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21:27-22:29

찬미예수님 2025. 9. 15. 17:57

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21: 27-22:29

 

본문 내용은 오순절 부터 시작되어 있는데 그때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듣고 그러므로 이제 예수를 머리로한 새로운 인류가 거기 나타나 있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천하만민에게 미치는 복이어서 그런 의미로 거기 하나님을 경외하는 새로운 인류로 교회가 형성된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때는 이방인들이 직접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들은 것이 아니고 이방땅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 그런의미로 구약의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세우심은 이방인들의 빛이 되도록 세우셨고 또 그들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세상에 흩으셨을때에 바벨론 느브갓네살 궁전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흩어짐이 세상의 구원이 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던 것인데 사도행전 처음에서는 그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들었다는 의미로 곧 이방의 구원이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 이방의 언어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들었으니 그런 의미로 이방에 구원이 임한 것입니다. 이제 거기서 시작된 은혜의 일들이 이제 이방인이 어덯게 직접적으로 복음을 받는가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처음에는 동족 유대인에게 증거하다가 헬라인에게도 증거하고 그리고 헬라인들을 중심해서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고 안디옥교회가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을 따라서 선교사를 보내고 그런 방식을 통해서 점점 이방인에게 복음이 확대되고 있는 사실을 말씀했습니다. 본문은 바울의 전도 말기를 맞이했지만 그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께 그들을 부탁했습니다. 사도는 떠나도 주 예수의 영은 친히 그의 말씀과 함께 교회에 역사하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붙드십니다.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에 왔는데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이방에 설립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들고 와서 하나님이 어떻게 이방인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며 그들로 아브라함의 한 자녀들이 되게 하였는가 하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을 부으심으로 한 몸이 되도록 하셨는데 유대땅의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서 이방인 형제들이 그들의 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선물을 보냄으로 그런의미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사랑의 공동체로서 새로운 인류로 하나됨이 바울의 예루살렘에 나타나는 오순절 행적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그전에는 이방땅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이방의 언어로 이 하나님의 구원의 큰 소식을 들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더 성숙되어 있어서 실제로 이방인들이 자기 손에 유대인들을 위한 선물을 가지고 와서 그런 의미로 교회가 예수를 머리로한 사랑의 공동체로 확증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때는 거기 이방인 형제들이 사랑의 선물을 들고 올라온 것입니다. 그리고 올라왔을때 유대에 있는 장로들과 사도들이 바울에게 말하기를 여기 율법에 열심이 있는 유대인 형제들이 있는데 당신이 율법의 모든 것을 멸시한다는 소문을 듣고 대단히 열이 나 있으니까 당신이 여기 나실인의 서원을 한 사람들을 위해서 비용을 대고 그렇게 하면 그 소문이 헛된 줄을 알고 아직까지 율법의 제도가 끝난줄을 알지 못하는 형제들에게 덕이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해서 하나되는 것이 옳지 않느냐? 본래 우리가 결정하기를 이방인이 주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지 유럽을 지킴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대대로 율법을 들은 유대인들을 위해서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서 몇 가지를 조심하면 되겠다. 본래 우리가 그렇게 결정했던 것이 아닌가.그래서 당신도 아직 이해하지를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또 당신도 유대인이니까. 그렇게 해서 받아들인 것입니다. 유대인 형제를 위해서 수고를 한 것이지요.물론 바울 자신도 스스로 나실인 서원을 한 적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들이 율법이 그냥 폐지가 아니라 주 안에서 성취됨으로 폐지이고 예수 안에서 성취됨으로 율법이 지시하고 지향하는 신령한 요구가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분명히 그 의미를 알고 율법의 경건한 제도들 어떤 삶의 질서들을 활용했을때는 그런 것은 은혜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바울 자신도 겐그리아에서 나실인 서원이 끝나서 머리를 깍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그 형제들을 위해서 비용을 대고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마쳤을때에 형제들이 바울을 잡았습니다. 이 형제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저 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인데 특별히 바울이 아시아 지방에서 고후 1장에 보면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한 것처럼 극악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형제들이 와서 바울을 보니까 말하자면 세상의 연병장이가 거기 나타났서요.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만났는데 바울과 함께 드로비모라 하는 에베소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아 바울이 분명히 이방인들도 여기 데려왔구나 오해하고 소리소리해서 그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큰 소동이 일어나서 거기를 수비하는 로마 군병들이 와서 바울을 잡고 어떻든 큰 난리가 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무슨 혐의가 있는 줄을 알고 결박을 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이 호위해서 끌고갔지요. 매우 위험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로마 군인에게 천부장에게 말하고 허락을 받아서 자기 백성들에게 지금 자기가 이제까지 행한 일들을 변명하는 내용이 22장에 시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2장 끝에 30절에 보면 온 공회를 모으고 23장에는 공회 앞에서 증거한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에서 그가 잡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공회에서 증거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대인들은 자기의 죄를 다 채웁니다. 예수게서 땅에서도 그가 친히 백성들 앞에 자기를 증거하셨고 재판 석상에서 분명히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했고 그 일 때문에 그는 참람하다는 판결을 받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진 것입니다. 이제 그 일이 여기서 반복되지요. 백성에게 증거했습니다. 공회 앞에 증거했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바울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증거를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게서 바울을 비록 사슬에 매인 죄수로 보냈어도 그를 이방의 왕 앞에 세움으로 이제 유대인들은 그 나라를 빼앗겼고 이제 이방인에게 증거한다는 그런 열매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떻든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들 유대인들은 산헤드린 공회 우리나라 국가는 대통령이 대표가 되겠지요. 그러니까 그 대표자들에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일들을 우리는 이해를 하셔야 되겠지요. 그 내용들이 본문 내용입니다.

여기 바울을 잡았던 사람들은 그들이 단순한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그냥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 죽이려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증거를 보면 예수를 믿되 율법의 제도 특별히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으리라. 그들도 분명히 교회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핍박들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항상 핍박은 그처럼 가까이 있는 줄을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그렇게 해서 그들이 바울을 잡은 것은 바울은 처음에는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함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그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한데도 모든 사람에게 종된 것처럼 그것이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그는 겸손이 그렇게 수고를 담당했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아비의 마음으로 그 수고를 다했습니다. 여기서도 그가 유대인들을 위해서 많은 비용을 대면서 성전에 나타났는데 유대인들이 그 일 때문에 바울을 잡았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잘 못한 것이 아니고 그들이 바울을 여기서 잡는 이유는 옛 제도의 존속을 위해서 입니다. 주 예수는 옛 제도를 다 완 성했는데도 이방인이 거룩한 곳에 들어올 수 없다. 하나님의 복음 전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반대할 뿐 아니라 분명히 옛 제도에서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성소에 나타나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유대인으로 귀화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나라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국한되었기 때문에 그 제도아래 들어오기 전에는 그들은 그 제도에서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고 교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주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확대되는 것이고 유대인들까지라도 그 성전에 이방인의 뜰이 있고 여인들의 뜰이 있고 그 아래 이방인들의 뜰이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성소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는 못해도 그들도 하나님 앞에 간구할 수 있는 것이고 특별히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성전을 봉헌했을 때에도 먼 이방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들이 어려움을 당했을때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또 이 백성이 잘못해서 이방땅에 포로로 잡혀갔을때 그 땅에서 이곳을 향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것은 벌써 이방땅의 성화를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율법의 제도와 민족적인 우월감이 있어가지고 이방인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옛 제도의 존속을 부르짖고 그렇게 함을 통해서 바울을 잡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계속 나오고 있는 장면들은 항상 유대인들이 나오면 이방의 관원들이 같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유대인들은 긑까지 그를 거절하고 이방의 관원들은 복음의 도를 받는 것은 아닌데 오히려 그 관원들은 교회의 보호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 사도행정의 기록방식을 봐서는 가이사의 죄수로 끌려가서 거기 갇혀있는데도 그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막는 자가 없고 물론 그 뒤로 많은 핍박들이 일어났지만 사도행전의 기록방식으로 봤을때는 느부갓네살 궁전에서 다니엘이 증거할 때 많은 핍박을 받아도 그를 막는 자가 없었듯이 말하자면 하나님이 온 이방땅에 하늘의 왕 그 분께서 천하모든 왕 앞에 자기를 증거하도록 교회를 세우시는 사실들을 이해하고 그런의미로 이방의 권세들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과 당의 모든 권세를 갖고 그 나라를 세우시고 완성해 나가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권세들은 자기가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그들도 교회의 보호자로 설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의 권세가 질서를 유지하는 의미입니다.

여기 22장에서 바울이 증거하고 있는 내용은 자기도 하나님의 성경을 그들처럼 믿었고 자기도 최고 정통파란 사실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배반하는 예수의 도에 대해서 그가 얼마나 앞장섰는가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공회가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도 몰랐을때 그랬는데 그가 그 핍박을 위해서 가고 있는 노중에서 바로 그들이 죽였던 예수가 하늘에서 친히 해보다도 찬란한 빛 가운데 나타났다. 하나님을 빛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방식으로 해보다도 더 찬란한 빛으로 나타나서 나를 불렀다고 말씀합니다. 그도 이전에는 예수를 마땅히 죽여야할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알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고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가 아나니아를 통해서 세례를 받고 주 예수의 제자가 되었는데 하나님게서 자기를 택하심은 바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의인을 나로 보게해서 바로 주 예수는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의인이요 구원자요 그 분의 얼굴을 뵙고 나로 증인으로 삼은 것이다. 그렇게 주 예수는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야요 의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가에서 그렇게 변화를 받고 거기서도 증거하고 예루살렘으로 왔다가 나중에 아라비아에서 오랬동안 지냈었지요. 예루살렘에 있을때는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다메섹에서도 유대인들에게 증거했고 또 유대인들에게 증거하려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었지요. 그때 나로 여기 있지 않고 속히 떠나라고 이야기했다. 저도 이전에 예수를 몰랐을때는 예수의 핍박자였고 그런 사실에 있어서 형제들과 같기 때문에 그가 자기 말을 잘 들을 줄로 안전한 줄로 대답했더니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네 말을 듣지 않으리니 멀리 떠나가라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노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18절에서는 이방인에게로 보내노라는 말은 안했는데 이제21절에 보면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노라 그 말을 하니까 유대인들이 열이 난 것입니다. 너희들은 그 나라를 빼앗겼고 이방인들이 그 백성이 된다는 말이거든요. 그들은 이단의 괴수라고 죽였는데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그의 존재가 하늘에 계십니다. 친히 빛 가운데서 사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이십니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친히 주 예수를 보내셨고 그 분의 얼굴을 친히 바울로 뵙게함으로 그 분의 증거자가 되도록 하셨는데 이전에는 자기도 몰라서 그렇게 핍박을 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고 그러니 자기도 몰라서 핍박을 했으니 몰라서 핍박을 하는 유대인들이 들으리라고 그렇게 해서 그 소망을 가지고 왔는데 성전에서 친히 말씀하셨다.성전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요. 항상 말씀하시기를 저들은 듣지 아니하리라. 나중에는 먼저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그런 말 때문에 그들은 이는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옷을 벗어던졌고 띠끌을 공중에 날리며 여기서는 데모한 장면들은 아닙니다. 옷을 벗어던진다는 말은 죽이려고 한는 것이고 띠끌을 공중에 날린다는 말은 너무 원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때문에 자기가 비침했을때도 띠끌을 날리지만 참람된 말을 들었을 대는 유대인들은 견딜 수가 없어요.자기가 죽는 것보다 더 괴로워요. 그래서 띠끌을 날리고 난리가 났다고 말하고 있지요.

이제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증거하는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핍박했던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고 그 분은 누구신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그의 메시야를 보내셨다. 그를 너희들이 죽였어도 그는 사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다. 그가 친히 나타나서 나로 그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 그랬는데 그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은 듣지 않을 것이니 이방인에게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지금 이방의 전도활동을 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까? 이방인들이 성전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그를 잡았거든요. 그러나 주 예수는 참으로 신령한 성전이셔서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인데 아직도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성전에 임한 하나님인줄 알지 못하고 그들은 제도의 존속을 위해서 바울을 잡은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그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일때문에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죄받을 죄인으로 정죄를 받았고 끌려갔습니다. 끌려가는 중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말한 내용은 아까 설명을 했습니다.하나님의 섭리하심이지요. 로마의 평화 로마 정권 밑에서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 국가적인 권세는 분명히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는데도 바로 그 제도 아래서 하나님은 그의 교회가 보존되고 세상의 질서가 유지되고 그런 가운데 천하만민을 구원할 수 있도록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구원섭리를 진행시키고 계십니다. 그런 의미로 바울은 날때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진자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지요. 우리들은 예수믿은 뒤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완전히 이분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몰랐을때도 하나님의 교회는 보편교회여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에 계시면 그 분은 그 인격이 하나님의 아들이셔요. 그러기때문에 이 역사의 시간질서 안에 오시기 전에든지 가신 후든지 천하모든 택한 백성은 그의 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그 교회의 신령한 성격과 우주적인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아신 것이고 그런 의미로 모태에서 나를 택정하신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 우리를 쭉 인도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기도할 때까지라도 그냥 모든 약속은 나에게 적용시켜서는 안되고 우리가 그런 일반은총을 분별하고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생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야겠구나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야되지요. 그러나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과정을 멈추고 다시 일반으로 가서 시작하고 그런 방식은 별로 지혜없습니다. 물론 그 자신이 하고 죄가 아니기 대문에 하지만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인도를 받아왔는지는 불변해야지요. 어떻든 바울은 날때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그런 것이 로마국가에 있어서 그가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권리회복이 되어 있었고 하나님은 그런 일을 통해서 바울로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는데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가 유대인으로서 특별한 훈련을 받아서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겠습니다만 그가 유대인의 가장 대표적인 정통을 따라서 주 예수를 죽이는 일에 그 제자들을 죽였지 않았습니까? 그가 앞장섰던 것처럼 율법제도의 의미가 무엇인가도 그가 깊이 회개하고 잘 아는 사람이지요. 그렇게 하고 하나님이 이방인의 모든 문화로 그를 훈련시켜서 로마시민권을 갖고 이런방식으로 하나님이 그를 인도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든 이방의 권세들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아도 보좌에 취임하신 주님은 만 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이방의 권세까지라도 교회를 위해서 교회의 성립과 발전을 위해서 이방의 세력이 함께 연합해서 교회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인도하고 계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떻든 이스라엘 백성이 바울을 죽여야겠다는 문제는 이방인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다는 것에 대한 거절입니다.너를 이방인에게 보내노라 하니라.그러니 니 자식을 죽여야겠다. 그 말이어요. 그들은 하나님이 이방백성을 아브라함의 복으로 부르신 사실에 대해서 수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때문에 그들이 끝까지 그들의 죄를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까지 이처럼 임해서 우리나라가 무엇을 하나님을 순종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제도드리 다 복음의 제도로 다 점점 변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순종하지 아니해도 주님은 하늘의 왕이시기 때문에 단지 이방인의 왕들을 붙드셔서 교회를 보존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제도까지라도 복음의 제도로 점점 화합니다. 그들이 그런다고 하나님의 교회를 순종하는 것은 아니어요. 그러기때문에 우리들이 지금은 더 로마정권 밑에 살 때보다도 더 평화로운 시대에 복음을 분명히 더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제도가지라도 점점 더 분명히 변하기 대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우주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더 많은 안목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다 할지라도 민주화운동이 곧 복음화 운동이 아니고 국가의 제도가 교회헌금하는 사람들의 세금을 조금 감면하고 그런 것이 국가도 많이 좋아진 것처럼 이해해서는 안됩니다.어떻든 우리들은 사도가 보호받는 시대보다도 더 보호를 받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주님은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세대는 항상 이렇게 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재림하시기 전에는 세상의 모든 세력이 합세해서 주 예수의 왕권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교회가 심히 부패하고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다 할지라도 우리들이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님께서 하늘에 계신 왕으로서 그의 성령으로 세상을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이 생명의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신령한 주님의 몸으로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국가는 하나님의 교회를 얼마나 핍박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의 교회는 성숙하는 일에 잇어서 국가가 교회를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우리들이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 옳은 일이지요.?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세상을 복주셨을때 복음을 봉사한 민족을 하나님이 특이하게 붙드셨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힘을 가지고 나가 일할 수가 없어요. 물론 국가적인 힘을 업어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복음으로 봉사하려면 많은 활동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어떻든 그런의미로 미국은 지금도 많은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아니면 세계가 이렇게 안 열립니다. 어떻든 아직도 선교사들이 미국에서 많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의미로 세상왕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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