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중간계시 I
성경: 요한계시록10:1-11:14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복주셔서 허물과 죄로 죽었든 저희들을 살리시고 이제는 하나님 품안에서 살계하시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며, 주의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히셔서 하늘에 속한 권세와 영광의 나라를 섬기게 하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이처럼 피로 값주고 사신 주님의 교회를 주의 상으로 불러 모으시고 주님의 얼굴 빛 앞에서 주의 피와 살의 교제의 생명으로 참여케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로 하늘의 평화를 얻게 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므로 주의 몸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어두움이 많사오나 주는 일향 미쁘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피로 값주고 사신 영원한 사랑으로 이제도 우리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주님의 피로 말갛게 씻기시옵고, 오늘도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우리의 생명이 하늘에 속한 생명으로 새롭게 될 수 있도록 주의 은혜를 주의 백성들을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의 백성들 중에서 경배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한계시록 10장1-11장14절까지를 읽고 10장을 강론하겠습니다. 이 계시록은 이렇게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해석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책을 주어가지고 그것을 연구하고 연구해서 겨우 몇 마디나 알아내라고 주신 계시의 비밀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 당시 교회가 로마 정구건 밑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환난의 때에 몇일을 두고 연구해서 조금 알 수 있는 그런 어려운 책을 주면은 그 교회에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당시 교회가 준면 확실히 알 수 있고 분명히 알 수 있는 그런 것인데 우리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은 자기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하나님을 확실히 알고 그 백성으로 믿음에 굳게 서도록 주신 책이기 때문에 그것은 근본적으로 쉬운 책이어야 합니다. 그런데다가 신약은 이제 밝혀진 계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세계를 주기 때문에 그것은 광명한 새벽 별처럼 빛난 것이어서 구약 조상들은 알지 못한 것들을 우리는 알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그것은 정말로 확실히 알 수 있어야 되는데 실재 해석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이런 많은 상징적인, 묵시적인 그런 환상과 언어들을 쓰고 있지마는 그런 것은 그냥 어떤 문학작품으로 쓴 것이 아니라 구약에 나타났던 환상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구약을 토대로하고 풀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런 것은 실재적인 문자적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지요. 문자적으로는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지마는 그러니까 이것은 문자적으로 받을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받는 것이라고 해가지고 마음대로 해석을 해버리면은 그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그것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많은 이단들, 특별히 종말론 이단들, 재림의 때가 심히 가깝고 세상 끝날이 가깝다, 그래 가지고 이 계시록으로 이런저런 상황들을 맞추어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고 그런 것이 항상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니까 해석할 때 있어서 대단히 조심해야 되는데, 그래도 항상 구약을 토대로하고 풀어야 된다. 그것은 문학적인 기교로 풀면은 많은 해석들이 가능하기 때문에 위험하고 항상 구약에 있어던 환상들이 신약에서는 어떤 언어로 쓰고 있는지, 그렇게 풀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들은 구약 이야기를 하면은 굉장히 두껍고 또 거기 성경을 보면 요시야, 이사야 해갖고 우리는 알지 못하는 이름으로 나오고 하니까 굉장히 어려운 것 같고, 신약은 27권으로 얄판막 하고, 또 요새는 기드원 협회에서 전도하느라고 학교에 나누어 주어요. 빨간 책. 읽어 보면 쉬운 것 같고, 구약은 굉장히 어려운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구약을 빼버리고 신약을 말하면은 그런 것은 성경을 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구약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이 여러번 읽으셔야 될 뿐만 아니라 읽으시지 못하셨을 경우는 제가 설명할 귀담아 들으시면 됩니다. 요새 교인들은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어 가지고 조금만 두꺼워도 그렇고 조그만 본문이 길어도 못읽고 감당을 못해요. 조그만 설교가 길어도 감당을 못합니다. 아마 사랑도 그럴 것이어요. 옛날 사랑 같으면 지긋하고 말이 있는 둥 하지마는, 요새는 몇일 만나보고 안되면 끝, 비슷해 가지고 성경도 그렇게 많이 읽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일단은 읽으시는 것이 제일 복된 일이고, 설명할 때 귀담아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앞에 나타날 이상한 일들을 알아맞추게 할려고 쓴 책이기보다는 기본적인 목적은 당시 로마 정권 밑에서 핍박받고 있는 교회를 격려해서 로마 정권 밑에 무릎 꿇지 않고 승리하게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입니다. 당시 로마 정권은 로마의 황제를 신의 아들로 말하고 그는 또 신의 제사장이어서 로마가 온 세계를 정복했을 때 모든 민족에게 종교적인 자유를 주어도 다 로마 황제 숭배는 필연적으로 의무적으로 해야된다. 이것이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말을 들으면은 옛날 이야기 같지마는 우리나라도 얼만 전에 일본이 우리 나라를 정복했을 때 일본 황제는 신의 아들이니까 전부 동쪽을 향해서 절을 해야되겠다. 지금도 그것 때문에 일본 국회가 시끄럽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거기 국립묘지 같은 큰 사당이 있는데 거기 죽은 군인들이 묻혀 있어요. 그것은 말하자면 국립묘지 같이 승격을 해서 국가 총리가 거기 가서 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왜냐하면 일본이 세계를 침략한 전범인데 거기 많은 전범들이 묻혀 있는데 거기 일본 수상이 가서 꽃을 바치고 절을 하면은 이제는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그런 것 때문에 그 많은 논란들이 있어요. 우리 나라 같으면, 태극기가 우리 나라 국기라고 해서 국민들이 다 좋다고 흔들고 있지마는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에 그것을 붙여 놓고 노래부르고 하라고 하면 옛날 일본 군국주의가 부활할 때도 야당도 반대하고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그러니까 외국에 나가면 그것이 일본 국기다 하지만는 일본에서도 이것이 그런 권위를 갖고 행사하는가 했을 때는 그렇지를 못해요. 그래서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핍박을 받았지 않습니까? 인제 그런 것처럼 로마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로마가 온 세계를 정복했는데 각 민족의 고유 종교에 자유를 주면서도 로마 황제는 신으로 숭배해서 다 로마에 복종하도록 해서 로마 황제 아래서 세계 평화, 그 천주교 가면은 P X 써진 것 있어요. 미군 물건 파는 PX말고 있습니다. 팍스 로마나 해가지고, 말하자면 로마 정권 밑에 평화, 지금 같으면 아메리카 밑에 세계 평화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로마 정권 밑에서 평화를 누리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주다. 우리의 왕이다. 그렇게 고백하지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고백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는 세상을 지배하는 자로서는 왕이지마는 그를 신의 아들로 추앙하는 그런 의미로 왕은 아니어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것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어요. 그것 때문에 그들은 로마 황제에게 경배하지 않습니다. 그 일 때문에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 핍박을 받으면 로마 제국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지요. 그때 사도 요한도 이 핍박을 받아서 밧모란 섬에 귀양을 가 있었는데 주일날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구약에서 하나님은 나팔수로 오시지요.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시면 천사장의 나팔 소리로 강림하십니다. 그러니까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이 들렸다 그 말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돌아보았더니 계시록에 나오는 이런저런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이 편지들을 주어서 이것으로 교회를 격려해서 이겨서 종말에 나타날 상급을 받도록 격려하는 서신이어요. 그러니까 요한 계시록에서 일곱 교회가 나오면은 아, 요새는 교회가 전부 타락했는데 이상적인 교회는 요한이 말한 일곱 교회가 있다. 여기를 보자. 특별히 에베소 교회, 서머나 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우디게아 교회가 있으면 빌라델비아 교회나 사데교회 같으면 이상적인 교회가 아니냐. 아무 책망이 있거든요. 그래서 교회 이름을 빌라델비아 교회나 서머나 교회로 붙이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싸움이 주제에요. 어떻게 짐승의 권세인 로마 정권에 대해서 투쟁을 하고 믿음을 지켜낼 것인가, 싸움이 주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싸움을 잘 싸울 것인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순결하게 지킬 것인가? 그것을 강조하지 그들이 얼만큼 구제를 많이 했는가, 얼만큼 사랑을 많이 했는가, 그런 일하고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만일에 신사참배 같은 일이 또 들어오면은 계시록의 교회를 가지고 교회를 격려해야 될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어야 되겠다. 싸움이 모델이니까. 그러나 그렇지 안했을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르지요. 그러면은 지금 로마 정권을 짐승의 권세라 하는 것은 문학적인 기교로 그 정권이 포악하니까 그러는가? 그렇게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쿼어바디스 같은영화를 보면은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하고 싸우고 하니까 야, 무시무시한 정권이다 하지마는 우리나라 전두환 정권보다 조금 더 나를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어떤 것 때문에 짐승의 권세로 묘사하느냐 하면은, 그것은 구약 때 다니엘에게 보여준 환상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그 나라가 망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당시 세계 제국이 바벨론에 넘기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이방의 신들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땅에 살지 못하고 이방 땅에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들이 사모한대로 버린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어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고 일정한 징계기간이 끝나면 그들을 다시 돌이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를 가나안 땅에 세우실 것입니다. 이슬엘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않아도 그들을 자기 백성 삼으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결단코 그들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70년이 찰 때쯤 되어서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언제 이 민족이 해방을 받을 것인가,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땅에서 이렇게 모독을 받고 이방인들이 너희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그렇게 모독해도 되겠는가? 그 일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기도했는데, 물론 이 환상은 다른 때 먼저 나타났습니다마는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어요. 환상을 두 번 보여주셨는데 한번은 바베론 임금에게 보여주었고, 그 다음번은 다니엘에게 보여주었고, 그런 환상에서 짐승이 나옵니다. 바벨론 임금이 보았을 때는 큰 번쩍번쩍한 귀한 금속으로 된 신상을 보았어요. 제일 이 쪽에는 금머리고, 그 다음에는 은으로 되어 있고, 그 다음에는 놋으로 되어 있고, 발은 철로 되어 있고, 발가락은 철과 진흙으로 섞어져 있고, 무시무시한 금신상을 보았습니다. 우상을 본 것이어요. 그랬는데 하늘에서 뜨인 돌이 날아와 가지고 그 발을 치니까 온 신상이 한거번에 무너져버리고 그 돌은 태산 같이 크게 되었다. 하는 것을 한번 보았습니다. 그것을 다니엘이 설명을 해주었지요. 이런 신상은 금머리는 바벨론의 임금이고, 임금 다음 나라에 임금보다 못한 은같은 나라가 나타날 것이고, 제일 마지막에는 철같은 나라가 나타날 것인데 그것은 아주 강력한 나라고 포악한 나라가 될 것이다. 이런 말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서 그 나라를 무너뜨리고 온 땅이 하나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니엘에게 다시 환상을 보여주었는데 이방 임금이 보았을 때는 찬란한 신적인 모습이지마는 다니엘에게 보여주었을 때는 짐승으로 보여주었어요. 첫째는 사자같고, 곰같고 표범같고, 그리고 그것이 섞어진 것 같고. 이런 네가지 짐승을 갖고 보여줍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가, 그때부터 말하자면 이방 제국은 짐승의 나라로 묘사가 되는 것이어요. 그런데 다니엘이 예언한 대로 마지막 철 제국에 해당하는 것이 로마 제국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고, 그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그것이 짐승이어요.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를 대항해서, 예수님을 대항해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높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짐승입니다. 그 국가가 민주화되었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대항한다는 의미로 짐승이어요. 왜냐하면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을 토대로하고 설명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자기 자신을 신의 아들로 추앙하고 모든 종교가 나를 섬겨라. 내 칼 밑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한 종교가 있느냐? 그러니 나를 섬겨라. 내 권세 밑에서 종교의 자유도 있는 것이 아니냐? 이런 식으로 해서 자기를 신적인 자리로 올린 것이어요. 그것이 소위 정권의 짐승성, 야수성이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 로마 정권 밑에 이 계시록을 주었지마는 이것은 그때 환난받은 한 순간만을 위해서 주고 우리로 옛날 6.25 때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그렇게 읽으라고 준 책이 아니라, 장차 될 일, 종말에 될 일, 지금 너희들이 핍박을 받고 너희들이 싸우고 있지마는 이런 싸움에세 하나님이 너희들 보살펴 줄 것이고, 장차 이보다 더 큰 싸움이 있겠지마는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이기게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다. 그렇게 장차될 일, 세상 끝날까지의 일이 여기 담아 있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도 대단히 필요한 책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이라는 것은 로마 정권처럼 그렇게 옛날 국가만 소속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정권은 다 짐승의 정권이어요. 그것을 교회가 분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된 뒤로는 완전히 복음호 된 줄로 알고 아주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분도 천주교 신자거든. 그리고 지금은 투쟁의 때는 아니고 화해를 위해서 봉사할 때다. 그전에는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했지마는 지금은 화해서 봉사할 때라고 해서 대단히 희망이 들떠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종교들도 연합을 해가지고 무엇인가 사회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일해야 되겠다. 모든 정치적이 세력들도 화합하는 판에 종교가 변화를 받지 않고 싸움질을 해서 쓰겠느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새 김용욱씨 마지막 강의도 기독교를 그렇게 까지요. 일리는 있는 말입니다. 교회 현실을 비판하는 말에 일리는 있고, 자기가 가진 철학으로 보았을 때도 기독교가 제일 나쁠 것이어요. 그런데 본래 그분이 기독교 신자에요. 무슨 말이냐 하면은 기독교 현실로 보았을 때는 교파 싸움을 두고 하는 말이 될 것이어요. 자기 교파만 아니면 전부 이단이거든요. 그런 말이 될 것이어요. 그런데 그분의 철학으로 보았을 때는 좀 고약한 것이 예수 믿는 신자는 예수님만 하나님의 아들이고 남어지는 전부 가짜라고 그러거든요. 전부 지옥간다고 그러고. 그러니 기독교를 두고는 세상이 화합은 안됩니다. 기독교가 전파 당시에 외국의 의술을 갖다 주고, 또 민주화시켜서 남녀가 한 자질에 앉아서 머리에 무엇을 안쓰고 노래부르고, 그래갖고 옛날에 예배당 그러면 연애당이라고 한 것이어요. 남녀가 유별한 것인데, 물론 그때는 기억자 교회였습니다. 처음에는 가운데 목사가 서면은 이쪽은 남자 저쪽은 여자 해서 서로 못보게 지었습니다마는 그래도 남녀가 함께 모여서 노래부르는 것은 기생방에서나 있지 세상에는 없는 일이지요. 어떠튼 그렇게 해서 그때는 혹 대신들이 예수 믿으면은 종들의 신발도 올려주고, 말하자면 천지가 바꾸어지는 판이니까. 그렇게 좋은 복음을 전했는데 요새는 교파 싸움이나 하고 묘한 일이 되었다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만 오직 예수님 신이고 예수 믿으면 천국가고 남어지는 몽땅 지옥이고, 그러니 그것을 복음이라고 증거해갖고는 그런 것은 다른 사람에게 분노를 일으켜 싸움이나 하면 모를까 그런 것은 세상을 구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걸 갖고 마지막에 김용욱씨가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지금 세상은 그분이 하는 말이 다 보편적인 사상입니다. 왜냐하면은 옛날에는 종교가 지역 종교여서 어느 민족의 신, 국가의 신으로 해가지고 국가와 신이 일치됩니다. 그래 가지고 싸우지마는 지금은 그런 지역성을 뛰어 넘어서 세계화 되고 유대교가 이스라엘의 종교면은 기독교는 세계 종교고, 흰두교가 인도의 종교면은 불교가 세계 종교고, 이렇게 해서 고등 종교가 되어 가지고 인간의 지역과 장벽을 뛰어 넘어서 세계화되고 이렇게 되어야 세계 사상을 품고 할 것인데, 오직 예수님 구주라고 하는 것은 옛날 기독교를 복음이라고 위장해 갖고 나타낸 것 뿐이지 그것이 무슨 기독교냐? 기독교는 바울이 증거한 것이 아니냐? 그렇게 해서 헬라 세계와 유대 세계가 만난 것이 아니냐? 하고 쭉 설명을 하는 것이어요. 그런 것이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무식했을 때는 큰 나라 신이 힘이 쎄고 하지마는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닌데, 어느 특정한 자들이 믿는 것만 믿으면 천국가고 남어지는 지옥이라고 그러면은 그렇게 불사스러운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기독교가 제일로 불쾌한 것이어요. 뭐 기독교인들 사는 것이나 안믿는 사람들 사는 것이 엇비슷하고, 오히려 이런 철학적인 강의를 하면 목사 설교보다 내용이 풍부한 것 같고, 그런데 예수 믿으면 천국가고 만어지는 전부 지옥이라고 그러니 그런 말을 듣고 참을 사람이 누가있냐고요. 그것을 갖고 세계를 품을 수 있냐? 그러니 그런 복음은 버려라. 서로가 품을 때가 아니냐?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런데 당시 로마 정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를 부인한다는 의미로는 지금 세계까 추구하고 있는 정신이 전부 그것입니다. 우리 김영삼 장로보다는 김대중 대통령이 천주교는 무슨 이름이 없구만, 신부들만 직책이 있고 무엇이 별로 없구만. 그 사상을 들어보면 우리 대통령 사상이 훨씬 나서요. 제가 지금 정치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삼씨 말을 들어보면은 저도 모른말을 해갖고 깊은 해석을 하라고 묘한 말을 하고 있어요. 아주아이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김대중 씨가 훨씬 휼륭하지마는 글쌔 그분에게 오직 예수 믿음만이 구원이냐 그러면 그분은 아니라고 그럴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정한 신이 있는 것 뿐이지 그분이 천지를 창조하고 온 세계를 구원하고 온 세계를 심판한다. 그런 것은 아마 아닐 것이어요. 만일에 그것이 사실이면 그런 도로 증거를 해야되겠는데 그런 말을 했다가는 호남 지역당 뿐 아니라 그는 아주 세상에서 묘한 사람 만난 것이지요. 그런 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이나 좋아할까, 남어지는 다 싫어할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런 사상은 아닐 것입니다. 어떠튼 지금 세계가 추구하는 것도 오직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세계적인 정부 지도자, 세계적인 경제, 세계적인 통합, 이 일을 통해서 세계 분쟁을 없애고 절대의 빈곤으로부터 사람들을 벗어나게 하고, 사람들이 가난하니까 싸우지 배부르면 안싸울 것이 아니냐? 그런데 실은 배부른 사람들이 싸우거든요. 기득권이 자기 세력을 지킬려고 최신 무기를 동원하지 가난하면 싸움도 못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해석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가난하니까 싸우지 사람이 배부르면 사움질 하겠냐? 그런데 배부르고 밥먹을려고 돈벌 염려가 없는 사람들이 타락은 극돼화 하는 것이어요. 그리고 제일로 밥먹을려고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성실하고 깨끗한 사람들이어요. 사람들이 해석하면은 못배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죄는 전부 거기있어요. 그래서 무슨 사건이 터졌다하면 그 가정이 정상적인 가정이냐, 가난한 가정이냐? 중햑교 나왔냐, 중퇴했냐, 이것을 따져갖고 설명하고 대학교 나온 사람들이 한 것은 아무 설명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도 국가를 망친 것은 전부 지도급이고 육사생이 칼을 들면은 서울대생이 봉사해갖고 그렇게 된 것이지 우리 전대생 같으면 거기 끼도 못해요. 전부 그렇게 된 것이어요. 그리고 세금내고 전쟁 터지면 싸우고 한 것은 전부 민초들이어요. 그런데도 사회적으로 분석하면 무식해서 그런다, 가난해서 그런다. 배고파도 그런다. 이것만 해결되면은 인류가 개발되고 평화가 올 것이다. 이렇게 전부 설명하고 있어요. 완전히 꺼꿀로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제는 미국의 권세 밑에서 온 세계가 국가적인 장벽을 없애고 그리고 세계 물건이 어느 한 국가에만 통용되면 되겠냐? 온 세계가 자유로 고유하자. 그럴려면 시장을 개방하자. 말은 그 말이지요. 그런데 부자하고 가난한 사람하고 시장을 개방하면은 --무슨 말인냐 하면은 고속도로를 닦으면 이제 전라도는 상권이 없어져요. 그전에는 자기 지역에서 장사를 하면 살 수 있었지마는 어떤 사람이 물건 띠어 오면은 지금은 고속도로가 있으니까 돈이 전부 빠져나가고 그렇게 하면 범위가 큽니까? 조금 좁히면은 여기저기 마트가 생기면 동네 구멍가계는 다 없어져버리지요. 그래 놓고 공평하게 경쟁해보자. 하면은 그건 가난한 사람들은 죽는 것이어요. 말은 공평하자는 것이지요. 그래 놓고 세계가 개방되면 모든 부는 미국으로 모아들지 가난한 나라는 되는 것이 아니어요. 세계 인류가 아니면 못살아 남아요. 그러니까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요새 같으면 전자 계통에 머리가 있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어라고 일해도 돈벌이는 적고, 이제 부가 전혀 개편된 뿐만 아니라 아주 극대화되고 있지요. 그러니까 미국 정권 밑에서 세계를 국가적인 알력관계를 없애고 또 모든 물건을 서로 공유하고 그렇게 할려면은 제일 먼저 해결할 것이 종교적인 분쟁이어요. 문화적인 충동, 이런 것을 없애야 되어요. 나는 좋다는 것을 상대방이 싫어하면 안되거든요. 가령 말만해도 그럽니다.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가서 학교가서 빠구리쳤다고 하면 우리는 도망쳤다는 말이어요. 그런데 경상도 사람은 묘한 다른 의미입니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이 서울가서 아따 뻣치다. 그러면은 우리는 피곤하다는 말인데 서울 사람은 죽었는갑다 그렇게 생각해요. 서울 사람에게 아따 용보셨오 그러면 뺨맞을 일이지요. 욕보았다는 말은 성적인 일을 당했다는 말인데, 우리는 고생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말만 틀려도 큰 싸움이 나는데 가치관이 틀려버리면은 이런 것은 안되는 것이어요. 그럴려면 종교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되겠다. 이것이 근세부터 나타나는 세계 정신들이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가 복종하므로 많은 문화적인 차이를 갖고 많은 빈부의 차이를 갖고도 어떻게 사랑으로 함께하는가, 이런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평균화시킬 것인가, 화합할 것인가? 여기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가정의 화합을 깨뜨리지 않을려면은 형제들이 재산이 똑같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형님은 떼부자고 동생은 가난해도 그 가족은 괜찮해요. 왜냐하면 형님이 부자인데 자기만 먹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것으로 항상 동생을 보살필 것이니까 우리 형님 부자라고 뽐내고 다녀요. 저는 가난하면서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형님이 부자인 것이 형님만의 부자가 아니거든요. 자기를 위해서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런데는 많이 차이가 있어도 불화가 없습니다. 오직 형님이 잘되기를 소망해요. 그런데 누가 좀 싫어하느냐 하면은 동생 부인이 좀 싫어하겠지요. 거기는 직접 형제가 아니고 결혼으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조금 다를 것이어요. 그러지만 형제간에는 그런 분쟁이 거의 없어요. 부자지간에도 없지요. 제일로 아버지를 욕할려면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자네 아들이 자네보다 똑똑하데. 그러면은 저것이 욕을 하는 것인지, 칭찬을 하는 것인지, 어떠튼 아들이 똑똑하다니까 좋은 것이어요. 그만큼 서로 알력이 없는 것이어요. 그런데 세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형제 간에는 그런 알력이 없지마는. 그러니가 인류가 하나되는 것은 사람들이 똑같이 유식하고 똑같이 부자되고 똑같이 유능해서 평화되는 것은 세상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건 거짓말이어요. 손가락이 전부 다른 것처럼, 몸의 장부의 기능이 다른 것처럼 전부 다르고 조화됨으로 우주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똑같이 획일화된 것은 거짓말이어요. 아무리 세상이 부자되어도 빈곤의 차이는 있는 것이어요. 그것은 말하자면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활이 해결되어도 나보다 부자가 있으면 불쾌하기는 마찮가지에요. 그러니까 그런데서 평화를 찾을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인류가 이처럼 분쟁하고 싸우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원수로 있기 때문에 그럴뿐만 아니라 서로를 향해 싸우기 때문에 서로가 다른 사람을 지배해야만 자기 만족이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족에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평행 종처럼 살고도 자식에게 분노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니까. 그러고도 더 못해준 것이 마음이 짠할만큼 그렇게 된 것이어요. 이 사랑 안에서만 극복이 되지 어떤 인간의 기능이 똑같으냐, 영광이 똑같으냐 이런 것으로 해결되는 방법은 없는 법이어요. 교회가 아무리 사랑의 공동체여도 우리가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 가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또 몸을 주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대신해서 서로를 봉사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채워주면은 그런 것은 참된 평화가 가능하고,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만 인류는 평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은 섬기지 않고 인간 영웅을 세워서 온 세계가 평화한다는 것은 고대의 제국들이 했던 사상이나 현대 국가들이 하는 사상이나 하나님을 모르기는 똑같은 것입니다. 그 권세를 누가 업습니까? 종교가 업습니다. 이 종교를 사용하지 않고는 세계 제국의 지배는 불가능해요. 그렇게 해서 거짓된 종교가 한 사람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몰아줄 수 있도록 세계 평화를 주장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계시록이 설명하는 방식이고, 요새 보면은 천주교의 교황이 그 일에 앞장서고 있지요. 현대인들의 사상에 딱 맞는 일이어요. 그 사람들이 우리 나라 민주화를 위해서 많은 투쟁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로는 공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로 민주화가 안된 것은 그 종교에요. 왜냐하면 천주교의 신부를 통해서 기도하지 않으면은 하나님은 안들어요. 천주교의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은 하나님이 용서하지 안해요. 세상에 그런 인종이 어디 있어요.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대항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못하고 천주교 신부를 통해서만 예수를 만날 수 있다고 그러면은 그가 신이지 누구에요. 그래도 사회적으로는 평화의 사도로 되어 있고 민주화의 사도로 되어 있고 온 세상의 평화를 주장하는 것처럼 되어 있어요. 그것이 짐승의 정체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 것을 교회가 분별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계시록은 로마 교회가 당했던 직접적인 환난, 칼의 권세 밑에서 고난, 그런 것은 받고 있지 않지마는 이제는 그런 마귀가 자기의 정체를 바꾸어서 다른 방향으로 교회를 잠들게 하고 교회도 세상처럼 부를 가지면은 평화가 없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부요한 것처럼 교회도 부요해야 됩니다. 우리 창고가 커야됩니다. 만사형통해야 됩니다. 그래야 크신 하나님으로 복이 있고, 그 크신 하나님을 전도할 수 있지 교회가 세상보다 가난하면은 세상에 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지금 교회가 슬로건이어요. 그래서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 박정희 대통령 지금까지 표를 얻고 있습니다. 그것에 잘 부합한 것이 우리 오순절 교회에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입을 넓게 열라. 하나님이 채우시리라. 그래 갖고 십일조만 내고 기도만 하면 돈이 싹 들어오고 병이 낫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거기 가난한 사람들도 언제가 부자될려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어요. 그리고 잠새껏 기도하고 새벽기도하고 있을 것이어요. 그러면서 우리 나라 교회는 무엇인가 개척했다 하면은 그냥 서고 거기 유명한 장관도 있고, 그리고 그냥 십일조만 내면 부자가 되고, 이렇게 선전이 되면 교회가 부흥이 되고 만일에 그렇지 않으면 신이 작아요. 큰 예배당에는 큰 신이 계시고 작은 예배당에는 작은 신이 계시니까 거기 갈 것이 없어요. 그러니 목사도 이제는 대학원을 몇 개쯤 나와야 되어요. 만일에 목사가 그렇지 않으면 그건 가치가 없어요. 그러니까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나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교회는 더 큰 신의 이름으로 추구하니까 효과가 더 있겠지요. 왜 교회는 미국 사람하고 직접 통하거든. 그러니까 효과가 휠씬 더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자랑하는 것이어요. 성도들이 추구하는 것이어요. 그리고 성도들도 살다가 조금 어려우면 내가 믿는 신이 무엇인고, 내가 무슨 죄가 많아 이런 벌을 받는고, 고민이 가득하고 근심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기도해도 해도 자기 일이 잘 안풀이면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전부 그것 뿐이어요. 교회나 세상이나 추구하는 것이 똑같습니다. 사도들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주노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문제가 아니라 은과 금을 보아라. 이것으로 세상을 미혹하고 있지요. 그래서 지금은 세상이나 교회나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시대가 훨씬 싸움이 어렵습니다. 차라리 3.8선을 그어놓고 전쟁을 하면은 눈감고 총을 쏴도 누가 맞으니까 그래도 괜찬해요. 그런데 만일에 그런 것 없이 그런 사상과 싸우려면은 대단한 분별력이 필요하고 충실한 믿음이 필요한 것이어요. 지금 시대가 훨씬 싸움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들을 계시록을 통해서 분별을 해야될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은 이런 환상으로 되어 있지마는 굉장히 복잡한 것이 아니고 실은 읽어보면은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실은 본론에 해당하는 가운데 부분에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이것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각자가 틀리면은 3*7=21 복잡한데 실은 일곱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여섯 인이 있고 일곱 인이 떼지면은 일곱 인은 독자적인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곱 인 속에가 일곱 나팔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나팔을 불때는 여섯 번째 나팔이 지나고 나면은 일곱 번째 나팔에는 거기 일곱 대접이 들어있습니다.그러니까 인에서는 여섯 번째 인에게 마지막이 들어있고, 나팔에는 여섯 번째 나팔에가 마지막이 들어있고, 그리고 마지막 일곱 대접에는 마지막 일곱에가 다 들어있겠지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점층적인 반복법입니다. 한번 인에서 쭉 말합니다. 그 다음 일곱이 되면 끝이 될 것 같은데 끝이 아니고 다시 한번 일곱 인에다가 일곱 나팔을 담아 놓았어요. 그러니까 끝이 굉장히 확대된 것이지요. 요새 컴류터 한 사람들 같으면 끝을 몇번 클릭한 것이어요. 거기를 몇 번 확대해서 본 것이어요. 그렇게 해서 말하자면 종말에 나타날 마지막 사건에다가 초점을 맞추는 데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아서는 복잡한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또 단순한 것은 일곱이 있으니까 그 일곱이 무엇인가 일일히 알아맞추려면 상당히 복잡한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실은 여섯 번째가 마지막 사건이 있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 전환점을 담고 그 앞에까지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큰 심판을 내리리라. 크게 심판하리라. 이런 말만 거듭거듭 강조하지 특별한 사건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앞에 것은 그냥 그 분위기만 읽어도 되고, 마지막 여섯 번째 인이 무엇인가를 보았을 때 마지막 재앙은 이것이구나 알 수 있고, 그 다음 일곱이 오겠지요. 그 다음에 일곱이 오기 전에 무엇이 있느냐 하면은 여섯과 일곱 사이에가 설명한 것이 쭉 들어있습니다. 가령 우리들이 연속극을 볼 때도 그런다고 했지요. 마지막 끝맺음을 할려면 복습이 있지요. 옛날에 그랬는데 하면서, 그랬을 때 마지막 끝편에 옛날 것을 한거번에 알 수 있도록 무엇이 좀 담아져 있어. 왜 이 결론이 와야 되는지 연결을 시킵니다. 연속극도 대개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데 마지막 일곱을 말하기 전에 여섯이 끝나고 나면 여섯과 일곱 사이에 설명하는 것이 들어 있어요. 이 설명이 실은 계시록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록의 메시지에요. 바로 마지막 일곱이 있기 전에 왜 마지막 일곱은 안왔는가? 이 사이에 있는 이것 때문에 그렇다. 마지막 일곱이 오기 전까지는 이 일이 진행될 것이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이. 그리고 이 일이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그럴려고 일곱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쨉을 미긴 것처럼 일반적인 이야기만 있고, 마지막 그 사이, 여섯 번의 마지막 사건 같은 것을 넣어놓고 일곱이 옵니다. 일곱 그 사이에 왜 아직은 마지막이 아닌가? 왜 마지막이 와야되는가, 그 일을 담고 있는 것이 그 사이에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 사이에 있는 것이 계시록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도 그 사이 계시에요. 9장12절을 보면은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후에 화 둘이 있도다. 13절,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여섯째 천사의 나팔까지가 21절까지입니다. 9장 끝까지. 그리고 나서 일곱재 나팔이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은 11장15절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리고 그 사이에 낀 것이 오늘 읽은 기사에요. 본문은 한거번에 길게 읽었습니다마는 또 시간도 많이 갔으니까 설명은 간략히 할렵니다.
그러니까 실은 오늘 강론할 본문이 중요하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오늘만 여기 사이에 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나팔에서 여섯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낀 것이 있지요? 이 앞에는 여섯 번째 인과 일곱 번째 인 사이에 낀 것이 있었지요. 그것은 거의 비슷비슷한 것이어요. 그러니까. 마지막 있을 사건, 왜 마지막이 와야 되는가, 세 번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비슷한 것입니다. 이 앞에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있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이스라엘 십사만 사천을 인치도록까지는 땅 사방의 바람은 불지 못하도록 해라. 그 한 가지가 있었고, 그 다음 허다한 많은 무리들이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으로 나오더라. 와서 구원을 노래부르더라. 그런 두 가지 기사가 있었지요. 그리고 여기서는 무엇이 있습니까? 천사로부터 펴놓은 책을 받았는데 이 펴놓인 책을 증거하라고 했습니다. 그럴려고 책을 먹었습니다. 증거하는 자의 한가지. 그 다음 뒤에 보니까 두 증인이 하나님의 권능을 받고 증거했는데 핍박을 받아 죽더라. 두 증인이 살아나더라. 그리고 나니까 큰 심판이 임하더라. 증거에 대한 문제가 오늘 읽은 본문에 있지요. 책을 갖다 먹고 증거해라. 두 증인이 증거해라.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실은 엇비슷한 것을 더 진행된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 가지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해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계시록은 핍박받고 있는 교회에게 어떻게 주님께서 승리했으니 교회도 승리할 것인가, 이것을 강조하지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사나가 될 것인가, 그런 것을 강조하는 본문은 아니어요. 그러니까 마태복음하고 약간은 문맥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 이스라엘 십사만 사천, 그것을 제가 7, 8장을 해석할 때는 그것을 그냥 나누어서 이스라엘과 교회를 나누어서 해석을 했는데, 전통 해석처럼 그냥 같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계시록 문맥 자체에는 더 맞습니다. 단지 무엇 때문에 제가 나누는 것에 관심이 있느냐 하면은 앞으로 이방인이 충만히 믿고 그렇게 했을 때 이스라엘도 민족적으로 돌아오리라. 그렇게 로마서는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했으면은 독특한 기독교 국가가 소위 예루사렘을 중심한 팔레스틴에 건설될 것이어요. 그렇게 되면은 계시록에 있는 문자적인 전쟁이 가능하게 되지 않겠는가? 사실입니다. 가능할 것이어요. 그런 역사적인 조망 때문에 그런 것이지 계시록 자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어떻게 구원하는지 그런 문제는 강조점이 아닙니다. 단지 문제는 마지막 전쟁들을 팔레스틴이나 중동지방을 배경으로 거의 묘사를 해놓았어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독특한 기독교 국가가 된다는 의미로는 문자적으로 가능할 수 있겠지마는 그러나 계시록의 근본 배경은 이스라엘을 언급하려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실은 구약 교회인 이스라엘을 모델로 해서 종말에 나타날 큰 전쟁과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스라엘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마는 계기옫 자체의 문맥을 교회가 어떻게 핍박을 받아서 승리할 것인가, 그것을 구약의 교회인 이스라엘, 구약의 가나안 땅 전쟁, 그런 것을 모델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나누지 말고 일단은 둘을 합쳐서 이해를 하십시오. 전통 해석처럼 그렇게 하십시오. 그 해석이 어느 것을 선택해야할지 복잡합니다마는 그래도 일단은 계시록 전체적인 문맥에 그대로 맞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숫자적으로는 십사만 사천을 보호하고, 상징적인 수지요. 그 수는 허다한 무리인데 마지막 하나님이 구원을 기념하도록 초막절을 기키도록 하나님 단에 나오고 있지요. 그렇게 해석하면 맞아들어갈 것이어요. 그런데 오늘 여기 10장을 보니까 9장에서는 여섯째 나팔이 무엇이었습니까? 다섯째 나팔하고, 다섯째 나팔은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의 군대가 사람을 다섯달 동안 괴롭힌다고 했습니다. 여섯째 나팔을 부니까 이제 큰강 유브라데 강이 마르고 거기 이만만의 마병대가 나는데 그 말이 아주 무시무시하게 생겼습니다. 입은 사가같은 데 거기서 연기가 나오고 불이 나오고, 꼬리는 뱀처럼 되었는데 꼬리 끝에 사람 얼굴이 달려가지고 이것으로 사람 1/3을 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면은 이만만의 마병대가 유부라데 강에 있으면 중동 전쟁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왜 그러느냐 하면은 구약 때 이스라엘이 망하면 어떻게 망합니까? 바벨론으로부터 큰 군대가 오면은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그것을 북방에서 끓는 가마가 남을 향해서 기울린다. 예레미야서는 그렇게 상징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데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오면 이스라엘은 망해요. 그것이 마지막 이스라엘의 멸망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큰 강 유드라데 강에 이만만의 마병을 놓아라 하면은 이것은 이스라엘이 끝장나는 이야기에요. 그런 식으로 여섯째 나팔에서 교회가 당할 큰 환난을 말했습니다. 이것을 세대론자들이 풀면은 아까 내가 설명을 것과 비슷합니다마는 그때 동방으로 군대는 무엇이냐? 동방은 중공이 아니냐? 그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중공이 세계제국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할려고 옛날 징기스칸이 유럽을 정복했던 길을 따라서 비단길로 고속도로를 닦았지 않냐? 이억의 보병을 동원할 나라는 중공밖에 없다. 그 사라들이 지금은 세계 분쟁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지마는 세계 화약고가 중동이 아니냐? 만일에 중동에 일이 벌어지면은 석유 전쟁이 벌어지면은 우리는 덜덜 떨어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 일을 해결할려고 자기들도 한몫 주라고 말하자면 이억의 보병을 그쪽으로 파병할 것이다. 그러면은 세계 전쟁이 안일어나겠느냐.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지요. 그럴 듯 하지요. 그 사람들은 세계 정세를 분석해서 성경에 맞추는 것인데 성경은 그런 것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알고 있는 영역은 팔레스틴을 중심한 바벨론, 페루시아, 헬라, 로마, 이것을 가지고 세계를 설명하지 중공이 어쩌니 미국이 어떠니 하는 것은 성경은 상관없는 것이어요. 지금 우리들이 세상을 분석할 때 하고 있는 말이지, 성경은 이방인은 수에 칠 가치도 없고 그때 이방인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이방 제국하고 관계하지 그 밖에 사람은 수에 칠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직접 중공을 예언한다거나 그런 법은 없습니다. 단지 세계 정세를 분석해 보니까 그럴 듯하다 그런 이야기지요. 앞으로 세계가 발달되면은 중국이 미국의 생산을 넘어설 것이다. 더구나 인제 예날 같이 기업의 비밀들이 있으면은 힘들겠지마는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니기 때문에, 많은 분석들을 하고 있지 안해요. 또 지금도 이번에 팔레스틴 아라파트하고 로마 교황하고 어떻게 했는데 예루살렘에 대한 특별 지위를 가지고 어떤 것을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정복을 했어요. 그런데 예루살렘은 여러 성지가 같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수도는 지중해에 있는 텔라비브고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를 했어요. 인제는 대사 만날려면은 예루살렘으로 와라. 그러면 마호멭의 성지도 거기 있거든요. 그러면 세계 대전이 붙는다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유엔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국제 도시로 독특한 지위를 주어야 되지 이스라엘의 수도로 지위를 주면 안된다. 그 정해 놓은 것이 있어요. 만일에 그것이 깨어지면은 어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다가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유대인이거든요. 세계 경제를 잡고 있는 것은 유대인이어요. 그런 것을 가지고 세계 정세를 분석해서 세계대전을 설명하는 것이 세대론자들의 이야기고 그런 것이 종말론에서는 대단한 인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재로 세계 대전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예언할려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은 관심있게 보되 그것이 마지막은 아닙니다. 마지막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를 신적인 권위로 올리는 사람이 나타나서 세계 종교를 다시 통합하고 그렇게 세계 정부를 구현하고 그런 방법으로 진행되기 전까지는 아직은 아니어요. 단지 문제는 마지막 때가 그때니까 그때나 시간표를 보라. 그 말이 아니라 항상 이 짐승의 권세는 교회를 핍박을 해요. 그러니까 이 핍박의 원리를 알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지 아직은 전재이 아니라고 가만히 있다가 신앙 타락하지 말라 그말이어요. 사탄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믿음으로 싸울 것을 생각않고 미래가 어떻게 되는가, 그때 짠 하고 올라가야 될 것으로 알고 그때만 궁리하고 있으니까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니어요. 가령 부부끼리도 남편을 사랑하면은 남편이 없을 때도 내가 어떻게 남편을 대신해서 가족들을 보살필고, 그 일만 생각할 것이어요. 그러나 만일에 옛날 같으면 작은 각시들이면 작은 각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올 날자만 보겠지요. 그날 내가 청소를 딱 해버려야 되겠지요. 그날 멋있게. 그렇지 않겠어요. 그전에 누가 그래요. 장가를 두 번 갔는데 아, 본처가 한약을 다려주는데 약이 조금했다가 컸다가 형편 없어요. 그래서 기분이 나빠갖고 작은 각시에게 자네가 다리소. 하고 주었더니 딱 몇시시 정확해요. 이렇게 정성을 갖고 약을 다려야 될 것인데 그러니까 내가 첩질을 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작은 각시를 예뻐했는데 나중에 창호지가 뚤어져 있어서 우연히 마당을 내다보니까 첩이 약을 다리면서 양이 많으니까 조금 따라네거든요. 딱 맞출려니까. 그런데 본처는 남편을 위하니까 약 양이 많든지 적든지 아주 재대로 한디, 이 첩은 칭찬만 받을려고 하니까 몇 시시만 맞추면 되거든요. 말하자면 요새 교인들이 그 첩하고 비슷해요. 평소 때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그것이 성경이 준 목표인데, 그것 안보고 종말이 언제나? 그때 마지막 버스를 타나 못타냐, 이것만 보고 있으니까 이것은 신자들의 태도가 아니어요. 그러니까 미혹을 받아요. 그러니까 재산 버리고 자기 식구 다 버리고 기도한다고 그래요. 왜, 자기는 마지막 버스 탈 것이어요. 그러니까 미혹을 받아요. 성경은 그런 식으로 종말을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어요. 마지막 싸움은 강렬하지만 지금도 싸움은 있어요. 이 싸움은 끝나는 법이 없어요. 그러니 너희들이 믿음으로 깨어라. 지금 너희들이 평안할 때 이기지 못하면은 앞으로 큰 환난 때는 어떻게 이길려고 그러느냐? 이겨라. 이걸 말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들은 마지막 큰 환난이 올 것이고 지금은 괜찮다. 하고는 잠들고 죽는 것이어요. 실은 국가도 그런답니다. 국가를 개혁할려고 하면 전쟁하면 돼. 개혁되니까. 긴장하니까 좋아져요. 국가가 국력이 망하고 잘못된 것도 평화시에요. 여러분이 건강을 회복하는 것도 아팠을 때고 평안할 때는 건강할 때는 건강을 해쳐도. 꼭 신자들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짐승의 정체를 잘 분별하라 그런 말이어요. 그런데 왜 지금은 주님께서 마지막 심판을 지체하고 있는가? 여기 보면은 10장4절을 보면 「일곱 우레가 발한 것은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고, 7절을 보면은 「일곱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그 앞에 보면은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곧 종말이 온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어요. 그리고 일곱 우레 소리가 발하니까 기록할라니까 기록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일곱 우레는 하나님의 소리에요. 그것을 기록하지 말라는 것은 아직은 아니라 그말입니다. 기록하면은 그것은 지금이어요. 기룩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은, 그러니까 마지막 일곱을 흥미진진하게 가르치고 있지요. 나팔을 불 때 네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늘에 독수리가 날아가면서 화, 화, 화가 있도다. 한번 뜸을 드리면서 화를 선언했지요. 그 다음에 다섯째 나팔을 부니까 한 화만 지나갔다. 앞으로 두 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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