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20:6-38

찬미예수님 2025. 8. 23. 22:12

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20:6-38

 

여기 사도행전 20장의 바울의 고별설교는 참 우리에게 굉장한 감동을 줍니다. 여기 고별설교를 통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바울을 통해서 어떻게 그 은혜의 복음을 증거했는가 하는 일이 마무리 되고 그 다음 부터는 바울로 이방 왕들 앞에 서서 증거할 수 있도록 그로 사슬에 매인 죄수가 되게 하시고 그렇게 해서 이방 왕 앞에 세우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20장 바울의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그 종들을 통해서 증거하신 은혜의 일들이 그런 의미로 한 단락을 짓고 있습니다. 여기 빌립보에서 배타고 드로아에 도착했습니다. 이 드로아는 바울로 환상을 보게 하셨는데 여기 마게도냐의 한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환상을 보았고 그래서 그가 아시아에서 전도하지 않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세 아들들을 복주시면서 세 아들들이 인종의 머리가 되고 또 그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진행될 것인가를 하나님은 샘의 하나님이 되고 샘의 장막에 거하시고 야벳은 샘의 장막에서 창대하고 함은 종의 종이 되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민족이 감당할 일들을 거기 설명했을때 하나님은 샘의 장막에 거하셔서 이제 하나님은 거기 임하셨습니다. 바로 그 은혜로 야벳은 샘의 장막에서 창대하고 말하자면 야벳족속들이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그런 역사적인 진행이 되고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새 인류의 아버지로 노아를 세우지 않았습니까? 아담이 온인류의 머리였던 것처럼 물로 말미암아 새롭게 지음받은 인류의 머리는 노아였고 노아로 부터 종족이 번성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를 머리로한 새 인류라는 것이 노아 홍수에서 나타나는 일인데 바로 그 역사가 여기에서 나타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그래서 드로아에서 배타고 빌립보로 건너가서 거기서 부터 유럽으로 건너가서 복음을 전파했지요. 이제 그 일을 마무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여기 드로아에서 7일을 머문다 하는 사실은 물론 바울의 행적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성경의 기록방식을 보았을때는 우리가 그렇게 한 싸이클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의미로 하나님이 노아를 머리로한 종족이 세계에 번졌는데 이제는 온 세계에 하나님의 복음이 확증되었다는 의미로여기 한 싸이클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거기서 7일을 머문이유는 거기 드로아에서 성찬식 떡을 떼기 위해 거기서 안식 후 첫날에 예배하기 위해서 바울과 그 일행이 7일을 머문 것으로 이해를 해야합니다. 그래서 처음 초대교회에서 부터 예배일을 안식 후 첫날 지금 바울의 행적은 16절을 보면 굉장히 바쁩니다.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서 그는 에베소를 지나쳤습니다. 에베소는 그가 3년이나 눈물로서 수고했던 곳이고 또 소아시아의 수도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데도 거기를 들리지 못하고 사람들을 보내서 거기 장로들을 해변가로 불러서 거기서 작별인사를 할 만큼 굉장히 바쁜 일정입니다. 그런데도 여기 7일을 머문이유는 드로아에서 함께 예배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고 그런의미로 처음 사도행전의 예배를 보아도 안식 후 첫날 그것이 기독교 예배의 일로 확증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했을때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유월절 떡을 떼시면서 여기서 새 언약의 예식을 제정하셨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모임은 새 언약의 표 아래서 모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강론하고 듣고 그런 방식으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의 믿음이 더 성숙해서 모일때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모였으니 한 몸의 교제에 참여하고 확인하는 성찬식을 갖는 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여기서 예배의 중심을 성찬식에 두고 있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그때는 말하자면 우리처럼 설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증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그가 예루살렘에서 행했던 은혜의 일들을 증거하고 또 구약을 풀어서 확증하고 그런 방식으로 성경이 풀어지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복음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새 언약의 표 아래서 그들이 하나님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은혜의 일들을 서로 듣고 또 그것이 옛 언약의 성취로 이루어진 사실을 확증하고 그런 방식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모였는데 안식 후 첫날에 몇시에 모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상당히 늦게까지 진행된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모르겠습니다. 밤에 모였는지 그런 것은 역사적인 흔적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노예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는 일과가 끝나고 밤에 모인 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주일에 우리가 모이는데 몇시에 모이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그러면 필요에 따라 마음데로 조정하는가 그것보다도 온 회중이 모이기 좋도록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역사적인 증거들은 초대교회는 밤에 모였는데 나중에 로마 정권이 점점 더 그 체제가 약해지고 그래서 그 사회가 불안했기 때문에 밤에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제일 고약한 것은 휏불데모 아닙니까? 밤에 모이는 것은 안된다 그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아침으로 모였다가 나중에 낮 시간으로 옮겼고 역사적인 증거들은 그렇게 말을 합니다. 어떻든 아침부터 밤중까지 했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굉장히 길게해서 밤이었기 때문에 윗 다락의 들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굉장히 더웠던 모양이지요. 우리보다는 절기가 좀 빠르거든요.그러면 우리달력으로는 3,4월입니다. 유월절 지나서 50일 후니까 지중해 부근이면 상당히 더운 날씨입니다. 그래서 창문에 걸터 앉았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내려가 보니 죽었어요. 그래서 마치 이전에 엘리사가 과부의 아들을 살렸던 것처럼 수냄여인의 아들을 살렸던 것처럼 여기 그의 몸을 앉고 그에게 엎드려서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이지요. 그랬는데 살았습니다. 그래서 올라가서 성찬식을 행했지요.떡을 떼어서 먹고 날이새기 까지서로 강론하고 또 계속해서 갈론한 것이지요. 그리고 떠나니라. 여기서 이야기한 말은 여행담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셨는가 그가 전했던 복음과 맺었던 열매들을 쭉 증거하면 그것은 주 예수의 능력으로 행하신 은혜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단순히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새벽까지 강론하고 끝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않게 받았더라. 여기 있는 기사는 어디 기사와 연결시켜야 하면 바울의 강론 중에서 보면 32절에 보면 지금 내가 주와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가 에베소 교회와 작별하면서 그는 떠납니다. 사도는 없습니다. 이제 원수는 유대인 뿐이 아닙니다. 원수는 교회 안으로 들어 옵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주와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지 않습니까? 유두고가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몸의 교제에로 그들을 부르셨을때에 그것은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주님께서 친히 생명의 주로서 거기 계셔서 그들에게 생명을 준 증거가 유두고가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유두고를 살리심을 통해서 거기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처럼 마지막 증거를 통해서 주님께서 영원히 교회와 함께 하신다. 생명의 주님께서 교회와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확증함으로 이제 이방전도의 한 단계를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계시록에서도 로마 정권 밑에서 환란당한 교회를 위로 하실때 일곱 별을 붙드신 주님께서 교회와 함께 하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교회에 대한 비밀이지요. 그러니까 여기 오순절에 교회가 올라갑니다. 처음 오순절 부터 사도행전은 출발되었습니다. 거기 오순절에는 여러 이방땅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자기나라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일들을 들음으로 거기 아브라함을 불렀을때 천하만민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한 약속처럼 이제는 범세계적인 교회가 그런의미로 설립된 것입니다. 이방나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일을 듣는데 출신은 유대인이어도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이방땅입니다. 그런의미로 이방에게 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미쳤다는 증거가 거기 있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흩어져서 자기나라 말로 증거해서 말하자면 자기나라 사람들,물론 종족은 이방인이지만 그들을 구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보면 유대인들인데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자기나라 말로 은혜를 받음으로 거기 주 예수를 머리로한 새 인류 새로운 공동체가 거기 나타남을 확증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제 이방인 전도가 끝마치고 이방인 사도인 바울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거기보면 오순절에 맞추어서 올라가고 있는데 여기 오순절은 이전에 이방땅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자기나라 말로 구원의 은혜를 듣는 표상적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실제로 이방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열매를 얻었고 이방인 신자들이 따라가지 않아요. 그 이방인 신자들은 얼굴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신자들을 구제하려고 사랑의 선물을 가지고 갑니다. 그것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상에 참여하는 은혜의 확증이어요. 그러니까 여기 많은 이방인 형제들이 함께 올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함으로 사도행전은 한 단락을 짓고 있습니다. 그랬을때 여기 하나님은 어떻게 계십니가? 주님께서 친히 이것은 내 몸이요 내 언약의 피니 하고 친히 자기 몸의 교제로 교회를 세우셨던 것처럼 그 확증을 유두고가 떨어져 죽었을때 그 생명을 살리심으로 거기 증거했습니다. 바로 그 확증안에서 바울이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순절에 맞추어 빨리 가고 있습니다. 그의 행로가 바빳기 때문에 이제 에베소에 사람을 보내어 밀레도 해변가로 그들을 불렀습니다. 불러놓고 그들을 위해 그들에게 증거하고 기도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사도는 다시는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의미로 하나님의 대리자인 사도는 에베소에 다시 오지는 않아요. 물론 나중에 사도 요한이 가서 수고했지만 지금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의 영으로 사도들을 통해서 증거한다는 의미로는 사도행전적인 증거로는 말하자면 여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는 없습니다.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영원히 함께 계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것은 내 살이요 또 이것은 내 새 언약의 피니 나를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니라 또 나를 먹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생명이 거기 있다고 확증하지 않았습니까? 그 확증을 여기 성찬 예배로 모였을때 거기 죽은 자를 살림으로 생명을 확증하셨고 그 확증의 은혜 때문에 바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가 전도했을때 유대인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방해하는 것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 뿐아니라 유대인이 선동해서 이방인들도 그 선동에 참여했습니다. 마치 주 예수를 세상이 거절했던 것처럼 주 예수의 복음 을 증거하는 사도들을 거절했습니다. 주님께서도 세상에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기 몸을 주어 세상을 구원했던 것처럼 바로 그 영을 따라 증거하는 바울 그의 영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울 안에서 증거했기 때문에 그도 주님의 행적을 따라서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겸손과 눈물로서 이제까지 증거했다고 쭉 그의 행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거리낌 없이 증거했기 때문에 그는 이제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무죄하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도이기 때문에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받았고 만약 그가 증거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 앞에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의미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은혜를 확실히 증거했기 때문에 그는 무죄하고 책임은 복음을 받았던 세상에 있습니다. 주 예수를 죽이고는 세상이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주 예수의 영이 사도에게 임해서 그 은혜의 일을 증거했을때 그것을 거절한 세상은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영원히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의미로 그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다 증거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무죄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증거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21절에 보면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증거한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전했던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이것은 같은 말입니다. 여기서 회개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나는 이런저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고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떠남이어요. 그러기 때문에 회개는 하나님을 향해서 사는 삶이 회개 입니다. 거기에 모든 구체적인 죄들이 따라 고백되는 것 뿐이어요. 그것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됩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주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안에서 구속의 길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을 보내주셔서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늘의 빛으로 우리를 조명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의 구주되심을 믿을진데 예수를 구주로 보내주신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주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회개는 구체적인 죄의 조목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께 원수로 산 죄인이 이제는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과 관계 아래서 사는 것이고 하나님은 자기 아들로 주가 되게하심으로 우리를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니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개의 본질을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예수 믿음이 곧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죄인인데 그 분은 그리스도로서 우리의 주 왕이 되셨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 앞에 회개입니다. 우리들은 구체적으로 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그런 것만 회개로 아니까 율법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과 관계로 사는 것이 회개이고 그전에는 하나님과 원수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가 되게하심으로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참다운 회개를 우리에게 주셔서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삶,그것은 주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 생명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 복음을 증거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사명을 다 마쳤고 나는 이제 심령에 매임을 받아 여기서 심령은 성령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맺으신 은혜의 열매 이제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한 형제로서 그들의 가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의 선물을 냈습니다. 그것을 들고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려고 올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성령의 감동이요 단순한 종교적인 열정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교회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처음 사도행전의 하나됨은 헬라파 과부와 히브리파 과부의 하나됨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의미로 분명히 하나는 하나입니다. 같은 유대인들이어도 거기 분명히 있는데 출신은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어요. 사는 땅이 다르므로 그래서 이방인의 성화가 거기 나타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 정도 화목이 아니라 이제는 이방인들이 이전에는 자기들을 개처럼 취급하던 유대인들을 향해서 가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물을 가지고 올라가고 있는 이유는 단순한 바울의 종교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롬 15장에서 바울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처럼 그렇게 함으로 열매를 맺고 그는 그 열매로 제국의 끝을 향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심장에 매임을 받아 하는 것은 그가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든 사도의 행적은 그가 걸어가는 길은 자기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환상 중에 인도하셨던 것처럼 여기서도 성령께서 친히 바울의 마음을 주관해서 올라가는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가 그처럼 갈때에 성령이 각 성에서 증거하며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도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거절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복음입니까? 이방인들도 예수를 믿음으로 한 자녀가 되었다 하는 은혜를 거절할 것입니다. 유대인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방인은 아니라고 지금도 말할 것이고 이제는 주 예수를 머리로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했다는 은혜의 복음을 유대인들은 거절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21장의 바울의 행적에 대해서 여기서 결박과 핍박이 바울을 기다린다고 했는데 21장을 보면 구체적으로 이런 저런 사건이 있습니다. 바울이 지나갈 때에 띠를 가져다 묶으면서 이 띠의 주인은 이렇게 결박을 받으리라. 또 빌립의 딸들도 예언을 하면서 바울에게 말했지요. 그것은 요새 예언의 은사둘처럼 개인의 앞일을 알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방인의 사도를 어떻게 유대인이 거절하는가 하나님이 예수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하나로 부르신 은혜의 복음을 어떻게 유대인들이 거절하는가 그것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에 대해서 환란과 결박이 나를 기다린다고 했을때 바울 개인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사도 이방인을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유대인들이 거절하는가 하는 사실을 성령께서 증거하시는가 그런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그 사실을 깊이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24) 주 예수도 자기의 생명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셨습니다. 바로 주 예수의 영이 바울안에 있어서 주 예수를 거절한 세상은 여전히 바울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그의 주자 걸어갔던 그 길을 따라서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겠다고 말하고 있고 이것은 단순한 바울의 종교적인 결단이 아니라 바로 바울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그 길을 걸었던 것처럼 바울도 그 길을 걸음으로 세상에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25. 다시보지 못한다는 말은 그가 앞 일이 어떻게 될 줄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파하였음이라. 그것은 20절에는 유익한 것은 21절까지를 다시 이런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복음증거를 다 마쳤습니다. 이제 세상은 바울의 증거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들은 그들의 전 생명을 걸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하셨느니라’28.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직원들을 세우시고 직원들을 통해서 교회를 지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설립하셨어도 그냥 개개인이 모여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직원을 세우셔서 그의 교회를 돌보도록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얼마나 자비하십니까? 그의 영으로 임하셔서 생명을 줄 뿐 아니라 바로 그 영을 따라 봉사하는 직원들을 세우셔서 연약한 교회를 봉사하도록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난 후에 교회에 흉악한 이리가 들어옵니다. 그리고 양떼를 아끼지 아니합니다.(29) 그것은 밖으로 부터의 유대인 뿐이 아닙니다. 이제는 안에까지 흉악한 이리가 양의 옷을 입고 들어와서 너희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이 일어날 줄로 내가 아노니(30) 그처럼 교회는 세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이전에는 유대인들이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안에 광명한 천사로서 교회 안까지 침투해서 더구나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도록 세운 직분자들 안에까지 역사해서 바로 그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는 배교의 역사가 일어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이제까지 걸었던 것보다 교회는 얼마나 어렸습니까?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를 치면 양떼가 흩어지리라. 주님께서 계셨을때 교회는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었을때 교회는 흩어졌지 않았습니까? 더구나 거기에 가룟유다 같은 죄인이 있어서 바로 그 일을 이루었지 않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교회도 그처럼 되어 있습니다. 사도가 함께 있었을때 거기 거짓은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대리자가 거기 있었고 주님께서 친히 그 대리자에게 역사해서 교회를 설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었던 것처럼 거기에는 거짓이 들어 올 수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유대인들이 핍박해도 하나님의 교회는 거룩한 회여서 거기 악한 자가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도는 떠납니다. 주님 떠남으로 교회는 파괴되었던 것처럼 이제 사도가 떠나면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밀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침히 올라가셨을때 근심하지 않도록 말씀하셨지요. 내가 다시오면 너희와 함께 하리라.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주님이 십자가에 죽었을때 제자들은 다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살아계셨을때는 모든 제자를 한 명도 잃지 않도록 보존하셨고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은 잡혀갔어도 제자들은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보존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사도로 말마암아 함께 계셨기 때문에 교회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은 것처럼 거룩했습니다. 그러나 사도시대가 끝나고 바울은 이방왕 앞에 서게 될 것이고 거기서 그는 죽게될 것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와 너희를 주와 및 그의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와 영원히 함께 계시고 그의 말씀과 영으로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그 분은 생명의 주님이셔서 유두고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려서 확증을 하셨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여기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 이리가~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있게 하시리라(29-32) 시작하신 주님께서 그 영광의 나라로 교회를 완성시킬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영으로 교회에 임재하시고 그의 말씀으로 통치하셔서 교회를 보존하실 것입니다. 악한 원수가 들어와도 주님은 교회를 떠나신 법이 없습니다. 사도는 떠나도 주의 영은 영원히 교회안에 거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은혜의 일이 완성되고 그리고 영원한 유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보존하고 완성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에게 나와 같은 종들 감독자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그의 영광을 비우시고 천해지고 낮아지심을 통해서 우리를 그 영광의 자리에 올린 것처럼 바울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가 그의 모든 수고를 다해서 그의 동료들의 쓸것을 벌고 교회를 봉사했습니다. 말하자면 여기 말씀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주님께서 언제 이 말씀을 했는지 우리들은 모르지만 바울은 그렇게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이익단체가 아니고 주님께서 그의 몸으로 교회를 섬기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양떼를 치도록 세우심을 받은 감독자들은 바로 우리는 섬기는 주의 영을 따라서 바로 봉사자로 수고함을 통해서 교회를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삭꾼이 아니라 아비의 마음으로 아비가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한 것처럼 그렇게 일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사도의 증거는 일단 끝납니다. 그 다음에는 왕들 앞에서 한 증거이고 교회 앞에 한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런의미로 여기 20장이 마무리됩니다. 마치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났던 것처럼 내가 가면 다시 오리라 너희들은 염려하지를 말라 세상은 슬퍼하겠으나 너희는 기뻐하겠고 염려하지말라 더 좋은 보혜사를 보내시리니 말씀했습니다. 또 나를 핍박했으니 너희를 핍박할 것이고 또 나를 귀신의 대장이라 했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도는 떠나지만 승리하신 주님은 떠나지 않습니다. 사도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셨어도 교회를 세우신 분은 보좌에 취임하신 그리스도십니다. 그가 그의 영으로 말씀으로 그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사도적 말씀을 따라 살므로 그의 영의 통치를 받습니다. 그러니 내가 3년 동안 통치하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사도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하늘의 천사라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사도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도들을 통해서 은혜의 말씀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고 지금도 은혜의 말씀이 기르쳐짐을 통해서 우리로 그 말씀에 서도록 하고 있고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며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시작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완성하시는데 우리를 지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말씀이 샘명이요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기 마지막에 감독자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들을 감독자로 삼으셨으니 또 너희들 중에 가짜가 들어 오리라 그러니 경성해라 은혜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라. 그리고 주께서 친히 죽으심으로 교회를 봉사한 것처럼 너희들도 너희 수고를 통해서 교회를 붙들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그의 종들을 세우셔서 그의 말씀을 증거케 하심으로 어둠에 있는 백성들이 빛으로 들어오고 죄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 거룩한 삶을 살고 그렇게 승리하지 않습니까? 주님의 교회는 결단코 파괴되는 법이 없습니다. 시작하신 그 분이 완성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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