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다의 범죄에 대한 심판과 구속
성경: 이사야 1:1-32
오늘은 1장을 읽어 가면서 강론하겠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지금 이사야서는 남쪽 유다를 중심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범죄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며, 자기 백성을 온전히 구원하시는지? 그 문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시스, 히스기야 시대에 사역한 이사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호세야가 앗수르에 의해서 망했을 때, 남쪽 히스기야는 앗수르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이 이사야 36-40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의 사역 기간이 남쪽 웃시야부터 히스기야 때까지이면, 북쪽은 아직 망하지 안았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남쪽 유다를 중심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다윗 왕조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멸망시키기 전에 전무후무한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북쪽 여로보암 2세와 남쪽의 웃시야 임금은 그 동안 잃었던 국토를 대부분 회복하고 장수하면서 아주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번영이 자기들의 의 때문인 줄 알고 더욱 방자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는 사라지고 우상 섬김도 그대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했던 것입니다. 2-3절,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여기 3절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은 <1절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고 되어 있으나 북 지파를 지칭한 것은 아니다.> 문맥을 보았을 때 남쪽에 더 강조를 두어서 부르는 칭호가 되겠습니다. 여기 2-3절까지의 탄식은, 한 마디로 사람들은 다 들어보라는 표현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셔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관리토록 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로 성소에서 봉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로 증거를 삼는 표현법이 되겠습니다. 한마디로 천지 만물의 꼴 좀 보소. 말하자면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으시고 자녀로 기르셨는데, 그들이 아버지인 하나님을 거역했단 말입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한마디로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지요. 4절,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탄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버렸는데 어떤 의미로 버렸는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기고 멀리하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부르는 것이 이사야서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란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뜻이지요.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식 삼아 부자가 한 집에 사는 것처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하고 있지요. 특별히 이사야 선지자를 소명하는 6장에서는 천사들이 하늘 성소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호위하는 거룩한 장면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어떻게 범죄한 백성 중에 있는가를 깨닫도록 해서, 범죄한 백성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6절,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어찌나 말을 안 듣던지 계속 맞아서 온 몸이 매 자국이란 말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한 두 번 범죄해서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북쪽은 호세야 때 망해 버리고, 남쪽도 그 버릇을 못 고쳐요. 하나님이 방금 앗수르에서 구원했는데, 바벨론 사절이 오니까 자기 힘을 과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네 모든 왕궁의 보물도 바벨론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장차 나타날 큰 구원을 40장 이하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죄를 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내용이 7절부터 있습니다. 7-9절,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그들이 하는 행동으로 보아서는 소돔 고모라처럼 싹 쓸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예루살렘을 남기셨습니다. 그것은 다윗에 대한 약속이 예루살렘에 있고, 하나님의 궁전이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침입으로 그들의 땅도 황무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명기 언약을 따른 심판이 되겠지요. 그들이 하나님을 순종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방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보호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하면 하늘도 땅은 놋이 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에게 사로잡히리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는 넓은 들판에 원두막 하나 남은 것처럼 예루살렘만 덜렁 남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크신 긍휼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하스 임금 때에 남쪽 유다 백성이 큰 곤욕을 당했습니다. 아하스는 북 이스라엘이 아람 군대와 연합해서 자기들을 공격하니까 그들 배후에 있는 앗수르에 사례를 주어서 그 배후에서 적을 공격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임금이 아람과 이스라엘만 멸망시키자 이번에는 예루사렘을 포위한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간구해서 하나님이 건져 주셨거든요. 그런 위기들은 전부 하나님께 순종해서 공의로운 통치를 하지 않고, 열방과 그들의 신을 의지한 데 따른 하나님의 심판이었지요. 그래도 하나님의 긍휼로 예루살렘만은 남긴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범죄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지만, 그 심판은 언약을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쓰레기를 전부 제거하고 남은 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진행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우리 개인의 구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게 맡긴 나라 설립을 목표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백성의 구원은 그 시대에 하나님과 동거함으로 그 나라를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고 그 영광을 봉사하는 것에 강조를 두지 않습니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개인이 어떻게 천당을 가는가로 성경을 풉니다. 그래서 순종한 사람은 천당, 못한 사람은 지옥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에 역사가 필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사람을 한꺼번에 출생할 수 없으니까 역사가 필요한 것 뿐입니다. 그러니 성경이 잘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1-9절까지는 그들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 번 때려도 안 고쳐져요.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들의 땅을 황무하게 하셨지만 아직도 예루살렘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라는 것이 9절까지의 흐름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죄를 총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이제 10절 이하에서는 그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10-17절은 그들의 죄를 다시 한 번 소돔 고모라의 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앞에서는 짐승보다 못한 자식으로 설명했는데, 그들을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들이라고 해서 멸망 받을 종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노아 때와 소돔 고모라의 때를 하나님의 심판의 전형으로 언급합니다. 노아 때는 온 세상에 대한 심판이 강조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을 어떻게 정결케 해서 유업으로 주실 것인지? 소돔 고모라의 심판을 아브라함이 친히 목도한 바가 있지요.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죄를 짓는 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이 있고, 선지자도 있고, 모든 복을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니까 안 된 일이지요. 이사야 5장에서는 내가 개간지에다 참 포도나무를 심고, 울타리를 치고, 또 포도주 틀을 두어서 모든 복을 다 주었다. 그런데도 들 포도를 맺었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열심히 제사를 지내고 있고, 남쪽은 웃시야 때에 대대적으로 복을 받았기 때문에 넘치도록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범죄하면서 그것을 가져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 헛된 예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축복을 빙자하여 많은 헌물을 하나님의 집으로 가져오는 식이라 하나님께서 언약 제도를 파괴하겠다는 말이지요. 절기도, 제물도 필요 없고, 내 집에 올 것도 없다. 너희들이 많이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들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고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언약이 없어서 범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언약을 힘입어서 더욱 담대하게 범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파괴 하시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제발 쓸데 없는 짓거리 하지 말고 너희 죄를 고치라고 권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고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해 신원하고 과부를 위해 변호하라 말씀하십니다. 신명기에 보면 이스라엘 왕은 자기를 위해서 은금을 쌓거나, 많은 여자를 얻거나, 많은 말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보좌 옆에 두고 수시로 읽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계속하라고 신명기 17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힘을 우선 시했기 때문에 이방과 연합해서 전쟁하고, 백성들도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고아나 과부의 것을 빼앗고, 또 뇌물을 받고 재판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드리고 기도하니 나는 그런 예물을 받지 않겠다. 성전 문을 닫아라. 내 마당을 다시는 밟지 말라고 심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18-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처럼 그들에게 심판의 말씀을 하는 것은 그들을 부르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다시는 제물을 가져오려고 하지 말고 내 말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들으면, 너희들이 그 전에 지은 모든 죄가 정결하게 씻어 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셔서 그 땅이 평안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안 들으면 끝인줄 알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처럼 딱 한번만 말씀하시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반복이 많지요. 그러면 듣지 않으면서도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꼭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습니다. 선지자들이 책망하면 우리가 아이냐는 것입니다. 성경 여기 저기서 끌어다가 들이대게. 나도 너 만큼은 안다고 안 들어요. 그런데 여기 21절부터 다시 비슷한 말씀을 반복합니다. 21-23절,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이처럼 오라 내가 다시 한 번 너희들을 치료하자 하면서 그들과 변론하시는 말씀이지요.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다시 한 번 책망을 시작하고 있지요. 전에는 예루살렘이 그런 성읍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거듭 거듭 매를 맞으니까 감각이 없어요. 이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거룩한 도성이 의와 공평이 없고 힘있는 자들이 약한 자들의 것을 약탈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로 득실거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도성이 은이 찌거기가 되고 포도주에 물이 섞인 것처럼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로 그렇게 됐느냐 하면, 관원들이 다 패역해서 도적과 짝하고, 돈이 있으면 무죄 돈이 없으면 유죄입니다. 그리고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외면합니다. 너희들이 내가 왕으로 있는 도성에서 이런 죄를 지었지 않느냐? 탄식하는 어조로 자기 백성과 변론하는 식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고치라는 말이지요. 24-31절,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이제 하나님께서 이런 고을에 대해서 심판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임하셔서, 부요한 자들, 그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은에서 찌기를 제하듯 하시겠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 깨끗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들은 시온이 정결하게 되면 그 백성들도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심판은 그들이 높은 산 푸른 나무 아래서 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 불탄 실처럼 아무런 힘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책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거룩한 도성을 결단코 창기의 굴혈로 두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에서 찌기를 제하듯 자기 도성을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모든 자들은 부끄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반복 구조를 통해서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그들이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살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악한 자들은 제거하고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어떤 세력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실제로 북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대항하다가 망했고, 남쪽도 북쪽과 연합하여 함께 걷다가 결국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신실한 왕들을 세우시고 회복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럴수록 하나님의 이름을 힘입어서 예루살렘에서 끝까지 범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으로 이 성을 쓸어 버릴 때에도 이방인은 이 거룩한 도성에 못 들어온다. 예루살렘은 솥이고 우리는 그 안에 든 고기가 아니냐? 어떻게 이방인이 하나님의 솥에서 제물을 먹을수 있느냐? 그럴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하나님의 선지자의 책망을 조롱하고 끝까지 듣지 않다가 결국 다 망해서 이방 땅으로 잡혀 갔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 땅은 70년 동안 황무지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바벨론 풀무불 가운데서 연단을 받은 남은 자들을 통해서 자기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백성들까지라도 거듭 거듭 범죄해서, 말라기를 보면 이사야 1장 비슷한 말이 나오지요. 제사장의 얼굴에 짐승의 똥을 발라 버려라. 그들이 내 예물을 가증히 여기지 않느냐? 내 성전의 문을 닫아 버려라 하면서 400년 동안 선지자가 끊어 졌습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통해서 큰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아들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불순종했던 옛 시대를 끝내시고 새로운 생명의 왕국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주님을 따라 세상을 이기고, 주를 순종하는 새로운 백성으로 정결케 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처럼 불로 정결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의 심판을 통해서 남은 자를 골라낸 것이 아닙니다. 아들의 죽음에서 어둠의 권세를 끝내심으로 우리를 하늘에 속한 정결한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큰 구원을 받은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빙자해서 더욱 범죄하고 있습니다. 구약 백성도 장구한 안식이 있으면 범죄하고,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면 또 범죄한 것처럼, 우리들도 비슷합니다. 병들면 기도했다가, 나을만 하면 또 범죄하지요. 더구나 구약 때는 범죄하면 이런 저런 벌이 따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는 그런 벌이 즉각 오지 않습니다. 물론 범죄한 무리들의 몸을 약하게도 하고, 병들게도 하고, 미리 데려가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약처럼 통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 은혜를 빙자해서 담대하게 죄를 짓습니다. 더구나 그전 신학은 “우리들은 죽도록 온전치 못하다. 사람은 조금씩 조금 씩 좋아진다.”는 식으로 가르쳐서 범죄를 합법화 시켰습니다. 어떻든 우리가 믿음으로 깨어 살지 못한 것은 죄입니다. 그것은 어떤 경우로도 변호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그 품 안에서 범죄하는 것은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보고 그들은 망했지만 우리는 멸망치 않는 나라를 주셨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도 땅의 모든 백성들의 머리가 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셨어요. 그런데도 그들이 범죄함으로 이방의 종이 되도록 버렸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우리들이 이 주님을 거역하고 다른 것을 추구하면서 우리는 천당 갔으니 끝났다는 이야기는 성경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이 나라에서 버림을 받으면 참으로 안타갑지요. 구약 백성은 광야에서 죽든지 이방 땅에 잡혀가 죽는 것이 그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축복은 하늘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옥도 열려서 우리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이런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얼마큼 죄를 많이 지었는가? 얼마나 불순종했는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이키면 항상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꼭 부모가 자식대하는 것 비슷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를 빙자해서 우리가 죄를 그치지 아니하면 심판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런 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어떻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했으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 언약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깨어서 주님과 함께 동거하고 동행하는 삶을 사셔야 하겠습니다. 아멘.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아침 이슬과 같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들은 이스라엘의 광야의 멸망도 알고 또 언약의 땅에서 그들이 어떻게 멸망을 당했는지?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범죄한 자기 백성을 죽이신 사실을 잘 알고 있사옵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하늘 보좌에 앉히시고,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권세 있는 백성으로 우리를 삼으신 사실도 우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 안에 주님께서 계셔서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 일을 행하라.”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도 나를 사랑하며, 우리가 함께 동거하고 동행하자 이런 음성도 우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구약 때처럼 불 수레를 타고 오시는 위엄스런 모습이 아니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누추할 때가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우리의 많은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을 일깨우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의 생명을 다해서 주님의 기뻐하심을 따라서 우리의 생을 헌신하며 부활하신 주님의 나라를 건설하며 우리로 신실히 복음을 봉사하는 그런 의로운 백성으로 살아 나갈수 있도록 우리를 주관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