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바벨론의 정체와 심판 III

찬미예수님 2026. 5. 8. 23:00

제목: 바벨론의 정체와 심판 III

성경: 요한계시록18:1-24

 

주 예수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권세의 나라를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에는 감추어졌으나 우리에게는 비추신바 되신 주 예수의 영광과 생명의 빛 가운데서 만사와 만물을 해석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권세있는 백성으로 부르셨는데도 우리들이 이 영광과 권세를 봉사하지 못하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일생에 매여서 종노롯하는 세상을 따라서 우리들이 믿음으로 깨어 살지 못했든 모든 어두움들을 용서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먼저 주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처럼 일양 미쁨이 없을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참으로 일양 미쁘시오니 이제도 아들의 피로 우리의 죄를 말갛게 씻기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봉사할 수 있도록 새롭게 하심을 믿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주의 백성을 피로 값주고 사셔서 주님의 생명의 상 앞에 앉도록 하셨사오니 오늘도 주 예수의 얼굴에 비취는 생명의 빛으로 주의 백성들을 비취셔서 이 생명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먹고 마시는 생명의 교제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우리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의 생명이 더욱 새로움을 얻을 수 있도록 크신 긍휼을 베풀어 쥐시오매 교회에서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에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한계시록 18장을 강론하겠습니다. 18장은 실은 그 동안 여러번 반복해서 강조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냥 읽어가면서 강론하겠습니다. 18장을 강론하기 전에 다시 한번 전체적인 구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전체적인 구조를 말씀드리는 것이 여러분의 이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의 이해의 토대를 더 분명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잘 깊이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계시록은 로마 황제 밑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해서 그런 핍박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켜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는 로마 제국은 아우쿠스도 즉 예수님 탄생시 호적을 하라고 명했던 황제, 그때부터 로마의 황제는 신의 아들로 높여지고 그리고 로마의 평화, 즉 로마의 제국 밑에서 세상의 생명과 평안이 보장되는 그런 큰 말로 통치를 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 나라를 세우셨는데, 이처럼 로마 황제를 신의 아들로 추앙하고 모든 민족에게 종교의 자유를 주면서도 로마 황제 숭배는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오직 예수만 우리의 왕이요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은 그 로마 황제 숭배를 거절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반란 죄처럼 취급을 받아서 요한 사도도 반모라는 돌섬으로 귀양을 갔고 교회는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제 그런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승리했으니 교회도 승리한다. 이 세상의 권세는 반드시 망한다. 그러니 놀라지 말아라. 그것이 곧 계시록이 말하는 주제에요. 그래서 계시록은 싸움이 주제입니다. 요즈음 지나가다가 문방구를 보면 애기들 장난감은 전부 싸움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계시록이 그렇게 싸움이 주제여서 의시의시하고 괴물도 묘한 괴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에서는 장차 예수님 언제 오시는가로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물론 다른 서신서도 그렇지마는, 데살로니카후서에서 나중에 악의 사람이 나타난다. 그렇게 해서 자기를 신적인 권세로 높이고 온 세상을 통치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많은 쫄짜들이 나타나도 아직은 아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이 쫄짜들과 싸울 때도 그렇게 힘이 부치면은 장차 악의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려고 그러냐? 힘내라. 거기서는 악의 사람이 인격적으로 그렇게 나타나 있어요. 그렇지만 계시록은 그런 것도 없고 대판 싸움만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계시록만 가지고 주님 언제 오시는가, 그것을 알아맞추려고 해보았자 실은 알아 맞추지도 못하고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계시록을 가지고 예수님 언제 오신다고 그런 것을 자꾸 알아맞추려고 그러는가? 했을 때, 실은 세대론자들이 그 영향을 미쳤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대론 신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세계는 일곱 번의 구분으로 되어 있는데 7천년이면 끝난다. 안식일이 7일 구조로 되어 있는 것처럼 세상도 그렇게 되어 있는데 이제 앞으로 천년왕국이 오면은 이스라엘은 다시 예루살렘에다가 신정국가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세계 대전이 일어난 때고 그런 대전을 통해서 지금 이스라엘 땅에다가 옛 다윗 왕국이 복귀될 것이다. 그렇게 주로 설명하는 것이 말하자면 세대론이어요. 그 사람들은 전부 이스라엘을 중심해서 성경을 풉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만 있지 교회는 기억자도 안나옵니다. 그러니까 신약 시대는 이방인들에게 잠깐 예수 믿도록 허락된 시대요 지나가는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밥먹여주는 그런 시대는 끝나고 때가 되면 이방인의 구원 시대는 문이 닫히고 버림받았던 아들들이 돌아와서 그렇게 국가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끝장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세대론 종말론의 기본적인 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중심해서 세계 정세를 분석함으로 언제 주님이 오시겠는가? 그것이 대단히 많이 연구한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세상 정세를 분석하면서 아, 저기서 적그리스도가 오지 않겠는가? 하고 알아맞추려고 하는 것이어요. 요새 신문을 보면은 독일하고 프랑스의 외무장관들이 우리가 유럽 국가연을 만들자. 지금처럼 경제 공동체로 느슨한 연합이 아니라 미국처럼 그런 국가적인 연합을 만들자. 뭐 둘이 합의 했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국가들은 반대하기도 하고 그런 것이 있지 않겠어요. 그러면 우리들이 생각할 때 독일하고 프랑스하고는 그렇게 죽자 살자 싸웠는데 뭘 또 하나한다고 그러는가 생각할련지 모르지마는 우리 식으로 하면은 경상도 전라도 지역감정 정도에요. 본래 로마라는 큰 국가에서 한 국가를 이루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 히틀러나 그런 사람들의 통치이념이고 나폴레옹의 이념이어요. 그래서 이전에 로마가 통치했던 그런 구조로 하나되게 해야 되겠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계사를 읽어보면 영국의 공주가 프랑스로 시집가고 복잡하지 안해요. 우리는 이해가 안갈만큼 영국 왕을 세우는 데 프랑스가 간섭하고, 우리는 도저히 이해가 안될 말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말하자면 로마 제국 통치 아래서 그들이 한 국가를 이루었고 그때 종교가 기독교지요.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항상 그런 것을 꿈꾼다 그런 이야기지요. 그런 그 중앙집권적인 힘의 연합, 그렇게 해서 말하자면 힘의 소모를 낭비하지 않고 집약해야 한다. 그런 것만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반발한 소위 비정부기관들, 이 정부 기관이나 중앙집권적인 세력은 인권을 살리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비정부 민간단체들이 활동하고 그런 중앙집권적인 세계통치기구를 반대하는 그런 운동들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안해요.

그런 것들을 자꾸 연구하니까 지금이 예수님이 오실 때가 아니냐? 율법이 지금 저렇게 경제 공동체로 이루어지고, 로마 교황은 세계 종교의 평화를 외치면서 돌아다니고 있고, 봐라 프랑스와 독일이 하나되면은 유럽은 작거든요. 실은 힘이 없어요. 프랑스와 독일이 그 세력이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점점 국가가 되면은 지금은 14개인지 15개인지 계속 불어나고 있지마는 나중에 열 나라로 통합되고 조직되면은 그것이 열 뿌리다고 해석을 하는 것이어요.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돌아가서 팔레스틴에 국가를 건설하고 있고 지금 제일로 문제가 되는 것이 동예루살렘 문제에요. 본래 이 팔레스틴에다가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허락했을 때 예루살렘은 특별한 지위로 허락해서 말하자면 어느 국가의 수도로 정하지를 말고 특별한 지위를 인정해서 여러 종교의 성지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는데, 6일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지금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해놓고 다른 나라 대사들은 우리 왜무부장관을 만날려면 예루살렘으로 오라고 그런다 그말입니다. 그런데다 팔레스틴 국가도 만들어주고 평화협상이 진행되는가 하면은 예루살렘은 안나두어요. 인제 이스라엘만이 다시 신정국가를 건설할려면은 옛 솔로몬 성전 자리, 지금은 이스람교회의 황금 돔 사원이 건설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따르면 거기 외에는 성전을 못세웁니다. 만일에 그것을 무너뜨리면은 이것은 요새도 기름값이 30달라를 넘어서니까 우리나라가 흔들리는 판에 그때는 세상이 세상이 너희들 때문에 못살겠다고 중동문제를 해결할려고 달려들면은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 아니냐? 하니까 그럴 듯 하지요. 이것이 세대론자들이 말하는 바에요. 그것을 가지고 자료들을 만이 모집해서 하니까 국제정보기관보다 더 무엇을 많이 연구해 가지고 설명들을 합니다. 그래서 옛날 실크로드, 옛날 동방과 서방을 이었던 무역로, 거기를 중국이 고속도로를 닦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느냐? 나중에 중동에서 한 몫을 챙길려고 군사 도로를 닦는 것이다. 그러면 이억의 보병을 동원한 나라는 중국 밖에 없다. 하면서 설명하니까 대단히 그럴 듯 하지요. 그런데다가 이번에 일본 수상도 일본은 신의 아들의 나라다. 신의 나라다 하니까 중국은 힘이 있으니까 옛날 사람들은 너희들 죽어 하지마는 우리나라는 그건 개인 이야기다. 왜냐하면 붙어 보았자 손해나거든요. 그러니까 살짝 피해가는 것입니다. 보니까 옛날에만 신사참배를 무식해서 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해서 하고 있지 안해요. 또 심지어 미국같은 나라도 국기에 대한 법을 정하고 이쪽으로 나가요. 그전에는 국기에 대한 논쟁을 하면은 그 민주당이 이여요. 인간의 존엄함이 무엇이기에 그 헌급데기 찢었다고 감옥에 가야. 그런 것은 자기 의사 표시지 그 사람이 무슨 교툥법규를 안지켰냐, 세금을 안냈냐? 하면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말을 잘 못해요. 그런데 요새는 점점 미국도 그런 것을 한다 그말입니다. 일본도 그 빨간 것이 일본 국기가 아닐 것이어요. 또 뭐 국가란 것도 동해물과 하는 것도 실은 국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국기 국가로 정해져 있어서 공립학교에서 그것을 안하면 벌받을 것이어요. 점점 그쪽으로 가니까 세대론들 이야기들이 대단히 흥미진지하지요. 지금 여기까지 하는 말도 여러분 잠 하나 오지 않고 정신이 번쩍 들지요. 우리고 우리 목사님도 성경만 안줄 알았더니 세계를 왔다갔다 하는구나. 그 생각이 들지요. 책방에 가면 전부 그런 이야기들이어요. 전부 동아일보 보는 것처럼 세계 정세가 보이고 미래의 시간표가 보인 것처럼 되어 있지 안해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세계 백성의 종말의 시간표다 그러면 대단히 그럴듯한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은 그것을 직접 지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요. 가령 성경이 우리에게 적용될 많은 상황이 일어난다고 해서 곧 그것이 성경 본문이 의미하는 바라고 꺼꿀로 해석해 들어가면 안됩니다. 저도 중동에 그런 일이 있을란가, 그런 생각을 가끔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충만한 수가 돌아와서 그들이 국가적으로 기독교 국가로 돌아와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그런 영광스러운 때가 왔을 때는 말하자면 그를 대항하는 세력들은 큰 힘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국가적인 강력할 기독교 국가는 안나타나거든요. 그렇게 가능하기는 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성경 본문이 그것을 직접 지시하는가, 성경 해석의 의미가 그런 것인가, 아니라 그말입니다. 그런 것 때문에 속지 말라 그말입니다. 그래도 세계 정세를 자꾸 말해주어야 정신이 들고 긴장하지 목사님처럼 예수만 믿으라고 그러면 무슨 긴장이 되겠느냐고 그러는데 문제는 여러분이 그런 분별력은 그런 세계정세를 연구하지 안해도 성경을 알게되면 여러 상황에서 그런 것을 알아요. 그리고 그런 미혹을 받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점을 조심하면 됩니다. 그러면은 왜 망해버린 로마 제국이 다시 일어날 것이고 옛 로마제국의 영토에 열 뿔, 즉 나라가 되는 강력한 국가연합이 일어나서 세계 정부를 구성하고 세계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특별히 이스라엘 중동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왜 로마가 다시 일어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느냐 하면, 성경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어요. 지금 계시록의 싸움은 그 주제적으로는 후일에 속히 될일, 여기서 후일은 실은 세상 끝날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마지막 일에 대해서 많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일을 설명하는 언어들은 어디서 갖다 쓰냐 하면은 구약에 있는 묵시적인 언어들을 씁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을 받았을 때 하늘과 땅을 대비시키면서 이런저런 상징법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위로하는 소위 문학형식이 있어요. 그런 것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역사적인 발전보다도 하늘과 땅을 대비시키면서 싸움을 주제로 해서 설명한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할 무렵 에스겔서, 그리고 그들이 망해버렸을 때 그 나라의 해방을 말하는 것은 다니엘서 그런 서신들에 그런 것들이 많이 나타나 있어요. 계시록에서 상징들은 다 그런 구약의 묵시적인 상징법들을 갖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더 앞으로 나가면은 출애굽의 상징들이 많다고 그랬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애굽을 심판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나라를 세운 것이 출애굽이 처음이기 때문에 애굽을 심판하는 싸움의 모델이 여호와의 전쟁의 모델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언어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종말은 지금도 로마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지마는 앞으로 이 핍박은 더 극대화될 것이어요. 그래도 원수는 망하고 하나님의 교회는 승리할 것이어요. 마치 구약 때 이스라엘이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지마는 바벨론은 망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돌아오게 해서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게 했던 것처럼 그것을 모델로 삼아서 세상 끝날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서를 보면은 언제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될 것인가 했을 때 70년 만에 해방이 되는데 그것으로만 해방이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큰 해방이 있는 것이다. 하면서 70 이레에 대한 것들을 보여준 것이 있는데, 거기 보면은 하나님께서 다니엘 선지자에게 보여주었을 때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 인자가 세우고, 그 나라를 대항하는 땅의 나라는 네 짐승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네 짐승이 그 당시 바벨론을 머리로 해서 바벨론, 메데 파사, 헬라, 로마 이런 제국의 순서로 되어 있고, 이 넷째 나라 로마 제국 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뜨인 돌을 보내서 큰 나라를 세울 것을 그렇게 설명하셨어요. 그러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은 이 넷째 나라, 철 이빨을 가진 묘한 짐승입니다. 다른 짐승은 사자, , 표범이면은 이것은 아주 묘하고 무시무시한 짐승인데 이 넷째 나라의 때에 하늘의 인자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가 영원할 것이다. 그렇게 설명을 했어요. 그러니까 여기 계시록에서도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승리, 교회의 승리, 영원한 나라 그런 것을 설명했을 때 넷째 나라, 철이빨의 나라인 인자가 설립된 것처럼 그 모델을 쓰고 있는데 그때가 지금 교회가 로마 정부 밑에서 핍박을 받고 있던 시대에요. 그러니까 인제 세대론자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때 로마 제국은 망했지마는 로마 제국의 정치체제가 천주교에서 그대로 보존이 되어 가지고 지금도 계속되지 않느냐?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회복될 것이다고 설명해버린 것이어요. 그러나 그것이 틀린 것은 구약이 자기고 있는 조망은 팔레스틴의 가나안 땅의 하나님 나라에요. 그것은 예수 오심에서 일단 건설된 것이어요. 그 이상의 나라는 몰라요. 그러니까 구약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나라, 네 번째 나라, 철이빨의 나라, 그때 인자의 나라를 세웠거든요. 그 나라를 모델로 세우고 있는 것이지 다음에 로마 제국이 그전 로마 제국에 대응할 것인가, 그런 보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말이어요. 구약을 모델로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일들은 어디다 설명하느냐 하면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구원의 모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언제 멸망합니까? 동방에서 군대가 대대로 오고 그리고 아마겟돈의 큰전쟁이 일어나고, 이렇게 되면은 이스라엘은 잡혀가고 망하게될 것이어요. 잡혀갈 때도 하나님이 남은자들의 이마에 인을 쳐서 그들은 해하지 못하게 했지요. 그리고 그들을 바벨론 풀무불 가운데 지키셨어요. 그러면 언제 이스라엘이 해방됩니까? 바벨론이 망하면 이스라엘이 해방되어요. 그러니까 지금 세상 제국의 멸망을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고 로마를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지 실은 바벨론은 아니지요. 그래도 세상 제국을 멸망시킨 머리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이 항상 머리고 그리고 모든 제국은 바벨론이 더 극대화되고 구현된 것이어서 실은 그런 제국들은 끼리끼리 싸워서 그전 나라를 다음 나라가 무너뜨리지마는 그 나라의 성격은 하나님을 대항한다는 의미로는 같은 것이어요. 그러니까 계시록의 전체 배경이 마지막 네 번째 나라 짐승 모델에다가 그리고 바벨론의 멸망과 자기 백성의 고난, 이런 모델을 갖고 설명하는 것이지 다시 로마제국이 유럽연합에서 일어난다는 보증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분명히 마지막 때 일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때의 일이면은 우리하고는 필요가 없지 않냐? 그런데 꼭 필요한 것은 성경이 설명한 방식은 우리 앞에 발등에 떨어진 불, 그런 식으로 우리 해결사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역사를 시대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구약 때는 팔레스틴의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가 마지막 종점이고 신약 시대 때는 예수의 부활로 시작해서 여인의 낳은 아들이 장차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아들이 하늘로 올라간 그때부터 시작해서 이 어린 양이 내려오는 것이 신약 시대의 특징이고 신약 시대는 그런 의미로 같아요.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예를 들었지요. 중학교 1학년이나 3학년이나 같은 것이고, 중학교 1학년 때는 학용품 사준 것만 아버지의 약속이 아니라 내가 너를 어떤 고등학교 보내주겠다. 그 약속이 그 외의 모든 일을 해석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 고등학교는 3학년 뒤에 갈 것인데 당장 학용품 사줄일이지 그 약속은 않고 그러고 있으면 아주 어리석은 아들이지요. 무엇할려고 중학교 보냈겠어요? 고등학교 보낼려고 그랬지. 무엇할려고 고등학교 보냈어요. 대학교 보낼려고 그랬지. 그렇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 마지막 것을 약속함으로 전체를 보장해 주고 있는데 우리들은 아이들 같아가지고 당장 내일 학교에 갈 돈이데, 그리고 학교 안가버린다고 하면은 이것은 무엇할려고 학교에 간줄을 모르는 아주 어리석은 얘기하고 똑같은데 요새 우리 교인들이 거의 그런다 그말이지요. 자기 일이 당장 해결되지 않으면 성경도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설명되어 있지를 안해요. 그러니까 바울은 자기를 예수의 부활과 재림의 때로 인식하고 사는 것이어요. 예수의 부활로 시작해서 재림으로 끝나는 동일한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니까 세상 마지막 사건, 마지막 종말의 큰 사건을 설명해도 말하자면 지금 살고 있는 시대의 성격이 같기 때문에 지금 활동하는 원수의 성격도 같고 지금 우리를 붙들고 있는 주님의 능력의 성격도 같기 때문에 교회의 위로가 분명하게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계시록을 갖고 미래의 일을 알아맞추려고 하면 안됩니다. 싸움이 주제입니다. 이 싸움은 주님 오시도록 계속될 것이어요. 그러나 그 싸움의 정점은 마지막 때에요. 마지막 때의 승리를 설명하므로 지금의 승리를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어요. 그런데 이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은, 이 구조만 바르게 파악하면은 우리가 곁길로 가지 않습니다. 구약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불러서 말씀하시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거든요. 그래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부르시는 그런 변환점들이 있어요. 어떻게? 내가 성령 안에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니. 뭐 성령 안에서 광야로 인도함을 받았는데, 하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하는 문학적인 특별한 출발점들이 있어요. 네 번의 그런 출발점들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안에 거니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성령 안에서 내 뒤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하면서 거기 성령 안에서 내가 계시를 보았다 하는 것이 처음에 나오고, 그 다음에 인제 두 사령부, 하나님의 사령부와 용의 사령부, 이 두 싸움의 진영을 말하면서 4장에부터 이제 성령 안에서 하늘 문이 열리니, 그러면서 거기 하늘의 보좌와 인을 떼는 인자의 모습들이 나와 있지요. 거기가 주로 본론인데,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이것이 순차적으로 나와요. 그것이 제일로 길어요. 우리가 16장까지 했을 때 실은 일곱 대접까지 맞첬어요. 그러면 17장을 보니까 성령 안에서 본디 말하자면 광야로 나를 데리고 갔는데 거기 말하자면 짐승을 탄 여자가 있더라. 하면서 새로운 설명이 시작되고 있지요. 이 시작점이 어디까지 계속되느냐 하면은 21장을 보면은 하늘의 에루살렘이 내려오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묘사된 데가 있어요. 거기에 또 새로운 시작이 있어요. 그러니까 17장부터 21장10절 인지 거기까지가 말하자면 한 단위가 되어 있는 것이어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일곱이 반복되어도 한 단위인 것처럼 여기 17-21장까지가 한 단위를 구성하고 있어요. 그런데 앞에 있는 일곱, 일곱은 지금 복잡한 것 같아도 마지막 일곱들을 세 번 반복하는 구조에요. 하나님은 일곱에서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시거든요. 그리고 완성하기 전에 이러이런 설명하는 말들이 들어있어요. 그런데 한 번 일곱이 있고는 일곱을 한번 더 틀리게 해서 확대해서 또 다른 일곱이 시작되고, 또 일곱이 반복되고, 또 마지막 일곱에서 반복되고 해서 일곱이 세 번 반복 강조가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아주 굉장한 강조법이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서로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곱이라는 그런 형식을 사용해서 세 번 마지막 번에 일곱들을 반복함으로 세상의 심판과 자기 백성의 구원을 반복하고 있고 마지막 일곱이 있기 전에는 왜 이런 심판과 구원이 와야되는지를 설명하는 설명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16장에 마지막 일곱 대접이 있었습니다. 여섯 대접에 아마겟돈의 큰 전쟁이 있고, 그리고 일곱 번째에 바벨론이 망했습니다. 바베론이 망하면은 이스라엘 백성은 고토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17장에서부터 큰 음녀 바벨론이 그 받는 심판을 보이리라 했는데 바벨론만 있는 것이 아니라 20장을 보니까 바벨론이 있지요. 특별히 17장에 바벨론의 심판이 있지요. 그 다음 19장에 보면은 어린 양이 오셔서 그 짐승들을 심판하는데,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심판하지요. 그리고 20장에 보면은 용을 천년동안 가두었다가 천년 후에 잠깐 내어주니까 또 발악을 하니까 용을 심판하지요. 바벨론 심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 짐승, 용 이렇게 나타나지 안해요. 그것이 한 단위를 이루고 있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단위를 설명하는 서론이 무엇이냐? 17장이어요. 실은 이 17장에서 21장까지를 총괄적으로 함께 다루고 있는데, 대표적이 되면은 바벨론, 그러면 바벨론만 한가 그러면 말은 바벨론인데 뒤에 보면은 그 여자가 탄 짐스이 있지 않느냐? 하면서 짐승에다가 총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런데 짐승은 안망해요. 묘하게 바벨론만 망해요. 그래서 바벨론 멸망을 말하고 바벨론을 강조하면서도 실은 이 바벨론을 선두로해서 세상 멸망과 하나님의 구원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17장에서 묘한 것은 여자가 탄 짐승이어요. 이 짐승은 13장에도 나와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 17장에도 나와 있는데 똑같이 일곱 머리, 열 뿔, 몸에는 참람한 이름들, 같아요. 그런데 12장에는 여자가 탔느니 그런 말이 없고, 17장에는 여자가 이 짐승을 타고 있지요. 그런데 이 두 짐승을 비교해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짐승이 누구냐? 하고 짐승의 실체를 탐구할려니까 성경을 못읽어버려요. 우리는 그 문맥에서 하나님이 짐승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느냐, 이것을 읽어야 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고 짐승이 어떻게 생겼을까, 누굴까 이것만 연구하니까 짐승이 검은 옷을 입었던 흰옷을 입었든 어디 한 가지 손톱만 보면은 짐승을 알게 되게 이렇게 연구한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성경을 몰라버리는 것이어요. 그런데 복음서도 그렇지마는 예수님 행적이 무엇이냐? 복음서끼리 맞추어 보면 안맞는 것이 많이 있지요? 왜냐하면 각 복음서에서 그 기사를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빼버리고 예수님을 비디오로 편성하면 어떻게 했겠냐? 그것을 연구할려니까 안맞아버려요.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그런 해석의 맹점을 벗어나야 되고, 그 문맥에서 이 짐승의 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것이 곧 짐승을 아는 것인데 우리는 그 문맥이 말하는 것을 빼버리고 이 짐승하고 저 짐승를 맞추어 보면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인데 뿔은 언제 났을까, 17장을 보니까 나중 한참 뒤에 뿔 이야기를 하지요. 그런데 13장은 처음부터 뿔이 있고 면류관이 있어요. 여기서는 그렇게 설명하지 안해요. 그러니까 서로 비교를 해보면서 어떤 것을 강조하는지, 강조점이 메시지거든요. 그걸 살펴보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13장의 짐승은 보니까 용이 바다와 땅에서 그 짐승을 불러내는데 특별히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묘하게 생겼지요.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는데 여기서 강조점은 큰 권세가 있더라. 용이 보좌를 그 짐승에게 주었더라. 어찌 권세가 큰지 그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다 죽더라. 이런 이야기지요. 그런 권세를 강조를 했습니다. 다른 것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권세를 강조하면서 지혜가 여기 있다. 아무리 권세가 강해도 믿는자들아 지혜를 가져라. 지혜를 가르쳤는데 아무리 권세가 강해도 이것은 칼의 권세다. 칼의 권세는 칼로 망한다.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아라. 그 다음 거짓 선지자가 땅에서 나왔는데 보니까 아주 굉장해요. 그리고 전부 이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사람을 괴롭게 하고 666 그 숫자를 알겠지요. 13장에 있는 것. 표를 받게 하고 야단해요. 그래도 지혜가 어디 있느냐? 사람의 수다. 우리 전라도 말로 사람이다. 그러니까 놀라지 말라. 그런 말이어요. 이들은 망한다. 나를 섬겨라. 그것이 13장에서 짐승을 설명했을 때 강조점이어요. 그것은 아무리 강해도 칼이요, 아무리 신의 성품처럼 다양해도 사람이다.놀라지 말아라. 이겨라. 그것이 13장에서 준 지혜였어요. 그런데 17장에서는 그 권세 쪽에다 강조를 두지 않고 이 짐승의 권세는 어떻게 펼쳐지는가, 순차적으로 나타나는가? 거기다 강조를 둔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머리가 일곱인데, 이 일곱은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일곱 왕이다. 다섯은 이미 망했다. 다섯이 망했으면 둘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이지요. 다섯은 망했다. 하나는 있다. 지금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또 하나가 오면은 잠깐 동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되겠지요. 다섯이 망했으니까 지금 있는 것도 망할 것이고, 앞으로 오는 것도 잠깐 권세를 행하겠지마는 망할 것이어요. 그런데 이것들은 어디서 전부 권세를 얻느냐? 실은 짐승으로부터 권세를 얻는데 이 짐승은 전에는 있었지마는 지금 없다. 그러나 장차 올 것이다. 여기다 강조를 두고 있어요. 하나님의 교회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그분으로부터 권세를 받는 것처럼 말하자면 세상의 권세도 거기서부터 권세를 받는 것인데 그리스도를 모방해서 전에는 있었다. 지금은 없다. 장차 올 자다. 이렇게 설명을 해요. 그러면 여러분이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은 없으면은 로마 교회가 핍박을 받는 것은 거짓말 아니어요. 그러니까 없다는 말은 이 문맥을 따라 해석을 해야되지 전혀 핍박이 없다는 말이 아니어요. 그 전에는 이스라엘을 빼놓고는 온 세계가 어두움의 세계 아래 있었어요.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니까 천하만민이 들어와요. 그러나 장차 만국을 미혹할 권세로 사탄이 발작하거든요. 그런 통치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를 모방해서 설명하는 것이어요. 지금은 짐승이 없다. 없으면은 여자가 짐승을 탈 일도 없고 교회가 무슨 핍박을 받겠어요. 그런데 짐승을 설명하기를 전에는 있었다. 지금은 없다. 장차 올 자다. 이 짐승에게 일곱 머리가 달렸는데 다섯은 이미 망해버렸다. 하나는 있다. 앞으로 또 한 머리가 올 것인데 그것도 조금 권세를 행하겠지마는 곧 망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지혜가 어디 있습니까?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망한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망해버리고 일곱 번째 망해버리고 끝나면 좋은데 또 하나 여덟 번째가 나와요. 이 여덟 번째가 장차 나타날 짐승이어요. 여덟 번째가 나타나는데 이것도 실은 별볼일 없다. 여덟도 일곱에 속한 자이니까 같다. 일곱이 마지막 권세를 조금 얻고 망한 것처럼 마지막 여덟 번째가 와도 일곱에 속한 자여서 별볼일 없다 그말이지요. 그런데도 이 마지막 여덟 번째는 무저갱으로부터 나온 짐승이어요. 지금은 없지마는 마지막 무저갱에서 나올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그리고 그때 열 뿔이, 이것도 열 왕이지요. 짐승에게 권세를 줄 것이어요. 그 권세가 극대화될 것이어요. 그런데 이 짐승이 어린 양으로부터 싸우지마는 어린 양이 승리하고 진실히 그리스도를 믿는자들도 승리할 것이다. 놀라지를 말아라. 그러면서 다시 바벨론의 멸망을 말하기를 이 짐승과 열 뿔이 여자를 옷을 벗기고 살을 먹어버린다. 이 여자는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대 도시국가라고 설명을 해요. 실제적으로 세상 국가는 바벨론이 강력했지마는 메사 파사가 바벨론을 그 흔적도 없이 쓸어버리고 건설했고, 그리고 폐르샤를 헬라의 알렉사더 대왕이 쓸어버렸지요. 그리고 헬라는 로마가 쓸어버렸어요. 그러니까 보니까 점점 짐승의 권세로 강해지면서 이전의 권세는 전부 사라져요. 그리고 마지막에 어린 양과 씨우는 말하자면은 용의 나라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 짐승이 장차 무저갱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20장까지 보면은 무저갱에서 나온 짐승이 없어요.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나온 짐승은 누구요? 용이지요. 용을 무저갱에 천년동안 가두고 용을 풀어주거든요. 짐승은 나온다는 것이 없어요. 짐승은 실은 19장에서 잡혀서 불못에 던져져요. 마지막 20장은 용이어요. 그런데 서론적으로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17장에서는 장차 여덟 번째 나온 왕은 무저갱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 안해요. 그러면은 성경이 서로 안맞아버리지 안해요. 실은 여덟 번째 나온 짐승은 20장에서는 용으로 직접 묘사합니다. 일곱에다 맞추면은 일곱이 끝나면은 마지막은 영원한 나라지요. 하나님 나라. 그런 것처럼 일곱의 머리가 끝나면 마지막 용의 나라가 구현되어요. 그렇게 했을 때 그 용이 심판을 받으므로 영원한 나라가 온다. 그렇게 해서 17장에서 자, 이제까지 많은 군세들의 흥망성쇄가 오지마는 이미 다섯이 망해버린 것처럼 다섯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망해버린 것처럼 지금 있는 것도 망하고, 후에 올 것도 조금 권세를 얻고 이것도 망할 것이고, 그다음 이 모든 것을 극대화시키는 무저갱에서 나온 짐승이 나올 것이다. 이제까지 일곱 머리도 이 짐승으로부터 권세를 받았는데 이 짐승이 무저갱에서 나올 것이다. 그가 어린 양과 싸울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17장이하에는 하나님의 대적들에 대한 총체적인 출현이어요. 바벨론, 주 짐승인 용, 그리고 이 바벨론을 필두로 해서 이 악의 권세를 어떻게 총체로 심판하는가, 하는 심판이 대주제를 이루도록 되어 있어요. 실은 천년왕국이 주제가 아니라 심판이 대주제에요.

그리고 나서 이제 18장에서 여기 바벨론 심판을 다시 설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아시겠지요? 17장에서 지혜는 무엇입니까? 계속 권세들이 나타나겠지마는 이 권세들은 이미 망한 국가가 있는 것처럼 지금 있는 것도 망할 것이고 뒤에 오는 것도 망할 것이다. 앞으로 지옥으로부터 아주 사악한 권세가 나타나겠지마는 이것도 어린 양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지금보다 더 큰 권세가 나타납니다. 그래도 날라지 말아라. 이미 다섯이 망한 것처럼 앞으로도 망할 것이다. 이것이 지금 17장에서 교회에 주는 지혜에요. 지혜가 여기 있으니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고 일곱 왕인데 다섯은 망해버린 것이 아니냐? 지금 하나가 있다. 앞으로 하나가 오지마는 아직은 안왔다. 그가 오면은 잠깐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것도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덟 번째가 올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사탄의 왕국이지요.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린 양에 의해서 파멸될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진실되게 믿어서 이겨라. 그리고 세상 나라들은 끼리끼리 싸워서 흥망성쇄가 계속되고 있지 않느냐? 그것은 전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요. 그렇게 설명하고 나서, 그러면 바벨론은 어떻게 망할 것이며 그리고 짐승들은 어떻게 망할 것이며 용은 어떻게 망할 것인가? 마지막 대적들의 총 출현과 멸망을 20장까지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방은 없지마는 장차 나올 것, 그것을 천년왕국에다가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용을 가둔 것은 지금 없고 용을 내놓으며은 나중에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용을 가둔 시방은 없으니까 시방이 곧 천년왕국이 아니냐? 이렇게 20장과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20장은 용을 가두는 시대를 말하고 있지 짐승에 대해서 직접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요. 그러니까 20장을 시방은 없으나 그것은 용을 가둔 시대에 곧 지금 교회 시대, 그런 식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18장입니다. 18장은 단순합니다. 여기 구조만 파악하시면은 그 다음은 어렵지는 않습니다. 18장을 보면은 하늘에 힘있는 천사가 나타나는데 바벨론의 멸망을 알려주고 있지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어여 바벨론의 무너짐을 알리는 천사가 나타났는데 힘있는 천사여요. 이 천사는 얼굴이 해처럼 환하게 빛나니까 온 땅이 밝아져요. 바벨론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가 오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이 오시면은 세상이 빛으로 밝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이 마지막 심판을 알리는 천사의 모습도 환한 모습으로 극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 바벨론은 망해야 되는가? 하나님께서 갑절의 진노의 포도주를 부어준다고 했을 때, 갑절 하는 것은 구약 때 상속자의 몫입니다. 배 하는 것은 장자의 몫이어요. 그렇게 주는데, 이 바벨론의 죄가 무엇이냐 하면은, 그들은 3절에서는 음행했다. 사치와 음행, 거기다 설명하고 있고, 모든 가증한 것들의 처소라. 그렇게 2,3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4절이하에서는 자기 백성의 구원을 말하면서 내 백성아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거기까지가 실은 18장의 서론적인 한 단위에요. 바벨론은 이렇게 망하지마는 너희들은 그 멸망에 참예하지 말고 구원을 받으라. 하고 나서, 그러면 왜 바벨론은 그렇게 망해야 되는가, 그것을 더 확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그 다음 문장들이어요. 그러니까 순차적으로 해갖고는 잘 안맞겠지요. 그래서 자기 백성의 구원은 제일 뒤에다가 주보에는 넣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은 다시 한번 바벨론의 죄를 7절이하에서 설명하는데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광스럽게 했는가? 그 영광은 사치함으로 영광스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얼만큰 사치하고 얼만큼 영광스러운지 나는 절대로 재앙이 없을 것이다. 나는 여자 황제요 나는 과부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검은 옷을 입고 울어야 되겠는가. 나는 여자 황제다. 그러면서 나는 절대로 애통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그렇게 자만했습니다. 그리고 얼만큼 그 영광이 부한지 모든 사람들도 그것 때문에 함께 취했습니다. 함께 사치하고 그 영광에 취하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렇게 설명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벨론이 망했을 때는 바벨론으로부터 모든 부를 받았던 땅의 왕들, 그리고 장사꾼들, 그리고 배를 부리는 모든 사람들이 크게 탄식합니다. ? 바벨론이 한 순간에 망해버렸기 때문에. 왜 한 순간에 망해버립니까. 바벨론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거든요. 그러니까 바벨론이 그 큰 부를 쌓아 놓고 나처럼 부자가 어디 있느냐? 이것은 느브갓네살이 그렇게 말했던 것이어요. 이 큰 도성은 내가 세웠도다. 내 손에서 자기 백성을 지키는 신이 어디 있느냐? 그리고 이스라엘의 신전을 무너뜨리고 그 신전에 있는 모든 보화를 자기 궁전에 두었어요. 내가 세운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그의 정신을 빼앗아서 7년 동안 미친 사람이 되게 해버렸습니다. 그래 이슬에 젖어 7년 동안 소처럼 풀을 뜯었습니다. 그리고 7년 뒤에 정신이 들었어요. 아하, 이 세상 나라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구나. 그리고 겸손해지니까 하나님이 다시 그를 회복시켜서 왕위에 나가도록 했어요. 거기 모델이 있지요. 그런데 바벨론을 그런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부는 내가 세운 것이 아니냐? 나를 떠나서 너희들이 할 방법이 있느냐? 그러니까 모든 나라는 바벨론의 부에다가 목을 매고 거기서 장사해서 밥을 먹고 사는 것이어요. 그런데 구약에서 보면 이것은 바벨론보다도 시돈항을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거기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해가지고 모든 부를 극대화하고 어찌 그 성이 견고한지, 섬에다가 성을 쌓았거든요. 알렉산더도 정복하지 못할만큼 굉장히 견고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모델들을 지금 섞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바벨론의 정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는데 그들은 이 부를 가지고 마치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노래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피를 흘린대로 갑절이나 갚아주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성도들은 기뻐해라. 너희들의 피를 신원할 마지막 날이 왔으니까. 바벨론은 무너진다. 그렇게 18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벨론이 망할 것이기 때문에 바벨론을 부려워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핍박을 받지마는 그들은 망할 것이고 자기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바벨론에 머무르지 말고 빨리 도망쳐야 되겠지요. 어떻게? 예루살렘을 향해서. 예레미야 50장에서부터 있는 내용들이 내 백성아 바벨론에 머물러 있지 말고 빨리 도망쳐라. 그들의 죄에 참예하지를 말아라. 그들은 배나 심판을 받을 것이니까 너희들은 빨리 도망쳐라. 그런 구절들을 여기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돌아가도록 이스라엘을 불렀던 그런 언어들을 가지고 너희들이 바벨론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벗어나라. 너희들을 심판한 바벨론은 망하겠지마는 너희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아무리 바벨론이 나는 황제라고 해도 그는 사람이요 일식간에 망할 것이다. 그렇게 설명하면서 바벨론이 장사했던 아름다운 모든 품목들을 전부 설명하는데 그 품목들이 제일 뒤에 보면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 그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도 전부 상품 가치로 설명한 것이지요. 실재로 그런 바벨론은 망했습니다. 지금도 유적하면은 바벨의 유적이어요. 그렇게 고대에 강력한 그런 국가입니다. 그 나라가 세상 나라의 머리 국가에요. 하나님의 나라가 거기에 망했습니다. 마치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심판했던 것처럼 지금도 로마 제국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지마는 바벨론이 망해버렸던 것처럼 로마 정권도 망한다. 로마가 망하면 다음에 다른 국가가 올 것이다. 그도 잠깐 힘을 발휘하지만 망할 것이다. 그보다 더 이 모든 것들에 힘을 주었던 무저갱으로부터 짐승이 나올 것이다. 그도 망할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놀라지 말고 그 죄에 참예하지 말아라. 그것이 여기서 권면하는 바에요. 그리고 인제 그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문제이겠지요. 우리는 그런 핍박이 없으니까. 그런 문제를 여러번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핍박으로 오는 것만 핍박이 아니라 광명한 천사로 오는 것도 더 고약하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지금 세계 전쟁은 총은 안들어도 정보전쟁이라서 더 긴장하지 안해요.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당장 매를 안맞으면 아 평안하다고 웃고 앉아 있어요. 아직 예수님께 모릎 꿇는 것을 보지 못하는데도. 그런데도 우리들은 나만 핍박을 안받으면 아, 평안하다고 웃고 있으니까 세상이 교회를 공격할 필요가 없어요. 교회가 은과 금은 없어도 내게 있는 것으로, 오직 부활하신 예수만 생명의 주님이시다. 그분을 섬기는 것만 영원한 생명이다. 그렇게 증거하면은 세상은 분노해요. 세상이 죄있다고 정죄하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그렇게 설명하지 안해요. ? 현대인들이 내가 믿는 예수만 진짜고 남어지는 가짜라고 예수 믿으라고 하면 대판 싸우고 대화가 안되어버리거든. 그러니까 그런 말을 못하고 교회가 아름답게 치장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만큼 구제를 많이 하냐? 얼만큼 남북 사업도 많이 하고, 얼만큼 힘이 있냐, 민주화를 위해서 일도 많이 하고, 그런 식으로 무장을 해가지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은 뒷방이고 은과 금을 가지고 화려한 잔을 들고 자랑해요. 세상이 자랑하는 것과 같은 것을 가지고 교회가 자랑해요. 세상은 하나님이 없어서 가난하고 우리는 십일조 내고 주일 지키면 부자되요.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 누구누구 부자된 것 봐라. 그렇게 해서 영혼들을 노략질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우리 보수파는 십일조가 아니라고 하면 그만 이단이라고 말해요. 성경 해석을 어떻게 할 줄을 몰라요. 그러니까 세상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까지라도 전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만일에 바벨론에 머물러 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소망 중에 간구하지 않고 거기 있으면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어요. 지금도 세상 정부는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상 정부가 계속 교체되어도 주님 오셔서 그 영광스러운 나라를 건설하기까지는 세상은 한번도 주님을 시인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왕이지 예수께서 왕이 아닙니다. 그들이 세상을 먹여살리지 예수 믿어서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지금은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기능적으로 상품화시켜서 수치로 계산합니다. 이제는 기계사 인간보다 훨씬 났습니다. 처음에는 인간이 기계를 만들었지마는 이제는 기계가 생산력이 월등하거든요. 사람은 그 생산의 가치로 계산하지 이제는 인격적으로 계산하지를 않습니다. 그건 어느 나라나 똑같은 상황이어요. 그것이 점점 극대화되고 있지요. 더구나 이제는 인터넷 시대라고 해가지고 세계의 부가 재조정되니까 정신들이 없어요. 그리고 부인들도 텔레비를 보아도 증시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실재적인 생산이 있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어요. 돈이 있고 없고만 문제에요. 그리고 신자들도 그 창고가 커야 영혼이 평안하지 만일에 사업이 안되어버리면 예수 믿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십일조 내면 무슨 소용이 있고, 한국 교회가 자랑하는 것은 십일조 뿐이어요. 그리고 한국 교회가 자랑하는 것은 재정이고 수 뿐이어요. 그리고 어떻게 믿음을 지키는지,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가난한 자들이 위로를 받는지, 그런 것은 하나님의 선물의 표가 아니어요. 그 안타카운 일이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시대 정신은 먹고 마심이 자유로워요. 지금처럼 인간이 부요하고 지금처럼 인간의 기능이 뛰어난 때가 이전에는 없었어요.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더욱 하나님을 떠납니다. 이제는 20세기 후반, 지금 우리들이 가령 말로는 유교신자도 제사한 사람이 없지요. 미국 같으면 말로는 기독교인인데 예수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우리 나라도 점점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그래도 감사하기는 동양권에서 교회가 많은 곳은 우리 나라 뿐이거든요. 그리고 우리 나라 사람이 미국에 가면 교회부터 세우고 교회부터 찾아가요. 그러니까 묘하게 복된 나라에요. 그런데 우리 나라처럼 법도 없고 먹고 마심에 취해 있는 나라는 없어요. 큰 일 중에 큰일입니다. 그런 시대를 여러분이 살고 있어요. 우리가 평안할 때도 먹고 마심이 풍부해지면은 게울러집니다. 더구나 시대 상황이 먹고 마심으로부터 자유한 시대에요. 이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부활하신 예수만 주님이신가, 그분을 섬겨야만 복을 받는가? 그 복이 무엇이요, 주님의 고난에 참예한 복이지. 내가 승리했으니 너희들도 승리할 것이다. 절대로 바벨론의 것을 부려워하고 동참하지 말아라. 그리고 내 백성아 거기서 빠져나와라. 그렇게 이 본문을 설명하고 있어요. 진실히 예수를 믿는 자가 있습니다. 이기는 것은 그냥 환난 때 한번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남편을 위해서 진실히 자기 정조를 지킨 여자가 모든 경우에 이그는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를 우리의 주님으로 시인한 사람만 모든 경우에 먹고 마시는 모든 삶을 주 예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어느 한 순간만 주님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는 대충 살다가 어느 남자가 부르니까 아이고 나 유부녀에요. 그렇게 말한다고 정조지키는 것이 아니고, 진정 남편이 기뻐하는 여자는 진실한 여자, 어린 양이 끄는대로 가는 신부, 오직 주님만을 시인하고 예수께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죽음을 이겼든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이 걸어갔던 생명과 능력의 길을 믿음으로 시인하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이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것은 지금도 이기고 앞으로도 이기는 것이어요. 큰 일이 벌어졌을 때 한 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진실히 믿는 자가 지금도 이기는 것이어요. 여러분은 먹고 마심을 생의 원리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께서 이것은 내 찢긴 몸이니 먹으라. 이것은 내 피니 마시라. 주님의 살과 피를 우리의 양식으로 주셔서 우리를 한 몸 한 영으로 살게 하시고 우리로 주님의 몸과 지체로 삼으셔서 주님 오시도록까지 그영광과 권세를 봉사할 수 있도록 죽음의 권세를 대항해서 승리의 찬양을 부를 수 있도록 그런 승리의 군병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먹고 마심에 취해있는 세대 가운데서 우리들이 믿음으로 깨어서 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해서 우리가 은과 금은 없을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취함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으로 영광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믿음으로 승리하는 증거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었고 공주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서 이 세상 풍속을 좇아 살고 우리 마음이 원하는 대로 죄아래 살아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살았던 저희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신 영원하신 사랑을 이제 나타내셔서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사 만왕의 왕이 되어서 권세있는 나라를 세우신 주 예수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는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뵙게 하며 주님과 함께 하늘에 권세있는 나라를 경영할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죽음이 왕처럼 활동하고 썩어짐이 왕처럼 활동하지마는 주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참으로 승리의 찬가를 부르고 세상 사람들은 먹고 마심에 매여서 죽을까 두려워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지마는 이제는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신 주 예수를 따라 이제는 우리의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시인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이 생명의 복으로 주의 백성들을 더욱 새롭게 하시려고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 예수,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해서 구주가 되신 주 예수의 날에 피로 값주고 사신 주의 백성들을 주님의 상으로 부르시고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피와 주님의 살을 먹고 마시는 교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더욱 새로움을 얻을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으로 이제 우리가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오니 먹고 마시는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의 몸과 주님의 지체로서 날마다 세상을 이기고 주님의 사랑으로 교회와 세상을 봉사할 수 있는 능력있는 봉사를 감당하는 귀한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주의 백성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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