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하나님 나라의 완성

찬미예수님 2026. 6. 15. 16:55

제목: 하나님 나라의 완성

성경: 요한계시록 20:7-21:8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복주셔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이제는 아들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품 안에 살계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권세를 봉사할 수 있도록 복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이 생명과 영광 가운데 살지 못했던 우리의 모든 어두움들을 이 시간도 주의 피로 말갛게 씻기시옵고 용서하시오며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시고 부활하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주의 상으로 불러 모으셔서 주님과 함께 한 생명의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복주셨사오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큰 사랑의 빛 가운데서 우리로 하나님을 사랑케 해 주시옵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우리의 생명이 더욱 새롭게 될 수 있도록 주의 긍휼을 넘치게 베풀어주시옵소서. 주의 영광을 교회에 나타내시고, 교회에서 찬양을 받으시고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함으로 저들의 생명이 더욱 새롭게 되고 거룩하게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장7-21장8절까지 읽고 강론하겠습니다. 지금 계시록을 강론하면서 이제 마지막 부분에 접어들었습니다. 계시록은 그 주제가 싸움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으니 교회도 승리할 것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지리라. 그렇게 계시록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계시록이 종말의 사건에 치중해서 증거하니까 우리들은 시간적으로만 세상 끝날에 일어날 사건인가 보다고, 거기다가 시선을 집중해서, 세상 끝날이 언제 오느니 마느니 하면서 그런 일로 돈을 번 사람도 많고, 또 미혹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장차 나타날 일들을 알아맞추게 할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싸움의 극렬함을 그렇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공중의 권세잡은 사단이 공중에서 쫓겨나고 바다와 땅에서 그 종들인 짐승을 불러서 그들을 통해서 사단의 왕국을 건설하고 어린 양의 군대와 싸우는 일들은 예수의 부활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이 요한 계시록을 받고 있는 로마 교회도 바로 그런 싸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 끝날의 시간에다가 더 초점을 맞추어서 기록한 것은 로마 교회가 로마 황제 숭배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것이나, 예수님 재림 전에 극악한 핍박이 있는 것이나 구원역사적으로 다 동 시대에 속하기 때문에 싸움과 승리를 마지막 있는 그 극렬한 사건에다가 집중해서 설명한 것이지, 지금은 이런 일이 없고 나중에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구원 역사적으로 같은 시대에 속하고 이 싸움에 극렬함이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계시록은 주로 마지막 사건 쪽에다가 치중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 뿐이지 그 싸움의 양상은 항상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계시록에서 많은 관심과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은 소위 20장에 있는 천년왕국인데 예수님 부활하고 나서 땅에 강림하시면은 천년동안 팔레스틴을 중심해서 복락의 나라가 건설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은 그 천년 왕국이라는 것이 지금 교회 시대를 묘사하고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 때문에 많은 논쟁들이 있고, 특별히 종말에 대한 이단들은 천년왕국이 있다고 하는 계통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천년 왕국이 없고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 세상을 지배한다. 하는 이런 사실은 실은 중세 천주교가 지배했던 그런 시대부터 강렬하게 교회를 그렇게 지배했었습니다. 그때는 로마 천주교가 세상의 모든 군왕들을 다 지배하고 왕중의 왕으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 무슨 교회가 파괴되는 극렬한 시기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들은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천년왕국이 있냐 없냐 하는 문제를 지금 신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그런 문맥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신학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데 재림하신 뒤로 천년동안 눈으로 보고 믿고 구원을 받는 새로운 시대가 있는가? 소위 이런 구원론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믿고 똑같이 구원을 받아야 되는 것이지, 다음 시대에 구원이 또 있으면 지금 믿을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대충 살다가 세대론자들 말대로 하면 잘 믿는 자들은 올라가고 하늘에서 비행기도 뚝 떨어지고 그럴 때 섬에 들어가서 삼년 반 동안만 잘 숨었다가 나오면은 그 다음 천년왕국이 되면 되는 것인데 무슨 지금부터 그럴 것이 있냐? 사람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지 재림하신 뒤로 그를 보고 믿고 그런 2차 구원 시대는 없는 것이다. 인제 이런 것들이 천년왕국이 없다는 학의 기초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역사의 발전은 상관이 없고 오직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에, 또 사람도 불변하기 때문에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이 구원을 받는다. 하는 그런 구원론이 그 신학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번 말씀을 드렸지마는 성경의 구원은 우리의 운명이 어떻게 완성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그런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가 성소로 창조하신 세계를 어떻게 완전한 복락의 세계로 이끌어 나가시는가, 역사적인 완성, 역사가 구원이지 역사를 넘어서 저 위에 것,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 그런 것을 구원이라고 성경은 증거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저 천국이 드러나 있는 것은 신약 교회가 하늘을 상속받았기 때문에 하늘이 열린 것이지 구약 때는 하늘이 열린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를 키워서 어른처럼 만드는 것처럼 그것과 역사는 비슷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그가 아버지를 누리고 함께하는 그런 생명과 지혜가 되는 것이고, 다 크면은 아버지가 그를 친구를 대하듯이 대할 것이고, 모든 것을 다 말해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친구처럼 대면하고 앉게될 것이어요. 그러나 어려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과 역사가 비슷한 것이지, 저 변치않은 영원한 세계를 그림자로 나타낸 것이니까 그림자는 다양하게 변해도 그 속에 있는 실체는 똑같은 것이다. 구약에 아브라함의 구원이나 우리의 구원이나 구원은 똑같은 것이다. 그런 설명을 실은 성경에서는 정죄합니다. 그런데 우리 이제까지 신학은 똑같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구원이 틀리면은, 하나님이 사람을 이랬다 저랬다 대하면은 하나님이 불변하신 것이야, 그 변덕이 심하신 분이 아니냐? 그렇게 구원론적으로 성경을 풀기 때문에 계시록 20장에 천년왕국은 없고 단지 교회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늘의 권세로 그 영광을 봉사한다는 그런 교회론적인 이야기이지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게 해석을 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그런 신학이 주제가 아니라 싸움이 주제라고 말씀을 드렸고, 계시록은 계시록의 문맥에서 읽어야 되지 어떤 사상을 끌어 들어와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계시록 17장-21장8절까지가 한 단락을 이룬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가 성령 안에서 보니 한 여자가 붉은 짐승을 탔더라. “성령 안에서하는 선지적인 언어로 시작해서 21장8절까지가 쭉 한 단락을 이루는데, 그것을 시작하는 말은 17장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17장에서 중요한 것은 여자가 짐승을 타고 있는 데 짐승의 머리가 일곱이더라. 뿔이 열이더라. 그런데 이 머리 다섯은 이미 있었다가 망해버리고 없고, 하나는 있는 데 곧 망할 것이고, 마지막 일곱은 아직 오지 안했는데 오면 잠깐 힘을 발휘하겠지마는 그것도 망할 것이고, 또 여덟째가 오는데 실은 여덟도 일곱과 똑같은 것이어서 그것도 망할 것이다. 이 계시록 17장에서 말하는 짐승은 망하고 망하리라. 악의 세력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겠지마는 그것도 망하고 망하리라. 하는 것이 짐승에 대한 비밀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13장에서 짐승의 비밀은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망하고 망하리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짐승이 사단으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능력을 행하고 모든 사람을 다 미혹해서 무릎 꿇게 하리라. 그러나 지혜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짐승이 힘이 강해도 칼로 권세를 잡은 자들은 칼로 망할 것이니까 잘 인내해라. 아무리 그리스도처럼 신적인 능력을 행해도 그는 666이요 사람이니 놀라지 말아라. 그래야 너희들이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것이 아니냐? 13장에서 짐승을 통해서 나타난 비밀은 그들은 아무리 신적인 권세를 행해도 신적인 권세가 강조점이어요. 그럴지라도 칼의 권세니 사람이 놀라지를 말아라. 믿음을 지켜라. 그것이 13장에서 짐승을 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똑같이 짐승은 일곱 머리, 열 뿔이 있다는 것은 똑같은데 그러나 17장 쯤되면 아주 찬란한 옷을 입고 미혹하지마는 그리고 연속해서 그 권세가 일어나지마는 망하고 망하리라. 끝까지 망하리라. 하는 이야기가 17-21장까지의 주제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어떻게 망합니까? 먼저 바벨론이 망하고 그리고 어린 양이 백마타고 오시면은 두 짐승이 망하고 용도 사로잡힙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조롱하는 주님게서 그 영광의 나라를 건설하시면은 그를 위해서 생명으로 그 믿음을 인치고 그리고 자기 생사를 포기하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그렇게 했던 열열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그와 함께 천년동안 왕노릇할 것이고 나머지 죽은자들은 다음에 살아나거라. 그렇게 지금 설명하고 있어요. 물론 신학적으로는 천년왕국 때 부활한 자들이 누구냐? 다시 물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신약 시대의 성도에요. 그전에는 아브라함도 천년왕국 때 부활할 것이라고 해석했었습니다마는 문맥을 보았을 때는 신약 시대의 성도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짐승과 싸우는 것은 여자가 낳은 아이가 하늘 보좌로 올라가고 그 때 용은 하늘에서 내어 쫓기고 바로 그 짐승은 그의 부하로 불렀던 짐승이어요. 그러니까 다니엘서 짐승은 아니지요. 그러기 때문에 짐승의 표를 받고 목베임을 받은 자들은 당연히 신약 시대의 성도로 이해를 해야되겠지요. 싸움이 극렬한 시대를 무대로 해서 세대론자들은 예수님 재림 전에 3년 반 동안 핍박받은 자들, 그들이 일어난다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습니다. 그중에 유대인들이 일어난다고 그렇게 설명하는 자들도 있지마는 계시록 문맥에 맞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읽은 백보좌 심판이 나타나면은 모든 생명책에 기록된 죽은자들이 살아나리라. 그런 자들이 이제 생명이 우주적으로 완성되니까 구약 신자의 부활도 그때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신학을 이야기할려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승리자에게 상급을 주는 이야기들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이길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질 것입니다. 신약 시대 이 계시록에서 말하는 자들은 신자들은 이긴자들이 신자지, 저놓고도 나중에도 회개하면은 하나님은 자비하시니 용서하시고, 그런 졸병들을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앞세워서 홍해를 건넜을 때 거기 두려워 떠는 졸병이 없고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전리품을 취하는 승리의 군대이지 거기 두려워 떠는 졸병이 없는 것이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따라서 그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는 충성스럽게 아버지를 증거하고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 가운데 살리셔서 존귀함을 주심으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그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어요. 구약의 모세가 어떠하면은 이스라엘이 어떠합니다. 여호수아가 어떠하면은 백성이 어떠하고, 다윗왕이 어떠하면 백성들도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구약을 토대로 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확신을 갖고 있는 믿음의 정서, 심리적인 믿음, 자기 심리를 가지고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니까 사람이 어떻게 항상 승리할 수 있느냐? 가끔 잠도 자는 것이지, 그 다음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다른 구절을 봐라. 요한일서에도 범죄하고 회개하면은 정결케 씻으시리라는 말도 있고, 다른데도 많이 있는데, 사람이 한번도 폐배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설명하는 목사님은 완전주의자나 이상한 분이다. 그러면 신약 성경에 많은 권면하는 편지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면 잘못을 교정할려고 지금 편지를 쓰고 있거든요.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어요. 물론 그런 성경 구절들이 있습니다. 우리 정서적으로도 많은 실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을 설명하는 구절에서는 승리의 군대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그 중에 도중에 탈영했던 사람들도 전쟁이 끝나면은 사면조치도 있을 것이고, 이런 식으로 읽으라는 것이 아니어요. 지금 계시록은 싸움의 승리를 말하는데 여기서 우리 개인의 구원론이나 개인의 성화를 토대로 읽어버리면은 계시록을 기록한 목표에 일치하지 않은 것이어요. 그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전쟁이 끝나고 훈장을 주면은 전부 전쟁 영웅들이 훈장을 받아요. 그때에 무슨 교통 규칙을 잘 지키고 세금을 잘 낸 사람들은 훈장을 못받아요. 그러면은 싸움 잘한 사람들이 제일로 휼륭한 시민이라는 말이냐? 그렇게 접근하면 안되지요. 세상에서 그렇게 환경과 배경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어요. 계시록은 싸움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너희들은 승리한다. 결단코 지는 법이 없다. 이런 것을 말하고 있는데도 우리들은 그 약속을 믿지 않고 믿음에 서지 않고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한답니까? 주여, 나의 약함을 아시오니 용서하시옵소서. 이런 식으로 풀어서는 안된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죄의 권세로부터 구원할려는 것이지 그냥 죄를 용서하고 그냥 내가 너를 봐주마, 그런 식의 구원이 아니어요. 로마서도 그렇고 하나님 나라 구원은 권세적인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권세있는 분이시고 그의 대리통치자가 권세있는 분이시니 그 나라는 영원히 승리할 것이고 영원히 승리할 것이다.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성경의 구원론이어요. 우리들익 그런 믿음을 갖지 않고 우리 개인의 변화과정으로 성경을 해석해 놓으니까 처음에 믿을 때는 죽사오니 그랬다가 나중에는 대충대충 살거든요. 그 다음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아서 깜짝 놀라서 일어나요. 그러니까 우리들도 그럭저럭 하다가 얘기들도 말을 안들은데 점점 크면서 사람되는 것처럼 우리 사람들도 결국 그런 것이 아니냐? 우리 경험으로 보아서는 맞을 수 있지마는 그것이 성경에 약속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큰 약속을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믿음없는 어리석음 때문에 넘어졌던 것이지 우리 넘어짐이 정상적인 것처럼 성경을 풀어버리니까 문제가 된다 그말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존귀한 군대가 이렇게 오합지졸처럼 졸병처럼 살고 있어요.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달달 떨고 겁나하고 있어요. 그리고도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실은 그런 것이 벧후2장이어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택한 백성은 결단코 버린 법이 없다. 신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 택하심은 권세로 택하심이고 능력으로 택하심이지 그냥 대충 살아도 너는 점찍어 놓았으니까 천국은 보증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은혜를 색욕거리로 아는 것이어요. 이단 그러면 우리는, 옛날 간첩 그러면 우리는 썬그라스 묘하게 쓰고 뭐, 손톱이 길고, 거미줄 배경이 있고 이런 것이 간첩인줄 알고 있고, 우리는 이단 그러면 아주 묘한 사람인줄 아는데 실은 그런 것이 아니어요. 내가 볼 때 가장 어두운 이단은 성경을 풀라톤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어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는 생명의 역사로 풀지 않고 너희들이 운명이 저 좋은 곳에 가느니라. 지나가는 세상은 그림자요 완전한 운명에 도달하느니라. 이런식으로 푼 것, 그런 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약속에서 멀리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권세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기 몸과 지체로 삼으셔서 어떤 권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주의 몸으로 구원한 것이지 그냥 너희들은 허물이 많해도 내가 용서하마, 그런 식으로 성경을 풀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구약시대 때 오래 참으신 것도 이 완전한 구원을 위해서 오래 참으신 것이지, 이 완전한 구원이 나타났는데도 우리들은 구약을 모델로 삼아서 하나님이 이스라엘도 용서했으니 우리들도 그렇게 할 것이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큰 구원을 받고도 우리가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죄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은 무엇입니까? 누구 천년왕국을 상속합니까? 여기 말하기는 목베임을 당한 자들,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서 주님께서 자기 생명으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증거하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된 것처럼 이제는 주님의 나라와 제사장이 되어서 주님을 증거함으로 생명을 버린자들, 그들이 생명의 주님께서 그 권세로 나타나시면은 그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고 죽은자들만이 아니라 살아서도 그들의 산업을 빼앗기고 그러면서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도 그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천년왕국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년왕국이 하나님 나라가 완벽히 나타나는 현관, 시작점입니다. 구원역사적으로는 주님의 초림이 시작되지마는 주님 오신 뒤로는 주님의 강림이 그 나라를 역사에 구현하는 그런 시작점이고 그런 데도 잠깐 동안 마귀가 활동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구원론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은 어렵지요. 어떻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놓고 또 배교가 있냐?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이야기에요. 다윗이 완벽하게 통치해도 또 다윗이 죽으면 반란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철장의 권세로 통치해도 그 다음에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입어서 잠깐 동안 큰 배교가 있지마는 그 배교도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그렇게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 문맥을 하나님이 승리하고 승리할 것이다. 여기다 강조를 두지 않고, 마귀가 무엇이냐? 요걸 연구하느라고 지금 곧 세상 끝이다. 누가 지금 이 정체 아니냐? 하고 연구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천년왕국 뒤에는 곡과 마곡이 큰 반란을 일으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곡과 마곡은 무엇이냐? 계시록 38, 39장을 보면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과 쭉 이름들이 나와요. 그쪽은 말하자면 저 바벨론 넘어 북방 민족들입니다. 그 노아 아들들의 족보를 보면 그쪽으로 되어 있을 것이어요. 그러면 우리는 당장 로스, 로스케, 러시아 아니냐? 말하자면은, 그때 무슨 러시아가 있었답니까? 그런데 구약 언어가 그렇게 저 북방 민족들로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인제 그렇게 풀이를 하는 것이어요. 소련은 곰이지요. 국가상이. 우리는 북극 곰하면 소련이어요. 그러니까 그런데다 전부 연결을 시켜가지고는 말자면 다시 공산주의가 일어난다. 그리고 중국도 큰 공산주의 세력이 되어가지고 중동 전쟁이 일어나면은 여기 곡과 마곡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들의 진과 거룩한 성을 둘러싸요. 그러니까 중동 전쟁이 일어나면은 지금 닦아논 비단 길, 옛날 무역로지요. 거기다 고속도로를 닦았는데 거기 큰 군대를 몰고 올 것이다. 이만만, 2억의 보병은 중국이나 동원할까 다른 데는 없는 것이다. 유브라데 강이 마르고 이만만의 군대들이 왔지 안해요. 그래서 전부 그렇게 설명을 해요. 그런 것은 이스라엘 멸망 구절과 연결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동방의 군대와 바벨론 군대들이 오면은 이스라엘은 망해요. 그 마지막 이스라엘의 명망 구절과 그리고 그 멸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종말에 나라를 건설할 것이다. 그런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과 구원 이야기에요. 그것을 모델로 삼아 설명하는 것이지 소련이 어떠고 중국이 어떻고 그런 것을 설명한 것이 아니어요.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요. 이스라엘이 대대적으로 돌아와서 기독교 국가가 되면은 전쟁도 가능하게 될 것이어요. 그러나 이 성경 구절은 구약의 전쟁을 모델로 풀고 있는 것이지 장차도 이 문장대로 전쟁이 있을 것이라. 그런 것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생각않고 지금 공산당이 얼만큼 다시 재흥하느냐? 잠깐 동안, 누구요. 우리 나라 같으면 김영삼 대통령인데 소련의 그 양반이 고르바조프가 어떻게 하니까,엘친이 민주화가 되니까 유대인의 많은 이민들, 거기 잡혀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갔지 안해요. 귀한자들이 대단히 많이 있어요. 잠깐 동안 그렇게 숨통이 트이게 길을 열어주었지마는 다시 요새 새로 나온 대통령은 굉장히 샌 대통령이지요. 그러면 다시 말하자면 옛 소련의 영광으로 다시 강력하게 하면은 다시 문을 닫힌다. 보니까 그럴 듯 해요. 그러니까 자꾸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지킬 것인가, 그걸 생각지 않고 어떻게 싸움이 일어나느냐?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것만 자꾸 생각하니까 많은 미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의 전쟁을 모델로 이스라엘이 망했을 때 바벨론의 군대를 동원해서 망했어요. 북방의 군대들을 동원해서 망했어요. 그런 것을 모델로 해요. 그러면 곡과 마곡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옛 언약의 땅으로 불러 들이고 다시 그들을 물로 씻기고 새 영을 주어서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큰 골자기에 해골처럼 다 죽어버린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셔서 그들을 무덤같은 골자기에서 건져내셔서 큰 군대가 되게 하시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불러드릴 것입니다. 그들의 왕은 누굽니까? 다윗 왕입니다. 메시야 왕이지요. 다윗왕을 목자로 주리라.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누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런 것이 37장까지 나와 있어요. 그리고 나서 38, 39자에 곡과 마곡을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종말의 다윗와 소위 메시야지요. 그분의 통치 아래서 이스라엘이 연합해서 평안히 삽니다. 다시는 성곽을 쌓고 칼을 준비해서 사는 백성이 아닙니다. 그전에는 그들의 솔로몬 때부터 그랬지마는 군대를 동원하고 이방의 말들을 수입해서 강력한 나라를 건설할려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신대도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권세를 의지했는데 돌아온 백성들은 메시야이신 다윗 왕만 의지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성곽도 없이 평안하게 안식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백성을 곡과 마곡이 이번에 가서 저들을 치면은 우리들이 모든 것을 빼앗겠다고 대대적으로 공격을 해요. 그리고나서 하나님의 성전을 영광스럽게 건설한 이야기가 40장 이하에 있어요. 그러니까 곡과 마곡은 구약 배경으로는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온 백성들을 다시 공격하는 마지막 적이어요. 그 적을 모델로 삼아서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면은 만일에 신학적으로 풀자면은 예수님 재림 직전에 곡과 마곡이 와야 되겠지요. ,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돌아와 있으니까. 또 교회는 목자장이신 예수께서 인도하시니까. 그러면 천년왕국 직전에 곡과 마곡이 오면은 어린 양이 심판하면은 될 것이어요. 그런데 성경은 그런 것을 맞출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역사를 모델로 삼아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곡과 마곡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종말의 구원, 다윗을 왕으로해서 평안히 거합니다. 바로 그런 백성을 공격해서 마지막 적이요 하나님이 이 적을 심판시키면은 온 땅은 아주 깨끗하게 됩니다. 무기를 7년 동안 불사르고, 시체를 7개월 동안 매장하고 그렇게 해서 완전하게 정결하게 되면은 그 땅은 완전히 거룩한 땅이 되고 하나님의 대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영광스러운 성전이 다시 건립되고 다시 기업이 분배될 것이라고 그렇게 에스겔 40장이하에 설명하고 있지요. 지금 그걸 모델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 뒤에 다시 곡과 마곡이 크게 배교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면은 순식간에 그들도 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는데 하나님의 보좌 앞 크고 흰 보좌가 나타납니다. 그때 모든 죽은자들이 다 살아나는데, 바다도 음부도 죽은자들을 내어 주더라. 하는 말은 바다나 음부는 같은 개념입니다. 그건 창세기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어요. 창세기를 보면은 땅은 사람의 거처요 바다는 심판이어요. 만일에 바다가 터져버리면은 세상은 노아 홍수처럼 심판을 받을 것이어요. 그런 것들을 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에 바다도 음부도 죽은자들을 다 내어 주고 땅과 바다도 다 없어지고 새로운 나라가 올 것이다. 그렇게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때 모든 죽은자들이 다 살아납니다. 언제입니까? 크고 흰 보좌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입니다. 그러니까 메시야 왕국이 끝나고 이제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는 완전한 나라가 건설될 때에요. 그러면 그때 메시야는 어디로 갔느냐? 성경은 그런 것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이 구절과 연결되는 것은 고전 15장일 것이어요. 거기는 부활의 순서를 말하자면서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 같이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 그래서 첫째 부활은 누굽니까?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예수님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들, 믿음있는 자들이요, 그 다음에는 끝날이다. 그때 끝날은 언제입니까? 아들이 그 나라를 아버지께 돌려드릴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만물을 복종시키는 자의 권세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때는 아들도 그 나라를 아버지께 돌려드리고 복종한다. 그렇게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작은 부활들, 그런 것은 증거로서 부활이지 땅에서 사망의 그림자를 제거하는 것은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 그의 강림하실 때요, 그리고 후에는 끝날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이 그런 것을 설명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가 여기 천년왕국 때 부활이 있고 그리고 천년왕국 뒤에 대 배교가 있으면은 하늘에서 백보좌가 내려오는데 크고 흰 보좌는 다니엘서에 있는 이야기인데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그가 모든 것들을 다 심판하면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다 살아날 것이어요. 그리고 심판을 받습니다. 여러 책들이 있는데, 행위의 책이요 생명책이 있습니다. 20장에 강조되는 것은 말하자면은 그들에 대한 심판이 강조점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다 불못에 던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행위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심판을 강조합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구원을 받고 나머지는 그들의 행한 바를 따라 불못에 던지우더라. 그런 말이지요. 거기서 또 걸려낸다는 말이 아니어요. 물론 로마서에서는 율법없이 범죄한 자들은 율법 없이 망하고, 그런 구절에서 이방인들이 자기 양심을 따라 율법을 행하면은 그것이 그들의 의가 될 것이 아니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그런 나라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을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망하고 망하리라.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지 어떻게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과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치하시는가, 하는 그런 나라 개념은 아닙니다. 로마서는 그리스도의 나라는 완전히 순종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나라는 순종치를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갖고 순종하지 못했고, 이방인들은 율법 밖에 있으면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가 왔기 때문에 새로운 순종하는 나라가 건설되었습니다. 로마서는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언급하는 것이고, 계시록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언급하는 그런 구원 문맥이 아니라, 승리하고 승리하리라.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승리하고 승리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망하고 망하리라. 그런 것만 여기서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을 읽으면서 다른 구절을 끌어와서 여기서 해석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누가 살아납니까? 먼저 자기 생명을 포기하고 주님을 순종했던 자들이 먼저 천년동안 왕노릇하고, 그런 권세있는 나라를 마지막 사단이 발작하면서 훼방하지마는 하나님이 친히 강림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시면은 그들은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들만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랐던 모든 그 졸병들, 그들이 다 행위의 책에 기록된 대로 다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리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함께 영광을 얻게될 것입니다. 그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의 영광은 21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생명은 무엇입니까? 또 내가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 처음 것이 다 없어졌더라. 이 처음 것을 어떤 의미로 없어졌습니까? 처음 것은 사망이 지배했거든요. 마지막 죽음이 모든 죽은자들을 다 토해내면은 이제는 모든 역사는 끝나는 것입니다. 생명이 완성되니까. 그리고 인제 사망도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사망도 이처럼 죄의 권세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죄값은 사망인데 사망이 하나님의 생명의 세계를 자기 왕국처럼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어떤 의미로 만물이 새롭게 되느냐 하면은, 2절에 보니까 하늘에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하나님의 도성이 내려온다 그말이지요. 이 도성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도성이요, 그 도성의 영광스러움은 21:9-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도성의 의미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신부가 신랑을 위해서 단장한 것처럼 정결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예루살렘은 무엇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장막인데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게 할려고 하나님께서 하늘에 거룩한 성으로 강림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언약 말씀이지요. 이스라엘을 시내산에 부르시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게 할려고 내가 너를 애굽에서 건져냈지 않느냐. 이 말을 거듭거듭 반복하셨는데, 여기서도 그 언약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늘에 거룩한 예루살렘, 그 예루살렘에서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 친히 강림하시면은 그것은 완전한 생명이요 교제여서 거기는 다시는 이전의 모든 고통과 눈물이 없을 것입니다. 구약의 언어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전에는 왕처럼 모든 것을 쓸어갔어요. 그러나 죽음이 모든 죽은자들을 다 내어놓으면은 죽음은 그 권세가 상실된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도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은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데 천년 동안 왕노릇하는 메시야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는 영광스러운 나라가 나타날 것인데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게 할려고 하늘에 큰 예루살렘으로 강림하신다. 이제는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장막으로 여기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은 이전의 모든 고통들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여기서도 4절에 설명하기를 모든 눈물을 씻기시고 사망이 없고 애통이 없고 곡하는 것이 없고 아푼 것이 없고, 왜냐하면은 처음 것이 다 지나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옛 세계가 다 지나갔다. 옛 세계의 것을 전부 이런 고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니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줄리니. 모든 고통이 다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생명 샘으로 인도하겠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새롭게 되면은 이기는 자들의 기업은 생명수입니다. 창세기에서는 이 생명수가 땅으로 흐르면은 그 모든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부요했었습니다. 이전에 모든 것이 생명샘이라고 계시록 21:9-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명이 완성된 것을 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목마름이 없이 생명수를 풍성히 마시게 될 것이다. 누가 그렇습니까? 이기는 자들이 그것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다. 그러나 8절을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여기서 영원한 복락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을 묘사하는데 첫째는 두려워하는 자들이어요. 이기는 자들은 얻을 것이고, 두려워하는 자들은 진자들입니다. 그들은 배교자들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믿지 않은 자들과 거의 같은 같은 말입니다. 여기서는 거의 똑같은 부류들이어요. 그러니까 이런 부류들도 등급이 있어 가지고 두려워하는 자들은 지옥에서도 조금 선선한 윗목에 가고 불신자들은 조금 아랫목에 가고, 우상숭배자들은 부트막에 살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한 무리들이어요. 두려워하는 자들은 여기서는 믿지 아니한 자들이어요. 그러니까 불못에 던질 자들을 여러 말로 지금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특별히 여기서는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 이것을 갖고는 그냥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지옥간다. 이렇게 윤리적으로 직접 풀어서는 안됩니다. 이 문맥은 우상숭배자들, 예수의 주되심을 거절하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것을 부인하고 짐승에게 절하고 우상숭배하고 그들을 생명의 주로 시인하고 그런 믿음의 변질자들을 거짓말쟁이로 묘사하지 한번만 거짓말 지옥, 이런 윤리적인 이야기를 직접 하고 있는 문맥이 아니어요. 여기서는 전쟁이 토대지 윤리적인 완전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전쟁이 토대에요. 어떤 전쟁입니까? 예수를 주로 시인할 것인지 땅의 임금들을 주로 시인할 것인지, 그런 문제들입니다. 그런 모든 자들은 영광스러운 아버지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불못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불못도 성전이면은 그럭한 성 밖이 불못이어요. 구약 모델입니다. 구약은 예루살렘이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이고 그 밖에는 부정한 골자기가 있어요. 그 부정한 골자기에서는 옛날에 므낫세가 우상을 섬겼던 자리인데 그것을 히스기야가 나중에 부정케했을 때 불을 통해서 많은 부정한 물건들을 태웠어요. 쓰레기 소각장이 되었어요. 그런 것을 모델로 삼아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어요. 이것을 가지고 영혼불멸설, 죽은 뒤로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존재론적인 설명을 할려는 것이 아니어요. 그들은 세세토록 고난을 받으리라. 믿는 신자들은 영원한 축복을 복락으로 받으리라.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악한자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일어나겠지마는 주님은 승리하고 승리할 것이고 지금 너희들이 부인하고 조롱하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그분이 오시면은 그를 위해서 생명을 포기한 모든 자들이 훈장을 받을 것이고 그와 함께 왕노릇할 것이다. 그럴지라도 악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또 잠깐 극악한 배교를 하겠지마는 하나님이 불꽃 가운데 강림하셔서 크고 흰 보좌로 심판하시면은 그들은 순식간에 소멸될 것이고 그때는 죽음도 그 권세를 끝내게 될 것이다. 모든 자들이 다 살아나면은 이제까지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완성될 것이다. 그래 모든 죽은자들이 다 살아나고 생명의 언약이 완성되면은 하나님은 영원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거기는 다시 눈물과 애통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에 이 하나님을 거절한 자들은 지금 짐승과 싸워서 진 자들만 두려워한 자들만 불못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자들이 다 자기 행위대로 이 불못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아 이겨라. 승리해라. 그렇게 이 계시록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어요. 제일 우리가 조심할 것은 이런 것을 다른 성경과 맞추어서 이것으로 사건을 재 구성할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문맥을 따라 읽어야 되요.

그러니까 이 강조점은 무엇입니까? 천년왕국 동안에 좋은 나라가 있다더라.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궁리가 아니라, 지금 이기라는 말이지요. 문제가. 지금 이겨라. 주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이기리라. 진자들은 그 영광의 나라를 기대하지 말아라. 지금만 죽을 뿐 아니라 영원한 죽음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게시록을 해석할 때도 이 계시록으로 중심하지 않고 다른데를 보니까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용서하고 영광의 빛으로 너희에게 비추실 것이다. 고백하면은 하나님은 미쁘고 자비하시다. 요한일서에도 씻어주리라.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계시록은 그렇지 안해요. 세상 전쟁도 끝나고 나면은 탈영병들은 사람 취급도 안해요. 물론 그들도 국가 시민이 되고 살아남을련지 몰라도 사람 취급도 않고 그때는 말하자면 훈장 탄 사람들, 상위군인들, 우리 6.25다음에도 상위군인들이 오면 겁났어요. 국가를 위해서 내가 손목 하나 없어졌다. 내놔라. 그러면은 그냥 보리도 퍼주고 나락도 주고, 안하면은 쇠고챙이 팔로 훼방해버리면 지서에 잡혀가 봤자 손 못대요. , 국가를 위해서 헌신했거든요. 미치 상위군인 나라처럼 된 것이어요. 지금 우리 나라가 공산주의와 싸워놓으니까 국가 중요한 결정은 군인들이 일어나면 조용하지 안해요. 상위군인들이 일어나도. 그렇게 힘이 있는 것이어요. 왜냐하면 공산당으로부터 국가를 건져냈거든요. 일반 역사도 그런 것이어요. 그러니까 계시록은 이 전쟁을 모델로 해서 이겨라. 내가 이겼으니 여겨라. 내가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증거하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었지 않느냐? 너희들은 내 나라와 내 백성이 되었으니 생명을 걸고 나를 충성스럽게 증거해라. 내가 땅의 임금들의 머리다. 그러면 너희들도 나와 같이 왕노릇하리라. 악한 권세가 아무리 일어나도 그들은 망하고 망할 것이다. 나중에는 모든 죽음도 다 끝날 것이고 모든 이제까지 악인들은 다 불못에 들어갈 것이다. 그 영광스러운 나라가 나타날 것이다. 그때 너희들은 값없이 얻은 생명수에서 너희들은 만족하게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것이다. 이겨라. 그렇게 이 계시록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조점은 지금 이기라는 말입니다. 종말의 사건이 어떻게 되는가 연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악의 권세를 계속 발작하고 극악하게 일어나도 부활하신 주님은 승리하셨고, 또 그를 승리케 하신 하나님도 영원히 승리하실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겨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의 권세에서 건져내고 시내산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과 한 장막에 거하시면서 그들의 봉사를 받으셨습니다. 하늘의 불기둥과 기름기둥으로 그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에게 광야에서 만족하게 먹이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리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모든 원수들은 가나안 땅에서 진멸토록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세상 권세를 의지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나라로 그처럼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의 신실하지 못해서 그들은 그들이 사모했던 이방의 권세에 사로잡혀서 바벨론의 종이 되었고 그들은 왕도 없고 제사장도 없는 비참한 그런 무리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게서 조상들과 약속하신 언약을 따라서 다시 종말의 왕을 약속하시고 그리고 다시 그들을 고토로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을 영광스러운 나라로 건설하셨지마는 완성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따라 아들을 보내시고 이 아들을 통해서는 가나안 땅의 나라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이방의 권세에서 구원한 그런 왕이 아니라 더 큰 구원, 아들을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은 이방 권세를 이겼으면은 마지막 세우신 다윗의 후손 하나님의 아들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시인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을 거역했지마는 그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시인했고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 가운데 살리셔서 영광을 주셨습니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가 왕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시는 대리 왕이십니다. 세상은 그가 승리하고 승리할 것입니다. 지금도 이방 권세가 하나님의 아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로마 정권 밑에서만 그런 것이아니라 지금도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을 모릅니다. 서동렬이 야구 선수만큼도 유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믿음의 신자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알아서 하나님의 용서를 빙자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요. 차라리 이방인들은 자기 신이 두려워서 달달 떨고 복음의 자유를 모르고 구약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내가 십일조 아내면은 벌받을까, 내가 주일날 교회에 안나가면 두려워 떨고, 최소한 주일날 교회에는 나오고, 십일조는 내지마는 복음의 자유를 알고 있는 구속사학파들이 그 일도 못해요. 이단이 무슨 따로 있어요. 모세만 이단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용서를 하나님의 권세로 해석하지 않고 그냥 죄인들을 용서하신다. 그렇게 해서 겨우 죄에서 벗어난 자들을 음행으로 미혹하는 거짓선지자들, 그렇게 베드로서는 말하고 있지 안해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우리가 사랑하고 그와 우리 사이를 어떤 사단의 참소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완전한 생명의 교제로 사랑하셔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되고, 우리를 하나님 품안에 두셔서 아버지와 아들이 창세 전에 가졌던 교제와 영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도 우리는 조금만 그림자만 드리우면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가? 두려워 떨고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런 이야기에요. 여러분이 새벽기도 우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십일조 우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주일날 꼬박꼬박 모세 사계명처럼 벗어나고, 그런 것은 벗어났습니다. 그 자유가 여러분을 방종케 하는 자유가 아니어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조금만 이익이 있으면 바꾼다 그런 말이어요.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분이 이것은 너희를 위해 찟긴 내 몸이요 이것은 너희를 위해 흘린 내 피니 먹고 마시라. 내가 나를 보내신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자는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한 몸과 한 영으로 이처럼 복주셨는데도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생명의 선물로 주신 것을 다시 주님의 상으로 가지고 와서 함께 먹고 우리만 먹는 것이 아니라 주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가지고 나오도록 했는데, 우리의 헌금 생활은 얼만큼 탄력적이어요. 잘못믿는 사람들은 생일날 감사헌금만 안해도 벌받을까, 개업하고 무엇을 안하면 벌받을까, 이사가서 먼저 목사를 초청 안하면 벌받을까 두려워 떨고 다 해요. 이방인들도 그렇게 합니다. 물론 그렇게 공포심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 모든 것을 우리의 신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이 참된 하나님에 대해서는 감사할 조항들이 없어요. 그러니까 교회는 항목에 생일감사, 이사감사, 추도식감사 별 것을 다 해갖고 교회를 가르쳐요. 그리고 그런 항목들이 없으면 그져 주신대로 내자. 하고 꼬작꼬작 주머니에서 냅니다. 그렇게 해갖고 구속사가 모독을 받아요. 구속사로 세운 교회가 무슨 부훙하고 무슨 헌금이 많고 자립하냐? 물론 공포심을 따라서 착취한 것이 헌금은 아니어요. 그러나 여러분의 자유가 피로 값주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셔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고 땅의 임금들이 그 영광을 가지고 주님께로 돌아와도록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도록 하셨는데 우리들이 살고 있는 뭐에요. 단순히 제사 안지내고 추도식 안하고 우상 섬기지 않으니까 여러분이 배교안한 것입니까?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생명의 주님으로 시인하고 사는 것입니까? 그걸 여러분이 생각을 하셔야 되어요. 우리들은 단순히 종말론, 날자 맞추는 이단에 속하지 않으니까 정신이 총총한 것 같습니까?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긴다는 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님만 주님으로 시인하고 우리의 생을 그에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하나님 품에 두시고 예수와 함께 죽음을 이긴 권세있는 나라를 봉사할 수 있도록 영광의 보좌에 우리로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죽음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를 수가 없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아니하리라. 우리 믿는 신자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없습니다. 오히려 죽으면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뵙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강림하시면은 우리가 그분을 위해서 생명을 포기했던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게될 것입니다. 지금 몸으로 수고하지 않은 모든 수고를 그날에 다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행한 바를 따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 오시도록까지 부활의 복음을 받았으니 하늘에 속한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그런 영광과 권세 있는 백성이 되었으니 우리들이 우리를 사랑해서 주님의 피와 주님의 생명을 먹고 마시는 존귀한 백성으로서 우리의 몸을 주님의 지체로 봉사하시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모든 사람들이 먹고 마심의 종으로 두려워 떨지 않고 우리의 생명의 주가 되신 주님 앞으로 복종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힘있게 세상을 이기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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