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을 떼심 I
성경: 요한계시록6-7장
우리를 하나님 품 안에 살게 하시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며, 오늘도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의 상으로 불러 모으셔서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의 교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은혜인데도 우리들이 믿음으로 깨어 살지 못했던 모든 어두움들을 용서해 주시옵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으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의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영광을 주의 백성 중에 나타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더욱 알게 해주시옵고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이 더욱 새롭게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 서로를 사랑함으로 주께서 피흘러 값주고 사신 주의 교회를 온전히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한계시록 6-7장까지 일고 필요한 만큼 강론하겠습니다. 계시록은 구약의 묵시문학을 사용해서 마지막 될 일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에 해석할 때 어떤 의미로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 자체는 우리에게 마지막 때를 펼쳐 보이기 위해서 그의 모든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해석하는 실제상의 어려움 때문에 성경 자체가 어려운 것처럼 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어린양이 인을 떼시는데, 여기 여섯 인을 떼는 것까지는 6장에 나와 있고, 그리고 일곱째 인을 떼는 기사가 8:1-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7장에서는 소위 사이 계시라고 해서 중간 계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여섯 인, 또는 일곱 인이 무엇인지, 우리들이 대단히 관심이 많습니다. 장차 주님 오실 때 세상 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그런 징조에 관심이 많기 때문인줄 압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사람들도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면은 그것을 성경에 붙여서 이러니까 마지막 때 징조가 아니냐? 그래서 사람을 미혹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인을 떼시는 기사는 5장에서 네 천사와 24장로들의 찬양에서 특별히 나타나 있고, 또 그들의 찬양에 화답해서 수 많은 천군 천사와 만물이 찬양했는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각 나라 중에서 사람을 피로 값주고 사셔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곧 하나님의 어린양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곧 그 일을 위해서 인을 떼신다고 5장에서는 설명을 했습니다. 지금 역사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마는 실제로 역사에서 일을 하신 분은 누구신가? 실은 하늘 사령부를 4, 5장에서 펼쳐 보이신 것처럼 완전한 영광과 교제 가운데서 경배를 받으시고 그의 아들을 통해서 만민을 피로 값주고 사셔서 그의 백성을 삼으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경영하시고 마지막 때를 경영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로마의 정권 밑에서 짐승의 정권 밑에서 핍박을 받을지라도 놀라지 말고 이기라고 그렇게 계시록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어린양이 인을 떼시는데 그 인을 떼시는 모습들을 우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보매 그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고 하더라.」 이런 말에 대한 비슷한 이야기가 넷째 인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7절을 보면 넷째 인을 떼실 때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이는 사망이더라.」 그리고 다섯째 인, 여섯째 인, 거기 보면은 무슨 네 생물이 나오거나 천사가 나오고나 그렇게 돼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넷째 인까지와 그 다음 문제는 좀 차이가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계시록을 시작할 처음에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여섯 인, 여섯 나팔, 여섯 대접이 나오는데 이것은 전체적인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은 여섯 번째가 실은 마지막이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번은 실은 그 마지막 것을 다시 확대 해석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 소위 점층적인 반복법으로 되어 있지요. 요새 컴퓨터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연속극을 보아도 그럴련가요. 가령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어느 하나에다가 초점을 맞추어서 그것을 확대시키면은 그 일이 더 적라라하게 들어날 것이어요. 만일에 마지막 클라이막스에다가 초점을 맞추고 확대시키면은 실은 이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거기서 어떻게 완성되고 더 강화되는지, 그런 문제가 드러날 것이어요. 아마 연속극 같은 것도 그러겠지요.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초점을 맞추면은 복습이 좀 나오지요. 그전에 있었던 중요한 장면, 회상하는 장면, 그런 것이 조금 나오고 나서 그 다음에 인제 본격적으로 진행하거든요. 우리 한국 것은 시간 때울려고 복습을 많이 하니까 우리가 보고 있으면 뻔히 모습이 보이지마는 그래야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무엇인가 전체적으로 연결이되면서 강조가 될 것이어요. 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또 어쩌다 설교할 때도 그렇지요. 처음에는 차근차근 나가다가 마지막에 결론을 맺게 되면은 그냥 결론으로 끝날 수도 있지마는 대개는 이전의 핵심적인 사실을 다시 반복하면서 그것을 결론적으로 마무리지으면은 말하자면 굉장히 강하게 호소가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짐층적인 반복 구조다. 또는 동심원적인 물결 구조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따로 따로 3*7=21해서 스물 한 가지가 펼쳐지는 것으로 보면 안되고, 실은 핵심은 인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은 인을 떼시는 분, 이렇게 되어 있고, 그러면 인을 떼시는 분은 어린양이고, 나팔을 불고 대접을 쏟는 분은 어린양이 아니면은 그것은 일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까 일곱 인에 일곱 나팔이 포함되어 있고, 마지막 일곱 나팔에가 일곱 대접이 포함되어 있고, 이 모든 것은 인을 떼신 분이 그렇게 하고 계시다.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 핵심은 인 떼시는 데가 총괄적인 서론적인 역사가 펼쳐지고, 그다음 것은 구체적으로 종말에 초점을 맞추어서 자세히 표현하면은 마지막 일곱 대접이 될 것이고 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곱 인에서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자세히 들어다 보면은 실은 모른다 그말이지요. 자세한 묘사는 실은 뒷 부분에 강조되어 있고 앞 부분은 어떻게 인을 떼시는 분이 역사를 경영하시는가, 역사에 대한 총괄적인 전망이 나온 것이지 직접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요. 그러면은 넷째 인까지를 보면 네 천사가 우레 소리 같은 걸로 나오라. 그러면 말들이 나오고 그렇습니다. 이 네 천사는 4장에서 보면은 네 얼굴을 가지고 있지요.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 있는 천사들인데 천사장급이어요. 이미 천사가 모든 생물들을 대표하는 모습인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총괄적으로 봉사하는 천사장들의 모습을 그렇게 생물들을 대표하는 얼굴 모습으로 그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사가 부르면은 이제 말이 나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말을 써서 이런저런 일을 하신 것은 스가랴서에서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스가랴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뒤로 성전을 짓고 있는데,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통해서 그들을 방해하게 했고, 그 일 때문에 그들이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서 스가랴를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거기 보면은 골자기 속 화석류 나무 가운데 홍마 타신 이, 그리고 그 홍마 타신 이와 함께 다른 말들도 나옵니다. 거기 보면은 하나님이 그 말을 타시고 자기 백성 중에 계신 분으로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필요를 따라서 자기 백성에게 자기를 나타내시겠지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고난받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을 때는 떨기 나무 가운데 불꽃으로 임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시내산에서 나를 다시 만날 것이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불꽃 가운데 강림하셨지요. 그런 모습을 통해서 나타내셨고 거기서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바로의 권세를 파괴하는 힘있는 분으로 그렇게 나타나셨습니다. 특별히 모세를 통해서 이적을 통해서 바로의 술사들이 만든 뱀을 삼키고, 그런 방식을 통해서 여호와께서 오직 하나님이시다. 바로와 싸우는 분으로 그렇게 나타내셨습니다. 처음 말씀했던 것처럼 바벨론 포로에서 고난받고 있는 자기 백성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불병거를 타신 분으로 말했지요. 바벨론의 병거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병거는 불 병거고 굉장하지요. 그런 분으로 말씀하셔서 자기 백성들을 위로했었습니다. 그리고 스가랴에서는 온 땅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고난을 크게 주고도 평안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눈물을 흘려도 아무도 그를 구원할 자가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두루 도는 말들을 통해서 온 땅을 순찰하고 결과를 보고 받았는데,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을 그렇게 골탕을 먹이고도 세상은 평안해요. 하나님의 영광을 모독하고도 세상은 평안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망치를 든 공장들을 보내서 네 뿔을 꺾으리라. 네 뿔은 그 당시 4대 제국이 되겠는데, 네 뿔을 껶으리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을 눈동자처럼 두루두루 지키시고 눈동자처럼 감찰하시고 말타고 돌아보는 것이어요. 그리고 그 보고를 받은대로 공장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세상 제국들을 심판하실 것인가, 그런 것을 스가랴서에서 보인 것이어요. 그런 것이 여기 연합되어 있습니다. 여기 말들은 스가랴서에서 나타난 그런 말의 형상들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겠고, 여기서 받고 있는 고난들은 여기 보면은 큰 칼을 가졌고, 또 검은 말에는 기근의 재앙이 있고, 그 다음 청황색 말에는 큰 사망이 있고, 이런 방식은 이방과 싸우는 방식에서는 나타나 있지 않고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마지막 심판하실 때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짐승으로, 기근으로 칼로, 재앙으로 죽이리라.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는지, 그런 심판의 모습이고, 애굽에서 싸웠을 때는 이런 방식은 아니었지요. 뭐 메뚜기,파리, 이 다른 재앙들이 있었습니다마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했을 때는 보통 이런 재앙이었습니다. 그랬을 때 이 네 나팔을 인을 통해서 나타내는 재앙은 무엇인가? 그런 것을 먼저 우리들이 생각을 해야되겠습니다. 그전에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했느냐 하면은 네 가지 재앙은 교회가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이고, 환난을 당하니까 교회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요. 9절에 「언제까지 우리 피를 신원하지 않겠습니까? 」 하니까 세상이 너희를 핍박해도 내가 장차 재림하면은 온 세상을 심판하리라. 여섯째 인을 보니까 재림하면은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이 나타나지 안해요. 그렇게 해서 넷째 인까지는 교회가 당하는 환난이고, 그리고 그 환난에 대해서 하나님은 보상할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풀었습니다. 또 그렇게 하지 않고 푸는 방식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푸는 방식은 아마 그쪽에다 강조가 주어진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보았을 때는 옳은 방식이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그 문맥을 순리롭게 보지 않고 어떤 신학적인 전제를 갖고 읽으면은 그렇게 해석하기 쉽습니다. 상징적인 책이라 그것이 큰 틀에만 안틀어지면은 아무 이상 없이 풀어지거든요. 그런데 정통적인 해석은 그런 방식보다도 여기 첫째 인을 뗄 때 보면은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이기려고 하더라. 이것은 말 중에 사령관 말이지요. 이것을 총괄적인 말로 이해를 합니다. 이것은 이기고 이기려고 하더라. 했을 때는 세상이 교회를 이간다는 개념은 아닐 것인데, 그전에는 그렇게 풀어졌습니다. 정통적인 해석에서는 2절에 있는 흰 말은 그냥 그리스도로 많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19장에 보면은 백말을 타신 이가 있고, 그 옷에는 피가 가득하고, 다리에는 이름 쓴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니까 그것과 연결시켜서 흰색하면은 그냥 그리소도라고 해석할 합니다마는 여기서는 그리스도 자신으로 그렇게 이해할 필요는 없는데 그냥 상징들을 연결하다 보니까 정통에서는 그렇게 됐습니다. 방금했던 말씀들은 왔다 갔다 복잡하니까 그냥 잊어버려도 좋고 지금부터 제가 증거하는 말씀만 잘 들으시면 됩니다.
그 종교적인 것은 굉장히 권위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권위가 있느냐 하면은 안믿는 사람도 우리 보고 정신 나갔다고 그러지요. 자기들은 옳고 우리들은 정신 나갔다고 그래요. 그리고 아무리 대학을 몇 개 나온 사람도 물건 보고 절하기도 하고, 죽은 사람 보면 절하기도 하는 것이어요. 그리고 우리가 거기 절하지 않으면 정신 나갔다고 그래요. 그만큼 종교적인 것은 꺼꿀로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기 때문에 언약을 배반하면은 그정도 완전히 꺼꿀로 나가는 것이어요. 비유의 질이 떨어져서 죄송합니다마는, 가령 부부관계는 한 몸으로 살도록 되어 있지 안해요. 그런데 만일에 여자가 바람을 피운다. 물론 남자도 바람을 피우겠지마는, 여자가 바람을 피운다 그러면은 그 사람에게는 둘이 정상적으로 사는 것은 죽은 사람, 이상한 사람이어요. 자기처럼 살아야 드디어 50년 만에 인생이 일어나고 마음이 일어나고, 그래갖고 인제 진짜 인생에 눈을 뜨고 하고 야단이 날 것이어요. 왜냐, 완전히 꺼꿀로 보거든요. 세상이 다 조롱해도 자기는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남편이 옆에 있으면은 숨이 막일 지경이어요. 나가면 자유롭고, 그러니까 세상은 다 아는 것도 그 사람은 거꿀로 되어요. 왜냐하면은 부부관계가 깨어지면은 그런다 그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구약 비유로 하면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하면은 하나님을 섬김이 어리석고 꾸준히 이방의 신들을 추구하고, 간음하는 여인처럼 꾸준히 그런 것을 추구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요. 그런 식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종교적인 가르침은 대단한 권세입니다. 더구나 이방신의 가르침은 지금 시대에는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물론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마는 별로 힘이 없지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기독교의 도리만큼은 굉장한 권위가 있고, 특별히 예수를 구주로 믿는 교회에서 그 권위는 말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바르게 해석되었으면 좋겠지마는 그것이 잘못 해석되면은 잘못 해석된 만큼 권위가 있고, 그것은 잘못 해석된 만큼 그리스도를 멀리 떠나기 때문에 그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신학생을 양성하고 목사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어요. 우리 개인들도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해야 되겠지마는 가르치는 사람이 가지는 책임은 아주 막중한 것입니다. 또 우리들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진실되게 예배한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거꿀로 알면은 그런 만큼 어리석게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해석하고 모든 것을 좌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령 아버지에게 효도하면 좋은 일이다. 똑같이 이렇게 하고 아버지에게 효도해도 조그만 꼬마가 효도할 때는 아버지에게 효도하면 돈탄다. 이렇게 읽고, 큰 아들도 아버지에게 효도하면 재산 물러주겠지요. 그러면 아버지로부터 받는다는 나타나는 양상은 같지마는 그가 그가 자식으로서 마땅히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무엇인가 얻을려고 공경하는 것은 하나는 어린 아이요, 하나는 장성한 아들이라 전혀 틀린 것이지요. 만일에 다 큰 아들이 인제 아버지 내일 모레 돌아가시니까 돈이나 타자. 하고 열심히 아버지를 공격하고 있으면은 이것은 아주 불효자식도 보통 불효자식이 아니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은 효자여도. 그러니까 하나님을 누구로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명이요 우리 모든 삶을 지배하는 것이어서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 알면 지옥간다는 말이 아니라 바르게 알지 못하면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고 봉사를 못하기 때문에 그 점을 여러분들이 마음에 두어야 되고, 하나님의 교회에 목사를 세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충만히 봉사해서 주님의 교회를 장성한 주님의 분량에 이르도록 하실려고 세운 것이니까 여러분이 목사의 설교도 귀담아 들어야 되겠지마는 목사를 세운 것은 여러분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항상 목사보다 한수 떨어진 것을 만족하지 말고, 목사를 세우신 목표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혜로 살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성경을 꾸준히 읽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노력을 해야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계시록을 보았을 때는 뭐 1단계는 교회에 대한 핍박,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이런 식으로 보는 것보다도, 인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펼치는 것이 일곱 인을 떼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그냥 교회를 핍박하는 이방의 세력으로 네 말들을 말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심판하시는지, 일반적인 판결법으로 그렇게 이해를 해야만 전체적인 내용에 맞겠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을 심판하시는데, 그 심판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온 땅을 심판하신다. 이것이 지금 계시록에서 나타난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의 심판은 그의 재림에서 완벽하게 드러날 것이어요. 그러니까 네 인까지는 단순한 교회에 대한 핍박이나, 또 복음의 승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타고 세상을 이긴다거나 이런 말보다도 여기서는 순전히 재앙들이어요.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를 이 재앙을 통해서 인도하시는데, 그 재앙의 목표는 무엇인가,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기 백성을 신원하시기 위해서 하시는데 그가 재림하시면 일은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 심판 중에는 보니까 특별히 기근에서 보면은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그렇게 되어 있고, 특별히 중간계시인 7장을 보면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도록까지는 땅 사방에 바람으로 불지 말아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보면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도록까지는 마지막 재앙이 오지를 않습니다. 진행되는데 하나님의 종들에게 인치도록까지는 하나님의 징계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고, 또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섯째 인을 보면은 네 종들도 형제들도 죽임을 받아 그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는 너희들이 기다려라. 그렇게 11절까지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두 가지이지요. 교회는 계속 핍박을 받아서 순교자의 수를 채워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멸망하는가? 아닙니다. 내 종들이 인치도록까지는 땅 사방의 바람을 불지 말아라. 그렇게 했고, 포도주와 감람유는 해치 말아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기서 보면은 교회는 분명히 계속 핍박을 받을 것이고, 온 세상에 하나님의 재앙이 임했을 때 교회도 함께 어려움을 격을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는 적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순교자의 수를 채워나갈 것이지마는 하나님의 교회는 결단코 털끝 하나도 손대지 못하도록 보호될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전체적인 메시지에요. 그러니까 이런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부분을 풀어야 되지 부분을 보고 문학적인 상징법을 연구해버리면은 그런 것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네 인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제 심판을 집행하시는데 그 심판이 완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르짖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될 것인가? 그러니까 기다려라. 순교자의 수가 차면은 마지막 재앙이 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은 역사는 완결될 것이다. 그러면 왜 마지막 심판이 있지 않는가? 교회는 순교자의 수를 채워나가고 있는데. 7장에 보니까 내 종들에게 인치도록까지는 땅 사방에 바람으로 불지 못하게 해라. 모든 초목은 폐하지 말도록 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 첫째 인을 보면은, 인을 떼니까 흰 말을 탄 자가 있습니다.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승리자이지요. 승리이기 때문에 이기고 또 이기려고합니다. 이전에도 이겼지마는 앞으로도 이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기는가, 하는 문제는 그 다음 문제들에서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이기는지를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거든요. 그런데 뒤에 보니까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보면은 붉은 말이 나옵니다. 여기 붉은 것을 가지고 물론 상징적인 해석을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설명을 보니까 그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여기서 죽이는 데 어떻게 죽입니까? 큰 칼로 죽일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 화평을 제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서로가 서로를 대적하는 큰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서로 화평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보면은 인제 셋째 인을 떼실 때에 화평이 없어서 서로 큰 칼로 죽일 뿐만 아니라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거울을 가졌더라.」 여기서 검은 말이 무엇인지는 우리들이 모르지마는 우리 나라 귀신 영화도 보면은 분명히 검은 말이 나오겠지요. 으시시 하면은 검은 말이어요. 그런데 여기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데나리온은 신약 성경을 보면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밀 한되를 사고, 밀보다 더 싼 것을 사면은 보리로는 석되를 사고, 그런데 어떻게 삽니까? 저울을 가졌더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이런 표상들은 에스겔서에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들을 어떻게 흉년으로 징계하시는지, 그들이 물도 저울로 달아 먹고, 곡식도 달아먹고, 그리고 그들의 먹는 것도 어떻게 저주해버렸는지, 말하자면 사람의 똥으로 밥을 해먹도록 그렇게 저주해버렸지요. 나중에 선지자가 그것을 하나님 앞에 호소하니까 짐승의 똥으로 바꾸기는 했지마는 사람의 똥으로 밥해먹도록 그렇게 했어요. 아주 부정한 음식을 먹도록 그렇게 되었어요. 여기서는 그런 표상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저울인데 이 저울은 보리 한 톨 밀한 톨 더 안올라갈 것이어요. 정확하게 달아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 방법이 없겠지요. 식구가 몇 명입니까? 그러면 제가 밥을 안해보아서 모르겠습니다마는 밀가루 한되로 빵을 얼만큼 만들련지, 그러면 그 당시 식구는 요새처럼 세명이나 사는 식구가 아니고, 그 당시는 다윗이 막네인데 여덟째 아들이거든요. 또 보면은 야곱같이 장가를 많이 가버리면은 무수하겠는데, 어떻게 살련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하옇튼 안줄을 만큼만 겨우 연명한 식이 되겠지요. 그런데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그랬는데, 그전의 해석을 보니까 감람유와 포도주는 부자라고 해석을 해놓았어요. 어떻게 그런 해석을 했는지, 종교적인 해석은 한번 한 번 어느 사상에 젖으면 그렇게 보여요. 다음에 보면 열리는 데 여기서는 그런 문제들이 아닙니다. 구약 때 하나님께서 무엇은 해치지 말아라.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이 날 때는 소나무 가지는 찍어서 전쟁을 하지마는 배나무나 감나무나 사과나무 이런 나무는 찍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안찍어야 그들의 양식이 되니까.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계시록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수목은 손대지 말아라. 했을 때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인맞은 자를 위해서 보호하는 것이지 여기서 가난한 사람은 보리 석대로 먹지마는 부자들은 감람유로 포도주로 취하게 먹고 이런 대접법은 아니어요. 물론 계시록 전체적인 사상에는 그런 대조들이 있습니다마는 여기서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큰 재앙으로 심판을 내릴 때까지라도 누구는 보호합니까? 내 백성은 지켜라. 왜냐하면 감람유와 포도주는 자기 백성에게 복주신 부요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들이어요. 왜 이런 해석들을 하는 것이 옳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심판을 집행하셨을 때도 처음에는 온 애굽 땅에 재앙의 심판이 있었지마는 그 다음 서너 재앙이 지나고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곳에는 재앙이 없이 아주 편안하고 애굽 백성들만 큰 재앙을 받았어요.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의 징계를 내릴 때까지라도 자기 백성은 눈동자처럼 지키신다는 것이 원칙이어요. 그러면은 왜 6.25때 신자들이 죽는가? 그런 말을 하고자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약속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큰 지진 중에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은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 다음 넷째 인들 뗄 때 보니까 이 말은 우리 전라도 말로 푸리딩딩해요. 그 말을 전라도 사람은 알겠는데, 우리 집사님은 알겠어요? 어떤 분이 서울에서 광주 오셨는데 창세기 젖이 맛있다고 그러드랍니다. 이 사람은 신자라 창세기로 어떻게 젖을 담는고, 그랬는데 우리 전라도 사람은 창자 젖이지요. 그 사람은 전라도 중에서도 저 하위도 사람이었든가 창세기 젖이라고 그러니까, 말이 전달이 안되면 그래요. 그런데 이것은 보니까 청황색 말 그러니까 고상하게 되어 있지마는 아마 전라도 말로 하면 푸리딩딩하고, 무시무시하고, 막 색깔이 섞여졌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색깔이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그 짐승이 가지고 있는 재앙은 무엇입니까? 사망과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사망과 음부는 같은 말이지요. 저희가 땅 1/4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이것은 이 앞에 있었던 재앙이었지요. 검은 붉은 말을 타고 큰 칼을 가졌지요. 흉년은 검은 말이 가졌지요. 검과 흉년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그러니까 이 말은 이것이 인제 혼합된 방식으로 재앙을 크게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 말탄 천사들을 보내셔서 온 세상을 이렇게 화평을 제하고 크게 서로 다투어 전쟁이 일어나게 하고, 큰 기근과 그리고 큰 사망으로 온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그러나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내 종들에게 인치도록까지는 땅 사방의 바람은 불지 말아라. 자기 백성은 지키실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는 죽어 넘어지고 있습니다. 로마의 정권 밑에서 죽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네로 나오는데 영화 쿼어바디스입니까? 그런 것을 보면 이런 것이 짐작이 가겠지요. 우리 나라 같으면 신사참배 때는 그런 식이었어요. 우리는 아주 평안한 때에 태어나서 이런 것이 별로 실감이 안갑니다. 옛날 나이든 사람이 소설을 썼다면 빨갱이 이야기, 일본 순사 이야기, 주로 그런 것이 흥미진진하지요. 우리들이 보았을 때는 그 적군이 그러니까 기분이 나쁘지 별로 실감은 안가요. 그런 의미로는 저도 조금 독재 시대에 태어난 것 같아요. 제가 다섯 살 때인가 6.25가 난 것 같은데, 그러니까 제가 어렸을 때 젖은 편히 먹은 것 같고, 그러고는 저는 어려운 때를 안겪은 것 같아요. 4.19때도 나는 어렸으니까 데모한 적이 없고, 묘하게 광주사태 때는 시골에 있었으니까 여기 일은 잘 몰랐고, 민족적인 6.25 전쟁이나 그런 것은 내가 일제 때 태어났으면 살았을련지 모르겠고, 6.25때 내가 열네 살이나 되어 갖고 도망쳤으면 살았을련지 모르겠고, 그런데 저는 묘하게 그런 것은 다 피한데다가 또 한 가지 감사한 것은 내가 여려서부터 예수 믿고 신학교를 갔으면은 그전 신학으로 완전히 무장했을 것이 아니어요. 그런데 마침 지금쯤 신학교를 졸업하고 구속사를 알고 나니까 그전에 성경 해석을 했던 생각을하면 아무 소롬이 끼칠 정도로 위험해요. 그전 전통적인 신학에 제가 서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나중에 예수 믿고 목사가 된 것도 대단한 복이어요. 여러분들도 굉장한 복입니다. 왜냐하면은 지금은 전통적인 윤리가 살아있으니까 사람의 체면이라고 있지마는 요새 커나가는 아이들은 완전히 컴퓨터로 완전히 리모콘 시대라니까요. 컸다 켰다 하는 것이어요. 그리고 완전히 가상 공관에 살고 있으니까 생기기만 우리 자식들 같이 생겼지 생각은 전혀 달라요. 인제 앞으로 그런 자녀들이 크면은 어떻게 살련지, 상상 못할 윤리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어요. 그런 것만 생각해도 아주 아슬아슬한 시대에 태어난 것입니다. 조금만 지나면 아주 위험합니다. 지금은 굉장히 좋아요. 더구나 새로운 세대는 맛는 모르지만 컴퓨터로 조금 하지 안해요. 그런데 이것이 조금 진행되면은 그 다음에는 사는 방식이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아서는 여간 복되구나 생각이 들어요. 조금 추워도 견디기 힘든 판에 감옥에다 가두어 놓고 굶기면은 견딜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몇 년 선배들만 해도 일본에게 큰 핍박을 받았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런 핍박이 없으니까 어떤 의미로 복된 시대고 하나님께서 계속 핍박만 주시면은 어떻게 교회가 성장하겠어요. 도망다니느라고, 신앙 시키느라고. 그러나 평안한 때를 주시면 성경도 연구하고 발전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이 아주 좋은 기회요 우리들이 참으로 신앙을 성장시키고 교회를 힘있게 할 절호의 찬스에요.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행복하다기 보다도 만일에 이 평화 시대를 안주면은 교회까지 함께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복을 주고 계시지요. 단지 우리들이 위험한 것이 평안한 때를 살고 보니까 세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냥 그대로 잠들어버려요. 핍박 때는 적이 선명히 드러나니까 신앙을 지키는데, 지금은 적이 누군지를 모르니까 그냥 잠들어버리고 있습니다. 어떠튼 구약의 조상들을 통해서이제 어린양이 인을 떼십니다. 그가 마지막 모든 민족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 경영을 펼치십니다. 구약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방과 싸웠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이 자기 교회를 위해서 온 세상과 싸우실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을 심으셨던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 자기 백성을 심으실 것입니다. 이것으로 여기 마지막 역사을 어린양이 경영하실 것이어요. 그러니까 네 천사를 통한 네 말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권세들을 통해서 세상을 심판해 나가실 것인데 자기 백성은 보호하십니다. 포도주와 감람유는 해치 말아라. 그런데 여전히 교회는 죽어 가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도 종말은 오지 안해요. 그러니까 여기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는 거의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제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온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려 하시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아직 잠시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그의 천사들을 통해서 싸우시면은 교회는 큰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겪습니다. 교회는 여전히 죽어가고 있는데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신 참되신 주, 로마의 황제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참되신 주는 그의 교회를 지키지 않는 것처럼 죽어지고 있습니다. 로마의 칼이 죽어지고 있어요.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회를 위로하실 것인가, 그런 문제를 다섯째 인에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증거, 이것은 거의 같은 말인데 저희의 증거를 그리스도의 증거로 이해해도 좋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단 아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그러면 우리들은 당장 무엇을 생각합니까? 육체는 죽으면 무덤에 있고 영혼을 제단 아래 있는가 보다. 육체와 영혼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고? 이런 일에 관심이 대단해요. 그런데 성경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이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떻게 어떻게 되는지, 그런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여기서 영혼으로 번역된 말은 사람으로 번역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단순히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까 영혼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지요. 그러면 영혼도 몸이 있고 영혼도 옷을 입는가? 하면 갑갑할 일이지요. 이것은 항상 구약 사상들을 쓰고 있는 것이어요. 죽임을 당한 자들이 어디 있습니까? 이 제단은 구약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리입니다. 거기 보니까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어요.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호소합니다. 우리 피를 언제까지 신원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여기 말씀이 있는데 흰 두루마기를 주면서 잠시 동안 쉬어라. 언제까지입니까? 너희 형제들도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쉬어라. 그렇게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죽어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의 얼굴을 뵙고 하늘 성소에 있지요. 이것은 고린도후서에서 그런 말을 하고 있지요. 우리의 육체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은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그런 집이 있는데, 그렇게 했을 때 그것은 성소의 구조로 우리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땅에서는 우리들이 죽어도 우리가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썩어지지 않는 영원한 성소로 간다. 주님의 얼굴을 대면한다.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어요. 그때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새로운 집이 있는가? 어떻게 그 집이 지어졌는가? 집을 연구하면 모르고, 구약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땅의 성소가 있으면 하늘의 영광스러운 성소가 있습니다. 땅의 성소는 하늘의 식양대로 사는 성소입니다. 모세의 제도의 이원론으로 설명하는 것이어요. 본체론적인 이원론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를 보니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그냥 짐승의 밥이되고 불에 타 죽은 사람들이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있고 하나님의 제단에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쉬라고 그랬다. 쉬어라. 이 쉰 것이나, 흰옷을 입는 것이나 같은 말이 될 것이어요. 단순히 기다리라는 말보다는 흰옷을 입는 것과 같은 말이 될 것이어요. 흰옷은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의를 입는 것, 어린양의 피에 씻어 옷이 희어졌느니라 하는 것, 하나님의 의를 입고 하나님 보좌 앞에서 쉬고 있는 것이지요. 언제까지 입니까? 잠깐 기다려야 되요.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그러니까 핍박은 계속될 것이다. 이전의 종들만 죽은 것이 아니라 계속 종들은 죽을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 교회는 끝날까지 핍박을 받을 것이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기 생명을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기다려라. 그렇게 하고 나서 일곱 인을 떼니까 큰 지진이 나고 해가 총담과 같이 검어집니다. 온 달이 피같이 됩니다. 이런 말은 마태복음 24장에 나타나는 종말의 현상과 비슷합니다. 여기 보니까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고, 그런데 이 재앙도 일곱 가지로 묘사되고 있어요. 큰 지진이 나고, 해가 총담같이, 검은 말총처럼 검어지고, 또 온 달이 피같이 되고, 그리고 별들이 무화과 나무가 대풍이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우리는 무화과는 전라도 사람이나 알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무화과가 많으니까 잘 알 것이어요. 우리는 이 떨어진 것을 나주 사람들은 배 떨어지는 것으로 알 것이고, 우리 하위도는 배도 없으니까 감이 그렇게 떨어져요. 바람불면은 감 꽃도 떨어지지마는 잘잘한 감이 많이 떨어져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자면 태풍불면 싹 떨어지지요. 그런 말입니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처럼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며, 이것은 전부 일곱 번을 반복하는 재앙들이어요. 그리고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그렇게 일곱 대상들이어요. 그렇해서 굴에 숨고 산 바위틈에 숨습니다. 그리고 산과 바위가 무너져서 차라리 우리를 덮어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워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이처럼 큰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역사를 마무리할 것이다. 그렇게 여섯째 인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섯 번째 인이 여기서는 마지막이에요. 물론 마지막에 있는 일곱째 대접이 마지막이 되겠지마는 여기서는 여섯 번째입니다. 그리고 일곱 인에다가는 그 다음 일곱 나팔을 담아서 다시 한번 펼치고 그런 구조로 되어 있어요.
이제 어린양이 임하시면은 하나님의 낯과 어린양의 진노, 하나님이 낯을 대하신다 했을 때 그것이 은혜로운 낯이 될 때도 있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찾으시는 진노의 낯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자가 그런 의미로 죽을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낯과 어린양의 진노는 같은 말이 되기 때문에 이것은 큰 진노의 날입니다. 그가 이처럼 오셔서 모든 사람을 대면하고 그들을 심판하시고 큰 진노의 날이 되면은 그때는 어떻게 됩니까? 12절을 보면은 우주적인 변혁과 재앙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셨던 처음 창조의 세계는 이제는 떠나가게 될 것이고 이제는 하나님의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바다는 다시 없는 새로운 땅, 새로운 우주가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 심판은 우주적인 심판일 뿐만 아니라 너무 크기 때문에 모든 계급들에게 다 임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 대상들도 보니까 임금들과 왕족들, 장군들과 부자들, 이런 사람들은 구약 개념으로 하면은 하나님 없이도 자기 힘을 발휘하는 사람들이지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 그런 사람들이 구약에서 남은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임금들과 왕족들, 장군들과 부자들, 강한자들과 각종과 자주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사람들은 소위 권세를 자랑하고 여기 있는 종은 이 임금들과 왕족들에게 속한 종이기 때문에 그냥 가난한 종은 아닐 것이어요. 그들의 수종자가 될 것이어요. 이런 모든 권세있는 구룹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우주적인 재앙을 소위 그냥 상징적으로 해석할 것인지,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인지는 양자가 섞여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한 쪽으로 선을 그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주를 그의 성소로 지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서 싸우시고 그의 백성을 위해서 새로운 땅을 건설하셨을 때도 하나님은 하늘의 우레와 번개로 적들을 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라의 후손들을 심판하셨을 때는 땅을 가르고 고라의 무리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을 그냥 상징적으로만 볼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인제 문제는 이런 재앙들이 묘사되어 있으면은 이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이어요. 오늘 2천년도에 예수님이 오실줄 알았는데 아직은 안오시지요. 아직 1월달이어서 잘 모르겠지마는. 그런데 역사를 보니까 예수님 성탄절을 5년을 잘못 세었다고 그러더라. 그런데 보니까 잘못세면 2005년 쯤 되겠는데, 요새 여러분들이 신문을 보면 2005, 7년에 대대적인 별들이 오지요. 그렇게 해서 그전에 헬리 혜성이 온 것처럼 대대적인 별똥들이 떨어질 것입니다. 봐라, 그때 보면은 하늘의 별들이 그렇게 대통에 과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처럼 떨어질 것인데, 그 때 별똥 하나의 무개가 얼마냐? 원자탄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겠지요.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구체적인 현상들을 말하는 것이 강조점이 아니라 문제는 지금 너희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있는가? 그러나 너희들이 섬기는 예수는 권능자이시다. 그는 참으로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요 그리고 모든 권세로 그 역사를 집행하는 분이시다. 그가 자기 백성을 피로 값주고 사셔서 그 백성을 삼으셨기 때문에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싸우시는데 이제는 온 우주를 새로운 성소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놀라지를 말아라. 아무리 로마 정권에 핍박을 받아도 놀라지를 말아라. 나를 믿고 굳게 붙들어라. 아무리 세상이 핍박하고 짐승의 밥이 되어도 너희가 핍박을 받겠지마는 주님 오시록까지 교회는 증거할 것이고 순교의 수를 채우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단코 자기 백성은 머리카락 하나 해하지 못하도록 눈동자처럼 지키실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피를 하나님이 신원할 것이다. 그러니까 놀라지를 말아라. 그렇게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구체적인 이런 현상에다가 관심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주 예수를 굳게 붙들라는 이야기, 그것이 강조점이지 세상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그런 것을 연구하라고 준 책이 아닙니다. 계시록에서는 우주적인 변혁을 통해서 새로운 성소를 지으실 것입니다. 역사의 마지막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앙들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카서에서는 이런 재앙들을 말하고 있지 안해요. 거기는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리라. 이단과 대항해서 데살로니카서를 가르치니까 거기서는 적그리스도가 일어나서 자기를 신의 권세를 발휘하고 모든 교회를 조종해 낼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놀라지를 말아라. 말하는 방식이 다르고 목표점이 다릅니다. 거기서는 이런 종말론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기서는 죽은자들이 앞서는 데, 어떻게 앞섭니까? 그가 오시면은 죽은자들이 먼저 일어나서 하늘로 끌어 올라가고 우리들도 변화되어서 올라가고 세세토록 주님과 공중에 있으리라. 완전히 거기는 그렇게 되어 있지요. 거기는 땅에 내려와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고 우주가 변혁되고 하는 이야기는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문맥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지금 계시록에서 인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어떻게 경영하시는지, 소위 역사철학을 펼쳐 보이는 것이고, 이 마지막 문제들을 설명하는 것이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역사를 주관하는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십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이 역사를 누구를 통해서 경영하십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역사를 경영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이방과 싸우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보좌에 앉은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이 통치했을 때는 열방의 권세들이 복종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죽음을 이긴 그런 완전은 아니었습니다. 그 나라까지라도 이방 나라에 무너져서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로마 정권 밑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죽음에 이르도록 아버지를 시인했습니다.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를 증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몸의 죽으심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시는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에게 주셨고 그에게 오른 손에 인으로 봉한 책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역사의 마지막을 펼쳐 보이셔서 종말의 구원을 이루실 분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에 계신 아들이십니다. 이분이 역사를 경영하십니다. 그분은 다윗 지파의 사자 왕의 후손이요 그는 다윗 지파의 어린양이어서 목자의 양이십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역사를 경영하십니다. 이제는 모든 천사들이 그를 수종듭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전에 여호오를 봉사했던 네 천사들이 이제는 어린양을 수종든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세는 천사들 밑에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보좌에 있었지마는 이스라엘은 휘장 밖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24장로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있고 어린양이 거기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이 어린양이 역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가 이전에 이스라엘을 위해서 애굽과 싸우시고 그리고 가나안 족들과 싸우시고 그 다음에 바벨론과 페르시아와 싸우시고 헬라와 싸우시고 그리고 마지막에 로마 정권과 싸우셨던 것처럼 이 마지막 짐승의 권세와 싸워나가실 것입니다. 이전에 천사를 통한 재앙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심판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런 심판의 역사로 역사를 마무리지를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교회들은 더 핍박을 받을 것이고 교인들도 고난을 받겠지마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를 시인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시인함으로 죽었을 때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했든 것처럼 교회가 아들과 아버지를 시인하고 세상에서 죽음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은 결단코 그의 교회를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죽어 없어져서 끊어진 것 같지마는 그들은 영광의 성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제단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위로하십니다. 그들은 그 모든 수고를 쉴 것이고 주님 오셔서 그 역사를 완성하도록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느부갓네살이 그 사자굴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주께서 아버지를 시인하고 걸어갔던 신실한 길을 앞서 갔던 종들이 걸어갔던 것처럼 그들도 연약하지마는 이 충성한 증인을 따라서 그들도 걸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교회는 이처럼 피로 값주고 세워졌습니다. 구약 때 같으면 이처럼 죽어지면 하나님 나라를 설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죽은자의 증거는 결단코 무효가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제까지 순교자들의 피에 젖었고 앞으로도 이 순교자의 피가 필요할 것입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교회는 자기 생명을 걸고 생명의 주님을 증거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대 주제시오 거룩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대 주제이십니다. 그는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그는 거룩하고 진실하셔서 참되신 분이셔서 자기 언약을 신실히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그가 승리하셨으니 그를 위해서 수고한 백성들,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신 그의 백성들을 그의 영광에 영원히 참여시킬 것입니다. 주님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도록까지 결단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먹고 마심의 종의 되지 말고,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서 우리들도 능히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서 주님의 영광을, 주님의 마지막 구원 역사를 봉사하는 신실한 증인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아들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로 죄에 대해서 죽게 하시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게 하셔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 품 안에 두시며 주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아서 하나님의 권세의 나라를 봉사할 수 있도록 이처럼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이 생명의 복으로 주의 백성들을 더욱 새롭게 일깨우시려고 우리 주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이 승리의 날에 영광의 날에 주의 백성들을 주의 상으로 불러 모으셔서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피와 주님의 살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구약의 족장들은 썩어질 양식으로 배불렀지마는 우리에게는 썩지 않고 쇠하지 않은 양식을 주셔서 주님의 살과 피의 교제에 참여토록 해서 주님과 한 영 한 몸이 되게 하셔서 주님처럼 말하고 주님의 손으로 수고한 것처럼 날마다 세상을 이기고 사랑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도 온 세상은 먹고 마심이 세상의 구원이나 되는 것처럼 이처럼 노래하고 그런 것으로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있지마는 우리들은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새 백성으로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사오니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삶을 이 생명으로 해석하고 우리을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사랑의 봉사를 신실히 감당하는 귀한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의 백성들을 날로 새롭게 해주시며 한 상에 둘러있는 어린 자녀들까지라도 어려서부터 이 믿음을 더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힘있게 섬기는 승리하는 백성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복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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