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용의 결박과 그리스도의 나라 I

찬미예수님 2026. 5. 31. 23:53

제목: 용의 결박과 그리스도의 나라 I

성경: 요한계시록20:1-6

 

계시록 20장1-6절을 읽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 소위 천년왕국 본문인데 이 본문에 대해서 소위 자유주의 계통들을 빼놓고 보수교단에서도 여러 설이 있습니다. 그런 설 때문에 우리 나라 보수 교단은 조금만 틀려도 전부 틀린 것처럼 그렇게 그냥 평가를 하기 쉬운데 그런 것 때문에 보수 교단에도 이런 저런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좀 설명하고, 오늘은 소위 천년왕국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있는지 없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만 강론하고 그 나라에서 어떻게 먼저 죽은 자들이 존귀하게 되는지 하는 이야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강론하고 있는 17-21장8절까지가 한 단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서는 악의 세력들이 순차적으로 나타나고 그런 악의 세력들을 전부 다 정복하고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영원하게 완성되는지, 그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신부 아내로 하신 것처럼 바벨론을 사탄의 신부 아내로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 여자가 짐승을 타고 있고 이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고,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일곱 머리의 권세의 완전함에다 강조를 둔 것이 아니라 그 권세의 완전함, 큰 권세, 그런 것을 강조한 것은 13장에서 설명했던 방식이고 여기서는 그런 큰 권세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세들이 어떻게 순차적으로 나타났다가 차례대로 망할 것인가? 그것이 강조점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다섯 머리는 이미 망했고 하나는 있는데 곧 망할 것이고 일곱이 오면은 다 오겠지요. 이 일곱이 오면은 아직은 일곱은 오지 안했지마는 일곱이 오면은 잠깐 동안 힘을 발휘하겠지마는 그것도 망할 것이고 그러면 거기까지 하면 끝이어야 되겠는데, 또 여덟 번째가 있는데 실은 일곱에 속한 자다. 이 여덟 번째가 나타나면은 열 뿔이 권세를 누릴 것이고 바로 여덟 번째 나타난 것이 어린 양과 싸울 것이다. 그렇게 17장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교회에 주신 지혜는 무엇이냐 하면은, 아무리 이런 권세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도 망하고 망하고 망할 것이다. 여덟 번째가 나타나도 그것도 일곱에 속한 자처럼 망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이제 18장부터 망하는 이야기들을 순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18장에서는 바벨론의 멸망을 말했고, 이처럼 바벨론의 멸망을 말하고 나서 큰 찬양을 하고 그 다음 이어서 바벨론 배후에 있는 짐승과 용의 멸망을 19,20장에서 쭉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9장에서는 백마 타신 이가 나타나시는데 그분은 어찌 큰 영광인지 면류관이 수없이 많고 이전에는 나타내지 않았던 큰 영광으로 오기 때문에 이름 쓴 것이 있는데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른다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백마 타신 이가 옷을 입었는데 옷이 적의 피에 젖었고, 곧 그 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입에서 검이 나와서 그 검으로 원수들을 칠 것인데 그가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면은 그 원수의 피들이 이 앞 부분에서는 온 팔레스틴 땅에 발구레에까지 넘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장차 철장으로 다스릴 자라. 그분이 짐승과 또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한 거짓 선지자를 잡아서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장군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주고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잡아서 불붙은 유황 못에 던지고 그리고 인제 오늘 읽은 20장이지요. 그가 또 용도 잡아서 결박해 가지고 무저갱에 가두고, 그런데 용은 완전히 완전히 멸망한 것이 아니어요. 천년 동안 있다가 잠깐 놓이면은 또 극악하게 발악하면은 그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그것을 심판하고 그리고 하늘에서 크고 흰 보좌, 구약으로 하나님의 보좌이지요. 하나님의 보좌의 보좌가 나타나고 모든 산자와 죽은 자를 다 심판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하늘의 예루살렘이 내려오고 그 예루살렘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21:9-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한 단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강론할 천년왕국이라는 본문은 바벨론도 망합니다. 짐승도 잡힙니다. 용도 잡힙니다. 그 다음에 나중에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용도 유황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런 문맥에서 지금 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가 계시록은 잘 몰라도 두 군데는 좀 알아요. 어디를 아느냐 하면은 666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도 자꾸 들어서 알고, 화장실에 가도 써 있으니까 그건 좀 알고, 그리고 인제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는 말이 가끔 신문에 나니까 성경을 안읽은 교인들도 압니다. 우리 봉선동에 있는 다미선교회에서 다 미래를 예비하라. 10월 몇일날 오신다고 해갖고 텔레비에도 나오고 하는 것들이 다 천년왕국 문제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몰라도 계시록 그러면 천년왕국이 있고 666이 있다더라. 이정도는 대개 알고 있고 그것이 우리들을 공포에 사로잡힐 만큼 무시무시하게 합니다. 666이 무엇이냐? 요새 보면은 전부 바코드가 있지 안해요. 뭐 과실 하나만 사도 거기에 줄이 쫙 그어져 있어서 그것만 컴퓨터에 넣으면 다 알게 되어 있어요. 그런 것처럼 사람 이마에도 그런 것을 붙이면은 요새 지문 인식, 눈동자 인식 하는 것처럼 하면은 사람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갖고 상당히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어디서 들은가 몰라도 성경은 자꾸 설명해도 모르겠다고 그러는데 그런 것은 신문에서 얻어 들어도 기억력도 좋고 잘도 알고 있어요. 지금 그 부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귀담아 들으셔야 되겠지요. 소위 천년왕국에 대한 문제는 있다, 없다 하는 두 팀으로 나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소위 보수파 예수께서 육체로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육체로 강림하실 것이다. 하는 것을 사실로 믿는 그런 사람들을 요새 말하는 기독교 장로회 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기독교 장로회는 예수께서 처녀가 낳았다고, 그런 것은 있도 없는 이야기고 예수님도 원숭이 몇대 손이 될 것이어요. 부활했다는 것도 유관순 누나가 3.1절에 민족의 가슴에 부활했다는 그런 의미로 사랑은 미움을 이긴다는 의미지 어떻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냐?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유주의파인데 그런 것을 빼버리고 말하자면 예수께서 진짜 처녀가 낳았고 진짜 죽었다가 살아나셨고, 또 육체로 오실 것이다 하는 것을 믿는 그런 교회에서도 말하자면 이것을 해석하는데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있다 없다 둘로 나누어져 있어요. 그런데 없다는 사람들이 조금 손해를 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계기록 20장에 천년 동안 왕노릇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니까 순 가짜구나. 성경을 부정하구나. 이런 식으로 몰아버리면은 그냥 애매히 당하는 것이어요. 그들도 계시록 20장에 있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소위 천년왕국이 있다는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지금 팔레스틴 땅에 구체적인 천년 동안 왕국이 있을 것인지, 예수님이 천년 동안 통치하시는 왕국이 있을 것인지, 그 역사적인 왕국이 있냐 없냐를 갖고 없다고 하는 것이지, 계실고 20장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그것을 해석했을 때 소위 천년왕국을 믿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다시 재건되고 거기 예수님이 강림하셔서 다시 다윗 왕조처럼 크고 영광스러운 나라를 이루실 것이다. 그런 왕국이 없다. 지금 교회 시대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다시 이스라엘이 부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말이지 계시록 20장에 있는 천년왕국이 없다고 그렇게 성경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니어요. 그런데 인제 무천년설 그러면 그 무자 때문에 그 사람들 가짜인가 보다. 성경에 분명히 있는데 없다고 그런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받으니까 그런 의미로 조금 이름이 잘못 붙여져서 손해를 보지요. 그런데 없다는 사람들이 교회사에서는 주를 이룹니다. 있다는 사람들은 초대교회 때부터 소수의 무리로 있었고, 그리고 이것은 큰 교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천년왕국이 있다는 사람들은 요새로 말하자면 안식교도들, 그런 사람들이 그것이 총 초점이 되어 있고, 지금 집집마다 두 사람씩 전도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앞으로 십 사만 사천 명이 들 것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겠지요. 그러면 있다는 사람들은 두 구룹으로 나뉘이는데 소위 역사적인 전천년설, 말하자면 예수님이 통치하고 나서 말하자면 천년왕국이 온다는 천년 전기설이 있고, 세대론 천년전기설 이렇게 두 팀들이 있습니다. 제일로 간단한 것이 보통 옛날에 많이 들었던 세대론적인 전천년설인데 우리나라 부흥사들은 거의 다 그쪽에 서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날짜가 7일로 있는 것처럼 세대는 7천 년으로 끝난다. 그래서 구약 시대 2천년 예수님 오셔서 2천년, 그러면 4천 밖에 안된가? 다시 계산해야 되겠는데, 예수님 오셔서 지금 2천 년이 되었지요. 아브라함 때 모세가 1,500, 500, 500년 그러면 2,000, 그러면 그 앞에를 2,000년 쯤 계산을 해야되겠구먼요. 그리고 어떠튼 예수님 재림하고 2,000년이 차면은 예수님 재림하면은 소위 안식일에 해당되는 천년 안식년,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 봐라 지금 2,000년이 다 찼는데 달력이 잘못 계산되어서 차이가 날까 모라도 곧 온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세대론자들이라고 해서 요새 많이 유행하는 설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실제로 믿고 예수님 오시면은 다시 모세 율법이 시행되고 가나안 땅에 다윗 왕조가 건설될 것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성경 어디를 주로 많이 인용하느냐 하면은 주로 구약을 많이 인용하는데, 신약 같으면은 마태복음 25장에 그런 구절이 있지 안해요. 내가 갇혔을 때 너희들이 나를 면회왔냐? 그런 것이 있지 안해요. 그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상속하거든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 잘해주면은 그 사람들이 천년 왕국에 들어갈 것이고 유대인들에게 잘못하면은 천년왕국에 못들어갈 것이어요. 그래서 그런 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중동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일방적으로 유대인을 지지합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그 사회에서 중요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마는 교회들이 일방적으로 유대인을 지지하는 이유들이 곧 그런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공격을 받느냐 하면은 이들은 역사를 7천 년으로 나누는데 구원도 7로 나누어서 설명을 합니다. 에덴에서는 선악을 아는 실과만 안먹으면 천국갈 것인데 먹어버려서 안되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네 마음대로 해보라. 하니까 그들이 마음대로 바벨탑을 쌓고 제 마음대로 하고 여자를 많이 얻어 살고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했거든요. 그러면 내 말을 믿고 살려느냐 하고 가나안 땅에 두었더니 하나님 말을 못믿고 그냥 애굽으로 내려가 버렸어요. 그래서 시내산에 불러 놓고 그러면 너희들 내 말을 들을래. 몇 가지 규칙을 잘 지키면 천국가게 해주겠다고 하니까 멋도 모르고 잘 지킬렵니다. 대답을 해버렸는데 그냥 금송아지를 섬겨서 첫판부터 범죄했어요. 그것이 율법시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 아니면 지옥입니다. 그래서 하도하도 안들으니까 이 사람들은 천년 동안 쫓아내버리고 그때 우리 이방인들, 구약에 보면 이방인들은 사람도 아니지 안해요. 불러가지고 아야 너희들이나 밥먹어라.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상에서 먹고 있지마는 그래서 유대인들은 천년 동안 문밖에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다시 부르시면은 우리 이방인들은 구원의 시대가 끝나고 다시는 구원받을 시대가 없고 유대인의 구원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 유대인의 구원의 시대가 오기 직전에 말하자면 7년 동안 큰 환난이 있고, 그때에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천년 동안 왕노릇하고 7년 환난 때 유대인들에게 잘 대해준 이방인들도 거기 곁다리로 끼어들 것이다. 그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왜 공격을 받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것은 기준이 쪽같아야 하나님이지 이랬다 저랬다 하면은 하나님이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에덴에서는 과일 하나만 만먹으면 천국간다고 했다가, 그 다음에 모세시대에는 율법을 어김없이 지키라고 했다가, 우리에게는 믿기만 하라고 이렇게 들쭉 날쭉 하면은 그것이 무슨 하나님이냐? 그렇게 해가지고 막 공격을 하면은 대답을 잘 못합니다. 이것이 천년왕국이 있다는 사람들의 주 세력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없다는 쪽을 설명하고 있다는 다른 쪽을 한군데 더 설명하겠습니다. 없다는 쪽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무슨 유대인들이 다시 부흥하고 그래야. 예수 오셔서 유대인 이방인의 간격은 없다. 이제는 천하만민이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의 백성, 신령한 이스라엘이 되었지 무슨 유대인이 따로 있냐? 인제 유대인의 자리는 없다. 그러니까 이 계시록 20장에 있는 천년 왕국은 천년 동안 사탄을 결박해서 옛 뱀을 결박해서 무저갱에 가두는 이것은 지금 복음시대를 말하는 것이고, 복음시대 끝에 사탄을 잠깐 동안 놓아준다고 했으니까 그때 큰 핍박의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가 올 것이다. 그런 것은 있지마는 지금 복음시대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무슨 예수님 재림한 뒤로 천년 동안 유대인들이 본 백성이 되고 이방인은 곁다리고 끼어 드는 그런 시대가 있다고 그러느냐? 그리고 지금 예수를 보지 않고 믿고 천국을 가야되지 예수님 재림한 뒤로 천년 동안 잘 먹고 잘 살고 그때에 또 구원받을 기회가 있으면 하나님이 공평한 것이냐? 그래 가지고 없다는 쪽 사람들은 그렇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없다는 쪽에서도 비슷합니다마는 두 구룹이 있어요. 한 구룹은 역사는 점점 발전해서 예수님 재림 전에는 큰 황금기가 도달할 것이다. 복음이 온 세상을 정복하면은 서양 과학이 발달한 것처럼 서양 과학이 복음의 힘 때문에 발달한 것이니까 온 세계가 발달하면은 큰 황금기가 되고 온 땅에 복음이 증거되면은 온 땅을 복음이 통치하는 그런 영광스러운 시대가 올 것이다. 이것이 천년 왕국이지 다른 것 없다. 그것은 그전에 한참 유행을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그것이 힘이 빠져버린 것이 1, 2차 대전을 일으킨 것이 기독교를 일으켰던 그 중심 문화권에 산 사람들이 세상에 없는 전쟁을 하고 세상에 없는 잔악한 짓을 다 해버렸거든요. 그들은 가난해서 전쟁한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그런 진화론적인 사고방식, 점점 황금기가 올 것이라는 사상이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로 그런 것이 미국에서 많이 발전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 다음에 다른 구룹은 그것을 후천년설이라고 그럽니다. 천년왕국이 있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것을 후천년기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인제 없다. 무천년기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없기는 없는데 무천기설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실은 지금 사탄은 옥에 갇혔지마는 악의 세력과 교회는 피나게 투쟁할 것이고 하나님 나라가 발전한 만큼 악의 세력도 발전한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 재림 전에는 악이 극도로 발전해서 큰 발해시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소위 천년왕국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무천년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사람들입니다. 보통 우리 정통 교회는 그쪽 설을 많이 취했습니다. 소위 큰 역사의 황금기가 온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사탄의 왕국보다 힘이 적으면 되겠느냐? 그러니까 교회가 점점 발전하고 온 세계를 덮을 것이다. 그런 것은 후천년설인데 미국에 힘을 썼고 교단적인 배경은 별로 없고 소위 악의 세력도 발전하고 하나님 나라도 발전하고 예수님 재림 전에는 악이 극도로 발전해서 큰 박해시대가 올 것이지마는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악들은 심판받을 것이다. 그리고 영원한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고 하는 것이 무천년 설입니다. 교단적으로 소위 종말론 예수님 재림하셔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것을 결의한 교단은 없습니다. 요새는 그것을 결의한 교단이 있어요. 뭐 빈야드 선교회인가? 거기는 우리 교단은 천년왕국을 믿는다. 하고 고백을 했더구먼요. 그런데 그전 교회사에서는 그런 종말론을 가지고 우리 교단을 무엇을 믿는다. 무엇이 맞다고 고백안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성령논까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는 사도신경에 길게 고백이 되어 있는데 아버지에 대해서도 천지를 창조했다는 이 말만 간단히 되어 있고 성령논도 성령을 믿사오매, 이렇게 되어 있지요? 아주 간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종말론에 대해서 길게 설명이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가지고 누구를 정죄할 교단적인 배경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단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고 권위적으로 채택한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슨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나 교회사에서 많은 신앙고백서들이 있지마는 그 고백서들도 예수님 재림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일반적인 말만 있지 재림하시고 심판하실 때 그 사이에 천년이 있냐 없냐 하는 것은 명시적으로 설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 천년 왕국이 없는 것 보니까 천년왕국이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해 보았자 별로 권위가 없습니다. 그런 문제가 갖고 우리 보수 교단에서는 싸우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방금 무천년설하고 구원에 대한 도리는 똑같으면서 천년왕국이 있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세대론하고는 다릅니다. 그런 것 보고 역사적인 전천년설이라고 그러는데 다른 것은 다 세대론하고 다른데도 천년왕국에 대해서만큼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어요. 그런데 그런 역사적인 전천년설은 초대교회 때부터 면면히 내려왔고 교회가 박해를 받으면은 그런 설이 대단히 유행했지마는 소위 교회를 가르치는 신학자들의 사상은 주로 무천년설입니다. 왜냐하면 중세 시대를 교회가 지배했기 때문에 교회가 지배하는 것을 천년왕국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처럼 되어 있어요. 그리고 교회가 망하리라는 개념은 중세 왕국에서 생각을 못한 것이어요. 그래서 소위 말하자면 후천년설, 무천년설 그런 것들이 주로 이 보수교단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약하고 핍박을 받고 힘이 없이 무너져도 주님 오실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천년왕국이 있다는 설인데 그런 설들은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많은 신학자들이 있어서 가르쳤지마는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교회가 회의를 통해서 공적으로 받아들이기 전에는 그것은 신학자들의 학설일 뿐이지 교회적인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결의해서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이것을 믿지 않은 사람은 정죄한다. 하고 결의하면은 그것은 교회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니케아 신경도 그렇고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 그런 것들도 교회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보수파 신학자인 박형룡 조직신학이나 볼코프 조직신학이니 하지가 어떻고 하는 조직 신학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아까 말한 교회가 결의한 고백서들을 토대로 하고 있어도 거기에다가 자기들의 사상을 넣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그것은 그 학자들의 학설이지 말하자면 교회가 가지고 있는 권위적인 것은 아니어요. 그래도 그들의 신학을 교회가 결의한 고백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학도 권위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지마는 일단 학자의 학설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어떤 학설이 유행을 했느냐 하면은, 얼만 전까지만 천년왕국이 있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교회가 믿고 있는 바였습니다. 그것도 거의 세대론적인 천년왕국 개념이 강했습니다. 왜냐하면 문자적으로 읽어보면 전부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만 많이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가나안 땅에 그 나라가 건설될 것이다. 이렇게 주로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만 천년왕국을 믿었지 교회사에서 실제적으로 힘을 얻은 것이 무천년설 쪽, 천년왕국은 없다고 하는 쪽이 더 힘을 얻었다 그말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받은 것은 유럽의 교회가 미국으로 건너갔고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복음을 전수받았어요.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힘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쫓겨간 사람들이 가서 금광을 발견해서 떼부자가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미국 사람이 유럽가면 잘 알아주지 안해요. 돈만 많고 좀 무식하다. 그리고 전통은 영국이고 학문은 독일이지 미국은 잘 알아지주 안해요.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간 교회가 학자도 있고 신학교도 있고 해서 건너간 것이 아니라 자기들 신앙 양심을 따라 쫓겨난 구룹들이기 때문에 소위 신학을 가진 것이 약합니다. 그런데 그때 건너간 사람들의 성경 해석법이 주로 세대론적인 성경 해석법이 많했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어 보니까 모세 때하고 우리 때하고는 다르거든요. 모세는 때는 분명히 율법을 지키면 내 아들이라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믿으라고 그러니까 분명히 다르구나. 문자적으로 읽으니까 분명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설이 대단히 유행했고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선교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 나라 교회는 초기 선교사들이 세대론 선교사들이 많해요. 그래서 우리 나라 교회는 거의 세대론 종말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파 상관이 없이 거의 세대론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제 서철원 박사가 오셔서 무천년설이 맞다. 그정도만 말해도 욕을 덜 먹어요. ? 보수교단에서 후천년설, 무천년설, 또 역사적 전천년설 이런 것은 거의 서로 인정하고 있는 판이고 소위 세대론만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구원의 기준을 여러번 주냐? 해서 공격을 했지 다른 설들은 구원의 기본 개념들이 서로 같기 때문에 안싸웠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서철원 교수가 와갖고는 역사적인 천년전기설을 심하게 공격한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체계에 있어서는 우리하고 똑같지마는 종말론만 두고 보면은 세대론하고 다를 것이 뭐가 있냐? 그러니까 그런 것은 종말론만 두고 보면 세대론과 같은 것이다. 우리 보수 교단에 끼일 자리가 없는 구룹이다. 이렇게 공격하니까 처음에는 이 교단도 대단히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 서박사가 분명히 계시록 20자에 천년왕국이 있는데 없다고 그런다. 저 양반이 화란에서 자유대학교를 졸업했지 않냐? 자유대학이니까 자유주의파다. 그래갖고는 막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리과 화란이 어디냐? 말하자면 포르노 대회한 곳이 아니냐? 그런 서양 교회는 완전히 썩어버렸고 우리 나라 교회가 바글바글 하지 유럽의 교회에는 사람이 없어 텅텅 비었는데 더구나 화란이란 데는 포르노 천국이고 대회하는 데다. 그런 자유대학에서 배우고 왔으니 뭣이 있겠냐? 하고는 막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서박사가 독설도 심하거든요. 하하 웃으면서 나는 7년 동안 있으면서도 포르노 못보았는데 당신들은 몇일 있으면서 거기도 가 보았어? 그런데 그양반이 인제 왔다 뿐이지 목사 아들이시기 때문에 제코스로 공부해서 젊었을 때부터 쭉 신학교 교수여서 어지간한 목사들은 다 그 제자들이어요. 그런데 나이가 우리 보다 몇 살 밖에 더 많이 안해요. 그러니까 젊다 뿐이지요. 그래갖고는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는 교회사적으로는 무천년설이 힘을 얻고 있었는데 우리 나라만 박형용 박사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세대론을 가지고 와서 가르쳤는데 화란 전통은 무천년설이어요. 그것이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미국에서는 세대론이 강했다 그말입니다. 우리나라 목사들이 미국가서 배운대로 설명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어요. 그래서 인제 화란 개혁교회의 전통을 가르치는데 한참 예를 먹었습니다. 저도 재건교회에서 싸우다가 쫓겨난 것도 그 종말론 때문에 그랬어요. 교장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순신 장군 때 예수 전파안되었으니까 그때는 양심껏 살면은 천국가야 되지. 가만히 생각하니까 오직 예수 믿어야 천국간다고 그랬는데, 예수를 안믿어도 양심껏 살아서 천국가면은 예수님 오실 필요가 없지 안해요. 양심껏 살아서 천국 가는 사람이 한 명만 있으면은 우리는 배우기는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율법을 못지킨다. 오직 아들만 지킬 수 있다. 그분의 공로를 덧입어야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은 너무도 휼륭한 양반들이라.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 성경이 하늘로 기록되었냐? 하나님이 세종대왕을 예비한 것이 아니냐? 이쯤 설명하는 판에 그 양반들이 예수 안믿었으니까 지옥갔다고 그러면 기분이 짭짭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양심껏 살았으면 천국간다. 하고 보니까 세대론하고 비슷하지 안해요. 그러니가 그것 갖고 열심히 싸우다 쫓겨났어요. 그래서 저도 이쪽 신학교를 졸업했을 때 소위 천년왕국을 논문으로 썼습니다. 저도 무천년설로 바꾸었어요. 서박사 말을 들어보니가 아주 명쾌하고 그래서 그때 우리 서박사 말이 논문 상을 준다면 제껄 준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괜찮케 써진 논문이지요. 그런데 제가 구속사를 더 많이 이해하면서 천년전기설로 바꾸었거든요. 그래서 서박사님 제자들이 저하고 여러분이 공부를 합니다마는 제 말을 잘 듣다가 이제 천년전기설로 바꾸니가 머물러 서요. 내 말을 안들어요. 무엇인가 종말론을 바꾸는 것을 보니까 앞에 무엇인가 이상이 있으니까 뒤에 틀린 것이 아니냐? 하나 보테가 하나가 무엇인가 틀리니까 처음에는 무엇인가 몰랐는데 보테기 보테기를 하다 보니까 곁길로 간 것이 아니냐? 이것 아니겠어요. 로켓트도 처음 쏘았을 때는 비슷하지만은 한참 가고나면 하나는 평양 하나는 서울에 떨어지거든. 그러니까 이건 무엇인가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냐? 하고는 안들어요. 그래서 대단히 책망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 들어요. 그런데 지금 저하고 공부하는 분들은 많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저를 공격하는 분들이 김강호 목사가 더 발전한 것이냐, 꺼굴로 돌아간 것이냐? 왜냐하면 재건교회에서 천년왕국 때문에 쫓겨난 사람이 다시 그 쪽으로 돌아가 있으니까 공격을 하는 것이지요. 요새는 인제 서박사님이 화란 개혁 신학을 소개한 첫 번째 분입니다. 그분이 오신 후로는 주로 화란 쪽에서 유학한 분들이 왔어요. 미국 쪽보다도. 그쪽 분들이 성경 해석이 훨씬 밝아요. 그래서 우리 나라 합동측이든지 개혁측이든지 거의 인제는 무천년설입니다. 천년왕국이 맥을 못써요. 그 중에서도 세박사님 제자들이 그것을 제일로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다른 학교는 여러 설들이 공존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택한다더라 정도인데 서박사 제자들은 역사적인 천년왕국과 세대론은 같다고 몰아 때려버리기 때문에 오직 무천년설만 맞는 것이어요. 남어지는 정죄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제일로 쎄게 공격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 판에 제가 천년왕국을 다시 이야기하니까 이것 참 묘한 일이지요. 그런데 실은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예수님 재림하면 알 것을 무엇할려 지금부터 떠드냐? 그것이 무슨 밥이 나오냐 고기가 나오냐? 예수님 재림하면은 알 것을 갖고 그것은 학자들이 재미로 하는 것이지 아무도 모른다. 가봐야 알지. 그런데 성경 해석은 그것이 아니지요. 가봐야 된다고 하는 것이지, 특별히 계시록은 장차 나타날 싸움, 장차 나타날 완전한 승리를 말하면서 지금 싸우는 교회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가봐야 안다고 매도해버리면 안되는 것이어요. 그러니 성경은 해석을 해야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 사람들을 의식하고 수를 의식하면은 천년전기설로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천년전기설로 바꾼 이유는 성경 해석이 그러기 때문에 바꾼 것이고, 또 우리 구속사로 보았을 때도 천년왕국을 넣어야만 더 맞기 때문에 제가 바꾼 것입니다.

그러면은 제일 문제는 계시록 20장을 해석하는 문제에요. 실은 세대론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구약을 보면은 가나안 땅의 회복이 아주 꿈의 나라지요. 그러니까 구약만 그대로 붙이면은 세대론이 맞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무천년설은 구약의 모든 가나안 땅의 회복을 전부 예수 믿음으로 영해를 해버려야 되지 오는 세계 아름다운 세계는 하나님이 영원한 세계를 끌어들일 때나 가능할까 불가능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전부 다 자기 팀들이 맞다고 역사적인 전통을 들먹입니다. 우리는 칼빈이 있다, 우리는 이레니우스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이름을 들먹여보았자, 별 볼일이 없습니다. 각설마다 유명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제일로 중요한 것은 성경 자체이지 칼빈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성경 자체로 접근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여기까지는 어려운 것이 없지요. 이론만 설명했지 성경 해석은 하지 안했으니까. 있다. 없다. 없다는 사람은 그것은 용이 천년동안 사로잡힌 것은 교회 시대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무슨 예수님 재림하신 뒤로 천년 동안 복락의 시대가 오냐? 그런 것은 없다. 그런 것이고, 있다는 사람들은 지금 교회가 싸우고 있지마는 예수님 재림하시면 천년동안 복락의 시대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있다는 사람들입니다. 인제 있다는 사람들 중에 하나가 조금 이상한 것이 소위 세대론이라고 이야기를 했지요. 그러면 성경 본문 자체로 들어가겠습니다. 처음에 있다는 사람들은 순서대로 읽어봐라. 그렇게 되어 있지 않냐? 바벨론이 망하고, 짐승이 잡히고, 용이 잡히고 그 다음 용이 풀어지면은 하늘의 세계가 오고, 순서대로 있지 않냐? 그러니까 이 순서대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그건 세대론이나 역사적인 천년기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없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면은, 20장은 역사의 초기로 다시 돌아간 것이지 19장에 이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19장까지가 예수님 재림의 끝이고 20장은 다시 역사의 초기로 돌아가서 설명하는 것이지 19장에 이어서 나타나는 사건이 아니다.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러면 인제 19장과 20장을 나눌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그것이 제일로 중요한 관건이어요. , 그러면은 그것을 나누어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성경 본문으로 보았을 때는 계시록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했는데 항상 역사의 초기부터 역사의 말기까지 그것을 세 번 반복하는 구조로 되어 있지 않냐? 그러니까 19장 예수님께서 말타고 재림해서 짐승을 유황못에 던져버리면 끝이고, 다시 역사의 초기로 돌아가야 안되겠냐? 그것이 한 가지 이야기고, 그 다음에 봐라. 12장을 보면 하늘에서 용이 떨어지고, 거기도 용이 있지 않냐? 그것이 복음시대 초기인 것처럼 이것도 복음시대 초기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그들이 계시록 자체에서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 다음 계시록에서는 별 근거가 약하니까 계시록 밖에서 주로 끌어옵니다. 마태복음을 봐라. 아마 12장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니까 귀신의 대장이다. 귀신들의 대장이니까 졸병들을 쫓아낸 것이 아니냐? 예수님이 귀신들이 서로 싸우면은 어떻게 귀신의 나라가 건설되겠느냐?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성령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중에 임한 것이다. 누구든지 인자를 훼방하면은 용서받지마는 성령을 훼방하면은 오는 시대에 용서를 못받을 것이다. 거기 보니까 강한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새간을 빼앗겠느냐? 거기 보니까 결박한다고 했는데 단어도 결박 똑같고 하니까 여기 용의 결박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갖고 설명하느냐 하면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요한이 쓴 것처럼 요한복음도 요한이 썼으니까 거기를 보면 알 것이 아니냐? 특별히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이제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곧 이때라. 죽은자는 살아나리라. 했는데 여기도 보니까 죽은자들이 살아나리라 했는데 살아나리라는 말이 같지 않느냐? 그러니까 요한복음 5장은 지금 복음시대를 설명해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으면은 소위 영적으로 죽은자들이 살아나요. 하나님을 알게 되어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여기서 죽은자들이 살아서 천년 동안 왕노릇하는 것도 실은 복음을 믿고 산다는 말이지 육체적인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두 군데서 주로 끌어오고 있습니다. 요한계실고 자체에서는 12장을 근거로, 요한계시록 밖에서는 요한복음 5장과 마태복음 12장 그런 데서 끌어오는 것이어요. 그런데 근거가 전혀 없다고 지난 번에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단어가 똑같거나 비슷해도 그것이 나타난 문맥을 따라 봐야 되어요.

그러면 계시록 자체를 보십시다. 계시록 12장은 분명히 역사의 초기를 말합니다. 여자가 낳은 아이가 하늘로 올라가니까 용은 내어 쫓기고, 이 아이는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아들입니다. 분명히 예수의 부활과 그로 말미암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그건 분명히 역사의 초기입니다. 그러나 거기는 역사의 초기를 설명하는데 문제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세력을 설명할려고, 지금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은 무엇이냐? 용이 내어 쫓겨서 그 부하들을 부른 것이다. 그러니까 용의 부하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지 역사의 초기 곧 구원론을 이야기할려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세력을 설명하려는 이야기에요. 그런데다가 여기 계시록 20장은 역사의 초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이냐 하면은, 짐승이 잡히고, 용도 잡히고 악의 세력들이 어떻게 한거번에 몰수히 잡히는가? 총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요. 바벨론, 두 짐승, 용 이렇게 악의 세력들이 총체적으로 잡힌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 다시 역사의 초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12장에서는 용이 내어 쫓깁니다. 13장에서 두 짐승을 불러냅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있습니다. , 짐승, 바벨론의 순서이지마는 17장이하에서는 바벨론, 두 짐승, 용 완전히 꺼꿀로 되어 있지 안해요. 그러니까 역사의 초기로 돌아간다고 붙이는 것은 안맞는 이야기입니다. 12장과 20장의 문맥이 달라요. 20장은 역사를 마루리 한 때고 12장은 이제 악의 세력의 정체를 밝히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그 다음 마태복음 12장에 강한 자를 결박해야만 한다. 내가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면은 강한 자를 결박한 것이 아니냐? 한 이야기는 소위 구원론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는 때입니다. 실은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셨어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로 천하만국에 이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지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유대인에게만 가고 이방인에게는 가지 말라는 때에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은 이제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표증이고 그의 사역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 이제는 복음의 시대다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어요. 복음 시대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로 나타난 일이어요. 만일에 예수님께서 12장에서 새로운 시대를 가져왔으면은 그때 이방인들이 무수히 들어와야 되어요. 그러니까 마태복음 12장은 말하자면 복음의 초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냄으로 새 시대의 왕이 왔다. 포적을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 다음 동일하게 요한이 쓴 요한복음은, 요한계시록은 후일에 될 일, 장차 될 일, 속히 될 일, 종말의 싸움이 주제에요. 그런데 요한복음은 장차 싸움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 왔다.이 아들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이 아들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저주다. 지금 나타난 구원을 설명하는 것이 요한복음이어요. 그러니까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강조점이 달라요. 요한계시록은 장차 될 일, 후일에 될 일, 속히 될 일, 싸움이고, 요한복음은 지금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라. 이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이 아들을 보면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 아들의 소리를 들으면 죽은자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동일하게 요한 사도가 썼지마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요한복음의 것을 요한계시록에 끌어오면 안됩니다. 그런데 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다른 데서 끌어오느냐 하면은, 계시록을 봐라. 뭐 무시무시한 이야기만 나오고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완전히 상징법이니까 그러니까 상징법을 갖고 하면은 잘 모른다. 그러니까 상징성이 없는 사실적인 기록이 있는 다른데를 보자. 그러니까 산문으로 기록된 것은 명료하고 상징적으로 된 것은 명료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을 분석하지 말고 계시록 밖에 명료한 본문을 끌고 들어오자. 그래갖고 계시록 밖에서 끌고 들어온 것이어요. 그런데 거듭 말씀드리지마는 모든 성경은 그 자체로 명료해야 됩니다. 구약은 그림자고 가리워졌지마는 신약은 밝혀졌기 때문에 명료합니다. 명료와 불명료는 구약과 신약의 대비지 표현 양식의 대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실은 계시록은 계시록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상징법을 쓰고 있는 것이지 계시록의 사상을 모르게 할려고 상징법을 쓴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상징법이기 때문에 명료케한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제가 그전에 설명했지요? 부부끼리의 사랑도 어느날 장미꽃을 하나 갖고 와서 여보, 내가 당신을 사랑하요. 당신이 장미꽃 만큼 예쁘요. 그러니까 이 여자가 말로만. 돈으로 계산하라 그말이지요. 옆집은 얼마 짜리 무얼 사갖고 왔다고 그러더먼. 그리고 돈으로 계산하려고 그려면 설명이 안되어버려요. 그러면 당신은 5만원 짜리 안되겠지요. 이것은 장미꽃 한 송이를 사갖고 온 것이 가장 사랑을 잘 표현한 방법인데 어떻게 된 속인지 옆집 여자는 잉크코트를 사다 주었다는데 당신은 얼마 줄라요. 그렇게 장미꽃 가지고 속이지 말고. 내가 뭐 처녀냐고. 그러지 말고 현실적으로 놉시다. 그리고 돈, 하면 그것은 환산이 안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계시록은 상징법으로 표현해야 가장 명료한 것인데 아예 이것은 상징법이니까 덮어놓고 다른 데서 끌고 오자고 하는데, 계시록은 싸움이 주제이지마는 요한복음은 지금있는 구원이 주제이기 때문에 틀려요. 그러니까 아무리 단어가 같아도 끌고 들어오면 안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계시록의 주제는 싸움이라고 그랬지요. 실은 천년왕국도 보면은 누구누구 참석하느냐고 하면 문제가 많습니다. 예수님 재림하면은 부활한다고 했는데, 만물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때 부활한 사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하고 섞어져 살면은 묘한 세상이겠다. 또 예수님 재림한데서 천년 동안 살면은 죽음도 있겠냐 없겠냐? 하고 인제 별 말을 다 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계시록은 예수님 재림한 뒤로 만물이 어떻게 새롭게 된 이야기는 천년왕국에는 없지요. 만물이 새롭게 된 것은 하늘의 백보좌가 나타나면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그런 설명이 있지, 예수님 재림하면은 만물이 그 부활의 영광을 덧입다는 말은 계시록에는 없지요. 부활이라는 말도 문맥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어요. 계시록은 싸움이 주제이지 어떻게 우리가 죽음을 벗어난 하늘의 완전한 생명을 덧입는가 하는 것은 계시록의 주제가 아니어요. 그러니까 계시록에 천년왕국은 주님이 승리하셨으니 그가 승리의 군병으로 오셔서 모든 원수를 심판하면은 그의 이름을 믿고 목베임을 받아 죽은 자들도 그와 함께 살아서 통치하리라. 그런 권세에 참예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 영광의 몸을 입으리라. 부활의 몸을 입으리라는 것은 계시록의 주제가 아니어요. 그러니까 부활이라는 것도 어떤 문맥에서 설명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어요. 특별히 로마서에서는 우리 몸의 부활을 더 강조해요. 주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래도 만물이 썩어짐의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몸의 구속을 탄식합니다. 언제할 것입니까? 주님이 오시면은,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 살리신 주님이 오시면은 우리들도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완전한 승리를 이야기해요.

또 고린도전서를 이야기를 해요. 사망이 아담으로 말미암았으니 부활도 새로운 아담으로 말미암는다. 우리들이 첫 사람 아담을 본받은 것처럼 둘째 사람 하늘의 아담을 본받을 것이다. 하면서 부활을 설명해요. 그런데 계시록은 그런 부활이 문제가 아닙니다. 요한복음도 그런 부활을 설명하는데 이것은 아니라 싸움이 주제이기 때문에 싸움이 주제면은 주님이 왕으로 오시면은 우리도 왕이된다. 그래야 맞아들어가겠지요. 여기서는 어떻게 새로운 몸으로 오시는가, 새로운 질서로 오시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권능을 드러내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어요. 그러니까 천년왕국 때도 부활이 어떤가 하는 것은 별로 없는데 무엇만 있습니까? 목베임을 받은 자들이 살고 그리고 신앙을 지킨자들이 살고, 남어지는 천년동안 살지 못한다. 어떻게 부활의 새 몸을 입었는가 보다도 주님과 함께 살아서 천년동안 왕노릇하고, 왕노릇만 강조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계시록을 가지고 부활의 몸이 어떠니 설명하면 안됩니다. 사움 이야기만 하면 되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천년왕국을 주장하는 이유는, 두 가지 이유입니다. 계시록 19장과 20장은 연속해서 읽어야 됩니다. 그러면 인제 연속해서 읽어서는 안된다는 신학적인 이론이 있어요. 봐라. 예수님 재림한 뒤로 천년동안 복락의 시대가 오고 그때 또 구원받은 사람이 있으면은 이것은 불공평하니 안된다. 그러니까 나누어야 된다는 것이 신학적인 이유에요. 그런데 구원 역사에서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역사는 우리가 죽어서 그 영혼이 어디를 가느냐 하는 그런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에서 자기 백성과 동거하고 사는 것이 역사적인 구원이어요. 지금 천국이 열린 것은 우리의 구원이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하늘의 구원을 얻기 때문에 우리는 죽은 저편에 것을 얻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도 살겠고 하기 때문에 천국이 열린 것이지 구약의 조상들에게는 천국이 열려있지를 안해요. 구약 조상들에게는 조상의 묘실 밖에 목표점이 없어요. 지금 신약 백성들을 위해서 하늘이 처소가 열려있는 것이어요. 그런데 신약 성경에 천국이 있으니까 아브라함도 천국가고 노아도 천국가고 다 천국갔을 것이 아니냐? 이쪽으로 푸는 것이어요. 물론 갔겠지요.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이야기를 할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살았고 우리는 하늘 보좌에 산다. 모세는 종으로 달달 떨었고 우리는 하나님 품에 산다. 그러니까 다시는 모세의 종이 되지 말고 예수처럼 아들이 되어라. 이런 역사를 대비하는 것이지 개인의 운명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어요. 개인의 운명을 대비하면은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삶을 대비하면은 차이가 있어서 곧 구원입니다. 어떠튼 장가가면은 어린 아이처럼은 안살 것이어요. 그래야 장가간 것이어요. 그래야 어린 아이를 벗어난 것이어요. 그런 차이점이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19장과 20장을 소위 무천년설자처럼 똑같이 구원을 받으니가 나누어야 되겠다. 그래서는 안되고 예수님 재림하면은 이제 예수님의 왕권을 드러내는 시대가 옵니다. 지금은 그의 왕권이 세상에서 조롱을 받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땅에서 난 짐승의 도움을 받아 모든 사람으로 그에게 경배하도록 힘을 발휘하지마는 참으로 역사를 경영하시는 분은 일찍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그는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증거했고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보좌에 앉히심으로 아들의 영광을 증거했습니다. 참으로 이 아들이 하늘 보좌에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존귀한 왕권을 대행하는 그런 분입니다. 그가 오시면은 지금은 이방인들이 복종하지 않고 이렇게 되어 있지마는 그분이 오시면은 철장의 권세로 다스리시니까 그를 대항하는 모든 원수들은 입을 다물어야 될 것이고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모든 고난에 참예했던 자들은 살아서 그분과 함께 그 권세를 누리리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예수의 나라가 지금 복음시대로만 끝나버리면 예수의 왕권은 세상에 완전하게 구현되지 않습니다. 이방인들도 그를 조롱하고도 잘먹고 잘살고 있고 하나님의 교회까지라도 그를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도 벌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재림하시면은 그의 권세 앞에 모든 이방인들의 권세를 무릎을 꿀어야될 것이고 다시는 그를 조롱하는 말들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이 어떻게 구원받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분의 통치 권세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본문이 말씀하시는 메시지는 무엇이냐 하면은, 지금도 우리들이 주님의 왕권을 보지 못합니다. 로마 당시처럼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신사참배처럼 그런 외적이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도 세상의 권세는 예수의 부활을 부인하고 그 앞에 경배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경배하는 것은 우리 마음을 위로하는 종교적인 술책일 뿐 그런 것은 진정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무슨 김정일씨를 보고 국방위원장이 어떻고 좋아하지마는 그들은 체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는 팀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제일 먼저 손을 댄 것이 항상 교회에요. 그들은 체계적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적그리스도의 세력이지 아무리 통이 크고 정치를 잘한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그런 것을 마치 민족의 서광이 비취는 것처럼 이제는 교회가 할 일이 없는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의미로 통치 크겠지마는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부인하는데 있어서는 똑같은데 공산주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지 않으면은 예수의 왕권을 부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단순히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가 제도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 뿐이지 민주주의라고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면은 우리의 대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을 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차라리 노태우처럼 불교 믿으면 좀 덜 위험한데 장로라고 하면서 기독교에 반대되는 행동으로 기독교에 부덕을 끼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어서 교회에 제일로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 재림하셔서 그의 왕권을 드러내시면은 세상에서 멸시와 천시를 받은 자들도 그와 함께 살아서 그의 왕권에 참예할 것이고 그의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라고 그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가 그 왕권에 참예하는 것은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고난을 받을지라도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이 참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라고 그의 이름을 정직하게 신실하게 증거함으로 어린 양이 끄는 대로 정결한 신부처럼 옷을 더럽히지 않고 그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오직 주 예수를 증거함으로 그 나라와 권세를 봉사할 수 있는 나라와 제사장으로서 그분을 힘있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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