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일곱 나팔을 붐 I

찬미예수님 2026. 2. 9. 18:03

제목: 일곱 나팔을 붐

성경: 요한계시록8:1-11:14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복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이제 우리를 하나님 안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대면하며 기뻐하며 주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하셔서 권세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봉사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이 믿음 가운데 깨어 살지 못하고 어두움이 많사오나 우리를 사랑해서 피흘리신 아들의 피로 이제도 우리를 말갛게 씻기시고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크신 은혜를 따라 오늘도 주의 상에서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며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봉사하는 힘있는 백성으로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한계시록 8장을 보십시다. 일곱째 나팔에 대한 계시는 8장부터 11장까지 있고, 그 다음 12, 13, 14, 15장까지 소위 중간 계시가 있습니다. 장이 길기 때문에 오늘은 그냥 읽으면서 차례차례 강론하고 여기서 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증거하겠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단락을 넓게 잡느냐 하면은 계시록은 이런저런 환상들이 많이 있어서 그 세세한 환상들에 관심을 가지면 계시록은 풀기가 어렵습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일곱을 반복하면서 교회가 고난을 받지마는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으니 교회도 승리한다.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큰 단락을 잡고 있지 않으면 옆길로 빴기 쉽기 때문에 이렇게 넓게 잡고 강론합니다. 일어가면서 강론하겠습니다 8장1절입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에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여기 8장1절을 보면 일곱 인을 떼실 때에 했을 때 이제까지 인에 대한 기사를 보면은 이런저런 재앙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인을 떼실 때에 흰 말이 나타났고, 둘째는 붉은 말, 셋째 인을 뗄 때는 검은말, 넷째 인을 뗄 때는 얼룩덜룩하고 묘한 말을 통해서 큰 재앙이 있다고 설명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인을 뗄 때 하나님의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언제 우리의 피에 대해서 하나님이 재판을 하겠습니까? 하니까, 계속 교회가 핍박을 받겠지마는 그렇게 해서 핍박이 완결되도록까지 순교자의 수가 차도록까지 기다리라. 그렇게 다섯째 인까지 말을 하고, 여섯째 인에서 이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상들을 말씀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8장에 일곱째 인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7장은 중간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중간 계시에서 왜 인의 목표가 무엇인지, 왜 아직 마지막 인이 도달하지 안했는지, 그런 문제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십사만 사천을 인치는 이야기, 또 허다이 셀 수 없이 많은 무리가 초막절을 지키려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나온 이야기, 그런 두 가지 이야기를 장에서 했습니다. 십사만 사천을 인치는 것이나 허다이 셀 수 없는 수많은 무리가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원을 찬양하는 것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해석이 조금은 어렵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십사만 사천을 문자적인 이스라엘로 잡아야될지,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 대한 것을 이스라엘이라는 언어를 써서 사용하고 있는지, 그런 양쪽 해석이 둘 다 가능합니다. 전체적으로 읽어보았을 때는 일단은 성경을 해석할 때 특별히 그것을 내용을 바꾸어서 해석해야 되겠다 할, 필요가 없을 때는 일단은 문자적으로 받는 것이 출발점입니다마는 계시록에서는 그 선을 긋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점이 어렵느냐 하면은, 전체적인 문맥으로 보았을 때는 이스라엘, 이 이스라엘은 교회를 표상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흐름에는 더 맞습니다. 왜냐하면은 요한계시록은 지금 로마 정권 밑에서 고난받는 교회에 대해서 교회가 승리할 것이다. 교회에 대한 승리를 말하고 있지, 이스라엘과 이방인, 그런 관계에다가 강조를 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스라엘 하면은 교회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계시록 전체적인 맥락에는 더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디가 있느냐 하면은, 물론 로마서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어서 설명을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그 백성이 되었지마는 장차 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천하 만민이 장차 그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해서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몰라서 9,10,11장에서 특별 항목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인제 계시록과 그런 것을 연결해 보았을 때 계시록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는 것은 강조점은 아니지마는 계시록을 보면은 마지막 전쟁들이 두로 유대 땅에서 일어난 것처럼 아마겟돈 전쟁이라든가, 그렇지 않으면 큰 강 유브라데, 그 유브라데 강가에 들어간 것이라든가 그런 방식으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소위 영해를 해서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이 환난들, 큰 전쟁의 모습을 종말에 교회가 당하는 그런 큰 환난의 모델로 삼고 설명하면은 그것은 계시록의 전체적인 흐름에 잘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문자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했을 때 또 한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를 보면은 예수님 재림 전에는 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게 될 것이어요. 물론 이방인의 충만한 수도 믿지마는 유대인도 민족적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민족적으올 천하만민이 복종한다. 하는 나라가 건설될 것이어요. 그런 수에 대한 강조점은 아닙니다. 민족적인 단위가 유대인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소위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으면은 아마 유대인들이 될 것이어요. 우리 이방인들은 충만한 수가 믿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기독교 국가된다 그런 개념은 아니지마는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하나님을 섬겼을 때는 특별하게 강력한 기독교 국가가 될 것이어요. 그렇게 했을 때 말하자면은 세계적인 재앙이나 전쟁들이 어디를 무대로 할 것이냐 했을 때 문자적으로 충분히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런 해석들이 어렵습니다. 계시록 전제적인 문맥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는 것이 전체적인 핵심은 아닙니다. 교회가 어떻게 로마 정권 밑에 고난을 받고 있는데 주님께서 승리했으니 교회도 이길 것이니까 너희들이 이겨내라. 그러면서 장차는 더 큰 고난이 있지마는 주님이 오셔서 심판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증거 때문에 죽은 영혼들의 피에 대해서 상을 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 대한 강조점은 분명히 계시록의 강조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실은 전체적인 해석으로 보았을 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눌 필요가 없는 것이 계시록의 문맥에는 더욱 맞습니다.

그리고 나서 일곱째 인에 대한 이야기가 8장에 나옵니다. 그러면 일곱째 인 같으면 큰 심판이 있고 나면 그 다음에 새로운 세계가 나온다거나, 왜냐하면 6장 마지막에 있는 것, 하늘이 종이 축처럼 말라지고 모든 천체가 변해버립니다. 그리고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워달라. 6장16절에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어린양의 진노가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이 재림의 상이어요. 그렇게 하고 나면은 일곱째 때는 무엇인가,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오든지 좋아 벌려야 되겠는데, 일곱째 때는 그런 것이 아니고, 또 다시 성전이 열리고, 이런 말이 나오고 있어요. 그러니까 일곱째 인에는 새로운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곱 나팔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 나팔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 8장6절부터 있어요. 그러니까 일곱 나팔은 8장6절부터 있는데 그 앞에 8장1-5절까지는 일곱 나팔에 대한 서론이 되는 것이어요. 이 앞에 일곱 인을 땠을 때는 그 서론이 무엇입니까? 4, 5장에는 하늘에 보좌와 거기 예배하는 모습, 거기 어린 양이 있습니다. 어린 양이 인을 떼도록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인을 떼기 시작했거든요. 4, 5장은 인을 떼는 데 대한 서론이면은 여기 일곱 나팔에 대한 서론은 무엇이냐 했을 때 그 서론은 8장1-5절까지가 일곱 나팔에 대한 서론이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일곱 나팔은 8장1-5절에 있는 것이 집행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가 거듭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이제 다시 보십시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 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니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그러면 무엇인가 시작이 되어버려야 되겠지요. 그런데 아직 시작은 안되고, 시작은 7절에 있지요.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그렇게 했기 때문에 실은 앞에 있는 말은 나팔에 대한 성격을, 누가이 나팔을 집행하는가, 나팔은 왜 나타나는 것인가, 그런 것을 성격을 규정하는 서론적인 성격이 된다 그런 말입니다.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함이라. 여기 제단과 금단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구약 모습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구약 때 백성들이 예배하는 장소를 제단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향을 사르고 기도하는 자리는 금담이어요. 그 제단은 뜰에 있는 놋 제단이면은 금단은 성소 아래 있는 금 상, 금 촛대, 금 향단, 그 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단 곁에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그러니까 여기 금 향로가 있습니다. 향은 구약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상이어요. 그러니까 성도들의 기도와 향이 가득 담겨져 있지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응답을 받는 모습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그 향을 담은 그릇에다가, 향은 다 하나님이 흠향하시고, 거기다가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위에 쏟으니까 여기, 불붙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것은 구약 때 하나님이 친히 심판의 주로 임하시면은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고, 그것이 구약 때 하나님이 임하신 방식이어요. 그리고 나서 나팔부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나팔은 왜 진행됩니까? 앞에 인에서는 하나님의 큰 재앙으로 심판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역사를 집행하시는데 이 역사는 제단 밑에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해서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역사가 마무리될 것이어요. 그것을 여기서 다시 한번 반복하는 데 이제 나팔은 재앙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재앙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요. 그러면 이 재앙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가? 성도들의 기도가 향 그릇에 담겨져 가지고 하나님 보좌 앞에 드려졌습니다. 이제 그 향 그릇에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아버립니다. 그 불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불이기 때문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그렇게 여기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팔에 대한 성격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 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했을 때 반시 동안 쯤 고요하다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서 나팔은 하나님이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쏟아진 것이어요. 그런데 하늘이 열리고 그 다음 반시 동안 쯤 고요하더니 드디어 보니까 일곱 나팔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어요. 이 나팔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이어요. 그렇게 했을 때 반시 동안 쯤 고요하더니하는 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그런 말이어요. 문자적으로 볼 때는 고요하다 하니까 안식처럼 되어 있지마는 전체적인 상은 전쟁의 모습이지 안식의 상은 계시록의 상이 아니어요. 전쟁의 모습이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무엇인가 고요하더니 조금 있다 보니까 일곱 나팔을 가진 자들이 나타납니다. 이 나팔을 가진 자들이 무엇할려고 나타나느냐 하면은 앞에 다섯째 인을 뗄 때에 제단 밑에서 성도들의 기도가 있었어요. 우리의 피를 언제까지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고 기다리겠습니까? 빨리빨리 우리의 피를 갚아주십시오. 조금 기다려라. 그랬는데 그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해서 드디어 일곱 나팔을 가진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팔을 불기 전에 하는 이 나팔은 무엇 때문에 나타나는가? 실은 성도들의 기도는 향처럼 하나님 앞에 올라가고 그 기도에 응답해서 하나님이 제단의 불을 담아서 땅에 쏟아버리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거기 임했다. 그리고 이것을 집행하는 것이 나팔이다고 했기 때문에 반시동안 쯤 고요한 것은 하늘의 안식을 말하는 표상이 아니라 전쟁 전야의 고요에요. 우리들이 영화를 볼 때도 총을 쏠 때만 전쟁이 무시무시한 것이 아니라 실은 총 쏠 때도 재미없고 총소리 전에 말하자면 잠깐 조용하고 의시시한 것, 그때가 더 굉장히 무서운 것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장면이지 안식을 말하고 있는 장면은 아닙니다.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해서 심판이 집행됩니다. 심판을 집행하는 나팔 부는 천사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잠깐 조용해요. 이것은 포풍 전야의 고요처럼 그런 전쟁 전의 고요함, 큰 진노가 나타나기 전의 고요함,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전체적인 흐름에 더 맞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설명하든지 안식으로 설명하든지 신학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전체적인 흐름이 그렇다 그말입니다. 여기서는 성도들이 얼만큼 하늘에서 평안히 지내느냐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심판의 천사, 나팔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의 대리자로 나타나는가? 무엇을 집행하는가?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쏟아지는 것, 바로 이것을 집행하도록 천사들이 보냄을 받았다. 천사들이 나오는 장소가 어디냐? 하늘이 열리는데 잠시 동안 고요하더라. 했을 때 말하자면 전쟁의 모습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순리롭다 그런 말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니까 마치 성경 공부를 하는 것 같아서 여러분이 혹 재미가 없는가 모르겠습니다마는 계시록은 그 해석 때문에 많은 이단이 나오고 많은 미혹이 있기 때문에 제일 좋은 방법은 이렇게 초롱초롱한 정신으로 풀어 보고, 그리고 나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받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냥 그 옛날 정치 연설하듯이 막 설교하면 감동이 되고 이렇게 설명하면 아이코 요새 젊은 사람들은 성경공분가 예배인가 모르겠더라.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된다 그 말입니다. 성경은 큰 소리로 하든지 작은 소리로 하든지 성경이 이해되면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기쁨이 있는 것이지 어떤 표현 방식 때문에 여러분이 어떤 의식을 갖지 않도록 조심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6절입니다.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이 앞에 다섯째 인에서도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호소했지마는 뒤에 대접을 보아도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입니까? 성도들의 피를 갚을려고 교회의 고난에 대한 피를 갚을려고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장면이어요. 그러니까 나팔도 그렇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섞이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여기서 강조점은 땅에 쏟아지니까 땅 삼분의 일이 말하자면 파멸된다는 말이지요. 땅은 거기 풀도 나고 나무도 나고 그것이 땅이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도 그런 표상이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는데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나팔에서는 땅 삼분의 일이 파멸되고, 둘째 나팔에서는 바다 삼분의 일이 파멸되더라. 그런 이야기지요. 셋째 천사가 나팔을 보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더라.여기 세 번째 나팔에서 강조점은 물의 삼분의 일이 파멸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는데 이 별의 이름은 쑥이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우리들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떠튼 하늘에서 재앙이 떨어져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 12절입니다. 네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여기서는 천체가 재앙을 받아서 파괴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삼분의 일이 파괴되어도 해의 밝기만 삼분의 일로 줄어들 것지, 어떻게 보아서는 뭐 별일 없겠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전체적으로 보니까 삼분의 일찍이 전부 파멸되는 데, 처음에는 땅, 그 다음에는 바다, 강들과 물, 그 다음 천체, 이것은 하나님의 지으신 우주적인 성소로서 사람의 거처에 대한 재앙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순차적으로 되는지,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다음에 13절을 보십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이처럼 네 나팔을 이야기하고 나서 그 다음 잠깐 설명이 들어가고 있지요. 옛날 같으면 변사 목소리로 하면은 그 다음에 인제 기다려 봐라. 너희들 죽었다 그말이겠지요. 보니까 화, , 화가 있도다 그런데 그냥 화가 아니라 독수리가 하늘을 날아가면서 이 말을 해요. 구약에서 독수리는 신속하다거나, 힘이 있다거나 그런 상이 독수리 상입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독수리처럼 날아온다거나 그러면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런다 그말이겠지요. 우리가 조류학자가 되어 가지고 제비가 더 빠른데, 그러면 갑갑하겠지요. 제비가 날아가면서 짹짹해 보았자 무슨 경고가 되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독수리는 날아가면서 화, , 화가 있으리로다. 했을 때 말하자면 굉장히 권세있게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신속하게 이 화에 대해서 선언하고 있는데, 거듭 화를 말하는 것,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또는 화, , 화가 있도다. 이것은 그 확실한 것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그것은 네 가지 재앙을 말하고 나서 사람들의 거처 삼분의 일이 파멸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좀 뜸을 드리면서 온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화를 선포하고 나서 드디어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굉장히 화를 강조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 일곱 나팔은 하나님의 재앙입니다.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해서 단위에 불이 쏟아지는 것인데, 이런 상들은 구약 에스겔서에 있습니다. 에스겔서 9장을 보면은 하나님의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 때문에 탄식하고 통곡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인을 치고 그리고 인제 그 인치는 것이 다 끝나면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단 밑에서 그릇 밑에서 손이 나와요. 불이 있고, 그 불을 담아다 예루살렘에 쏟아버리면은 그것이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단의 불을 자기 백성의 봉헌물을 기쁘게 받지마는 만일에 잘못하면 아론의 두 아들이 죽었던 것처럼 그것은 그들의 큰 재앙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서도 화를 강조하니까 네 가지 화를 말하고 나서 그 다음 또 큰 화가 있도다. 크게 온 사람을 신속하게 선포하고 나서 그 다음에 세가지 화를 말하고 있으니까 여기서는 화가 굉장히 강조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처음에 성전이 열리고 반시쯤 고요하더라. 하는 것도 전쟁 전의 고요함, 심판 전의 고요함, 그런 것으로 이해할 일이지, 이 문맥에서는 안식으로 이해할 조항이 아닙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여기서는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것을 보니까 이 떨어진 별은 그냥 우주적인 재앙을 준다는 그런 의미로 하늘에 별이 떨어졌는데 그 별은 쑥이더라. 하는 그런 앞에 말과는 다르겠지요. 이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어떤 별, 천사적인 존재, 그런 문제를 여기서 별로 묘사한 줄 알 것입니다.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자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여기 무저갱에서 나오는 연기, 연기 때문에 공기가 어두워졌다. 이것을 꼭 영해를 해야되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서 악한 천사가 떨어져서 무저갱을 여니까 그때 말하자면 영계, 종교계가 아주 혼탁하게 된다. 이렇게 푸는데, 이것은 풀어도 좋고 안풀어도 좋은 그런 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구체적인 해석이 문제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재앙을 강조할려는 것이 강조점이어요. 공기가 어두워지는 것은 정신세계가 어두워지고 그런 것을 강조할려는 설명이 아니라 여기서 읽어보면 무시무시한 재앙이 임한다. 그런 것이 여기서 전체적인 강조점이기 그런 것을 꼭 풀어야될련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이 황충은 메꾸기에요. 그러니까 별 볼일 없지요. 우리는 메뚜기 같으면 칼슘이 많으니까 있으면 좋지, 그런데 이 메뚜기는 구약 재앙을 보고 해석을 해야됩니다. 구약 재앙은 메뚜기 그러면 우리 나라 메뚜기하고는 달라요. 애굽에 재앙을 내렸을 때도 말하자면 그 우박이 떨어지면 그때 싹이 난 것은 전부 죽고, 그 다음 메뚜기 나오면 남은 것을 다 갈가 먹어버려요. 그러니까 메뚜기 재앙이 훨씬 커요. 요새도 가끔 인도 지방에 메뚜가 날아가면 하늘이 캄캄해버리지 안해요. 옛날 우리 어렸을 때는 메뚜기를 잡아가지고 소주병에 담아가지고 집에 와서 구어먹고 했습니다마는 그런 메뚜기로 생각하면 안되지요. 그래서 구약에서는 메뚜기를 큰 재앙으로 말합니다. 특별히 요엘서 같은 데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 구약의 재앙 모습을 갖고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런데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 위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그러니까 무저갱이 열리고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오는데 거기서 메뚜기가 나오는데 이 메뚜기의 모습이 보통 메꾸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메뚜기가 얼만큼 고약하냐? 권세는 전갈의 권세를 받았다. 우리 나라도 요새 전갈이 있다고 그러지요. 이 전갈은 쏘는 것 중에서 독이 고약한가 봅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더라 하시더라.메뚜기는 풀을 뜯어 먹을 것인데 풀은 나두고 사람만 해하라고 하니까 이 메뚜기라는 것이 무엇인가, 구약의 재앙의 모습을 가지고 장차 나타날 큰 심판의 모습을 묘사하는 방식이지 실재적인 메뚜기가 아닌줄은 알겠지요. 여기서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수목은 해하지 말라 했을 때 이것은 무엇과 대비됩니까?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그러니가 여기서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하는 것은 인맞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에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라고 했으면은 앞에 첫 번째 나팔에서 땅 삼분의 일의 푸른 것이 전부 죽었거든요. 파멸되었습니다. 그러면 죽고 남은 것만 놔두라는 말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서 이 앞에는 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천사들을 붙들었거든요. 그런데 재앙이 나타나는 것을 보니까 푸른 것은 손대지 말라고 했으니까 이 푸른 것은 남은자들의 음식으로 남긴 것이어요. 그러니까 인맞지 아니한 자들은 재앙을 내리고 푸른 것은 남기라는 것은 인맞는 자들을 위한 생존의 토대를 놔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과 대비된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 괴롭게함과 같더라. 다섯달 동안은 죽이지는 말고 괴롭게만 하는 것인데, 구약에서 다섯달 개념이 없고, 이 문맥에서는 반시 동안 쯤 고요하더니, 그것이 다섯하고나 관계가 될까 다른 데서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가령 36개월, 42, 1260, 이것은 구약 엘리야 당시 큰 고난의 시기와 비교가 되기 때문에 그것은 구약에서 해석이 가능하지마는 다섯달은 알 수가 없는데, 어떠튼 다섯달 동안은 잠시 동안 괴롭힌다. 하는 의미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괴로운데 얼만큼 괴로웠냐 하면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 괴롭게함과 같더라. 그날에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황충들의 모양은 굉장히 큰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황충들의 모양을 보니까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요새 이런 것을 읽은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을 해갖고 메뚜기가 말같이 커버린 것이 아닌가? 그렇게 설명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마는, 여기서는 그런 것이 아니고 구약에 있었던 전쟁이나 재앙을 가지고 무시무시하게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어요. 쏘는 것은 전갈이 제일로 고약한데 이스라엘 백성의 큰 재앙, 하옇튼 토지를 황폐하게 해버리는 것은 메뚜기에요. 그런데 그런 상들을 여기서 설명하고 있지요.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머리는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머리에는 금 같은 면류관을 썼으니까 면류관 비슷한 것인데, 왜냐하면 이기고 이기거든요. 인맞지 않은 모든 자에게 재앙을 내려서 심판하고 있기 때문에 이기는 자기 때문에 금 같은 그런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고 그리고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한 마디로 무시무시한데 오새 컴퓨터에서 합성하면 이런 것이 될련지 모르겠습니다. 요새 만화를 보아도 그래요. 우리 때는 단순했는데 요새는 이것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정도로 굉장히 복잡하게 생겼는데 아마 무시무시하게 생겼습니다. 이런 괴물은 본 적이 없지요. 또 전갈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불루온이더라.말하자면 무저갱의 사자라. 사탄이라 그런 말이겠지요. 그러니까 무저갱에서 나온 군대입니다. 큰 권세로 다섯달 동안 인맞지 않는 사람을 해합니다. 너무너무 괴로워서 죽을려고 해도 죽지를 못합니다. 이런 괴물은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황충이 있는데, 그중 총 대장은 누구냐? 히브리음으로 아바돈이요, 헬라음으로 아불루온이라. 첫째는 유대인이요 다음은 이방인이라 했는데 그 두 언어로 묘사하고 있지요.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죽도록.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있으리로다.그러니까 화를 굉장히 강조하지요. 차라리 연속해서 매를 맞으면 좋지마는 한 대 때려놓고 한참 뜸을 드려놓고 살살 긁다가 또 때리면 이건 진짜 환장할 일이지요. 그런데 꼭 그런 식입니다. 처음에는 네 번의 나팔을 불고나서 독수리가 날아가면서 큰 화를 선포하고, 이제 봐라. 이제까지는 삼분의 일만 파괴되었지마는 이제 나타나는 화는 너희들 죽는가 사는가 봐라 하드니 다섯째 나팔이 부니까 아주 지옥 문이 열리고, 대장은 마귀고, 큰 군대가 나오는데 이렇게 큰 재앙을 당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나서 무엇이 부족한지 한 화는 지나갔지마는 앞으로 남은 화 둘이 남았으니까 기다려 봐라. 전라도 말로 하면 죽어봐라. 그말이겠지요. 그러니까 굉장히 화를 강조합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이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아까 나팔 부는 자들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은 하나님 성소에서 나왔지요. 그런데 이제 어디서 음성이 들리느냐 하면은,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실은 이 금단에는 항상 네 곁에 뿔이 있습니다. 이 뿔은 구약에서 권세를 상징하는 방식인데 그 금단에다가 하나님 앞에 향연을 드리거든요. 그 향연이 하나님 앞에 올라갔던 것이어요. 그런데 거기서 음성이 났습니다. 이것은 금단에 임하신 하나님의 음성인데,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 하매 그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네 나팔에서는 사람이 사는 거처에 대한 삼분의 일의 재앙,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 나팔에서는 사람이 죽을려고 해도 못죽습니다. 괴로움만 당합니다. 그 다음 여섯째 나팔에서는 드디어 사람 삼분의 일을 그때가 되면은 죽이도록, 드디어 사람에 대한 심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이만*만 하면은 이억이지요. 이 정도 군대면 구약의 상징수니까 할 말도 없지마는 실제적인 숫자로 받는다고 할 때 이 군대는 이런 군대가 어디서 전쟁할 자리나 있을련지 모르겠습니다. 땅이 그렇게 넓을란가. 군대가 이억 그러면 이건 말로 할 수 없는데,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 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번쩍번쩍하는 그런 갑옷을 입었습니다.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그러면 인제 요새 사람들은 아하 이것이 구약의 표상을 사용해도 현대식 병기를 묘사하구나. 이미 그때 이순신 장군 거북선에서 나온 것처럼 탱크가 나올줄 알았구나 하고 읽으면 안된다고 그랬지요. 그것은 구약의 표상을 묘사해서 무시무시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어요. 장차 나타날 현대 병기를 묘사할려는 것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장면을 지금 묘사하고 있는 것이어요. 말들의 머리는 사자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그러니까 온 몸으로 무장되어 있지요. 입만 착 벌리면 연기가 나오고 무엇이 나와서 거기서 죽고, 그러면 사람 삼분의 일이 입에서 나온 연기 때문에 죽어버렸으면 꼬리는 할 일이 없지요. , 사람 삼분의 일만 죽이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꼬리도 보니까 뱀 같이 생겼고 그 꼬리에 사람 머리까지 딸렸고, 이것은 입에 나온 연기로 죽인다고 하니까 인제 다 죽었구나 그런 말이 아니라 얼만큼 무시무시하게 무장되어서 죽이는가, 이걸 묘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문자적으로 받으면 계산이 안맞지요. 입에서 나온 연기로 죽어버렸으면 꼬리는 감아버리고 할 일이 없어야 되어요. 묘사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또 꼬리도 묘사합니다.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더라.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 동과 목석의 우상에서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그리고 10장부터는 소위 말하는 중간계시가 나옵니다. 여섯째 나팔은 유브라데 강에 이만만의 마병대입니다. 아주 굉장히 무장돼 있고 그것으로 사람 삼분의 일을 죽여요. 그런데 여기서 목표는 무엇입니까? 결론이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남은 사람들이 회개치 아니하더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재앙까지라도 실은 회개를 일으키기 위한 것이어요. 가령 애굽의 재앙을 보면은 하나님이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을 때 바로 임금이 몇 번 돌리켰지요. 그리고 거절하고 거절하고 그래요. 그래고 마지막에는 전체가 멸절당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 것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온 세상에 구원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하나님의 재앙인데도 살아 남음면은 또 반발해요. 그리고 재앙이 너무 크면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회개치 않습니다. 이것이 여기 여섯째 나팔에서 나타낸 상입니다. 바로 이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회개치 아니하더라. 그래도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10, 11자에서 말합니다. 거기 보니까 하나님의 천사의 손에서 영원한 복음, 그 책을 받아가지고 입에 받아 먹고 배에는 씁니다. 이것으로 증거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11장을 보면은 하나님의 성전은 측량되고 보호될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이전의 모세나 엘리야처럼 증인들을 보내서 다시 증거케 할 것입니다. 증인들이 고난을 받지마는 나중에 또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올라갈 것이어요. 여기 보니까 하나님이 그 교회를 보호하고 온 세상에 고난 중에도 복음을 증거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또 하고 있지 안해요. 그리고 나서 다시 일곱째 나팔을 말하면서 거기 일곱 대접이 나오면은 그 심판이 더 강화되고 이 심판이 마지막 종말의 심판으로 집중적으로 향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여기 여섯째 나팔까지 말씀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할려면은 다시 읽고 다시 반복했으면 좋겠지마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읽어 가면서 강론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런 메시지는 모든 역사를 시간표를 따라서 설명한 것이 아니라 이제 항상 구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이방은 망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해도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이방인들은 망할 것이어요. 이전에 애굽에서는 바로 임금이 망했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해서 바벨론으로 포로잡혀 갔지마는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했던 바벨론 군대는 망해버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하나님이 원수와 싸우시는 상이어요. 그런데 지금 인자의 나라가 왔고 그가 역사를 집행하시는데 이제는 만민을 피로 값주고 사셔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이제 그들이 하나님을 봉사하는데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했던 이방이 있었든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인 그의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의 권세가 있습니다. 이 로마 권세는 구약으로 하면 바벨론의 권세를 물러받은 총아에요. 다니엘이 보았을 때 바벨론으로부터 로마까지 전부 짐승으로 보았는데, 그 마지막 짐승의 때 하늘의 인자가 와서 그 나라를 세울 것이어요. 로마 정권을 표상했던 방식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있었던 모든 이방의 정신들이 권세들이 로마에서 극대화되어 있고, 바로 그때 인자가 와서 그 나라를 설립하지요. 그때 지금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이방인의 싸움, 이 구약의 틀이 계시록에서도 하나님 나라인 교회와 로마 권세의 싸움, 짐승의 싸움, 이것을 가지고 역사의 미래를 펼쳐 보여서 교회로 승리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이 일이 어떻게 될련지 이런 시대를 설명할려는 것이 목표는 아니어요. 지금은 어떤 의미로 보아서는 대단히 평화롭지요. 지금 같아서는 계시록은 전혀 필요가 없겠지요. 물론 마귀는 여러 모로 나타나니까 옳은 말이 아닙니다마는 큰 핍박이 있다는 말로는 우리는 별로 실감이 안갈만큼 평한한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지금 시대는 아니고 저 미래의 일이라고 미래를 연구하고 있어요. 그러나 계시록은 그때 필요한 책이고 그리고 항상 종말의 싸움을 예비하고 있기 때문에 종말이 임해서 참으로 큰 우주적인 격변이 있기까지 항상 이 교회는 이런 투쟁 가운데 있는 것이어요. 그것이 이 성경에서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재앙이 없으니까 괜찮고 앞으로 환경이 파괴되면 죽을 것인가, 유럽에서 독극물만 쏟아져도 온 유럽의 강물이 죽어버리는데, 삼분의 일 정도가 아니라 십년 동안 고기가 못산다니까 앞으로 이런 재앙이 생기면은, 왜냐하면 이제는 개인 회사들, 깡패 집단들도 그런 무기를 소유할 수 있어요. 원자탄만 큰 것이 아니어요. 생물학 무기는 더 고약한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런 재앙이 임할 것이 아닌가, 그런 상을 연구하라는 것이 아니고 구약의 전쟁상을 통해서 이처럼 하나님이 온 세상에 하나님을 대항하는 원수와 친히 싸우십니다. 교회는 핍박을 받습니다. 이런 심판들이 더 가중될 것이다. 그렇게 설명함으로 지금 교회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지금은 우리들이 평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안이 나팔 재앙으로 보았을 때는 반드시 우리의 안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잠시 동안 고요한 것이 앞으로 큰 나팔 재앙을 예비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고 드디어 나팔이 예비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렇게 이해를 해야될 것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교회를 핍박합니다. 사탄이 바꾸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이전에는 칼의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으면은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이어요. 가령 대표적으로 천주교 같은 것을 보십시오.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달라지니까 그들이 민주화 최선봉에 선 것처럼 되어 있어요. 그리고 평화의 사도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니고 있어요. 세대론자들이 그 일을 많이 설명합니다마는 로마 정체적인 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국가는 망했지마는 천주교에서 로마 정치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그러니까 로마는 교황청이 이스라엘과도 수교하고 아랍측과도 의장도 가면 입맞추고, 외무부 장관도 있고, 전부 이렇게 되어 있지 안해요. 말하자면 앞으로도 천주교에서 나올 것이다. 이런 설명들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것은 모릅니다. 단지 그전처럼 칼을 들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그런 상은 아니고 또 초대교회처럼 정부의 권세를 가지고 교회를 직접 핍박하는 그런 모습은 사라졌지마는 지금도 세상은 하나님의 교회를 파멸하는 데는 똑같습니다. 이제는 인류가 하나가 되어야 하겠다. 인류가 하나가 되어서 인류 구원의 탑을 쌓아보야 되겠다. 인류가 왜 힘을 분산시켜서 망할 것인가, 우리가 합치자. 그렇게 해서 지금 세계 정부쪽으로 나가고, 세계 정부를 구성할려면 세계적인 경제나 세계적인 종교가 필요한 것이어요. 지금 구체적으로 하고 있지 안해요. 이것을 반대하면은 그는 세상의 평화를 깨뜨리는 자에요. 만일에 그런 세력이 이전에 이스라엘이 온 이방을 대항해서 여호와를 고백했던 것처럼 종말에 온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돌아서서 우리 교회들들도 타락한 모습이 아니라 이전의 이스라엘처럼 순결하게 주님을 고백하면은 아마 전쟁의 모습이 그쪽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꼭 평안한 시대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런 장면들을 전체적인 역사적인 안목에서 읽어야되지 이런 장면이 언제 나타날 것인가, 그런 것만 보고 읽으면은 계시록은 나중에 재림할 때나 써주면 되지 미리 써주어서 고생시킬 필요가 없어요.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으니까. 더구나 로마 정권 밑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써준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들이 역사적인 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교회를 사셔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땅에 있으나 하늘 보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구원을 찬양하는 그런 능력있는 교회입니다. 이제 역사를 주관하고 역사의 마지막을 펼쳐 보이시는 다윗 왕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이신대 그분은 죽으자 가운데서 먼저 일어나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마지막 종말의 구원을 펼쳐 보이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의 질서로 나타났기 때문에 땅의 권세도 하늘의 권세로 사탄적으로 그렇게 진행됩니다. 문화적인 방식으로는 인류가 번성할련지 몰라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식으로는 그 질이 떨어져 있어서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들은 문화사적으로만 보니까 세상은 평화롭게 되고 민주화된줄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언약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대대적인 배교의 시대입니다. 말로는 다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을 시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주 위험한 시대에요. 모든 사람들이 양같이 말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민주화를 말하고 인간성을 말하니까 기독교나 이방 종교나 똑같은 것 같지마는 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욱이 우리들이 믿음으로 깨어 사셔야 됩니다. 지금 평안한 것도 온전한 평안은 아닙니다. 주님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기까지 이 진동하는 세계를 진동치 않을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짓도록까지는 교회는 땅에서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임금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의 구주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뿐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능력있는 분이기 때문에 모든 만민이 그 앞에 복종하도록까지 그의 원수들과 싸우실 것이고 그리고 그를 위해서 믿음으로 충성스럽게 봉사하는 그의 교회를 그의 영광에 참예하도록 상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처럼 고요한 것 같아도 이 악한 시대에 믿음으로 깨어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로 순종하는 것 빼놓고 주님께서 이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이 복음을 증거하는 것, 이 복음의 복종 외에는 세상에 평화가 없는 줄 알고, 세상의 평화로 만족하지 마시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이 복음을 증거하도록 해야될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이 복음을 증거하며은 우리는 형제끼리도 원수가 됩니다. 우리는 화평을 빙자해서 이 복음을 거역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되겠지마는 이 지혜는 구원을 위한 지혜지 너와 나의 평화를 위한 지혜는 아닙니다. 우리들이 이런 것을 분명히 이해해서 오직 죽은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만 참으로 세상의 구주시오 그분만 만유의 주시어서 모든 사람은 그분에게 복종해야 된다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들도 십자가를 짊어지고 충성된 증인으로 그런 믿음의 삶을 사셔야 되겠습니다. 아멘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악인 한 명도 멸망받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만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며 그래서 천년이 하루같이 오래 참으신 줄을 믿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의 복음이 증거되는데도 그런 일에 관심이 없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세상에 평화를 주시는데 이것으로 자기 구원을 노래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영생을 모독하는 그런 악한 시대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런 악한 시대에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주님의 영광의 왕권을 봉사할 수 있도록 우리를 권세있는 새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우리의 싸움이 무엇인가를 분별하고 악한 시대에 오직 주 예수를 증거해서 주님 앞에 복종시키는 그런 권세있는 나라를 확장시켜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의 교회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보살피심을 믿습니다. 이 길을 걸어갔던 수 많은 선배들이 십자가에 죽고 순교의 길을 걸어갔지마는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신 것을 우리들이 믿사오매 지금 이 평화시대에서 사탄은 더욱 악한 방식으로 무장해서 이런 저런 모양으로 교회를 파괴하고 있사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우리들이 전쟁의 양상을 분별하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오직 주께만 복종하고 주님 앞에만 신실하는 온전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주장해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 참으로 주님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할 때는 이 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이 세계는 진동하고 요동하며 새롭게 지어질 줄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영원한 세계가 아니옵고 주님께서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할 때만 그것이 안식이요 영원한 평화의 세계가 될줄로 믿사오니 사람들이 먹고 마심으로 만족하고 배로 신을 삼고 그것으로 창조를 크게 짓고 영혼을 평안하게 할지라도 우리들은 그 일로 만족하지 말고 오직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 예수의 구주됨을 힘있게 증거하는 그런 하늘에 속한 군병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오늘도 이 믿음으로 우리를 복주실려고 우리 주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생명의 주로서 부활하신 날에 생명의 주님의 상으로 우리를 불러 모으셔서 주님의 살과 피의 교제에 참예케 하시고 우리로 주님과 한 영 한 몸이 되어서 권세있는 주님의 지체로서 봉사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의 먹고 마시는 모든 삶에서 이 믿음으로 깨어 살게 해주시옵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 생명의 주를 온 세상에 증거하고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며 봉사하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의 백성을 복주시옵소서. 지금도 우리의 먹고 마심이 생명의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사랑을 따라서 참으로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고 사랑으로 주님의 몸을 이루는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도록 우리의 봉사를 더욱 온전케 하시며 주의 백성의 삶의 수고에 더욱 넘치는 복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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