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12장
10,11장에서는 하나님게서 이방인을 한 성령을 마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부르심을 인치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도의 대표자인 베드로에게 환상을 통해서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끝났음을 부정한 음식을 잡아 먹도록 하는 계시를 통해서 알리셨고 그리고 그가 고넬료의 집에서 주 예수의 은혜를 증거했을때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가 바로 고넬료 가정에 같은 방식으로 임했기 때문에 모든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은 받은 줄을 알았다고 그가 고백하고 주 예수께서 깨끗케 한 자를 더럽다고 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그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서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하나가 됨이 그처럼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 왔을때 예루살렘에 있는 여러 성도들이 그가 이방인들과 교제함에 대해 비방했을때 그가 하나님께서 보이셨던 환상을 말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어떻게 고넬료의 가정에 부으셨는가를 말함으로 이제 유대인 교회도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한 몸의 교제로 받으셨다는 사실을 믿어지도록 증거했습니다.그래서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감사했다고 11:18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하나님의 구원섭리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지으시고 천하만민의 하나님으로 계셨을때 아담이 범죄함으로 온 인류는 죽었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진실하심을 따라서 일부를 구별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백성으로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켰을때 그것이 아브라함 때 와서는 이제는 아브라함을 머리로한 새로운 구원의 빛이 나타났고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나님으로 나타나서 그때부터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전혀 구별된 실체로 있었습니다. 세상나라식으로 구별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만 하나님 나라요 나머지는 하나님도 없고 약속도 없고 소망도 없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끄는대로 우상섬기는 가운데 있고 진노 가운데 있고 그런의미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은 전혀 구별된 백성입니다.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어서 여기보면 다른 사마리아 교회가 은혜를 입었을때는 사도들이 대표자를 파송하여 그 일이 간단히 마무리되고 있는데도 여기서는 예루살렘 교회 앞에서 사도가 그 사실을 증거함으로 그 사실이 확증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그래서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아브라함을 머리로한 신령한 백성으로 신령한 종족으로 하나가 된 사실이 여기 10,11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그처럼 죄악을 끝내셨기 때문입니다.그 이전에는 예수가 땅에 계셨을때까지라도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보내셨고 이방인의 길로 보낸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했었으나 그가 자기 백성의 죄를 다 끝내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성령을 새 생명으로 보내셨기 때문에 이제 그를 믿는 천하만민의 교회가 구성되고 사도들을 통해서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교회로 새롭게 들어오는 구원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바로 그 증거를 여기 11: 19절 부터 끝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를 통해서 이방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 왔는가 하는 사실을 교회 앞에서 확증이 되었습니다.그런데도 그때는 대개는 아직까지 이방인의 전도가 대대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왜 핍박을 받아서 흩어진 유대인들 물론 그들의 출신지는 이방인입니다. 그들의 종족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어도 출신은 이방인인데 그들이 주 예수를 믿고 핍박을 통해서 흩어졌을 때까지라도 처음에는 주로 유대인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향해 전도했지만 나중에 헬라인 여러명도 안디옥에 이르러서는 헬라인들도 여러명 예수를 믿었습니다. 20절을 보시요. 그러니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은혜의 일이 이제는 안디옥 지방에서 이처럼 열매를 맺고 있었고 이 사실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는 모 교회로서 거기에 대표자를 보냈습니다.그저 감독하기 위해서 보낸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 교회에 합당하게 보냄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도들 보다도 사도적 반열에서 수고한 바나바 였습니다.물론 그는 12사도라는 의미로 사도는 아니지만 사도적 사명에 그는 일하고 있어요.왜냐하면 그는 그 출신지가 구브로 섬 출신이고 그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바로 그런 일에는 바나바가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바나바가 갔고 그가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 있는 사람이어서 그의 증거로 큰 무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왔고 그들은 주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다 기뻐했고 유대인의 율법아래서 고통당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바나바가 수고해서 많은 무리를 모았을 뿐아니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아와서 거기 안디옥에서 함께 1년을 가르쳤고 그렇게 해서 참 하나님의 말씀이 크게 흥왕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그때부터 이제 이방인 중에서 교회는 뚜렸한 새로운 인류로 구별되었고 그때 예수당이라 예수믿는 자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교회가 특징있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랬을 뿐 아니라 처음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부자들의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구제를 통해 가난한 자가 부족함이 없도록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왜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모일 뿐아니라 곧 한 몸에 참여함으로 한 몸의 교제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여서 새 인류여서 그때 대대적인 흉년이 들었을때 자기들을 멸시했던 유대인 형제들을 위해서 이방인들이 많은 재물을 보냄으로 그렇게 해서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 지고 그것도 특별히 예루살렘 교회안에서 이루어진 공동체 보다도 이방인이 유대인을 위해서 봉사하는 복음의 열매가 거기 나타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께서 로마교회를 가기를 원했습니다.왜? 로마가 그 당시 제국의 수도여서 이제 로마교회의 수고를 통해서 소아시아 지방이 아니라 스페인 지방 까지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을때 그것은 바울이 어서 빨리 로마교회에 가기를 소망했습니다.그런데도 그는 바로 이 부조의 일 이방인 형제들이 가난한 유대인 형제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이 일을 마치고 가기를 원했는데 그것은 보통 다른 의미의 구제가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었다는 사랑의 확증이 거기 있어서 이방인들이 그들이 그 당시 로마제국에 임한 큰 흉년 때문에 고난이 극심한데도 오히려 그들의 가난 때문에 가난한 형제들을 더욱 깊이 이해했고 그 가난 때문에 더욱 풍성한 헌금을 했을뿐아니라 유대인들도 그들의 교만을 버리고 이방인들이 보낸 사랑의 구제품을 감사함으로 받음으로 참으로 한 몸된 교회가 거기 나타나도록 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울이 로마교회에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그것은 복음의 확증의 의미로 중요한 것입니다.왜냐하면 보이는 바 형제 끼리는 사랑하지 않고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요 그런의미로 이방인과 유대인의 하나됨은 바로 바로 바울이 구제하는 행위에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기록한 이유도 문맥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은 호수에 돌맹이가 떨어지면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거의 같은 방식이 그런의미로 확대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처음 씨를 뿌리면 씨앗안에 전 생명이 있습니다.그러면서도 그 씨가 발아되면 더 완전한 생명이 있고 더 자라게 되면 더 완전한 생명이 있고 그것은 같은 생명인데도 충만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방식으로 예루살렘에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가 여기 행 11장에 이방인 까지라도 확실한 열매로 확장되고 있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이처럼 교회가 확대되었을때 어둠의 나라는 자기 때가 얼마남지 않은 줄을 알고 여인의 후손들을 핍박하려고 바다 모래 끝에 섰다고 행 12장에 증거한 것처럼 원수들의 핍박도 그처럼 강력한 것입니다. 교회에 핍박이 없는 이유는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고 참으로 어두운 세상에 구원의 빛을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세상이 교회를 핍박하지 않은 이유입니다.다른 것이 없습니다.여기 이처럼 교회가 확대되었을때 핍박을 말하자면 이전에는 제사장들 그리고 성전의 봉사하는 무리들이 핍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핍박이 아니라 왕의 핍박으로 제국의 핍박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땅의 임금은 헤롯왕인데 이 헤롯은 예수나셨을때 헤롯이 아니고 헤롯 아그립바 1세라 해서 그의 손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왕으로 있었습니다.그래서 왕의 핍박을 통해서 몇 사람을 죽였고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거기 처음 사도들 중에 순교자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 이하에는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둔 사실을 알 수 있지요.그러니까 지금 교회는 대단한 위기를 당했습니다. 물론 그런 위기는 여기서만 당한 것이 아니고 행 5장 3장 4장에도 나오고 있지요.처음에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를 증거하지 말라고 매질하여 보냈습니다. 그 다음에도 성전에서 병든자를 고치고 증거했을때 잡아 가두었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 옥문을 열고 그들을 끄집어 내셨지요.그리고 성전에서 이 생명의 도를 증거하라고 말씀하고 있지요.(5:19) 그때도 이제 막 태어난 교회가 그들의 대표자들이 그들의 주를 죽였던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게 되고 그 옥에 갇혔으니 그것은 참으로 교회의 위기입니다.그러나 주님은 땅에서 살아계셔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셨던 주님은 죽으시고 멀리 사라지신 분이 아니라 그 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바로 자기 교회와 함께 계신 분이셔서 옥 중에 갇힌 그의 종들을 해방시키시고 바로 그가 자기 은혜의 빛을 비추도록 계시하셨던 그의 성전 가운데서 성전에서 말씀하시는 참되신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그처럼 사도들을 그쪽으로 인도하셨고 거기서도 분명히 교회는 위기였습니다. 그래도 칼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제 헤롯임금 왕권이 제사장과 그런 권세들과 결탁해서 완전히 국가적인 핍박을 가하고 있었고 여러 사람이 죽었을 뿐아니라 특별히 여기 사도 중에 야고보가 죽었고 그리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대단한 위기를 당한 것이고 그런의미로 국가적인 재앙이 나타났으니 바로 하나님 나라를 대항하는 원수의 권세가 그런의미로 극악하게 나타났다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왜냐하면 항상 하나님의 일이 나타난 것은 언제든지 언약의 땅인 예루살렘에서 그 이스라엘 지경에서 진행되는 것이고 그것이 범세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 헤롯왕이 핍박하는 사실은 그런의미로 전반적으로 원수의 나라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그런 관점에서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는 아주 위기 상황에 빠졌어요.그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구원해 내시고 그리고 그 교회를 핍박했던 헤롯을 죽임으로 결단코 원수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를 승리하지 못하고 주님은 살아 계셔서 자기 교회를 보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매이지 않고 세상을 정복한다는 사실을 여기 12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흐름이어요. 그래서 옥중에 갇혀 있는데 천사들을 통해서 베드로를 건져 냈습니다.이제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이제 그런의미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방 땅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왜? 그의 백성이 제사장 뿐아니라 왕도 함께 하나님 나라를 거절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적인 반역이어서 이제 그런의미로 베드로가 이방땅으로 피신하는 지경에 있고 그때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가 맡아서 기둥같은 종으로 교회를 봉사하고 있는 시대로 예루살렘 교회는 접어들고 그리고 베드로는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런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조금 더 설명하면서 그 순서를 밟아 갑시다. 여기 핍박을 받은 사람은 베드로와 야고보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요한의 일은 직접적으로 거론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사도행전에서 하는 말은 땅에 계신 주님이 바로 하늘보좌에 취임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그런의미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통해서 일하셨어도 일하신 분은 사도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기때문에 사도들의 모든 행적을 기록하려는 의미로 사도행전이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떻게 그의 영으로 사도들을 통해서 그의 교회를 세우시며 그의 원수들을 정복하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 그런의미로 필요한 사람들만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여기 처음 나온 사람들은 야고보가 죽었고 그 다음 베드로가 나오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마 20장에 보면 요한과 야고보가 그 어머니아 함께 예수께 나와서 내 아들들을 주님의 나라에서 좌우편에 앉게 해 주십시요 하고 그의 어머니가 청했지요. 그때 제자들이 신경질이 났습니다. 왜 인척관계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도 있지요.그래서 신경질이 났어요. 왜 예수가 왕이 되면 서로 국무총리가 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가 하신 말씀이 너희들이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그랬을때 그들이 그 말의 의미도 모르고 예 마실 수 있나이다 하고 담대하게 대답을 했습니다.물론 의미는 알겠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그때 예수께서 너희들이 내 잔을 마실 수 있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은 것은 내가 정하는 일이 아니라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예비하리라고 말씀했고 참으로 너희가 세상에서 크기를 원하거든 어린아이 같이 작은 자가 되어라.그런 방식으로 마 20장에서 교훈하고 있지요.그때 예수께서 너희들이 내 잔을 마실 수 있으려니와 그러기때문에 이처럼 예수를 위해서 그가 걸었던 고난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택한 백성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기교회로 인도하시는 복된 길인 사실을 알 수 있고 그런의미로 야고보가 제일 처음 순교자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야고보 베드로 이 세 사람은 예수 생전에도 사도중의 특별한 직무를 위해서 죽은자를 살리실 때도 이 세사람을 데리고 갔었고 그리고 변화산에 오르실때도 이 세 사람을 데리고 올라 갔었고 그런의미로 이 세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야고보는 첫 순교자로 베드로는 열쇠를 가진자로 항상 개척적인 정신으로 열쇠를 가진자로 수고하는 일에 있어서 베드로의 위치가 특이하고 그리고 요한은 마지막 사도시대를 마무리한 존재로 특이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야고보가 처음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이터럼 교회가 핍박을 받았을때 마치 빌라도가 유대인의 환심을 사서 정치하기 위해서 예수를 죽였던 것처럼 이제 헤롯임금도 이 일을 유대인들이 기뻐했기 때문에 야고보만 죽인 것이 아니라 총 소위 대장인 베드로를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물론 예수도 유월절에 잡아 갇히셨고 죽으셨습니다.그랬는데 여기 교회도 빌라도와 헤롯 그리고 대제사장의 무리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일들이 진행되었던 것처럼 바로 여기서도 그의 손자가 헤롯가문의 왕 헤롯이 여기서도 교회를 파멸시키려고 했습니다.유대인들이 이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심지어 로마에서도 교회가 핍박을 받았을때 화형시킬 때 장작을 나른 사람들은 유대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했기 때문에 소위 사도들의 총 머리인 베드로를 잡아서 옥에 가두었고 그래도 절기를 거룩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에 유월절이 지나면 잡아 죽이려고 그처럼 깊은 옥에 가두었습니다. 여기 군사 넷씩인 네 패에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그러니까 아주 깊은 옥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여기 있는 사실만 해도 중 죄수들은 죄수들에게 간수들과 함께 쇠사슬을 채워서 같이 묶어 두고 한 것을 보니까 대단히 그를 지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교회는 위기에 빠집니다.그 동안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이제 칼을 가지고 있는 권세자가 핍박을 했고 그래서 유대인과 로마의 행정권을 대표하는 헤롯이 이 일을 관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의 주를 죽였던 핍박이 교회안에 임했고 그런의미로 교회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더구나 신실한 종인 야고보는 죽었고 이제 베드로는 옥 중에 갇혔으니 참으로 교회가 의지할 아무런 것이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그래서 교회는 하나님 앞에 기도할 뿐 다른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처럼 베드로를 깊이 가두었는데 홀연히 주의 사자가 옥 중에 나타났고 이것은 하늘의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에 하늘의 거룩한 빛이 비추어서 참으로 해처럼 광명한 빛이 옥 중에 가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어떻든 천사들을 만났을때 사도들 까지라도 그들을 보고는 가령 요한 계시록을 보면 요한 사도도 죽은 것처럼 구약에서 에스겔 선지자도 죽은 자처럼 그런 방면들을 볼 때 그리고 신약에서도 목자들도 두려워서 떨었고 하는 것을 볼때 물론 우리들이 예수와 함께 연합함으로 천사들도 우리를 수종드는 종으로 서겠지만 어떻든 죄없는 하늘의 실제들이 얼마나 거룩하고 그 하늘의 거룩한 위엄이 나타나는가를 알 수가 있지요. 그래서 베드로는 깊이 잠들었습니다.아마 이제 할 일 다했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있겠지요.그래서 잠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변화산에 올라갔을때 잠들었던 이유들도 아마 그런 낙심 영적인 낙심등의 이유로 잠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주님을 따르면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보이질 않습니다. 대단한 열기로 예수를 영접하고 있지만 예수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런 일도 아니고 또 성전에서 행한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그들이 변화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실 때도 그들이 피곤해서 졸고 있지요.우리 몸의 구조라는 것이 밥먹어서 힘나는 것이 아니고 아무리 밥 먹어도 부부끼리 싸우면 힘이 쭉 빠져 버리는 것이어요.그러니까 부부끼리는 사랑안하면 못사는 것이고 서로 자유롭게 삽시다 하면 힘이 나는 것 같아도 못사는 것이 부부입니다.서로 매여야 사는 것이고 그래서 사람의 생명은 물론 우리 육체와 영혼이 결합되어서 사람으로 인격이지만 그 생명의 본질적인 요소는 우리 마음 영혼에 있는 것이어요.그러기때문에 우리가 신령한 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와 함께 교제하면 우리 육체의 피곤을 모를만큼 우리가 생명의 충만함을 느낍니다.그러나 그런 일이 없으면 우리들이 피곤하고 실제적으로 우리들이 일하려고 했을때는 피곤을 못 느끼지만 일이 끝났다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하나님과 교제함이 생명의 본질이어서 그런의미로 우리들이 어떤 영혼의 활동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면 잠도 오고 피곤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잤을 것으로 이해를 하면 좋겟습니다.고린도 후서 1장을 보아도 바울도 고린도에 갇혔을때 마치 죽을 줄로 알았습니다.물론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갇혔을때 거기보면 찬양하고 있지요. 바울은 찬양하고 베드로는 잠을 자고 있지요.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바울은 옥 중에 갇혀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을 통해서는 옷장이 죽지않고 구원을 받았지만 베드로는 잠을 자버려서 옥을 지킨 사람들이 구원을 못받고 죽었다.그러니까 베드로는 신앙이 적었고 바울은 컸다.그러니까 어려울 때 기도하면 결과가 좋지만 기도안하고 낙심하면 결과는 하나님께서 좋게 해 주시려니와 자기 자신은 어떻게 몰라도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말하자면 밖에 있는 교회들이 간절히 기도합니다.그래도 베드로가 살아 나왔을때 믿지 못할 만큼 완잔히 포기하고 있습니다.물론 그런의미로 그들의 믿음이 적다고 말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었어요.야고보는 죽었습니다.그리고 그 손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없어요.단지 하나님 앞에 교회를 지키도록 구할 뿐 아무 것도 없습니다.그가 살아 나왔을때 교회는 믿지 못할 만큼 아주 심각한 상황이지요.그래서 베드로도 옥중에서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의 옆구리를 쳤지요.아마 흔들어도 안 일어나니까 꾹꾹 쑤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깊이 잠이 들었어요.그때 천사가 그로 옷을 입고 띠를 띠고 신을 들메고 겉옷을 입고 그러니까 허겁지겁 도망친 것이 아니지요.아주 정장하고 나온 식이지요.그랬을때 너무도 급작스런 상황이라 자기도 살 줄도 믿고 있지 않아요.그래서 베드로도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그러고 어떨결에 나온 식입니다. 그래서 첫째 파수와 둘째 파수를 지나 아마 네명씩 네 패에 맡겼다 하는 것을 보니까 아마 죄수와 함께 사슬을 메고 있는 팀들,그리고 내옥문을 지키고 있는 팀들,바깥옥문을 지키고 있는 팀들,성문을 지키고 있는 팀들같이 복잡하게 가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모든 파숫군들을 다 지나고 한 거리를 지났습니다.그때 천사가 떠났습니다.그때 베드로가 깨달았어요.그래서 하나님께서 헤롯과 유대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자기를 벗어나게 한 사실을 그때에야 바른 정신으로 깨달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뒤로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바로 이곳이 초대교회가 모였던 곳이지요. 그래서 거기 많은 형제들이 있고 교회가 모였기 때문에 바로 그곳으로 갔습니다.가서 노크하니까 계집종이 나왔는데 베드로의 소리를 듣고 너무 반갑고 놀라서 문도 열지 않고 보고를 했는데 기도하는 교회는 그것이 참말인 줄 알지 못하고 아마 베드로가 죽어서 그의 천사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릴려고 왔는가 보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시대까지 천사가 활동하고 있는 시대이거든요.계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대여요.지금도 천사가 주님의 교회를 봉사하고 자기 백성들을 지키지만 계시로 완성되기 전에는 천사들이 계시의 중계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천사가 나타났는가 보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론 그의 천사가 나타났다 하니까 일명 당 한 천사가 있는가 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왜? 엘리사를 지켰을때 도단에 천사의 무리가 군대로 있지 않아요.물론 그것은 이제 원수의 나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니까 그렇게 되겠지만 어떤 때는 천사의 무리로 어떤 때는 천사 개인으로 어떤 때는 국가를 지키는 데도 페르시아의 천사가 있고 그리스를 위한 천사가 있고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한 천사가 있고 미가엘이 있고 다니엘서는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그러기때문에 그 영적인 조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하나님께서 자기 교회를 지키시고 천사들은 택함받는 그의 백성들을 지키는 종으로 수고한다는 사실만 아시면 되겠습니다. 그래도 문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나가 보니 정말 베드로가 와 있어요.너무 놀랬습니다.베드로 자신도 석방되어 나오면서도 얼떨결에 충격적이고 교회도 그처럼 놀랬습니다.그래서 베드로가 놀란 교회를 잠잠케 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사들을 통해서 자기를 인도하셨는가를 증거하고 이 말을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전하라 하고 그는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러니까 그는 유대땅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만큼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베드로도 이방전도에 나선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나중에 로마에 가서 로마에서 순교했지만 그리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신실한 종으로 변화를 받고 그리고 종으로 교회를 봉사했습니다.그러기때문에 여기 같은 사실 옥중에서 해방된 사실은 사도행전 5장에도 있고 17장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해방된 목표는 다른 것이 회당에 서서 생명의 도를 전하라고 5장에서는 말씀했고 여기서는 베드로가 야고보와 그의 형제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아마 이런 사람들은 감시당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처음 5장에서는 국가적인 핍박이 아니지요.물론 산헤드린 공회가 종교적으로는 국가를 대표하고 있지만 그들은 로마 정치 밑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의미로 국가적인 핍박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요.언약백성의 공동체는 핍박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이스라엘 국가적인 조직 비록 그들이 로마 정권 밑에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세움받은 자가 이런 핍박함을 통해서 그 나라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고 그런의미로 천하만민에게 이 복음의 도가 증거된다는 사실로 교회를 석방시킨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하겠습니다.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내려가서 거하니라’(18-19) 이스라엘 땅에서 아마 베드로의 행적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를 지켰던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죽었습니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 하나 저희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20상) 두로와 시돈 지방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도시로서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도 두로와 시돈에 대해서 나옵니다만 말하자면 그들의 자리를 하늘에 펴겠느냐 하는 방식으로 대단히 높아진 도시입니다. 무역을 통해서 페니키아인들의 무역이 융성했는데 무역업을 통해서 부를 많이 쌓았고 많은 제국의 변동이 있었을때 까지라도 여기 두로와 시돈 지방은 쉽게 정복되지 않았습니다.물론 알렉산더 대왕 때에 정복되고 두로가 말하자면 말갛게 황무지가 되는 방식으로 쓰러짐을 당헸지만 대단히 요새지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번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두로와 시돈은 그런 도시적인 부 때문에 자유도시로서 헤롯 안티바스의 지도를 받지 않는 그런 자유도시로 있었기 때문에 알력관계가 있었습니다.물론 국가적으로는 로마제국 밑에 있어도 그런 통치질서가 달랐기 때문에 알력관계가 있었고 더구나 이 임금으로 되어있는 헤롯은 할아버지 헤롯대왕과 함께 로마에 가 있으면서 거기서 교육을 받았는데 나중에 이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정치적인 사건 때문에 옥에 갇혔고 그래서 그런의미로 전적이 별로 좋지 않은 왕입니다.나중에 그 지위가 회복되어서 자기 할아버지 왕의자리에 앉았지만 그런 저런 관계로 그 두로와 시돈 지방에 대해서는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아려움을 겪었습니다.그런다 하더라도 전쟁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안되어요.그런데 이 두로와 시돈은 해안지방에 있어도 그 곳은 산악이고 그래서 곡식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나는 것으로 먹고 있기 때문에 여기보면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맡은 신하 불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20하) 말하자면 로비활동을 한 것이지요.아마 공물수출 금지를 한 것입니다.두로와 시돈지방에는 팔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침소맡은 신하 비서 가운데서도 상당한 급이 있는 비서지요.이 사람에게 뇌물을 주었는지 친해서 헤롯 아그립바 1세 대왕이 날을 택해서 이 도시를 방문하고 거기서 말하자면 군대 사열도 하고 연설도 하도록 날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황금 빛 나는 왕복을 입고 나와서 그 백성들 앞에 연설했을때 그들이 아부를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하늘에서 내려온 임금이라는 방식으로 그를 추앙해서 그를 신적인 지위로 올렸습니다.그런 것은 이방나라에서는 항상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왕들은 하나님이 권세를 주신 것으로 보통 이해를 했고 그래서 우리 단군도 하늘에서 내려와서 어떻게 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아요. 더구나 이방나라는 그 왕권이 신의 통치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요.그 당시는 로마 황제도 하나님이 큰 대제사장으로 바로 하나님으로 백성에게 군림했을 때입니다. 그러기때문에 바로 두로와 시돈의 생존권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이 헤롯 아그립바 1세에 대해서 그 도시사람들이 이렇게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고 만세를 부르고 추앙하고 한 일은 있을 수가 있는 일이지요. 그때 이 아그립바 1세가 비록 로마 정권밑에서 봉사하는 왕이어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세운 임금이면 그는 이스라엘의 율법을 알고 있는 임금이요.그러기때문에 이스라엘의 환심을 사려고 바로 이스라엘의 종교를 파괴한다고 믿었던 그리스도의 교회를 파괴하려고 칼을 들었던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면 하나님 만 욍이시요 왕은 그런 자리에 앉지 않음을 알았어야 했고 또 그렇게 고백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두로와 시돈사람들이 그를 크게 환영하고 그를 하나님의 자리로 올리고 그를 신과 같은 동열에 세웠을때 그가 기분이 좋아가지고 그 모든 환호를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벌레로 그를 먹게했고 그 때문에 나중에 그가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살이 썩다시피 하다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4-25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예루살렘에 돌아 오니라’ 아까도 처음 설명했지만 원수는 죽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해서 바로 이 사도들을 통해서 증거된 하나님의 말씀은 누굽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 태초 부터 계신 말씀 그 말씀이 하나님 보좌우편에 취임하셨기 때문에 바로 땅위에 있는 그의 교회가 그 말씀을 증거함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있는 것이고 바로 그 은혜의 일들이 어디까지입니까? 이방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신했던 일이 예루살렘에서 기쁘게 형제의 선물로 열납되고 그리고 거기서 신실한 조사 한 명 요한을 데리고 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13장 부터 이방인 전도가 시작되고 있지요. 그러니까 그들이 돌아왔다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방인의 사랑의 봉사가 유대인에게서 기쁨으로 열납이 되었고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요 한 몸인 사실이 증거되고 바로 그런 교회가 13장을 통해서 더 강력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구약에서도 있는 일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애굽의 권세에서 자기 백성들을 해방시킬때도 애굽의 모든 군대의 세력을 홍해에 장사지냈습니다.또 바벨론에 자기 백성을 버렸을 때 까지라도 하나님께서 곧 그것이 바벨론에 구원의 빛이 비칠 수 있도록 신실한 종들을 사자굴에서 건져내시고 7배나 뜨거운 풀무불 가운데서 구원하셨을 뿐아니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임금의 권세가 교만해서 자기를 신적인 권세로 높였을때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의 지혜를 거두시고 그로 짐승이 되게 하시고 7년을 하늘 이슬에 젖고 들의 풀을 뜯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기간이 지났을때 그의 총명을 다시 회복해서 그의 교만이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지 못하고 진행시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 왕의 권세를 제한시켰지요.그때 그 왕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요 그는 그 하나님을 거절하고 이 큰 제국은 내가 건설했다는 교만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총명을 거둠으로 짐승처럼 되었던 것이지요.그러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분만 참으로 하늘의 하나님이시요 세상임금은 그런 권세가 없음을 하나님의 교회가 극심한 핍박과 사자굴속에 들어가는 핍박중에 있었을때 하나님께서 그 임금을 낮추심을 통해서 바로 그의 왕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지금 여기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 이스라엘 그리고 언약의 땅인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동일하게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그리고 국가적인 위치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언약의 땅을 통치하고 있기 대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이 거기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어도 바로 그 하나님을 거절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가 그 대표자가 원수의 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방식으로 되었을때 바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셨던 주님께서 바로 원수를 죽임을 통해서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보전하고 계십니다. 사도들을 죽였어도 아무런 병이 들지 않했습니다.더구나 그러니 교회는 말못하면 위험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왕의 권세가 자유도시에 가지 미쳐서 이처럼 그 권세가 확대되고 있을때 참으로 하나님의 교회는 발 붙일 곳이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두로와 시돈은 어떻든 이방 땅이 아닙니까? 그 지경 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런의미로 하나님의 교회는 발붙일 곳이 없게 되었어요.원수의 나라가 그렇게 권세있게 확장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겠지요.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왕적인 자리로 그가 이처럼 확장시켰을때 하나님이 그를 충이 먹어 죽게 하심으로 왕으로서 영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가장 비천한 죽음을 통해서 그를 낮추시고 하나님의 교회가 더 이상 파괴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교회를 지킵니다. 예수 오시기 전에는 사단이 공중의 권세잡은 자로서 이 모든 세상 사람들의 정신과 그 권세를 다 주관을 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물건 앞에 절함으로 그들의 비참한 상태를 다 드러냈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사악한 일로 여겨 칼을 들고 정죄를 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구원의 빛은 이스라엘 에서만 깜빡거리고 있어서 그들만 물건 앞에서 절하지 않고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구별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약속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구원약속이 예수안에서 이루어져서 예수께서 땅위에서 죽으셨어도 그는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 죽으셨고 그가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 죄를 다 끝내셨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 완전한 순종을 통해서 완전한 생명의 자리인 하나님 보좌우편에 나아가셨고 그래서 원수는 하나님의 교회를 지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왕이 승리했기 때문에 원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리 바로 이 세상을 지배하는 영역에서 떨어졌고 그리고 다시는 하나님의 교회를 참소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구원의 약속이 그의 성령을 부으심으로 우리안에 선물되었습니다. 바로 그 주님께서 세상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도 분명히 원수의 나라를 징계하심을 그 왕들을 낮추심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었는데 여기서 보면 그 왕을 죽임을 통해서 확실한 그의 왕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승리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결단코 원수의 쇠사슬에 매이지 않고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셨고 어둠의 권세에서 해방시켜서 우리로 다시는 먹고 마심의 종이 되지 않고 하나님을 섬김으로 세상을 봉사할 수 있도록 존귀한 존재로 부르셨습니다.주님은 교회를 통해서 영원히 승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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