼 싸우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는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의 몸을 주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증거해서 천하 만민을 그의 영광스러운 백성이 되도록 부르십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지 시온 산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늘의 시온산에서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된 교회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칼을 다 녹여서 쟁기를 만든 정도가 아닙니다. 이제는 주님의 몸의 한 지체로 서로를 섬김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주님 오셔서 만민이 그 권세에 복종하도록 그의 나라를 봉사하는 믿음의 삶을 사셔야 되겠습니다.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전에 이스라엘 밖에 있었고 생명 없는 우상 앞에 절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아래 있어서 온 세상이 그런 풍속 아래 있어서 우리들은 어두움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뿐 아니라 우리 비천한 죄인들까지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아버지와 화복케 하시고 이제는 새로운 백성으로 지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지체가 되도록 하셔서 주님의 순종이 우리 안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의 영으로 우리와 함께 계셔서 한 몸 한 영을 이루셔서 우리로 주님을 봉사케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 이방인까지 참으로 유대인이 소망했던 메시야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우리들이 하늘보다 높으신 주님의 보좌 앞에서 그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이처럼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이처럼 주님과 함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지금도 세상은 주님 앞에 복종하지를 않습니다. 은과 금을 향해서 세상은 움직여도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께 돌아와서 무릎을 꿇고 그의 음성을 듣고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지 않습니다. 창고를 크게 짓고 그것이 인간의 구원인 것처럼 노래하고 있지만 인간은 그 일을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전쟁하고 참으로 쉴 날이 없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런 악한 시대를 당했사오니 세상이 먹고 마심으로 배부르며 인간의 구원을 눈 앞에 둔 것처럼 노래할지라도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분만 참으로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세상이 주님 앞에 복종하도록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고 또 우리가 주님의 교훈을 따라 주님께 순종함으로 주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그런 군병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하시고 주장해 주시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참으로 만민에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냄으로 만민이 주님을 대항하는 어둠의 일을 다 벗고 다 주님 앞에 복종함으로 주님과 함게하는 주님의 몸과 주님의 전으로서 참으로 평화의 왕국이 거룩한 생명의 왕국이 건설될 수 있도록 주님게서 긍휼을 베푸시며 참으로 주님께서 열방을 통치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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