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어린 양의 아내의 모습

찬미예수님 2026. 6. 24. 22:23

제목: 어린 양의 아내의 모습

성경: 요한계시록21:9-22:5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피로 값주고 사셔서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해방하시고 하나님을 위해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이제는 하나님 품안에 살게 하시며 예수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하셔서 그 영광과 권세를 봉사할 수 있도록 복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생명의 복으로 주의 백성들을 더욱 새롭게 하시려고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아들이 날에 이처럼 교회를 주의 보좌로 불러 모으셔서 영광 중에 계신 주님의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주의 얼굴을 대면함으로 주님의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해서 주의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고 성장할 수 있도록 복주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이 생명의 복으로 주의 백성들에게 더욱 넘치도록 허락하셔서 우리의 많은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해주시옵고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우리들도 그 영광을 위해서 이 모든 고난 중에서도 믿음을 따라 승리의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주의 백성들이 믿음을 더욱 새롭게 하시고 주의 백성들 중에서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계시록 21장9-22장5절까지 읽고 강론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은 서로 화답함으로 예배하는 것이니까 이런 은혜스러운 구절이 끝나면은 진실로 그러하다. 성경 말로 아멘 하는 것이 맞지요. 그런데 하도 순복음파나 그런데가 욕을 해도 아멘, 주여, 하니까 그것 안하는 것은 좋지마는 해야할 때 안하는 것은 참으로 갑갑한 일이어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함께 기쁨을 표쁨을 표현하는 것인데 점잔히 가만히 있는 것이 보수파고 그런 식으로 개혁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정상적인 반응을 보여야 되겠지요. 이 계시록은 싸움이 주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강론하는 종말의 사건들도 싸움의 빛에 비추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령 똑같이 종말의 사건을 말해도 예수님 재림하시면은 만국이 새롭게 된다. 여기 계시록에서는 크고 흰 보좌가 왔을 때 만물이 새롭게 된다고 했지요. 아들이 재림했을 때는 만물이 새롭게 된 것이 아니라 용이 사로잡히고 천년동안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서로 틀리게 증거하는 것인가? 그 문맥을 봐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계시록 17-21장8절까지 지난 시간에 강론했던 데까지는 악의 세력들은 차례대로 연속해서 일어나겠지마는 연속해서 격파되리라. 그런 것이 주제였지요. 그러니까 바벨론이 망하고 두 짐승이 망합니다. 용도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아들이 강림하셔서 천년 동안 왕국을 건설합니다. 그런데도 그 후에 또 용의 세력들의 대 반란이 있습니다. 그러면은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그들이 망하고 크고 흰 보좌 영원한 나라가 펼쳐질 것입니다. 이처럼 어떻게 악의 세력들의 연속적으로 격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인가, 그것이 17장부터 21:8절까지 설명하는 흐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하나님의 나라도 아들이 오면은 만물이 새롭게 된다고 설명하지 않고 아들이 오면은 천년 동안 왕노릇하고 그리고 그 후에도 용의 배교가 있겠지마는 그도 망할 것이고 그리고 크고 흰보좌 하나님의 영광 중에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나라도 점진적인 승리에다 맞추어서 그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증거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된 것이어요. 그러나 다른 성경 구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완결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오시면은 만물이 새롭게 된 것으로 묘사하고 그 뒤에 크고 흰보좌가 오느니 그런 말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만물을 새롭게 한다 했을 때 지난 시간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성소를 지으시고 다시는 눈물이 없는 생명의 나라를 짓고 그리고 악한 모든 세력들은 그 나라에서 쫓아내고, 그런 것이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성소 구조로 설명하지요. 이스라엘 나라 구조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 우리가 잘 아는 구절, 주님께서 오시면 어떻게 됩니까?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인데, 그때 하늘도 없어지고 땅도 불에 녹아지고 그리고 의가 거하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볼 것이다. 너희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는가, 그렇게 베드로후서 3장에서는 만물의 체질이 불에 녹아지고, 그런데 계시록에는 녹아진다는 말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면 그런 것을 짜맞추어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짜맞추어서는 안된다고 그랬지요. 성경은 우리에게 나타날 나라를 비디오처럼 구성해서 한번 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 문맥을 따라서 언약적인 말씀으로 권고하는 것이지 그 상황을 다시 구현해서 우리로 구경하게 할려는 것이 아니어요. 가령 아버지가 자식에게 너는 잘못하면 매맞을 것이다. 하면 그때는 맺맞을 것만 궁리하면 되어요. 그런 것이지, , 그전에는 아버지가 좋다고 그랬는데 오늘은 매때리는구나.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 매도 때리는 아버지, 하고 눈을 깜빡거리면서 도덕 교과서를 연구하듯이 그것을 맞추고 있으면은 그 아버지를 모르는 것이어요. 너 말 안들으면 매맞아, 했을 때는 매때리는 아버지만 보고 있으면 되어요. 그때는 우리 아버지는 가끔 좋기도 하는데 그걸 궁리하고 있으면 안되어요. 그래야 매맞는 효과가 있겠지요. 아버지는 그 말씀을 하실려고 너는 말 안들으면 매맞아, 그 말을 하시는 것이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아버지는 돈도 주고 좋기도 하고, 말 안들으면 매맞고, 도덕 교과서 쓴 것처럼 1번 좋다. 2번 매도 맞는다, 하고 붙이고 있으면 아버지의 말귀를 못알아듣는 것이어요. 항상 부모가 자식에게 말할 때는 그 관계 아래서 말하는 것이지 부모를 존재론적으로 총괄적으로 설명해 낼려고 한 부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여러 부분들을 맞추어서 종말에 나타날 나라는 어떻게 완벽하게 구성될 것인가, 그런 것을 연구할려고 성경을 읽으니까 성경이 안 열린 것이어요. 왜 그런 성경 해석법이 이제까지 유행을 했는가? 땅에 있는 것은 그림자요 하늘에 변치 않는 영원한 실체가 있다. 그러니까 그림자는 어디를 보아도 실체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림자를 벗겨버리고 실체를 발견하는 것이 알짜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은 어디나 똑같다. 그림자만 벗기면은. 이런 철학적인 전제로 읽어버리니까 역사에서 말씀하시는 역사적인 생명을 도외시해버리고 읽지를 못하는 것이어요. 성경에 분명히 하늘과 땅을 대비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고, 계시록도 그렇게 되어 있지마는 그것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그런 이원론이 아니라 모세제도적인 종교적인 이원론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지성소에 계시고 백성은 그 밖에 있습니다. 벌써 거기도 하나님의 거처와 백성의 거처가 다르지 안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늘의 식양대로 지은 성전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이제 참 하늘이 왔습니다. 땅에 만든 성소에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그전에는 하늘이 막혀있었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이원론이지 말하자면 풀라톤 철학에 근거한 그런 우주론적인 실체론적인 그런 이원론이 아니라는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역사적인 문맥, 그것만 읽으면 되어요. 그리고 이 계시록을 설명했을 때는 여기 이기면은 상준다. 이것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지 이 본문을 그것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빼버리고 여기 저기 끌어와서 설명하는 것은 성경을 신학 자료집으로 읽는 것이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대면하시고 대면하시는 언약과 교제의 책으로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옳은 방식이 아니라고 여러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있는 문맥을 그대로 읽으시라고요. 그런데 왜 베드로후서에는 땅이 체질이 말라지고 하늘도 없어진다고 그러는가? 그 문맥이 거기는 조롱하는 자들이 있었어요. 만물은 처음 생긴대로 지금도 똑같이 있도다. 부활이 어디 있냐? 그러니까 거기 말하기를 옛 세계를 물로 멸망시켰지 않느냐? 오는 세계는 불로 멸망시킬 것이다. 그리고 조롱받는 백성들이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땅의 세계는 불에 녹아지고 만물은 영원히 그대로 있도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하나님을 조롱하니까 노아 시대 옛 세계를 물로 심판하고 거기 있는 백성들을 몰수히 죽이고 노아의 식구로 새 세계를 상속받도록 했던 것처럼 이제 믿음 안에 거하는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주고 나머지 백성들을 물로 멸한 것처럼 불로 녹혀버리겠다. 이런 심판의 문맥에서 베드로후서는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을 해요. 그런데 계시록은 그런 문맥이 아니라 말하자면은 로마 황제를 섬기는 사람들은 왕궁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생존권이 박탈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도록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증거하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시인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시인하고 주님을 고백함으로 그 영광스러운 처소에 참여하고 그를 배반한 백성들이 어떻게 성 밖으로 쫓겨나서 멸망을 받을 것인가, 완전히 이스라엘 나라 문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계시록입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은 누가 상속받습니까? 이기는 자들입니다. 특별히 천년왕국은 누가 상속받습니까? 순교자들입니다. 목베임을 받은 자들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산 순교자들, 그런 사람들이 천년 동안 왕노릇하고 나머지 죽은자들은 살지 못하고 그 다음에 일어날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물론 신학적으로 설명하면 그것이 구약 신자인지 신약 신자인지 설명할 수 있겠지마는 계시록의 말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고난을 받고 있는가? 언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들의 생명으로 주님을 고백했던 신실한 자들의 피를 값느라고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제단 밑에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 피를 갚겠습니까? 순교자의 무리가 차로록 기다려라. 그렇게 말씀하셨이요. 그리고 인제 주님 오시면은 그 순교자들을 상줄 것이다. 그들이 먼저 부활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요. 그러면 순교안한 사람들은 참석 못한다는 말인가? 계시록 문맥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순교도 일종의 상급이겠지요. 충성스런 증인으로 생각하고 너는 네 생명을 빼앗는 장면에서도 나를 시인할 수 있겠다. 그렇게 맡겼으면 얼만큼 복된 군인이고 얼만큼 하나님 앞에 신임을 받은 백성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숨어서 들통나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은 복되도다. 예수를 부인하지 안해서 천국은 가지마는 아이쿠 안들키고 잘 지내서 천국갔도다. 이런 식으로 졸병으로 저 참호에 숨어있다가 공중에 대고 총이나 몇방 쏘고 전쟁이 끝나니까 행렬이 서갖고는 훈장받아서는 안되지요. 계시록은 그런 문맥이어요. 그러니까 계시록에서 천년왕국은 누가 받습니까? 순교자들입니다. 죽은 순교자들이나 산 순교자들이 먼저 일어나서 천년동안 왕노릇할 것이고, 이런 영광스러운 나라가 나타나도 또 악의 세력은 발동하겠지마는 그도 마지막에 망하면은 크고 흰 보좌, 하나님이 친히 오실 것이고 만물이 새롭게 되면은 그때는 완전한 성소가 될 것이다. 지금도 교회는 하늘 영광의 성소에 있지 않느냐? 그 완전한 성소가 이루어지면은 거기는 다시는 눈물과 가난함과 배고품과 병든 것이 없고 안전한 생명을 상속받을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은 가나안 땅에서 전부 쫓겨난 것처럼, 성소 밖으로 쫓겨난 것처럼 성 밖으로 쫓겨나서 슬피 울고 애통할 것이다. 그렇게 계시록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이 역사에서 자기 백성과 동행하는 것이어요. 자식들이 말을 잘 들으면은 다 자식은 소중하겠지마는 그러나 어느 아들의 특별히 아버지를 위해서 어떤 일을 했으면은 그 일에 대해서 아버지는 분명히 기뻐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보기에 아버지는 공평해야 되는데,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냐고 했는데, 오늘 보니까 형님만 사랑하고 나는 어째서 동생은 그 일을 안했냐? 동생은 짜잔해서 그 일을 못할 것 같으니까 안시켰던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는 안시킨 것이 복이고 형님은 그 런 일을 시켜도 할 수 있으니까 시킨 것이어요. 그러니까 형님은 그 일을 하는 것이 복이고, 그러니까 그 형님이 집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고 아버지의 칭찬을 받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하나님은 공평해야 된다. 그러고 묻는다 그말입니다. 성경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안해요. 그런데 우리들은 묘하게도 지금 몸으로 행한 바를 통해서 장차 나타날 영광을 참여하는데 우리들은 가능하면 이 몸으로 산데서는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하나님 복도 받고 그리고 천국가면 더욱 좋고, 일거양득이지 결단코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멸시와 천시를 받는 것을 신앙의 고백으로 지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말이어요. 그러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그리고도 천국은 자기가 제일 앞자리에요.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몸으로 행한 바가 세상에서는 고난 중에 있고 멸시 중에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섬기는 그 영광은 나타나지 안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면은 이 몸으로 행한 바를 따라 받을 것이고 우리가 육체의 장막을 벗어도 이 몸으로 행한 바의 실체를 주님 앞에서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울이 고백하는 신앙생활이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안해요. 왜냐하면 이제까지 철학적으로 배웠거든요. 영원한 나라는 전부 공평하다. 거기에 만일 등급이 있으면은 그것이 무슨 천국이냐? 지금도 등급이 많해갖고 불편한데. 지금 등급은 불공평한 등급이고, 그때는 나라는 완전한 통치 질서가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처럼 복된 나라가 없는 것이어요. 천국은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지 아무 것도 할 일 없이 영원히 평안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나타날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완전한 교제, 그 역사적인 나라가 영원한 나라지, 이 피조물 세계를 떠난 영원 개념을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천년왕국과 그리고 나타날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은 이기는 자들이 상속받는데 특별히 천년왕국은 순교자들에게 주겠다. 그들이 먼저 일어나서 왕노릇할 것이다. 그렇게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2, 3장 처음 시작했을 때도 교회에 무엇을 말씀했습니까? 내가 이기는 자들에게 이러이러한 상을 주겠다. 그것이 지금 계시록 2, 3장에 교회에 대한 권면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어떤 싸움을 싸울 것인가, 그것이 4장이하에서 쭉 펼쳐보였든 것입니다. 거기서 이기는 자들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그들의 상황에서 싸움이 전부 달랐습니다. 우리들은 똑같은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주어진 자리에서 믿음을 지키면은 그것이 이기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계시록은 이김에다가 강조를 두지 도덕적인 완전함, 그런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기 주어진 자리에서 주님을 고백하면은 이기는 것이어요. 특별히 이기는 자들에 대한 상급에 있어서 마지막 말세 교회에 적용되는 것은 모든 주석가들이 소위 라우디아교회를 모델로 거의 삼습니다. 물론 성경 해석상은 라우디아교회가 말세 교회로 지칭한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았을 때는 말세 교회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말세 교회는 라우디게아 교회라고 막 적용해버리는 것이어요. 거기 보면은 굉장히 부요한 교회입니다. 너무 부자여서 아무런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눈도 멀었고 벌거벗어서 지극히 천박합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내게 이런 모든 것을 값주고 사서 다시 시작해라. 그렇게 설명하지요. 왜 너희들이 뜨겁지도 차지도 안해서 미지근하여 토해 내처버리겠는가? 아무런 맛없는 물이되겠는가. 맛있는 물이 되도록 해라. 왜 너희들이 스스로 만족해서 눈멀고 헐벗었은 것을 알지 못하는가? 내게서 이런 것을 값주고 사서 다시 시작해라. 그러면은 나와 함께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설명을 했지요. 그것이 현대 교회에 제일로 적용되기 쉬운 상황일 것이어요. 지금은 지식이 굉장히 넘칩니다. 이제는 설교를 들을려고 저기 멀리 있는 교회를 찾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요새 같으면 인터넷이 있게 되면은 거기에 들어가면은 유명한 설교는 다 들을 수 있고, 전부 다 되어 있어요. 앞으로 동영상이 어떻게 되고 하면 그런 방식으로 예배 참석도 가능하게 될 것이어요. 그런 식이 되어서 옛날에는 목사님들 서재에만 신학책이 있고 설교집이 있는데 요새는 그렇지를 안해요. 요새처럼 지식이 개발된 때가 언제 있어요. 지금 사람들은 백품을 모릅니다. 지금 배고품은 옛날처럼 절대적인 빈곤의 배고품이 아니라 그냥 상대적인 불편이지 이제는 절대적인 빈곤은 벗어났다고 말할 만큼 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 문화인이어요. 옛날 이런 정보가 떨어지고 무식했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칼들고 전쟁했지 이 문화인 시대에는 그렇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다 고상한 문화인들이어요. 하여튼 몇 년 전만 해도 미개인이고 지금이 최상의 인류에요. 그리고 전부 기독교 후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구제사업도 잘하고 멋도 있어요. 그리고 어지간 하면 다 기독교인들이어요. 그런데 믿음이 있는가? 그 문제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부요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 의식 몇 가지에다가 그리고 기독교인이라는 이름 갖고 있고, 그리고 특별히 나쁜 짓거리 안하고, 옛날의 영웅들은 칼들고 싸움 잘하면 되지만 지금은 그러면 안되요. 클린턴도 아이 데리고 입맞추어야 되지 누구 두들겨팬 것 나왔다가는 절대로 안되어요. 하여튼 소련 사람도 웃고 나와야 되어요. 그러니까 우리들도 다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굉장히 문화인처럼 알고 있어요. 더구나 우리 나라는 부자여서 삼세계 선교국가에요. 이제 주는 나라에요. 우리 나라는 예루살렘 교회고 저 변방 국가들은 이제 초보 국가에요. 이쯤 되어 있으니까 설교도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이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으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책을 펼쳐놓고 음성을 듣지 안해요. 하나님은 생명의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기도 시간도 없어요. 그리고 다 문화인으로 바빠요. 바쁜짓 안해요. 다 문화인이니까. 그리고 다 편안히 살아요. 그리고 종교의식에 빠진 적이 없어요. 헌금도 잘하고, 그런데 무슨 죄가 있어요. 그러니 고칠 방법이 없지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인격적인 사랑의 고백에 있지 이런저런 활동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러 해를 보아도 성경을 몰라요. 아이들 같으면 까꿍까꿍해도 3년이면 말을 배우는데 우리들은 여러 해를 배우고도 성경은 몰라도 괜찮해요. 그리고 본래 교육이라는 것이 모르는 것을 배워나가는 것이 교육이고 신앙의 성장도 하나님의 깊은 것을 배워나가므로 사랑이 성숙한 것인데 우리는 조금만 어려우면은 어려워요. 조금만 새 것으로 하면. 모르는 것을 새로 배워나가는 것이 교육이고 성장인데 우리는 하나님을 그렇게 배우지를 안해요. 그리고 핑개대면은 새 신자라 모르겠다. 우리 교회는 그런께 부흥이 안되다. 자기가 알라 그말이어요. 자기가 설명하면 좋겠는데 자기는 안해요. 그리고는 목사님은 저렇게 어려우니까 안오지. 자기가 누군지를 몰라요. 그리고도 이미 교회 토대를 놓는 유명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 교회를 부흥시키는 인물이지 하나님 앞에 신앙이 없고 사랑이 없음을 회개하고 더욱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에 이끌리고 그런 사랑의 열정, 사랑의 인격적인 교제, 그런 것은 사라진지 모래에요. 그래도 우리 교회는 미신적인 행위 않고 얼만큼 신사 교회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괜찮은 교회에요. 차라리 우상 섬기는 사람들의 그 신을 잘 섬겨요. 그들은 모든 일에 그들의 신을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전에 우상을 섬기든 생활에서 벗어난 것은 감사한데도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에요. 우리들은 그 미신적인 행위를 안하는 것으로 스스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우리는 싸울 필요도 없이 져있는 것이지요. 스스로 만족해서. 라오디아교회는 외적인 핍박 때문에 망한 교회가 아닙니다. 촛대를 옮기리라. 그 경고대로 그들이 망한 것은 스스로 부요하고 만족해서 망한 것이지 외적인 핍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어요. 사랑은 끝이 있는 것이 아니어요. 요새 사랑이 무엇이냐?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 말이맞는 말이지요. 하나님에 사랑에 대해서 우리들이 참으로 그런 마음을 가져야 되겠는데 그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전에 술먹었던 것 안먹고, 담배 피운 것 안피우고, 나는 인제 한 등급 높아졌어요. 되었어요.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라요. 그런데 세상 부부들도 중년 때 마음이 왔다갔다 해요. 분명히 얌전한 남편인데 내가 무엇할려고 살았던고. 이웃집 보니까 어제 밤에 대판 싸웠는데 아침에 보니까 진주 목거리 걸고 놀러가거든요. 차라리 싸우더라도 저런 사랑의 표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걸 원해요. 그런데 점잔하니까 싸움은 않는데 감각은 없어요. 아주 모범 시민이니까.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깊이 생각하셔야 됩니다. 우리들이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 우리를 개혁해서는 안되어요. 사랑은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교제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나는 너와 다르도다. 그런 것으로 우리 신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어요. 물론 우리 교회는 추도식이나 그런 것도 안하니까 우상 섬김은 많이 사라졌겠지요. 그래도 보면은 에베소 교회나 라우디게아 교회, 그런데 걸리게 쉬울 것이어요. 에베소 교회는 모든 이단들을 잘도 쫓아냈는데 첫 사랑을 버렸지요. 보수파는 그것이 특징이어요. 남을 정죄하고 분별함으로 자기가 선줄 알고 있어요. 이미 선생이 되어버려요.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 그런 것과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하기가 너무 쉬워요. 우리 교역자들은 남을 가르치느라고 자기는 이미 된줄 알고 있어요. 교인들은 목사 흉을 보는데 목사는 생각할 수 없어요. 목사 뿐 아니라 먼저 믿는 신자들이 다 적용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 일에 대해서 예수님이 너희들이 신앙을 가져라. 깨어라. 이기는 자는 내가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하겠고 낙원의 과실을 먹게 해주겠고 이긴자와 함께 보좌에 앉게 해주겠고, 또 이기는 자는 성전 기둥이 되어서 움직이기 않게 하겠고, 이기는 자는 흰돌도 주겠고 거기다 네 이름도 새기지 않겠는가. 얼만큼 이기는 일에 대해서 강조했습니까? 지금 그런 문제를 마지막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기는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차지합니다.

그러면 이기는 자들은 어떤 존재로 차지합니까? 한마디로 하자면은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은 교회로 그 영광을 상속받습니다. 여기 본문을 보면은 21장9절부터 오늘 읽은 본문까지가 한 단락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10절에 있는 말씀이지요. 성령으로그런 말로 단락을 시작합니다. 높은 산에 올라갔는데 하늘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부 곧 아내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신부로 택했던 것처럼 어린 양의 신부를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도성이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성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 앞에 서론적인 말로 설명하는 14절을 보면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이 말이 한 마디로 그 신부의 아름다움을 총괄적으로 설명하는 머리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었더라.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서 비추더라. 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을 귀한 보석으로 4장에서 설명했습니다. 물론 그런 보석은 에덴에서도 있지마는 특별히 모세 제도에서 하나님의 성소를 지었을 때 거기 아름다운 보석들로 치장한 하나님의 제사장, 거기서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보석으로 이름을 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어떻게 영광이 있습니까?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 같고 수정 같더라. 우리는 보석을 많이 모르니까 수정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라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우리 모른 사람을 위해서 설명하기를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예를 들면 벽옥 같고 수정 같더라. 이렇게 차례차례 설명하니까 우리 같이 모르는 사람도 알 수 있지요. 벽옥은 다이아몬드입니다. 한 마디로 아주 귀한 보석 같은데 어떤 의미로 보석 같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췬다는 의미로. 이렇게 문장 자체에서 설명하는 것만 설명하면 되지 보석을 다시 연구할 필요가 없다 그말입니다. 문장에 있는 이야기만 생각하면 되어요. 그리고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리고 문 위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고, 그리고 그 문 밑에 열두 기초석이 있는데 거기 십이 사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이 성곽에 모습은 에스겔 40장 이하의 모습니다. 거기 보면은 곡과 마곡을 심판하고 7년 동안 무기를 불사르고, 7개월 동안 시체를 매장하고 온 땅이 정결케 되면은 거기 가나안 땅에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소가 세워집니다. 거기 보니까 성곽을 측량하는데 굉장히 커요. 그리고 굉장히 더껍고, 그리고 문지기도 많고, 한 마디로 읽어보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완전히 제사장 아파트 같아요. 제사장 방이 굉장히 많해요. 그리고 그 보좌로부터 물이 흘러서 동편 문으로 흘러 나와 가지고 아라바 바다로 흐르면은 거기 물이 넘치고 넘치게 흐르는 데 그 모든 바다가 소생이 됩니다. 물론 진펄과 갯펄은 소생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나무가 있는 그 잎이 만국을 치료합니다. 여기 계시록하고 똑같은 말이 거기 있어요. 거기도 문이 사방으로 나있습니다. 그런 구약을 모델로 해서 여기서 지금 하늘의 영광스러운 예루살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도성의 그 영광스러움을 설명하는데 한 마디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다. 그리고 사방으로 문이 있는데 열두 지파들의 이름이 있으니까 열두 지파가 그 문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의 토대는 무엇으로 되어 있습니까? 어린양의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적여있습니다. 에베소서의 말대로 하면은 어떻게 설명하면 되겠습니까?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위에 교회가 세워졌지요. 그런데 교회를 하나님의 신령한 이스라엘, 신령한 예루살렘 그러니까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가 함께 완성되었는가, 그런 구원론을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보다는 교회 완성에 대한 이야기에요. 문이 있고 천사가 있는데 이 문은 닫힌 적이 없습니다. 항상 낮이기 때문에. 왜 항상 낮이냐? 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 양이 빛이 되고 또 어린양이 하나님의 등불이 되기 때문에 거기는 다시는 해도 필요 없고 완전한 낮입니다. 그러니까 거기는 문을 닫을 필요가 없고, 구약 때는 천사가 있으면은 하나님의 백성은 못들어갑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 못들어갑니까? 더러운 자들, 거짓말쟁이들, 그런 사람들은 못들어갑니다. 그런 사람들은 도덕적인 항목으로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예수께서 주되심을 부인하고 먹고 마심으로 만족하고 세상의 권세 때문에 그의 표를 받고 경배한자들, 그런 사람들이 거짓말쟁이고 가증한 자들이겠지요. 전쟁 때는 항복한 사람이 제일로 나쁜 사람이어요. 그리고 군대에서 탈영한 사람은 총살감이어요.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 도덕적으로 완전한가 거짓말쟁이, 나도 우리 아버지한테 거짓말 했는디, , 너도 지옥, 그런 이야기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의 주되심을 부인하고 다른데 무릎 꿇는자, 그런 자들이 거짓말쟁이고 가증한 자에요. 그런 사람들은 못들어올 것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여기 성곽의 크기를 쭉 설명하는데, 이 성곽은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이 거기 계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거기 살기 때문에 그들의 살기에 합당해야 될 것입니다. 만일에 방이 부족해서 있을 곳이 없으면은 셋방살이 해야 되겠지요. 그러면 천국이 안되겠지요. 그러니까 규모를 측량하는데 얼만큼 크냐? 가로 세로 높이가 똑같은 정육면체인데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고, 성곽의 두께는 144규빗이고 그렇더라. 그리고 완전히 금으로 되어 있고. 또 문을 진주로 되어있고 그렇더라. 여기서 진주로 되어 있는 것은 귀하다는 말이지 그 진주를 도덕적으로 해석해 가지고 진주는 조개 살 속에서 생긴다. 조개 살 속에 모래가 박히면 진주가 눈물을 흘리고 거기 액체를 내 보내면은 그 고통에 액체가 점점 빛을 받아 갖고 아주 귀한 진주가 된다. 그러니까 천국을 갈려면 고난을 받고 그래야 진주문을 통과한다. 여기서는 그런 자격을 시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 영광을 상속받음에 있지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가 문지기를 세워 놓고 다시 심사할려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지요. 여기서는 그 영광스러움을 좋은 보석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 무슨 진주는 고난이고 해석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과난으로 해석하면 여러분은 아멘해요. 계시록 전체가 고난 중에 승리가 들어가거든요. 그러니까 문이 진주입니다. 그러니까 진주 같은 특성을 가져야 되는데 조개가 진주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조개 장사 진주 장사가 나타나요. 그런데 여기서는 조개가 어떻게 진주를 생산하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한 마디로 전부 귀하도다. 그런 이야기이니까 그런 엉터리에 속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일만 이천 스타디온인데 가로 세로 높이가 똑같습니다. 물론 에스겔 성전에서는 높이까지는 똑같지 않은데 가로 세로는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같아요. 그것도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어요. 그전에 악한 자들을 심판했을 때 피가 말 굴레에까지 찼는데 로마 리수로 일천 육백 스타디온에 퍼졌거든요. 그러면 일천 육백 스타디온 그러면은 팔레스틴의 남북의 길이를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일천 이백 스타디온이면은 아직도 변두리 개발 안된 데가 조금 있구나.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택한 백성의 총 수로 설명합니다. 그전에 14장에 그런 것이 있었지요. 택한 백성들이 있는데 누구 지파도 일만 이천명, 열두 지파가 전부 일만 이천 명이지요.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그 치수를 가지고 성곽이 가로 세로 높이가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더라. 12는 열두 족장을 대표하는, 또는 열두 사도들을 대표하는 택한 백성 그런 총 수입니다. 거기다 천을 곱하면은 수학적인 철학을 한가 안한가 모르지마는 개념상으로는 완전함이어요. 가로 세로 높이가 똑같은 것은 구약의 지성소의 구조에요. 그러니까 거기 완전한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거기는 달리 지성소가 없어요. ? 온 땅이 하나님의 성소라. 구약 때는 예루살렘 중에 성소가 있고 성소 중에 지성소가 있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지성소의 빛도 일곱 촛대에 빛나는 빛이어요. 그렇게 환한 것은 아니어요.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빛이십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삽니다. 온 땅이 완전한 지성소 구조로 되어 있고 완전한 택한 백성들의 수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44규빗도 12*12 그런 수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나라는 완전히 택한 백성,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약 언어들이지요. 그런 나라다. 그리고 나머지 가짜는 한 명도 못들어온다. 그렇게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살 것입니다. 완전한 친교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전 구약 때는 에스겔 성전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이 아라바 바다로 흘러갔고, 일천 척을 측량하면 발목, 일천 척을 측량하면 무릎, 또 나중에는 목, 더 가니까 나중에는 헤엄치고 다니고, 넘치고 넘치는 물이 흘러 나왔지요. 그래도 진펄과 갯펄은 회복이 안되었는데, 여기 계시록에서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는데 길 가운데로 흐르고 그 주변에는 열두 자기 생명나무가 다달이 과실을 맺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수상도시 베니스지요. 이것은 에덴의 모델을 갖고 그렇게 합니다. 에덴은 중앙에서 강이 발원해서 땅 사방으로 흘렀지요. 그리고 어느 강은 보니까 거기 귀한 보석들이 났지요. 그 에덴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지요. 그러니까 이 생명나무로 그 강이 흘러 넘쳤을 것이어요.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물은 어떤 사해바다 아라바 바다로만 흘러가서 그 죽은 바다를 살리는 정도가 아니라 길 가운데로 흐릅니다. 그래서 온 땅이 물이어요. 그리고 그 모든 땅이 나무에요. 열두 종류 맺히니까 이것을 문자대로 해석하면 별 볼일 없는 나라지요. 지금 우리가 하우스 시대에 살고 있으니가 공판장에 가면 열두 종류가 휠씬 넘을 것인데, 그렇지요. 말하자면은 택한 백성의 총수로 설명하는 것이어요. 그 완전한 생명의 교제가 흘러 넘친다. 온 땅이 생명이고, 모든 나무가 생명이고,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모든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 아닌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완전한 생명이 흘러 넘치고 그들이 하나님을 뵙고 살 것이다. 그렇게 영광스러운 나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입은 성도 여러분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성소적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이방인과 싸움으로 하나님게서 그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들만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들만 제사장 백성이어서 하나님은 그들 중에 성소에 계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그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구약 때는 모세나 여호수아와 다윗 같은 왕을 통해서 세우셨지마는 다윗의 후손 왕들은 다윗처럼 신실하지 안해서 그들은 이방의 권세를 사모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 지위를 잃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한 뒤로 그들은 다시 다윗 시대의 영광을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다윗의 후손을 보내셨는데 그는 에덴에 서 있는 아담처럼 먹고 마심 때문에 사탄의 말을 듣고 배교하는 그런 인류의 시조도 아니고 그리고 이방의 부요함을 사모해서 이방의 신들을 끌어드리는 다윗의 후손 왕들도 아니고 그는 자기 몸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의 세력을 끝내고자 했을 때 그는 기꺼히 하나님 앞에 순종하셨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에서 다시는 죽음이 미혹할 수 없는 생명과 영광스러운 나라를 건설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 앞에 배교함으로 만물에 사망을 가져왔지마는 마지막 아담은 자기 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시인함으로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를 살리셔서 이제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게 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셔서 멸망하지 아니할 영원한 권세있는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백성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해서 그와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나님을 시인하고 죽음의 길을 통과할 수 있는 권세있는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의 양식을 먹었지마는 우리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도록 하셔서 주님의 몸과 주님의 지체로 삼으셔서 아들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아들로 말미암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권세있는 백성으로 권세 있는 성소로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주님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도록까지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의 군병이 되어서 그를 대신해서 주님을 증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왕들은 주님을 부인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시인해도 실재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먹고 마심이 보장되어야만이 생명이지 먹고 마심이 보장되지 않으면 그런 종교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국가가 먼저 있고 종교는 다음입니다. 우리 믿는 신자들도 똑같습니다. 먹고 마심이 해결안되는 천국가는 하나님은 별로 기분이 안좋습니다. 천국은 이론상 가는 것이고 먹고 마심이 해결되어야 하나님의 축복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게 우리 하나님이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약하면은 부끄러워서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가 이방이 추구하는 것이나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왜 그렇게 같다고 제가 설명을 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새 것으로 가르치지 아니하고 성경은 불변하다는 철학적인 전제 아래 구약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의 복은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의 흐름, 그것이 하나님의 복의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썩어질 복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영원한 복을 가져왔는데도 우리들은 진리는 불변하다는 것을 핑개삼아서 구약을 끌고 들어오니까 일이 그렇게 된 것이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십니다. 변하는 관계로 우리와 함께 계셔야 우리의 구원입니다. 어렸을 때 아들을 대하는 것과 컸을 때 대하는 것이 달라야만 아들이 아버지를 누리는 빛이 다르고, 지혜가 달라서 그것이 아들의 영광이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변하시다는 철학적인 전제 때문에 교회가 이 모양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몸과 주님의 지체가 되어서 부활하기 전에는 베드로도 주님을 부인했지마는 부활하신 생명의 목자장을 따라서는 베드로도 부인하지 않고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되었습니다. 우리가 따르는 하나님의 아들은 생명의 주이십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죽음을 정복하신 분이시고 영원하 생명의 주가 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께서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의 교제로 먹도록 우리의 생명을 새롭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어요. 지금도 세상은 평안합니다. 이제 인류의 평화시대가 도래했다고 노래하고 있고, 세계적인 기구들의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앞에 무릎 꿇기 전에는 세상에는 참다운 평화가 없습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거하는 것이고 또 성경에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연합은 참다운 연합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명심하십시다. 먹고 마심으로 평안하지 마시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만민이 주님 앞에 복종하도록까지 주님을 증거하고 시인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외적인 핍박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체가 전쟁인데도 우리들은 내가 고생을 안당하면은 하나님도 고통을 당하지 않는줄 알고 평안하고 있으니까 전쟁의 의미를 모르는 것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면은 충성을 다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주님, 우리들이 그분에게 속해서 나라와 제사장이 되었으니 우리가 그 영광을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오셔서 만물이 새롭게 되고 하나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고 에베소서의 비유대로 하면 하나님이 만유의 만유가 되셔서 만유를 성소 삼으셨을 때 우리들이 그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그 확실한 보증이십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여럴분의 모든 삶을 주님의 몸과 지체로 이해하시고 먹고 마시는 모든 삶을 주님의 살과 피로 이해하시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승리의 군병으로서 먹고 마심으로 영혼아 평안하라 하지 말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빼앗길지라도 주님의 고난에 참여한 것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세상에서 멸시를 당하면은 주님께서 우리를 그 영광 중에 올리실 것이고 만일 우리가 사람 앞에 주님을 부인하면은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너를 모른다 하리라고, 그렇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졸병은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마는 이스라엘 중에 애굽 물건을 탈취하는 자가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에서 패잔병이 없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패잔병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왕이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 믿음으로 날마다 세상을 이기고 먹고 마심으로 만족하는 세계 가운데서도 생명의 주님을 증거하는 그런 나라와 제사장으로서 여러분의 믿음으로 신실하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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