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20:1-5

찬미예수님 2025. 8. 21. 22:48

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20:1-5

 

장로들을 부르고 그가 이제가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전파하는 일을 설명하고 기도함으로 어떻게 봐서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이 성경구조를 보면 2016절을 보면 오순절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더라그리고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가서 잡혔지요. 그러니가 사도행전에서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있어서 처음에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함으로 출발했고 그리고 바울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잡혀감으로 이제 큰 단락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방의 왕들 앞에 증거하심으로 세상에 구원의 증인으로 보냈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왕들 앞에 증거케 하심으로 이제 사도행전을 마무리 하고 있지만 바울이 성령께서 친히 그의 종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돌보시고 한 은혜의 역사들을 오순절 부터 시작해서 오순절까지 한 단락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20장 처음 초반부를 해석해야 되겠습니다.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던 것처럼 바울의 3차 여행에서는 소 아시아의 에베소를 중심한 전도 여행이 3차 전도 여행인데 거기서는 사도 바울을 통한 전도보다 거기 이미 이방인에게 흩어져 살았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바울과 참여했을 뿐아니라 거기 아볼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증거되고 또 아볼로를 통해서 배웠던 세례요한의 세례까지만 알았던 구약의 신자들이 이제 바울을 통해서 성령을 받음으로 예루살렘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께서 처음 부르셨던 사도단,유대인에게 증거하도록 했던 사도단과 독립된 방식으로 바울을 통해서 이제 구약신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어떻게 온 세계에 임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거기 증거하셨습니다.그랬을 뿐아니라 그 이전에는 아볼로를 파송한 사람들, 이방인 교회가 설립된 헬라지방으로 파송한 사라들은 사도단이 아니라 에베소에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들을 통해서 그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들었고 그럼으로 주안에서 천하만민이 하나님의 교회로 함께 연합된 은혜의 사실을 알고 그가 자원해서 헬하지방으로 거너갔고 그런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는가 하는 사실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가 이제 에베소에 와서 했던 일들은 교회를 따로 독립해서 세웠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의 반대운동 때문이어요.거기서 바울을 통해서도 많은 이적들이 나타났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권능의 통치가 더 확대되는 방식으로 바울이 직접가서 손을 얹으므로가 아니라 바울의 몸에 있었던 물건만 가져다 얹으면 그렇게 되었고 심지어 바울이 없었을때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의 역사로 어둠의 권세를 심판하셨기 때문에 거기 마술을 행하는 자들이 귀신에게 제어받아서 다시는 옛방식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지 못하도록 어둠의 왕국이 통치하지 못하도록 큰 권능이 임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도들이 직접가서 하는 것보다 이 은혜를 더 확대된 의미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어떤 거룩한 자가 친히 와서 하면 은혜가 있고 그 은혜가 확대되어 있으면 별볼일 없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지만 벌써 바울의 3차 여행에 있어서는 바울을 통해서 분명히 그가 안수함으로 성령의 은사가 구약제자들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영의 역사는 더 강력해서 바울이 다니지 않아도 그 역사가 에베소 온 땅을 통치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주의 말씀이 심히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19:20절에 바로 그것은 주의 말씀이 힘을 얻은 것이다. 주의 말씀이 힘을 얻어서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 말씀의 전파와 함께 성령이 역사하셔서 이처럼 새로운 질서 다시는 어둠의 왕국이 통치하지 못하도록 주의 영이 역사하셔서 마술을 행하는 모든 질서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랬을 뿐아니라 이처럼 귀신의 권세를 전 영역에서 제어했을 뿐아니라 예수께서 계실 당시에도 예수가 계신 곳에서 귀신들이 떠났지만 말하자면 예수가 친히 계시지 않은 곳에서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었지요. 그러나 다시 온 보혜사로 하나님의 영이 친히 임하셨기 때문에 사도행전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이처럼 주의 말씀이 힘을 얻었고 그래서 그의 성령의 통치가 더욱 강력해서 여기보면 보편적인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고 귀신들의 세력이 제어되고 그런방식으로 확대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럴뿐 아니라 그전에는 우상을 선겨거 에베소 백성이 굉장히 부요했는데 이제 복음이 증거되고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역사함을 통해서 이제 모든 사람들이 마술의 세력에서 벗어나고 그전에 의지했던 마술책들은 다 불살라 버리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처럼 우상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서 그전에 우상을 섬겨거 부요했던 에베소 경제사정이 그런의미로 어렵게 되었습니다.우상을 섬겨서 자기들을 부요케했던 사람들의 산업이 완전히 권위를 잃게 되었고 그렇게 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실을 통해서 교회가 큰 핍박을 받았지만 오히려 핍박하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연합을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를 따라 파괴해서 이제 이들을 운동장으로 끌고갔을때 이방인들이 소리를 지르고 또 유대인들은 그런 그들의 힘을 선동해서 교회를 핍박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유대인을 변사로 내세웠을때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때문에 그들안에 더 큰 분란이 일어나 가지고 오히려 교회를 핍박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하나님께서 그 지방의 관원을 일으키셔서 그런 종교적인 문제로 소란을 일으키고 질서를 깨뜨렸다고 그들의 모든 무분별한 행동을 절제시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고 이처럼 세상권세를 주관하심을 통해서 이전에는 그 권세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주였지만 이제 부님께서 보좌에 취임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그 교회를 보존하시고 그 교회를 설립하고 계시기 때문에 여기보면 오히려 이방의 권세가 오히려 질서를 유지해서 죄의 권세가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보존케 하신 사실을 19장에서 보았습니다.

이제 20장을 보면 그 소요가 그쳤을때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이제 에베소에서 그런 큰 소란이 있었기 때문에 해협을 건너서 마게도냐 유럽지역으로 건너 갔습니다. 그래서 헬라지방에서 많은 교회들을 권면했습니다.거기 3개월 있다가 배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때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함으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이제 고린도 지방에 이르러서 거기서 배타고 바로 오순절까지 수리아 안디옥 말하자면 처음 전도여행에서 세운 교회가 있지요.안디옥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랬지만 유대인들이 그가 배타고 여행할때 그를 죽이려고 공모하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한 제자들을 배에 태워서 드로아로 먼저 보내고 자기는 육로로 북쪽으로 올라가서 빌립보 지방으로 해서 드로아 지방으로 거너 가려고 계획을 변경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함으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우리를 기다리더라. 그래서 그들은 먼저 배타고 바울이 제일 먼저 환상을 보았던 드로아 지방으로 가고 그래서 거기서 만나도록 했다.그리고 6절에 보면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그가 빌립보에서 유월절을 지내고 그래서 무교절이 지난 후로 그들이 배를 타고 드로아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을 만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여행하기에는 어려운 계절인 모양입니다. 거기는 작은 해협입니다. 하루 이틀이면 건널 수 있는데 닷세쯤 걸렸으니까 상당히 어려운 여행인 모양입니다.그래서 드로아에서 제자들을 만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에서 바울이 떠나가기 전에 1주일 동안 머물렀다가 안식후 첫날 즉 신약교회의 예배일에 모여서 거기서 함께 예배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밤중까지 설교했을때 거기 한 청년이 떨어져서 죽었는데 바로 생명의 주인인 주님께서 거기 함께 계셔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그것이 바울을 통해서 행한 전도여행에서의 마지막 이적이 되겠지요.나중에 독사에게 물려서 사는 경우도 있지만 교회에 증거한다는 의미로는 마지막 이적이 되겠습니다. 교회에서 모여서 그처럼 주 예수의 은혜를 증거하고 하나님에 대한 회개와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의 일들을 쭉 설명했을때 거기 떨어져 죽은자가 있었는데 생명의 주께서 함께계셔서 그를 살리셔서 마치 이전에 베드로를 통해서 죽은 도르가를 살렸던 것처럼 이제는 바울을 통해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그렇게 해서 생명의 주께서 교회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치고 있습니다. 어떻든 바울은 배타고 빨리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에 가려고 급히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 말씀드렸던 것처럼 처음 하나님의 교회가 설립된 것은 오순절때 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셔서 각각 자기 나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듣고 거기 하나님의 신약교회가 설립이 되었습니다. 어떻든 오순절에 임하심 이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임했던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조상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을 따라 천하만민에게 열매가 익은 것이 오순절의 역사요.그것이 구약절기로 보면 유월절 후 안식 후 첫날 첫 곡식단을 흔들어서 하나님 앞에 요제로 드린 후에 일곱 안식일을 세고 그러니까 오십일 째가 되면 그것이 곧 오순절 맥추절이어요.그때는 보리떡 두 덩어리에다가 누룩을 섞어 떡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단에 드려서 하나님 앞에 기념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한 것이지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먹을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의 풍성함을 거기 나타내고 계시는데 그래서 유월절 안식후 첫날 초수제를 드릴때 오순절 그때 곡식이 온전히 익고 그런의미로 생명의 풍성함이 거기 나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예수께서도 죽은 뒤로도 안식후 첫날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후 50일에 성령이 임하셔서 이제 유대인 뿐아니라 이방인 이제 하나님께서 세상에 풍성한 생명을 주신 은혜의 역사가 이제 성령을 부으심을 통해서 새 생명 그리스도의 영이 교회에 새로운 본성으로 부어짐으로 거기 새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러므로 일상적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교회가 거기 나타나 있었습니다.그래서 어떻든 오순절에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 교회는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자기나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들음으로 그러므로 세상구원과 같습니다.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자기나라말로 구원의 은혜를 들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바벨론에서 자기백성 아니라고 버렸던 백성을 부르심이 곧 바벨론의 성화이고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자기나라말로 들음으로 곧 그런 의미로 그것은 세상에 구원이 임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거기는 다 유대인들로 구성된 교회여도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다 함께 하나님의 큰 은혜의 일들을 들음으로 그런 의미로 천하만민이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왔다는 표로 거기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관계들을 우리들이 여러번 반복했기 때문에 더 설명을 안해도 되겠습니다만 이제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여러 환란과 핍박을 통해 확대되었는데 나중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처음에는 자기 민족에게만 복음을 전했다가 나중에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헬라사람들에게도 증거해서 헬라사람들도 복음을 받았다고 11:20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렇게 해서 설립된 것이 이방인들로 구성된 안디옥교회이지요.물론 거기에는 유대인들도 있지요.그러나 그것은 사도들이 먼저 설립한 교회가 아니고 흩어진 유대인들,그것도 이방땅에 기원을 둔 흩어진 유대인들이 흩어져서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함으로 하나님께서 구약때 이스라엘 백성을 흩으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여기서 완전히 성취된 것입니다.물론 그 이전에도 유대인들 때문에 경건한 헬라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회당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경배하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그런 방식으로 말하고 있지 않고 흩어진 유대인들이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증거해서 이제 헬라사람도 주 예수를 믿고 그렇게 함으로 이제 흩어진 유대인들이 자기나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듣게했던 하나님께서 곧 자기들의 살고 있는 세계에 복음을 전해서 그들로 하나님의 교회가 되게하신 것이지요.그렇게 했을때 거기에 나타난 제일 처음의 역사가 무엇이냐 하면 11장27절 부터 보면 그때 선지자들이 장로들에게 보내니라이처럼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해서 거기 안디옥교회가 설립되고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은 사실을 이제 예루살렘 교회도 확인할 수 있도록 바나바를 보냈고 바나바는 바울을 불러서 거기 하나님의 교회가 크게 성장했는데 그때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들이 이르러서 천하가 흉년들리라고 예언했습니다.그때 여기보면 제자들이 각각 자기 힘대로 유대에 사는 자기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를 작정하고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이것이 이방인 교회가 살립되고 제일 처음에 나타낸 은혜의 일이어요. 이것은 여기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고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을때에도 거기 있는 교회가 부자들이 자기들의 논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기 때문에 가난한자의 핍절함이 없고 그렇게 해서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졌어요. 물론 그 공동체 안에도 분쟁이 있어서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사이에 분쟁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분쟁때문에 교회는 더 강화되고 그런 방식으로 거기보면 부자와 가난한자 유대인으로 구성된 사랑의 공동체가 나타났을뿐아니라 더 확대된 의미로 헬라땅 과부와 유대땅 과부가 서로 분쟁없이 화목할 수 있는 넓은 의미로의 화목이 나타났을 뿐아니라 여기 이방땅에 교회가 설립되었을때 그들을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일은 이방인들이 그들의 사랑의 선물을 예루살렘에 보내서 그것도 바나바와 사울 바나바는 예루살렘으로 부터 파송된 사람이지요.그들의 손을 통해서 예루살렘 장로들에게 보냈습니다.그렇게 해서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사랑의 공동체가 여기 나타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갈라디아서에 보면 베드로가 바울과 교제의 악수를 나누고 가난한자를 구제할 것을 부탁했을때 이것은 본래 내가 힘써 행하노라고 말하고 있어요.그것은 행15장의 예루살렘 회의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때 모였을때에 함께 주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고 단지 이방인들은 아직까지 율법의식을 벗어나지 못한 유대인 형제들을 위해서 자기들의 자유를 절제함으로 한 몸의 교제를 이룰 수 있도록 회의에서 결의 했던 것입니다. 그때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들었기 때문에 구제를 부탁했을때 그것은 본래 바울이 힘써 행하고 있는 일입니다.그러니까 이처럼 한 몸의 교제는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여기 이처럼 구체적으로 확증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순절 예루살렘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의 은혜가 이방땅에 열매 맺었을때도 그것이 세상에 흉년이 들고 곤고함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교회안에는 생명의 풍성함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주신 것을 서로 나눔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이제 한 식탁위에서 한 몸의 교제를 나누는 것을 여기서 인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방인 전도가 마치는 과정에서 20장에서 그런 말을 거듭 반복하고 있습니다.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더라.그러면 오순절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처음 오순절의 열매가 이방땅에 맺였을때는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에 그들의 대표자를 보내서 사랑의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한 몸된 교제를 나누었지요.이제는 이방인 전도가 마무리되는 3차 전도여행에서 바울이 가고자 했을때도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제 이 오순절의 열매는 사도행전의 처음 오순절의 풍성한 익음입니다. 물론 자기나라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들음으로 세상구원이 거기 나타났고 그 백성들이 자기땅에 가서 자기나라말로 자기들이 흩어져서 살고 있는 헬라인들에게 은혜의 일을 증거함으로 거기 오순절에 임한 방식을 통해서 증거된 그 은혜가 이제 이방땅에 열매를 맺었습니다.그러나 이제 그 열매의 일들이 바울의 마지막 전도여행이 마무리되는 단계에서 바울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하는데 거기보면 열매가 풍성히 익어서 올라가고 있고 대신에 유대인들의 핍박은 더욱 심해서 그들이 주 예수를 죽였던 것처럼 주 예수를 증거하는 바울을 죽음에 넘겨주게 될 것입니다.그렇게 함으로 이제 하나님의복음은 이방인들의 왕 앞에 증거되고 왕 앞에 증거됨으로 그런 의미로 천하만민에게 증거된 방식입니다. 어떻든 그가 이방인에게 가기전에 그는 산헤드린 공회에 잡힙니다.그러기 때문에 주 예수를 죽였던 산헤드린 공회는 바로 성령의 역사로 주 예수를 증거하는 바울을 잡아서 죽일 자리에 넘겨주고 그렇게 함을 통해서 그는 자기를 주 예수를 배반했던 모든 이방인들에게 이 종을 세워서 증거하도록 역사하고 있지요.이제 그때부터 인자를 거역하고는 사함이 없지만 성령을 거역하고는 사함이 없도다 한 것처럼 이제 주 예수께서 그의 죽으심을 통해서 성령을 보내셨고 이제 성령을 통해서 그가 살아계신 그리스도이신 사실을 증거했지만 몸을 입고 증거했던 주 예수를 죽였던 산헤드린 공회는 바로 그의 영이 바울을 통해서 증거했을때 여전히 그를 거절함을 통해서 그들의 죄를 확증한 것이고 그래서 내가 유대인을 버리고 이제는 이방인에게로 가노라는 방식으로 이방의 왕 앞에 서도록 그가 사슬에 매인 죄인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의 후반부의 내용입니다.그러면 여기 20장에 익은 열매는 어떤 열매입니까? 여기 그가 에베소에서 큰 핍박을 받았지만 에베소는 성령이 완전히 지배한 하나님 나라가 되었습니다.귀신의 권세도 제어되었고 바로 우상을 섬겨서 부요했던 모든 부도 파괴되었고 그래서 거기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었다고 감사하고 있는 방식이지요. 그러니까 거기가 소요가 컸기 때문에 바울은 거기를 떠나 헬라지방으로 건너가서 고린도에서 3개월을 거하게 되었습니다.아마 여기 있으면서 바울이 로마서를 썼을 것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그가 로마로 가고 로마 형제들이 자기를 보내줌으로 스페인까지 가기를 원하고 그전에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급한일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것이 롬15장을 보면 잘 설명이 되었어요. 14절 부터 쭉 읽어야 하겠습니다만 필요한 부분만 읽도록 하겠습니다.‘그가 하나님의 은혜의 일들을 두루 전해서 이제 이방인들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친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그가 제사장적 수고를 다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시아 지방에는 예루살렘으로 부터 아시아 지방에는 편만하게 주 예수의 복음이 증거되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전도할 곳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고 22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가려하던 것이 여러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방에 거할 곳이 없고 또 여러해 전 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 너희에게로 갈 원이 있었으되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고 약간 만족을 얻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를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에게 빚진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누어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저희를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 아노라.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같이하여 나를 위해 하나님 께 빌어 나로 유대의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나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하라.지금 바울이 여기 헬라지방에서 3개월 있으면서 쓴 편지의 내용입니다. 이제 이방인에게 복음을 두루 전파했고 로마로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가기전에 그가 꼭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이제 마게도냐 지방에 살고 있는 성도들의 사랑의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도들을 섬기려고 갑니다. 그가 가게 되면 사도행전에 있는 것처럼 각 성에서 성령이 말씀하시가를 그가 잡혀서 곤욕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요.그가 잡히면 매인 바 될 것이라고 그래서 그가 유대인의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이것이 그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일 보다도 왜 이처럼 시급하게 되었는가. 이전에 분명히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전하는 일에 전무하고 구제하는 일에는 일곱을 택해서 했는데 왜 바울은 사도로서 이처럼 구제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가. 그것은 단순히 예루살렘 교회의 구제하고는 다릅니다. 이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 한 형제로 한 몸으로 연합되었다는 확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이방인 교회가 유대인을 위하여서 그들의 사랑을 보이고 또 유대인들은 그들의 교만한 것을 다 버리고 그들이 한 형제된 표로 그것을 사랑의 표로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교회가 하나됨이 인쳐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로 한 몸을 이루는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하나님께서 때가되면 이루는 경륜이어요. 그러기 때문에 이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헬라지방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로마 교회에 대해서도 이 일을 위한 기도에 참여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가고 있습니다. 오순절에 올라갈때 그냥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순절의 열매가 풍성히 있습니다.오순절에 각 나라 사람이 자기나라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들었고 바로 그들이 흩어졌을때 자기 방언으로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증거함으로 바로 그 방언을 말하는 아방인들이 구원을 받아서 안디옥교회가 설립되었지 않습니까? 그들이 처음에 했던 일들도 사랑의 선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던 것인데 그때는 안디옥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된 바나바를 통해서 사랑의 선물을 보냈고 그것은 작은 열매지요.그런데 여기서는 안디옥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성은 이방의 첫 교회가 아닙니까? 이 열매가 3차 전도여행을 끝마치는 시점에서는 풍성히 맺어서 이제는 안디옥교회 한 교회 뿐아니라 두루 온 헬라지방의 교회들 여기보면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자 베뢰아 사람 데살로니가인 아시아 사람 더베 사람 그러니까 여러지방의 사람이 아닙니가? 이제 한 교회 뿐아니라 여기 지방 교회들이 연합해서 사랑의 선물을 보냈습니다.그리고 이방인의 사도와 그들이 함께 가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보내는 재물만이 아니라 익은 열매들이 여기 이방인들이 아닙니까? 처음에는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사랑의 선물을 장로들에게 보냈어요.15장에 교회가 모였을때는 바나바와 바울만 왔을 뿐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함께 갔습니다.그러나 그때는 안디옥 교회에서 사람을 파송했지만 여기서는 안디옥 교회 뿐아니라 흩어져 있는 이방인들 이제는 아시아 지방 뿐아니라 저쪽 헬라 지방까지 복음이 증거 되어서 이제는 유럽에서 익은 열매들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안디옥은 그래도 아시아 지방에 있지요. 그러나 여기 같이 가고 있는 사람은 아시아와 유럽 지방 사람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건너갔었는데 이제 마지막 전도 여행을 마무리 짓는 곳도 드로아에서 복음을 강론함으로 거기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신 그리스도의 영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고 거기 함께 가고 있는 교회는 이방에서 풍성히 얻은 열매입니다. 이 열매는 온 세상이 익었지요. 그리고 이 열매가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하려고 바울은 로마를 거쳐 제국의 끝인 스페인까지 가기를 원한다고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 내용입니다. 16절에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급히 간다고 한 문단을 이루고 있는데 같이 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방 땅에서 익은 열매들입니다. 거기 풍성한 열매가 있고 사람들이 주 예수의 복음을 따라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사랑의 선물이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이제는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유대인들은 주 예수를 거절하지요. 이제 마지막 산헤드린 공회가 주 예수를 증거한 바울을 이방 왕의 손에 팔므로 마치 예수를 산헤드린 공회가 빌라도에게 내어 준 것처럼 그런 방식을 통해서 주 예수의 복음을 세상의 왕의 궁전에서 정거할 수 잇도록 하나님 나라가 익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올라가는 오순절은 이전에 올라가는 오순절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서 올라가고 있지요. 그래도 유대인들은 거절합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순히 과거 역사만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바로 사도들을 통해서 일하셨던 보좌에 취임하신 주님께서 이제 사도 시대는 끝났지만 주님은 친히 그 보좌에 계셔서 교회에 임재하시고 그 교회를 통해서 땅끝까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고 그 은혜로 여기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런 의식으로 구제가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거룩과 사랑이어서 구제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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