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8:1-28
7장 8장은 사도들이 설립한 교회에 어떻게 한 몸의 교제로 그 터가 굳어지며 그리고 주께서 섰던 그 원수의 자리에서 그 교회가 증거하는가 하는 문제를 말씀하고 있는데 특별히 그 교회는 유대인들인데 이방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이 활동한 기사가 7,8장에 나와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역사를 진행시키실때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배교에 대한 심판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열방에 흩으심이 곧 열방에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비추이게 하는 은혜의 방법이었고 바로 그 사실이 여기서 이방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도를 구제하는데 중요한 직책에 그들이 뽑였을 뿐아니라 그렇게 함으로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의 여러가지 알력이 제거되고 하나로 연합되었을 뿐아니라 바로 그들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복음을 증거함으로 9장에서 바울이 나오고 이어서 10장에서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찾아가고 하는 은혜의 일들이 예루살렘 교회안에서 완성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씀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처음 나타난 사건들은 종말론적인 사건의 내용들을 많이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우리들은 여기서 스데반이나 빌립의 어느 개인에 대한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과 빌립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생각하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든 스데반이 돌로 맞아 죽을 때 그가 했던 증거는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증거했고 그리고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고 기도했고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는 기도의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여기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하는 말은 예수께서도 자기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옴을 보리라 하고 자기 자신을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는다 하는 말로 자기의 하나님의 아들됨을 증거를 했었습니다. 이런 말들은 다니엘서 7장 13절 부터 잘 나와 있습니다.‘내가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라’(13-14) 여기보면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는데 그 나라는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나라로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그렇게 말함으로서 유대인들이 자기들만 아브라함의 씨요 모세의 율법이 있으며 이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도다 하는 말을 그가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족장들을 부르신 구원역사에 대해서 쭉 증거했을 뿐아니라 이제 그가 마지막 죽기 전에 한 증거에 있어서 바로 예수께서 하늘 보좌우편에 앉으신 메시야 왕이시요 그 나라가 영원하고 그 나라는 우주적인 나라라고 말함으로 마지막 그의 증거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예언은 시편 110편에 나온 기사이지요.‘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그 머리를 드시리라’(1-7)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 메시야 왕을 자기 우편에 앉히시는데 그는 왕일 뿐아니라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이고 참으로 그의 승리가 우주적인 승리가 되고 그의 백성은 참으로 정결함을 입어 하나님 앞에 헌신하게 되리라 이렇게 메시야 왕에 대한 문제들을 시 110편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하나님 우편에 앉은다. 그가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의 권능을 보았다 하는 말은 이 예언들이 이루어진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기가 이제까지 증거헸던 것의 결론으로서 말하자면 유대인들이 땅에서 말하는 성소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는 것을 말하는 방식이 아니고 그들이 죽였던 예수 모세가 예언했던 예수 수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 분이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죽였어도 그는 하나님 나라 보좌우편에 계신 하나님 나라 왕이요 그는 참으로 한 몸에 제사장과 왕권을 가진 분으로 우주적인 그 나라가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졌다고 스데반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기도할 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지요.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앞에 기도했는데 바로 그들이 죽인 예수가 주 그들의 하나님이시라고 그는 그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원수들 앞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구약에서 의인들의 죽음은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는 기도는 없습니다.아벨이 죽었을때도 그 피가 땅에서 호소하느니라 그처럼 말하고 있고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예수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피다.아벨의 피는 복수를 호소하는 피겠지요.땅에서 그의 피가 호소하느리라. 그 피 때문에 네가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고 그렇게 가인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24장에 보면 요아스 임금이 있습니다.나이 어렸을때 아달랴 입니까? 그의 할머니가 반란을 일으켜서 왕자들이 다 죽었을때에 그의 할머니가 핏덩어리 된 것을 제사장의 부인이 길렀습니다.나이 8세가 되어서 왕에 취임했고 그때 대대적인 다윗집에 청결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인 대제사장인 여호야달이 죽은 뒤로 그의 신하들은 쫓아서 물론 그 신하들은 그 할머니 밑에서 관료노릇했던 사람들이겠지요.그런 사람말을 좇아서 다시 우상을 끌어그렸지요. 선지자를 보내서 권고해도 듣지 않고 마지막에 여호야다 요아스의 은인 대제사장의 아들 사가랴에게 임하셔서 왕에게 증거하게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신하들과 왕이 그를 하나님과 제단 사이 여호와의 뜰에서 그를 돌려 쳐서 죽였습니다. 그때 스가랴가 죽으면서 여호와는 신원하시고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신약의 순교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모든 의인들의 죽음은 그들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러기때문에 오히려 그들의 죽음은 그들을 죽였던 사람들의 죄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의인들을 죽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에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의인을 죽였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피여서 그의 죽음은 백성들에게 용서를 가져오는 피지요.바로 하나님의 아들안에서 세상의 구원이 이르렀고 아들의 영을 바로 스데반에게 부으셨기 때문에 스데반도 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는 사실을 믿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용서가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고는 이런 기도는 불가능한 기도이지요. 이것이 스데반의 신앙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 아들이 뿌린 피 아벨의 피보더 더 나은 피의 증거를 받은 사람들은 마땅히 원수까지 사랑하는 이런 사랑으로 간구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때 이 죽음에 대해서 사울이 특별히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물론 이것은 9장에 사울의 기사를 도입하는 방법이 되겠습니다만 사울도 다소 그러니까 이방땅에서 태어난 사람이지요.헬라문화권의 사람이지요.날때 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졌다고 할 정도로 그 땅에서도 유력한 사람입니다. 그러기때문에 그가 자기들의 회당에 왔다가 스데반이 한 증거를 듣고 혹시 모르지요. 사울이 대제사장에게 고소했는지도 모르지요.어떻든 스데반을 죽일 때 사울이 증인으로 거기 있었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스데반을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는 방식으로 있었다고 22장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여기서 스데반을 죽이는데 사울이 유력하게 앞장 서 있습니다. 그럴 뿐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서 사도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로 다 흩어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왜 사도들은 피하지 않았는지 우리들은 장 알수 없습니다. 혹 사도들이 피했다 할지라도 사도들이 사도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우리들은 꼭 원수가 쫓아오면 그 자리에 서서 죽어야만 용감하고 피하면 비굴하고 그런 것은 아니지요.물론 그것이 비굴한 경우가 많은 경우 있겠지만 사도들은 피하지 않았고 그리고 다른 모든 성도들은 흩어졌다고 그러는데 여기 흩어진 사도들은 아마 이방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 헬라파 유대인들이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가 설립되어 있어도 오순절 사도들을 통해서 허다한 많은 사람들이 믿었을때 사도행전의 증거는 15개 나라를 말하면서 거기서 모여든 모든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하나님의 큰 구원의 일을 듣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들이 한가지 더 생각해야할 사실은 사도들도 성전의 여러가지 제도에 그대로 참여했습니다. 기도시간이 되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고 바울에게도 사도행전 15장에 사도회가 모였을때 바울에게 권면하기를 그도 성전의 제도를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서 유대인들의 감정이 격해지지 않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본토 유대인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성전의 제도에 대해서 아직까지 벗어난 상태는 아닙니다.하나님께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워 버리기 전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옛 제도의 그림자 가운데서 신약교회가 여전히 그처럼 겹쳐져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그들은 성전의 제도에 대해서 스데반처럼 그렇게 확고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심지어 베드로까지라도 그가 이방인에게 제일 먼저 길을 연 사람인데도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안디옥에서 이방인 형제와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다가 바로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이 왔을때 그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자리를 피했다가 바울에게 복음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 해서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여기 사도외에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했을때 우리들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흩어진 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스데반과 흩어진 유대인들의 전도활동을 말했을때 바로 처음 믿음으로 택함받았던 사람 중에 빌립 그도 헬라파 유대인이지요.그의 행적을 말하고 있는데서도 우리가 추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떻든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났고 그 핍박의 우두머리는 사울이었는데 그때 사도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참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받은 죽음을 죽었을때 그의 제자들도 다 도망쳤어도 그래도 경건한 사람들은 울고 안식일에 그를 장사지냈던 것처럼 이스라엘 공동체가 스데반을 죄인처럼 성 밖으로 내쳐서 돌로 쳐서 죽였어도 그래도 경건한 무리들은 핍박을 두려워 아니 하고 그와 연합해서 그를 위하여 울었다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핍박은 심해도 하나님의 교회핵심인 사도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있고 헬라파 유대인들이 대대적인 핍박의 대상이 되어서 그들이 흩어졌어도 신실한 그의 형제들은 그들을 위해서 울었습니다. 이런 대대적인 핍박이 있어도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파괴되는 법이 없습니다.왜냐하면 교회의 주인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보좌우편에 취임하셔서 스데반이 주님의 자리에 서서 원수 앞에서 그를 증거하고 돌에 맞아 죽었을때 신실하신 주님께서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보좌에 앉아 계실 뿐아니라 자기의 증인을 인정하는 자기의 증인을 붙드시고 하늘처소에서 인정하는 분으로 하나님과 천사 앞에서 그를 시인하는 신실한 보혜사로서 바로 자기 증인과 함께 일어서 있는 사실을 볼때 하나님의 교회는 결단코 파괴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원수의 핍박 까지라도 하나님의 교회의 확장과 그의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은 인도하시는 것이어서 여기 4절 부터 보면 오히려 그 핍박을 통해서 교회가 어떻게 1장 8절에서 주님께서 처음 명령했던 것처럼 유대와 사마리아에 하나님의 교회가 확장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핍박없는 시대가 없습니다. 오히려 핍박없는 시대는 교회가 교회로서 빛을 발하지 않는 시대요 심지어 여기서도 보면 스데반이 땅에 있는 성전의 의미를 더 밝히고 우주적인 성전으로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우편에 거하시는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증거했을때 그들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을 전할새’ 그러니까 이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바르게 깨닫도 아 우리 전도할러 가자 이렇게 하고 흩어졌던 것이 아니라 그들은 처음에 보면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 알력이 생길만큼 같은 아브라함의 혈통인데도 가나안 땅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삶을 유지했던 히브리파 유대인과 이방땅에서 태어나 살았던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에 초대교회안에 알력이 생길 정도로 그들에게는 그런의식이 강합니다. 하나님께서 오히려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흩으셨을때 오히려 그 흩으심을 통해서 자기나라를 확장시키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고을로도 이방인에게로도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살아계셨을 동안에는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유대인의 구주로 그가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셔서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된 관계 죄의 관계를 끊으시고 보좌우편에 취임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왕으로 취임하셨을때 그의 교회는 유대인 뿐아니라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교회가 여기서 부터 지금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5-8) 여기 주님께서 바로 예수께서 친히 그의 말씀하심을 그의 권능으로 증거했던 것처럼 또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그의 권능으로 증거했던 것처럼 여기 빌립의 복음전파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셔서 더러운 귀신들이 쫓겨나고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빌립이 증거하는 증거에 대해서 단순히 이적을 따라서 복음을 증거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보다 더 크고 본질적인 것이어서 하나님 나라가 친히 그 성에 임하심입니다. 친히 그 성에 임하셨어요.단순한 누구 누구는 이렇다 하는 가르침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바로 그들을 친히 치료하심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그들 중에 임했습니다.왜냐하면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했던 메시야 곧 하나님 나라 왕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분이 죽으셨어도 그 분의 영을 땅위에 부으셔서 그 나라가 땅위에 임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만 그 이적을 행했을 뿐아니라 예수의 대리자 사도들만 예수의 가르침과 행하심을 그들의 가르침과 행함에서 반복적인 방식으로 증거했을 뿐아니라 바로 빌립은 사도가 아닙니다.그래도 사도가 세운 사도적 교회가 바로 그와같은 권능을 시행하심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그 땅에 임했음을 확증하고 있고 그것이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들린 소식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그들을 치료하시고 그들 중에 임하신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입니다.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권능이 그 땅에 임하신 것입니다. 치료의 은혜가 친히 그들 중에 주어진 것이어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다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서 여기 시몬에 대해서 쭉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제 시몬에 대한 기사는 뒤로 돌리고 14절 부터 말하고 시몬에 대한 기사를 한꺼번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14-15) 여기서 사도들은 사도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22장에서도 보면 절수를 잘못 적었네요. 다음에 확인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함을 듣고 만 사도들을 대표자로 보낸 것이 아니라 또 달리 섬지방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보음을 전했을때 그때도 사도들이 그 대표를 보내서 그 사실을 확인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기 다른데서는 사도들이 안수했다는 사실이 에베소교회 12제자들이 있는데 이 제자들에 대해서 바울이 너희들이 성령을 받았는가 를 묻고 (19장) 그리고 안수하고 기도한 사실이 있고 그리고 다른데서 이렇게 기도하고 안수했다는 기사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도들을 보내매 사도들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안수를 했지요. 한 사람에게도 아직 성령이 내린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이 임했다는 ‘안수’의 의미 또 여기서 임하신 성령의 임하심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안수하는 것은 구약에서 하나됨의 의미입니다.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 부터 그렇습니다.그러기때문에 다른데서 안수한다는 말은 에베소 교회에 있고 다른데서는 없는데 여기 사마리아 교회에서는 특별히 그렇게 해요.왜냐하면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들은 서로 상충하지 않을 만큼 원수시 되어 있고 그리고 귀신들렸다 하는 말이 곧 사마리아 사람 이런 저런 차이가 있습니다만 예루살렘의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가 여기서 다시 방언의 은사들을 통해서 반복됨으로 그들을 성령의 교회 성령이 임하신 주 예수의 교회로 그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확증을 사도들을 통해서 친히 성령이 증거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들이 말하자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를 안 믿었다고 해석할 수 없습니다. 단지 성령께서 친히 은사적인 방식으로 임하심을 통해서 사도적 교회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하나님의 교회에 그들도 한 성령을 마셨다는 증거를 사도들을 통해서 그렇게 주신 것으로 이해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성령받는 일과 시몬의 일을 쭉 붙여서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데서는 복음을 전했을때 이런 시몬같은 사람은 없고 어떤 귀신들린 사람이 점하는 점쟁이 귀신의 역사는 이야기를 해도 이 사마리아 성처럼 이런 사람의 이야기는 없습니다.여기서는 시몬이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시몬의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이 범죄해서 다윗의 왕조가 10지파가 여로보함의 인도로 나뉘었을때 그때부터 시작해서 여로보암 뒤에 아합의 아비가 사마리아 성에 수로를 세웠는데 아합때 거기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당을 세우고 그렇게 함으로 바알의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마치 다윗 왕국에 하나님의 전이 지어짐으로 다윗 왕국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처럼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이 지어짐으로 북 이스라엘은 바알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선지자들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과 새로운00 구원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지요.왜냐하면 바알의 나라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때부터 엘리야를 선두로한 선지자시대가 시작된 것이지요. 그때부터 나뉘어서 나중에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잡혀간 뒤로 앗수르의 이방 통치 정책은 그들이 정복한 나라를 옮겨서 없애 버리는 것인데 그때 귀인들은 다 끌려가고 거기 천한 사람만 남았지요 그리고 다른 땅의 사람들이 그 곳으로 이사를 왔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재앙이 있고 그래서 이 땅에 본래부터신이 있었는데 그 신을 섬기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재앙이 내리는 것이니까 거기 잡혀간 사람들 중에 제사장들을 조금 보내서 이 땅 신을 조금 섬기게 해달라 해서 잡혀간 제사장을 몇명 보냈지요. 그때부터 여호와도 섬기고 자기 땅에서 가져온 신도 섬기더라 했는데 결국에는 그들은 잘못되기는 잘못되었어도 이스라엘화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중에 중간시대 당시에는 그리심산에다 성전을 세우고 모세시대때 6지파는 그리심산에 서서 축복의 율법에 대해 아멘하고 6지파는 에발산에 서서 저주에 대한 율법을 선포하면 아멘하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심산에 처음 들어왔을때 거기 제단이 있었지요. 그래서 그들이 들어왔을때 거기에 성전을 짓고 그때부터는 더 말하자면 적대관계가 심화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마리아 성 여인에게 예수께서 말했을때도 너희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섬기고 우리는 아는 것을 섬긴다. 왜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그렇게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지요.그렇게 그 적대관계가 심합니다. 그런데도 사마리아 성 여인도 메시야가 오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겠습니다고 메시야를 소망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비록 이장에서 많은 사람이 왔고 혼혈족 인종적으로 혼족이 되고 종교적으로도 여러 혼합종교가 들어왔어도 그들의 기초는 모세오경이 그들의 경전이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모세가 예언했던 그 선지자를 그들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죄많은 여인도 메시야가 누군가를 알고 있지 않아요.그러기때문에 여기 사마리아 성에도 큰 능력이 있었는데 여기 시몬은 마술을 행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난 것처럼 마치 메시야처럼 그 땅에 큰 권세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수오시기 전에 유대땅에도 거짓 메시야가 많이 있었지요.거기 사마리아 땅에 거짓 메시야가 있는 식입니다. 물론 구약에서는 아마 바알과 비교가 되겠지요.바알도 이스라엘의 승리를 말했지요.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향해서 그가 계획을 진행시켰던 것처럼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손에 그가 죽었던 것처럼 여기보면 하나님 나라가 임했을때 사마리아 성에는 마치 시몬이라는 사람이 큰 마술을 행해서 크도다 하나님의 능력이여 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 임했다는 방식으로 메시야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빌립이 복음을 전파하고 또 하나님께서 큰 표적과 능력을 빌립을 통해서 행했기 때문에 말하자면 시몬이 놀라고 그도 빌립을 따라 다녔습니다.자기가 행한 것은 마술인데 보니까 빌립이 행한 것은 전혀 자기가 행한 것과 달라서 그도 깜짝 놀랬고 그도 따라 다녔어도 말하자면 권능을 행하는 일에 감동을 받았어도 그 마음이 참으로 그가 이전에 메시야로 사마리아 성에서 군림했던 그런 사악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권능에 새롭게 복종하는 사람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사도들이 와서 이제 빌립만 이렇게 능력을 행한 것이 아니라 안수했을때 안수받은 사마리아 교인들이 다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의 그런 계시적인 은사들을 받아서 표적적인 활동들을 했을때 그도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도 돈주고 자기도 그런 은사를 받아서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일을 행해서 군림하기를 원했지요. 그때 여기 베드로가 하는 말이 그렇지요.여기서 항상 베드로가 앞장 서는 이유들은 사도들의 대표자로 왔어도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했을때 그것은 베드로가 그런의미로 특이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보면 베드로가 열쇠적인 기능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래서 여기 베드로가 하는 걸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 바 되었다.’(20-21) 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구브로 섬에 들어가서 총독에게 증거할 때는 그때도 술사가 나타나서 총둑을 잊지 못하도록 했지요.그때 바울이 그 사람의 눈을 엘루마입니까? 그 사람의 눈을 멀게 해서 그를 더듬게 했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권능이 거기 임했었지요. 여기서도 보면 그런의미로 시몬은 조금 독특한 위치라는 말입니다.이방땅에 있는 단순한 점쟁이 귀신들린 자 정도가 아니라 그는 크도다 하나님의 능력이여 하는 방식으로 사마리아 사람에게 추앙되는 사람입니다.그도 빌립이 전한 복음의 권세에 복종하는 것 같 았어도 그는 그보다 더 큰 권능을 행함에 놀랬을뿐 그는 마음으로 새롭게 된 사람은 아닌데 이제 사도들이 와서 안수하매 성령이 안수받은 사람들 중에 임했을때 그는 자기도 그런 권능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빌립이 성령이 충만하지 아니해서 능력이 충만하지 아니해서 빌립이 안수하면 성령이 임하지 아니하고 또 베드로와 요한을 성령이 충만하니까 안수하니까 성령은 임하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또 빌립은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안수하지 말라고 했다거나 그런 말은 아닙니다. 구약때 안수례는 하나됨의 표상이어서 말하자면 어떤 특수한 직무에 있는 사람은 그 직무적인 방식으로 안수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는 제물에 안수함으로 안수는 그런의미로 하나됨의 보편적인 그런 예식들이어요. 그러기때문에 빌립은 사도가 아니기 때문에 안수를 못했다거나 또 성령이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가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 오니까 됐는가 그렇게 해석을 해서는 안됩니다. 빌립은 사도가 아닙니다.여기에 사도들을 통해 설립받은 교회가 이처럼 주님의 고난에 참여해서 뽁음을 크게 증거해도 이처럼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이지 빌립이 아닙니다.그러기때문에 사도들을 통해서 바로 성령이 임하신 그리스도의 교회로 사마리아 교회도 함께 접붙힘을 받은 것이지요.함께 한 성령을 마신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 능력에 대해서 시몬이 돈주고 사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의 임하심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 중에 함께하심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는 무엇인가 권능을 행함을 통해서 어떤 이적적인 마력으로 사람위에 군림라는 그런 거짓됨은 알고 있어도 하나님이 그들 중에 임하심 하나님의 통치가 친히 그들 중에 실제로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그는 바르게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그는 돈 주고 사면 그도 그 권능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해서 그도 군림할 것처럼 이해를 했지요.그래서 이런 권능은 하나님 나라에 상관이 없다고 그것은 악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베드로가 그렇게 판결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의 판결은 곧 하나님의 교회에 임하신 그리스도의 영의 판결이어서 마치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죽임으로 처음 여호와의 교회가 아론의 두 아들들을 죽임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제도를 성결케 했던 것처럼 영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교회를 아론의 두 아들들을 죽임으로 성결케 했던 것처럼 여기보면 사마리아에 하나님의 나라가 설립되었을때 여기 거짓된 능력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고 계십니다.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사람되심을 통해서 그들을 치료하시는 은혜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 중에 계셔서 자기 백성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찬양케 하는 능력의 통치이지 무엇인가 큰 일을 행해서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은 일종의 능력은 능력이어요.그것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중에 거하는 회복의 능력들은 아닙니다. 그러기때문에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이 없다고 그렇게 시몬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말하자면 사마리아 성의 거짓된 메시야 거짓된 통치는 끝나고 그의 권세로 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해방되어서 하나님이 사람되셔서 땅위에 임하신 권능의 나라로 그 은혜의 나라로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것을 여기서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시몬은 사마리아 사람을 지배하는 그런 능력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마치 바로의 술사들의 거짓이적을 모세가 행한 이적인 뱀이 다 삼킴으로 심판했던 것처럼 그리고 발람의 모든 일과 권능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통해서 그를 죽였던 것처럼 그리고 귀신들을 쫓아내고 하나님께서 해방시켰던 것처럼 여기 사마리아에서는 거짓된 메시야 거짓된 능력을 심판하심으로 이제 사마리아 사람으로 참으로 그들 중에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로 부를 수 있도록 그의 영을 통해서 그리고 그들의 사도들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이 여기 25절까지의 내용이어요. 그러니까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혈육을 입으신 주님께서 친히 보좌우편에 계셔서 그의 권능으로 사마리아에 임하셔서 그들을 친히 치료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자기 몸으로 생명에로 접붇히고 있는 것이고 이제는 그들을 지배했던 거짓된 권능은 다시는 그들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도 그리스도의 나라요 이제는 형식만 하나님 나라이면서도 거짓된 영에 끌렸던 그런 나라는 아닙니다. 알지도 못하고 너희들은 예배한다고 한 것처럼 그렇게 거짓된 통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약속하신 약속대로 그들에게도 메시야가 임했기 때문입니다.그것이 여기 25절까지의 증거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 일하시든지 그의 영을 교회에 부으시고 그의 영의 증거를 통해서 친히 그가 인격적으로 말씀을 듣는 그의 백성에게 임하십니다. 그러기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단순한 놀라운 사건이 아니라 증거된 그 분이 친히 그들의 삶의 질서에 임했다는 하나님의 통치의 권능이 그들 중에 임했다는 곧 새로운 역사시대가 임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어요.그것은 어둠의 권세로 부터 해방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리스도의 나라로 그의 영을 부으심으로 부르신 것이고 이제 사마리아에도 바로 큰 구원이 그렇게 임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전에는 어둠의 권세 아래에서 생명없는 우상이 끄는대로 우리들도 그렇게 어둡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도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 앞에 의의 종 생명의 종이 될 수 있도록 그처럼 임명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도행전처럼 그처럼 계시적인 은사는 없습니다.그러나 가장 큰 권능이 무엇입니까? 어둠의 통치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순종하는 능력 곧 그것이 죄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순종함으로 형제를 사람함으로 봉사하는 능력이어서 세상의 추앙을 받는 능력과는 다릅니다. 우리들은 지금도 시몬처럼 이것 저것 행해서 사람위에 군림하는 의식들이 많고 현제교회에서 장로를 투표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런 비리들이 너무나도 많고 보편화된 비밀이어요.그들이 종교적인 직무을 통해서 하나님을 봉사하는 것 같아도 그런 방식은 하나님이 사람되셔서 우리 비천한 죄인들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신 그 은혜의 권능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누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이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고 죄인이 순종하는 능력 이전에는 나를 추구했던 죄인이 이제는 나를 위해 몸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따라서 형제를 섬김이 곧 참으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고 그것은 돈주고 값주고 사서 다른 사람에게 군림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 일에 있어서도 우리들이 깊이 살피고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교회사에서는 성직매매가 타락의 극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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