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적그리스도의 심판과 하나님 나라
성경: 요한계시록20:1-10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부르셔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시고 주님께서 충성스럽게 아버지를 증거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것처럼 우리로 죽음에 이르도록 음부의 권세에 복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신실한 백성으로 삼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품 안에 살게 하시고 예수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셔서 다시는 공주의 권세잡은 자 아래서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이 세상의 풍속을 좇아 살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원하는 바를 따라 살지 않고 우리 앞서 가신 주님을 따라서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이 믿음 가운데 깨어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야 되는 데도 그렇지 못했던 우리의 모든 어두움들을 주께서 용서해 주시옵고, 우리가 죄인되고 원수되었을 때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아버지의 크신 사랑 안에서 우리가 우리의 허물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하늘에 평강을 누리며 다시 하늘이 영광을 바라보고 달음질하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더욱 교회를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께서 값주고 사신 주의 교회를 주의 상으로 불러 모으셔서 우리를 기뻐하셨사오니 오늘도 교회 안에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셔서 교회 중에서 주님께서 영광과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기뻐함으로 우리의 생명이 하늘의 생명과 하늘의 영광으로 새롭게 될 수 있도록 주의 교회를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계시록 20장1-10절까지 읽고 강론하겠습니다. 이 계시록 20장 방금 읽은 그 천년왕국에 대해서 교회사적으로 많은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 천년왕국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문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부인하는 말이 아니라, 이것이 문자적으로 소위 탈레스틴을 중심으로한 천년동안 그리스도께서 천년동안 왕노릇하는 그런 왕국이 구현될 것인가? 그가 재림한 뒤로 천년동안 이런 복락의 왕국이 있고, 그 다음에 또 큰 배교가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펼쳐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은 이 천년왕국이라는 말이 실은 교회 시대를 이렇게 표현한 것 뿐이고 교회시대가 끝나면 예수 재림과 함께 영원한 세계가 열리지 재림하신 뒤로 천년동안 복락의 왕국이 있다는 말은 안맞는 말이다. 이 두 설이 교회사에서 대립돼 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가짜 신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통 교회에 속하면서도 성경 해석상 그런 차이점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종말론만을 가지고는 이단이니 마니 그런 싸움은 실은 하지 안했습니다. 교회사적으로는 천년왕국은 없다. 지금 교회 시대가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통치하신 시대고, 그리고 믿는 자들이 중생하고 살아서 예수님과 함께 통치할 것이다. 그런 중생한 자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냐? 우상에 경배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인제 이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을 소위 무천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은 그런 말을 하느냐 하면은, 예수님 재림하신 뒤로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믿는 그런 시대, 그 다음에 또 큰 시험의 때가 있고 큰 심판을 통해서 영원한 이루어지면은 지금 복음 시대는 무엇이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그랬는데, 이 복음 시대가 끝나면 예수님 재림하면은 다 끝장이고 그때 모든 믿는 자들은 다 부활해야 되는 것이지, 무슨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 우상에 경배하지 않은 자들은 살고 남어지는 살지 못하고 이렇게 여러번 부활, 그런 것이 있냐? 그런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위 신학계에서 주류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들은 왜 그런 말을 하느냐 하면은, 공평하게 구원을 받아야 되지 한 사람은 이렇게 구원받고 한 사람은 저렇게 구원받으면 되냐? 구원은 똑같은 것이다. 거기에다 토대를 두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주류에는 있지 안했지마는 초대교 때부터 면면히 내려온 것이 소위 천년설인데, 예수님 재림하시면 천년동안 복락의 왕국이 있다. 그 다음에 큰 시련이 있고 심판을 통해서 영원한 나라가 있다. 그렇게 믿어온 무리들이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주로 인제 종말론 이단은 어느 계통에서 많이 나타났느냐 하면은 천년왕국이 있다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런 이단들이 많이 나타났어요. 왜냐하면은 계시록을 많이 문자적으로 보니까 묘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세상 역사에 그런 비슷비슷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렇게 해가지고 몇월 몇일날 예수님 오신다고 날짜까지 맞추는 식으는 하는 것은 어떠튼 천년왕국이 있다는 계통에서 나오는 이론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년왕국이 있다는 것은 10여년 전만 해도 한국 교회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지금은 유럽에서 배운 분들이 와서 가르쳐 가지고 천년왕국은 없다. 하는 것이 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천년왕국이 있다 그런 말입니다. 그전에는 천년왕국이 없다는 데 아주 열열한 편이었는데 있다 그런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구원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준에 의해서 똑같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운명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에서 자기 백성과 함께 사시는 그 역사가 구원이다. 역사는 시간을 따라 진행하고 발전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누린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누린 것이 다르고, 모세가 하나님을 본 것과 우리가 하나님을 본 것이 달라요. 똑같은 두 당사자가 사랑한다는 의미에서는 똑같을련지 몰라도 약혼과 결혼은 달라요. 그래서 약혼한 사람이 결혼할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날자를 기다리는 것이어요. 둘이 마음으로만 사랑한다면은 약혼을 하든 결혼을 하든 무슨 식이 필요가 있습니까? 둘이 사랑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현대인들은 그런 철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성경을 풀어왔기 때문에 구원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그러니까 역사는 상관이 없다. 역사는 그림자고 그 본질은 아브라함의 구원이나 우리의 구원이나 똑같다. 이렇게 설명한 것이 이제까지 신앙고백서를 토대한 정통교회의 해석이어요. 그러나 구원 역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례 요한이 유명해도 우리와 비교하면은 저 아이에요. 아무리 모세가 탁월해도 우리와 비교하면은 휘장 밖에 있는 종이어요. 그러나 우리는 예수와 함께 하나님 품안에 있고 예수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았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것과 그들이 누리는 것이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역사에서 어떻게 대하시는가, 그런 문제에요. 우리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도 막내아들을 대하는 것이나 큰 아들을 대하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의 본질은 같다고 말할 수가 있겠지요. 틀리면 진짜 안되겠지요. 그러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어린 아이에게 표현한 것과 큰 아들에게 표현하는 것이 다르고, 똑같은 아들이어도 그가 어렸을 때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커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달라요. 그 다름이 그 아이가 아버지를 누리는 축복이고 영광이고 지혜에요. 그래서 아이들은 클라는 것이어요. 또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울려는 것이어요. 그런데 부자지간의 사랑 해 갖고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가는 빼버리고 부자지간의 사랑, 이렇게 철학화시켜버리면은 그런 것은 학교 교과서에서는 배울련지 몰라도 실제 삶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사시면서 그 함께 사는 생명의 관계를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에 속한 완전한 관계로 이끌어 가시는가, 그런 역사가 구원이지 이 역사를 떠난 저 위에 있는 영원한 하늘, 우리 운명이 가있는 곳, 그런 식으로 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살았던 하나님,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누리셨던 하나님, 그들이 광야를 방황했을 때와 가나안 땅에 정착을 해서 다윗이 성소를 짓고 영원히 안식을 누렸던 그런 나라, 그런 나라들이 다른 것처럼, 또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던 제자들, 그들도 예수님이 부활한 뒤로는 더 다른 관계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어요.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위로 가셨습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누리니까, 우리는 예수님 살아계셨을 때의 제자들보다 더 낫어요. 복음서도 실은 예수님 부활 후에 기록한 것이지 부활 전에 따라다니면서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어요. 왜냐하면 부활해서 그가 위로 가셔야만 위에 계신 약속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가 위로 가신 뒤로 그가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을 위에 속한 빛 가운데 풀어서 설명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베드로도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에는 도망쳤지마는 부활하신 뒤로는 목자장이 되신 주님을 따라서 그 교회를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이어요. 제자들까지 다르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지금 우리가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예수를 믿고 섬기는 것도 큰 하늘의 축복이지마는 그 하늘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우리가 누리는 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는 우리가 누리는 것과 다를 것이어요. 다 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한다는 의미로는 예수의 부활로부터 새로운 시대가 열렸지마는 구약 시대에도 발전이 있는 것처럼 신약 시대에도 그런 발전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서 통치하셔도 누가 복종합니까? 그러나 그 왕권을 땅에 구현하는 것은 그가 친히 권세로 통치하기 때문에 큰 복락의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는 이야기는 지극히 당연한 신학적인 이유가 있고, 또 성경 문맥에서도 맞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 문맥이 17장부터 연속된 이야기는 악이 계속해서 차례대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 악들은 줄줄히 망할 것이다. 하면서 악이 그 정체를 구현하는 바벨론 왕국, 그 바벨론 왕국을 조종하는 두 짐승들, 짐승들에게 권세를 주는 용, 이러면서 순차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19장까지는 두 짐승의 멸망을 말해 놓고 20장에 와서 용의 멸망만 짐승의 멸망에서 따로 띠어 가지고 이건 복음시대, 역사의 초기다고 옮겨 버리는 것은 계시록 문맥에도 맞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시간에는 총체적으로 본문을 구절구절 읽어가면서 총체적인 흐름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사가 천년왕구이 되면은 누구누가 부활할까? 여기가 총 관심이 있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오늘은 집중적으로 말씀을 드리고, 그 다음에 크고 휜 백보좌, 하나님의 보좌거든요. 이제 하나님나라 완성에 대해서 강론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시간에는 이제 하늘의 예루살렘이 내려오면은 교회가 완전한 신부의 모습으로 드러나요. 그리고 나서 계시록 서론이 결론에서 다시 한번 반복되거든요. 언약문서라서 다시 한번 반복되어요. 그래서 그렇게 하면은 계시록은 끝날 것입니다. 실은 계시록 20장에서 천년왕국을 주로 말씀하고 있지마는 강조점은 실은 천년왕국에 있는 것보다도, 망하고 망하리라는 것이 그 강조점이고, 왜 망하느냐? 그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를 위해서 망하는 것이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승리의 백성, 백성의 승리가 가운데 있어도 앞과 뒤는 망하리라는 이야기가 실은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0장1절에도 보면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가지고 용을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합니다. 그리고 못나오게 해요. 후에는 잠깐 놓이리라. 서론적인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이제 용이 잡혔을 때 왜 잡혔습니까? 천년 동안 왕국이 나타나고 그리고 용을 놓으면은 그것은 또 순식간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망해버릴 것이어요. 그리고 영원한 나라가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은 이 천년왕국에 부활한 자가 누구냐? 그런 이야기에요. 먼저 말씀드릴 것은 이런 설명을 하면 여러분이 좀 복잡하게 느낄련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실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 복잡한 것이 아니라 더 단순화됩니다. 그러니까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연속극도 연세가 드셔서 장면이 바꾸어지면 잘 몰라요. 그냥 똑 이야기를 해버려야 좋은데, 그런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알기 좋을 것인데, 좀 들어 보십시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성경은 소위 신학 책이 아니어요. 그 문맥에서 읽어야 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말할 때도 너 사람되어라. 했을 때 사람되라는 말을 도덕적인 말로 들어가지고 자식의 사람됨, 하고 풀면은 공자한테 다시 돌아가서 배워야 되겠지요. 그런데 그 배경을 보니까 숙제를 안하거든. 불러 놓고 너 언제 사람될래. 숙제좀 잘 하라는 말이어요. 밤 잠을 안자고 늦잠만 자요. 깨워놓고 너 언제 사람될래. 그러면 일찍 일어나라는 말이어요. 그문맥을 보고 읽으면 되는 것이지, 그 문맥을 빼버리고 총체적으로 모아가지고 읽어버리면 위험하다 그말입니다. 왜냐하면 늦게는 일어나도 숙제는 잘하는 아이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얘기한테 너 언제 사람될래 했더니. 숙제도 잘해아 된다. 숙제는 자기 전에 해버리거든. 안맞아버리지 안해요. 그러니까 항상 그 문맥을 갖고 읽어야 되어요.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이어요. 그런데 왜 그런 상식이 성경을 해석할 때는 안통해버렸는가? 그건 슬픈 일입니다. 그걸 철학적인 관점으로 읽었거든요. 하늘은 영원합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변하는 것은 낳고 죽고 낳고 죽고 하니까 참이 없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한 것만 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같이 있습니다. 역사는 변해도 그림자고 역사 배후에 있는 저 실체를 발견해야 됩니다. 역사는 많이 변해도 그 실체는 같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여기 저기 많은 말이 있어도 하나님은 불변하고, 구원도 불변하고, 도덕도 불변하고 이걸 뽑아내야 되어요. 그러니까 성경에 문맥을 상관이 없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성경은 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가 읽습니까? 전문가만 읽었어요. 성경 본문에 없는 이야기를 한다 그말입니다.
어저께 어떤 분한테 전화가 왔어요. 창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전에는 하나님의 영광했는데 창세기 1장을 읽어보니까 영광이라는 말도 안나오고 안식이란 말만 나오거든요. 제일 끝에 7일날 안식했거든요. 그러니까 창세기 문맥은 안식이네요. 그러제, 그런데 창세기를 읽어 놓고는 하나님의 영광, 하고 읽는 것이어요.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에 비친 자기 영광을 보고 기뻐하지 하나님이 자기 보다 등급 낮은 것을 보고 기뻐하면 되겠냐? 그 기쁨은 온전한 기쁨이 아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기가 자기를 만족해야 완전한 기쁨이 되어요. 그러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는 것은 그 영광의 빛을 보고 좋아한 것이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는 그런 말이 안나오지요. 그렇게 되어 있지 안해요.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영광은 이야기 하지 안해요. 하나님의 영광이냐 사람의 행복이냐, 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축복 주시옵소서. 하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영광에 종속된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때만 인간의 행복이 온다. 이렇게 한 것이어요.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창세기 1장을 읽으면은 거기는 하나님의 영광은 없고 짐승도 주고 공중의 새도 먹을 것을 주고 다 먹거리 주지요. 그리고 사람에게 주면서 이것 네 마음대로 다스려라. 거기를 보니가 가나안 땅처럼 축복이 가득찬 세계지 내 말 잘 드르면 복주고 안들으면 없고 그런 이야기는 없어요. 그러니가 창세기 1장을 읽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극히 당연한 것을 보아도 안읽어지는 것이어요. 그렇게 해가지고 성경의 출입구인 창세기 1장을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어요. 그것이 우리 교회에서만 있는 비참한 일입니다. 상식을 잃어버렸다 그 말이지요. 항상 그 문맥을 따라서 읽어야 되는 것이어요.
그러면은 계시록 20장을 보면은, 보니까 보좌들이 있는 데 거기 앉은 자들이 있다. 누구냐 하면은 목베임을 받은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에 목베임을 받은자, 그리고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표를 받지 않은자, 그런 자들이 살아서 천년동안 주님과 함께 왕노릇하고 괄호 해놓고 설명하기를 남어지는 못살더라. 그러니까 이 사람들만 산다 그 말이지요. 거기다 강조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어요. 이것은 여러분들 중생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까? 이건 엉도 당도 않는 일을 중생으로 이해를 한 것이어요. 여기서는 말하자면 훈장을 준 식이어요. 이런 자들은 먼저 살고 남어지는 나중에 살고, 하자면은 그런 이야기에요. 살지 못하더라. 했으니까. 나주에 지옥간다는 데다 강조를 둔 것이 아니라 먼저 산다는 데가 강조를 두고 나머지는 그 다음이다. 이쪽으로 돌리고 있어요. 그러면 이 해석을 조금 멈추고 다른데 하고 대략적으로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마태복음에도 종말론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다. 하니까 제자들이 언제 그런 일이 있을까요? 인제가 오실 때는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하니까, 쭉 설명한 것이 공관복음에 있지요. 그러면 공관복음에 종말론은 무엇이냐? 했을 때, 물론 마태복음은 계시록과 비슷한 색채는 있습니다마는 그때 인자가 구름타고 오시면은 부활한다는 말이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무슨 말이 있습니까?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택한 백성은 천사를 통해서 불러 모으리라. 인자는 번개가 동에서 번쩍 서에서 치는 것 같기 때문에 어디 광야에 있다 골방에 있다 비밀리에 오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가짜에게 속지 말아라. 그리고 흩어져 있는 모든 자기 백성을 모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 있지 부활한다는 말은 없지요. 왜냐하면은 마태복음은 이스라엘을 그 나라로 세운 것처럼 부활하신 뒤로 갈릴리 산에서 천하만민에게 가르쳐 지키게 해서 백성 삼아요. 그러니까 큰 배교가 있지마는 믿음을 지킨 자들, 인자가 강림하면 그런 택한 자들을 전부 불러 모을 것이어요. 그것이 하나님 나라 관점이어요. 그러니까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다 불러 모아서 그의 백성 삼을 것이다. 아무리 큰 배교가 있어도 날라지 말아라. 그런 나라 관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로마서도 비슷하지요. 로마서는 보면 언제 부활합니까?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은 그때까지 유대인들은 완악하지마는 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것이다. 그때는 죽은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마태복음하고 비슷하지요. 천하만민이 와서 믿음으로 순종하면은 그것이 그 나라 완성 아니냐? 그렇게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믿어 순종한다. 그가 오시면은 만민이 믿어 순종할 것이다. 계시록과 비슷하지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거기서는 부활이라는 말이 없어요. 물론 누가복음은 색채가 조금 다릅니다. 누가복음은 선교적인 복음이기 때문에 배교 문맥보다도 큰 고난이 있어도 너희들이 수고해라. 어느 누구도 손대지 못하는 큰 권능으로 너희를 붙들어서 너희를 통해서 증거케 하리라. 구약의 선지자를 붙든 것처럼 내가 너희를 붙들어 주리라. 이스라엘은 망할 것이다. 거기서는 이스라엘의 심판과 그리고 택한 백성의 구원을 이야기를 해요. 요한복음 같으면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어요.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것이고, 이런 자들이 선한 부활로 일어날 것이어요. 그를 믿으면 생명의 부활, 그를 믿지 않으면 사망의 부활이어요. 그를 믿는데 생명과 사망이 걸려있다. 빛과 어두움이다. 이런 것만 대비하지 언제 어떻게 부활할지 그런 이야기는 없어요. 단지 그를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 믿지 않는 자는 사망의 부활, 그가 빛이다. 그를 빛으면은 빛 가운데 있고 그를 믿지 않으면 어두움 가운데 있다. 그렇게만 말하면 요한복음이어요. 그때 무슨 만물이 변하느니 하는 이야기, 계시록에 보니까 21장에 넘어가면 만물이 변해버리지 안해요. 그런 이야기는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구절들만 갖고 봐라 성경은 전부 한번의 재림, 한 번의 부활만 말하지 무슨 두 번의 부활이 있고, 첫째 부활은 이긴자들이고 나중에 또 잔챙이들이 부활하고 그런 것이 있냐? 그런 것은 없다. 그런데 계시록은 계시록으로 읽어야 되지 다른데서 끌어오면 안됩니다. 계시록은 계시록 자체로 완결된 책이어야 되어요. 문맥이 다르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제일 여러분이 관심이 있는 구절이 어디냐 하면은, 데살로니카 4장에 보면은 죽은 자들이 먼저 앞선다. 공중에 천사장의 호령소리로 오면은 죽은자들이 부활해서 올라가서 공중에서 만나고,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변화돼서 공중에서 주를 만나고 세세토록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로 서로 위로해라. 그런 말이 있어요. 거기서는 보니까 부활과 변화가 있지요. 다른데서는 그런 말이 없지요. 계시록에 보니까 변화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없지요. 계시록에는 그런 이야기는 없어요. 그런데 데실로니가에서는 죽은자와 산자의 운명이 다른가? 아니다. 실은 죽은자가 앞서고 우리 살아남은 자들이 뒷따른다. 어떻게? 세세토록 주님과 함께 있다. 공중에서 오시면 만민을 심판하고 왕노릇한다는 이야기는 없고 오히려 우리가 끌어 올라가서 세세토록 내려 오지 안해요. 그랬을 때 그것은 공중에서 오신 분은 그 신적인 영광으로 오신 것이고, 끌어 올려서 공중에서 만나는 것은 그 영광에 참예하는 것이어요. 어떻게 만물이 변하는데 죽은자가 어떻게 이렇게 되는지, 뭐 만물이 변하느니 그런 이야기는 있도 없어요. 거기 주제는 죽은자와 산자의 운명이 다른가? 우리는 다 그리스도 안에 그 영광에 참예한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거기서는 왕적인 통치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하늘에 계신 주님의 영광에 참예한다. 그쪽만 강조하고 있어요. 고린도전서에도 소위 부활장인 15장에 있지요. 거기서는 재림하면은 15장15절 뒤에 본문을 보면은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은, 아담에 형상을 본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으리라. 그것이 부활이어요. 그런 부활 -까지 말하고 있지요. 다른 데서는 그런 이야기는 안해요. 그런데 고린도전서에서는 부활의 순서를 말합니다. 사망이 첫 사람 아담으로로 말미암았으니 부활도 사람인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도다. 그러면서 부활의 순서를 말합니다. 첫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요, 두 번째는 그가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요. 후에는 나중이니, 언제입니까? 언제입니까? 나라를 아들이 아버지께 돌려드릴 때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은 계시록 20장하고 맞아 들어가는 그런 구절입니다. 부활의 순서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무덤 문이 열렸지요. 그리고 예수님 부활하신 뒤로 그 무덤에 있는 의인들이 살아나와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증거했지요. 그러면 거기 부활은 어디에 있냐? 또 계시록에 보니가 3년 6개월 동안 증거하다가 올라가지요. 삼일 반 동안 죽었다가 올라가요. 그런 부활은 어디에 있느냐? 분명히 교린도전서에서는 첫 사람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요, 후에는 나중이니 이 세팀만 말했는데 그러면 이 남어지는 무엇이냐? 이런 저런 설명을 하면 복잡하니까 있다는 것만 알고 잊어버리십시오. 왜냐하면 설명을 많이 하면 더 어려워지니까요. 단지 그런 것이 있는 것만 알고 접어두십시오. 다 문맥 때문에 그런 것이 있는 것이어요. 이렇게 전부 다르지 안해요. 각각 그 문맥에서 강조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어요. 그런데 계시록의 강조는 무엇이냐 하면은 싸움이어요. 그것도 짐승과의 싸움입니다. 여자가 낳은 아이가 위로 올라가니까 용이 자기가 있을 처소가 그전에는 공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중의 권세잡은 자로 이 세상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있을 처소를 얻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자기 부하들을 불러냈는데 그것이 두 짐승이어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죽기까지 충성스럽게 증거함으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너희들도 충성스럽게 증거해라. 그러면 함께 왕노릇하리라. 그리스도의 승리와 교회의 승리, 즉 싸움이 주제입니다. 사움이 주제이면은 싸움 잘하는 사람이 일등이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 싸움이 주제이면은 말하자면 전쟁이 끝나기 전에도 가끔 훈장을 주어야 되겠지요. 그래야 싸움이 제대로 되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지금 계시록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의 천년왕국, 이것을 가지고 다른 성경하고 짜맞추어 가지고 아, 이것이 무엇이구나. 하면 맞출려고 하면 여기 저기 상충된 구절이 많이 나타나 버려요. 싸움이 주제에요. 먼저 훈장받을 자들이 누굽니까? 어린 양이 오십니다. 외시면은 그를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증거했지요.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시지요. 오시는 분은. 충성스럽게 증거하셨고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렇게 됐기 때문에 지금 로마 제국은 로마 황제가 신의 아들이다. 요새 일본도 다시 부흥시킬려고 야단이지 안해요. 그런 것 때문에 그때는 온 세계를 로마 제국이 통일하고 있었어요. 그 황제를 떠나서는 살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로마의 평화, 그것이 아우쿠스 때부터 말하자면 로마의 국가 정신처럼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있었을 때 바벨론 임금의 말을 안들으면 풀무불에 던져 죽게되었던 것처럼 로마 황제를 거절하고는, 그에게 경배하지 않고는 살 방법이 없는 것이어요. 이런 상황에서 교회를 위로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승리했으니 너도 승리해라. 그가 죽었는가,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영광을 주셨지 않느냐? 너도 죽을 것인가, 주님께서 오시면은 그의 왕권에 함께 참예해라. 그가 살았으니 너도 살 것이고, 그가 왕이니 너도 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지금 계시록에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산자는 어떻게 변하는가, 이야기가 계시록에는 없지요? 전부 죽었다가 부활한 이야기만 있지 변화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지 안해요. 이것을 가지고 이것 저것 풀면은 안된다는 이야기에요. 지금 그런 살마들은 예수의 주되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기 생명을 기꺼히 포기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목베임을 받았어요. 그런 사람들이 제단 아래 있어서 6장을 보면은 하나님, 언제까지 우리 피를 값지 않겠습니까? 하니가 순교자의 피가 차기까지 조금 기다려라. 그것이 하나님이 역사를 마무리 짓는 그런 방법이어요. 그리고 이기는 자들, 그랬는데 여기서는 두 구룹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죽었든지 혹시 살았드라도 사는 것이 죽은 것보다 못할만큼 고생스러운 사람들이어요. 계시록 13장을 보면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매매를 하지 못한다고 했지요. 매매를 못하면 그것은 죽은 목숨이어요. 그들이 굴로 도망하고 광야로 도망다녀서 생명은 부지할련지 몰라도 그들은 그 땅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다 자기 생명을 포기한 사람들이어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왕권을 구현할 것입니다. 그때는 두 짐승도 사로잡히고 용도 잡일 것입니다. 이 용은 옛 뱀입니다. 아담 때부터 온 인류를 지배했던 왕이어요. 왜 아담이 왕이 범죄했기 때문에. 그러나 마지막 왕인 예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용은 더 이상 왕적인 통치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잡히게 되고 천년동안 옥에 있게 될 것이어요. 그가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왕적인 통치를 했으면은 천년동안 옥살이는 가볍지요. 그런 것은 옥살이도 아니다. 그동안 왕노릇한 것에 비하면 천년 동안 별로 긴 기간이 아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이 잠깐 있는 기간이 아니라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복된 기간이고 상당 기간이 될 것이다. 사단은 그보다 더 긴 기간을 옥에 있어도 되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철학적으로만 생각하니까 지금의 현상 세계는 별볼일 없고 이것이 끝장나는 영원한 세계가 위로부터 와야 된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 철학적인 전제를 가지고 읽으니까 성경이 읽어지지 않는 것 뿐이어요. 그리고 다른데서 가지고 온 부활 개념을 가지고 계시록과 맞추어버리니까 아주 복잡한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한줄 아십니까? 예수님 오시기 전에 7년 환난이 있다. 오시면은 공중에서 나팔 불면은 데살로니카 전서 올라가는 자가 있고, 올라간다. 그때 유대인들은 계시록처럼 대 환난을 받지마는 교회는 싹 빠져 올라가고 없다. 만원 버스에 앉아있는 재미가 있지요? 싹 올라가고 없어요. 7년동안 죽어라고 고생하고 예수님 재림하면은 올라간 자들이 다시 내려온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부활하지 않고 그들은 말하자면 본래 왕국 백성이기 때문에 7년 동안 순교적인 각오로 이긴 사람들이 올라온다. 그때 이방인들은 어떻게 들어오느냐? 유대인들에게 전쟁 물자를 대주고 유대인의 편을 든 자들이 함께 들어온다고 맞추는 것이 세대론이어요. 그런데 계시록은 그렇게 맞추라는 이야기가 아니어요. 분명히 땅에서 왕국이 되는데 데살로니가서를 보니까 올라가고 안내려오거든요. 그러니까 7년 환난 끝에 예수님 공중 강림할 때 올라가고 지상 강림할 때 데리고 내려온다. 두 번 강림하지요. 그것이 날자 맞추는 사람들의 특징이어요. 공중에는 강림했는데 본게 안보인다 그말이지요. 별 말들이 많이 있지 안해요. 그 문맥을 빼버리고 그런 것을 짜맞추려니까 그렇게 된 것이어요. 성경은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어요. 여기서는 이겨라. 너희들이 나를 위해 생명을 포기하겠는가, 내가 이겼으니 내 왕권을 너희에게 주리라. 사탄이 그렇게 강해 보이느냐, 짐승이 강해보이느냐? 지혜를 받으라. 아무리 그것이 강하고 그리스도를 흉내내도 칼로 세운자는 칼로 망할 것이고 아무리 큰 권세를 받아도 그는 666 그것은 사람의 수가 아니냐? 너희들이 믿음을 끝가지 지켜라. 그러면은 이길 것이다. 내가 이겼으니 너희도 이긴다. 상급을 주리라. 지금 그렇게 격려하고 있는 것이 계시록입니다. 그가 오시면은 천년 동안 그들도 왕노릇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어지 죽은자들은 살지 못하더라. 그럽니다. 이 죽은자들이 누군지 우리들은 잘 몰라요. 그런데 분명히 죽은자들이 살지 못하더라. 그런 것을 보니까 앞으로 살기는 살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전부 이긴자들이거든요. 그러면 이 자들을 어떻게 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그러면 몇퍼센트 하면 이기는 것이어요. 그것 참 갑갑한 것이지요. 그것을 정해줄 사람이 없어. 그러면 이긴자들만 첫째 부활에 참석하면은 그러면 믿기는 믿었는데 대충 믿은 사람은 끝장이구나. 어떻게 끝장이냐 보면은, 21장7절을 보면은 이기는 자들은 이것들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 8절을 보면은 믿지 않은 자들은 두려워하는 자들은 안된다. 이것은 영원한 나라에요. 그러니까 천년왕국은 일등 공신에게 상급주는 날이면은 일등공신 아닌 사람들은 나중에 역사가 완성되어서 영원 세계라도 들어가면 좋겠는데 이 문장을 보면은 천년왕국으로부터 이긴자들, 그리고 영원한 왕국도 이긴자들, 인자들은 갈 자리가 없지 안해요. 그런데 계시록에서 이긴자들은 누구냐?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어느 누구도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더라. 이기더라.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하나님이 있는 자들은 악한 자가 손대지 못하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이기더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우리 신앙이 어떻게 될지 알겠지요. 그러니가 여기서는 첫째 부활은 일등공신, 둘째 부활은 이등공신 그런 이야기를 할려는 것이 아니라 싸움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어요. 만일에 일등공신 이등공신이면 다 이긴다는 말은 안맞지 안해요. 계시록 21장7절에 이긴자들도 여기서 받아야될 것이 아니어요. 20장에서. 만일에 20장에서 천년왕국에 참예하지 못한 자들은 어떻게 봐서는 진자들이 아니겠어요. 그러면 진자들은 21장의 영원한 상속을 못받아요. 거기도 이긴자들이니가. 그러니가 여기서 성도들은 다 이긴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어요. 인제 고린도전서 15장과 맞추면은, 첫째는 그리스도 강림할 때 그에게 붙은 자요 후에는 나중이니 그렇게 하면은 이것은 성도의 일반적인 부활로 말할 수가 있어요. 맞추자면은. 그런데 여기서 강조점은 이긴자들이어요. 그러면 지금 누가 이기느냐? 그런 말이어요. 예수의 이름을 시인하는 자들이어요. 예수가 주님이시다. 예수님만 왕이시다. 그분 안에서 평화가 있고 그분을 떠나서는 참된 평화가 없다. 그분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요 우리는 그분을 충성해야되겠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이긴자들이어요. 그들은 물론 전쟁에는 젔지요. 죽었으니가. 전쟁에 젔다는 말로는 사단이 이기지마는 그들이 신앙을 고백했다는 말로는 성도를 이길 자가 없지요.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은 내가 신사참배 같은 건이 일어나면은 지금 멋있게 이겨버릴 것인데, 나한테 하나님이 기회를 안주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 보수파는 누구냐? 처음에는 해롱 해롱 잠자는 듯 해도 전쟁이 나면은 용장이다. 미국 사람들 봐라. 처음에는 껌 딱딱 찝고 있어도 전쟁이 일어나면 그 사람들보다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어디 있냐? 우리 나라 사람은 낮에는 훤하다고 보초를 서고는 상관이 없을 때는 잠자버려요. 그러니가 우리 보수파는 지금은 이렇게 하고 있어도 일이 터지먼은 일어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큰 전쟁이나 날까, 핍박이 일어날까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인제 우리 저 어느 교회 같으면은 그 이북 특공대 만들지요. 굶기 작전, 강원도 같으면 굶는 것 연습해요. 선교사 가면 이북에서는 굶어야 된다고, 그렇게 하면 헌금 많이 들어와요. 굶으면은 실은 돈이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돈이 많이 들어와요. 왜냐하면 그런 프로그램은 신선하게 들리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목베임을 받고 이긴자들은 누구냐 하면은 그리스도 대신에 경배를 받는 자들에게 순종치 않은 자들이어요. 특별히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더라 함으로 그들의 작전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고 특별히 8장에 그런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이 어떻게 했습니까? 짐승을 탔는데 황후처럼 아름다운 단장을 하고 18장을 보면 모든 부가 바벨론에게 있어요. 그것 때문에 만국을 미혹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현대적인 정신은 구체적인 핍박은 없는 것 비슷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종교는 똑같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우리는 서로서로 좋게 살아야될 것이 아니냐? 왜 네가 하나님 섬기면서 나를 불편하게 하느냐? 우리 화목할려면은 해야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해가지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무너뜨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믿는 신자들이 가령 이렌드인지 거기는 제가 듣기로 소위 기독교 식으로 기업을 운영한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I.M.F 때도 안망해요. 신용이 있다 그런 말이지요. 그런데 보통 우리 나라 믿는 기업하는 사람들도 떼빚을 내갖고 장사해서 망해요. 그리고는 기도하면서 주여, 주시옵소서. 하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거기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말로만 기독교인이지 어디 가면은 전부 세상의 권세, 먹고 마심의 종, 어떻게 하면 내가 승진할 것인지, 어떻게 내가 아름답게 보일 것인지,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간음하는 여인 같다고 야고보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래도 자기가 창녀인 줄을 몰라요. 그가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보일려고 했는지, 사람 앞에 아름답게 보일려고 했는지 그걸 생각을 못하고 살아요. 그래 놓고도 이겼다고 생각해. 왜 우상숭배 안했으니까. 지금 현대적인 우상은 저급 우상이 아니어요. 만들어 놓고 절해라. 그정도 우상은 저급이고, 전두환이가 두둘겨 팬 것은 말하자면 저급 핍박이고 고급 핍박은 달리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른다 그말입니다. 하도 우리나라 교회가 경건주의라 세상은 악하고 예배당에서 기도한 것은 거룩한 것이다. 그런 것 때문에 내가 계시록 설교하기를 주저한 것입니다. 왜 그런 이중론은 안맞거든요. 다 주님의 통치 영역이어요. 참으로 주님께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다고 믿으시면은 그리고 먹고 마심이 그분에게 있다고 믿으시면은 우리는 그분을 순종해야 되어요. 만일에 그분 때문에 생명을 포기하면은 내가 주님을 시인했으니 주님도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너를 시인하리라. 만일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은 나도 너를 부인하리라. 그렇게 마태복음도 말씀하고 있지 안해요. 그런데 우리들은 말로는 예수 믿는데 행위로는 부정해 놓고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래 놓고도 믿는다고 그래요. 그 참 안타카운 일이어요. 핍박은 꼭 로마시대처럼 그렇게 칼의 권세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핍박은 다양한 방식으로 오는 것이어요. 오직 우리가 주님이 나를 사랑한대로 주님을 사랑하고 어떻게 하면 주님의 왕권을 내가 내 행동에서 고백해 낼 것인가? 만일에 그 일이 약한 자를 위해서 조종되면은 여러분은 위대한 사랑의 사도가 되지마는 여러분은 이해타산을 위해서 눈치를 보았으면 그것은 비겁하고 창녀같은 것이어요. 그렇게 살지 말라 그런 말입니다. 그런대 우리들은 이해타산에 밝아야 지혜로운 것이어요. 복음을 위해서는 그런 의미로 싸워야 됩니다. 자기 처자식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치 않으면은 내게 합당치 않다고 그러는데도 우리들은 영혼 구원을 빙자해서 싸워야될 것인지 안해야 될 것인지 모르고 그냥 화합을 해버려요. 그래 놓고도 사람 좋은 사람이어요. 그것 참 안타카운 일입니다. 우리들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잘 생각하셔야 됩니다. 계시록은 진자는 성도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기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길 것이어요.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면은 백성들은 다 전리품을 거두는 승리자들이어요. 그 중에 패배자는 없는 법이어요. 주님께서 승리했으니 교회도 승리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죽의 권세를 이기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믿는 자들을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권세있는 분이세요. 그렇게 살아야되어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충성을 요구합니다. 그가 세우신 왕국은 가나안 땅의 그런 왕조가 아닙니다. 가나안 땅의 왕조에서는 이스라엘이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이 너무 강력한 군대이기 때문에. 그래도 히스기아 같은 사람은 앗수루 대군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게 하심으로 그리고 우리를 그 나라와 제사장이 되게 하심으로 이제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하늘에 속한 승리로 그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 죽음의 세력을 잡았던 사단도 다시는 교회를 미혹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재림하시면은 이 왕권이 구현될 것입니다. 지금은 그 왕권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우리 믿는 신자들이 소망을 미래에 두고 있지마는 하나님은 힘이 없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은 약한자로서 자기 몸을 드려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했고 믿는 자들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약한 분이 아닙니다. 그는 강하신 분으로 살아나셔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는 우리의 죽을 육체가지라도 그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시킬 것이고 살게할 것이고 그가 오시면은 땅의 모든 권세들은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 오시도록까지 이 믿음으로 우리들의 모든 삶에 대해서 먹고 마심에 종이 되지 마십시다. 세상의 종이 되지 마십시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예쁘게 보시겠는가, 거기다 초점을 맞추어야 되지 어떻게 하면 내가 은과 금을 많이 취해서 내 영혼아 평안하고, 그리고 은과 금으로 교회 앞에서 활동을 해볼 것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심으로 그리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심으로 우리들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그는 우리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신 분입니다. 그가 승리했으니 교회도 승리합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주님의 사랑을 입은 백성들은 우리들은 하나님 품 안에 있고 예수와 함께 하나님 우편에 있고, 우리의 먹고 마시는 것은 그냥 먹고 뒤로 나가서 썩어지는 가나안 땅의 양식이 아니라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에 참예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주님과 한 몸 한 영으로 사는 것이어서 주의 백성을 무너뜨릴 어두움의 세력이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모든 삶에서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 권능을 이해하시고 여러분의 지체를 주님의 지체로 헌신하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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