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18:12-19:7
행 17장에서 바울사도가 아테네의 아레오 바고에서 증거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전에는 각기 민족으로 자기길을 가도록 하나님께서 간과하셨지만 이제는 천하만민을 다 회개하라고 명하셨다고 30절에 말씀을 했습니다. 왜 이제는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또 예수를 죽은자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고후에서 말씀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이제는 어디든지 다 사람을 명하신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바울사도를 통해서 증거했습니다. 이제는 죽음의 권세를 벗으신 사람 바로 이 분을 하나님께서 만민을 심판하시는 자로 세우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확실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에 이전처럼 이방인들이 일반은총 영역에서 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따라 이런저런 방식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다 믿어 회개하라고 새로운 구원의 문을 여시고 증거했습니다.그러나 거기서는 많은 사람이 믿지를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고린도는 아주 부패한 도시요 우상의 도시인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많다고 바울에게 말씀을 하셨고 거기서 1년 6개월을 가르쳐서 큰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처럼 세상사람들이 지혜를 추구하고 만물이 무엇이가 하는 것을 연구하고 그 만물에 자기 자신을 맞추어서 살려고 노력하는 철학자들이나 또한 세상이 어둠에 싸여서 우상을 섬기고 또 그런 방식으로 여러 쾌락에 싸여서 사는 사람들이나 구원받는 길은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푼 은혜로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 까지 절하므로 하나님께 원수된 자기의 양심의 불안을 덜려고 했던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 문화를 개발하던지 아담이 범죄한 이래로 모든 인간의 문화적인 노력은 하나님이 창조자시요 우리는 그 앞에 범죄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자기의 연구와 자기의 노력으로 만물의 본질을 알고 참평화를 누리려는 인간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노력밖에 아닙니다. 우리들은 철학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문에 심히 가까운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물론 그들의 사고력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 많은 기능들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주 예수를 믿기 전까지는 어둠 가운데서 하나님을 배교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서 아테네에서는 많은 사람을 얻지 못한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에게나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에게나 이방인들에게 다 거리끼는 것이요 미련한 것이지만 참으로 택하신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어서 고린도에서는 큰 하나님의 교회가 설립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천하만민으로 믿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그의 구원의 문을 여시고 유대인 뿐아니라 이방인의 회당 아레오 바고에서 증거하심으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의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 그런 지식인들은 하나님을 거절했어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부르심을 입고 이전에는 그들이 우상아래 있고 음행아래 있고 죄 아래 있었지만 성령의 깨끗케 하심을 통해서 그들은 다 정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구원의 역사를 세상에 확대시킬때 이처럼 세상은 거절했어도 택한 백성들은 믿었고 그런데도 유대인들의 배교는 끝까지 진행되어서 여기 12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재판석으로 끌고가서 그를 고소했습니다.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율법을 어겼다고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세상의 위정자들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전파 세상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질서를 유지하도록 세우셨기 때문에 비록 로마정권이 왕을 신을 섬기도록 강제했어도 그런 통일된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복음의 도가 이런 저런 장애물을 넘어서 증거될 수 있도록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왕이셔서 비록 하나님을 거절하는 이방왕까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쓰셔서 질서를 유지함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교회가 파괴되지 않도록 그래서 이방인의 사도가 유대인의 손에서 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신 사실을 13절 이하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묘합니다. 인간의 죄까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도록 섭리하시기 때문에 그 당시 로마의 제국으로 온 세계가 통일 되어서 거기서는 민족적인 분쟁을 가져올 수 없는 것이고 또 국가적인 장애도 가져올 수 없는 것이고 또 한 언어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의 전도가 아주 신속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민주화된 것 같지만 이제는 민족주의가 더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세계주의여서 세계를 하루에 여행할 수 있지만 이제는 민족주의가 더 일어나고 있고 세계정부를 따라 통일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잘못되면 그런 국가간의 장벽이 크고 그래서 만일에 우리들이 예수를 증거하면 그동안 서양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서 착취를 당한 민족들은 우리들이 미국의 앞잡이나 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것이고 예수종교를 서양종교로 오해하면 그런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평화의 시대에 민족적인 장벽은 더 높습니다. 그러나 로마 정권 당시에서는 로마의 평화 로마의 법과 군대가 세계적인 제국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 의미로 하나님의 복음은 로마 정권과 대항함으로 큰 핍박을 받으면서도 이런 저런 장벽을 넘어서서 로마 전 제국에 증거되도록 하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 공산권 전도도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해요.일리있는 해석입니다.공산정권이 지배함을 통해서 하나님의교회는 지하교회로 즉 국가에서 종교적인 자유를 인정받은 공개적인 교회로 나타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전 생을 거는 믿음이 되는 것이고 또 공산 정권을 통해서 노동과 계급을 신격화하고 국가 조직을 신격화해서 하나님을 부정해 버렸지만 또 그 대신 다른 장점이 있는 것은 모든 우상들을 다 쓸어버렸습니다. 왜 그런 것은 인밍의 아편이요 적이어요.말하자면 물질만 선이고 물질만 개발해서 인간은 물질과 관계된 것으로 인격이 있는 것이지 그것을 떠나서 어떤 보이지 않은 세계를 말하는 것을 공산사회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런 의미로 우상을 모두 쓸어버렸기 때문에 이제 만일에 공산정권에서 선교의 자유만 허락이 된다면 우상과 싸울 필요가 없을 만큼 정지작업이 잘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민주화된 국가들은 더구나 우리나라를 보면 뿌리찾기를 통해서 각 지방마다 신이 있지 않아요.그러니 전도를 하려고 해도 그 지역의 특성도 여러가지로 이해를 해야됩니다.그런의미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렀던 암울한 시기가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를 따라 구원의 길을 여시면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는 방식으로 열리는 방식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편리한 방식만 보지 말고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해야 될 것이고 그 분께서 자기 구원을 위해서 자기 나라를 확장 시킬 줄 믿어야 합니다. 모든 권세가 그 분의 손 안에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 그 은혜를 증거하는데 파괴할 수 없도록 역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합력해서 주 예수를 죽였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유대인이 이방인의 사도를 죽이지 못하도록 총독의 마음을 감화시킴으로 여기 보면 오히려 바울을 고소했던 유대인들이 헬라인들에게 매를 맞고 쫒겨났습니다. 왜 국가적인 권세는 로마정권은 모든 국가에게 종교적인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단지 로마왕만 신으로 섬기도록 요구했고 모든 나라에 종교적인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아무리 유대교가 허락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런 문제를 가지고 이래저래 재판할 수 없는 것이고 더구나 로마정권 밑에서 유대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너희법에 과한 일이면 너희끼리 해결할 것이고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오히려 너희들이 이런일로 소동을 일으켰으니 매좀 맞아야겠다.그런 방식을 통해서 여기서 이방인의 사도를 보호하고 세상의 죄들이 협력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권세가 보살피고 있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 18-22절까지 통해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이 끝나고 23절 부터는 3차 전도여행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기 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 거기보면 하나님께서 바울이 겐그리아에서 나실인의 서원을 따라서 머리를 깍은 기사 그리고 에베소에 머물면서 증거했는데 많은 사람이 바울을 영접하고 더 있기를 청했지만 이제 하나님의 뜻이면 돌아오리라 하고 가이샤라에 상륙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교회의 안부를 묻고 다시 자기를 파송했던 안디옥교회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거기 얼마 있다가 하나님께서 큰 구원의 문을 여신 사실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 육로를 통해서 갈라디아 땅과 부르기아를 지나가면서 제자들을 굳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에 이전에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회당을 통해서 이방인을 예비했던 것처럼 이제 세례요한의 증거를 통해서 주 예수를 믿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를 통해서 에베소에서 많은 유대인들을 정복할 수 있도록 했고 거기 사도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사도 요한과 함께 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도 즉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를 영화롭게 하고 성령을 부으셨는가 하는 은혜로운 도들을 증거케 하심으로 이제 에베소가 하나님의 구원의 큰 문이 열렸습니다. 그럴뿐 아니라 이제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능한 아볼로를 다시 고린도 지방으로 파송함을 통해서 이제 그곳의 많은 유대인들이 주 예수를 배반하지 못하도록 성령으로 이기게 했다.이렇게 말하므로 하나님의 복음전파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섭리적인 핍박을 통해서 흩어짐으로 그들이 했습니다.또 하나님께서 바울을 환상중에 인도하심으로 했습니다. 나중에 안디옥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성령으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도록 명령하심으로 그처럼 되었습니다. 드러나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가기전에 보면 이제 하나님께서 아시아에 큰 구원의 문을 여셨을 때 거기 이미 교회가 스스로 그들의 대표자를 파송하고 있고 교회가 참으로 교회를 가르쳐서 이미 구원의 문이 탄탄히 열린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고 그렇게 해서 바울의 3차전도 여행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어떻게 점점 교회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사실들을 우리가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3차여행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큰 문이 열려서 물론 이전에는 바울사도나 베드로가 이적을 행했지만 하나님의 영이 친히 마술을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고 또 그럴뿐아니라 그 모든 사람들이 마술책을 가져다가 불사르므로 여기보면 사도를 통한 직접적인 이적이 아니지요.성령께서 친히 그들안에 역사하셔서 일하심을 통해서 이제 소아시아의 수도로서 있는 에베소가 이처럼 정복을 당하고 거기서 아테네 신전이 이 복음의 도 때문에 크게 피해를 입었는데 오히려 그 성읍 모든 사람들이 소란해서 바울을 쫓아내고 있는 사실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그가 마게도냐 지경에서 이처럼 전도하고 나중에 오순절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서원했습니다. 이처럼 오순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는 출생되었고 이제 이방인에게 얻은 많은 열매를 가지고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참으로 이방인이 베푼 사랑의 선물을 그들에게 줌으로 하나된 증거를 거기 나타냈고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교회가 완성된 사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유대인들의 핍박은 심해서 바울을 잡아서 로마의 정권 밑에 넘겼고 그렇게 해서 바울은 죄수로서 로마의 왕궁에 까지 끌려가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복음이 온 제국에 퍼지는가 하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차 전도여행 까지를 통해서 이방인에 대한 합당한 열매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말함으로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가 참으로 하나됨은 2차 전도여행에서 완결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여기 18절부터 보면 보좌에 계신 주님께서 세상의 통치적인 권세들의 손을 통해서 그의 교회를 보호하시고 그렇게 해서 그는 평안히 그 성에 거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그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나가서 수리아로 가기 위해 겐그리아에 도착해서 거기서 나실인의 서원대로 머리를 깍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2차전도 여행에서 출발했을때는 제일 처음에 기록된 사실은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한 기사를 먼저 기록했고 여기 2차전도여행을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는 바울이 나실인의 서원을 따라 머리를 깍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물론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는 서원한자를 위해서 재물의 비용을 댔습니다.이처럼 그의 전도여행 시작이나 마지막에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어떻게 유대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신가 하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여도 유대인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 그는 율법에 자유한 백성인데도 율법의 예를 따라서 나실인의 서원을 했고 머리를 깍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할례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인데도 유대인을 위해서 할례를 베풀므로 이제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을 그가 구원하려고 수고했던 것처럼 그가 여러번 유대인들에게 배반을 당했고 심지어 방금전 까지만해도 이방인의 재판정 앞에 끌려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섭리의 도우심을 받아 그가 풀려났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할 수 있는데로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처럼 유대인과 같은 모습으로 이방인의 사도가 수고한 사실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인이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합니다.구약에서는 그들이 시간적인 것이 우월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들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 예수께서 참으로 구원을 이루심으로 또 그들이 그 왕을 거절했기 때문에 또 그 왕이 하나님 보좌 앞에 취임하셔서 그의 영을 부으셔서 증거하실 때에도 그들이 그 은혜받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제 너희들에게서 나는 떠나고 이방인에게로 가노라 하고 바울이 몇 번 먼지를 털었습니다.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하심을 따라 율법의 중심지인 성전을 불태우고 그들을 온 세상에 흩으시기 까지 하나님께서는 거듭 거듭 그들에게 그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신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기자신도 유대인이며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버리심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그들의 특별한 직무에 있어서는 버리셨어도 이방인을 구원하는 믿음으로 그들을 또한 구원하심이 하나님의 뜻이어서 그들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어요. 오히려 이방인에게 찬양하는 주 예수를 통해서 유대인들도 듣고 시기나서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래서 유대인을 통해서 이방인을 구원하신 것처럼 이방인에게 나타난 구원의 은혜를 통해서 유대인들을 구원해서 천하만민 중에 자기 택한 백성들을 완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이 증거했던 것처럼 바울은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율법의 종으로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신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자신을 하나님 앞에 헌신했고 그는 이처럼 제사장적인 서원을 통해서 이방인을 하나님 앞에 재물로 드리는 일에 온 생을 헌신하는 방식으로 수고했습니다.이처럼 유대인들이 그를 끝까지 거절하므로 2차여행이 마치는데도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그의 은혜를 베푸는 일에 결단코 그의 손을 거둔 적이 없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와서 에베소에 도착했을대 회당에 먼저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했는데 여기 보니까 여러 사람이 더 있기를 청하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를 죽였고 바로 산헤드린 공회가 정죄한 사람을 너희들이 주로 받으라고 사도들이 증거했을때 많은 유대인들은 그를 거절했지만 여기 에베소에 와서 보니까 유대인 회당에서 변론했는데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받았고 더 오래 있기를 청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배반하는데 앞장서있는 유대인들 바로 동족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으니 바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 이제까지는 유대인들이 선봉에 서서 이방인으로 그 은혜를 받지 못하도록 선동했는데 여기 에베소에 왔을때는 많은 사람이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의 큰 문을 여신 사실을 보았습니다.이전에는 바울이 여기서 전도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영이 바울을 인도해서 유럽으로 건너가라고 인도했기 때문에 그런 아시아 지방에서 전도하지 못하고 건너갔습니다.그러나 이제 그가 돌아왔을때 하나님께서 친히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하는 손길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전도했던 은혜의 일들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고 다시 전도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떠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결단코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닫히는 법이 없습니다. 비록 많은 유대인들이 거절했어도 하나님은 그들 중에 택한 백성들을 예비하셨고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큰 문이 아시아 지방에 열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행정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이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보좌 우편에 취임하시고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그가 다시 눈으로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재림하시도록 까지 그래서 모든 원수로 그의 발아래 꿇도록 까지 그는 보좌에 계셔서 그 나라를 설립하십니다. 사도들이 생각하기는 이스라엘을 설립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보았지만 그것은 구약에서 보여준 것입니다.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메시야가 와서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가 오셔서 나타난 사실은 오히려 재림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약속은 천하만민에게 한 약속이어서 이제 이스라엘의 회복 뿐 아니라 천하만민의 회복이 거기 나타난 것을 말씀하셨고 그렇게 함으로 너희 때는 아버지께 있는 것이고 너희들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씁하시고 주님은 승천하셔서 그의 종들을 통해서 복음을 이처럼 증거하고 계십니다. 이제 사도시대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도시대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좌 우편에 취임하신 주님은 다시 재림하시도록 까지 사도들을 통해서 일하셨던 것처럼 사도적 사명을 받은 교회를 통해서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고 주님 재림하셔서 천하만민을 그의 교회로 부르시는 그의 나라를 완성하시도록 까지 이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리고 아무리 악한 배교자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성령께서 친히 그의 마음을 여시기 때문에 루디아의 마음을 여셔서 유럽에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여기 소아시아에도 여기 회당에 큰 구원의 문이 열려서 그들이 다 바울을 영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방인들이 자원해서 하나님을 찾지는 않습니다.하나님께서 기생 라합의 마음을 여셔서 정탐꾼들을 영접하게 했던 것처럼 루디아의 마음을 여셔서 사도를 영접하게 했고 여기 배교자인 유대인들의 마음을 여셔서 바울을 영접하게 함으로 아시아에 큰 구원이 열린 사실은 하나님의 성령의 큰 은혜의 역사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일하신 역사요 바울은 이런 무대에서 복음을 증거함으로 일한 것이고 이방인들이 자원해서 그 마음을 연 것은 없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원수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문화적인 작업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합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이 증거했던 것처럼 죽을지라도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요 보좌 앞에 취임하신 주님만 참 생명이어서 우리는 먹고 마심으로 사는 백성이 아닙니다.그래서 세상의 권세를 두려워 하지 말고 세상의 배교가 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시며 세상이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사실을 믿으시고 우리들은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이 복음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울이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고 자기자신도 유대의 율법을 따라 서원의 규례를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종으로 땅에 임하신 종의 형상을 따라서 주님의 사랑을 반영함으로 이 일을 이룰 것입니다.이것은 사랑의 봉사이지 단순한 녹음기로 한 봉사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자기 자신이 저주를 받아서 죽을지라도 자기 민족이 구원을 받기를 소원한다 하면서 참으로 율법아래 있는 유대인의 종처럼 수고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이땅에 세우신 은혜의 비밀을 알고 우리들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세에서 이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열매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고 우리는 씨를 뿌리고 물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광을 우상에게나 사람에게 빼앗기지 아니하시고 그는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새롭게 지으심을 통해서 은혜의 영광으로 찬양을 받으실 것입니다.
'신약 구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행전 강해 19:8-41 (6) | 2025.08.15 |
|---|---|
| 사도행전 강해 18:23-19:7 (4) | 2025.08.10 |
| 사도행전 강해 18:1-11 (3) | 2025.07.29 |
| 사도행전 강해 17:16-34 (0) | 2025.07.25 |
| 사도행전 강해 17:1-15 (4) | 2025.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