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25:1-26:32
23장 부터는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왕들 앞에서 증거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특별히 24장에서는 벨릭스 앞에서 유대인들이 공적인 고소 절차를 밟아서 바울을 고소했지요. 그래서 이 사람은 참으로 세상의 연병장이여서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데 유대인들을 서요케 한다는 죄와 나사렛이단,나사렛에서 새롭게 태어난 새로운 종파라는 것과 성전을 더럽게 했다는 일로 송사했지만 바울의 증거를 볼때 그것은 전혀 무관한 것이고 또한 재판절차도 잘못되었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벨릭스도 바울이 증거한 도에 대해서 그가 총독으로 가이샤랴에 6년정도 근무했기 때문에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무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대인의 고소를 따라서 바울을 대하지 않고 자유를 주어서 그의 친구들로 수종을 들게했습니다만 바울에게 혹시 뇌물을 받을까해서 몇 번 만났고 그때마다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해서 복음을 들었고 그가 마음으로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가 유대인의 환심을 사서 계속 총독의 자리를 유리하게 앉아있을 뿐아니라 그 자리를 빌어서 돈을 벌까 하고 바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도 그가 그를 석방시킬 수 있는 상황인데도 재판을 연가하다가 다시 들어오도록 까지 바울을 옥중에 가두워 두었다. 그렇게 24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벨릭스 앞에서 증거했을 뿐아니라 베스도가 후임자로 와서 벨릭스때 시작되었던 재판이 이제 진행이 되었습니다.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해서 가이샤랴에 2,3일 있고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10일쯤 있었습니다. 왜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종교적인 중심지일 뿐아니라 또 모든 소요의 중심지여서 그곳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고 그래서 총독들은 먼저 부임하면 예루살렘에 가서 그들의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 것이 정상적인 절차로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기회를 이용하여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베스도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그가 이제 새롭게 황제로 부임햇으미 총독의 지하실에 갇혀있는 죄수를 예루살렘으로 불러서 예루살렘에서 재판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베스도가 처음에는 바르게 말을 했지요. 왜 피고가 원고 앞에서 자기의 모든 사실을 증거하기 전에는 그를 내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 또 베스도 자신도 실은 예루살렘에 오래 있으려고 온 것도 아니고 부임했기 때문에 부임인사차 들려서 곧 가이샤랴로 돌아갈 것이고 몇일 있을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때문에 유력한 사람들은 함께 내려와서 거기서 송사를 진행하라고 합당한 잘차를 이야기 했습니다. 내려와서 총독의 관저로 왔을때 대제사장 장로들 등 유력한 인사들이 함께 내려와서 바울을 베스도 앞에 고소해서 또 재판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랬어도 그들이 바울이 유죄하다고 증명할 수 없었고 바울도 말하기를 그들의 송사건에 대해서 유대인의 율법에 대해서든지 성전에 대해서든지 또는 가이사에 대해서든지 그가 죄지은 것이 없다고 그들의 고소사건에 대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래도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9절을 보면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해서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10절에서 대답하기를 내가 총독의 재판자리에 있지 유대인의 재판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총독 앞에 재판을 받는 것은 로마 법정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가 유대인에게 무죄한데 유대인의 종교재판에 자기를 다시 넘겨주는 것은 합당한 절차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그가 죄지었으면 죽기도 사양치 않겠지만 보다싶이 유대인들에게 죄지은 것이 없기 때문에 유대인의 산헤드린 법정으로 끌려가서 다시 재판받을 필요는 없고 그는 총독 앞에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만일에 이 재판이 합당하게 진행될 수 없으면 그를 왕 앞에 즉 로마 황제 앞에 호소하겠다고 상소를 한 것이지요. 그렇게 호소를 해서 그 호소절차가 받아들여졌지요. 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랬는데 우리들이 24,25장에서 보다싶이 바울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사실은 총독들도 다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런데도 총독의 자리를 정치적으로 존속케 하기 위해서 또 그런 일로 이득을 보기위해 바울을 괜히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이지 바울이 죄없는 사실은 총독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13절 부터보면 여러 날이 지나서 새 총독이 왔기 때문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이것은 유대지방을 자기 영지로 가지고 있는 왕입니다. 버니게는 아그립바왕의 친동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근친 결혼을 했다는 사람도 있고 오빠와 동생간에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소문들이 났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당시 도덕적인 상태로 보았을 때는 좋은 상태는 아닙니다. 어떻든 그 왕과 여동생이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와서 여러 날 있었는데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그 왕 앞에 자문을 구했습니다. 왜 재판권은 로마의 총독 베스도가 가지고 있어도 어떻든 그 영지는 아그립바 왕이 유대지방을 영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의미로 그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 쭉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예수가 재판을 받았을때는 빌라도가 자기 입장이 난처하니까 헤롯에게 보냈지요. 피고가 한 명 있는데 로마법으로는 이 사람이 법죄한 사실이 없고 고소하는 것은 보면 전부 유대인의 율법과 예수가 죽었다가 살았다는 종교적인 문제로 나에게 고소하더라고 쭉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이 자기에게 뒤에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정죄할 여러가지 방법을 택했는데 나는 공정한 재판관이라 합법한 재판을 받기 전에 피고를 넘겨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하고 재판을 열어보았더니 실제로 이사람은 죄가 없더라. 이렇게 쭉 설명을 했습니다. 어떻든 피고가 죄가 없는데 이 사람은 황제의 법정으로 고등법원이 되겠지요.최고의 법정으로 이를 올려야 하겠는데 그가 구체적인 죄가 없는데 그를 그쪽으로 옮긴다는 것이 좀 어렵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 사실에 대해서 잘 알아보고 나에게 조언을 해달라.그런방식으로 그들 앞에서 다시 재판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23절에 보면 아그립바 왕과 그 여동생이 크게 위엄을 갖추고 또 성중에 높은 사람들이 다 위엄을 갖추고 이제 베스도가 재판하는 그 재판장에 다 앉앗습니다. 그때 베스도가 24절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두지~보내기를 작정하였느니라’~그를 내어 세웠나이다(26)‘ 그러니까 정치적인 유익을 볼려는 아이디어들이지요. 그래서 26장에 보면 바울이 왕들 앞에서 변호하는 것이 나오고 있습니다.이 왕들은 로마총독으로 베스도가 이방의 왕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을 뿐아니라 아그립바는 유대지방을 그의 영지로 가지고 있는 왕이어서 어떻든 유대인과 이방인 왕에게 바울이 증거하는 것이고 그런의미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모든 사람에게 증거한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장에 보면 바울이 왕들 앞에서 증거하는 바가 나오고 이제 그가 나중에 로마로 갑니다만 로마 왕 앞에서는 어떻게 증거했는가 하는 말은 안 나오지요. 그러니까 로마 총독 앞과 또 유대땅을 관할하는 왕 앞에서 바울이 증거함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모든 왕 앞에 하늘에 계신 왕이신 주님께서 그의 영으로 그의 종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는 것이고 이 왕들은 그가 분명히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양심의 찔림을 바고도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그를 로마 법정으로 넘겨서 나중에는 그가 한 번은 석방되었지만 나중에는 죽었지요. 그런의미로 세상은 어둠의 권세 아래 있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끝까지 대적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 26장의 바울의 증거를 보면 ‘아그립바 왕이여~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3절) 여기보면 원고들은 없지요.물론 배심원들은 많이 참석하고 유대 땅을 관할 하는 자로서 종교적인 문제의 총독의 고문관 역할로 있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지금 재판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니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풍습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그는 유대인의 종교적인 문제 또 모든 문제에 대해서 잘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하였다고 할 것이라’(4,5) 나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항하고 성전을 더럽히고 유대인을 소요케한다고 고소하고 있지만 내가 어려서 부터 유대인들로서 자기조상들의 종교에 대해서 얼마나 철저한 생활을 했는가 하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도 여기서서~까닭이니’(6절) 지금 여기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도 자기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약속 때문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고 그는 어려서 부터 지금까지 충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다른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믿는 도는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도의 성취이지 새로운 도가 이니라는 말이지요.그것이 바울의 결론이 되지요. ‘이 약속은~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7-12) 그렇게 자기도 잘 이해하지 못했을때 어떻게 예수를 대적했는가 그를 믿는 제자들을 핍박해서 그가 예루살렘의 회당에서 그랬을 뿐아니라 심지어 외국 다메섹 성까지 가서 그가 심지어 배교하는 유대인들을 잡으려고 대제사장의 체포영장을 가지고 갔었던가 그런 문제를 쭉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핍박하는 일에 있어서 바울이 최선봉에 섰고 사도행전의 증거는 바울이 핍박을 했을때는 사도들을 빼놓고는 예루살렘에 살지 못하고 흩어질 만큼 핍박이 컸다고 말하고 있고 이것은 유대인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런의미로 바울을 모른사람이 없지요. 그도 지금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은 그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약속 그 약속은 무엇입니가?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그리고 죽음 가운데서 일어나리라한 약속인데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신 분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고난을 통한 승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메시아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탁월한 사람인데 많은 능력을 가지고 와서 유대인들을 이방의 세력으로 부터 구원해서 마치 다윗 왕이 이방을 지배했던 것처럼 그런 왕국을 건설할 것으로 메사아를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때 예수를 그 일 때문에 죽인 것이지요. 그들은 오직 여호와 한 분 하나님만을 알 뿐 사람으로 임하신 그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했을때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으리라고 했을때 그 메시아는 그 승리자는 참으로 어둠의 권세를 밟은 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고는 그런 인격이 없는데도 그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를 못했습니다. 가령 메시아의 고난 시편인 사 53장에 보아도 그가 많은 백성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드리고 그렇게 해서 구원한다고 했을때 그것은 단순히 사람이 행할 일이 아닌데도 그들은 바르게 파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고난 받으신다 했을때 제자들도 이해를 못했고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도 처음에는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나사렛예수의 이름을 대적해서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로 스스로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랬는데 13절에 보면 어떻게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의 얼굴을 뵙고 그 말씀을 듣고 변화를 받았는가 하는 문제들을 쭉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바울의 회심사건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도 사도행전에 세군데 나와 있습니다. 9장,22장,26장에 나와 있습니다. 이 세 번 나왔을 때마다 누가가 기록하는 목표에 따라서 말의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말을 거듭거듭 세 번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하나님의 원수를 하나님이 어떻게 변화시켜서 신실한 그의 종으로 삼으시는가 하는 그의 부르심에 대한 문제를 9장에서 중심이고 22장에서는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바울이 증거했을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했을때 여기 14절 부터보면 ‘사울아 사울아~하리라 하더이다’(18)왕들 앞에 한 증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당파를 따르는 무리들이 아니고 이전에 가말리엘이 말했던 것처럼 사람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면 그 지도자가 죽으면 끝납니다.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났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할까 두렵다고 말했던 것처럼 예수는 하늘 보좌에 취임하셔서 그의 성령으로 그의 교회를 짓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은 당파가 아니고 그것은 세상 어둠의 권세가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그런의미로 네가 나를 핍박하는 것은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처럼 헛수고일 뿐이라고 말했을때 누구냐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햇빛보다 더 밝은 광채 아래서 하늘에서 말씀하셨습니다.그러니까 물론 주님께서 거기서 형상중에 나타나셨지만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이어서 그 눈이 멀었고 그는 감히 볼 수가 없었습니다.그것도 은혜로 나타난 빛이기 때문에 나중에 보면 사도요한도 환상중에 예수의 영광을 보고 죽으자차럼 되고 이런 상황같이 되어 있습니다만 바울이 눈이 멀었습니다.부활하신 그의 영광을 바울에게 그와같이 잠깐 비추었고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뵜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난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함이니 곧 예수의 부활과 예수게서 자기에게 계시할 사실들에 대해서 증인으로 종으로 삼기 위해서 바울을 불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을 어떤 종으로 삼느냐 하면 그 내용들을 보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그가 참으로 모든 원수의 손으로 부터 저를 지키실 뿐아니라 그리고 여기보면 ‘그 눈을 뜨게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랑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동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그가 왜 이처럼 오고 가는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는가 자기의 사명 때문에 그런 것인데 하나님이 자기를 세우심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이 그 눈을 떠서 어둠에서 빛으로,사단에서 하나님께로 그렇게 해서 죄사함과 믿는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시리라고 자기를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어 지금 여기서도 증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래서 하나님게서 유대인들의 손에서 자기를 건져주신 것이지요.20절 부터 보아도 그렇게 되어 있지요.‘먼저 다메섹에서와~말한 것 밖에 없으니’(22) 즉 조상들에게 한 약속의 성취를 자기는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 일 대문에 하나님게서 모든 환란 가운데서 자기를 지키셨고 지금도 왕 앞에서 증거하게 되는 것이라고 자기의 사명을 왕 앞에서 수행하고 있습니다.단순히 그는 자기의 무리를 변호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쇠사슬로 매였어도 그는 쇠사슬에 매인 그리스도의 사신이기 때문에 복음은 매일 수가 없는 것이고 그는 비록 매였어도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이처럼 왕 앞에서 그가 종으로 수고하는 주인에 대해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서 이처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백성과 이방인 모두는 다 어둠에 사는 백성이어요. 사단의 권세아래 사는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그를 믿고 이제는 눈을 떠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 회개에 이전에는 어둠의 권세를 따랐습니다.어둠의 권세아래 있었습니다.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 백성이 다 그렇게 어둠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친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를 주셨고 그 증거는 갑작스런 증거가 아니라 조상들에게 약석하신 증거,말하자면 영광스러운 메시아의 약속이 거기서 성취된 것이지요.바로 이 분을 믿고 이제는 하나님을 섬길 뿐아니라 죄사함을 얻게하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26장에서 바울이 증거하고 있는 것은 베스도 로마총독과 유대땅을 관할하는 아그립바왕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과 이방인의 왕들 앞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세상의 왕으로 있어도 이 세상은 어둠과 사단의 권세 아래의 왕국이고 그러니까 내 말을 듣는 당시들과 당신들 이하의 모든 백성들은 다 하늘의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믿어라. 그것이 곧 죄사함을 받는 것이고 생명을 얻는 것이다.그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그러기때문에 주님께서 바울에게 한 말에 대해서도 누가의 기록은 어떻게 모든 세상사람으로 다 돌아서게 하는 분으로 주님을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셨는가 또 주님이 바울 안에서 어떻게 증거를 하고 계시는가 하는 방향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바울이 누가가 예수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이런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9절에 부터 보면 이제 적용이 되지요.‘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내가 모든 곳에 두루 다니면서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라.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살아계신 주 예수께로 돌아가라고 증거했는데 그런 일로 내가 얼마전에 잡혀서 죽을 뻔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이제까지 모든 사람에게 증거했는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성취되었으니 그 약속을 믿으라. 23절을 보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그것이 모세와 선지자들이 되리라고 약속한 것이지요.메시아를 보내면 모든 이방인이 그에게 소망을 둘 것입니다.그러니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바로 그 분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구약의 약속의 증거가 아닙니까? 이제 자기가 아그립바 왕 당신에게로 이 증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당신은 유대인의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냐. 이제 이 소리를 듣고 베스도가 재판장인데 끼어 들어서 말했습니다.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네 마노은 학문이 너로 미치게 한다 하니’ 왜 죄없는 사실은 알겠지만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할 때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지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관원은 이 세상을 증거하는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베스도가 바로 이 복음에 대해서는 바울이 미쳤다고 대항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무죄함에 있어서는 바울의 편을 들 수 있어도 복음에 대해서는 세상의 왕은 어둠의 권세 아래 있기 때문에 사단의 종으로 있기 때문에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고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그전에 내가 예수믿는 자를 핍박했을때는 내 정신이 멀었고 지금 예수를 위해서 쇠사슬에 매인 종이 되어서 증거하는 것은 참된 정신을 가지고 이것은 진짜 참된 정신이지요. 내가 살았다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안에 있는 실제적인 지식이지만 예수를 주로 믿는 그것은 영원한 실제 하늘의 실제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들이 지금 살아있다는 확신 보다도 더 확실한 확신입니다. 그러니 이제 진짜 정신이 든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그리고 이제 26절 부터 보면 아그립바 왕에게 직접 증거하고 있습니다.‘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아니로소이다’ 예수의 죽으심에 대해서도 다 아는 것이고 그 외의 모든 일들을 잘 아실 것입니다. 왜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된 일이 아닙니다. 왕은 이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이고 이것이 내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선지자들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성취이다.나도 몰랐을때는 핍박했었다. 27절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을 아나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권면했습니다. 당신은 선지자를 믿는 유대인이 아니냐 그러면 이 사실에 대해서 당신은 가부를 결정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말을 듣든지 아니면 산헤드린 공회의 말을 듣든지 어둠에 머물든지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오든지 당신은 결정을 해야 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원하노라 하니라’(28-29) 이것이 왕들 앞에서 바울의 증거입니다. 얼마나 확실한 증거입니까? 이 세상의 권세는 어둠의 왕국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통치해도 이 세상의 권세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심지어 약속을 받았으면서도 그 약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통치하는 권세를 베스도가 가지고 있어도 참으로 그에게 권세를 주신 참 하늘의 왕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비밀리에 된 종교적인 일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 사건으로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 죽음의 권세를 영원히 벗으신 분은 그 분 밖에 없고 또 그 분의 영을 부으셔서 그의 종들이 그 분이 행했던 이적이 반복되고 천하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돌아왔는가 하는 사실에 대해서 이제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오순절의 열매가 두루두루 맺여서 천하만민 중에 열매를 맺었고 그 열매를 가지고 바울이 돌아와서 증거하는데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예수가 말씀하시기를 인자를 거역하면 사함이 있되 성령을 거역하고는 사함이 없으리라고 했는데 성령의 확실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네가 몇 마디 말로 나를 설교해서 예수믿으려고 그러는가 분명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합니다.내가 말을 많이 하든지 짧게 하든지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처럼 사슬에 매여있는 것은 빼놓고 나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0절 ‘왕과 총도과 버니게~하니라’ 그는 분명한 죄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가 상소했으니까 보내라.그들은 바울의 복음에 돌아설 마음도 없고 놓아줄 마음도 없습니다. 단지 부활하신 주님께서 모든 손으로 부터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보호받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가 어떻게 로마로 옮겨가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사도행전이 끝나고 있습니다. 어떻든 그런의미로는 여기서 사도행전의 의미가 끝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이방인과 유대인의 왕 앞에 증거했을때 그들은 다 바울의 무죄를 시인하면서도 바울을 놓아줄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거절하고 돌아섰습니다. 이 세상의 권세는 주님오셔서 심판으로 마무리 될 것이고 참으로 주의 택한 백성만 어둠의 왕국에서 빛의 왕국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질서는 결단코 하나님을 순종하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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