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10:1-11:18

찬미예수님 2025. 5. 8. 07:11

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10:1-11:18

 

여기 10장에서는 고넬료가 하나님의 교회로 세례받음으로 들어온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해서 예루살렘 형제들에게 베드로가 증거함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구원베푼 사실을 빋고 그의 형제로 받아들인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 고넬료가 처음 이방인으로서 교회에 들어온 것이 아니고 사도행전의 기사만 보더라도 구스 내시가 먼저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기 10장의 특징은 이제 예루살렘 교회를 부르신 그 은혜가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이방인들도 포함된 은혜로 빌립의 전도에서 나타나 있지만 이제 교회가 공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 곧 이방인의 구원에 봉사할 수 있는 길에 들어 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있는 사실의 기록이 10장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은 중요한 것이어서 거듭 거듭 똑같은 말로 반복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고넬료가 우원받은 것은 우리들이 역대하 6장을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32-33절에 보면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속하지 않는 이방인에게 대해서도 저희가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위하여 먼 거리에서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짓는데로 이르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 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여기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을때 또 잘못했던 것에 대해서만 기도한 것이 아니라 먼 이방인들이 이 전을 향하여 그의 소원을 아뢰면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세상의 하나님 천지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이제 여기서 신령한 방식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물론 여기 고넬료는 유대인으로 귀화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땅위에 유대인들을 두신 이유는 천하만민으로 유대인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그들로 하나님을 봉사하는 백성으로 세우셨고 특별히 그들을 이방땅에 흩으셨을 때 까지라도 그들의 흩어짐이 세상의 구원이 되는 방식으로 또 그들을 낮추심이 그들의 구원이 되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방인 고넬료가 그가 유대인으로서 귀화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래도 유대인의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믿고 그 하나님을 따라서 율법을 따라서 살고 그리고 다른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경건한 의를 나타냄으로 많은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으로 되어 있고 그의 일가와 가까운 사람들도 이 사람의 영광을 받고 있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이 사람이 유대인이 된 뒤로 이런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 아닌데도 하나님은 고넬료와 함께 하셔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땅위에 섰을때 그것은 유대인으로 구성된 교회가 아니라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교회를 설립하실 때 그런데도 하나님은 유대인의 구주로 중보자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비 예루살렘에 성령을 부으셔서 그 곳에 교회를 세우셨고 거기에 사도를 정식으로 하나님의 영이 친히 인도하시고 또 천사를 고넬료에게 보내셔서 바로 이 베드로를 통해서 구원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또 베드로를 통해서 세례를 받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일이어도 교회가 그 일에 함께 참여하고 정식 세례를 베풀므로 교회로 받아들임을 통해서 이제 이방인이 유대인과 한 몸된 교회를 이룬다는 증거를 여기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내가 가면 너희들은 이보다 더 큰 일도 행하리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가 하늘 아버지께 가심을 통해서 그의 성령을 부으심으로 이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복음이 증거된 것이 아니라 천하만민에게 복음이 증거되는 그 시발점을 여기 10장에서 주님이 공적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성령을 부으시고 그리고 베드로가 복음을 증거할 때 그 주님께서 하늘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그 능력의 주님께서 또 그가 세상에 생명과 사망을 주는 하나님이신 사실을 그의 영을 친히 고넬료의 가정에 부으시고 오순절에 임했던 그 역사로 하나님의 크신 일들을 증거케 하심으로 베드로로 그 증인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그 백성을 깨끗케 하셔서 성령이 임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의 거처로 구별된 백성들을 베드로가 부정타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로 세례를 베풀므로 주 예수의 교회로 정식으로 받아 들였고 그리고 그 집에서 함께 교제했었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을때 아직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비방하는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친히 성령으로 자기를 인도하셨고 또 천사를 고넬료에게 보내서 이 사실을 이루셨으며 또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이 친히 정결케 된 자기 백성에게 임하셨는가 하는 사실을 증거함으로 이제 교회가 이방인이 하나님의 교회된 사실에 대해 감사하고 이제 이방인도 한 몸된 한 성령을 마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여기 10장과 1118절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이셨습니다. 또 성령께서 친히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그랬을 뿐아니라 또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증거를 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지금도 이런 것은 아니라고 여러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오셨을때만 신약계시 시대가 아니라 예수께서 이루신 일들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영으로 사도들을 통해서 증거케 하심으로 하나님이 아들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일이 세상에 설명되고 증거됨으로 계시가 완성되는 것이어서 사도시대 까지가 계시시대요 그러기때문에 계시의 중보로서 찬사들의 활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 이제 사도시대 이후로는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해도 성령이 친히 이런 계시적인 음성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습니다.물론 기도하고 이런 저런 것을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그런 일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심으로 나의 연약한 것을 홀로 감사조항은 될 수 있을 지 몰라도 그것으로 교회를 가르치는 그런 공적인 교훈의 방식으로 써서는 아니됩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인도하셨을 때에 보자기에 여러 짐승들 베드로가 보았을 때는 먹지 못할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놓고 잡아 먹으라고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고 베드로가 거절했을때 하나님께서 친히 해석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도 그가 이 환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을때 이방인을 보내시고 그렇게 해서 이방인의 구원의 도구로 베드로를 쓰시고 바로 그런 일을 통해서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환상의 의미를 알고 심부름온 이방인들을 자기집에 들여 잠자게 하고 가서 이런 일을 이루었습니다. 나중에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베드로가 이방인으로서 예수믿는 형제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11장에서 베드로를 책망했던 형제들이겠지요.왜냐하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이방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이스라엘의 백성이 되고 그렇게 해야만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지 그냥 이방인으로 있어서는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줄로 그런 형제들이 왔을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을 두려워 해서 자리를 피했고 또 사도행전의 기사로 봐서는 제일로 마음이 넓어서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도 손이 클 뿐아니라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는 바울을 교제하고 또 바울을 선교현장으로 인도한 사람이 바나바인데 그처럼 마음이 넓은 바나바 까지라도 열심쟁이 유대인들을 두려워 해서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베드로를 면책했지요.우리들은 다 죄인이어서 예수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때문에 누구든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예수믿음은 헛것이고 예수의 죽음도 헛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유대인들도 다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다 죄인이기 때문에 베드로의 행동이 그런 복음의 도리를 부정하는 식이 되는 것이어서 그 복음의 보전을 위해서 바울이 면책했고 그 사실을 성경에 기록함으로 이방인의 구원이 마치 유대인의 허락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구원의 사실인 것을 이렇게 보전이 되도록 말씀하고 있지요. 그때 보면 한참 뒤의 일인데 베드로가 그렇게 의식한 것을 보면 유대인의 의식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간격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간격의 유가 아닙니다.흑인 백인의 유가 아닙니다.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구별하시고 그렇게 함으로 그들로 세상의 하나님을 봉사하도록 세우셨을때 모든 세상은 어둠의 권세 아래 있었고 그래서 그들과 연합하지 못하도록 구별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구별하는 것은 강력하고 또 몇 천년입니까? 모세때부터 예수때 까지해도 1,500년 정도 되는 것 아니어요.그런 분리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원수는 유대인과 이방인 간격이어요.그것은 하나님이 그런 선을 그었을 뿐아니라 유대인의 민족적인 우월감 우월의식 때문에 그런 것이 더 심화된 것입니다. 어떻든 베드로가 열쇠를 행사하는 자로서 처음 공적으로 이제 하나님의 교회가 공적으로 이방인을 자기 교회에 부르시는 일에 베드로가 쓰임을 받고 있는데도 나중까지 그 도에 확실하게 서 있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간격이 얼마나 큰 줄을 알 수가 있지요. 그래서 베드로에게 하나님게서 친히 역사하시고 도 고넬료의 집에 천사를 보내셔서 그랬어도 복음의 증거는 교회가 하는 것이지 천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 예수께서 어떻게 성령과 권능으로 충만해서 병든자를 고치시고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는가 그리고 그가 부활하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셨는가 하는 사실을 그래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그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 분이어서 그들이 구원을 받고 이 사실들은 구약의 선지자들로 증거한 바라고 베드로가 거기 그렇게 증거하고 있지요. 그래서 베드로가 안수하기 전에 성령께서 친히 그들을 그의 교회로 받으시는 확실한 증어로 성령을 부으셔서 이제 거기서 방언하도록 했습니다.

여기 고넬료의 가정에서는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로 보통 이해하고 여기 어떻든 방언으로 말한 것은 분명히 이해를 합니다. 그것은 왜 처음에는 다른 환상들도 있었는데 그 다음에 사도행전의 기사들은 방언하는 것만 말하고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모습 등은 말하지 않은가 하는 사실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때 바벨탑의 심판을 통해서 어떻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바벨탑의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셈 족속을 구별하시고 거기서 아브라함을 구별했지요. 그때 바벨탑 심판에서 각 나라 언어로 나뉘었고 하나님께서 각 나라로 나누심은 이제는 사람을 머리로한 새 종족을 이루시기 위함인 것이고 그때부터 아브라함은 새 인류의 머리처럼 나타나서 모든 믿는자의 아버지로 거기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아브라함을 부르심은 천하만민으로 아브라함과 같은 각 나라 방언으로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고 그 언약의 뜻을 이아들안에서 이루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수 있도록 함으로 이제 주 예수를 통해서 새 인류를 지으신 증거를 여기 성령을 부으시고 방언하심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기때문에 여기에 나타난 환상들은 처음에는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임했던 방식과 비슷하게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처럼 그런 방식으로 나타났어도 그 다음의 증거들은 그들도 한 성령을 마셔서 한 몸을 이루엇다는 하나됨의 증거는 각 나라 말로 하나됨의 구원의 큰 일을 증거하는 방언의 은사로 증거되지 하나님이 또 다시 임한 것처럼 그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환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기를 보자기에 부정한 짐승을 먹는 일로 나타나 있고 베드로가 그것이 무엇인가 궁리하고 있을때 이방인이 와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베드로가 이미 깨닫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가 레위기를 배웠을때 잘 아는 바지요.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정하고 부정한 것을 말하기 전에 노아 당시에 보아도 정하고 부정한 것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규례를 보아도 율법으로 명령된 것은 시내산이어도 그 이전에 만나를 먹었을때 안식일에 대한 명령이 주어져 있고 또 그 이전에 노아 같은 사람도 7일이면 비둘기를 내 보내고 또 7일이 되면 한 것을 보이서도 안식일의 증거들을 거기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구약에 있는 것이 모세기대때 새롭게 시작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진행된 은혜가 모세시대때 언약적인 방식으로 법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지 모세시대 이전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빛들이 전혀 없었다는 방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기때문에 정하고 부정한 것이 율법의 규례로 주어져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는 부정한 자로 하나님의 진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 규례로 주어지기 전에도 노아 당시에 이미 그런 빛들을 노아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하고 부정한 것을 말한 이유는 모든 것이 다 부정한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를 섬기는 장자로 구별하여 주셨기 때문에 바로 그들의 생명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를 정결케 하셔서 그들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백성들로 종사케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세상사람들은 다 부정하고 하나님과 교제 밖에 있었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교제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의미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정아래 있는 사실은 다 죄 아래 있기 때문에 그렇고 사람이 죄아래 있음을 통해서 만물도 다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모든 세상의 물질도 더럽다고 그런의미로 말할 수가 있지요. 아직 죄가 제거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무 것이나 먹고 마시는 이방인 백성의 삶은 곧 부정한 삶이요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삶이요 하나님께서 다 부정한 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한 것처럼 온 세상에는 사망만이 있는데 그 중에 일부를 구별해서 자기 백성의 생명이 될 수 있도록 음식물을 구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별함이 천하만민을 구원하는 시작인 것처럼 곧 이스라엘을 위해서 구별해준 식물이 곧 만물으 회복시킬 하나님의 약속의 빛이 거기 증거될 수 있도록 하신 것이어요. 그러기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이 다 부정한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한 것처럼 다 사망있는 중에서도 일부를 구별해서 참으로 하나님을 봉사하는 생명의 것으로 이스라엘을 먹인 것은 만물을 그런 의미로 회복시킬 것을 거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먹고 마시는 것이 건강법이 아닙니다.어떻든 성경에서 먹지 말라는 나쁘다는 말이 아니지요. 성경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었다는 말은 교제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제단의 것으로 주셨다. 하나님의 제단은 하나님의 상이어서 제사장이 하나님의 제단에서 먹는 것은 하나님과 한 상에서 먹는 것이어서 그러니 세상에서 그런 존귀한 은혜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초청해서 가면 부패에 들어가서 실컷 먹는 것처럼 먹는 것이 아니지요. 신사노릇 하려고 젓가락으로 몇번 깔짝 깔짝하고 오겠지요.아마 그래도 최고 기분 좋은 것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잔치에 초청되었기 때문이지요.그런 의미로 좋은 것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이요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확실한 표요 증거입니다. 바로 그것을 먹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살고 하나님을 봉사하는 것이요 만일에 하나님이 정하다고 않은 것을 먹으면 그들은 실제적으로 부정한 자가 되고 진 밖으로 쫓겨나고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약속을 그림자적으로 나타낼 뿐아니라 그 약속의 제도안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실제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어요. 그런데도 거기보면 하나님께서 정하다고 구별해 주신 것은 완전한 생명의 회복이 아닙니다.? 생명은 피에 있는 것인데 아직까지 피는 먹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그럴 뿐 아니라 또 그것이 스스로 죽어버리면 그것도 부정합니다. 거기는 아직 하나님의 심판 죄에 대한 심판이 있어서 만일 스스로 죽으면 죽음은 죄 값을 말한 것이어서 거기는 아직 죄에 대한 제거된 것이 아니어서 그것을 먹으면 죄를 먹는 것과 같이 되어서 거룩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직 정하다고 구별해 준 것 까지라도 완전한 생명은 아닙니다. 그래도 어떻든 모든 것이 다 부정한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 있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어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별하시고 또 이스라엘을 위해서 생명의 회복을 약속하시고 일부를 거룩하다고 구별해서 이스라엘이 생명으로 살 수 있도록 그것을 주셨으니 그것은 온 세계를 회복하실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정하다. 하나님께서 정하다고한 것을 네가 더럽다 하지 말라 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보편적인 사죄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이어서 이제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이가 없습니다.다 정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그런의미로 하나님께서 그의 완전한 생명을 세상에 주신 것이요 그런의미로 이제는 그전에는 이런 것을 먹었던 사람이 이방인들이 아닙니까? 정하다고 한 것을 먹었던 사람은 유대인들이요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했는데 부정한 것을 먹는 것은 이방인들이요 부정한 것을 먹는 자는 유대인들이어도 진 밖으로 나가야 하고 그는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었다고 하는 것인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베드로 보고 잡아먹으라고 했으니 이제는 다 정하다는 하나님의 구원약속이 보편적으로 다 성취된 사실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 4장에도 먹고 마시는 문제를 바울 사도께서 가르칠때 혼인하지 말라 무엇을 먹지 말라 한 것은 귀신의 가르침이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선하게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서 거룩해 졌다.그 말씀은 복음의 말씀이 될 것이고 그리고 기도로 거룩해 지니라 하는 말씀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으면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이 성례와 같은 것이어서 그냥 음식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내게 생명을 공급하시는 은혜를 맛보는 것이어요. 그렇게 먹지 않으면 우리는 부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먹는 것은 다 정하다고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시는 것도 다 이런 내용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의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의 거룩함을 보이셨습니다. 바로 이 율법의 제도를 이제 주님게서 새롭게 하심을 통해서 이제는 옛제도의 간격이 다 없어졌습니다. 다 정하다고 했으니 이제는 정하고 부정한 영역이 없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생명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부정한 자요 그 외에 다른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 사실을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시하였던 율법의 빛 가운데서 바로 그 제도를 새롭게 하심으로 베드로에게 증거하시고 베드로가 그 사실을 이제 성령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을 따라 그리고 성령이 이방인을 정결케 하는 현장에 베드로가 하나님의 증인으로 거기 참여함으로 땅위에서 죽었던 주님께서 보좌우편에 취임하셔서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요 그 분이 이방인을 자기 교제에로 부르셨다는 증인으로 바로 이 복음 하나님께서 아들안에서 세상을 깨끗케 했다는 이 복음으로 증인으로 증거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10장과 11장에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고넬료 가정에 베푸신 은혜입니다.

이제 베드로가 열쇠를 가진 자로서 이런 일을 했고 이제 이 은혜로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는 증거가 바로 교회를 통해서 증거되고 이제 어느 누구도 아무런 차이가 없이 주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지체로서 한 성령을 마시도록 그의 교회로 접붇혀 지도록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도록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바로 그와같은 은혜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을 부르셔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시고 교회로 접붙힘을 받게하신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교회가 아니라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주님께서 그의 영으로 우리안에 거하셔서 자기 자신을 증거함으로 교회를 통해서 증거된 복음을 믿을 수 있도록 해서우리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정하고 이방인은 부정하고 그런의식으로 민족적인 우월감으로 차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 까지라도 그런 의식으로 차있는경향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실때 천하만민을 복주시기 위해서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이방인들도 바로 그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이스라엘을 봉사자로 세웠던 것이지 그들만 깨끗하고 이방인들은 부정하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베드로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없습니다. 남자 여자 차이가 업습니다. 사람이 보았을대는 그런 차이가 있으나 하나님께는 그런 차이가 없습니다.이스라엘을 부르심은 하나님을 봉사하고 세상의 제사장 민족으로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부르신 것이고 다른 이유가 아닌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만 거룩하고 이방인들은 부정하다는 방식으로 민족적인 우월감으로 찼습니다. 우리들은 다 죄인이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안에서 바로 그의 영으로 세롭게 된 것이고 그 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기들이 거룩하다고 할지라도 유대인들을 하나님이 유대인들로 두었을때는 그들은 여전히 부정한 자였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쉬지않는 피흘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먹음은 일부만 먹지 온 세상의 생명을 취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일부 먹을 수 있는 것도 참 생명은 제외된 먹음이어서 아직까지 주어지지 않았다는 확실한 저주가 거기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물을 뿌리고 피를 뿌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들은 의로운 줄 알았습니다.물을 뿌리고 피를 뿌림으로 사람이 만든 장막안에 들어간들 그것이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물론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의 은혜여서 그들이 그 약속의 제도안에서 자기들을 부른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도 그들이 땅에서 누리는 구원의 빛은 아직도 저주가 가득한 어두움 가운데서 두렵고 떨림으로 피뿌린 제사 안에서 하나님 앞에 대표자를 통해서 서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스스로 의로운 줄 알았어요.율법은 그들을 의롭게 하는 약속을 보여도 여전히 그들은 부정하고 참으로 그들을 깨끗케 하시는 분은 바로 그 중보적인 제물의 죽음 그 피뿌림안에서 약속되었던 것처럼 참다운 피뿌림이 아니고는 참다운 씻김이 아니고는 아니다는 사실을 여전히 증거하는데도 그들은 오실 분 오셔서 자기들을 온전히 정결케 한 분 앞에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그들은 마음을 양심을 깨끗케 하신다는 믿음으로 서지 못하고 자기의로 서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끝까지 배반했습니다. 주님께서 큰 아들 작은 아들 비유를 들었던 것처럼 그런의미로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의 장자입니다. 장자의 총회여요.그런데 그들이 신약시대 까지라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으로 부르신 복음을 끝까지 거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정신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옛본성 안에도 교회안에도 항상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 사실들을 우리들이 조심해야겠습니다.오늘날 우리들이 정한 것은 주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의 은혜 때문에 그런 것이고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분도 주의 성령이 우리안에 역사하셔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여심으로 된 것이지 우리 자신의 도덕적인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때문에 우리들만 정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분이 천하만민을 부르시고 그렇게 해서 주 예수의 나라가 세상의 나라를 정복하고 그리고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나라를 완성하도록 까지는 그 영이 택한 백성들 안에 역사하시고 자기 백성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 일로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베드로가 증인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나나 여러분이나 그런의미로 실제적인 증인이 아닙니까? 우리들이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고 우리의 연고가 아닌 것을 장알지 않습니까? 바울이 발하기를 구원얻은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게 히려고 자기같은 원수를 세웠다고 하므로 바로 원수된 이방인들을 구원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본으로 그렇게 제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사도행전을 통해서 사도의 증거를 통해서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실이 알 뿐아니라 이 은혜가 우라안에 나타나서 우리같은 죄인들도 이처럼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우리들도 이 사실을 확실히 알고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이 도를 증거함으로 주님께서 택한 백성안에서 증거하실 줄 믿고 이 복음의 도를 증거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도가 천하만민에게 증거되고 세상에 확장되고 그리고 모든 무릎이 주 예수의 이름에 꿇도록 까지 바로 이 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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