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14:1-28
사도행전 13장부터 15장까지를 한 단락으로 구분해서 해석을 해야 바른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방인으로 형성된 교회가 설립되고 이제 그 교회로 부터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고 교회적인 이방선교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장에서는 그 일을 이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의 회가 모여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깨끗케 하심을 감사하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온 사실에 대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감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된 것이 15장이지요. 그리고 16장부터 이제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3-15장을 한 단락으로 이해를 하셔야합니다. 그러면 15장에서는 예루살렘 회의가 모여서 하나님이 신령한 다윗왕국을 세우고 이방인들도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실을 확증하고 있고,13,14장은 바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을 믿음에로 들어오게 했는가 하는 하나님의 행하신 일과 사도들이 전했던 복음의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3장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성령을 부으셔서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도록 했던 것처럼 바로 그 은혜가 안디옥교회에 주어져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지자와 교사들을 세우심으로 이제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을 정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제일 처음에 행했던 이적은 유대인 거짓선지자의 눈을 멀게하여 어둠으로 그를 휩싸이게 하므로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바울을 눈멀게 했던 것처럼 어둠에 있는 이방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빛으로 인도하시는가를 말씀합니다. 특별히 구브로섬에 있는 총독을 하나님께서 변화시키므로 마치 여호수아가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그 왕들을 죽임으로 그땅을 하나님의 언약의 땅으로 성별했던 것처럼,이 거짓선지자의 인도를 받아서 어둠에 있었던 그 총독의 눈을 밝혀서 빛으로 들어오게 하므로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을 거기 건설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거기가서 전도했던 것은 먼저 유대인이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고 말했던 것처럼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먼저 회당에 들어가면 거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언약의 백성들이 있고 그 언약백성을 세상에 흩으심을 통해서 세상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증거케 하심으로 거기 예비된 하니님을 경외하는 이방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예비된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들이 13장의 내용입니다. 여기는 이처럼 하나님이 그 복음을 따라서 그 은혜를 따라서 예비된 백성에게 예수안에 있는 구원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조상들에게 약속하시고 이스라엘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자비하셔서 그 약속을 성취하셨는가 마지막에 그들이 그언약의 주를 죽였어도 곧 그것을 그들의 구원이 되게하셨는가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전반적인 역사를 쭉 설명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당에는 하나님의 예비하신 백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도 보면 13장48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자는 다 믿더라’ 52절에 보면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더라’ 사도들은 이리저리 쫒겨다니면서 전도해도 먼저는 거기 배교자들은 항상 유대인들이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떻든 13장 이전까지는 유대인들이 중심이어요.흩어진 무리들이 전도해도 먼저는 유대인에게 전파하니라고 되어있고 유대인들이 어떻게 배교하더라는 데에 강조점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보면 이방인들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하나님이 마음의 문을 열으셔서 믿었지만 유대인들은 조상들의 죄를 끝까지 채워서 바로 주예수의 복음을 거절하는데 유대인들이 앞장섰고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는 말하기를 13장46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한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그래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가 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14장에서는 13장에서는 회당에 들어가서 주로 예비된 언약백성인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었는데 여기 14장에서는 순수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어떻게 증거되었는가 하는 사실이 주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총 결론도 말하기를 27절에 보면 이전에 베드로 사도가 고넬료 가정을 찾아가서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깨끗케하신 사실을 보고 돌아와서 예루살렘교회에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들의 마음의 문을 여시고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셨는가 하는 사실을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했던 안디옥교회에 와서 고하므로서 예루살렘회의가 모여서 어떻게 천하만민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한 몸을 이루었는가 하는 사실을 교회가 이제 하나님 앞에 시인하게되고 그렇게 함므로 본격적인 이방인 전도가 시작되는 방식이지요.그 흐름을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13장에서는 유대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지만 여기서 순수한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셨는가 하는 문제들을 동시에 유대인만 하나님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천하만민이 합심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도를 거절하는가 하는 문제를 14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 14장1절에 보면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화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여기서 바나바를 사도의 반열로 말하고 있습니다.물론 사도라는 단어는 12사도만을 지칭하는 하나님의 대리파송자라는 경우도 있고 또 이것은 넓은 의미로 보냄을 받은 자 이들은 안디옥교회로 부터 보냄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소위 사도라고 말할 수 있지요.따라서 이것은 문맥에서 12사도를 지칭하는 것인지 어떻든 바나바도 주예수의 부활의 증인이고 그런 의미로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이방구원을 위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택해서 보냈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사도적 반열에서 합당히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했을 때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들이 믿더라 한 말씀은 13장의 결론과같은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순종치 않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함을 품게하거늘~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2-7절) 여기보면 13장에 있었던 사실들을 다른 방면으로 더 확대하고 있습니다.13장에서는 돌로쳐서 죽이더라는 말은 안했고 유대인들이 끝까지 거절했기 때문에 그들이 이방인에게로 가노라 고 말씀했는데 그들의 핍박이 얼마나 심해졌는가 하는 사실은 14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13장에서는 단지 그 지경에서 쫓아냈다고 5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데 14장에서는 그들을 죽이려고해서 도망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선봉에선 사람은 유대인이고 그리고 이방인들을 선동해서 그런 일을 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과 함께하셔서 표적과 기사로 그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므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은혜가 더 강력하게 나타나서 표적과 기사로 하나님께서 그 은혜의 말씀을 친히 증거하면 증거할 수록 어둠도 그 배교함이 더욱 강력해서 거기보면 온 성내가 두 무리로 나뉘었다고 말씀하고 있고 이처럼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가 확실한데도 유대인들이 그들의 높은 지위를 이용해서 관원들을 동원하고 그리고 이방인들을 동원해서 그들을 죽이려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하나님의 복음이 더욱 밝히 나타날수록 거기에 대한 거역도 더 밝히 나타나는 것이고 참으로 주예수를 죽이려고 빌라도와 헤롯과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기름부으심 받은 자들을 대적하려고 예루살렘에 함께 모였다고 사도가 사도행전에서 말씀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같은 방식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뭉쳐서 주예수의 복음의 도를 거절하고 있고 그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사도들을 인도해서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아직 그들이 죽을 때가 아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인도하셨겠지요.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했을때 비겁해서 도망쳤다고 이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예수께서도 말하자면 세례요한이 잡혔을때 자리를 피한 것은 비겁해서가 아니고 자기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복음이 증거되면 증거될수록 주를 따르는 백성과 어둠을 따르는 백성은 나뉘어졌고 아직도 이세상의 권세는 어둠에 속해 있어서 주예수의 부활의 도를 거절했습니다.
여기 이제 8절부터 보면 유대인들이 끝까지 그 복음의 도를 거절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에게로 그 복음을 향했는가의 문제를 여기 루스드라에 이곳 지역은 회당이 거의 없는 형편인 것 같고 그래서 순수하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방식으로 이해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처음 바울이 행했던 일들은 13,14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바울이 행한 모든 일을 다 기록한 것이 아니고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또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방인의 사도들을 파송했을 때 그들을 통해서 하실 구원의 일 은혜의 일들을 기로하고 있는 것이지 그 모든 일을 다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마치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행적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됨을 믿고 구원을 얻도록 기록된 것이고 그가 행한 일을 다 기록할려면 이 세상이라도 그 책을 두기에 부족하다고 말한 것처럼 여기에서도 여기 나타난 이적들과 복음의 내용들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의 대표적인 성격들을 이해해야만 바로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그들의 사도들을 보냈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 8절에 보면 ‘루스드라에~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여기에서는 마치 행3장에 성전 미문앞에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된 자가 앉아 있었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고쳐준 기사와 대비된 방식이지요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고쳤을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했습니다.주목했다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메시야가아닌가하는 방식이 되겠지요.왜냐하면 예수는 죽었는데 또 다른 이적이 나타나는가 하는 방식으로 쳐다보는 것이지요. 여기서는 이방인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보냈다는 개념으로 주목한 것 보다도 말하자면 범신론적인 개념으로 사람의 능력을 신성화시켜서 하나님이 여기 임하셨는가 하는 방식으로 유대인들이 그들의 약속하신 메시야로 누구를 받으면 그는 경배받을 자여요.마찬가지로 여기서는 그들은 그런 약속을 모르는 이방인들이어요.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방식으로 오셨는가 하고 유대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던 것처럼 바나바와 바울을 보고 그들에게 제사드리려고 했다. 그런 방식으로 말씀하고 있어요. 여기서 복음을 전했을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를 주목해서 보고 그가 구원받을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여기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영혼과 또는 육체의 치료를 나타내고 있는 방식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그 문맥을 보아야 하겠습니다만 여기서는 9절에 보면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하는 것을 볼 때 여기서의 구원받을만한 믿음은 영혼의 구원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셔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심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심하는 것은 영혼의 구원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현재화해서 바로 새로운 질서가 도입되는 것이지요.그러기 때문에 바로 그런 방식을 통해서 여기 병자를 치료하심으로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죄의 결과로 부터 우리의 삶의 질서를 치료하시는 분으로 여기 증거하는 것이고 그런 방식으로 바울이 여기서 큰 소리로 말해서 그를 치료했습니다. 그때 이사람들이 자기나라 방언으로 소리질러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왔도다 하고 바나바를 쓰스라 하고 바울을 말하는 자이므로 허매라 하여서 바로 그 신당의 제사장과 함께 와서 제사하려 했다(11-13)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쓰스라 하는 것은 제우스를 말하는 것이고 허매라 하는 것은 허매로스를 말합니다.이는 헬라신이나 로마신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그 신들은 사람과 같아서 서로 사랑하고 질토하고 전쟁하는 신으로 되어있어요. 그들의 신개념은 범신론적인 개념이고 그래서 훌륭한 영웅들을 그런 의미로 신개년에 포함시킵니다. 그래서 희랍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영웅들을 신의 아들로 표현하는 것이어요. 그래서 최고의 신이 제우스 신입니다. 그리고 제우스 신의 아들했을때 아들은 존재론적인 의미도 있습니다만 아버지를 전달하는 자로 일반신화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가만이 있고 바울은 말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신의 전령자로 허매라 하고바나바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라고 해서 신들이 인간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하고 바울이 행했던 이적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행하신 은혜의 일로 알지 못하고 바울을 신격화 시켜서 제사를 하려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처음 앉은뱅이를 고쳤을때 유대인들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을때 왜 너희들은 우리를 주목하느냐?우리가 우리의 경건과 능력으로 이 사람을 고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고친 자는 너희들이 죽였던 예수다.하나님께서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므로서 그들을 주목하지 않고 그들이 죽였던 주예수를 주목해서 그를 경배하게 했던 것처럼 여기서는 이방인들은 우상아래 있었기 때문에 사람을 신성화 시켜서 절하려고 모여 들었습니다. 15-17절까지는 이런 이방인들에게 바울이 순수하게 복음을 설교한 내용입니다.여기 있는 내용과 행 17장에 있는 내용을 비교해 보면 우리들이 더 잘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가로되 여러분 들이여~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그것이 지금 제사하려고 하는 사람을 말렸을 때 바울이 했던 설교의 내용입니다.물론 완전한 설교로 끝맺고 있지는 않지만 그 제사의 일을 막는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행17장을 보십시다. 24절부터 읽겠습니다.‘우주와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느니라 하니라’(24-31) 여기 일반은총의 영역으로 출발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그들을 구원의 빛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여기 순수한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전파지요. 이전에 사복음서를 설교할 때에 전반적인 개념을 말씀드렸습니다만 가령 마 막 눅 요 했을때에 그 복음서들은 기록한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그 복음의 도입부들이 다릅니다.특별히 마가복음은 로마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복음 그가 왕이신대도 고난의 종으로 오셨다는 섬기는 종으로 오셨다는 왕에 대한 복음을 증거했을때 그 로마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그러기 때문에 거기에는 족보에 대한 문제가 완전히 다 빠져있고 그가 말씀하시니 즉각 이루더라. 귀신을 쫓아낸 일로 시작을해서 그의 능력을 말하고 있지 그가 누구의 족보로 오셨으며 이러이러한 구약의 말씀을 이루더라는 말은 거의 없습니다.그러나 마태복음은 유대인에게 예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목표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해서 우리가 처음 족보를 읽을때 잘 모르겠지요.그래서 족보 부분은 쭉 지나가 버리고 그 다음 홰개하라하는 데서부터 읽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의 마음에도 오는 빛이거든요.그러나 유대인들은 족보를 쭉 읽어보면 그들은 경배하게 되어 있어요. 왜그들은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겼고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소망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만일에 그약속을 따라 오신 분이 아니면 그들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 기록한 방식이 다르지요.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이러저런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그것이 마태복음의 기록 특징이어요. 기록하고자 하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기 13장에서는 유대인과 그리고 유대인들을 통해서 유대인의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그러니 그들은 다 약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조상들에게 하셨던 그 약속 그들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들안에서 이 구원을 이루셨는가 그 은혜를 거절하지 말라 그런 방식으로 권면하고 있지만 여기 루스드라 지방은 유대인의 회당이 힘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여기보면 제우스 신당이 거기 있고 그 신당의 제사장을 데리고 와서 제사하려는 것을 보니까 거기서는 유대인들이 뚜렷하게 나타나있지 않습니다.여기 순수한 이방인들을 향해 전도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구약을 쭉 인용하는 것이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출발하고 있지요.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의 기초로 놓으신 계시의 근거입니다.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가 곧 하나님의 거울이요 비록 세상이 하나님 앞에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원수되어 있어도 하나님은 이 보존된 생명의 질서안에서 자기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은총의 영역으로 출발하여 복음을 전도하고 있습니다.물론 여기서 복음적인 결론을 직접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말하자면 이 앞에 직접 복음을 설교하고 있거든요.그래서 그들의 우상숭배에 대해서 복음을 설명하므로 그것을 막고 있는 행위로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행13장에 있는 것처럼 완벽한 설교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출발한 내용은 일반은총의 빛으로 쭉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고 사람은 신이 아니지요. 그리고 세상에 생명을 주신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만유를 지으시고 만유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피조물뿐이지 신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 시대에는 여러분들이 우상을 섬겨도 하나님께서 묵인하셨다고 16절에 말씀합니다. 17장30절에는 허물치 아니했다. 즉 심판치 아니했다는 말씀과 같지요. 그러니까 그들이 우상을 섬겨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직접 심판하지 아니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직접 심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도 하나님께서 비록 심판치 아니하고 오래 참았어도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완전이 빛을 거둔 것이 아니고 이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누구신가 하는 사실을 비추셨고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빛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겼다면 이방인들은 어둠 가운데서 더듬어 하나님을 찾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기를 증거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를 증거하셨습니까? 지나간 시대에는 허물치 아니하고 그들의 죄를 묵인하셨으나 자기를 증거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니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을 만족케 하셨느니라. 유대인들에게 가나안 땅에 젖과 꿀이 흐르므로 그들의 마음을 만족케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세상에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으로 그들을 양육하시므로 그들에게 만족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생명을 주시므로 사람도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을 섬기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 앞에 바울이 전했던 복음의 내용 또 여기서 바울이 말했던 내용은 더 풀면 분명히 복음은 드러납니다. 왜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 뿐이시고 행 17장과 연결시키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므로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했고 또 죽음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 분은 죽음을 이기신 분이라 곧 하나님이시지요. 그 분이 때가 되면 오셔서 심판하실 분이시다. 그래서 바로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똑같이 비를 주시고 햇빛을 주셔서 우리도 먹었다. 그러면 너희들이 이전에는 생명없는 우상앞에 절하지 아니했는 가 그러나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생명을 주시므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증거했는데도 너희들은 지금까지 우상을 섬겼었다. 그러나 이전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않으셨다. 이전에는 묵인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므로 천하 만민에게 자기를 증거했기 때문에 이제는 다 회개하고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믿어야 된다. 그렇게 예수를 증거하므로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한 것이지요. 그래 여기서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곧 그 분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고 이전에는 우상의 일을 묵인했어도 이제는 아니라는 방식으로 그렇게 섬기지 말라고 분명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베드로와 요한이 자기들을 주목하지 아니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예수를 주목하게 한 것처럼 바울과 바나바도 자기들을 주목하지 아니하고 자기들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곧 그분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세상에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을 주목하고 그 분을 경배할 수 있도록 우상으로 부터 그 백성을 건져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큰 권능을 행했는데도 여기 19절 부터 보면 유대인들이 다시 쫓아 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내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을 살리셨지요. 왜?바울이 섬기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지요.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내가 의탁한 것을 그가 끝날까지 지킬줄 아노라’고 말한 것처럼 그가 하나님의 복음의 은혜를 증거하는 일에 하나님이 그 생명을 지키실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바울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실은 그는 죽은 자와 같습니다. 바울은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서 고후1장에서 내가 죽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살리셨다. 그것은 사람을 의뢰하지 말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케 할려고 나를 살리셨다. 형제들아 나를 죽을 지경에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너희를 살리지 않겠는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에서 일으키시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의 길을 걸으라고 바울이 권면한 내용들이 이런저런 경험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일깨우신 방법입니다. 그가 눈이 멀었다가 빛을 보았던 것이나 그가 어떻게 보면 죽은 것과 같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생명의 도를 증거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고 무덤문을 닫고 평안했던 바로 이 세상의 모든 권세들이 여기서 연합해서 바로 성령께서 친히 바울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거절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끝까지 채우고 있습니다. 그 일에 유대인이 앞장서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큰 핍박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셔서 구원의 기쁨이 충만했고 그리고 바울은 이전에는 그성을 피했지만 다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이전에 자기가 복음을 증거하고 급히 이동했던 그 연약한 교회들을 다시 돌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그 교회를 봉사할 수 있는 잘로들을 택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금식해서 기도하므로 그 믿음 바 주께 부탁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 하나님의 교회가 새로운 인류로 옛날의 구약의 교회가 조직 교회로 있었던 것처럼 여기 이방인의 교회가 이제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맡을 수 있는 장로들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께서 그 은혜로 충만해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인류로서 교회가 여기 조직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장로들은 말하자면 신약의 장로와 목사 즉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를 함께 묶어서 표현하는 말이고 나중에 후기에 보면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배나 존중할 줄 알라고 한 것처럼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가 따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문제를 다 포함하는 장로가 되겠습니다.그렇게 해서 거기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거기 교회에 바울이 가르친 바를 22절에 보면‘이 믿음에 굳게 거하라. 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므로그들이 모든 환란에도 든든히 설 수 있는 교회로 그들을 세우셨습니다. 주 예수를 거절한 세상은 주 예수의 영을 따라 사는 교회를 거절하게 되어 있고 복음이 복음의 빛되로 증거되면 세상은 이를 갈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대해 잠잠한 이유들은 다른 것이 아니고 교회가 교회로서 바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죄로서 죄를 심판하는 것처럼 교회가 세상처럼 재물이나 명예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그런 방식으로 죽은 줄 모르게 살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핍박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앉아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핍박을 받았으니 그의 교회도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귀신의 대장이라고 했으니 교회가 세상에서 얼마나 핍박을 받겠습니까?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교화가 존재하는 동안은 그들이 받을 기업은 고난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그 영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그것은 고생을 해야 상급을 받는 다는 말이 아니고 주님께서 오셔서 그의 왕권을 땅위에 구현하고 모든 이름이 주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기 전에는 세상은 그 왕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 예수의 왕권이 증거되는 곳마다 이 어둠의 영 세상의 신은 자기 종들을 통해서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연합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점점 그런 방향으로 진행이 되어 갑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을 환란 중에서도 이 믿음의 도에 든든이 서기를 가르쳤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기도하므로 이 은혜의 도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그들을 맡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여기서는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23절에는 그렇게 되어있고 행20장에 보면 32절을 보면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 여기보면 주와 말씀을 같이 쓰고 있습니다. 왜 살아계신 주님께서는 그의 은혜의 말씀으로 교회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사람이 증거히는 연설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말씀과 함께 친히 자기를 증거하시므로 자기 백성중에서 생명의 교제를 허락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이제 그가 예루살렘에 가면 잡힙니다.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그 때 밀레도로 에베소 잘로들을 불러놓고 기도했을 때 바울이 그렇게 그의 교회를 부탁하고 있어요.주님은 그의 교회를 성전 삼으셔서 영원히 거기 거하십니다.자기 교회를 버리신 적이 없지요.그래서 교회를 그 은혜의 주께 부탁했습니다.주님께서 친히 그의 백성들을 피로 값주고 사셨고 친히 그의 영으로 그 종들 안에 역사하셔서 교회를 돌아 볼 수 있는 은혜의 충만함을 허락하셨으니 그 주님께서 그 종들을 통해서 교회를 양육하실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조직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희를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그렇게해서 이전에 자기가 전했고 복음의 교회들을 쭉 순방하고 연약한 교회들을 믿음에 굳게하고 지금 같으면 이렇게 빨리 장로가 안생기지요. 사도행전 당시의 교회는 특이한 시대입니다.물론 우리가 이 빛을 더 받는다는 의미에서는 복된시대에 있지만 교회가 사도들을 통해서 설립되는 방식으로는 과도기적인 시대여요.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더 강력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피했습니다.그런데도 돌아왔을때 보면 하나님께서 거기 교회를 목양할 수 있는 은혜의 종들을 예비하고 있지요.그래서 장로들을 세워서 교회를 든든히 했습니다. 성령이 친히 임하셔서 자기백성과 함께 하십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보살필 수 있도록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신실한 종들을 예비하셨으니 교회는 그런 방법으로 점점 더 서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렇게 해서 그가 쭉 설립했던 교회를 돌아보고 그가 처음 출발했던 안디옥교회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온 교회가 함께 기뻐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교회가 이 소식을 들었을 뿐아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증거되게 하심으로 이제는 예루살렘교회외 이방인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교회 이방인으로 설립된 그의 교회를 건설하는 문제들을 여기 16장부터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까지가 한 단락이 되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 은혜를 입히신 분도 이분이십니다. 물론 서양 선교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증거되었지만 하나님은 침으로 자기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이 세상에 처움 복음이 증거되었을 때 복음을 따라 살면 가족으로 부터도 배제됩니다.여자들은 머리 깍여서 쫒겨나는 식이지요. 완전히 그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그의 종들을 세우셔서 그의 교회가 그의 종들을 통해서 양육을 받을 수 있도록 친히 성령께서 역사하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이것이 많은 부작용도 있습니다만 다른 이방세계에까지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이만큼 성장시켰습니다. 이것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주님오시도록까지 세계가 이 복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붙드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환란 중에 있어도 교회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에서 자기 평강으로 해서는 옳은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바로 이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 복음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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