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 33장
(신33:1-29)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5)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 (6)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 (7)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10)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 (11)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꺽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12)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맞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13)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14)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 (15) 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 (16)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17)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민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 (18) 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19)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20)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 갓이 암사자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21)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 (22)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 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23)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명기 33장은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 내용입니다. 이 구조는 1-5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강림하시고 율법을 준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그 다음 26절이하에서도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시리라는 약속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사이, 그러니까 6-25절은 이스라엘 지파들에 대한 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 구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5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강림하셔서 왕이 되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내용이 1-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강림하신 모습이 2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시내산에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그러니까 이 산이 우리는 시내산은 알겠지마는 세일산 바란산은 시내산에서 한참 멀지요. 세일산은 에서가 기업을 받은 산이거든요. 한참 멉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도처에서 나타나신 방식으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의 나타나심이 시내산에 나타나셨는데 그 나타나신 영광이 시내산에만 미친 것이 아니라 여러 높은 산에 미친 것처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면은 시내산이라는 큰 산맥에게 세일산 바란산이 함께 있다고 표현했는지, 그럴 수도 있지요. 어떠튼 그가 어느 한 구석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 위엄차게 나타난 것으로 되어 있고 어떻게 나타나셨습니까? 일만 성도 가운데 강림하셨다. 만민은 육십만에 비하면 별볼일 없지요. 이스라엘이 육십만인데, 그러니까 일만 성도 했을 때도 실재적인 숫자하고는 상관없는 많은 수를 묘사할 것이어요. 그 오른 손에는 불같은 율법이 있도다. 아마 율법을 불같다 했을 때는 하나님의 임하심이 불로 임하셨으면 율법도 불일 것이어요. 그것을 같이 연결해서 그럴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강림하신 모습은 시내산에 영광 중에 임하셨다. 그런 말이지요. 그래서 여호와게서 강림하신 이유는? 무엇할려고 임하셨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그의 소유삼기 위해서 오신 것이어요. 강림하신 목적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율법을 준 중보자를 누구라고 묘사하느냐 하면 4절에는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그렇게 말하고 있고, 1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율법을 준 중보자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입니다. 그런데 모세하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붙어 있는 것이 휘귀하지요. 다른 데서는 이런 칭호를 안쓰지요. 이런 칭호는 선지자들에게 가끔 쓰는 칭호인데 그러기 때문에 이 33장은 모세가 직접 기록하지 않고 훗날에 기록해서 편집한 것이 아니냐.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 말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단지 우리 보수파는 모세가 다 기록했다고 해야 되는데 후일에 누가 뒤에다 무엇을 붙였다고 하면 가짜, 이런 개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을 거절했습니다마는 가령 모세가 모세 오경을 완벽하게 기록했어도 그것이 이스라엘 언약의 책에 편집되었을 때는 꼭 모세 때 완결했겠는가, 오히려 실은 다윗 왕조를 위해서 율법이 있기 때문에 다윗 시대에 누가 했을 것이라는 것이 훨씬 순리로워요. 그러나 그전 우리의 개념에는 잘 안맞지요. 야곱 총회에 주신 율법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4절에 율법을 명하셨으니 야곱 총회의 기업이어요. 그러면 여호와께서 왕으로 취임하실 때는 어느 때이냐? 여기서는 어떻게 취임했다고 하느냐 하면은, 일만 성도 가운데 강림하셨는데 4절에 야곱 총회의 기업이 되셨으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총회로 모였을 때에 왕으로 취임했지요. 시내산에서 그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거기 전부 모였는데 왕으로 강림하신 것이어요. 창세기 49장의 서론과 비교해 보는 것이 아주 문제를 풀 때 중요합니다. 창세기 49장에는 야곱의 축복이 있고, 여기 신명기 33장에는 모세의 축복이 있지요. 비교해 보면은 말하는 사람들이 달라요. 첫째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말했지요. 그런데 창세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한테 들어라.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면은 창세기 49장을 읽었을 때는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해도 별로 감동이 잘 안와요. 마땅히 아버지니까. 그런데 여기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 그랬거든요. 모세를 뭔가 수식을 해주어요. 그러면 창세기에서 보았을 때 왜 아비에게 들으라고 했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요. 그걸 비교해 보면 좋다. 똑같은 복을 말하는데도 두 당사자가 달라요. 하나는 아버지가 하나님의 사람이, 그러면 왜 야곱은 아버지로 축복하느냐. 그 아버지로부터 열두 아들들이 나와서 기업을 갖거든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러니까 복을 비는 순서로 출생의 순서대로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제일로 사랑받는 베냐민이 제일 끝에 있지요. 요셉하고 베냐민이. 그가 제일 늦게 낳았어. 라헬에게. 출생의 순서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신명기는 그것과 달라요. 왜, 누가 말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백성들에게 해요. 하나님의 사람은 왕인 하나님을 대신해서 율법을 주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내용은 말하자면 아버지로부터 어떤 복을 받을 것인가, 출생의 순서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면은 그 왕국의 중심지에 누가 살고, 그 변두리에 누가 사는가, 그 왕국을 중심해서 또 특별히 율법을 지키는 의인의 나라, 여수룬, 율법을 지키는 나라의 특성을 갖고 복이 선포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선언하고 있어요. 심지어 우리가 똑같은 부모가 말해도 아버지가 말할 때와 어머니가 말할 때가 다르지요. 그래서 야곱의 축복은 아버지가 그 후손들에게 아버지로서 축복하는 내용이 되어 있어서 출생의 순서대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야곱의 축복은 아들들의 특성, 성경에 그들의 분량대로 라고 되어 있어요. 아버지가 그들의 분량대로 축복했다. 즉 아들의 분량된 특성을 따라 복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여기 신명기에서는 그들의 분량대로가 아니라 의인의 나라,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시고 그들에게 기업인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친히 통치하십니다. 어디서? 가나안 땅에서.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 통치와 관계된 복이 나타나 있어요. 상황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정황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차이가 납니다. 14절에 대한 축복을 보면은, 서론을 비교해 보라고 그랬구나. 서론도 다 말해버렸구나. 서론은 답이 창세기 49장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신명기 33장은 하나님의 사람이 그 백성들에게, 14절에 있는 축복은 이제 6-25절에 지파들의 축복을 전체적으로 한번 비교해 보라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개념을. 각 지파마다 복을 비교하기 전에 전체적인 개념으 어떤 차이가 있는가, 했을 때 아까 말했던 순서는 아까 말했던 창세기 49장은 혈통의 순서대로, 그리고 복은 그 아들들의 행동의 분량대로, 신명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파부터, 그리고 그들의 복은 하나님이 율법을 가지고 자기 백성을 통치하는 내용이 복이어요. 그런데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까 개별적으로 풀어보면은 인제 앞에 중요한 지파만 풀어보면 알아요. 뒤에 작은 지파들은 잘 모를 것이어요. 그래도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루우벤에 대한 축복은 여기서는 어떤 축복이냐 하면은 신명기 33장을 보면은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 6절에 그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서는 번성하는 것이 핵심이지요. 왜, 가나안 땅의 복을 주니까. 그런데 루우벤이 하나님 나라 중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 실은 루우벤은 중요한 위치는 아니어요. 그런데도 기력의 시작은 장자거든요. 그래서 항상 그로부터 출발이 되고 있어요. 기력의 시작은 루우벤입니다. 특별히 역대상 6장을 보면은 다윗 왕조가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 보면은 그렇게 기록되어 있을 것이어요. 역대상 5장입니다. 거기 보면은 (대상5:1-10)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그렇게 되어 있지요. 이렇게 구약을 해석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루우벤은 장자이기 때문에 항상 먼저 시작하고 있어요. 그래도 중요한 역할은 기록하지 않고 번성하기를 원하노라. 기력의 시작이라 그렇게 말하고 잇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49장에는 이 말을 안해요. 방금 역대상 15장에 있는 것처럼 그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왔어요. 너는 잘생기고 똑똑하다마는 끓어 넘치는 물처럼 넘쳤다. 네가 아버지이 침상에 올라왔다. 그러니 너는 탁월하지 못할 것이다. 왜 아들의 분량대로. 루우벤이 그 나쁜짓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아들의 분량대로 축복했는데 일종의 저주지요. 장자를 빼앗겼으니까. 그것이 창세기 49장에서 아들들의 분량대로 하는 축복이고 여기서는 하나님 나라가 일단은 장자로부터 시작은 되지요. 그러니까 그는 수가 적지 않고 번성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냥 한번 복을 받으면 계속 그 복으로 가는 그런 혈통주의가 아니어요. 유다에 대한 축복이 7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굉장히 짧지요. 창세기 49장은 유다의 복이 8-12절이니까 꾀 길지요. 여기는 굉장히 짧아요. 무엇이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은, 보면은 「7)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백성 앞장 서서 적을 치는데 유다가 되어 있지요.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를 그 백성에게로 인도합니다. 그가 왕이어요. 그 손으로 싸우도록 하고 하나님이 도우시라 그렇게 되어 있지요. 사사기에도 언제든지 올라가면 유다가 먼저 올라가지요. 유다가 왕직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창세기 49장에서는 왕권이 그에게 돌아간 이야기가 강조예요. 홀이 유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문제보다는 가나안 땅에 그 왕국을 세웠을 때 유다가 항상 총 대장이어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레위가 나와 있지요. 이 레위 지파의 복이 제일로 특징이어요. 왜냐하면 창세기에서 레위 지파의 복은 49장5-7절에 있는데 거기는 아주 저주같이 나타나 있어요. 루우벤, 시므온과 레위, 유다 그랬지요. 야곱의 첫 아내에게서 낳은 순서가 그렇습니다. 유다가 넷째 아들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루우벤, 레위, 유다 그렇게 시므온은 빠져있지요. 유다하고 레위의 순서도 바뀌어 있지요. 왜? 왕은 유다에게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바꾸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실은 시므온은 저주를 받아서 그런 것보다도 유다지파에 속해서 그래요. 나중에 보면은. 자기 기업이 따로 있지를 안해요. 유다 기업 안에 자기 기업이 있습니다. 여기 보니까 레위 지파의 기업이 탁월한데 창세기 49장에서 시므온과 레위는 저주받아 있어요. 무슨 저주냐 하면은 야곱이 말합니다. 내 영혼아, 그들의 모의에 참여하지를 말아라. 그들이 아주 고약한 악독이 분노가 가득해 가지고 칼로 세겜성 사람들을 첬어요. 세겜성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하면 당신들도 우리처럼 할례를 받으면 한 동족이 아니냐. 서로 결혼하고 살자. 세겜이 자기 동생 디나를 좋아해서 결혼할려고 마음을 굳히고 있으니까 그를 속일려고 할례받으면 할 수 있지 않냐. 그래서 할례를 받고 이제 통증이 가장 많이 오는 3일에 칼을 들고 가서 전부 죽여버렸어요. 그러면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았을 때는 언약 백성에 동참하는 표를 가졌는데 그들은 그들의 민족적인 자긍심 때문에 그들을 죽여버렸어요. 언약의 표 안으로 들어온 백성을. 그전에 그렇게 해갖고 저주를 받은 사람이 또 있어요. 사울이 왕이 됐는데, 죽이라는 아말렉은 안죽이고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어요. 왜냐하면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에게 변장하고 와서 항복했거든요. 그래 가지고는 죽을 사람들이 살았어요. 그래서 성소에서 종노릇하면서 가나안 땅의 기업이 그러니까 요새로 하면은 유럽 사람들이 동양 사람 쫓아내는 식이지요. 일자리는 적은데 와서 있으니 쫓아내는 식이어요. 그러니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면 백성들이 좋아하겠구나. 하고 죽였어요.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된 뒤로도 그 땅에 3년 동안 비가 안왔어요. 하나님 앞에 물어보니까 사울의 집을 정리해야 되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온 백성들을 이유없이 죽여버렸거든요. 그래서 저주된 것이어요. 그래서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합니다. 내 영혼아 그들의 모의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아주 분노가 가득하고 아주 나쁜 사람들이어요. 그러니까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질 것이다. 기업도 못받고 흩어질 것이다. 그랬는데 시므온은 흩어져버렸어요. 그래서 유다 지파 안에 셋방살이 하듯이 기업을 받았습니다. 그랬는데 레위는 그렇게 안되었어요. 인제 복이 바뀌어졌어요. 레위를 보면은 8절에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출애굽기에스는 우림과 둠밈 그러는데 왜 여기서는 둠밈과 우림 그러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왜 순서를 바꾸었는지. 주의 경건한 자라고 레위를 붙이고 있습니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그 부모에게 이르기를 내가 그를 보지 못하였다 하며, 맛사와 무리바는 이스라엘 백성의 처음과 마지막 시험을 마므리하는 방식일 것이어요. 물가에서 다 하나님을 원망했거든요. 「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이것은 어느 때냐 하면은,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섬겼을 때에요. 그때 모세가 말하기를 여호와 편에 선 사람은 다 나와라. 하니까 그들이 나갔어요. 그렇게 해가지고 그들이 형제를 돌보지 않고 3천명을 죽였어요. 왜 그랬느냐. 여기 보니까 그들이 주의 언약을 지킬려고 생사를 걸었고 자기 친척 아버지를 모두 다했다. 왜? 여호와께 충성하느라고. 그러니까 여기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8절에 보면 맛사와 므리바에서도 그와 다투셨도다. 했는데 어떤 식으로 다투었는지는 모르지마는 그런 뉴앙스를 풍기고 있어요. 그러면은 처음에 자기 아버지로부터 저주받았을 때는 세겜성 사람들을 죽였을 때 저주를 받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자기 아버지와 자기 친족을 죽인 뒤로는 복을 받았어요. 말하자면 첨음에는 자기 혈통상 열을 내가지고 세겜 사람을 죽여서 저주를 받았는데 이제는 그가 경건한 자로서 오직 하나님 때문에 생사를 걸었어요. 그러니까 자기 처자식도 안돌본 사람이어요. 그래서 이는 경건한 사람이고 네가 내 율법을 맡아라. 그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특별히 레위 지파 중에 나중에 그렇게 한 사람이 있었지요. 비느하스가 그렇게 했지요. 비느하스가 그때 누굽니까? 발람, 발람의 미혹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이 음행했을 때 창들고 쫓아가서 남녀를 찔러 죽인 사람이 누구냐 하면은 레위 자손의 비느하스에요. 그때 이방 여자 데리고 와서 죽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시므온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시므온과 레위는 완전히 판이 바꾸어져버렸지요. 요새 우리 교인들로 하자면 이런 식이어요. 하나님을 위해서는 열심을 안내는데 자기 교회를 위해서는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막 열심히 일해도 하나님을 욕해도 가만히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열심을 낸 사람은 잘못하면은 다른 사람이 잘못하면은 괜히 교파 싸움을 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 안에 분쟁이 일어나도 싸울 사람이어요. 인제는. 그러니까 싸우는 성격이 다르지요. 왜냐하면 아무리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 잘못하면은 레위 같은 사람이면은 시므온은 끼리끼리는 좋아하는데 우리 식으로 하자면 밖에 사람에게 열려있는 사람이어요. 그래서 시므온은 그 분노를 가지고 세겜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흩어져버렸는데 레위족속은 그것이 아니어요.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분노했어요. 그러니까 다 배교했을 때 레위 사람이 칼을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너는 내 성소를 맡으고 내 율법을 내 백성에게 가르쳐라. 너는 나에게 제사해라. 그래서 특권을 가진 것이어요. 그래서 레위 지파가 장자를 대신하도록 하나님이 바꾸어준 것이지요. 이것이 레위 지파가 복받은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축복했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야곱의 축복했을 때는 아들들의 분량대로 축복했으니까 레위가 한 행동을 따라서 저주해버렸어요. 흩어저라. 그런데 모세는 가나안 땅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지금 복을 주고 있거든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러니까 네가 율법을 맡아라. 왜 너는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으니까. 만일 이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맡아 있으면 처자식을 돌보지 않고 거룩을 지켜낼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줄 것이고 그를 건드리는 사람마다 허리를 끊도록 해라. 계통이 끊어지도록 해라. 하나님을 대항한 것처럼 저주해버리고 있어요. 이것이 레위 지파가 받은 복이어요. 왜 그들만 하나님의 율법에 열심을 냈으니까. 이제 이 신명기 33장의 복은 하나님이 왕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강림하셔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거든요. 율법이 그들의 기업이어요. 율법을 잘지키면 복을 받고 못지키면 가나안 땅으로부터 쫓겨나고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 루우벤에게서 번성할 것이라. 장자가 번성하지 못하면 나머지는 끝나버리는 이야기예요. 장자가 번성할 것이라. 특별한 복은 아니어요. 그리고 유다는 왕이라 그가 항상 앞장서서 백성들을 인도해 낼 것이어요. 대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율법을 맡을 사람은 누구냐? 레위 지파에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제 베냐민과 요셉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요셉이 장자권이 있다고 말했지요. 아까 역대상 5장에서도 그것은 창세기 49장에서도 장자권은 요셉에게 있어요. 창세기 49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목자, 이스라엘의 반석이 요셉 지파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요셉보다도 베냐민을 앞세우고 있어요. 어째서 그러느냐. 실은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에 계시면은 그것이 다윗이 유다지파고,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율법을 봉사하는 사람이 레위지파에요. 그리고 그 바로 곁에서 사는 사람이 누구냐? 베냐민이어요. 그러니까 베냐민은 목나타고 아버지 등에 있는 것처럼 베냐민은 여호와의 사랑받는 자인데 하나님 가까이 거할 것이어요. 성소 곁에 베냐민 지파가 서요. 물론 그 중에서 첫 왕도 나왔지요. 그래서 베냐민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 요셉인데 요셉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로 나누어서 17절에 이야기합니다. 「에브라임의 만민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말하자면 탁월합니다. 요셉의 복이 굉장히 길어요. 13-17절인데 13절을 보십시오. 「13)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요새 같으면 가믐이 없겠지요. 이슬이 내리고 지하수가 풍부하니까 (14)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 (15) 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 (16)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여기서는 장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17)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숫송아지 중에 첫 것 하는 것은 위엄이 있고 힘이 쎈 것이어요. 어느 정도 힘이 있습니까? 들소 뿔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민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 거기서 많은 군대가 나와요. 여러분이 지도를 보아도 므낫세는 요단강 동편하고 서쪽에 큰 영토를 갖고 있고 에브라함이 항상 장자권을 가지고 있어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의 모든 복이 주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가 장자입니다. 그리고 그 이하의 복들은 특별한 차이가 없어서 비교해 보십시오마는 부각된 복이 아니어서 그 나라의 특성이 무엇인지 발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기서 갓에 대한 복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20절에 「20)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21)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 갓지파는 요단 동편에 먼저 기업을 받았지요. 그래서 그들이 얼만큼 힘있게 암사처럼 싸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백성 중에 두령과 함께 움직였는지 그런 문제가 언급되어 있지요. 요단강 동편에는 갓지파가 기업을 차지했지요. 루우멘과 므낫세 반지파와 갓지파, 그래서 여기 그들의 활동이 탁월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른 복은 특징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주로 복들은 그들이 얼만큼 싸움에 강하고 풍족한 복을 받는가, 그런 내용들로 주로 되어 있을 것이어요. 왜냐하면 가나안 땅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6-29절을 보면은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27절에 영원이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지요.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들을 다시 담고 있지요. 그런데 어떤 약속입니까? 26절에 「하나님이 친히 하늘을 타시고 위엄을 백성들에게 나타냈어요. 이스라엘을 도우시려고. 하나님의 임하신 모습이 26절에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이 하늘에서 이스라엘을 도우시려고 강림하셨고, 27절에 어떻게 도우셨느냐. 너희 처소가 되신다. 누가? 영원하신 하나님이. 이는 창세 처음부터 백성들의 거처가 되셨던 분이. 세상에 자기 백성의 거처가 되신 분이 이스라엘 백성의 거처예요. 영원한 하나님이 그들의 처소고, 영원하신 팔이 그 아래 있어요. 하나님이 처소가 되시고 권능있는 팔로 그들을 붙드시는데 하나님이 영원부터 그렇게 하지 않느냐. 불변하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가 하늘에서 강림하셨고 영원히 그들의 처소가 되시고 그들을 붙드신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복을 받는데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신다. 그러니 대적이 감당할 수가 없지요. 대적을 쫓으시고 멸하시고 어떤 복을 주십니까. 그들에게 안식을 줍니다. 평안히 거합니다. 어떤 평안입니까? 가나안 땅의 평안이지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그 가운데 샘이 있어요. 그러니까 아주 완전한 복이지요. 그런데 그 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슬이 내려요. 하늘의 이슬 땅의 샘, 그것 때문에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한 땅, 그 땅에 너희들을 평안히 거하게 하신다. 가나안 땅의 복을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나서 29절에 다시 그것을 결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요.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어떻게 얻었습니까? 하늘에서 강림하시고 그들의 처소가 되시고 오른팔로 붙드시고 대적을 치시고, 가나안 땅의 복으로 먹이셨지요.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만일에 그 땅을 정복하지 못하면은 산꼭데기는 못밟아요. 골짜기나 살살 숨어 다니지. 그러나 높은 산을 밟는다는 말은 그 땅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어요. 누가? 하나님이 방패가 되셔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율법을 잘 지키면 된다. 이 하나님을 잘 의지하고 이방인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되어요. 누가 합니까? 강림하신 하나님이 불꽃 가운데 강림하시고 율법을 주셨지요. 그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 처소가 되시고 오른 팔로 붙드시지요. 그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심으셔요. 그래서 서론과 맞아 들어가도록 되어 있지요. 그 하나님을 섬겨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이런 것을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은 그렇게 말하지 않지요. 하나님이 네 하나님이 되시려고 강림하셨고 권세가 있다. 그런 말로 창세기는 맺지를 않습니다. 49장28절부터 보면은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했는데 그가 자기 조상들에게 돌아가기 전에 그렇게 했다. 그리고 자기 묫자리를 쭉 이야기해요. 그리고는 죽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했어요. 묫자리 이야기를 했어요. 꼭 우리 나라 사람들하고 비슷하게 보입니다마는. 우리 나라 어른들도 아들에게 재산 다 주고도 자기 묫자리는 자기가 잡으러 다니고 그래요. 그 묘하지요. 어떻게 자기 묫자리를 자기가 잡는지 요새 젊은 사람들은 이해가 안되는데 좀 연세가 드신 분들은 대게 그렇습니다. 너는 물정 모르니까 모를 것이고 내가 내 할 일은 다 할란다고 그냥 자기 아내 수의까지 전부 준비해 놓고 그래요. 인제 우리 나라 사람들하고 비슷한 것이 아무 실감이 안나고 그냥 자연스럽게 읽어질련지 모르겠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묫자리를 잡는 것이 아니어요. 조상들의 묘실에 나도 묻혀야 되겠다. 아브라함이 묫자리를 팠지 않냐. 나도 거기 묻혀야 되겠다.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했는데 그는 지금 애굽 땅에 와 있지 안해요. 나는 죽을 것이지마는 내 묘는 거기다 써라. 왜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으니까. 요셉도 그랬지요. 나는 죽지마는 내 뼈를 가지고 가서 조상들의 묘실에 묻어달라. 그것이 야곱의 유언이었지요. 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은 반드시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이다. 왕이니까. 그리고 그 하나님이 너희 중에 거하실려고 하늘에서 강림하셨고 율법을 주셨지 않냐. 너희들이 율법을 잘 지키면은 그 하나님이 너희들을 오른팔로 붙드시고 가나안 땅에 심으실 것이다. 모든 대적을 다 멸하시고 너희들로 그 땅에 기세 당당하게 걷게 하실 것이다. 너희들이 그 땅에서 어떻게 복을 받을 것인가? 너희들이 내 율법을 잘 지켜라. 누가? 특별히 레위지파지요. 거기다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특별히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에 유다는 앞서 있어요. 그래도 출발은 장자인 루우벤이어요. 그는 혈통상 장자이지요. 장자권은 요셉에게 있지요. 그 성소 주변에 사는 베냐민과 요셉 그쪽으로부터 변두리로 축복을 해나간다. 출생의 순서가 아니라 언약의 땅에 하나님 나라 중심지로부터 밖으로 축복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저 위쪽에 있는 아셀 지파들, 그 제일 끝에 붙어 있어요. 그리고 자세히는 읽어 보았자 모르겠지요. 어느 집안도 큰 아들 몇 사람에게 찍고 있지 아들들 다 세지 안해요. 누집 큰 아들 잘 두었데, 둘째 아들도 그런다데. 그러면 끝이지 일곱 아들 다 안세요. 그러니까 여기 중요한 몇 지파만 하고 나머지는 그런 문맥이어요. 읽어보면 가나안 땅의 강력한 승리들, 그쪽에다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기 33장에서 모세가 축복한 내용입니다. 이제 제일 끝 문단입니다. 오른 쪽, 제일 끝 문단입니다. 나머지는 읽어보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 이르도록 순종하신 예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시고 교회를 그의 제자로 삼으시고 하늘을 상속케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길을 걷는 하늘에 속한 의의 나라이며 천하만민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시키어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주시는 제자를 삼는 사명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날까지 교회 중에 함께하신다. 그러니까 어떻게 이 글을 교회에 적용할 것인가, 그런 말입니다. 우리들은 모세 밑에 있지를 안해요. 그리스도 안에 있어요. 상황이 달라졌지요. 하나님이 모세 때에 하늘에서 강림하셨어요. 그 백성의 하나님이 되실려고. 그리고 율법을 주셨어요. 우리는 하늘에서 그런 식으로 강림한 것이 아니어요. 하나님이 친히 아들을 보내셨고, 우리를 가나안 땅에 심으신 것이 아니라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 심으셨어요. 이제 교회는 새로운 의의 나라예요. 모세 율법을 따른 그런 옛 어린 아이 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통치하는 하나님의 의의 나라예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항상 그렇게 말슴하셨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그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핵심이어요. 그 일을 맡은자가 장자인 레위에요. 만일에 그를 거절하면 허리를 꺽어버릴 것이어요. 그리고 전쟁은 유다가 주로 할 것이어요. 물론 힘있는 백성은 에브라임 지파에요. 그래도 전쟁에서 앞장은 유다가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율법을 지키는 나라로 삼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제는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이 아니라 예수의 살과 피를 주는 생명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나안 땅에 심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우리를 심으셨고, 모세의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아들의 새 계명을 지키도록 하셨지요. 교회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천하만민이 이 아들에게 복종하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부름을 받았어요. 아법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셔서 예수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는 일에 교회가 부르심을 입었다. 그것이 교회가 만민을 정복하는 방식이어요.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율법을 받습니다. 레위지파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어요. 레위지파는 장자이기 때문에 장자적인 직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다른 지파는 레위지파가 받는 그런 기업을 상속하거나 건드리면 안되어요.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신령한 제사장이 되었고, 우리 모두 다 그리스도의 율법으로 만민을 가르치도록 되어 있어요.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지파적이 차이가 없다.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복을 받으니까. 그러나 구약 때는 지파마다 다르지요. 그것이 신약에서 읽을 문제들입니다.
34장은 몇줄 안되지요. 끝나고 나면 여호수아서로 들어갈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성경 구분법으로는 모세 오경은 신명기까지고 여호수아부터 열왕기까지를 전서지서,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대선지서와 소선지서 후 선지서 그렇게 구분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떠튼 모세 오경이 언약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신명기까지가 중심이어요. 그 다음부터는 가나안 땅의 정복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신명기까지만 배우면 구약의 틀은 배운 것이고, 또 특별히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경영하시는 모든 문제는 신명기 언약을 따라 해요. 왜 가나안 땅의 언약은 신명기 언약 아닙니까.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백성의 흥망성쇠는 전부 신명기로 설명을 해요. 그러니까 신명기까지 배우면은 다 해석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인제 여호수아서는 빨리 진도가 나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는 전쟁 이야기고 신명기처럼 율법 이야기가 아니지요. 전쟁 이야기가 주로 나와 있어서 사건들이 중심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요약해서 나갈 수가 있어요. 그래도 한 주에 한 장 나갈 것입니다마는 단지 이렇게 시간이 길게 안나가고 짧게 끝날 것입니다. 이 후부터는 그렇게 길게 걸릴 것이 없습니다. 구약의 시편이나 길어지지 나머지는 전부 이야기체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기 때문에 신명기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신명기까지만 알고 있으면 나머지 성경은 그냥 풉니다. 주일 낮예배는 신약으로 하고 주일 오후 공부는 구약으로 하고, 그리고 수요일날은 시편을 하고 있고요. 그 여러분이 꼭 교회에 자주 참석해야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제일로 속된 말로 신앙이 좋아야 되겠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 교회는 정치가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 목사들에게 문제가 많해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여러분을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왜 신약 성경은 그런 평가기준이 없어요. 그래서 펑가하지는 않는데,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기회들을 활용할려고 마음을 쓰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일년 내내 수요일날은 나올 수 없는가? 일년 내내 수요일날 야간근무 한 사람은 못나올 것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오기도 하고 못나오기도 할 것 같은데, 묘하게 안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그것이 좀 이상해요. 마음은 항상 나올려고 하는데 직장 일에 매이면 못나오지마는 만일에 시간을 내서 오시면 아하, 저분은 마음을 쓰고 있구나. 그건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자세에요. 그런데 예라 오늘 하루 나간들 무엇하리 하고는 안나오는데 초점을 두고 하면은 제가 볼 때는 저 양반은 수요일 날마다 계속 바쁘구나. 이상하기도 하고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그말입니다. 제가 하는 말을 아시겠지요. 마음을 쓰시라 그말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행동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은혜의 기회들은 활용하도록 마음을 쓰셔야 되고 만일에 못나오시면은 교회가 가난해도 여분의 테프가 있어 가지고 여러분이 갖다가 들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못나온 사람들은 아예 안들어버려요. 그러면 여러분은 주일 오후나 수요일 밤에 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익을 못받아버려요. 그때 강론한 것은 특별한 일이 없는한 다시 반복하지 않거든요. 유익을 못받아요. 어떤 사람은 세끼를 먹는데 한끼만 먹고 우리는 배가 고푸도다. 그러면 굶은 자기 잘못이지 굶는다고 불평할 수 있냐고, 우리 집은 맨 보리밥만 먹는도다. 저녁 때는 소고기 먹었는데. 왜 소고기 먹을 때는 빠져놓고 우리는 죽만 먹는다고 그러냐고. 그러니까 그렇게 불만해서는 안되어요. 그러니가 모든 기회를 활용하도록 마음을 쓰시라. 그리고 그렇게도 안되면은 교회 테프 갖다가 들으시고, 집에서 시간을 활용하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에 주신 은혜이기 때문에 서로 활용하지 못하면은 우리 신앙은 쉽게 잠들어버려요. 그걸 조심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인제 부부싸움할 때도 둘 말만 들어보면 짝 맞는 말이거든요. 다른 사람들 단점 발견한데 보면 전부 얌전하고 천재에요. 말을 들어보면 그런 도덕가가 없고, 다 똑똑하지 안해요. 그런데 교인들이 시험에 들어도 다른 사람 말할 때는 아주 명쾌합니다. 그런데 자기 허물을 안보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는 사람은 이미 시혐에 든 사람이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가 다른 사람 말을 않는 것이 특징이어요. 사랑이 있어서 빨랑빨랑하고 그런 것은 좀 둔합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 말은 안하고 이것은 아주 장점이어요. 시험에 들면 이런 저런 말을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저는 말하자면 공적으로 교회가 결정한 시간에 교인들이 나오는 것은 의무지마는 주일 낮에 나오는 것하고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여러분이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어떻게 하면은 새로운 시대에 맞게 살 것인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밝히 알려고 더 노력할 것인지, 이쪽에다 두어야 되지, 짊었을 때 돈을 벌어 놓고 늙어서 장로도 하고 편안히 봉사해 보자. 그렇게 해갖고는 안되는 것이어요. 그러지 말고 여러분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밝히 알 것인지 그쪽에다 마음을 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혹 못나오실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잘 마음에 받을 것이고 시간이 되어서 예배당에 슬렁슬렁 나와갖고는 들어 보아야 잠만 오지 마음에 잡힐 것이 없어요. 그런 것을 조심하십시오. 제일로 우리 목사들이 조심할 일입니다마는 목사하고 있으면 자기는 제일로 봉사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도 실재 우리나라 교회를 보면 문제가 많지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이 어떤 직분을 갖고 있고 교회 안에 평안히 있으면 나는 무엇이 됐는가, 기존 교회가 제도권 안에 있다고 마음을 평안히 해도 이단보다 무엇이 없어요. 그런 것처럼 여러분이 그래도 나는 교회를 나가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자신들이 은혜의 일들을 사모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확실히 감당할 수 있도록 노력하셔야 되지, 많이 맡긴 자에게 많이 찾지 어째 교회가면 교인들이 너무 멍청하드라. 나는 꽤 아는데. 그런 것으로 안되어요. 여러분은 들은 것만큼 성장해 주어야 되지 다른 자와 비교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꾸준히 사모하셔야 되어요. 저 자신도 똑같고요. 여러분이 그렇게 하시면은 앞으로도 성경공부에 하나님이 많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저하고 교재하신 분들도 성경 자체를 사모하신 분들은 이해만 되면 굉장히 밝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자료만 갖다가 쓰신 분들은 말은 또박또박 하는데 자기 부끄러움을 다 들어내놓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라요. 왜 갖다가 쓰기만 하니까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어버려요. 그건 아주 비참한 일이어요. 우리 교인들도 그런 일이 없도록 하나님을 항상 사모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도록 하나님을 추구하고 봉사해 내시라 그런 말입니다. 그러면은 제가 볼 때도 아, 교인들이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고 살고 있구나. 저 자신도 만족이 있고 기쁨이 있지요. 그전에 제가 한 서너 집을 교회를 다녔는데 세례 준다고 야단을 하드라고요. 그런데 나한테는 세례받으라고 하지 안해요. 그래서 전도사님에게 갔지요. 어째서 나한테는 세례 안주냐고. 일년 되어야 준다고. 아, 내가 새벽기도회에 나온 시간을 계산하면 일년 훨씬 넘는데, 다른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나오는데 나는 아침, 저녁 새벽 다 나왔으니까 계산해 보시라고. 내가 훨씬 많은데 왜 그러냐고. 그런데 연도로 따질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소위 조직된 체계에서 자기 위치가 어디 있다고 평안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추구하고 사모하고 더 알려고 해야되고, 또 아는 것은 아는대로 다른 사람에게 고백할려고 해야되고, 또 주어진 힘을 다해서 교회를 봉사할려고 마음을 쓰셔야 되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저희 교회는 어떤 틀을 정해 놓고 여러분들을 훈련하고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평안할 수 있습니다마는 그것이 여러분의 풍성한 자유도 될 수 있고 잘못하면은 자기 방종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어요. 그런 비참한 일이 있어서는 안되어요. 그런데 저는 모세같은 선생은 아니니까 여러분에게 틀을 정해놓고 채점하고 책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직 복음으로 봉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러분의 전 삶을 요구하는 것이지 몇 가지 프로그램을 해놓고는 나는 하나님을 섬겼다고 그렇게는 안해요. 여러분이 그 점을 잘 아시고 성장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