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22:30-23:35

찬미예수님 2025. 9. 23. 05:53

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22:30-23:35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으로 와서 성전에서 잡히고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께서 자기를 이방인에게 보내셨다고 증거했고 그 일 때문에 바울이 그들에게 폭행을 당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증거한 사실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였던 예수가 곧 그들의 주 하나님이시요 그 분이 성전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함으로 바로 그들의 죄를 거절할 뿐아니라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이전에 주님께서 성전을 두번 청결케 하셨을때도 그들은 그 일에 분노했지 회개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의미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왔다고 바울을 포박하고 있지만 오히려 주님께서는 이전에 성전을 강도의 굴혈이라고 판단했던 것처럼 이제 유대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이방인들은 들을 것이니 그런 의미로 주님은 성전에 계시지 않고 친히 이방에 계시는 방식으로 자기를 증거했기 때문에 그것은 유대인들의 큰 분노를 일으키기에 합당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된 것과 그들에게는 거룩한 율법이 있는 것과 하나님 앞에 예배할 거룩한 성전이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민족적인 자랑인데 이제는 개처럼 취급했던 이방인들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지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이방인들은 받을 것이므로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라 하나님의 선지자를 곧 이방인에게 보낸다고 말하고 또 그들은 내말을 듣지 않으리라고 말함을 통해서 그들은 참으로 성전을 훼방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고 이방인에게로 가신다고 이해했기 때문에 큰 분노를 일으켜서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천부장의 손을 통해서 바울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비록 이 세상정권이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봉사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떠나있지만 바로 보좌에 취임하신 주님께서는 하늘과 따의 모든 권세로 천하만민으로 부터 그의 교회를 불러 모으기 위해서 보좌에 취임해 계시기 때문에 이 세상권세가 새롭게 되어서 주님을 순복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도 이 세상권세를 주관하시는 분은 아들이 통치하시기 때문에 이제는 이방의 권세들 가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를 봉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 22:30-23장 까지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바울이 증거한 것이고 또 그 공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바울이 증거했을때 거절했던 것처럼 산헤드린 공회도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거절했고 또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 보호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2장30절에 보면 이튿날~온 공회를 모으고~세우니라바울이 공회를 주목여 가로되~섬겼노라 하거늘, 23:1. 여기 산헤드린 공회는 이스라엘 최고 치리기관입니다. 그들은 로마 정권 밑에 있어서 사형권도 없었고 어느정도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문제를 판결하는 권이 있고 특별히 종교적인 문제는 그들이 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거기서 그는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자기도 섬긴다고 신앙을 고백하고 그렇게 했으면 정당한 심문절차가 있어야 되겠지요. 그런데도 여기에는 이미 그들의 분노가 머리 끝까지 올라 있기 때문에 그를 잡을 증거를 잡으려는 것이지 그를 합당하게 판결하려고 증거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2절에 보니까 대제사장 아니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그래서 대제사장이 판결의 자리에 앉아서 피고인 바울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고약한 입을 치도록, 말하지 못하도록 입을 치도록 명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합당한 판결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증거를 구해야 되는 것인데 그런 방식으로 되지를 못했습니다.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하더라(3-5)’그러니까 대제사장은 재판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판결을 구하는 증거를 찾아야 되는데도 그는 아무란 증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판결을 내려서 재판석상에서 폭력을 행한 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를 회칠한 담으로 정죄하고 네가 나를 치라 하는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너를 치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니 곧 대제사장의 판결은 하나님의 율법의 판결을 대행해야 되지 자기 스스로의 권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법을 빙자해서 바울을 판단하는 그는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바울 곁에 선 사람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욕하느냐 그처럼 말했을때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몰랐다. 성경에 말씀하시길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말라 하였지 않는가.내가 모르고 그랬다고 사과했다고 되어 있습니다.이제 이런 장면에 대해서 여러가지 해석들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비꼬아서 대제사장이면서 그렇게 망령스럽게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거룩한 판결을 대행해야할 대제사장이 율법에 비추어서 판결을 해야할 대제사장이 율법을 어기고 자기권위로 거룩한 회에서 폭행을 가하도록 하는 것은 대제사장의 행위에 맞지않기 때문에 대제사장이면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는가.나는 모르고 그랬다. 그 사람은 대제사장이 아닌줄 알고 그랬다.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대제사장인 줄 몰랐다고 비꼬아서 말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말라 한 그것도 그러면 비꼬는 방식으로 인용한 형식이 되겠지요. 그가 관원인줄 알았으면 내가 그런 말을 했겠느냐 그가 관원이면 그런 행동을 해겠느냐 나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가 관원이 아닌줄 알고 그렇게 했지 성경에도 관원은 비방하지말라고 그랬는데 그렇게 했겠느냐 하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성경을 그처럼 그 사람들에게 대항해서 비꼬는 방식으로 경건치 않는 방식으로 인용했는가를 생각할 때 수긍하기 어렸습니다. 이제 다른 한가지 해석은 바울이 굉장히 눈이 나빠서 편지를 쓸때는 옆에 있는 사람으로 대필하게 하고 또 중요한 자기의 증거가 필요한 교회들에 대해서는 친히 뒤의 인사말을 큰 글자로 싸인하고 그런방식으로 자기가 친히 편지하고 있는 사실을 증거했거든요.굉장히 눈이 나쁜 것을 알 수가 있겠지요. 그렇게 했을때 그가 재판장석과 피고석이 조금 거리가 있으면 잘 분별하지 못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이 이렇게 명령하니까 말하자면 합법한 권위가 없이 율법을 어겨서 말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해석은 합당한 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바울이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은 이전의 대제사장하고는 상당히 기간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 대제사장은 아나니아이고 예수가 판결을 받은 대제사장은 안나스 그의 사위 가야바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그당시 다른 제사장을 세웠는지 이전의 대제사장의 시대는 끝나고 새로운 대제사장을 세웠는지 그것은 주석적인 연구들이 필요합니다. 어떻든 기간은 바울이 예수믿는 자를 잡아 핍박하려고 갔던 때와 지금 잡혀서 재판을 받을 때는 약 2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적이 없고 주로 이방땅을 돌았기 때문에 여기의 산헤드린 공회원들하고 친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지요. 그러기때문에 이제 그전의 자기가 대제사장에게 체포영장을 받아가지고 예수믿는자를 잡으러 갔을때는 굉장한 친교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마 그 후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도 개인적인 친교는 거의 없었고 더구나 산헤드린 공회원들하고는 관계가 없었으리라고 합당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대제사장을 몰랐습니다. 이 재판은 합당한 재판을 위해서 증거를 찾고 그 증거에 따라서 증인의 말을 들어보고 그런 것이 아니고 증인이 그 신앙을 고백하려고 했을때 발언조차 제안하는 방식으로 입을 치고 했기 대문에 여기서는 정당한 판결을 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절 부터보면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종교적인 계통들이 사두개인들이요 바리새인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상태는 사두개인들은 헬라화된 유대인들이어서 주로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있었고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정복하고 유명한 주요 지점에는 알렉산들리아 도시들을 세웠는데 물론 대표적으로 성공한 도시가 애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시이지만 가는 것마다 중요한 도시들을 건설하고 헬라문화를 이식시켜서 모든 세계를 헬라화하려는 방식으로 노력을 했습니다.그런 방식을 통해서 헬라에서 헬라도시들을 연합시키고 있는 것은 4년마다 올림푸스 광장에서 모이는 운동경기입니다. 제우스 신의 이름으로 모여서 경기하는 것이 아닙니까? 운동경기를 통해서 도시국가들이 뭉쳤던 것처럼 그런 일을 통해서 세계통일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이고 지금도 그것이 진행되는 것을 우리가 보지요.4년마다 올림픽을 하면 거기서 불을 가져오고 세계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고 그렇게 해서 올림푸스 신전을 이족으로 옮겨온 식이 되어요.그렇게 해서 경주를 하고 거기에서 많은 영웅들이 나오고 그렇게 해서 세계가 평화의 축제를 하는 것처럼 진행되지 않습니까? 그런 일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지도계급들은 많이 부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계급은 주로 제사장 가문인데 주로 그 가문들이 그처럼 되어 있어서 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는 방식으로 종교의식을 집행해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순수한 계시에 대해서 바른 신앙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물론 소위 조상을 이스라엘 배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부터 돌아왔지 않습니까? 돌아왔을 때부터 그들이 우리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뒤로 부터 돌아와서는 율법을 지키는 데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예배중심도 성정이 약속의 표상으로 지어졌다 할지라도 법궤가 있는 성소는 되지 못하지요. 그래서 돌아온 뒤로 부터는 그런 의식적인 예배중심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여기저기 회당을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종교가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제일 처음 주도했던 사람이 에스라지요. 그래서 바리새인의 아버지를 에스라라고 말하는데 에스라는 유대인들이 나중에 바리새인화 되어서 지켰던 율법을 이해했던 서기관은 아니지요. 단지 그때부터 하나님에 말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또 에스라가 구약성경을 편집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의미로 에스라가 바리새인의 시조라고 말하고 있지만 에스라의 신앙이 바리새인의 신앙과는 다릅니다. 그런데 어떻든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으로 이해하고 말씀을 보존하는 일에 심혈을 쏟았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뒤로 그들이 점점 이전에 가졌던 성경 히브리어에 대한 이해력이 낮아지고 아람어화된 히브리어를 써서 나중에 본래적인 성경의 언어를 보존하려고 맛소라학파가 일어나서 모음 부호를 붙여서 성경을 연구한 것도 이 바리새인 측에서 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정권에 대해서 헬라문화에 대해서 반대적인 입장에 섰고 정치적으로 로마편에 있는 사람들은 헤롯당들이고 종교적으로 이방에 서있는 사람들은 사두개인들입니다.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유대전통을 고수하는데 아주 사활을 건 사람들이고 그런의미로 이스라엘 백성중에서도 분리된 백성으로 자신을 분리해서 자신들처럼 율법을 아는 사람은 복받은 백성이고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율법을 모르면 저주받은 백성이고 하는 방식으로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이스라엘의 종교전통을 지켜온 사람들이죠.그래서 성경을 연구할 뿐아니라 문자에 매여서 그것을 지킬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그들은 천사도 있고 부활도 있고 영도 있다해서 사두개인들과 다릅니다. 그 다음에 실제적으로 종교의 경건성을 유지했던 사람들은 에센파라 해가지고 쿰란 동굴에 있으면서 성경을 연구하고 세례요한처럼 경건성을 유지한 팀들입니다. 어떻든 산헤드린 공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종교적으로는 그 부류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경을 베껴쓰는 서기관들은 주로 바리새인측에서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합당한 판결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정당한 판결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으로 자기와 같은 신앙의 노선에 서 있엇던 왜 그도 부활의 소망때문에 이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려고 이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이고 그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은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바로 그들이 소망하는 부활에 대한 증거 때문에 핍박을 그가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말하자면 바리새인을 향해서 자기호소를 했습니다.그것을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미 이 산헤드린 공회는 설교를 들은 회중이 아니다.또 재판도 받을 수 없고 그러니까 그들을 분리시킬려고 바울이 작전으로 그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원했던 소원대로 거기서 대분쟁이 일어나 가지고 말하자면 천사를 통해서 바울의 천사가 바울의 입을 통해서 저런 말을 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바리새인들이 열열이 지지해서 큰 분쟁이 일어나서 이제는 재판도 더 진행될 수 없게 되어서 바울이 여기서 빠져나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그 청중을 보고 어떻게 설교본문을 택하며 또 청중에게 어떻게 설교를 적용하는가 했을때 이렇게 믿지 않는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설교의 아이디어인 것처럼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어떻든 산헤드린 공회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이제 70년에 성전이 훼파되고 이제 다시는 대제사장의 가문을 찾지 못하도록 흩어지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여전히 권위를 시행하고 있고 이처럼 권위있는 기관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땅에서도 산헤드린 공회에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했을 뿐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사도를 통해서 부활하신 자신을 여기서 증거하고 있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합법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기관입니다. 그런 기관에 대해서 바울이 단순히 분쟁을 일으키려고 이렇게 작전상 부활을 증거했겠는가 그것은 옳은 해석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정당한 판결을 받을 수 없고 이제는 자기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바리새인이어요.그래서 산헤드린 회의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자기와 같은 신앙의 계열인 바리새인을 행해서 부활을 증거했다고 하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입니다. 그는 그런의미로 바리새인의 보호를 입었습니다만 바리새인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믿었던 것이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부활의 개념,천사,영의 개념을 가지고 단지 바울을 보호했을 뿐 그들이 믿음으로 돌아선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섭리는 이전에는 주 예수를 산헤드린 공회가 합심해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헤롯왕과 바리새인들이 그 날에는 친구가 되었습니다.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붙잡아 이방인에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은 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 거절했다고 말할 수 있고 이제 하나님이 빼신 이스라엘 백성들 까지라도 이스라엘 안에 일하셨던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온 세상은 그 죄악의 정체를 잘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좌에 계셔서 자기 종들을 세우셔도 자기가 친히 왕들 앞에 증거한 것이고 그런의미로 주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이처럼 증거했고 그리고 그 회는 이전에 예수를 죽였던 방식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 안에 분쟁이 일어나서 바울을 죽일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니까 주님께서 천부장을 통해서 보호했을 뿐아니라 이제 주님께서 바울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담대하라~하리라 하시니라이제 주님께서는 친히 자기 종을 통해서 이방인을 자기 구원에로 부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증거했을 뿐아니라 이제 이방왕 로마 왕 앞에 그 은혜를 증거해서 천하의 모든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의 증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선교열망을 하나님이 복주셔서 네가 이렇게 신실하니 이런 길도 열어 주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바울을 모든 사람에게 이처럼 자기 증인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이제는 이방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바로 친히 이방인에게 맺은 열매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자기 백성에게 증거했을 뿐아니라 이제 백성들 뿐아니라 이방왕궁에 들어가 왕 앞에 증거함으로 온 천하에 자기를 증거하시는 분으로 여기서 계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바울을 붙드시고 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분노가 가득차서 또 다시 바울을 심문한다고 바울을 요청하고 바울을 다시 산헤드린 공회로 부르는 길목에 지켰다가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했습니다. 아주 목된 맹세이지요.그것도 식음을 전폐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큰 분노가 일어나면 그들은 재를 무릅쓸 뿐 아니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옷을 찟고 식음을 전폐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분노를 나타내지요.식음을 전폐하고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우리가 굶어죽으리라 그런 방식으로 맹세하고 바울을 다시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의 섭리가 바울의 조카가 그 사실을 듣고 바울에게 알리고 바울이 로마시민이기 때문에 정당한 소원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청년을 자기 대신으로 천부장에게 보내서 그 사실을 아뢰고 그렇게 해서 원수의 손에 바울을 맡기지 못하도록 요청했고 그 요청이 받아들여 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우리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땅에 잡혀갔을때 특별히 에스더서를 보면 아하수에로 왕 당시때 하만의 모략으로 모르드개를 중심으로 온 이스라엘 백성이 죽을 지경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수에로 왕이 잠이 안와서 자기나라 궁전의 역대왕들의 역사를 쭉 읽도록 하였는데 그때 모르드개의 공로가 나타났지요. 그 사람에게 합당한 상을 주었는가 준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아직가지 상을 안주었는가.그래서 모르드개를 높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날 밤 임금이 잠이 안왔고 그렇게 역사를 폈는데 마치 그쪽을 펴도록 했지요.그렇게 해서 모르드개를 죽을 지경에서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이런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해당됩니다.이전에 여호사밧 임금이 이스라엘 왕 하고 같이 전장에 나갔을때 까지라도 이스라엘 임금이 자기를 변장하고 안죽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화살을 인도해서 왕의 갑옷 사이를 쏘므로 주었지요. 그런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지요. 여기서는 하나님의 섭리가 바울의 조카를 통해서 그 기미를 알게하고 또 이방왕의 천부장은 왕을 대신하고 있지요.나중에 상소하고 잇습니다만 자기를 부당한 방식으로 원수의 손에 맞기지 않도록 이처럼 요구해서 그 요구가 허락을 받아서 보호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미치지 못하는 가이샤랴 지방으로 또 거기에 총독이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보냈고 그가 길리기아 다소 사람으로서 총독의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거기서 보호를 받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그는 죄수로 갇혀있어도 그런의미로 원수의 손에서는 가장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하나님께서 바울을 이처럼 보호하신 이유는 이방 왕앞에 그를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처럼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고 머리카락 까지 다 세신 바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을 주님께서 마10장에서 자기 종들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어떻든 하나님은 자기종을 이스라엘 백성의 증인으로 삼을 뿐아니라 이방왕 앞에 증인으로 삼아서 천하만민이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들어야 하고 그런의미로 천하만민에게 이 복음이 증거되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을 바울에게 이처럼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섭리의 보호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든 주님 재림하셔서 이 세상의 모든 권세가 그 앞에 무릎을 꿇도록까지 주님은 이 세계를 주관하시는데 천하만민으로 부터 그의 교회를 불러 모으기 위해서 교회의 완성을 위해서 지금도 보좌에 계시는 것이고 그 일을 위해서 그는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세상권세가 유지되는 방식도 하나님의 교회의 완성 주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의 역사의 완성을 위해서 세상역사가 보존되고 진행되는 것이지 그냥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권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그런의미로 보호해야되고 하나님의 교회가 합당하게 복음 선포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할 의무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교회가 보존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은 그 하나님의 섭리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좌우편에 계셔서 여기까지 복음을 증거케 하셨고 우리를 통해서도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증거하도록 까지 하나님은 역사를 보존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바울보다도 훨씬 더 보호를 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더 유리한 가운데 있습니까? 또 지금은 세계가 평화를 빙자해서 국경이 열리고 있기 때문에 이전의 어느시대 보다도 복음을 전파하기에 가장 좋은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또 지금은 문명의 이기로 지구촌으로 좁아져 있지 않습니까? 또 우리나라로 보아서도 가장 적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고 하나님의 섭리하심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우리에게는 충성이 문제이지 우리 앞길이 어떻게 열릴 것인가 그런 문제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의미로 바울이 빈궁에 처할 줄도 알고 부요함에 처할 줄도 알고 모든 비밀을 터득했다고 주님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목중에 갇히든지 자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는 법이 없고 심지어 바울은 옥중에 갇히는 것이 원수의 손으로 부터 가장 보호를 받는 방법이고 비록 사슬에 매인 죄인이어도 그것을 통해 세상의 왕 앞에 세움으로 왕에게 증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우치를 모릅니다. 단지 부활하신 주님게서 교회를 이처럼 머리카락 까지 손대지 못하도록 인도하시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셔야 하고 우리가 처한 위치에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그것이 우리에게 편리한 환경이든지 아니든지 우리의 위치에서 전단하게 복음을 증거하면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분명히 사도는 왕 앞에 서도록 죽지는 않습니다. 그 다음에 물론 사도도 죽지요. 왕 앞에 섬으로 하나님이 왕 앞에 자기를 증거하는 사도적인 역사를 마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단지 우리가 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자기 뜻을 다 이루시리라는 확증은 우리가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계를 지배하시는 줄을 믿고 성실한 증거를 해야할 줄로 믿습니다.물론 원수는 광명한 천사로 자기를 나타내고 있고 이제까지 교회 핍박의 역사는 항상 교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도 배교의 역사였던 것처럼 신약역사까지라도 배교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고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거기서 하나님의 교회를 새롭게 개혁해서 진리를 밝히게 하시고 그렇게 해서 여전히 교회는 진행되고 있습니다.교회가 부패된다 해서 우리들이 그런 일로 낙심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관점에서는 교회가 이런 저런 부패와 타락이 있지만 주님께서 택하신 교회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신령한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을 머리로 해서 그 지체로서 역사의 처음부터 종말까지 그 교회는 변함이 없는 것이고 나타나는 양식이 다르다 할지라도 주님은 분명히 그 교회를 거룩케 하고 인도할 줄로 믿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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