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빌라델비아교회에 쓴 편지
성경: 요한계시록3:7-13
거룩하신 아버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들을 살리셔서 이제는 하나님 품 안에 두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하늘에 속한 생명과 영광을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이 생명의 교제로 주의 백성을 복주시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게 하시고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생명의 교제 안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우리의 생명이 더욱 새롭게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푸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이 생명의 교제 가운데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봉사해서 주의 몸을 이루는 귀한 생명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주의 교회를 복주시옵소서. 이 악한 세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봉사하도록 교회를 세우셨사오니 우리의 믿음을 굳게 허락하셔서 비록 우리가 소수의 무리이나 권세있는 주님을 의지하고 날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를 힘있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계시록 3장7-13절까지를 읽고 강론하겠습니다. 이 계시록은 로마 정권 밑에서 핍박을 받고 있는 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해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이 짐승의 정권에 대해서 믿음을 지키고 이기도록 하기 위해서 쓴 편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에서는 교회에 대한 완전한 상을 설명할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세상과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이길 것인가? 그 싸움이 주제이기 때문에 이런 서신을 강론하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유익하면서도 어떤 면에서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은 이 세상은 주님을 거역한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어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요한 일서에서 설명한 것처럼 세상의 정신이 그리스도를 대항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교회를 핍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저갱에서 나온 검은 연기처럼 우리로 하나님을 아는 빛 가운데 살지 못하도록 어둡게 하기 때문에 이것은 항상 싸움이 특징입니다. 주님 오셔서 그 나라가 완성되도록까지는 싸움이 어떻게 보면 일종의 믿음이라고 말할만큼 싸움이 특징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벼랗고 그런 것에 대항해서 어떻게 우리 믿음을 고백할 것인지를 배우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유용하지마는 우리처럼 이렇게 소수의 무리에다가 더구나 박해를 받고 있거나 이런 상황에서는 핍박받고 있는 것은 전부 우리고 그리고 나쁜 것은 전부 우리를 핍박하는 교회고, 이런 식으로 적용해버리기가 쉬워요. 그것은 흔히 범하는 오류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 있는 말 자체는 옳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바르게 적용되는 것인지, 사대에게 바르게 적용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일이어요.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성경이 바르게 강론된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우리 자신을 살피고 우리 자신을 헌신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 않고 귀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는데, 나에게 하신 말씀으로 듣지 않고 남을 책망하는 말씀으로 듣기 시작하면 그것은 대단히 열열하고 힘을 낼련지 몰라도 그것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봉헌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주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것을 깊이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 교역자가 더 조심해야 되는데 다른 사람을 가르치다 보면은 자기는 그 일에 상관이 없고 전부 교인들만 해당된 것처럼 그렇게도 생각하기 쉬운 것이어요.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본문 끝에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살라고 거듭거듭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점을 꼭 조심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신 이는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말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뒤에서 설명하기를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다윗의 열쇠를 가졌는데 이 열쇠를 가졌다는 말을 뒤에 설명하기를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그러니까 전권을 가졌다는 말이지요. 열고 닫는 일에 전권을 가지신 이. 그가 열든지 닫든지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 그런 말로 여기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그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는 말은 다윗 왕조의 열쇠, 즉 다윗 왕조를 관리하는 자로서 큰 권위를 가졌는데 그가 열든지 닫든지 권세가 그에게 있고 아무도 그 일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면은 이것은 어디서 빌려온 말이냐 하면은 먼저 구약을 보고 그 다음 계시록을 보십니다. 구약 이사야 22장을 보면은 그런 구절이 있는데 20절부터 제가 읽어볼까요.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야김을 불러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집에 아비가 될 것이며, 또 내가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자가 없으리라.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 같이 그를 견고케 하리니 그가 그 아비 집의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그 아비 집의 모든 영광이 그 위에 걸리리니 그 후손과 족속되는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항아리까지리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파쇄되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은 지금 이스라엘에 대한 멸망을 예언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집에 다윗 집에 중요한 관원이 있는데, 하나는 이 본문 이사야 22장에서는 셈나고 또 하나는 20절에 있는 엘리야김입니다. 그런데 셈나는 친애굽파에요. 그래서 다윗 왕조에 충성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를 관직에서 쫓아내고 엘리야김을 세워서 관직을 맡기는데 그에게 다윗 왕가를 맡기는 전권을 맡기겠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다윗의 집의 열쇠를 네게 주겠다. 그렇게 해서 그를 통해서 이전에 있었던 관료들은 쫓아내고 엘리야김을 통해서 다윗 왕조를 재건하겠다는 문맥에서 있는 말인데 그 말을 여기서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관원을 세워서 종기로부터 항아리까지 모든 영광의 그릇과 그 옷이 단단히 박힌 못에 걸리도로 하겠는데 그는 엘리야김이어요. 그런데 셈나는 그런 것을 잃고 쫓겨나겠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왜 그러냐 하면은 엘리야김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이라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을 여기서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집의 열쇠를 가졌는데 어떻게 해서 다윗의 집의 열쇠를 가졌느냐 하면은 거룩하고 진실하셔서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이 누구신가 환상을 보였을 때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그런 구절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 구절이 그에게 합당하냐 그러면 1장13절에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이것이 구약에서 다윗 왕가에서 존귀한 관원들의 의복, 또는 제사장의 의복, 왕의 의복 하는 존귀한 자들의 의복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가슴에 띠를 띠었다 했을 때 이것은 중요한 관원에 대한 묘사입니다. 여기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하는 것은 제사장적인 영광을 지닌 그런 왕을 묘사하는 방식이지요. 그분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장5절을 보면은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셨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렇게 1장5절에서 말하고 있지요. 여기서 거룩하고 진실하다고 했을 때, 거룩하다는 말과 진실하다는 말은 거의 같은 말이 될 것이어요. 그는 진실하기 때문에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다윗의 열쇠를 가졌습니까? 1장5절을 보면은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다윗 왕조는 하늘 보좌의 왕권으로 존귀케 되었는데, 그 자리에 앉으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데, 그는 어떻게 앉으셨습니까? 충성된 증인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충성하셨고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1장 서론에서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신 분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즉 다윗 왕조를 관리하는 전권을 가진 분인데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왕국의 문을 열고 닫는 그런 묘사가 되겠지요. 그 나라 전체를 관리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습니까? 거룩하고 진실하셔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 그렇게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 대해서는 그런 책망이나 경고나 그런 구절은 없습니다. 오히려 칭찬하고 격려하고 약속한 그런 구절만 되어 있는데, 8절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그들에 대한 칭찬은 다른 것이 아니라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먼저 약속과 격려를 하고 여기서는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칭찬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칭찬입니다. 실제적으로 이 빌라델비아 교회는 교통의 요충지에 있어서 거기 소위 로마 황제 숭배도 강력하고 또 헬라 문화도 강력하게 발달되고 그런데 아마 소수의 무리로 적은 교회가 있는 것으로 그렇게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이방 문화의 요충지에 있는 수가 적고 재정도 적겠고 인적인 잔원도 적겠지요. 그런 적은 능력을 가지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칭찬입니다. 그들은 큰 활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교의 문화 중심지에 살면서도 그들은 인적, 재정적인 여러 여건이 열약한데도 불구하고 주되신 예수의 이름을 확실하게 고백하고 그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고 지키었다는 것이 그들에 대한 칭찬입니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먼저 8절에도 불지어다. 9절에도 보라 하면서 그 약속들을 강조하고 있는 데 인제 이런 교회들에 대해서 주시는 약속과 축복이 무엇이냐 하면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그들은 사단의 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유대인 같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사람이 되겠지요. 그러나 유대인은 유대인이면서도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사람들은 곧 사단의 회가 될 것이고 거짓말 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몇 명을 너에게 주어서 내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와서 복종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복종하겠습니까? 너희중에 하나님이 계시도다. 이런 것은 사도행전에서도 우리가 그런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주 적은 무리고 또 그 사회에서 그렇게 유력한 사람들도 아니지요. 그들이 예수님을 정죄했던 유대인의 공회에 끌려 들어가서 재판을 받았을 때 그들이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세상에서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우리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겠는가? 그래서 거기서 매를 많이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때 그들이 감격했지요. 그전에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쳤던 우리같은 사람들을 이제 힘있는 종으로 삼으셔서 원수들 앞에서 고백하도록 하시는가? 매맞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와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그들 앞에 와서 복종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고 그렇게 사도행전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니까 열린 문을 두었다는 말은 그런 말이 될 것이어요. 물론 앞에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이, 그것은 그 왕궁에 대한 그런 정권을 표현하는 말이 되겠지마는 여기 8절을 보면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어떻게 닫을 사람이 없습니까? 보라, 유대인 중 몇 명이 와서 네 앞에 복종하리라. 그렇게 9절에 말하기 때문에 뒤에서 말하는 열린 문은 전도의 문이 되겠습니다. 그들이 비록 소수이지마는 예수의 이름을 신실히 고백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강력한 하나님의 나라의 대적인 유대인들까지라도 와서 네 앞에 와서 복종하고 머리를 숙일 것이고 네 중에 하나님이 계시도다. 그렇게 너희 중에 전도의 문이 열릴 것이다. 염려하지 말아라. 그렇게 지금 권고하고 있지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그 다음에 또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냥 언뜻 보면은 네가 충성을 다했으니까 나중에 큰 일은 안터지도록 봐주마. 지금 네가 고생하면은 후에는 괜찮을 것이다. 그런 말로 들리기가 쉽지요. 그런데 이 문장을 보면 그런 구절은 아닙니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그 말은 땅에 거하는 자들이 넘어질 때에요. 땅에 거하는 자들이. 그런 의미로 계시록에서는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시험하는 데 일부는 서고 일부는 넘어진다는 그 말이 아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것은 땅에 거하는 자들이 어두움의 권세에 넘어지는 그런 때에요. 그때도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그러니까 지금 네가 인내의 말씀을 잘 지키었은즉 앞으로 온 세상을 미혹하는 큰 환난의 때에도 내가 너를 지킬 것이다. 지금 이 인내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어라. 11절을 보면은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지금 있는 바를 꼭 붙들어라. 그 믿음으로 너희들이 내 이름을 배반치 않으면은 장차 온 세상에 시험이 임하고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넘어질 때도 내가 너를 지키어서 그 모든 시험에서 든든히 서게 하리라. 그런 말로 그들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의 시련이 끝나는 법은 없습니다. 주님 오셔서 역사가 완결되면은 영광을 받겠지마는 그동안까지는 그전에는 전투를 신실히 했으니까 앞으로는 편안히 살 것이다. 그런 법은 없어요. 실제적으로 신사참배 때 신실히 믿음을 지켰다는 분들도 아주 평안한 시대에 아주 작은 일로 넘어진 사람들이 많해요. 월남전에 갔다와서 술집에서 죽은 사람이 있지 안해요. 그런 사람이 많해요. 그러니까 나는 옛날에 그렇게 했으니까 인제는 그것으로 써먹고 그것으로 계속 살고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지금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이 인내의 말씀이 지금 신실한 자를 큰 환난의 때에 신실하게 해서 넘어지지 않게 해줄 것이어요. 그러니까 지금 있는 믿음을 붙들어라. 그러면 장차 모든 시험을 이길 것이고 영광을 얻을 것이다. 그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지 옛날에 잘 싸웠으니까 앞으로는 열매만 얻어 먹고 살 것이다. 그런 것은 성경에는 없어요. 아마 부부끼리도 그럴 것입니다. 젊어서는 죽어라고 일했는데 남편이 살만하니까 이 재산이 전부 나 때문에 이룬 것이 아니냐? 그러고 빈둥빈둥 놀고 있으면은 온 가족들이 감사한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쓸모가 없겠지요. 고생을 안했다는 말이 아니라 실은 말하자면은 그때부터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어요. 그리고는 옛날 우리 아버지들 같이 나 때는 굶고도 공부했는데, 너도 굶어 하면은 얘기들이 갑갑해버리지요. 그러니까 인내의 때를 지켰은즉 시험의 때를 면케하리라. 그말은 주님의 말씀은 본래 인내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주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교회를 알지를 못합니다. 주님을 핍박하기 때문에 교회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있는 것처럼 교회을 말도 듣는 자가 있게 하리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는 그런 말과 비슷한 것이지요. 주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도록 신실한 증인으로 사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가 가진 열쇠는 그냥 다윗 왕조의 열쇠가 아니라 보좌 앞에 취임하셔서 하늘에 속한 그 왕조의 열쇠를 받는 것이어요. 사망과 음부의 열쇠가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긴 분으로서 다윗 왕조를 완성시키신 분이기 때문에 그는 권세있는 분이세요. 그분이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믿음을 지킨 교회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렇게 적은 힘으로 믿음을 지켰는가?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지 않느냐? 그 열린 문이 결단코 닫히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큰 핍박이 있다 할지라도 가장 큰 핍박을 자행하는 거짓 유대인들이 네 앞에 와서 관연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 네 안에 계시도다. 와서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아라. 지금 네가 이 인내의 말씀을 지키면은 온 세상을 미혹하는 그런 때에도 너희들은 넘어지지 않도록 내가 지켜내겠다. 그렇게 해서 면류관을 얻도록 하겠다. 그러니 네게 있는 믿음을 굳게 잡아서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해라. 그렇게 그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서 이기는 자들의 상급을 말씀하고 있는데,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고, 그리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기둥 위에 이름을 기록한 것처럼 내가 그 사람 위에 이름을 기록하는데 무슨 이름을 기록하냐하면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그것이 그들에 대한 칭찬입니다. 보통 주석가들은 빌라델비아 지역이 지진이 많기 때문에 굉장히 불안해요. 그런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지진이 나도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집, 그런 것이 그들에게 굉장히 위로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그들이 당한 상황을 봐서 그런 표현법을 써서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론 일리는 있겠습니다마는 우리는 거기까지는 알 것이 없고 우리는 이 문맥에 있는 이야기만 하면 됩니다.
성전의 기둥 하면은 성전을 받치고 있는 것이지요. 대단히 힘있고 든든한 기둥이 성전의 기둥이 될 것입니다. 다윗 성전에서는 성전의 기둥이 보아스와 야긴 해서 아주 크고 든든한 기둥으로, 많은 구리를 들어서 만든 기둥으로 그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도 옛날에 엉터리로 한 적이 많습니다. 기둥이 되게 하리니. 제목을 이렇게 잡고, 인제 기둥 같은 집사 하는 것이지요. 그래갖고 이 교회 저 교회 옮겨다니면 안되고, 보니까 안나간다고 그랬지 안해요. 인제 그런 말에다가. 비리비리한 나무를 쓰면 안되지요. 아무리 급하다고 조금만 작대기로 기둥을 해놓으면은 온 집이 무너지니까 오래 묵어야 된다. 또 기둥은 굉이가 박혀 갖고 다듬기 어려우면 안되거든요. 고집이 세갖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대패질이 잘 되도록 순종해야 된다. 굉이가 박히면은 안되어요. 날이 불어지니까. 그래 갖고 목수 노릇하는 것이어요. 또 기둥을 잘 세울려면 주춧돌을 잘 놓아야 되지 않냐? 성경에 주춧돌이 예수님이거든요. 그러니까 또 그렇게 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비슷비슷해서 우리에게 자극은 줄런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인가는 전혀 드러낸 것이 아니고 사람의 평가하고 권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설교도 아닌데 우리가 그런 식으로 한 것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왜 그전에는 그런 것이 안보였든가 몰라요. 왜냐하면 그전에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경건하게 만들 것인가? 사람을 훈계할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종교적인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그런 것만 보니까 주님의 영광과 권세는 안보이고 어떻게 해야 든든한 교회 봉사자가 될 것인가? 기둥은 자기 몫만 아니라 모든 석가래를 한 몸에 짊어지고 있지 않냐. 그러니까 인제 기둥같은 집사가 될려면 큰 일을 하겠지요. 그런 식으로 설교하니까 그럴 듯 한데 성경에는 없는 이야기고 그래서는 안되는 이야기지요. 여기서 기둥이 되게 하리라는 말은 설명하기를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그런 의미로 기둥 같이 되겠다. 또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기둥 하면 든든한 것이 아닙니까? 그 이상을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견고하게 설 것이고 성전의 기둥이니까 성전의 핵심이지요. 다시는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어요.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여기 기둥에다가 이름이 기록되고, 또 다른데서는 그 사람의 이마에다가 이름을 기록한다고 했지요. 기둥이 되겠다. 그 사람 위에 이름을 기록하겠다 하니까 기둥에 기록한다는 말인지 사람에 기록한다는 말인지 서로 왔다갔다 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구분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이마 위에 기록한다는 것도 그 사람을 배척할 수 있도록 이마에, 그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이마, 오른 귀뿌리, 오른 엄지 손가락, 오른 엄지 발가락 그런 것이 대표적인 기관입니다. 구약에서 쓰는 방식들이어요. 그러니까 거기다 새 이름을 기록한다는 말은 소유로 삼겠다는 말과 같어요. 이름이 있다는 것은 누구의 소유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어떤 이름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여기서는 새로운 예루살렘과 새로운 주님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새 이름은 다른 것이 아니라 계시록에서는 백보좌 심판이 나타나고 만물이 새롭게 되고 위로부터 하늘의 예루살렘이 내려오고 만물이 완성된 그런 영광의 나라를 주겠다는 말이지요. 이 성전은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새로운 성소 거기의 기둥이 되고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그것은 새로운 예루살렘이요 새로운 주님의 이름입니다. 그 새로움은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영광을 얻으신 그런 이름입니다. 이 앞에서는 돌에다가 새 이름을 새긴 것인데 받는 자만 아리라. 그것도 그런 이름입니다. 여기서는 전부 주님 자신의 영광을 주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산 성전이기 때문에 실은 다른 성전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전의 기둥이 되겠다는 말은 구약 성전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 새로 주님 오셨을 때 성전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주님 자신이 성소가 되시기 때문에 따로 성소가 필요 없고 온 우주가 주님의 성소여서 하나님이 만유의 주가 되실 것이어요. 그때 주님을 영광 중에 나타나시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에 그의 새 이름을 기록하겠다 그렇게 이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한 약속이고 상급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에게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물론 구약이 아니니까 신구약의 간격으로 우리에게 건너뛸 필요는 없습니다. 또 예수님 지상 생애도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점으로 해서 다시 전진시킬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기록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아서는 우리하고 구원 역사적인 위치가 같습니다. 물론 사도가 직접 다스렸다는 의미로는 교회시대하고는 다르지마는 내용상 보았을 때는 우리나 그들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다니엘서를 보면은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킨 바벨론을 중심해서 그 뒤를 이은 모든 왕들은 짐승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시록에서도 열국들을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서에서 보았던 짐승과 요한계시록에서 보았던 짐승은 다르겠지요. 다니엘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켰든 4대 제국을 짐승으로 보고 있고 이 로마서는 지금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 정권을 짐승으로 보고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로마 정권 밑에 이전에 모든 짐승의 권세가 한거번에 구현돼. 짐승이 혼합으로 나타나요. 그런 권세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의 짐승의 대상과 신약의 짐승의 대상은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그러니까 짐승의 목베임을 받는다. 짐승의 이름을 받게 하는 것은 고난받는 구약 백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록에서는 로마 정권 밑에 핍박을 받는 신약 교회를 두고 이르는 말이 되겠지요. 주님께서 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을 둔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일어나셔서 모든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으로서 교회를 그렇게 세우신 것입니다. 주께서 하나님 앞에 죽음에 이르도록 충성하셨고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하늘의 보좌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다윗 왕조의 완성입니다. 그는 그 보좌에 앉아있기 때문에 그 모든 왕권은 그에게 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문은 그냥 다윗 왕조를 관리하는 문이 아니라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내가 가졌노니, 그렇게 설명한 것처럼 그는 모든 죽음의 권세로부터 영원한 구원의 문을 자기 백성에게 열으셨고 그리고 그를 거역하는 자를 영원한 지옥 형벌에 가두는 그런 권세있는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분이 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았을 때 그분이 땅위에 교회를 세우셨는데 교회의 복음 전파를 통해서, 주 예수의 이름 증거를 통해서 그 열린문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내가 너희 앞에 열린문을 두었노니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겠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리라. 또 요한복음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들이 뉘 죄든지 사하면 하늘에서 사해질 것이고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하늘에서도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처럼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 만민을 가르쳐서 지키도록 해라. 그렇게 여기 저기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지금 교회의 역할이어요. 그런데 빌리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이 일을 충성스럽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땅에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에 만민을 어둠의 권세로부터 구원하는 복음 전파의 길을 어두움의 세력이 막을 수가 없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문을 둔 것은 곧 그런 축복입니다. 그들은 소수의 무리여도 그들이 복음을 증거하면은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불러들이기 때문에 어떤 권세도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일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교회가 감당하고 있는 구원역사적인 의미에요. 교회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은 천사도 증거하지 않습니다. 구약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증거함으로 세상에 여호와의 나라를 세웠던 것처럼 보좌 우편에 취임하신 주 예수의 복음을 봉사하는 것은 땅위에 교회이지 어떤 다른 기관도 아닙니다. 교회가 주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면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께서 지옥의 열으시고 자기 백성을 거져내셔서 자기와 함께 영광의 보좌에 앉게하셨고 그리고 그들과 함께 참으로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복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권세를 받으셨기 때문에 그의 권세를 막을 어두움의 세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감당할 위치인 것을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교회가 소수의 무리요 땅에서 보았을 때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인간적인 조직으로 보았을 때도 인적 자원도 그렇고 조직으로 보았을 때도 세상의 조직과는 다릅니다. 힘있는 권세로 조직을 가지면은 그 조직으로부터 떠나면은 사망의 위험을 받기 때문에 복종하지마는 교회는 그런 조직은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유력한 사람이 그를 지배하기 때문에 그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면은 그는 그 사회로부터 떨어지겠지마는 교회는 그런 유력한 지도자를 둔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도 그 당시 갈릴리 어부들이어서 참으로 비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전한 복음이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계신 분이 누구십니까? 일곱 별을 오른 손에 붙드신 분, 그분은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자들 가운데서 먼저 일어나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이기 때문에 만국이 그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요 소망입니다. 이 빌라델비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활동을 많이 하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이 믿음을 지키면은 하나님께서 만민을 영광의 문으로 불러들이는 일에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네가 이 믿음을 지키면은 앞으로 큰 환난이 올지라도 너희들이 결단코 넘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인내의 말씀을 지켜라. 내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라.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방식이다. 그것이 죄인들을 하나님의 영광의 문으로 불러들이는 능력이다. 그러니까 내 이름을 배반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라. 그렇게 이 본문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실재로 우리 나라 초기에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에 우리 나라 교회도 참으로 약했지요. 처음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관리나 평민들은 별로 없고 전부가 종살이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가정에서 핍박을 받는 여인들이 교인들이 되었지요. 또 그 때 서양 선교사가 왔지만 한국 말을 얼만큼 잘하겠어요. 그 당시 창경원 동물처럼 전부 구경감이지요. 그래도 그들이 입을 열어서 이만큼 세상이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들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예수 믿으면 장로쯤 되어야 표도 찍어주니까 야단이지마는 옛날에 예수 믿으면 그것은 집안 쌍놈이라 세상에 살지를 못해요. 그래도 이렇게 되어 있지 안해요. 그 때 교회가 무슨 돈이 있었습니까? 지금은 교회에 돈이 많지마는. 요새 성미라는 것이 그때 좀지리 쌀이어요. 조금씩 조금씩 돌라내도 시어머니가 모르는 것이 좀지리 쌀이지요. 서울 말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하위도 말로는 좀지리 쌀인데. 그것 갖다가 교회에 갔다 내고 해서 교회가 자립도 하고 이만큼 성장한 것이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 교회는 묘합니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아이디어고 좋은 일인데 그 다음 성경적인 의미가 있어야 복을 받겠어요. 거기다 성경의 의미를 붙입니다. 여러분의 상에 하나님의 숱가락 몫이 있어야 한다. 인제 그런 식으로 성미를 해석합니다. 거기다 조금 더 나가면은 일반미는 목사 몫이고 정부미는 전도사 몫이고, 그것도 전도사에게 성미를 주었을 경우. 그쯤되면 할 말이 없지요. 지금 물론 제 이야기 한가 미안합니다마는 저런 큰 교회에서는 생활비가 넘쳐납니다. 그래도 이 전통을 벗어나지를 못해요. 누가 하나 시작했다 하면 성경을 붙이고 권위를 부여하니까 그 다음에는 그것 안하면은 만일에 성미를 안내고 밥먹다가 돌이 씹였다 하면은 아하, 성미 안냈구나, 그것이 양심에 찔리겠지요. 그렇게 해서 사람을 종교적인 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지금은 옛날처럼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전부 돈주고 사먹지 안해요. 그리고 지금은 부인들이 남편들보다 돈이 더 많지요. 그런데도 옛날 전통을 성경의 이름까지 붙여가지고 하니까 할 말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자립하지 못했을 때 여성도들이 눈물나게 했던 봉사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 교회가 이처럼 부흥한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능력이 있었습니까? 그때는 은과 금은 없었고 인적 자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주되심을 두려움 없이 증거했습니다. 그때는 추도식도 안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변했는데 지금은 교회가 금잔을 들고 붉은 짐승을 탔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다 교회에 있습니다. 그것으로 영혼들을 취하게 합니다. 은과 금이 없어서는 이제는 교회가 복된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유력한 인물들을 불러들였습니다. 왜 교회가 유력한 인물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러니 선거 때가 되면 후보들이 헌금 갖고 여기 저기 심방합니다. 인사할란다고. 그렇게 되지요. 우리 교회에 누구누구 출석하는도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여 놓았어요. 그러나 그것은 안되지요. 그것은 바벨론 교회지요. 소돔 고모라의 교회지요. 그것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교회입니다. 수는 많이 불었지마는 믿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5.18사건 때 일반 대학생 보다도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서 힘이 없었어요. 그런 불의를 행하는 것을 보고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고 조찬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만 했지,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오용했노라고 그렇게 하는 것은 천주교보다 못하고 일반 대학생보다도 못했습니다. 그것이 우리 나라 교회에요. 그리고 I.M.F 사태 터지니까 우리 회개합시다. 왜 권력은 겁나니까 회개합시다 말을 못하는데 교회에 돈이 떨어지고 장노들 사업이 불안하거든요. 그러니까 기도합시다. 그리고 이번에 어떤 분이 잘못하니까 그동안 그분이 선교 헌금을 얼만큼 많이 했냐? 그러고는 탄원서 냈지요. 선교 헌금을 다했어도 법에 걸리면 걸린 것이지 그것을 갖고 교회가 탄원서를 낼 필요가 뭐가 있어요. 그건 못해요. 저도 어떤 경우에는 증인을 선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는 서약을 했기 때문에, 그러나 해야될 경우가 있고 안해야될 경우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 놓고 교회라고 그래요. 그러니 우리들이 깊이 잘 생각을 해야됩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요구하신 것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열린 문을 우리 앞에 둔 것이어요. 이제는 그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충성된 증인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시인해서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잘 증거하고 시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 가운데 일으키셔서 이전에는 세우지 안했던 하늘의 영광의 나라를 세우시고 그를 보좌에 앉히셨기 때문에 그 나라의 모든 열쇠는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이 권세의 나라를 봉사하도록 땅에 고회를 세우시고 빌라델비아 교회를 여기 두셨다 그런 말입니다. 그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습니다. 그들이 주 예수의 이름을 고백하면은 죄인들을 구원하신 분은 교회의 권세가 아니라 다윗의 열쇠를 가진 그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그분, 그분의 손에 있기 때문에 어두움이 그의 백성을 묶지를 못합니다. 강팍한 사람들도 돌아와서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시도다. 바로 그 구원의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들이 신앙을 지키면은 앞으로 더 큰 환난이 올지라도 세상의 권세는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열쇠를 가지신 이가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기 때문에 이런 교회를 지키시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그들을 삼키지를 못할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명도 그런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좋은 일 한다고 해서 죄를 지으면 안되고 우리가 할 일을 하는 것이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위치에서 우리에게 주신 힘을 헤아리고 그리고 당위적으로 신앙을 고백해야 됩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6.25같은 전쟁이 나니까 아이고 우리 새끼들 굶어 죽은디, 그리고 살살 묘한 짓거리 해갖고 얘기들 잘 길렀어요. 그리고 남편이 6.25 같으면 안되고 독립투사로 해야되겠구나. 저 만주에서 돌아왔어요. 와서 보니까 얘기들은 주렁주렁 있는데 25시 영화처럼 묘한 얘기도 하나 있어요. 그래 놓고 당신이 외국에 갔을 때 내가 가족을 지켰소. 그렇게 말하면은 실은 부부끼리는 정조가 핵심이지 다른 자식이 있어도 그것은 다음 일이어요. 그런데 자식이 소중하다고 해갖고는 남편 없는 사이에 다른 일을 해놓고는 당신 없는 사이 내가 고생했지야고, 당신은 고동안 도망만 다녔지. 돈번 적이 있느냐고. 당신은 독립투사라고 신문에 나기도 하고, 나는 신문에도 못나고 이 고생을 했노라고, 그렇게 하면 그건 아내로서는 빵점이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 교회는 그래요. 신사참배 때도 봐라. 당신들은 옥중에 가서 살 피둥피둥 쪄갖고 왔지마는 우리는 앙떼를 지켰지 않냐? 하고 일본 신사를 여기다 붙여놓고 예배드리다 사이렝 소리가 뚜 하고 나면 묵념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면 일본 쪽을 보고 동방제배 다하고 그리고 단체로 가서 신사참배 다 하고 그리고도 하나님의 교회를 지켰도다. 그것이 우리 나라 교회에요. 물론 그런 일에 승리했던 재건교회가 그 다음 교만해서 신학의 성장을 갖지 못하고 많은 부덕을 드러내니까 인제 바리새인이니 이단이니 공격하지마는 한국 교회가 우상 섬긴 죄는 교회사적인 일이라 핑계를 못해요. 만일에 승리한 몇 사람이 없었으면 한국 교회는 비참하게 될 뻔했습니다. 그래도 지금 숫자가 불어나고 그러니까 저 교만한 것들, 그러나 제가 보았을 때는 지금도 우상숭배를 해요. 그래놓고도 믿음을 지켰다고 하면은 안된다 그말이어요. 아내가 정조를 지키는 것처럼 우리는 당위적으로 살아야 됩니다. 마땅히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을 주님의 이름으로 고백하면은 그것이 능력이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도 안주면서 무슨 일을 하라고 하시는 법은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힘이 적을지라도 예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모든 사람 앞에 예수의 주되심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상 섬기지 않는다는 의미로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내생의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먹고 마심의 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계시록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짐승의 권세에 복종하도록 한 것 뿐이 아니라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해요. 모든 것은 바벨론으로부터 물건이 공급되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짐승의 표를 안받으면 매매를 못해요. 그러니까 짐승의 권세에 복종하고 짐승의 모든 부요함에 굴복하고 살라는 말이지요. 우리들은 우상 숭배는 쉽게 하지 않습니다. 그건 좋아요. 그러나 문제는 이 세상의 상식으로 살지 않으면은 굶어 죽겠다는 것이지요. 그 문제에 있어서는 쉽게 굴복합니다. 천국은 죽은 뒤로 일이고 지금 당장은 밥먹어야 삽니다. 우상 숭배는 하지 않지만 세상의 정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장사하신 교인들도 그래요. 장사꾼치고 거짓말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요. 제가 그전에 예 안들던가요. 어떤 분이 장사하는데 거짓말은 못하겠고 6.25후로 부산에 살면은 미제 물건 갖다가 물들여서 팔 때거든요. 그런데 손님이 사러오니까 거짓말은 못하겠고 기지를 보십시오. 기지를. 그런데 손님이 기지를 알 수 있습니까? 이것 종교요 새것이요. 하니까 거짓말은 못하고 기지를 보십시오. 기지를. 그것이 우리나라 교인들이어요. 그러고도 십일조만 내면 복을 받아요. 장사가 이익을 보는 것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손님은 이 장사꾼이 얼마나 이익을 보는지 알 필요도 없습니다. 세무서에서는 알 필요가 있어요. 이익을 얼마나 보았으니 세금 얼마를 내라. 그러나 손님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물건이 진짠가 가짠가는 알 권리가 있지요. 그리고 자기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정당한 장사는 하나님의 재화를 공급하는 것이어서 아주 가치있는 직업이지 먹고 살려니까 할 수 없어 거짓말해서 먹고 사는 것은 아니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들의 의식은 믿는 사람도 장사 할려면 거짓말을 해야 된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양심이 어두워지는데도 십일조만 내면 그 재산이 보존될 것이어요. 이렇게 되어 있다 그말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 이름을 시인한다는 말은 우상 숭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심, 죽을까 두려워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도록 하는 모든 세상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주님이 내 생명의 주인이다고 고백해야만 주님 오셔서 영광스러운 그 나라에서 우리의 이름이 있는 것이어요. 그렇게 사셔야 될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대해서 생각했을 때는 그 점은 생각합니다. 우리가 큰 일은 한 것이 없어요. 그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너무도 귀하고 귀적적인 일이고, 그리고 그 일을 고백한 일에 있어서는 양보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수는 적지마는 또 묘하게도 많은 목사님들이 그것이 옳다고 받아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전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어요. 유대인이 예수님 안믿는 것만큼 더 힘든 것이 그전에 신앙고백서를 떠나서 우리가 전하는 것을 믿는 것은 더욱 큰 기적이어요. 많은 사람이 믿고 좇고 있지 안해요. 저는 그것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모르지만은 이 복음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면은 하나님은 그 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어요. 어떤 세력도 영광의 빛을 막지 못할 것이어요. 또 저는 제가 가르치는 교훈을 받아들인 목사님들게 이야기를 합니다. 만일에 내가 유명한 학자고 그러면은 나 때문에 이 복음이 있겠지마는 알다시피 내가 책도 제대로 못사보는 사람이고, 지금은 생활이 평안하지마는 그때는 험하게 살았고 내가 공부를 못한 사람이다. 그러면은 내가 하나님께서 이 복음을 알고 성경을 가르치면은 여러분들은 나보다 낫지 않냐? 그래서 이번에도 그분들이 만든 공과가 왔어요. 교회에 써보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어떠튼 소수의 무리들이 우리가 배운대로 성경을 다시 해석해서 한번 가르쳐 보자. 공과를 만드니까 저는 대단히 기뻐요. 물론 우리와 함께 교단을 만들지 않으니까 아쉬움은 있지마는 그러나 기존의 틀을 바꾸어내고 전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각오에서 성경을 읽고 한번 해보겠다. 나는 그것을 큰 열매로 보고 있어요. 열매를 지금 당장 우리가 딸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고 죽는 것이 우리의 일이요 하나님의 영광은 다음에 나타날 것이어요. 우리는 단지 일을 크게 하기 위해서 신앙을 변질하면 안되고 열매는 하나님께 있고 우리는 믿음을 고백함으로 하나님은 그의 구원의 문을 열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되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별로 힘이 없는데 많은 사람을 가르쳐 보자. 목표는 좋지요. 그런데 교인들이 그만그만 가난하지 안해요. 우리가 한번 힘을 내보자 하고 텔레비나 방송하고 신문에 내 보십시다 하면은 우리는 내일이면 부도나버리고 하도 못해요. 건물 짓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터는 넓게 잡아놓았는데 돌 몇 개 놓고 쉬고 있으면 얘기들 놀이터가 되면은 동네 사람들이 다 웃어버려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저어진 위치에서 일을 하는 것이어요. 저는 그런 점에 있어서는,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는 사람을 가리는 일이 없고, 여러분드로 복음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는 적은 일에도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기는 그들이 필요한 만큼 공급을 하면서 마음이 섭섭할련지 몰라도 우리가 자기고 있는 재원을 가지고는 우리 힘껏 한것이어요. 우리가 더 이상 어떻게 해요. 저도 우리 후배들이 나가면은 건물을 얻어주고 잘하면 좋아요. 그러나 그것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어요. 그것을 저보고 하라면 제가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제가 몸이 불편해도, 목회생활이 바빠도 그런 일을 제하고라도 그들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어떠튼 저한테 배운 사람들이 설교 잘한다고 소문이 나있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저를 비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교인들은 그럽니다. 내가 설교는 해도 실은 목사님이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가 은혜를 받은 것은 실은 전부 목사님이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많은 사랑을 베풉니다. 실은 그분이 저보다 목회를 잘하지요. 제가 보았을 때는. 그러니까 교회가 잘되는 것이지요. 그래도 그분은 그렇게 겸손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김강호 목사 식으로 하니까 부흥이 안되더라. 너는 성경을 가르쳤지 그들이 그들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그들의 사랑의 지혜에요. 물론 저처럼 하면 교회는 부흥이 안될 것이어요. 왜 사람들을 칭찬한 것이 별로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되지요. 저는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가 욕을 먹고 앞으로도 시련을 격을련지 몰라도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만큼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줄로 저는 그렇게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만일에 저만 믿으면 이상한 사람이지마는 제가 이처럼 악조건 밑에서 가르쳐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받고 그렇게 연합해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좋은 열매가 아니겠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 여러분들 교회에 계신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하늘 보좌에 권세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분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분이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 앞에 열린문을 두어서 이 복음을 증거하게 하는 것처럼 복된 일이 없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이 은혜의 문을 주셨으면은 그가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 우리는 큰 것을 욕심낼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우리의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의 힘을 헤아리고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면은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닐지라도 주님은 유력한 자들로 무릎을 꿇게 하시고 가장 강력한 자들로 무릎을 꿇게 하셔서 참으로 교회를 부흥시키실 것이고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주님 오셔서 하늘 예루살렘이 내려오고 우리의 이름이 새 이름으로 기록되도록까지 그 영광의 날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은혜의 빛을 결단코 입을 닫지 말고 신실히 고백해서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그렇게 복음 전도의 일을 잘 감당하셔야 되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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