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13:1-3

찬미예수님 2025. 5. 29. 08:14

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13:1-3

 

9장에서 보면 바울을 이방인에게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의 종으로 택하신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행하신 일들이 10,11장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10장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머리요 사도들의 대표자로 있는 베드로를 통해서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보내시고 그가 주 예수를 증거 할 때 그가 증거 한 주님이 살아계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친히 깨끗케 했던 것처럼 이방인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깨끗케 하심으로 이제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깨끗케 하신 사실을 베드로를 통해서 행사하셨고 그리고 이 사실을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와서 예루살렘 교회에 증거 함으로 그 교회에 이방인에게도 성령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감사하게 함으로 이제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복음이 천하 만민에게 증거 된 그런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을 예비하시고 그리고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에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을 부으셔서 이방인을 받으심을 확증하시고 그리고 그 뒤에 보면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는데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아직 사도가 바울이 복음 증거 하러 이방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통해서 이방 땅에 그의 교회를 세우시고 있는 사실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일하셔서 정상적으로 전개되는 방식은 사도들을 통해서 그의 은혜의 일을 확증하는 것이어서 예루살렘 교회가 바로 그 일을 확인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바나바를 보냈고 그리고 거기서 바나바가 하나님이 이방인을 위해서 예비한 사울을 불러서 바로 이방 땅에 설립된 교회를 가르침으로 거기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교회가 정상적인 방식으로 선교사를 파견한 것은 아니어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이미 이방 땅에 교회를 세우고 있는 사실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될수록 원수의 나라도 그 발작이 심해서 처음 예루살렘 핍박 당시에는 이방 땅에 근거를 둔 유대인들이 많이 핍박을 당하는 식이었는데 여기 볼 것 같으면 본격적으로 사도들에게까지 칼이 와서 야고보가 죽었고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옥중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참으로 풍전등화처럼 되었고 아무런 의지 자가 없을 만큼 그 지도자들이 죽었고 다시는 석방되지 못할 깊은 감옥에 갇혔으니 참으로 교회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뿐이지요.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셔서 야고보는 죽음을 통해서 생명 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고 베드로를 악인의 권세에서 해방시킴을 통해서 원수의 칼들을 무력하게 했고 그렇게 해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모든 소원을 다 허사가 되게 했고 그의 복음의 권세로 세상을 정복할 사실을 베드로를 해방시킴을 통해서 나타내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결단코 매이는 법이 없고 원수의 권세가 강할수록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권능으로 그의 교회와 함께 하셔서 인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여기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의 해방이나 바벨론의 풀무불이나 사자 굴에서 건져낸 사실에서도 악인의 권세가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그의 교회를 붙들고 계시고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만왕의 왕이셔서 이 세상의 권세가 그를 대적하지 못할 사실을 12장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원수의 세력이 이방 땅까지 확대되어서 그 당시 자유도시인 두로와 시돈지방에서 그가 신적인 권능으로 행사했을 때 하나님께서 마치 느부갓네살 임금을 짐승처럼 되게 했듯이 헤롯을 쳐서 죽임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하고 계시고 이처럼 큰 핍박 중에서 원수는 그 권세가 꺾어졌을 뿐 아니라 이방 땅에 전파된 복음을 따라 구원받은 이방인이 이제는 자기들을 멸시했던 유대인을 사랑을 따라 공급하고 유대인들도 자기들이 멸시해서 함께 먹고 마시지 않았던 이방인들을 자기 형제로 받아서 궁핍한 중에도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짐으로 여기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거기 까지가 12장의 내용이지요. 그러니까 마치 돌이 호수에 떨어지면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 나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일이 씨앗에서 싹으로 큰 나무로 자라는 것처럼 같은 은혜의 일이 더 밝은 빛 가운데서 확실히 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이제 13장에는 바로 이 하나님의 은혜의 일이 이방 땅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15장까지고, 이제 그 일이 더 넓은 영역으로 땅 끝까지 전파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16장 이하의 일입니다. 그래서 13장에는 예루살렘 교회가 종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방 땅에 설립된 안디옥 교회가 이제 선교사를 보내고 있고 그래서 베드로가 그렇게 봐서는 이방 땅이 되겠지요. 말하자면 사마리아는 귀신들렸다 할 정도이니까 거기서 마술쟁이 시몬을 정죄하므로 그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성령께서 친히 자기 백성에게 권능으로 임하셔서 해방시킨 것이고 이제 하나님께서 이방 땅에 보내신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훼방하는 유대인의 거짓선지자의 눈을 멀게 함으로 어둠에 쌓인 세상을 빛으로 인도하는 그런 역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처럼 세상에 하나님께서 구원의 빛으로 보내셔서 바로 그런 역사를 했어도 세상의 빛이 되어서 세상을 빛으로 인도해야할 유대인들은 자기 의에 치우쳐서 그 복음의 도를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방 땅의 유력자들을 선동해서 복음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을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회당에서 복음을 들었고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으로 경건한 무리들이 거기 있어서 택한 백성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을 따라 크게 기뻐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회당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한 구약백성인 유대인과 그리고 흩어진 유대인들을 통해 구원의 빛으로 조명을 받은 경건한 이방인들이 거기 있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되었어도 그들은 택한 백성은 믿었어도 여전히 자기 의를 따라서 믿지 않고 거역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적으로 우월한 백성들 그리고 스스로 도덕적으로 우수하다고 유대인 바리새인들과 연합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의에 빠져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했던 것처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방 땅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이적을 행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회복의 권능이 거기 역사했어도 이방인들은 바로 바나바와 바울을 신으로 제사하려고 했고 그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나중에 안디옥에서 쫓아온 무리들과 연합해서 바울을 쳐서 죽였습니다. 물론 죽은 줄 알고 갔기 때문에 그들의 의미로는 죽었습니다. 죽인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서 같은 방식으로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은 믿었고 그들이 그들의 주님께서 핍박을 받고 복음을 전했던 바울과 바나바가 핍박을 받은 것처럼 그 복음을 따라 사는 형제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는 많은 환란을 겪어야 될 것이라고 권면했고 그리고 거기 장로들을 택해서 세움으로 이제 유대인과 구별된 새로운 하나님의 언약공동체가 거기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거기 조직교회가 나타났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14장27절 제일 끝에 보면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함께 오래 있으니라’(27-28) 그러니까 여기 1314장의 결론은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셨다. 그것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나타낸 대표적인 성격입니다. 그 일을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깨끗케 하신 증거를 보고 교회에 돌아와서 증거 함으로 교회가 그 은혜의 일을 확증했던 것처럼 바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사실에 대해서 이제 예루살렘 교회가 모였습니다. 그 일을 반대하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 일로 여기 형제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보냈고 그들이 가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증거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하시며 권능으로 증거를 해서 이방인들을 돌이켰든가 은혜의 일을 증거 했기 때문에 사도와 예루살렘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도 거기 바리새파 중에서 열심장이들이 있어서 이방인들이 할례받기 전에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어서 그 일 때문에 갔었는데 거기서 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자기가 10장에서 처음 받았던 하나님께서 고넬료를 깨끗케 하신 사실을 다시 거기서 증언하고 그리고 예루살렘의 대표로서 수고한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약성경을 응하게 하셨는데 다윗의 무너진 장막이 다시 새롭게 건축되었는데 그것은 이방인을 포함한 다윗의 집이요 신령한 다윗의 왕국이 건설되었고 예수는 다윗의 왕권을 땅위에 구현하신 분이라고 증거 했고 그래서 반대자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단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불화하지 않도록 유대인들이 지켰던 전통에 대하여 이방인들이 그런 문제를 좀 주의 깊게 행하도록 몇 가지를 규정했고 사람들이 믿음으로 깨끗케 되는 것이지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확증했고 바로 이 확실한 증거를 이방교회에 와서 다시 증거했을 때 그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 심히 감사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가 한 몸으로 연합된 사실이 예루살렘 총회에서 확증되었고 바로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믿음으로 깨끗케 한 사실이 이제 이방 선교사들을 통해서 증거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증거를 받고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와 야고보의 증거를 통해서 함께 감사함으로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몸 된 증거가 여기 15장까지 해서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이제 16장부터 보면 물론 16장부터 막 시작된 것이 아니지요.15장 끝에 36절부터 시작되고 있지요. 러니까 장으로 나누는 것이 우리 사고력을 흩트러져서는 아니됩니다.앞의 장의 결론은 뒷장의 서론적인 역할 해요. 그래서 이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이방인 중에 세웠던 그런 교회들을 든든히 세우고 그리고 그들이 이전에 세웠던 교회들을 다시 돌아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해서 아시아에서는 복음을 전파하지 말고 유럽으로 가라해서 창세기에서 노아에게 약속했던 바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민족적인 섭리가 이루어지고 있지요.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요 야벳은 셈의 장막에 거함으로 그 장막이 창대케 될 것이어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야벳족속들인 백인들이 셈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앞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해서 그 민족이 창대함으로 하나님의 복음전파가 어떻게 세상을 정복하는가 하는 민족적인 섭리가 16장부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6장부터가 본격적인 이방전도의 출발점이라고 이해하면 좋습니다. 물론 그 앞에 13장에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택하여 세운 그것부터 시작되고 그것을 바울의 1차 선교여행으로 시작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문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 일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이제 그런 의미로 본격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민족적인 봉사적인 질서를 따라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바로 하나님께서 새 인류의 조상으로 세우셨던 노아, 노아의 후손들이 모든 인류의 종족의 기원이 되고 있는데 거기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음의 역사가 세상을 정복할 것인가를 약속했는데 그 역사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16장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16장부터 땅 끝까지 복음이 구체적으로 정복해가고 있는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도행전의 구조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본문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전반적인 문제를 말씀드렸기 때문에 13장의 앞부분을 조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안수하여 보내니라’(13:1-3) 그러니까 하나님의 모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물론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방전도가 시작된 것도 사실입니다. 거기에 이방 땅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와서 함께 하나님 앞에 감사했을 뿐 아니라 바로 그들이 흩어짐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 되었고 그러므로 하나님이 유대인을 세상에 흩음이 세상의 구원이 되도록 섭리하신 일들이 이방 땅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함께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장면에서 나타났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섭리가 더 진행되면서도 본격적인 방식으로 이방 땅에 선교사 그의 복음의 종들을 합당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핍박 중에 섭리적인 방식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구별하셔서 세우셔서 보내신 방식으로는 안디옥 교회가 그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수리아 안디옥 그것은 소아시아 지방과 팔레스타인 지방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요 요충지이지요. 그곳의 교회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보면 선지자들과 교사들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이 임했을 때 그들에게 방언의 은사가 임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각 나라 말로 증거를 했습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선지자들과 교사들의 은사이지요. 그래서 천하만민이 주 예수 안에서 이제 한 몸 된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교회가 설립된 상황아래서는 그 교회의 필수적인 은사 선지자들과 교사들 아직 까지 신약성경이 완결되기 전이기 때문에 바로 주 예수를 증거 하는 선지자들과 교사들, 선지자들은 예언적인 은사를 가진 자들이고 교사들은 복음을 가르치는 은사들을 더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는데 누구 누구인가.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나바는 사도는 아닙니다. 물론 사울은 이방인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도이지요. 그런 사도입니다. 그러나 처음 예루살렘 교회에 임했던 방식으로가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증거 하는 방식을 통해서 이제 교회가 교회로서 성숙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이방인의 가령 온 세계의 모태교회로서 예루살렘에 나타난 은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제 천하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이방인의 선교기지로 안디옥의 은사를 말했을 때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다는 방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방 땅에 설립된 교회는 선지자들도 없습니다. 선지자가 없어요. 신약성경이 완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치는 의미로 교사적 은사가 있는 목사가 직접 교회를 목회하지 않을지라도 신학교에서 목사를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있지요. 지금 신약교회는 선지자들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이방 땅에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의 모태로 안디옥 교회를 말씀하시면서 거기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이 은혜가 세상을 구원하는 은혜입니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을 보면 바나바, 니게르 사람 시므온, 또 여기 보니까 왕족도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자면 노예와 같은 신분에 있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까 유대인과 이방인 높고 낮은 사람 구별이 없이 하나님의 교회가 여기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따로 세우라 하시니’(2)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이 임할 것이고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에 그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일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증거 했고 천하 만민 중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감사함으로 세계적인 구원역사가 거기 나타나 있었지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런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여기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여기 금식은 구약적인 금식이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섬기려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령이 그들에게 명령한 것을 보면 그들이 금식하며 기도한 이유들을 알 수 있습니다.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방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지요. ?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이미 한 형제로 그처럼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제일 처음 사랑의 손을 편 것도 안디옥 교회여요.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으로 구성된 교회는 그 특징이 여기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을 통해서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거기 지도자들을 보면 섞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역사했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이 임하면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 하나님 나라가 땅위에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그들이 기도하면서 간절히 기다렸던 것처럼 여기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접붙혀 졌다는 확신을 그들이 더 가지게 되었고 바로 그것 때문에 그들이 그들과 같은 교회가 세상에 설립되기를 그들이 기도하고 소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구성원이 그렇게 되어 있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서 명령하신 사실을 보면 그들의 기도의 내용을 알 수 있지요. 가령 우리 교회가 말하자면 물론 의식이 없지만 예를 들면 전라도 사람으로만 구성이 되었기 때문에 전라도 경상도의 화목이 무엇인가가 별로 실감이 안날 수가 있지요. 그러나 만일 경상도와 전라도가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는데 우리교회 구성원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고 봅시다. 그러면 아마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만일 경상도에 있는 교회가 전라도 사람이 많이 있는데 광주사태가 일어났다고 들으면 다른 교회보다는 그 교회는 더 실감나게 그 의미를 알 수가 있을 것이어요. 그런 의미로 예루살렘에는 물론 이방인들도 있습니다만 대다수가 유대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그러나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이 여기 하나님의 교회를 가르치는 선지적인 은사를 가지고 같이 나타나 있는 것은 안디옥 교회입니다. 바로 이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보냈었거든요. 그렇게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안다옥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방교회의 선교를 위해서 더 마음깊이 느낄 수가 있는 것이어요. 아마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환란을 통해서 흩으지 않으셨다면 이방선교에 대해 잘 실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은혜를 입힌 베드로까지 고넬료의 집에 갈 때 상당히 머뭇거렸고 그리고 그 은혜를 증거 받은 예루살렘 교회가 다음 15장에서 또 회의를 열어야 할 만큼 그것이 잘 깨뜨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갈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이방인 형제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다가 거짓된 형제들이 왔을 때 그들이 두려워서 피할 정도로 말하자면 그 의식이 쉽게 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이방인을 위해서 선교사를 보낸다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지요. 그리고 흩어져 있을 때까지라도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그것도 이방 땅에 기원을 둔 유대인들이 전도했던 것이지 예루살렘에 기원을 둔 형제들이 가서 전도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흩어져 있을 때도 유대인에게만 먼저 전도했지 이방인에게는 아닙니다. 이제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복음을 받아서 설립된 교회가 안디옥 교회이지요. 바로 그 일을 확인하기 위해서 바나바를 보냈고 바나바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울을 불러서 같이 가르쳤기 때문에 이 교회가 이방선교를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의 내용은 바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이 임하시면 그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는 약속을 믿고 기도했던 것처럼 바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이방구원 그 약속이 그들을 통해서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더 확산될 수 있도록 그들이 그들의 주 하나님께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그리고 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렇게 섬겼다고 이해해야 옳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마치 예루살렘에 성령을 부으셨던 것처럼 바로 그 성령께서 이 교회에 임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시키는 일을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마치 세상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12사도들을 세우셨고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증거 되도록 했던 것처럼 이방선교를 위해서 하나님이 그처럼 따로 세우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12사도는 아닌데 사도적 반열에서 수고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 바나바가 아볼로가 아닌가 해석하고 있지요. 어떻든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쓰신 분은 사울이어도 그 당시 질서를 봐서는 아직도 예루살렘 교회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서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된 바나바가 먼저 머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여기서 왜 두 명을 세웠는가는 모릅니다. 그러나 두 명이 증인 수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세웠다고 말할 수 있지요. 예루살렘에서 12사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를 세우신 것은 12가 구약교회에서 12가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는 신약교회를 세울떄 12사도를 대표로한 예루살렘 교회에 그의 영이 임하신 것은 사실이고 사도들이 이 복음전파의 핵심적인 위치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복음이 세상에 증거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을 보내셨고 그런 방식으로 혹시 둘을 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가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이 안수는 그들이 서로 연합했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을 위해서 그들이 안수했다는 말입니다. 가령 구약에서도 레위인들을 하나님을 봉사하도록 세웠을 때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나타나서 백성의 대표로 와서 그들에게 안수함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직무로 구별해 세웠던 것처럼 바로 그런 일을 위해서 교회가 그들에게 안수했고 그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 하는 약속이 안디옥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었고 그 성취에 따라서 그들이 기도했을 때 이제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신실한 증인들을 불러 세우시고 친히 주님께서 그 종들을 파송하시고 교회가 그 일에 함께 감사하고 연합함으로 이제 땅 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구원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행 13장1-3절의 내용입니다.

아까 처음 15장까지의 의미를 말했기 때문에 여기 13장이 왜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와 그들 중에 누구누구를 성령이 친히 세웠는가 하는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와 관계된 방식으로 해석하면 우리들이 그 의미를 바르게 파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들이 선지자가 없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목사가 있고 또 교회를 봉사하지는 않아도 이 일을 위해서 구별된 직무로 수고하는 신학교 교수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도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복음의 은사로 교회를 가르치는 그런 종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고 교회를 통하지 않고 세상에 복음이 증거 되는 방식이 없습니다. 물론 천주교와 같이 교회가 세상에 구원을 공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가 교회에 주어짐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 되고 방어될 수 있도록 하나님은 하신 것이지요. 그런 의미로 사도행전 시대보다도 교회시대가 더 발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선지자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이 일을 했지만 지금은 성경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가 완결된 책으로 교회에 주어졌고 이 책이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모든 교인에게 열린 책이 되어서 우리들이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는 증인으로 세상에 보내심을 입었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어서 우리의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처럼 하도록 하셨고 어떤 특별한 직무자들을 통해서 이 일을 하도록 한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 안에 더 깊이 진행된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이 사실을 알 것 같으면 우리 같은 죄인 본래 어둠아래 있었고 우상이 끄는 대로 갔고 하나님의 원수로 있었던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한 것을 알 것 같으면 우리들도 그것을 행해야 옳습니다. 지금 세계가 열려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은 자기 통합을 위해서 이처럼 열리고 있지만 하나님은 이런 열린 일을 통해서 로마의 평화가 당시 복음으로 땅 끝 곧 로마제국 전역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로마 통치권의 평화 밑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처럼 지금 세계적인 평화의 무드는 하나님의 복음 전파를 위해서 우리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이 일을 알 것 같으면 우리들도 물론 구약처럼 금식해야 공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합당한 은사자들을 주신 것 같으면 지금은 이런 선지자들이 아니지만 언어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들 선교적으로 마음이 뜨거운 사람들을 세우신 것 같으면 우리들이 그 일을 위해서 합심하여 기도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지금 마치 안디옥 교회가 금식하며 그 일을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이 우리들까지 임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공산주의 손에서 구출하고 교회의 타락여부는 놔두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회가 설립되는 방식으로 이처럼 복음의 빛 가운데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알 것 같으면 우리들도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할 책임이 한국교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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