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18:1-11
15장부터는 하나님의 경륜에 있어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고넬료의 가정에 보내시고 바로 거기서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이방인 사도로 바울을 택정하시고 그렇게 해서 흩어진 유대인들을 통해서 헬라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래서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가 성립되고 그렇게 해서 이제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는 새로운 전기를 가졌던 것처럼 이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충만히 증거되고 이처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복음을 전파했을때 예류살렘에 있는 유대인 교회와 안디옥교회가 함께 모여서 마치 베드로를 통해서 고넬료의 가정을 깨끗케한 사실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감사했던 것처럼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이방인을 깨끗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듣고 예루살렘 교회도 함께 감사하고 이제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깨끗케 되며 단지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달라서 그들의 삶의 방식이 한꺼번에 일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오히려 복음의 자유를 잘 깨달은 이방인들이 율법의 경륜아래서 배웠던 유대인들에 대해서 인내를 가지고 참음으로 하나님께서 그 섭리를 따라 A.D.70년에 성전을 파괴함으로 율법의 중심지를 없애버림으로 다시는 율법의식이 없어지도록까지 교회가 서로 화목하도록 결의했습니다.그리고 이 결의를 가지고 바나바와 바울이 그들이 이전에 전도했던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이방인을 구원하셨던 그 은혜의 열매들을 그 교회들을 심방하면서 예루살렘 교회가 확정했던 규례들을 주어서 그들을 믿음으로 깨끗케 했습니다. 할 일은 그들이 유대인의 짊을 짊어지고 교회를 화목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제 참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의 교제로 부름을 받은 증거를 그들이 가졌습니다.그래서 그런 증거로 교회들을 더 든든히 세우도록 심방하기를 원했는데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기를 원했고 바울은 원치 않앗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아서는 안디옥교회가 마가요한 대신에 실라를 택한 바울을 그들이 축복하고 그들을 주의 은혜에 부탁하고 해서 그들을 2차 전도여행을 보냈다고 15장 제일 끝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복음은 어둠의 권세와 싸움이어서 마가요한이 자기 개인의 구원에 있어서는 이상이 없다 할지라도 그가 세상을 두려워 하고 죽음의 권세를 두려워해서는 주 예수를 죽음가운데 던진 세상을 향해서는 수고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보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셨던 바울을 구별하시고 이제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결정했던 사항을 가지고 이제 이방인 전도 여행을 새롭게 출발하고 있는 내용이 16장 17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언제든지 사도행전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구원 역사를 진행 시킬 때 새로운 단계가 도달하면 거기 처음에는 반드시 새로운 특징이 있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 제일 처음 이방선교를 나갔을 때 안디옥교회에서 유대인들과 그리고 흩어진 유대인들의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돌아와 있는 경건한 헬라인들 그들에게 증거 했을 때 하나님께서 조상의 하나님으로 어떻게 그 언약의 진실하심을 따라 원하셨는가 하는 그 언약의 역사를 쭉 설명하고 동시에 거기서 이적을 행했습니다.처음 행했던 이적도 구브로에 건너가서 그 총독을 믿지 못하게 하는 유대인의 거짓선지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그 어둠의 권세를 심판했지요. 그리고 그들이 이방전도를 나갔을때 보면 귀신들린 자를 쫓아내고 그렇게 해서 어둠의 권세를 제하는 분으로 그래서 어둠에 있는 자기 백성을 빛으로 인도하시는 분으로 그리고 귀신을 제어하고 땅의 터를 진동하는 분으로 그래서 그가 옥중에 있을때 하나님께서 땅을 지진으로 흔드셨지요. 왜 하나님은 시내산에 강림하셨을때도 땅의 터가 흔들렸고 주님 재림하시면 하늘까지 흔들리고 요동치 않는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분이셔요.그 분이 만물을 지으셨고 만물을 보존하신 분이십니다.그러니까 거기 나타난 이적과 설교도 반드시 그 특징들이 있습니다.그래서 여기 16,17장에서도 우리가 그런 문제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16장에 보면 환상중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유럽으로 보냈지요. 그러니까 노아 당시에 노아의 세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가 확장되는 일에 있어서 민족이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에 대해서 거기 계시하셨는데 이제 그런 의미로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새 인류가 만들어진 사실을 이처럼 바울이 유럽으로 건너간 사실을 통해서 16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지요.물론 디모데를 할례시킨 이유는 종의 형상을 입으시고 율법아래 나셔서 율법의 종으로 수고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했으면서도 친히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함으로 유대인에게 거리끼지 않게하고 그런 방식으로 해서 이제 천하민민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새로운 인류,노아를 머리로 해서 새 종족이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새로운 인류가 나타난 사실을 16장에서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제일처음 했던 이적이 귀신을 쫓아내고 그가 그일 때문에 옥중에 갇혔을때 옥의 터를 흔들고 하나님께서 그를 해방시킴으로 그의 권세가 유대인들에게는 병자를 고치심으로 나타났고 그런 방식이었지만 이방인에게 보음이 증거되었을때는 병자를 고치는 언약의 주로 나타난 것 보다도 땅의 터를 흔들고 그렇게 해서 갇힌자를 해방시키는 우주적인 권능자로 이방인에게는 나타나시고 귀신을 제어함으로 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17장에서는 우리가 잘아는데로 그가 당시 세계철학의 도시인 아테네.성경에 보면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다음에는 헬라인에게로다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종교적인 특이한 민족으로서 은사를 주셔서 구별한 것은 유대인이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빛 가운데서 영원한 원리를 추구하고 하는 민족으로 구별해서 세운 민족은 헬라인입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교회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스데반이 증거하고 또 이전에 사도들도 이 회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옳다 하고 자기 주를 증거했던 것처럼 여기 이방전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 있어서 보면 아레오바고 그러니까 헬라의 재판정입니다.옛날에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도 이런 재판정에서 심판을 받고 그가 신들을 모독한다는 판결을 받고 독주를 먹고 죽었습니다.그러니까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사도들이 처음 증거한 것 하고 여기 이방전도가 예루실렘 회의가 있은 뒤로 새롭게 출발되었을때에 여기 보면 이방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이 이방인의 재판소요.이방의 최고의 판결소인 거기서 바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일반은총의 빛 가운데 두셨어도 이제는 천하만민은 회개해서 주 예수를 믿도록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확실한 증거를 주셨고 죽음에서 벗어난 그가 만물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다고 증거함으로 이제 유대인에게 증거한 것처럼 이방인에게 증거한 내용이 17장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약속에 대한 개념 보다도 일반은총의 은혜들을 쭉 말하고 있습니다.이방종교가 사악하게 하나님을 대항해도 거기에 나타난 빛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빛이어서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심리도 있을뿐아니라 신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일에 그런 것까지 없으면 완전히 하나님의 생명과는 단절되고 다시는 구원의 회복의 길도 없을 것입니다.비록 그들이 거꾸로 되어서 물건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대항해도 그들에게 있는 의식은 신에 대한 의식이어서 그것이 곧 그들을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방인들은 완전히 가짜로만 알고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니고 이방인의 넘어짐이 단순한 창조계시에서 넘어진 것이 아니라 구속계시 가운데서 배교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을 약속했을때 가인도 자기 아버지 아담을 통해서 그의 구원을 들었고 그것을 배반하고 다른 예물을 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않은 것 뿐이어요. 그리고 노아의 세 아들들도 노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무엇인가를 압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분명히 함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후사로 세우신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비웃고 돌아서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때문에 지금 예수 전도하고 안믿는 것만 구원의 계시를 배교한 것이 아니고 본래 온 인류는 창조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언약에 배교했을 뿐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빛을 비추었을때에도 인류는 배교했던 것입니다.이제 하나님 께서 그런 역사 가운데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구별하셔서 배타적으로 거기 구원약속이 보존되고 진행될 수 있도록 하셨고 이제 세계는 하나님께서 처음 계시하셨던 그 빛 가운데서 그대로 방치하신 것이지요.바로 하나님의 계시가 그들에게는 오히려 사악한 방식으로 변질되어서 이방종교로 그렇게 나타납니다.이방종교에 나타난 모든 선행의 요소는 하나님께서 남기신 일반은총이고 이방종교 자체가 생산한 선이 아닙니다.모든 선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오히려 그 선까지라도 너희들이 이처럼 행하면 구원도 받으리라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방식으로 거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그래서 우리들이 모든 선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해석하지 않고 단순한 도덕률로 해석을 하면 기독교와 이방종교가 차이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방종교의 선행은 그 선을 베푸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그에게 감사한 것이 아니라 그 선으로 스스로 독립해서 내가 이처럼 양심껏 살면 하나님께서 판단하고 심판하시겠는가.하나님 앞에 자기를 세우는 방식으로 피조물이 뻔뻔하게 되었습니다.그러니까 이방종교의 선행은 그 선행으로 자기 양심을 무마하고 그렇게 해서 스스로 구원을 노래하고 있는 방식으로 나타나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창조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석을 해야지 그 관계를 떠나서 독립적인 선이나 있는 것처럼 해석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방종교의 선행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조물에 갇혀계신 분이 아니고 모든 피조물에 내재하는 신이기 때문에 너희들을 멀리떠나 있지않고 너희의 생명과 호흡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냐? 그리고 너희들이 비록 이처럼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절해도 너희 신들까지라도 스스로 너희 입으로 너희들이 신의 소생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그 신이 누군가를 그들은 모르지요.말로는 신의 소생이라해도 그 신개념은 기독교의 신개념과는 다릅니다.그들이 우상섬긴 것처럼 다르지요.그러나 너희들도 너희 스스로의 양심에 있어서는 무엇인가 절대자의 피조물인것을 해석하고 있지 않느냐? 내가 그 분에 대해서 너희들에게 가르치리라고 일반은총의 영역 가운데서 그들에게 비추이고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가지고 그들에게 쭉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돈,금,은으로 새겨남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루 햇빛과 비를 주시고 너희에게 선한 결실을 맺게 함으로 자기자신을 증거했는데도 너희들은 그 하나님을 모르고 물건 앞에 절했던 것이 아니냐? 이전에는 하나님이 오래참으시고 간과하셨지만 이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대로 천하만민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씨에서 참 구원자를 세우셨는데 그 구원자는 누굽니까?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방종교의,헬라철학의 모든 근본은 다 그런 것입니다. 가령 도시국가가 그들의 전 삶의 무대여요.도시국가는 법을 따라 지배되면 그 도시국가는 잘 진행이 됩니다.그런것처럼 인간도 자기 이성이 잘 시행되면 모든 도덕이 생기고 질서가 생길 것이고 그것이 행복입니다.도시국가가 번영하고 행복한 것처럼 그러니 도시국가의 일원인 인간도 도시국가의 축소판이어서 그런의미로 그 이성을 따라 법이 집행되면 덕이 시행되고 그것이 곧 행복이고 평화여요. 또 세계도 인간의 구조와 같아서 세계의 정신이 있고 세계의 몸이 있습니다.그러니 인간의 활동이 인간정신에 나타난 것처럼 세계의 나타나는 것도 세계혼의 나타남이고 이 도시국가는 세계일부분일 뿐아니라 또 인간은 도시국가의 일원이면서도 세계의 일부여요. 그래서 말하자면 모든 인간이성이 활동함으로 인간이 움직인 것처럼 그런 의미로 인간이성은 세계의 혼이고 그런 방식으로 범신론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들이 아무리 법과 질서를 말하여도 그것은 자연적인 법과 질서 뿐이고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 사고력의 법뿐이지 모든 만물의 원인이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이 이처럼 움직이는 자연적인 원리가 필연적인 것처럼 사람은 자기 이성의 필연성을 따라 사는 것이고 그것이 평화요. 그것이 모든 변화무쌍한 세계 가운데서도 마음의 안정이지요.
그래서 스토익,에피쿠로스 학파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들의 사상은 그런 것입니다. 만물이 그렇게 움직이니 큰 세계의 이성에 내 작은 이성을 맞추는 것이 세계의 평화여요.세계가 세계의 정신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이 법칙이거든요.인간도 생각하는 바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그런데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불안이어요. 그래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세계혼의 나타남이다.맞는 것이어요. 그런 의미로 범신론 개념으로 돌아가고 단지 그것이 규칙을 따라 나타나고 있기 대문에 그 규칙이 인간으로서는 이성이어요. 그러니 이성적인 사고력을 따라 그대로 맞추는 것이 행복이어요.이렇게 말하고 있어서 어떤 대단한 인격성을 밀하고 있는 것 같아도 근본적인 개념은 범신론 개념이고 그래서 모든 만물의 근본적인 법칙은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그러니 죽음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도 법을 지키면 그 결과에 상관없이 죽는 것이고 그렇게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는 독약을 먹고 죽음을 맛보면서 죽는 것이어요.말하자면 이처럼 세계는 생성되면 또 죽고 이렇게 되거든요.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도 인간의 위대함은 무엇인가? 죽음이 만물의 끝인데도 인간은 그 운명에 대항해서 투쟁하는 투쟁이 있어요. 이제 그런 것을 가지고 인간의 위대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그러기때문에 죽음이 필연이라 하면서도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런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은 오히려 죽음을 통해서 죽음을 정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방식으로 인간구원,해탈을 주장하며 살았던 것이지요. 에피쿠로스파도 같습니다. 그들도 목표는 행복이지만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허전해져요. 그래서 소유하지 영원히 더 많은 것을 소유할 것이어요. 죽음이라는 것도 그런것 아니겠어요.그런 방식으로 해서 나타나는 것은 쾌락주의니 뭐니 해서 나타났고 있지만 그들의 목표는 이 세계질서 가운데서 평화를 누리고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죽음이고 이 죽음에 어떻게 인간이 대처하는가 그런 것을 인간이 위대한 자존적인 존재인 것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 죽음에 대한 문제를 말해요.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을 정복하신 분, 그 분안에 세상의 구원이 있고 죽음을 정복하신 이 분이 만물을 영원한 심판으로 정복하실 분이시라고 말함으로 그들이 끝이라고 말하고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야한다고 말하고 그것은 만물은 법칙이기 때문에 법칙에 대항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면서도 죽음을 죽음대로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창조자께서 어떻게 이 죽음의 질서를 새롭게 하시는가 만물을 이기신 그분이,죽음을 이기신 그분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라고 부활을 증거함으로 그들을 죽음의 질서에 매여서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하도록 증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믿질 않고 몇명이 믿었지요. 그리고 이제 고린도로 내려갔습니다.고린도반도에서 고린도시에서 전도했는데 이 고린도시는 아테네와는 달리 매우 천박한 도시입니다.아테네는 부요한 도시이고 이전부터 상업을 통해서 부요하고 많은 노예가 있었기 대문에 그들은 이전 추상적인 일 자기 마음을 검토하고 이 죽음의 무대 비극의 무대에서 어떻게 인간이 승리할 것인가 하는 비극같은 것을 쓰고 그런 방식으로 쭉 살아서 많은 여유를 가지고 철학을 했습니다.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믿질 않았습니다.그러나 고린도는 항구도시이고 재정적으로는 상당히 부요하면서도 대단히 타락한 도시입니다.거기 미의 여신 아포르테테의 신전이 있고 그 신이라는 것은 생산의 신이어서 생산은 남녀간의 성적인 교접이 있는 것이지요.그런식으로 해서 여기 신전 창녀가 있고 그래서 형편없이 더러운 사람을 고린도인 하면 될 정도로 종교적으로 매음한 도시이고 항구도시이므로 대단히 타락한 도시이고 우리들이 고린도 전후서를 보더라도 형편없는 윤리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런 도시입니다. 거기 내려가서도 처음에는 안식일에 회당에 내려가서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권면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항상 유대인으로 부터 출발된 것이어서 사도들의 복음증거도 그런 질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거기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구원자라고 증거했는데도 그들이 바울의 말을 훼방하고 듣지를 않았습니다.물론 유대인들만 훼방한 것이 아니라 앞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이방인을 선동해서 핍박을 받고 있지요.어떻든 유대교는 로마 사회에서 인정받는 종교입니다. 요새같으면 문공부에 등로된 식으로! 그런데도 그 당시 글라우디오 황제때는 대단히 흉년이 들었고 로마제국이 대단히 뒤숭숭해졌습니다. 그런 상황 아래서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단코 섬기질 않아요. 그래서 유대 보토 안에 살지 못하고 이탈리아로 부터 떠나라고 명령을 받아서 거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바울이 천막을 치면서 수고하고 있지요. 그것은 고전 9장에서 바울은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는 사도이기 때문에 마땅히 먹을 양식으로 공괘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도로 임명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의 것을 그에게 주신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그는 종이 아니데도 유대인들을 섬기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던 것처럼 그는 자유자요,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데도 친히 자기 몸으로 그처럼 수고해서 주님께서 그 영광의 보좌를 비우시고 땅에 죽음의 질서 가운데 낮아지셔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복주셨던 것처럼 그가 자기 생명의 모든 것을 위해서 스스로 이렇게 수고하고 헌신함으로 종의 자세로 이처럼 복음을 증거했는데도 유대인들이 그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여기보면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고 말씀하고 있지요.이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도행전을 보면 처음에는 흩어진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다가 나중에는 이방인에게 증거한 경우가 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유대인들을 버리고 이방인에게로 가노라는 말이 없어요.먼저는 항상 유대인이요,마지막에는 헬라인이라는 말이 꼭꼭 나와요. 그리고 안디옥 교회로 부터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거든요. 거기서 전도했을때는 이제 다릅니다.유대인에게 전하고 다음에 경건한 헬라인들에게 전했는데 유대인들이 선동해서 배교하고 있지요. 그때부터 보면 유대인들이 더 복음에 대적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그들만 믿지 않을 뿐아니라 천하를 선동해서 믿지 못하도록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고 그렇게 해서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옮겨간다고 말하고 있고 이제 바울이 행16장 이하에서 전도하는 방식을 보면 이제는 직접적으로 발의 먼지까지 다 털어버리고 옷을 찟고 하는 방식으로 너희 피가 너희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에게는 죄가 없다.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가노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여기서 처음 회당으로 부터 교회를 분리시켜서 회당 옆에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가 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보면 이처럼 유대인들이 끝까지 복음을 대적해도 그래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무리는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이고 이 도에 복종하니라 하는 것처럼 회당장 그리스보와 온집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그랬을뿐아니라 주님께서 환상중에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참으로 임마누엘 하나님이셔서 그의 백성을 떠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성에 내 백성이 많으니 너는 두려워 하지 말고 잠잠하지 말고 복음을 증거해라.너를 해롭게 할 자가 없다. 왜 부활하신 주님께서 침히 그의 종들을 통해서 이처럼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파괴할 세력이 없습니다.그렇게 해서 형편없는 이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이 있다고 말했고 여기서 가장 많이 1년6개월 동안 있으면서 그들중에 복음을 전하고 거기 교회를 세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것은 우리들이 고전1장을 보면 알 수가 있지요. 고린도 교회가 세상의 지식을 추구함으로 누구파 누구파 하고 나뉘어 졌을때 바울사도께서 고전1:18절에서 부터 보면‘십자가의 도가~오실 분이 당신입니까? 구약의 증거지요. 오실 분이 당신입니까? 그런식으로 이해하질 못했고 제자들까지라도 그의 죽으심에 대해서 이해를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셔서권능으로 보좌우편에 취임해도 그들은 세상의 권세만 알았지 죄로 부터 구원함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지 못했습니다.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그가 땅에 오셨을때 거절받았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친히 그의 종들을 통해서 동일한 권능을 시행해서 그가 하늘 보좌에서 자기 교회를 세우시고 자기 나라를 구원하심을 증거했어도 그들은 그 증거를 받지 않고 끝까지 죄를 채웠고 그리고 17장에 있는 것처럼 헬라의 중심지 아테네에서 거기 최고 재판소에서 이처럼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자기를 계시하시고 이제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부정할 수 없는 죽음의 질서를 영원히 깨뜨리신 하늘의 하나님을 거기 나타내셨어도 그들도 그들의 지혜를 따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지혜이며,하나님이 우리의 빛이신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들은 스스로 부패한 양심을 따라서 세계의 원리를 추구하고 모든 근본의 원리를 추구했어도 그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아닙니다.그러니 인간은 더듬어서 신에 도달할 존재이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의식을 갖지 않았습니다.인간은 자기 이성을 발휘함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세상을 재조직하고 권능의 자리에 있지 하나님이 그들을 지으셨으며 그들이 죄아래 있고 심판의 자리에 있다고 믿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17장 아레오바고에서 증거했어도 몇 명 밖에 얻지를 못했습니다.이처럼 유대인과 헬라인들은 그들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오히려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 때문에 오히려 넘어져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고린도인 하면 형편없는 사람들입니다.종교적으로도 우상도시요,그들의 도덕성도 매우 타락한 도시여요. 그런데도 여전히 거기서도 유대인들과 유대인들의 선동을 받은 이방인들이 배교했지만 그렇게 해서 너희들을 떠나고 이방인에게로 가노라는 확실한 표로 하나님의 교회가 유대인 회당으로 부터 정식으로 분리되고 있어요. 그런데도 거기보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믿었던 것처럼 회당장 그리스보와 그 가족이 믿고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내가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너와 함께 있으며 세상과 함께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여기 내 백성이 많도다.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어둠가운데 있고 죄 가운데 있고 비천한 가운데 있어도 고린도 교인들은 대게는 노예출신이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이 바로 이 비천한자를 택하셔서 어떻게 세상의 지혜롭고 능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가를 여기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1년6개월 동안 거해서 큰 교회 거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는 비천한자요 세상에서는 노예요 신분은 약하고 도덕적으로는 낮은 자리에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죄인의 구주로 오신 주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새롭게 하셔서 참 지혜를 주셔서 하늘의 지혜이신 주 예수를 알게 하시고 참 능력을 더하셔서 부활하신 주님의 영의 권세로서 그들을 죄로 부터 해방시켰고 주님의 신령한 몸의 지체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했어도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두려워 하지 말라 입을 다물지 말라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도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그의 교회를 세우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이방전도에서 새로운 전기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어요.보십시오.유대인들이 거절했습니다.이방인들도 거절했습니다.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떻게 천하고 약하고 비천한자를 택하시고 무식한 자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가 예수는 하나님의 지혜요 거룩함과 의로움의 능력이어서 우리가 주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으로 우리를 모든 것을 바른 질서 가운데 둘 수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능력이어서 우리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시고 죄의 어둠과 권세 아래서 자기 백성들을 해방시키시고 고린도 교회가 그처럼 타락했어도 바울은 분명히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은 주님오시면 우리들은 주님과 같이 그 영광에 참여할 것인데 그런의미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자기교회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런 소망이 없으면 고린도 교회를 바울이 목회할 수 없고 그처럼 거짓선생들의 미혹을 받은 고린도 교회에 많은 눈물로 편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가 가지 않고 편지로 권면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이어서 그들을 재조성하시고 어둠으로 부터 해방시키셔서 거짓된 종들을 쫓아내고 그들은 죄 때문에 심히 슬퍼하고 심히 근심하고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의 방식으로 그들을 깨끗케 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기 이방전도가 새롭게 진행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의 비천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택하셔서 친히 자기 종들과 함께하셔서 자기교회를 만드시는가 하는 문제를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은혜를 따라서 오늘 우리도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똑똑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세상에서 비하면 우수운 사람들입니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세상에서 복음이 전파될때도 강대국에 싸여서 쫓겼을 뿐아니라 우리나라처럼 민족적인 고난을 격은 나라들도 드물지요. 더구나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전파되었을때 믿었던 사람들은 전부가 대개 여자들이며 그 사회에서 수로 셀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믿었던 사람들은 다 그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입니다.물론 일제 핍박 때문에 그런의미로도 한국교회가 많이 부흥했지만 조직으로 부터 배제되고 사람취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사람이어요. 이것을 우리들은 인정을 해야합니다.그런데도 이 선교기관 때문에 우리나라교회가 어떻게 하면 세상을 정복할 것인가? 한국교회는 여자들이 많고 무식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렇게 해서는 안되고 그냥 시골교회는 도시교회에서 보조하면 되는 것이고 그리고 대학생들을 훈련시키자.물론 좋습니다. 왜 이방세계에 접촉하려면 바울을 위대하게 썼던 것처럼 교육도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니까 하나님의 복음은 세상의 학식이 있다고 알아듣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어요. 그런데도 교회가 생각하기에는 돈있고 학식있는 사람이 들어오면 교회에 기둥나무가 들어왔고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스스로 불안해 하고 그런 환경 가운데 있고 우리 목사들도 그럴뿐아니라 교회 대학부는 그런 의미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한국교회를 바꿀것처럼 그래도 청년회 수양회 가면 윳놀이나 하고 놀이나 하고 그러지 뭐 있습니까? 똑같아요. 세상의 지식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어요. 그래서 제자운동을 빙자해서 교회도 그룹이 달라요.그러나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그렇게 세운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너무 부자여서 부자가 들어오는 교회고 지식인이 들어오는 교회여요. 그러나 처음 교회를 세웠을때는 그런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병들고 천하고 무식하고 세상에서 버림받고 하나님 앞에 눈물흘려 호소하기 전에는 그를 기억할 사람들이 없고 그런 사람들이 모였어요.그런데 그때는 한국을 변화시켰어도 지금은 세상의 유명한 인물이 다 교회에 있어도 교회 자체까지 부패시켜서 세상에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가 모르고 요새 잘하면 농촌운동입니다. 그러나 농촌의 복음이 따로 있고 도시복음이 따로 있고 교회는 그런 구제기관이 아니어요. 그래도 농촌운동하면 무엇인가 신선감을 주고 무엇인가 교회가 있는 것 같고 민족의 고난에 참여한 것 같고 묘하게 지금 변질되고 있어요.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니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해야할 것입니다.우리들은 지금 무엇인가 배우고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까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을때는 세상의 멸시받는 민족이고 아무도 우리를 기억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들도 그런 조직가운데서 우상의 종으로 살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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