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17:1-15
17장에는 앞의 흐름의 진전으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언제든지 구원역사에서 새로운 전기가 있으면 그것이 역사상 새로운 획기가 아니더라도 벌써 사도행전 자체 안에도 그 구원역사의 진행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했습니다.그리고 그 은혜의 일로 임한 사람은 이방땅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이 그 복음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가끔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헬라인 유대인 이방인 교회가 거기 설립되었지 않아요.그때 까지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구원하시는 방식으로 증거되고 유대인들이 배교함으로 그들을 버리더라 하는 말은 별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되게 되고 이방인 교회가 설립되고 거기서 바나바와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사역자로 파송을 받았을 때는 그때부터 유대인의 배교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너희들을 버렸으므로 나는 먼지까지 터노라 그런 방식으로 진행이 되고 어떻게 이방인들이 크게 하나님의 복음을 환영하는가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이 구약과 신약처럼 획기적인 변화가 아니더라도 사도행전 자체 안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진행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새로운 진행이 나타나면 그 제일 처음 장은 그 새로운 진행에 있어서 머리같은 역활이어서 전체적인 내용들을 거기서 나타내줍니다. 그래서 행16장을 다시 말씀드린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바로 이 주님께서 그 복음의 확장을 17장에서 나타내고 잇는 것이지요. 그리고 바울이 처음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을때도 먼저 권능 이적을 행했지요.바울이 이방전도에 있어서도 구브로에서 바예수 유대인으로서 거짓선지자가 되어가지고 거기 총독을 믿지 못하도록 유혹했던 그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함으로 거기 이적을 행했지요. 그리고 나서 보면 13장에 보면 안디옥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이적행함이 있고 그 다음에 그 복음이 어떻게 더 진행되었는가를 말하고 18장에 보면 이방인에게 특별히 헬라인에게 하는 대표적인 설교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먼저 유대인에게로 다음에 헬라인에게로 입니다.헬라인이 모든 이방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 로마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 아니고 시민들은 다 로마시민이지요.그 당시 로마정권 아래 있었으니가 그래도 유대인 그리고 헬라인에게도 전하더라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17장에 보면 16장에 말했던 복음의 권세가 어떻게 더 진행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말씀하고 그리고 헬라 문화의 중심지인 아테네에서 그곳도 그들의 모든 권위를 가지고 있는 아레오 바고 회의에서 바로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이방인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단위들을 보면 계속 반복되는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진행되는가를 보이면서 해석하면 해석이 정확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 17장에 보면 먼저 유대인 회당이 있었다고 말씀되어 있고 그리고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다. 그들이 먼저는 유대인에게 그리고 유대인의 흩어짐을 통해서 이방인이 바로 다신교에서 유대인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서서 유대인 회당에 참여해서 말씀을 듣는 경건한 무리들이 있어요.그러니까 항상 예비된 언약의 백성에게 먼저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은혜가 더욱 확대되어서 17장에 보면 이레오바고에서 설명하는 복음을 증거하는 내용이 나와 있지요. 그건 예비된 백성이 아니지요.온전히 우상섬기는 어둠의 백성들에게 증거하고 있어요. 여기서도 먼저는 유대인에게 복음을 증거했고 유대교로 귀화한 것은 아니어요.바로 유대인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회당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이방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는 성경을 풀어서 그리스도의 해받으심과 부활을 증거했고 바로 예수께서 자기백성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이르렀다고 구약을 증거해서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예비된 하나님의 백성이 있기 때문에 4절을 보면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라고 되어있습니다. 거기에 비교해서 유대인은 시기가 가득하여 대비된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여기 데살로니가에서만 핍박했던 것이 아니라 이제 바울이 베뢰아로 피난했습니다.비겁해서 피난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대대적인 핍박이 있어서 더 복음을 증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믿음의 백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거기 교회의 터는 놓아진 것이고 이제 그 백성을 더 가르치기 위해서는 머무를런지 몰라도 이 이상 머무를 필요는 없게 되었습니다. 왜 유대인들의 선동을 통해서 대대적인 핍박이 그 도시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무리와 읍장들이 유대인들이 말을 듣고 거기 회당장 야손의 집에 들어가서 바울을 찾으려 했으나 못 찾았어요. 야손을 잡아다가 보석금을 받고 그들을 놓았습니다.만일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 보석금은 몰수가 되고 버림이 되겠지요.
이제 그런 방식으로 대대적인 핍박이 있었는데 어떻든 유대인들이 선동해서 무리와 읍장들이 했기 때문에 그런의미로 그 도시가 다 배교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이처럼 대표자를 말하는 방식이 그런 방식이어요. 그래서 이 앞의 사도행전에 보면 본디오 빌라도와 헤롯이 예수를 대적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예수 죽일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도들을 핍박했을때 사도들의 기도의 내용이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지금도 우리를 핍박하나이다.이전에는 혈육울 입으신 그리스도를 거절했어도 지금은 보좌 우편에 취임하신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방식으로 이방세력이 모였습니다.그러니 교회를 거절해도 교회를 핍박해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사는 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곧 사울이 교회를 핍박했을때 사울아 사울아 왜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방식처럼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일로 여기 유대인들이 선동해서 온 성이 그렇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고 그런 핍박의 확장이 여기 10절 부터 보면 베뢰아 지방에 까지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보면 택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복음을 거절했고 이스라엘 백성의 흩어짐,그들이 배교함으로 흩어졌지요.그들의 흩어짐으로 오히려 이방인의 구원은 크게 나타나서 여기 많은 헬라인의 무리가 믿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죄를 끝까지 채워서 거기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 성읍이 전체적으로 핍박하는 방식으로 나타났고 그래서 거기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는 것이지요.그래서 형제들이 바울을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그랬는데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것이 과연 그러한가 날마다 구약성경을 상고하고 그렇게 해서 참으로 그들의 믿음이 바울을 통해서 증거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또 주님께서 친히 옛언약백성에게 주었던 말씀을 상고함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고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다.여기서는 항상 헬라인이 많더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요. 그러니까 믿음의 결과를 말했을 때에도 어디에다 강조점을 두는가를 보아야합니다.이제 17장에 나오면 많은 헬라인이 믿더라.이방인의 대대적인 구원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에서 대대적으로 배교했을 뿐 아니라 여기 베뢰아 가지 쫓아와서 더 이상 베뢰아에도 머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만 먼저 아테네로 갔고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의 핍박이 거기까지 왔어도 온 성이 그랬다는 말은 없어요.많은 무리를 선동했어도 그래서 이방인의 사도는 아덴으로 갔어도 거기 실라와 디모데가 있어서 교회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성령께서 교회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교회가 든든히 서간 사실을 이런 방식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거기 신실한 종들이 있으니 성령이 자기 교회에 임하시는 확실한 증거지요.그래서 복음은 비록 세상에서 배교를 받았어도 하나님은 신실한 자기 종들과 함께 계셨고 또 성령이 자기 백성과 함께 계셔서 기쁨이 충만했다고 앞장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우리들이 살후 1장을 보면 여기의 사건들의 의미를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살후1장3절뿌터 보겠습니다.‘형제들아~형벌을 받으리라’(9절까지)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면 거기 택한 백성이 구원을 받습니다. 유대인들은 배교해서 세상에 흩어졌어도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진실해서 오히려 그들의 배교가 세상의 구원이 될 수 있도록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그렇게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영을 따라 새롭게 된 백성들도 다 세상에서 이처럼 멸시와 천시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난받는 것이 그들의 구원의 표요.그들에게 환란을 베푸는 유대인들은 영원한 멸망의 표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도 너희들이 이 증거에 합당치 않는 자로 너희들을 여기므로 나는 이방인에게로 가노라 하는 방식으로 행28장 마지막에서는 말씀하고 있지요. 그래서 끝까지 유대인들이 자기의 죄를 채우고 자기들만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세상으로 믿지 않도록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세웠을때는 그들만 믿을 뿐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 곧 세상의 구원자인 하나님으로 세상에 증거토록 그들을 세웠는데도 그들은 언약에 진실하지 못해서 이렇게 했지만 하나님은 언약에 진실하셔서 그들의 배교가 오히려 세상의 구원이 되는 방식으로 오히려 그들의 핍박이 바로 스데반의 일로 바울의 핍박때문에 많은 사람이 흩어짐으로 이방땅에 복음이 증거되었던 것처럼 신속한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많은 사람이 믿지 아니했어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이방인이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구원 역사는결코 실패되는 법이 없어요. 이제 그리고 16장에서 이방인에게 전파된 주님이 누구신가 하는 사실을 여기 설교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계시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설교는 유대인 회당에서 했던 설교와는 내용이 다릅니다. 똑 같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고 언약안에 있었던 유대인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혹 더듬어 하나님을 알게 하려고 일반은총의 빛 가운데 놔둔 이방인과는 다르지요. 그래서 우리들이 복음을 증거할때도 그런 의미로 합당한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꼭 성경대로 한다고 성경대로 해도 모르면 모르지요.우리가 전도할때도 세상에 맞추어서 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추신 은혜의 빛이 무엇인가를 알고 증거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예수 믿으면 병 낫습니다. 그것은 안맞는 말이어요. 그러나 병자에게는 병으로 출발하는 것이 지혜여요.농부에게는 씨뿌리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 지혜인 것처럼 그렇게 해서 인간의 죄와 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가 건강해서 낫은 들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다. 그가 원하시면 그의 손에서는 치유가 가능한 것이지요.의사를 통하든지 직접적으로 하시든지 그래서 병들어 있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당신 병낫을려고 교회오지 마십시오.그래놓고 쭉 성경을 말하면 그것은 지혜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가난으로 부터 출발해서 이 세상의 재물로 채우지 못할 하늘의 생명을 설명을 해야지 예수 믿으면 복받습니다. 그렇게 하면 전혀 가난을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지요.하나님은 가난한자를 택해서 하늘의 생명으로 부요케 하시는 분이신데 우리들은 세상재물로 부요케 하려는 것이어서 그것은 사람에게 아부하려는 것이고 잘못된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보고 접근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하나님의 섭리가 달라요. 그런 지혜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방인 종교회의 기관에서 바울이 당신의 전하는 도를 우리가 들어보자 했을때 그 이방인이 믿는 도가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말하고 마치 유대인 회당에서 그들의 조상들의 죄를 쭉 말했지 않아요.특히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그렇게 유대인에게 약속한 메시야라고 증거했던 것처럼 여기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동안 이방인에게 빛을 비추셨는데 그 참 빛이 이제 이르렀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예수께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메시아로 스데반 같은 사람들로 바로 이 예수가 너희조상들이 대대로 선지자들이 증거했던 그 분이라고 증거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은 너희들을 멀리 떠나 계셨던 분이 아니라 비록 너희들이 어둠 가운데 있었어도 하나님은 오히려 너희들로 더듬어 찾게 하려고 너희들을 이처럼 인도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제는 너희에게 확실한 구원의 구주로 세우셨으니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분이 아니냐! 이처럼 사망의 질서에서 죽음의 질서를 넘어선 하나님의 아들을 말하므로 이제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구주가 임했다고 그 분이 그 분을 거절하는 자는 영원히 심판하실 심판주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약속된 메시야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그랬는데 그 약속하신 구주를 말할때 까지라도 이렇게 접근하는 방식이 다릅니다.그래서 우리들이 여기서 바울이 어떻게 이방인에게 설교하는가 여기서 표준형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헬라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어떻게 이방인에게 이르렀는가 이방인에게 만물을 주신 하나님이 어떻게 구주를 보내셨는가를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이제 거기까지만 말씀해도 여러분이 읽어보면 알겠지요. 한번더 조금 읽으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왜 에피쿠로스학파,스토아 학파, 알지 못하는 신에게, 이런 사람들이 그 당시 헬라문화적 배경이었어요.그것을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듭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은 그냥 캄캄한데 버려두신 것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구별하시므로 배타적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어도 그 이전에는 배타적인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범 세계적으로 하나님은 자기를 알리셨습니다. 물론 두 종류가 있어서 경건한 여인의 후손의 계통들이 있고 뱀의 후손의 계통들이 있고 그래서 창6장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한 것처럼 거기 분명히 두 계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범위는 세계적이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과 유대인에게만 배타적으로 주고 다른 백성을 그 약속에서 하나님께서 참여하지 못하도록 들어오지 못하도록 할례받기 전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오직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만 남기셨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백성은 버릴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말하자면 온 세상이 어둠 가운데 같혔을 때에 하나님께서 한 등불을 남기심으로 세상의 구원의 빛이 비추이게 하려고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그렇게 따로 구분한 것이어요. 그래서 이방백성의 넘어짐도 그냥 넘어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아래서 넘어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약속하셨을때에 아담의 범죄는 그 언약아래서의 넘어짐이어서 가인까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아버지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또 자기 동생의 제사를 통해서도 하나님 앞에 열납받는 방법을 분명히 알고 있지 않아요. 아담과 한 장막에 살았지 않습니까? 또 노아가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 하나님께서 홍수로 새롭게 지으신 세상에 나타났을때 함도 그 언약안에 참여한 사람이어요.그러기때문에 그런 의미로 이방인의 넘어짐도 언약 빛 아래서 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불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의식은 창조자가 있다. 우리는 그분앞에 죄인이어서 나갈려면 그분을 기쁘게 해야한다.또 나는 직접나가지 못해도 나와 하나님 사이에 중재자가 있으면 그것이 합당하다.그것이 모든 이방 종교가 가지고 있는 빛이어요. 그러기 때문에 단순이 한 신이 있어서 창조했다는 개념이 아니라 창조주 앞에 죄인의식 이것이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잇는 신 의식입니다. 그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를 몰라도 어떻든 창조자이며 우리는 그 앞에 죄인이다. 우리는 그 앞에 직접나갈 수 없는 죄인이라는 의식들은 다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구별하시고 그리고 세상의 만민에 인류를 흩으셨습니다. 그것은 신32:8절에 나와요.‘하나님께서 세상에 백성들을 흩으실때 이스라엘의 수효대로 민족들을 분정했도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을 자기의 소유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구원약속 때문에 세상은 흩어진 것입니다. 만일에 흩어지지않으면 세상은 다 연합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등불을 끄게 생겼어요. 언제처럼 노아당시처럼.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각 민족을 흩으셔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리고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새기신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이 개발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에게 전혀 빛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단지 그들이 언약가운데 넘어져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언약까지라도 오히려 신은 계시고 우리는 두렵도다.그러니 그분을 기분좋게 해야 되겠다 해가지고 그것이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어서 하나님이 남기신 빛,그들로 더듬어서 하나님을 찾게 하려고 완전히 어둠으로 버린 것은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을 통해서 자기를 증거하십니다.그것까지라도 그들의 배교때문에 그들의 사악한 본성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라 물건을 만들어놓고 절하고 거기다 무엇을 바치고 합니다. 완전히 거꾸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비추이신 빛까지라도 아담의 범죄한 옛본성때문에 완전히 거꾸로된 것이지요. 바로 그들에게 이런 창조세계에 비추는 빛 선한 열매를 주시는 빛이 아니라 이 죽음의 질서를 넘어선 사람을 말함으로 이 분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죽음을 이기신 분 이 분이 만 백성을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믿을만한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이고 단순한 도덕률이 아니고 교훈이 아닙니다.그런 방식으로 여기서 설명하고 증거했을때 그 중에 몇명이 믿었습니다.이 세상지혜로는 알지를 못합니다.아마 가장 효과가 적은 곳이 여기일 것입니다.제일로 핍박을 받은 곳이 어디입니까? 산헤드린 공회이고 거기서는 완전히 사형선고받은 식이고 그리고 이방인 중에서는 그래도 열매를 많이 걷고있는데 단지 몇 명 열매를 얻은 곳이 여기 아레오바고 이방인 공회에서 했던 설교지요. 거기서 소수의 무리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유대인들은 표적들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고 그렇게 해서 참지혜요 참능력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합니다. 그 분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분이고 하늘의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임하게 하신 분인데도 그 분을 받지를 않습니다. 그 문제를 여기서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그리고 이제 어떻게 더 진행되는가를 18장부터 이야기해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이 사실을 통해서 어떻게 주님께서 자기를 증거하고 있는가를 우리들이 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까지 임했습니다.분명히 헬라인들은 많이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 모든 문화의 중심지는 그렇게 되었어도 여기 고린도는 항구도시라 개판인 도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도다.거기서는 핍박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큰 교회를 설립했습니다.하나님의 천한 백성들 어리석은 백성들을 택하셔서 어떻게 세상의 지혜와 또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하시는가를 쭉 말씀하고 있고 그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임했습니다.그러니 복음은 사람으로 자기를 자랑함으로 일하지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도 세상에서 자기 생명이 다 노출되고 핍박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나중에 고린도서를 보면 자기들도 예수를 믿고보니 지혜가 열리거든요. 그러니까 아테네에 있었던 그 지혜들을 따라서 우리들은 누구파 누구파 해서 너희들이 아직도 어린아이로다. 그렇게 책망을 받지 않았습니까? 오늘 참으로 세상에서 누가 한국을 알았습니까? 어둠에 쌓여있는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증거되고 우리가 믿습니다. 오히려 세상문명이 발달된 서구세계는 그런것이 사라지고 있고 우리같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백성들은 믿고 더구나 6.25가 터졌을때도 공산화되지않고 이처럼 남한에 교회가 많습니다.얼마나 복된일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까지 이 은혜가 임하게 했습니까?참으로 비천한자를 택해서 존귀한자를 부끄럽게하려는 하나님이셔요. 그러기때문에 이 복음안에서 스스로 높아지면 그것은 곧 자기 파멸이지요. 그러니까 복음의 빛 때문에 세상의 문화를 누리고 있는 서양인이 어떻게 더 파멸로 달려가고 있는가를 알아야되는 것이고 우리나라도 이 복음을 받아서 이 문명의 많은 발달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사람은 서양보다 너무너무 가난하다보니 조금 먹어도 배부르고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묘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신 복이 오히려 심판이어요.종교개혁 당시 세상에 모든 하나님을 사랑하던 양심가들이 모인 곳이 화란인데 그곳에 포르노를 수출하는 곳이 일본이고 또 미국처럼 복음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먹여살린 곳이 국가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세상의 문명이 발달함은 이 복음안에 복종치 않으면 오히려 이 인간윤리가 파괴되어 버려요. 우리나라도 이 만큼 발전을 가져왔습니다.그러나 우리나라는 너무 그릇이 적어서 별로 먹지도 못하고 파괴되어 버려요.이렇게 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려는지 암담합니다.전도하는 것도 다 물량주의여요.이 세상의 어느 교회가 연예인을 동원해서 전도를 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권세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자기를 증거하시고 헬라인에게 자기를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능을 구하는 유대인이나 세상의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은 하나님의 지혜요 새창조의 능력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천한 고린도 백성들은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중에 에베소 교회를 보면 은 5만냥이나 되는 마술책을 사를 정도로 이 세상의 모든 나라가 그 권세에 복종하는 방식으로 온 아시아가 하나님의 복음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바로 이 은혜 때문에 비천한 우리에게도 그 생명이 왔습니다.
'신약 구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행전 강해 18:1-11 (3) | 2025.07.29 |
|---|---|
| 사도행전 강해 17:16-34 (0) | 2025.07.25 |
| 사도행전 강해 16:11-40 (3) | 2025.07.12 |
| 사도행전 강해 15:36-16:10 (6) | 2025.07.04 |
| 사도행전 강해 15:19-35 (7) | 202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