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구속사

신명기 강해 32

찬미예수님 2024. 12. 7. 07:05

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 32

 

(32:1-52)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 (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8)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지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근래에 일어난 새 신,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19)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한 연고로다 (20)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22)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도다 (23) 내가 재앙을 그들의 위에 쌓으며 나의 살을 다하여 그들을 쏘리로다 (24) 그들이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울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25) 밖으로는 칼에 방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청년 남자와 처녀와 젖 먹는 아이와 백발 노인까지리로다 (26) 내가 그들을 흩어서 인간에서 그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다 마는 (27)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 원수가 오해하고 말하기를 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라 하시도다 (28)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 (29)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 (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 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 (31)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못하니 대적도 스스로 판단하도다 (32)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33)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34) 이것이 내게 쌓이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35)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3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37)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38) 그들의 희생의 고기를 먹던 것들, 전제의 술을 마시던 것들로 일어나서 너희를 돕게 하라 너희의 보장이 되게 하라 (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40)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노라 나의 영원히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41)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42) 나의 화살로 피에 취하게 하고 나의 칼로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장관의 머리로다 하시도다 (43)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 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44)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45)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46)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48) 당일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49)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산에 올라 느보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50)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52)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신명기 32장은 모세가 지은 증거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은 그렇게 잘해주시는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못되었는가? 너희들이 하는 행동대로라면 끝장을 내야 되겠지마는 내가 내 이름을 아껴서 너희를 용서하겠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배교와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심, 그것이 노래의 내용이어요. 노래를 부르면 안잊어버리지요. 얼만 전에도 보니까 노인들도 노래부르드만. 그런데 가수들은 열번을 똑같은 노래를 불러도 좋다고 박수치지요. 아마 코메디가 그러면 한번 웃고 말 것인데 노래는 그래요. 하옇튼 노래를 부르며 안잊어버리는 것이어요. 그래서 그 내용을 노래로 대대로 불러가지고 너희들이 이방 땅에서 쫓겨나서 비참하게 되었을 때 그 노래를 기억하고 돌이켜라. 그런 것이 지어준 노래의 내용이어요. 그래서 이 32장에 노래를 지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고 모세의 직무는 끝납니다. 그래서 노래를 지어서 가르친 그 내용하고 그 다음 모세에게 죽기 전에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하고 그것이 32장이어요. 그리고 33장은 이제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는 내용, 그리고 34장은 모세는 죽고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받았다. 그렇게 하고 끝납니다. 1-2절이 서론인데,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그리고 3절부터가 본격적인 노래의 내용이 되겠지요.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이것이 증거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이냐? 왜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은 것 같습어요. 신학적인 이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과 불순종이 하늘과 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렇다. 신학적으로는 맞는 말이어요. 아담이 범죄하니까 땅도 가시와 엉컹퀴를 내버렸는데 맞는 말인데, 이 문맥에서 그런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지금 무엇할려고 노래를 지어 주었지요.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라고 노래를 지어준 것이지요. 핵심이. 그리고 어디가서든지 이 노래를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이지요. 그러니가 여기서는 하늘과 땅이 영향을 받느니 그런 말보다는 왜 하늘이여 내 말을 들으라. 이렇게 말하느냐? 증인으로 삼아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이 증거의 노래가 온 세상에 공개되고 하늘과 땅 증인이 존재하는 이상에는 이 말도 존재할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 공개적인 성격과 확실성, 그런 것을 말하기 위해서 하늘이여 땅이여 들으라. 그런 것이지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과 불순종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어요. 문맥에서 보니까 대대로 기억해라. 어디 가서든지 기억하라. 그럴려고 하늘과 땅을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인제 내 교훈은 내리는 비요, 이슬이니라 이런 말은 식물에 대해서 비가 생명인 것처럼 내 말이 너희에게 생명이니 귀담아 들으라는 말이 되겠지요. 그리고 나서 증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3-5절에는 이 증거의 노래가 주제적으로 요약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백성의 사악함이 3-5절에 요약이 되어 있고, 이것을 차례차례 푼 것이 6-에요. 그러면 먼저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자비하신 일이 기록되어야 되겠지요. 6-14절에는 그 일이 기록되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한 내용이 그 뒤에 있겠지요. 15-18절은 이스라엘의 거역이 기로되어 있습니다. 19-25절은 이런 짓거리를 한 이스라엘 백성은 말하자면 싹 죽어야 되어요. 그래도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시고 오래 참으실 것이어요. 다 멸핫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다 해서 그냥 놓아둔 것이 아니어요. 반드시 죄는 제거할 것이고 그렇게 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를 완성할 것이어요.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죄인이나 하나님을 대적했던 나라나 전부 멸망시키고 그리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면은 만민이 함께 기뻐하겠지요. 그렇게 함으로 마칩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의 직무가 끝나니까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는 것이어요. 그런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언제든지 논문을 쓸때도 그런다고 했지요. 처음에 시작할 때 내가 이러이런 것을 쓰겠노라. 그러면 거기 짧은 문단에 전체 내용이 들어가요. 그리고 인제 차차로 풀면 본론이 되겠지요. 그리고 결론을 맺는 것이어요. 그런 구조로 되어 있어요. 3-5절까지가 총 요약인데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6절부터 보니까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7) 옛날을 기억하라.6절 하반절부터 보니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선한 일이 쭉 기록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내용만 보아도 처음에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했다가, 이스라엘 백성의 악을 말했다가, 그 다음에 하나님이 행하신 좋은 일을 쭉 말하니까 아하, 여기는 총 요약하는 단락이구나, 알 수가 있겠지요. 그래서 두 가지 내용인데 하나님은 반석이신데 너희들은 그렇게 변화가 무쌍하느냐.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신실하신가 그 다음 쭉 설명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과 위엄의 관계는 무엇이냐. 항상 이름 하는 것은 그 본성을 알아맞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름으로 자기를 알리시면은 그 이름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름은 나타난대로 하나님 자신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이름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호와다. 또는 전능자다. 나는 너희 깃발이다. 요한복음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런 말이 쭉 나와 있지요. 하나님이 누구다 했을 때는 그 이름에 해당되는 것으로 자기 백성의 하나님이 되신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름은 단순히 우리처럼 아파트 동에다 번호 붙인 것이 아니라 이름에 해당되는 하나님으로 자기 백성에게 자기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름과 위엄은 같은 것입니다. 이름과 영광도 같지요. 그 이름에 해당하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니까 그 이름에 해당되는 영광을 나타내신 것이어요. 그래서 이름과 영광과 구원이나 위엄은 전부 같은 것이다. 여호와께서 반석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나는 반석이다. 그러면 반석은 무슨 뜻이냐? 분명히 반석은 조금 뒤에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31절을 보면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못하니 대적도 스스로 판단하도다. 반석이라는 말을 써요. 37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하니까 여기서 반석과 하나님은 같지요. 그런데 하필이면 반석이라고 그러는가? 창세기 49장에서는 목자하고 같습니다마. 여기서는 어떤 의미로 반석인가? 분명히 37절이나 31절을 보니까 하나님이어요. 그는 반석이시니, 여호와는 반석이시니 했을 때 하나님과 똑같은 등치언인데 어떤 의미로 반석이냐 했을 때 여기서 설명해 주고 있어요. 뒤에 설명되어 있지요.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이것이 반석이라는 의미와 관계가 있지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는 좋은 아버지지다.해놓고 왜 좋은가를 말하지 않으면 매때리는 이야기만 해버리면 얘기가 헷갈리지요. 나는 좋은 아버지인데 너에게 무엇무엇을 사주지 않더냐. 하면은 어떤 의미로 좋으냐. 무엇을 사주었다는 의미로 좋다. 알겠지요. 그냥 거기 한정되게 설명이 되어 있는 것이어요. 그래서 반석이라는 말은 다른데서 끌고 올 수 없고 여기서 말하는 것만 생각하면 되어요. 그러면 여기서 반석은 하나님이신데 어떤 의미로 반석이시냐? 공의롭고 정직하다는 의미에요. 그러니까 저는 이스라엘의 반석이다. 그말이어요. 그러면 여기서 공의롭고 정직하다는 뜻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말이 아니고, 물론 하나님은 본래 도덕적으로 완전하시지 그걸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는 어떤 의미로 공의롭고 정직하다고 그러냐 하면은, 지금 신명기에서는 무엇을 두고 이 노래를 부릅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지요. 율법을 잘 지켜서 복받으라. 안지키면 벌받을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이 노래를 지어주고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의롭고 정직하신가? 공의롭고. 하나님은 그 율법을 따라 자기 백성을 통치하셔요. 그런 의미로 공의롭지요. 하나님 법정에서 판결받는 그런 공의는 없어요. 누가 하나님 앞에 서겠어요. 피조물이. 없고, 하나님은 율법을 따라 판단하시면 공의로워요. 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 삼으셨지요. 조상들과의 약속 때문에. 그것이 불변하셔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기서 뭐라고 하십니까? 공덕이 완전하고 모든 길이 공평하고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 공의롭고 의로우시다. 정직하시도다. 가령 예를 들면은 아이들이 동네가서 싸우고 자기 잘못해도 자기 아버지에게 일르러 가요. 그러면 아버지가 동네 재판관 같으면 일르러 갔다 두들겨 맞아요. 공평하니까. 그런데 자기 아들에게는 어떻게 합니까? 내 아들이거든. 그것이 아들에게는 영원한 반석이어요. 그것이 공평해. 우리 식으로는 이해가 안가지요. 그러나 구약 개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만 자기 백성으로 택하셨고 이방인은 그 밖에 두셨기 때문에 이스라엘만 자기 백성 취급해야 되지 다른 나라 백성을 자기 백성 취급하면 안되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성경은 그런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공평하시고 어떤 일로 공평합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만 자기 백성 취급해 주셔요. 이방인은 자기 백성 취급 안해주셔요. 공평하지요. 개념을 바꾸라 그말입니다. 우리는 옛날에는 공평한 것이 얘기들이 싸우고 오면은 우리 얘기 곰밤부터 주어버리고 성질이 나더라도 다른 얘기는 웃어버리고 보내야 공평한데 우리는 그런 문화권에서 살아서 자기 아들 편들면 공평하지 않은줄 아는데 성경은 그런 개념이 아니라 이스라엘만 내 자녀요 나머지는 밖에 두었거든요. 제사장만 곁에 두고 나머지는 밖에 두었거든요. 그러니까 제사장만 안식일에 열두 덩어리 떡을 주어야 되지 이것 갖고 나누어 먹으라고 하면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큰아들 취급하기로 했으니까. 제사장만 금떡상에서 먹고 나머지는 먹지 말어라. 먹으면 죽으리라. 그러면 하나님은 공평해요. 그러면은 제사장은 아무리 그가 병들어든 말든 금상의 떡을 먹겠지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지요. 그런 의미라는 말입니다. 지금 신명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언약의 복을 주셨어요. 그들이 율법을 따라 살면 언약 아래 사는 것이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넘어지게 생겼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신가? 노래를 불러 기념해라. 하나님은 대대로 너희 하나님이 아니시냐? 내가 너희들하고 약속해 놓고 딴 말한 적이 있냐. 나는 너희에게 약속한대로 의롭고 정직하게 행했다. 그것이 여기서 내가 반석이다. 나를 의지하라. 내가 언약에 신실하지 않냐. 그런 말입니다. 그냥 이해하시겠지요. 그래서 반석이라고 그래요. 왜냐하면 반석이라는 것은 그들의 집짓는 개념으로 하면 반석 위에 집짓는 것과 같고 마태복음 있는 것처럼 든든한 토대가 반석이어요. 하나님의 집도 그렇게 지었지요. 든든한 토대가 반석이기 때문에 반석 그러면 든든한 토대, 피할 요새,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아니한다. 그런 의미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는 진실하시니까. 정직하시니까. 지금 그런 말입니다. 여기서는 도덕적인 정직이 강조가 아닙니다. 자기 백성에게 언약하신 데 대해서 신실하시다는 말이 정직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행한 악은 어떤 것이냐? 하나님이 이처럼 정직하신데 행한 악은 무엇이냐?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했는데 5절입니다.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이로다. 자녀로서 행할 일을 안하고 아주 형편없는 악한 행동을 했어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핵심입니다. 우리들은 죄를 지었다고 하면 높은 도덕율이 있는데 거기서 몆점 맞았냐, 그런 것을 죄로 알아요. 그러나 성경은 그런 개념이 아니라 관계적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들은 도덕적으로 해석하느냐? 하나님 윤리적인 법칙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근본 개념은 관계적이어요. 부부끼리의 관계는 지가 화투를 치드라도 돈만 많이 벌어오면 괜찮은 남편이어요. 그런데 얌전한데 집안 식구 굶겨버리면 큰일나지요. 막 예를 들면 그런다 그말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사나워갖고 동네 여자들과 싸워도 자기 남편에게만 순종을 잘하면 이렇게 좋은 아내가 없어요. 그런데 동네에서는 이 일 저 일 다 해주고 집에 와서 성질 팍팍 내면은 아주 못된 아내예요. 동네에서 싸움을 잘해도 아버지 말만 잘 들으면 괜찮은 아들이어요. 가정 예가 그런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악을 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은 높은 율법을 주셨는데 거기 형편없다. 도덕적으로 천하다 그런 말이 아니라 나는 네 아버지로 정직한데 너는 왜 내 아들로 정직하지 안했느냐. 그런 말이어요. 항상 언약을 범한 것이 범죄의 핵심입니다. 범죄 개념은 언약을 파괴했다 그말이어요. 그리고 구원받은 것도 언약에 신실하다는 개념이어요. 아들은 아들로, 아버지는 아버지로 신실하면 완전한 관계예요. 그것이 성경의 근본 개념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자신을 해석할 때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섰는가가 여러분을 분별한 것이지 내가 오늘은 성질을 몇번냈고 거짓말을 몇번 했다. 내가 안했으니 괜찮구나 하는데 하나님은 하루 종일 기억하지 안했어요. 또 하나님이 사랑하신 교회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안했어요. 그리고는 법적으로는 하나도 안걸리게 살았어요. 그것은 아주 악한 사람입니다. 동네 좋은 사람들도 그렇게는 살아요. 그러나 남편은 하루 종일 아내 생각해야 좋은 남편이지 하루 종일 있다가 퇴근 시간되니까 얼쩡얼쩡 와놓고 나 시간맞추어 왔네. 그런 것은 하숙생도 해. 하숙생도 꼬박꼬박 돈은 내고. 그러니까 그런 남편에게 당신이 하숙생이요. 그런다고. 시간 딱 되면 법먹고 잠은 잘 자는데 남편으로 관심이 없거든.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믿음의 삶도 도덕적인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마는 핵심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로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았는지, 지금 부활의 새 빛 가운데서 내 삶을 경영했는지, 그렇게 분별해야 되지, 일일 일선 그런 것은 성경이 말하는 개념이 아니어요. 그러니가 이스라엘 백성이 행한 악은 너희들은 내 자녀로서 아닌 행동을 했다는 말이어요. 그것이 여기서 핵심적인 지적입니다. 그러니가 아주 사곡한 종이다. 아주 간사한 종으로 살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 아들이 아니다. 이것은 언약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을 아들 삼았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6-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을 보십시다. 얼만큼 신실하시고 좋은 아버지이신가 보십시다. 이스라엘과 맺은 관계는 6절부터 보면은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던 아버지시지요. 그러니까 절수를 딱딱 나누면 못나누어지겠지요. 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신 일은 6절 하반절부터 되어 있지요. 너를 지으신 아버지가 아니시냐. 그러니까 절수로 나누느라고 막 7절부터 나누어버리면 안맞습니다. 우매무지한 백성아, 어째서 우매무지하느냐 하면은, 이하 설명에서는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여기서 우매무지하다는 말은 아버지도 몰라본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이사야서를 보니까 짐승도 제 구유를 알고 주인을 아는데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것이 무지목매한 것이어요. 하옇튼 사람이 얼만큼 어리석느냐 하면은 물건보고 절해요. 네가 나에게 복주는도다. 할말이 없지요. 그전에 부모가 돌아시고 나면 이 좋은 것도 못잡수시고, 하고 울어놓고는 그 다음 거기 가서 나 복주라고 절해요. 그러니 갑갑하지요. 그렇게 어리석어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물건 보고 절해요. 그정도 하면 어느 정도 어리석느냐. 아이큐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악해서 그래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도 그것을 거꾸로 돌려요. 마치 바람난 여자처럼, 악해서 그래요. 바람피운 사람도 바람난데 가서는 아주 잘합니다. 옛날 우리 아버지 시대에는 폭군같은 아버지가 다른데 가서는 신사로 잘한 것이어요. 그건 기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악해서 그래요.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들이어요. 그렇게 어리석다. 지금 이렇게 광명한 시대에도 어리석기는 똑같다. 그것이 여러분이 분별할 안목이어요. 아주 고약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입니다. 여기서 지으시고 세우셨다는 말은 창조했다는 말보다는 자기 백성으로 구별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 무슨 일을 하셨느냐 하면은, 기업을 분정하실 때 이스라엘과 이방의 관계가 다릅니다. 여기 보면은 무엇이라고 설명되어 있느냐 하면, 8절에 8)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그렇게 되어 있지요. 기업 분배에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대하신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은, 9절에 보면은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야곱은 자기 기업이어요. 자기 백성이어요. 그러니까 특별 취급했어요. 어떻게 특별 취급을 했습니까?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의 기업을 나누어 주어야겠다고 염두에 두고 그 밖에다 민족들을 배치했지요. 그러니까 민족들에 기업을 주실 때에 모든 나라에다 먹을 것을 주실 때 먼저 자기 백성의 수를 계산하고 자기 백성의 수에 맞도록 기업의 땅을 주시고 그 다음에 이하동문 식으로 밖에다가 민족들 경영했다. 왜 그렇게 했느냐?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기업이니까, 자기 택한 백성이니까 특별 취급을 했다. 그런 말입니다. 가령 이스라엘 백성 같으면은 레위지파만 십일조를 먹고 나머지는 남은 것을 먹지요.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실 때도 항상 레위 지파를 자기 앞에 불러 놓고 주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밖에다 주어요. 그런 식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생각하고 그 수를 따라서 민족들의 경계를 계산한 것이어요. ? 자기 백성들의 수에 맞추어서 기업을 주어야 되니까.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전에 제가 이 유형론 때문에 잘못 인용해서 창세기 7장을 이 본문에 많이 인용했었는데 거기하고 문맥이 다릅니다. 창세기 10장을 보면 70민족으로 나누었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내려갈 때 70인이었지요. 그 유사성 때문에 그쪽으로 연결했는데 이 문맥을 보면 그런 것이 아니어요. 먼저는 자기 백성의 수를 계산하고 그 백성에게 맞도록 기업을 주고 그 다음에 너희 남은 것을 가져라. 이런 식으로 민족을 분정했다. ? 이스라엘은 내 백성, 내 기업이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공의롭게 행했다. 그 모든 길은 공평하고 의롭고 정직하시도다. 그런 말입니다. 자기 백성을 잊어보신 적이 없어요. 그렇게 하셨다. 어느 정도 했느냐. 7절에 보니까 옛날부터 그랬지요. 네 조상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나님이 그렇게 안했는가. 대대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그것도 문제로 냈다가 언약의 고대사를 문제로 냈다가 글자 수가 많아요. 그래서 줄이느라고 빼버렸어요. 여호와께서 자기 기업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은 무엇이냐?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기업 삼고 자기 백성에게 먼저 땅을 주고 나머지는 이하동문하고 주었는데 그러면 그 백성들에게 행하신 일이 무엇이냐? 이제 10-에서 그 행하신 일들이 쭉 설명이 되어요. , 보십사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여기 보니가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 광야에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지요. 그 다음 13절부터 보시면은, 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여기서 땅의 높은 곳은 아마 가나안 땅 산이겠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힘이 없어서 골자기를 살살 기어다니고 골목길로 다녀야 되겠지요. 그러나 그들이 힘이 있을 때는 큰 거리로 다니고 산의 높은 곳을 밟지요. 그래서 여기서 홀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고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그 다음에 (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이건 전부 가나안 땅의 복이지요. 그래서 광야에서 인도하셨고 가나안 땅의 복을 주셨다. 언약의 복이지요. 그것이 행하신 일이어요.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 가운데 이것을 행하시고 기록하지요. 하나님이 누구셨는지를. 이것으로 말한다. 이제 15-에는 그들의 범죄 건이 나옵니다. (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지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그렇게 말합니다. 15, 18절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거역한 내용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수룬이라고 부르는가? 이스라엘 하는 것은 하나님의 왕자, 하나님의 택하심 하면 야곱, 하나님의 왕자,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 그러면은 이스라엘이지요. 그러면 여기서 여수룬은 어떤 뜻이냐? 어떤 단어가 지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단어 풀이를 하는데 그런 것은 잘 몰라도 됩니다. 왜냐하면 항상 성경에 어떤 이름이나 무슨 일은 그 앞 뒤 문맥에 설명되어 있어요. 그러니가 나는 히브리어를 모르는데, 여수룬을 얏사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해갖고 얏세레를 연구해 보았자 그건 별 의미가 없어요. 여기서 말하는 것만 여수룬이니까 그렇게 알면 되어요. 여기서는 저들이 헷심의 발로 하나님을 찼어요. 배교했어요. 누가? 여수룬이. 이것은 무엇을 대비시키려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과 그들의 이름을 대비시키지요. 이렇게 이렇게 이름을 주었는데 이런 배역을 했다. 지금 그 말이지요. 그것이 지금 핵심이지요. 여수룬이라는 단어를 몰라도 이 문맥을 보면은 그런데 누가 이렇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름에 합당치 않는 행동을 했다는 말이지요. 지금. 어째 그런 생각이 안들어요. 이름은 이런데 그 이름에 안어울리는 행동을 했지요. 그러면 여수룬은 무엇이겠어요. 이스라엘 백성은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왕인 백성이지요. 그 율법을 잘 지키면은 그들이 하나님 백성이지요. 그런데 가나안 땅에 심어노니까 딴 짓거리를 했거든요. 누가? 여수룬이 했을 때 의로운 나라 의의 백성이 하나님의 법을 가진 백성들이 그런 말이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들의 택함에다 강조를 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로움, 하나님이 통치하는 의인의 나라, 이쪽에다 강조를 둔다. 신명기 33장이나 그런데 보아도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고 부른 이유가 왕이 있는 나라, 여호와께서 왕인 나라, 그러면은 여수룬이어요. 이제 단어 풀이하면 야살에서 유래하였다고 의롭다는 의미로 단어 풀이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몰라도 상관은 없다. 그래서 의인의 나라가, 의로운 백성이 발로 살찌매 발로 여호와를 찼어요. 그러면 어떤 의미로 발로 찼냐? 16-에서 설명을 해요.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켰다. 어떤 의미로 다른 신으로 여호와의 질투를 일으켰느냐. 17절에 설명하기를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조상들이 웃기게 알았던 신, 부서버렸던 신, 그런 것에 절을 했다. 18절에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요. 무슨 말이냐 하면은 그냥 우상 섬김이 어리석다는 이런 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왜 나를 버리고 딴 신을 섬겼느냐. 그래서 선지서에서는 간음하는 여인 같다고 말하고 있지요. 나를 버리고 딴 신을 섬겼느냐. 언약을 배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상에게 절하면 지식적으로 어리석지요. 그러나 성경은 그런 지식적인 이야기를 할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네 아버지인데 왜 딴 것에게 절하냐. 내가 너를 낳았고 네게 복을 다 주었는데 왜 딴 놈에게 바치냐. 그래서 질투하고 분노한 것이어요.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이다 그런 말입니다.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 부른 것은 그들은 하나님이 왕이신 의로운 백성이기 때문에 여수룬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들이 여호와께 진노를 받을 죄를 지었는데 어떤 죄냐 하면은, 그들의 아버지 여호와께 제사하지 않고 자기 조상들이 부셔버린 딴 신에게 제사했다. 아버지를 멸시했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19,20절을 보면은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이 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노하십니까? 19절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한 연고로다.법적인 재판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녀로서 합당치 않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법적인 재판이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법률로 재판하는 개념은 없습니다.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하는 것, 20)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여기서 자녀로서 합당치 않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격노를 발하신 대상은 범죄한 자기 자녀입니다. 아버지를 무시한 자가 자녀인 이스라엘. 그냥 죄만 많이 지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동네 사람이 죄 많이 진다고 해서 우리가 월급을 더 뭅니까. 그러나 우리 아들이 잘못하면 세상이 꺼질 것 같이 야단이지요. 그렇게 다스렸다 그런 말이어요. 다른 나라는 이런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이 재앙을 안내렸어요. 그러나 자기 백성은 그런 짓을 하면 그건 용서가 없어요. 자기 백성이거든요.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통치 원리인데 그것을 가지고 우리 나라에적용하면 안되겠지요. 우리 나라는 그때 언약 밖에 있었지요. 이스라엘은 우상 섬기면은 하나님이 즉각 진노하지마는 이방인은 우상을 섬겨도 오래 참으시고 놔두셨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가 우상 섬기면 잘 안됩니까? 그쪽으로 읽어 들어가면 안되겠지요. 마치 우리 나라가 기독교 국가인 것처럼 읽으면 안된다 그런 이야기에요. 차범근 감독이 한골 넣을 때마다 그냥 주여, 하고 감사하면은 그것은 개인으로 감사한 것이어요. 국가대표 감독으로 이 골은 하나님이 넣었습니다. 하고 방송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감사지 국가대표 감독으로 한 것은 아니어요. , 다음 전술 같은 것을 이야기할 때는 국가 축구감독으로 한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그가 숨쉬고 사는 사람이니까 한골 넣을 때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령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다가 불상을 놓아도 자기가 청와대에 살 동안은 자기 정원이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단장하든지 국가 세금으로만 안하면 관여할 것이 없어요. 그 대신에 후임인 김영삼 대통령이 들어가서는 그것 싹 치워버려야지, 그런데 그 불상을 치우니까 국가가 안된다고 보라고 안치웠다고, 하면은 안되겠지요. 자기가 지금 무슨 의미로 거기 살고 있는가를 몰라요. 청와대가 본관이어도 자기가 거기 살때는 자기 집이어요. 그때부터는. 그러니까 그런 것은 자기 개인으로 하는 것이지 국가 대통령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요. 여기서도 자기 아들이 범죄하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신 것입니다. 격발케 한 죄는 무엇이냐? 아버지를 무시했다. 무신한 자녀로다. 거듭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어떻게 무신한가, 21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아닌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일으켰으니, 즉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 허무한 것을 섬겼지요. 그들의 죄는 그런 것입니다. 그 때문에 진노한 것입니다. 아버지 대신에 다른 신을 섬긴 것. 그 다음에 여호와 대신 우상을 섬긴 백성에게 내릴 심판은 어떤 심판이냐? 20절을 보면 내 얼굴을 숨겨서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겠다.그것이 첫째고, 그 다음 21절을 보면은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겠다.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 다음 22-를 보면은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도다 (23) 내가 재앙을 그들의 위에 쌓으며 나의 살을 다하여 그들을 쏘리로다. (24) 그들이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울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애굽에 내렸던 그런 재앙들입니다. 그런 모든 재앙으로 내릴 것인데 밖에 있든지 방안에 있든지 숨어있든지, 청년이든지 여자든지 아이든지 하옇튼 노인이든지 가리지 않고 전부 죽이겠다. 그런 말이지요. 그런 많은 재앙들이 따르도록 되어 있어요. 이런 많은 재앙들은 28장에는 복이 나오고 29장에 그런 이야기가 나와 있었지요. 만일에 범죄하면 소돔 고모라처럼 불살라버리겠다. 그런 저주를 말하고 있어요. 첫째 심판이 무엇입니까? 얼굴을 가리우겠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왜 얼굴을 가리운 것이 심판입니까? 당장 벼락불을 안내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해 사는 것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지요. 그러니가 얼굴을 가리우면은 그들은 종말이 뻔해요.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우면은 그들은 비참하게 되어요. 그래서 심판을 얼굴을 가리운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다음에 인제 얼굴을 가리우면 내 자녀가 아니라는 말과 같거든요. 그러면 하나님 자녀가 아닌 것만으로도 비참한 일인데 내 백성 아닌자로 너희를 시기나게 하겠다.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시키겠다. 여기서 이방인을 우준하다는 말은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율법이 없기 때문에 우준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율법 없는 이방인은 어리석은 자요, 이스라엘은 그들의 선생이요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율법이 없어서 어리석어요. 그런데 그들은 구약 율법을 가지면 어린 아이이면 여러분은 누굽니까? 어른의 지혜를 가지고 있지요. 왜냐하면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직접 부르기 때문에 어른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제일로 지혜로운 백성이어요. 그래서 내린 심판은 얼굴을 가리움입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럴 뿐 아니라 그 전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싸우고 이방인은 대적해야 되어요. 그런데 인제는 거꾸로에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고 이방인을 불러서, 그전 다윗 때는 이방인이 전부 종이지요. 그런데 인제는 꺼꿀로에요. 그들을 이방 땅에 붙여버릴 것이어요. 이방인의 종이 되겠지요. ? 내 백성이 아니니까.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이 누려야할 복은 이방인이 누리고 있어요. 글서 시기나게 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재앙을 다 내립니다. 남녀노소 없이 장소에 상관없이 애굽에 내렸던 재앙에다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백성이 아닌 민족을 우준하다고 한 것은 그들은 의의 백성으로 의의 법이 없지요. 율법이 없지요. 그래서 우준하다고 그런 것입니다. 특징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죽은 신을 섬기는 것이요 허무한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26-35절에는 이런 백성에 대해서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그러나 그 죄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6절부터 보시면은, 내가 그들을 흩어서 인간에서 그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다 마는, 그냥 싹 쓸어버릴려고 했는데, 그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 원수가 오해하고 말하기를 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라 하시도다.27절 때문에 참으신 것입니다. 그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섬기고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하니까 원망했지요. 그때 하나님이 몰수히 싹 쓸어버리겠고 모세 너를 통해서 다시 민족을 일으켜야 되겠다고 하니까 모세가 이렇게 기도했지요. 하나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온 사실은 천하가 다 아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신이 애굽의 신을 치셨다고 세상이 놀라고 가나안 백성들도 달달 떨고 있는데 도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싹 죽어버리면 이스라엘의 신은 말하자면 광야는 통과할 수 없는 능력이 없는 신이다. 나중에 적군들이 처들어오면 그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산에서 주로 전투하면 아, 그들의 신은 산악의 신이요 평지의 신은 아니다. 이렇게 조롱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도중에 그들을 죽였다고 할 것이니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참으시라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 내용과 비슷한 것이어요. 만일에 이 백성을 싹 쓸어버리면은 누가 주입니까? 이제 이방인이 전부 죽이지요. 그전에는 유대인을 통해서 이방인을 쳤는데 이제는 이방인을 통해서 유대인을 처요. 거꿀로 됐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싸우셔요. 이렇게 됐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 이것은 신이 쎄서 그렇다. 이스라엘아 너희 신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격동을 한다. 히스기야 때도 그랬지요. 그가 우상을 다 헐어버리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고 그러느냐? 그리고 너희들이 가졌던 놋뱀도 부셔버리라고 그러더냐. 이 세상에 어떤 신이 자기 백성을 내 손에서 건진 신이 있느냐. 랍사게가 와서 조롱했지요. , 한 신만 섬기라고 그러드냐. 믿지 말아라. 그렇게 조롱했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칠 때 자기 나라를 지킨 신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앗수르를 일으켰거든요. 그런데 앗수르 왕은 거꾸로에요. 내가 했지. 하나님이 바벨론을 일으켰을 때 바벨론 임금도 그랬지요. 이 큰 도성은 내가 세웠도다. 그러자 말자 총명이 떠나가고 7년 동안 짐승처럼 풀을 뜯었지요. 이 큰 도성은 내가 세웠도다. 그런데 경건한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안했습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들은. 나와 내 조상이 범죄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포로 생활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70년이 되면 돌이킨다고 했거든요. 그러니 그런 의로운 사람들은 우리가 범죄해서 그렇지 적군이 강한 것은 아니다. 하나도 두려워 하지 안했지요. 용감했던 사람들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지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요.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다. 임금은 풀무불 가운데 던져도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다. 그것이 의로운 사람들의 신앙이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사라지면은 하나님의 대적들이 이스라엘의 신이 어디 있는고, 그렇게 높아진다. 그러니 내 이름 때문에 내가 참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내 명예 때문에 망한 중에서 이스라엘이 가져야될 지혜는 무엇이냐 하면은, 이방 백성도 스스로 내 힘이 이 일을 이루었도다. 그렇게 뻐겨서도 안되겠지마는 자, 이스라엘 백성들아 제발 좀 지혜좀 있어라.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들었을 때는 가나안 땅에 젖과 꿀이 흘렀지 않느냐. 너희들이 이 꼴을 당한 것이 무슨 일이냐. 너희들이 힘이 쎄서 가나안 땅을 정복했느냐. 아니지 않느냐. 내가 했고 너희들이 말을 안들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 이것을 깨달았으면 좋을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방 땅에 던진 것도 영원히 멸망할려는 것은 아니고 그들을 깨우치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의 방법이다. 환난 중에 이스라엘이 가져야 할 지혜는 이스라엘이 이방에 사로잡힌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해서 그런 줄을 알아야 된다. 그런데 이 지혜는 얼만큼 쉬운 지혜냐 하면은, 31절을 보면은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못하니 대적도 스스로 판단하도다. 이것은 이방인도 알고 있는 상식이 아니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천지의 신이요 우리의 신은 별 것 없도다. 이방인도 언제 알았습니까? 가나안 정복도 온 세상이 떠들석하게 알았겠지요. 애굽의 심판에서 애굽의 임금이 알았겠지요. 다 알았겠지요. 그런데 그것도 모른다. 이방인도 알고 있는 지식을 모른다. 그렇게 어리석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매를 소돔과 고모라의 열매에 비유하신 이유는, 그 열매를 어디다 들였습니까? 여호와의 창고에다 들였지요. 여호와의 창고에 그 열매가 쌓아져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34절에 곡간에 쌓였다는 이 말을 뒷 쪽으로 분리해요.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쌓였다 그런 것 보다도 하나님의 이런 저런 성품이 거기 쌓인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틀리고, 이 문맥을 보면 소돔과 고므라의 열매인데 그것이 너희들이 내 창고에 들여가지고 내 창고에 가득 차지 안했느냐. 말하자면 하나님 창고에다 똥을 싸논 식이어요. 먹지 못할 소돔 고므라의 열매를 쌓아 놓았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몰수이 쓸어버리겠지요. 그들은 죄를 지어 놓고도 평안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눈 앞에 다 보관되어 있고 하나님의 창고에 쌓였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이런 것을 전부 심판하실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왜 하필이면 소돔 고므라에 비유하느냐? 옛 역사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소돔 고므라에 임했거든요. 그런데 심판의 대상은 항상 소돔과 고므라, 그쪽에다 예를 든 것입니다. 세상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잠들었다면 어디다 합니까? 노아 때와 같다. 심판의 전야 때 잠들어버렸거든요. 노아 때에 연결시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옛 역사에서 나타났던 심판의 표상들을 여기다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돔 고므라의 열매다. 여호와의 심판과 구원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영광 때문에 오래 참으시는데 이스라엘의 죄는 용서 못할 죄에요. 소돔 고모라의 죄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내와 이스라엘의 죄를 대비시켜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도 탁월하게 들어나지요. 36-43절에는 이런 백성들에게 베푸신 여호와의 긍휼과 그리고 심판과 구원이 나타나 있습니다. 35절부터 보면은 34절과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은 그 창고에다 쌓아 놓고 평안한 것 같은데 하나님의 복수의 날이 이르면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대로 갚아버릴 것이어요. 그런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데 36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여기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는 것은 자기 백성을 의의 법으로 언약의 법으로 판결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그들을 이방 땅에 흩어버리시고 종노릇하는 것이었지요. 그것이 판단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후회하십니다. 여기서 백성들과 종은 같은 개념이지요. 어떻게 후회하느냐 하면 그들이 힘이 없었어요. 그리고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어요. ? 몰수히 쓸어져버려서. 감옥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있었으면 좋겠고, 안그러면 감옥 밖에서 돌아다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보니까 갇힌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힘은 없고, 그러면 아무 것도 없다는 이야기인데 시적인 표현법이겠지요. 수를 셀려도 셀 것도 없고, 사람이 힘이 없어요. 아무런 구원자가 없어요. 그래서 인제 말합니다. 37)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38) 그들의 희생의 고기를 먹던 것들, 전제의 술을 마시던 것들로 일어나서 너희를 돕게 하라 너희의 보장이 되게 하라아무도 구원하지 못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왜 후회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무력함과 수가 적음과 그들을 구원할 힘이 없어요. 아무런 도울 자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팔을 걷고 일어납니다. 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팔을 걷어 붙이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모습이어요.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줄 알라. 이 유명한 말씀이 요한복음에 반복되어 있지요. 내가 그니라. 내가 그인줄 알지 못하면은 너희들이 죄 가운데 줄으리라. 요한복음 8장에도 그런 말이 있지요. 내가 그니라. 너희들이 내가 그인줄 알면 생명을 얻으리라. 나는 생명의 떡이요, 나는 세상의 빛이요, 나는 너희들의 양의 우리요 목자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내가 누구니라. 하는 말을 보어를 붙여서 괄호를 집어 넣었지요. 거기 없는 말이 내가 그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그런 말이어요. 여기서 내가 그니라 하는 말은 이사야서에서 인용하고 찾아보면 안다고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냥 여기 문맥만 보아도 좋습니다. 내가 그니라. 내가 누굽니까? 내가 여호와지요. 내가 주니라. 이 앞에 신들을 불러 보아도 없지요. 37절에 너희 신들을 불러 보아라. 대답하겠는가? 그전에 섬긴 신들을. 그러면 누가 신이냐. 내가 그다. 내가 너희를 구원할 신이다. 그런 말입니다. 이 유명한 말이 요한복음의 예수의 자기 증거에 반복되는 말이어요. 내가 그니라. 내가 그인줄 알라. 나와 함게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상하게도 낫게도 하며, 내 손에서 능히 건질자가 없느니라.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을 건질 신은 여호와 뿐이신데 하신 일은 무엇인가? 그가 주권적으로 그 일을 하십니다.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치기도 하고 싸매기도 하고, 심판하는 권세가 그에게 있습니다. 유일한 구원자 여호와의 자기 확증은 내가 그니라. 그런 말로 표현하고 있지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고 보응하는 대상은 누군가? 아까 말했던 것과 같습니다. 결국 우상을 섬겼던 백성이지요. 37,38에 있지요. 너희들이 그렇게 우상을 섬기더니 한번 우상에게 구해 보아라. 바로 그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여호와의 언약의 완성과 확증은 어떻게 되는가? 어떻게 언약을 완성하고 어떻게 확증하시는가? 확증은 40절에 있는데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노라 나의 영원히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항상 하나님이 맹세하면은 최후 확증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 삶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이해가 가요. ? 자기가 자기보다 높은 분이 없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두고 자기가 맹세하니까 맞는데 하늘이라는 것은 피조물이거든요. 그런데 왜 피조물에게 손을 들고 맹세하느냐. 이런 말이지요. 하나님은 자기보다 더 높은 분이 없기 때문에 자기를 두고 맹세하는 것은 맞는데 왜 하늘에 손을 들고 맹세하느냐. 그런 말이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은 시적인 표현으로 이해를 해야지 하늘을 가령 여기서 맹세하신 분은 피조물이구나, 그보다 더 높은 하늘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면 안되겠지요. 그렇게 하든지, 한 가지는 그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가나안 땅에 함께하신 하나님, 성소 중에 함께하시니까 그런 의미로 하늘에 손을 들고 내 삶을 두고 그렇게 맹세한다고 이해하면 좋아요. 그러면 시적인 표현법이라는 것을 안가져와도 좋아요. 왜냐하면 그가 관계적으로는 땅의 성소에 계시는데 본래 그의 보좌는 하늘이거든요. 그러니가 하나님의 삶과 하늘은 연결되어 있어요. 여기서 하나님의 삶과 하늘은 같은 가치의 말이어요. 그렇게 이해하면 시적인 표현이라는 말을 안써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은 어떻게 언약을 완성하는가? 어떻게 완성하는가를 보십시다. 40절에 맹세를 했는데 41절에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42) 나의 화살로 피에 취하게 하고 나의 칼로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장관의 머리로다 하시도다.여기 보니까 이스라엘의 대적만 치면 좋겠는데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이스라엘 백성의 잡힌자도 죽지요. 누굽니까? 어떻튼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든 그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해서 살해했던 원수든지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이스라엘도 죽고 그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나님이 불러 썼던 몽둥이 있지요. 이방인들, 그 대적들을 몰수히 죽이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에게 진노를 가하겠다. 그말이어요. 43절이 결론인데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 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누구는 사랑하십니까? 그 종들은 사랑하십니다. 자기 택한 백성은 사랑하셔요.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했던 사람들은 포로잡혀갔든 죽은 사람이든 전부 죽고 그리고 그 하나님 백성을 대적했던 대적들도 전부 죽을 것이어요. 그리고 자기 땅과 그 백성을 위해서는 죄를 용서하셨어요.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땅에 살고 있지요. 그 땅과 그 백성은 용서하시고 그리고 언약 백성들을 핍박했던 모든 죄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자기 백성을 핍박했던 원수들이든지 이방의 대적이든지 전부 죽이겠고 그리고 자기 백성과 그 땅은 속죄하겠다. 어떻게? 천하만민이 기뻐하도록. 천하만민 중에 이제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적하는 죄가. 없지요. 만일에 죄가 있다고 할지라도 언약의 땅에는 죄가 없지요. ? 석죄하셨으니가. 그 땅과 그 백성을 속죄하셨으니가. 어떻게? 원수의 모든 죄는 다 심판하시고,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를 완성하시는 방식이어요. 뭐냐하면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는 완전히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역사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은 불못에 던지고 자기 백성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케 하시면은 역사의 완성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 땅에 던젔는데 보니가 너무 안되었어요. 이방 백성이 조롱할 수가 있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은 천하만민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알게 할려고 장자로 택했는데 거꾸로 되었어요. 그러니 하나님이 자기 이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아끼실 것이어요. , 자기 명예가 거기 있기 때문에. 그러나 죄인들은 포로잡혀갔다고 해서 나둔다거나 거기서 감옥살이 한다고 해서 봐준 적이 없어요. 죽이겠다. 그것 뿐인가? 스스로 높아져서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함으로 스스로 높아진 이 모든 대적들도 다 죽이겠다. 어떻게? 내가 내 삶을 두고 맹세하겠다. 반드시 심판하겠다. 심판이 완성되면 어떻게 합니까? 언약의 땅과 그 백성은 속죄함을 받고 그리고 천하만민은 함께 기뻐해라. 했을 때 천하만민이 그리로 들어오든지 넓은 의미로는 천하만민 중에 하나님의 대적들이 심판받았으니까 천하만민이 하나님 나라가 됐든지 둘 중에 하나겠지요. 그것이 역사를 완성하시는 방식이어요. 그리고 나서 권고와 확증이 이제 44-47절에 있습니다.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고, 46절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그것이 권고지요. 또 약속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이 약속을 지키면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절대 헛일이 아니니가 그렇게 하라. 다시 언약을 반복함으로 확증시키고 있습니다. 반복된 확증이지요. 48, 52절에는 모세가 죽기 전에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개인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은, 50절에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아론의 죽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지요. 너도 그렇게 죽어라. 그리고 죽기 전에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는 말이어요. 그러면 왜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는 못하는가? 너희들이 무리바 물가에서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 나타내지 안했다. 그때 여호와께서 물을 주시리라. 그래야 되는데 우리가 너희에게 물을 주랴, 하고 성질냈거든요. 그 물은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지 자기가 주는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들이 도적질 한 것이지요. 중보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이래야 되는데, 우리가 너희에게 물을 주랴. 해서 여호와의 영광을 도적질 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땅까지는 백성을 인도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것이 옛 언약 중보자의 한계점이어요. 온전치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바라보기는 했습니다. 여기서 언약에 신실하심이 나타나 있지요. 백성들만 범죄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중보자도 범죄했어요. 물론 중보자는 가나안 땅을 보고 열두 정탐꾼처럼 저주하는 그런 죄는 아니어요. 그 직무에 실패했던 것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그는 그 직무를 완전하게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어요. 그러나 그는 그 직무를 맡은 자로서 가나안 땅은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그것이 옛 언약 중보자의 한계점이어요. 그들이 가나안 땅은 바라보데 백성은 인도하지 못했지요. 그것이 모세의 한계점이고 모세를 완성한 사람이 여호수아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여호와의 신실하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죄 때문에 그의 직무를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도록은 못하도록 제한을 가했지마는 그는 비록 죄 아래 있는 옛 중보자일지라도 그에게 약속했던 언약의 땅은 바라보게 하심으로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지요. 모세는 바라본 것이 들어간 것과 같지요. ? 들어가지 못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에 못들어가요. 그건 여호수아가 할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 옛 언약의 중보자가 자기 직무를 끝냈을 뿐 아니라 자기 직무를 다 끝낸 중보자를 언약의 땅을 죽기 전에 바라보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증하고 있다. 그런 말입니다. 제일 끝 문단입니다. 이 은혜의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하늘의 질서로 온전히 이루시고 천하만민을 그 나라로 부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은혜의 부르심도 거역하여 그 나라로부터 쫓겨나고 이방이 그 나라를 상속했다. 그러나 이 버리심도 영원한 것은 아니며 그들로 시기나게 하여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다. 조상들에게 하신 언약은 영원하다. 대적을 멸하고 택하신 백성은 온전히 구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목표이다. 때에 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뻐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대대로 이제까지 범죄했던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금도 범죄하고 있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가나안 땅에 심으셨어요. 이 약속이 일차 성취지요. 신명기 약속의 일차 성취에요. 가나안 땅 밖으로 던저지면 저주인데 하나님이 그들을 첬던 몽둥이 바벨론을 흔절이 없도록 쓸어버리시고 남은 백성들은 데리고 왔어요. 남은자들은,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지요. 온 세계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도록 그렇게 했는데 아직 완전한 성취는 아니고 일단계 성취가 되겠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제는 모세가 주었던 가나안 땅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줄려고 아들을 보내셨는데 가나안 땅을 주었던 여호와를 거절했던 것처럼 하늘의 영광을 알지를 못하고 거절했어요. 끝가지 핍박을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버렸고 그들이 버렸던 반석, 그들이 넘어졌던 반석으로 이방인이 접붙여졌다. 우리가 들어왔어요. 그들 전체가 버려진 것은 아니다. 나도 들어왔다. 바울이 그랬지요. 그들이 영원히 버려졌는가, 아니다. 뿌리가 나무를 보존한 것이 아니냐. 조상들이 뿌리다.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한 약속은 불변하기 때문에 그들도 대대로 돌아올 것이다. 너희들이 돌아온 것처럼 그들도 돌아올 것이다. 너희들 보다 더 잘 돌아올 것이다. ? 본 나무라. 잘 돌아올 것이다. 실용적인 가치로 하면 히브리어 배울 필요 없고 구약 성경 배울 필요 없겠지요. 조상 대대로 외우고 있으니까. 더구나 그들은 대대로 여호와를 위해서 싸운 백성이니가 우리처럼 힘이 없는 군대가 아닐 것이어요. 실재적으로 그렇다 그말입니다. 가령 지금은 총 갖고 있는 사람이 훨신 싸움을 잘하겠지마는 용맹하기는 창가진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지요. 그래도 아무리 지가 용맹해도 한방 쏴버리면 죽어요. 그러니까 총 가진 사람이 훨씬 우리는 총 가진 사나이어요. 구약 때 같으면 창 가진 사나이면 그런 의미로 좋다 그말입니다. 강함은 개인을 비교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여자들이 총들어 보십시오. 꼬나 놓고도 달달 떠느라고 총 못쏘지요. 그러니까 총 안가진 남자가 빼앗기도 하지요. 영화보면은. 왜냐하면 총은 가졌어도 배뽀가 없어서 못쏜다 그말이어요. 그런 것과 비슷하다 그말이어요. 우리는 총 가진 시대인데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해요. 그처럼 고약한 이야기지요. 그러니까 개인을 비유한 때가 아닙니다. 개인을 비유한 것이 아니어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어요. 이제는 영광스러운 나라를 주실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로부터 넘어졌다. 배교 했기 때문에. 안들어요. 그들이 여호와를 거절했던 것처럼 그들을 위해서 몸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했어요. 안식후 첫날에 살았는데도 간수들을 매수해 가지고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 해갖다. 만일에 일이 생기면 우리가 입막아주마. 끝까지 거절했어요. 마태복음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요. 끝까지 거절했지요. 그리고 바울이 사도들이 그 복음을 전파하는데 따라다니면서 반대를 했어요. 지금도 반대해요. 예수는 저주받은 자라고 나무에 죽었으니가. 안믿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언약의 땅 밖으로 쫓아냈는데 그냥 이 언약으로부터 쫓겨난 것이 아니라 실재로 그들이 언약의 땅 밖으로 쫓겨났어요. 마치 그전에 쫓겨난 것처럼. 그래갖고 세상에 흩어졌지 안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핍박받고 조롱받은 백성들이 없어요. 누구에게? 특별히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죽였다고. 그러나 지금 그들이 돌아왔지요. 여러분이 세대론을 도매값으로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를 해석하니까 잘못 해석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으로 특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증거예요. , 언약은 불변하다. 우리가 믿음으로 들어온 것처럼 그들도 믿음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지금 자기 사도직이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전도해요. 그러면서 자기 직분을 명예롭게 생각해. 자기가 이방인을 전도한 것은 이방인만 구원한 것이 아니라 곧 유대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봉사하니까.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믿음을 보고 시기해서 들어오게 한다. 이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지요. 그들은 세상에 흩어저셔 그들이 저주하는 예수를 만민이 믿고 하나님께 들어오는 것을 보아요. 그리고 그들이 섬겼던 모세 제도는 불타져 없어져버렸어요. 그들은 모세 없으면 하나님 못섬기지요. 그리고 그들이 조롱하고 하나님도 없다는 어린 아이요 소경이요 개 취급했든 사람들은 그들이 저주했던 예수를 믿고 구약 성경을 갖고 신약으로 섬기고 있어요. 그들은 세상에 흩어져서 저주했던 예수가 하나님인 사실을 보도록 되어 있어요. 시기나게 해서 그들로 구원을 얻게 하기 때문에 천하만민에게 복을 전하는 것이 곧 유대인을 구원하는 섭리를 봉사하는 것이어서 나는 내 직분을 명예롭게 생각한다.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하니가. 물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다는 의미로는 에베소적인 의미로 유대인과 이방인은 차이가 없어요. 다 믿음으로 주의 몸을 이룹니다. 그러나 민족적인 이야기로 하면 여전히 유대인은 유대인인데 구약처럼 특권은 갖고 있지를 못해요. 구약의 약속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구약 식으로 약속이 진행되지 안해요. 그 특권은 인제 끝났습니다. 그런데도 조상들에 대한 약속은 천하만민이 성령의 약속을 받는 것, 신령한 백성이 되는 것, 우리는 됐거든요. 아직 이스라엘은 아니어요. 이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그들도 충만케 해서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천하만민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민족적인 역사를 완성시킨다. 그것이 로마서 11장에서 하는 이야기예요. 어떠튼 유대인이 돌아와서 나라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증거예요. 그들의 대다수가 믿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칼을 쥐어준 적이 없는데 유대인들이 예수 죽였다고 전권을 휘둘러 핍박을 했거든요. 그건 구약 성경을 잘못 인용해서 그런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는 안되지요. 구약 때는 칼을 들고 적군을 처야 되어요. 그것이 그들의 의로움이어요. 지금은 그러면 안되지요. 어떠튼 핍박도 받았습니다마는 그리스도의 나라로부터 쫓겨나 있다. 그러나 그들도 믿음으로 들어온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자기 백성을 구원에 있어요. 조상들에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은 불변하셔요. 그런데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이 이 복을 받고 있고 유대인들은 쫓겨나 있지마는 그들도 들어올 때가 있다. 그때가 어느 때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은 다 심판을 받고 천하만민이 하나님 앞에 복종할 때 그때 죄는 온전히 제거되고 천하만민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나라를 이루게 된다. 그때가 역사의 끝이어요. 그런 역사적인 조망을 담고 있는 것이 32장에서 말하고 있는 노래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노래가 지금도 필요할련지 몰라요. 그들은 거절했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살리실 것이어요. 그들이 돌이킬 때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그들을 용서하기 위한 것이어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구약의 인도자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했지마는 우리의 인도자는 영원히 영원히 보좌 우편에 앉은 인도자이지요. 우리에게는 은혜가 더욱 확실합니다. 32장은 상당히 길어요. 해보니까. 다음에 33장을 공부하기 좋게요 창세기 49장을 같이 읽어 오십시오. 거기 야곱의 축복이 있지요. 그것이 모세 축복과 어떻게 다른지 그걸 비교해 보면 훨신 알기가 좋을 것이니까 읽어 갖고 오시라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중에 이 노래를 기억하고 부르면은 그들의 죄도 회개하고 신앙이 남아있지요. 이름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정직하시다. 하나님은 신실하심이 구원이어요. 이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 살리심으로 그 신실하심이 확증되어 있어요. 더 이상의 신실하심이 없어요. 그래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도 의롭고 그를 믿는 자도 의롭다. 로마서 장에 있는 이야기가 그런 말입니다. 여기서 의롭다는 말은 신실하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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