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을 떼심 Ⅲ
성경: 요한계시록6-7장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복주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나님 품안에 거하게 하시며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셔서 권세있는 하나님 나라를 봉사하는 귀한 백성이 되게 하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피로 값주고 사셔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주님 오시도록까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권세를 허락하셨사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우리의 믿음을 더욱 새롭게 하셔서 오늘도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생명의 교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 더욱 새로움을 얻게 하시고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생명의 교제 안에서 우리의 몸을 주님의 몸과 주님의 지체로 드릴 수 있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를 더욱 새롭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한 계시록 7장을 보십니다. 7장9-17절까지를 읽고 강론하겠습니다. 여섯 번째 인이 있고 그 다음에 일곱 번째 인은 8장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 사이에 인은 7장에서는 여섯 번째 인과 일곱 번째 인 그 사이에 있는 그 가사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도 보통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섯 번째 인이 예수님 재림인데 재림 후에 연속해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적은 순서로 보는 분들이 있고, 그것이 아니라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인 사이에 있는 이 7장은 소위 중간계시, 끼워준 계신인데, 그것은 잠시 쉬면서 왜 이 하나님의 심판이 있어야 되는지, 그 목표를 지시하신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취하고 있는 견해는 소위 그 중간계시다 하는 개념입니다. 내용을 보았을 때도 그렇게 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왜 여섯 번째 인이 재림인데 이어서 재림 후에 사건을 기록된다고 그런 해석이 가능한가? 하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주님께서 인을 떼시고 역사를 경영하시는 목표가 말하자면 7장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마 그런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게서 영광 중에 강림하신 것은 그의 교회 완성을 위해서 그의 교회 구원을 위해서 오는 것인데, 여기 7장에는 인맞은 이스라엘의 십사만 사천, 또 허다한 많은 구원받은 무리들, 이런 무리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양쪽 의견이 나올 것입니다. 어떠튼 여섯 째 인이 떼어지고도 그냥 만물의 끝이 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일곱 나팔, 일곱 대접해서 그 사실을 확대해서 반복해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왜 마지막 심판이 지체되는지, 하는 이유도 이 중간 계시가 여전히 설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하나님의 역사가 지체되는 이유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은 결국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인제 성경을 해석할 때 아주 어려운 문제가 특별히 요한계시록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 또는 아마겟돈 전쟁, 유브라데강 이야기, 곡과 마곡의 심판들, 성전을 심판하라. 두 증인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이스라엘에 직접적인 이야기는 십사만 사천 인맞은 자들만 나타나지 만은 내용들을 보았을 때는 그런 것이 많이 나타나 있다 그말입니다. 거룩한 성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했을 때 그 거룩한 성도 구약 표상은 항상 예루살ㄹ렘이어요. 그런것 때문에 이런 것이 직접적인 이스라엘을 지시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에 대한 표상을 세워서 신약 교회를 지시하고 있는 것인지, 그런데 해석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물론 특별한 해석이 있기 전에는 일단은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 이스라엘로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신학적인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그 해석이 상당히 어려운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일단 십사만 사천, 인맞은 이스라엘, 이 사람들을 문자적인 이스라엘로 해석을 했습니다마는 앞으로 더 진행을 해보아야 규명이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도록 해석해야 될 부분이 가끔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조화해야 될 것인지가 어렵습니다.
오늘은 7장9-17절까지를 강론하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여기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이것은 구약 언어 개념으로 온 세상을 지시하는 그런 말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온 세상에 퍼쳤을 때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대로 흩어졌다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에 있는 8절까지를 십사만 사천을 교회를 이스라엘이란 표현법을 사용했다면은 여기 각 나라에는 모든 것이 포함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소위 이스라엘과 비교되는 이방인이 될 것입니다. 어떠튼 이것은 모든 세상을 표현하는 말이 됩니다. 거기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올라왔다. 이것은 대단히 많은 수가 지금 올라오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지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완전히 지키신다 하는 말로 표현하면은 8절까지는 십사만 사천이 될 것이고, 실제적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셀 수 없는 큰 무리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완전히 보호하시며 그리고 그들을 다 구원하신다. 이런 것을 이런 표현법으로 사용한다 했을 때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저는 지난 시간에는 일단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만 구원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도 구원하시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이스라엘로 해석을 했습니다. 여기 큰 무리가 올라오는데 어떤 무리냐 하면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서서」 흰옷을 입고 종려 나무 가지를 들었다」 이런 모습은 구약에서도 우리가 알 수 있겠고, 특별히 이 문장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보면은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크게 찬양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구원받은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의미로 구원을 받았는가? 우리가 잘 알 수 있겠는데도, 가령 13절에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뇨? 물으니까. 14절에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하였느니라. 하나님이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고 그들이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 다시는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어떤 기운도 그들을 해하지 못한다. 모든 눈물을 씻어버리고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이런 말들을 보았을 때 그들이 구원받은 내용을 알 수가 있겠지요. 그들은 큰 환난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받은 내용을 보면은 우리가 구약을 쉽게 상상할 수가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큰 고난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호위하시고 그리고 나중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장막을 치시고 그리고 그들과함께 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셨기 때문에 어떤 것도 그들을 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애굽의 종으로 눈물 흘리지 않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젖과 꿀이 흐르는 복으로 양육받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홍해를 건너고는 거기서 구원의 큰 노래로 찬양하고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봉사하는 그런 백성이 된 것이지요. 그런 것을 여기 토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지키는 절기는 무엇이냐 하면은, 레위기 23장을 보면은 이스라엘이 지키는 일곱 절기가 있는데, 안식일부터 8대 절기가 되겠습니다마는 그런 절기가 있는데, 마지막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그 초막절에는 그들이 다 푸른 나무 잎파리로 장막을 짓고 거기 10일 동안 거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보할피셨는지, 그런 일을 감사하고 축제를 했습니다. 그때는 모든 수확을 끝맺는 년말에 그 일을 합니다. 그들의 년말은 그들의 달력으로 7월 15일부터 이 절기를 지켜요. 이것이 초막절을 지키는 상들을 알 수가 있지요. 구원받은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종려 나무 가지를 들고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다시는 눈물 흘림이 없습니다. 마치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셔서 가나안 땅에 심으시고 그들로 초막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게 했던 것처럼 그런 모습을 여기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즉 모든 나라 중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올라오는데 이들은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는 무리들, 하나님 앞에 크게 감사하고 구원의 절기를 지키러 올라오는 무리들, 그런 무리들이 있다 그런 말입니다. 이것은 레위기 23장의 절기 모습에서도 알 수 있지마는 특별히 스가랴 14장에서도 이런 절기에 대해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완성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생명강이 흘러서 지중해로 흐르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생명샘이 흐르고 이렇게 큰 구원이 완성되면은 그때 모든 천하 사람들이 초막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것이다. 만일에 어떤 나라가 초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않으면은 그 나라는 비를 주지 않을 것이다고 해서 모든 거룩하고 모든 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올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가랴서를 보았을 때는 종말의 구원의 상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역사를 완성하실 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완전히 보호를 받을 것이고, 그리고 그의 백성들은 다 구원을 받을 것인데 여기 보니까 종말에 하나님 앞에 초막절을 지키러 온 큰 무리들을 여기서 언급함으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흰옷을 입었다. 종려 가지를 들었다.
그러면 구약의 초막절은 꼭 흰옷을 입은 것은 아닌데, 종려 가지를 들고 하는 것은 맞아요. 왜 흰옷을 입었는가 했을 때 흰옷은 여기 14절에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알 수가 있습니다. 흰옷은 거룩한 옷이다. 그 옷을 어린 양의 피에 씻었다. 그렇게 여기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받은 무리들이 하나님 앞에 마지막 구원의 축제를 지키기 위해 다 여기 모여 있습니다. 이 마지막 절기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보니까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고 어린 양께서 자기들을 구원하셨다고 큰 소리로 이처럼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물론 구약의 예배 모습과 비교해 보면은 구약 때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서서는 예배하지 못하지요. 가리워져 있으니까. 그런데 여기는 하나님과 그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하니까 하늘에 속한 완전한 예배, 하늘에 속한 완전한 구원, 완전한 초막절, 종말의 초막절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바로 그에 화답해서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에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 앞에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도라」 그러니까 이 천사들의 찬양은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했는데 그 구원을 설명해서 설명해서 찬양하는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봉사하고 그리고 성도들을 수종드는 그런 자들인데, 이제 그의 교회가 종말의 초막절을 지키고 구원의 큰 노래를 불렀을 때 바로 그 교회의 찬양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찬양하고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 이 찬양의 내용을 보면 앞에가 아멘이 있고 제일 뒤에가 아멘이 있고, 그리고 가운데는 일곱 번의 찬양의 덕목들이 있습니다.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 존귀와 능력과 힘이」 그렇게 일곱이 되어 있지요. 그러니 이 아멘은 진실로 그러하다는 말이고, 이 요한 계시록의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시거든요. 그러니까 그가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시기 때문에 크게 아멘으로 화답하는데 그 아멘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일곱의 하나님의 덕목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찬양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이런 것을 우리들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했을 때 그것은 구원받은 큰 무리들이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했을 때 이 구원의 은혜들이 찬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광이 무엇이냐, 지혜가 무엇이냐, 감사가 무엇이고, 존귀가 무엇이고 능력이 무엇이고, 힘이 무엇이냐, 이런 것을 그냥 사전적인 정의를 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찬송은 자기 백성의 구원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철학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그것은 하나님의 권세의 일이요 영광의 일이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자기 백성을 통해서 영광과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고 자기 백성의 찬양을 통해서 만민도 찬양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은 곧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들을 종말의 구원으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일들이 여기서 찬양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과 영광과 지혜, 존귀와 능력과 힘, 감사와 찬양이 비슷하면은, 영광과 지혜, 또 존귀와 능력과 힘, 그러니까 아마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지혜에서 나타나고 하나님은 그 영광과 지혜에서 경배와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능력과 힘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곧 그것이 하나님께서 존귀케 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일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을 위해서 허락하신 것이어서 곧 백성들이 하나님의 크신 구원을 찬양해서 천사들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나타내신 영광과 지혜와 그리고 존귀와 능력과 힘을 감사와 찬송으로 그렇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이제 이 예배의 장면에 대해서 장로 중 하나가 요한 사도에게 물었습니다. 이렇게 묻는 것은 설명해 주기 위한 것입니다.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인데 큰 환난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냥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희게함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은 바로 종되는 고난에서 구원을 받았는데 그들은 유월절 양의 피뿌림을 통해서 거룩한 백성으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은 그들 중에 거하셔서 친히 성소가 되셨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구약의 상들을 토대로 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라 큰 환난에서 구원받았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앞에 서론에서는 로마 정권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 될 것이고 그리고 요한계시록 전체의 문맥에서는 영과 짐승의 권세에서 구원받은 무리들이 될 것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에서 구원은 애굽에서 구원으로 설명하지 않고 바벨론에서 구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크게 두 번 구원을 받았는데, 이스라엘의 출생을 위해서는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범죄해서 망해버렸지마는 하나님은 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바벨론에서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을 다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바벨론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렇게 구약에서는 말씀을 했습니다. 바벨론에서의 구원이 종말의 구원과 연결될 수 있도록 선지서들은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도 짐승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았는데 그 짐승의 권세를 대행하는 국가가 무엇입니까? 거기서 구원을 받았다고 그러고, 이 바벨론은 그 당시는 로마 정권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다니엘서를 보면 바벨론을 머리로 해서 그 다음 페르시아지요. 그 다음 헬라, 로마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을 해하는 사대 짐승으로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 로마 정권을 우상에서는 마지막 철 정강이,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금머리이면은,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그 나라를 상속시키리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런 상들을 여기서 토대로 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큰 환난, 짐승의 권세, 마지막 하나님의 인자의 나라를 대항하는 그런 짐승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인데 그것은 큰 환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어린 양의 피에 씻어 그 옷을 희게 하니, 그런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약 백성 중에서 흰옷은 제사장의 옷이 가장 특징입니다. 그들이 대속죄일이 되면 그전에 입었든 영광스러운 옷을 벗고 세마포 흰옷을 입고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것이 구약에서 입는 흰옷의 가장 큰 특징이어요. 그리고 이 구원받은 무리들도 이 어린 양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지성소는 열려져 있지 안했지마는 그 지성소를 잠깐 들어갈 때 제사장이 흰옷을 입고 거기 들어가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나왔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 나가는 길이 막혔었습니다. 그러나 흰옷 입은 무리들은 큰 환난에서 벗어났는데 그들은 흰옷을 입었는데 어린 양이 그 옷을 씻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구약의 유월절 피가 아니라 어린 양의 피뿌림을 통해서 그들은 흰옷을 입었고 흰옷을 입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땅의 성소 밖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성소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구원받은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이것은 조금 순서가 바뀌어진 것 같지요. 구약 같으면 하나님이 먼저 자기 집을 짓고 나면은 그러면은 이제 제사장이 들어와서 하나님을 섬기지요. 그것이 구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이어요. 그러나 그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장막을 치셨고, 그렇게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가 되었고 모든 생명이 축복이 주어졌고 원수는 그들을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모세 성전 제도를 갖고 딱 맞출 필요는 없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사상으로 해석하면은 그렇게 맞겠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습니다. 거기서 밤낮 하나님을 섬깁니다.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잠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성소 밖에 있는 성전에서는 제사장이 항상 하나님을 섬겼던 것처럼 그렇게 항상 하나님을 섬긴다 그런 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은 굉장히 피곤하겠다. 교회에서 한 시간 예배하는 것도 피곤하고 지루할 때가 있는데, 하루 종일 밤낮 예배만 드리니 무슨 심심해서 할 일이 있겠느냐? 그러니 영화도 천국 이야기는 안나오고 지옥 이야기만 나오지요. 왜냐하면 지옥은 별의 별 사람이 다 들어와서 장면이 무궁무진한데 천국은 영화 시작해서 끝나도록 찬양만 부르고 있으면 무슨 재미가 있것냐? 이런 방식으로 설명을 하는데, 그것은 구체적 그들의 삶이 그렇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는 완전한 경배, 완전한 교제, 곧 그것이 그들의 완전한 생명입니다. 그런 것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한 집에 거하십니다. 이런 축복이 무엇이냐? 먼저는 하나님을 완전히 경배한다는 그런 말을 하고 있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완전히 경배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누리는 복은 무엇입니까?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아무 해나 뜨거운 기운데 상하지 아니할찌니. 먹고 마시는 방식은 그들의 생명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과했을 때 해나 달이 상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아무 것도 그들을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계신 어린 양이 저희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러라.」 해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생명이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누가 인도합니까?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친히 저희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심이러라. 그들이 누리는 복은 생명수 샘으로 인도를 받고 거기서는 모든 고통이 끝납니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건져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그런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여기서 두고 종말에 초막절을 지키는 허다한 많은 무리들의 축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축복이 계시록 끝에 가면은 더 진행되어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가장 초보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통해서 인을 치시는 목표점이고 또 지금도 교회가 핍박을 받고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고난을 받지마는 그 목표점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곧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완전히 그가 계수하실 것이고 보호될 것이고 그리고 그의 백성들은 어린 양의 피에 씻어서 흰옷을 입고 그리고 하나님 보좌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성전이 되셔서 그들위에 장막을 치십니다. 이런 완전한 교제 가운데 구원을 받은 무리들입니다. 그들은 이 구원을 종말의 축제로 지키기 때문에 종려 가지를 들고 희옷을 입고 그 보좌 앞에서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받은 구원은 어린 양의 피에 씻어서 흰옷을 입고 그렇게 함으로 큰 환난에서 짐승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성전이 되셔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어린 양이 목자장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생명수 샘에 있고 거기서 모든 고통을 다 이겨버릴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이들을 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축복을 받았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모든 것을 이기고 보좌 앞에서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를 진행시키는 역사의 목표점입니다. 지금도 그러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진행한다 그런 말씀입니다. 이것이 요한 사도께서 보았던 환상들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대론자들이 설명하기를 로마 정권은 망해버리지마는 로마의 그 정체라는 것은 세상 제국에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해가지고 이 성경을 가지고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시켜서 풀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그렇게 신빙성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온다는데 대해서 그들이 많이 강조했던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공헌을 했지마는, 로마 정권을 망했지마는 유럽의 신성 로마제국, 그 로마의 평화, 지금은 미국의 평화, 미국 정권 아래서 온 세계가 평화를 누리고 있지마는, 로마의 평화, 그것이 유럽의 정신이다.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마 정권 때는 뭐 프랑스 독일 하나 없이 전부 하나였거든요. 거기 로마 정권 밑에서 하나, 이것이 말하자면 유럽의 모든 국가들의 이상적인 국가상인데, 아마 그것이 지금도 유럽 공동 시장에서 구현된 것이 아니냐? 그런 설명이지요. 그렇게 해서 이제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고, 경제적으로 하나가 되고 그러면 앞으로 종교적으로 하나가 될 것이다. 지금 구주 공동 시장의 회원이 열 몇입니까? 이 사람들은 일곱 머리, 열 뿔 해가지고 열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몇 나라가 탈퇴하겠지요. 그런 저런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떠튼 지금은 열 네 나라가 되니까 그 사람들의 할 말이 막막할 것입니다. 그래도 거기 그 많은 나라가 들어가 있고, 그전에는 유럽 의회를 구성해서 정치적인 하나를 이루었지마는 그 다음 화폐를 통일하고 그렇게 경제적으로 하나가 되고 있지 않냐? 그러면 인제 이것은 필연적으로 종교적인 하나를 이루지 않으면은 완전한 하나는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세계 종교 하나되기 운동으로 굉장히 진행되고 있지요. 그들의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어요. 말은 맞는 말인데,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것이 어느 국가냐, 하고 정치적으로 알아 맞추려는 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큰 맹점이어요. 어떠튼 지금도 계시록이 가졌던 그런 것처럼 그때는 로마 정권 밑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핍박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런 일은 많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래도 세상은 그 구원자 앞에 복종하지를 않습니다. 지금도 영웅들을 구해서 이 영웅들 밑에서 세계가 서로 싸우지 아니하고 화평을 이루고 그렇게 해서 생존권이 보존을 받아야 되겠다. 그것이 세상이 추구하는 영웅주의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 독재정권도 항상 그런 것을 써먹었지요. 안정이냐, 혼란이냐? 그렇게 해서 그전에 박정희 대통령도 해먹고 그랬지 안해요. 말하자면 나 하나 독재자 밑에서 평화를 누릴 것이냐, 괜히 민주주의 하다가 당할 것이냐? 월남을 보아라. 괜히 종교들이 싸우다가 공산화되어버렸지 않느냐? 그러니까 우리들은 종교는 국가를 위해서 있어야 되겠다. 지도자를 위해서 있어야 되겠다. 그래서 유경수 여사가 총맞으니까 종교가 연합해서 장례식을 한 것이어요. 그렇게 되어 있지 안해요. 그리고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종교 통합 운동이 굉장히 진행되고 있어요. 그런데다가 지금도 W,T,O 입니까? 세계 경제 브럭으로 되어 있고, 아직도 정치적으로는 알력관계에 있지마는 여전히 미국의 핵무기 그늘 아래서 민주주의가 보존되는 방식이고 앞으로는 이런 것이 꽤 많이 진행되겠지요. 더구나 요새 유행하는 인터넷,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면은 말하자면 사람의 왕래는 빨라지고 지식은 많아질 것이고, 다니엘서에 있는 예언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세계가 세계정부를 구성하기가 굉장히 쉽습니다. 지식이 많해지니까 여러분이 대단히 자유로운 것 같지마는 그 지식을 콘추럴하는 천재가 있으면은 모든 사람들은 그 토대 안에서 왔다 갔다하는 것 뿐이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자유가 있는 것 같지마는 자유가 없어요. 가령 자동차만 타본 사람도 자동차 안타다가 타면 굉장히 신납니다. 그러나 타다가 안타면 자동차 없이는 못움직여요. 그 묘하지요. 어디 갈려면 갑갑하고 기분이 묘합니다. 그래도 그것은 별로 예가 안맞는 것 같고, 가령 그전에는 사람이 쓰고 있지마는 지금은 전부 기계가 자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쉬고 싶으면 망치 놓고 담배 한 대 피워도 괜찬해요. 그런데 지금은 기계가 돌면 사람이 24시간 따라 붙지 않으면 안되어요. 그러니까 기계가 사람을 부리는지 사람이 기계를 부리는 모를만큼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전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어요. 그리고 생산이 풍성하니까 자유로운 것 같지마는 자유가 말하자면 소가 주인이 잘 먹여주니까 잘 먹는 것처럼 기계가 잘 돌아주니까 먹고 살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기계의 종으로 먹고 살고 있는 것이지 실은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어요. 사람의 질이 높아진 것 같지마는 인간은 자유를 상실해요. 이런 문제들이 굉장히 알력 관계에 있지요. 그래서 세계정부가 구성되는가 하면 민족들은 전쟁하고 반란하고, 세계 정부 조직이 움직이는가 하면, 인지오입니까? 비 정부 기구들, 그런 기구들이 일어나서 그런 것을 억압 반발하고, 항상 그런 문제들, 전체의 중앙 통치와 개인의 자유들, 이런 것이 항상 알력관계에 있고 부딪히는 것이어요. 그러나 점점 범세계적인 기구로 진행되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지금도 만일 어떤 사람들이 우리만 맞다. 이것이 진리다. 그러면 그는 교회를 깨뜨리는 사람입니다. 제일 나쁜 사람들이 누굽니까? 기독교인들이어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 진짜고 남어지는 전부 가짜라고 그러거든요. 요새는 불교나 천주교가 인기가 있지 개혁교회는 인기가 없습니다. 우리 보수교단도 그렇습니다. 그전에는 보수의 깃발을 드는 것이 우리의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보수 깃발을 들면은 아이구 어떤 노인이 자기 패거리 모를려고 싸움이나 벌리는 갚다 하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정치를 위해서 교단이 있지 내용은 전부 섞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으로 암담한 일입니다. 교회에서도 옳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화평을 깨뜨리는 사람으로 오해되기 쉽습니다. 물론 옳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헛점이 있어서 그런 비방도 받겠지마는 그러나 개인의 헛점과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분리해서 들어야 하는데 개인이 조금 부족하면은 그 사람이 하는 말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막몰아붙여버리면 안되겠지요.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항상 있는 법이어요. 그것이 지금 우리들이 사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에게 평화로운 시대를 주고 어떤 의미로 아무 핍박도 없고 이것이 좋은가 나쁜가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하나님은 자기 일을 하시니까 우리들은 평안한 것만 하나님의 때고 핍박 때는 하나님 일이 아닌가, 그렇게 분별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교회가 핍박의 때에 새롭게 되고 교회는 부흥했거든요. 그러나 한 가지 핍박을 받으면은 교회가 활동력 있게 복음을 전파하고 그리고 복음을 이해력을 높이는 일은 많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니까 각자 시대에 맞는 하나님의 방법들이 있겠지요. 어떠튼 우리에게는 외적인 핍박이 없다는 의미로는 좋은 일이지마는 그러나 쉽게 잠들어버리고 그리고 마치 세상과 싸울 필요가 없는 것 같이 미혹을 받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시기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그런 시대에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 여러분 권세는 보좌 우편에 취임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그런 정도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셔서 나라와 임금들의 머리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구원은 땅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종말의 초막절의 주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영광과 경배를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완전한 정복을 찬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크게 구원하셨습니다. 지금도 교회가 이런저런 핍박을 받고 있지마는 우리는 주님의 피와 주님의 살에 참예하도록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믿는 신자에게는 다시는 눈물 흘리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 품 안에 있고 예수와 함께 보좌 우편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떤 피조물일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교회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썪지 않고 쇠하지 않은 영원한 기업을 얻었기 때문에 다시는 먹고 마심이 우리에게 부족해서 눈물을 흘리고 그런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이 7장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목표점입니다. 그것은 이미 이루어졌고, 이미 이것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영광의 나타남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하라고, 그것이 믿는 신자의 인내요 지혜라고 그렇게 계시록에서는 거듭거듭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사실을 깊이 잘 맹심하십시다.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땅의 임금들의 머리이십니다. 지금도 땅의 임금들이 그분을 대항하고 먹고 마심을 자기가 주는 것처럼 하고 있지마는 우리의 생명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분이 나타나시면은 땅의 모든 임금들이 영광을 그분 앞에 바칠 것이고 그리고 그분은 세세토록 통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지마는 악한 원수는 교회를 손대지 못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신바 되었고 그를 친히 자신의 품 안에 두셨기 때문에 죽음의 권세가 그를 만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항상 깊이 맹심하시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세상은 먹고 마심을 위해서 타락하고 먹고 마심을 위해서 짐승의 표를 받고 세상 방식으로 살지라도 우리들이 모든 것을 빼앗길지라도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분만 참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말의 왕이십니다. 그분 외에는 구원얻을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 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들은 날마다 세상을 이기고 어린 양이 끄는 대로 주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우리들도 십자가를 짊어지고 신실한 증인으로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그런 승리하는 백성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도 이전에는 우리들도 공중의 권세잡은 아래 있어서 이 세상 풍속을 좇고 먹을 것의 종이 되어서 죽을까 두려워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고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대로 살았던 저희들입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은혜를 온전히 나타내셔서 이제는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그의 피 때문에 구원을 받게 하셔서 이제는 우리로 하나님 앞에 말갛게 씻기심을 받게 하시고 이제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게 하시며 주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셔서 밤낮으로 은혜의 보좌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하시고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심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가나안 땅의 먹을 것, 썩어질 것이 아니라 다시는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우리에게 주시고 주님의 살과 피를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주셔서 다시는 죽지 않고 멸망치 않는 영원한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하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니 아들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자는 나를 먹는자는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이제는 주님의 몸과 주님의 지체가 되어서 한 영 한 몸으로 살 수 있도록 이 큰 축복을 주셔서 항상 하나님 품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의 능력을 봉사할 수 있도록 이처럼 큰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세상은 부활하신 주님께 무릎 꿇지 아니하고 먹고 마심을 추구하며 이런 것이 세상의 구원인줄 알고, 이것이 세상의 평화인줄 알고 사람이 사람으로 더불어 무한으로 경쟁하는 그런 시대를 당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런 대열에 끼지 않으면 우리의 생존권이 발탈되는 것처럼 세상은 조직화되고 그렇게 해서 성도들까지라도 먹고 마심의 종이 되기 쉬운 시대를 당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게 허락하셔서 죽은자가 부활하신 주님만을 섬기는 신실한 증인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죽음의 골자기를 먼저 통과하셔서 영원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셨사오매 지금도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에서 주의 백성들을 지키시며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피조물까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교회를 끊지 못할 줄을 믿습니다. 주님 오셔서 참으로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생명의 나라를 상속하도록까지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며 주님의 생명과 부요하심으로 복주신 하나님을 믿고 날마다 주님을 순종하는 승리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교회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생명의 축복으로 주의 교회를 더욱 새롭게 하실려고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승리의 주가 되신 날에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의 상으로 주의 교회를 불러 모으셔서 우리를 사랑해서 찢기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생명의 교제를 허락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을 더욱 일깨워 주셔서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삶을 주님의 살과 피의 교제로 사는 것으로 우리를 항상 인도해 주시옵고,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사랑을 따라서 주님 오시도록까지 이 생명의 능력을 주님을 봉사하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의 백성의 삶을 더욱 부요케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