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8:26-40

찬미예수님 2025. 4. 24. 08:13

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8:26-40

 

여기 8장에는 빌립의 행적이 기록이 되었는데 그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그리고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 맡은 자인 내시에게 전도한 두 기사가 있습니다. 전 시간에 사마리아 전도에 있어서는 그들은 혈통적으로는 혼족이고 종교적으로도 혼합되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 머물렀고 그리고 모세오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고 그런 방식으로 그들도 어떻든 유대인과 같이 메시야적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남편 5명이 있는 사마리아 여인도 메시야 그가 오시면 이 모든 것을 가르쳐 알게 할 것입니다고 말한 것을 볼 때 그들이 소망한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런다 할지라도 마치 산헤드린 공회가 어둠의 왕국이 된 방식으로 진행된 것처럼 객관적인 하나님 나라를 봉사하는 의미로는 우리들은 아는 것을 예배하고 너희들은 모르는 것을 예배한다.구원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고 말했던 것처럼 유대인이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여기 시몬이 마술을 행했을때 그를 크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추앙하고 그를 따랐다고 말함으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수종하는 그런 은혜의 권능 아래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으로 스스로 마술을 행하고 다른 사람위에 군림하는 방식으로 이교화되어 있는데 다른 이교와는 달리 귀신에게 접붇힌 자를 쫓아내지 않고 여기서는 마술을 행하는 시몬을 정죄하는 기사를 통해서 이는 마치 적그리스도처럼 그는 메시야처럼 사마리아에서 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를 정죄하고 사마리아 성도 한 성령을 마셔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하는 사실을 여기 8장에서 증거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시몬이 어떤 사람인가를 많이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전도에 있어서는 사도들이 했던 것이 아니라 사도족 전파는 예루살렘에서 그런의미로 완성된 것이고 사도들이 세웠던 교회 특별히 이방땅에 기원을 두고 있던 유대인 빌립이 이처럼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했고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사도들을 보냈고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으로 인치셔서 이제 너희들도 한 성령을 마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인침으로 이제 에루살렘 뿐아니라 사마리아에 까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24절에 주의 사자가~그 길은 광야라그러니까 천사가 빌립을 광야로 보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주의 사자라 되어 있고 또 29절에는 성령이 빌립더러 말하되라고 되어 있는 사실로 우리들이 주의 사자를 곧 그리스도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왜냐하면사도행전 까지는 여전히 천사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고 옥중에서 끌어내고 하는 기사들이 있습니다.왜냐하면 사도행전 시대까지는 아직 계시시대여서 계시전달자로 천사들의 활동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주의 사자라 했을때 천사라고 해석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빌립을 광야로 내보냈습니다. 거기 광야로 갔는데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여왕 간다게의 큰 국고를 맡은 내시가~이사야의 글을 읽더라’(27-28) 여기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했을때 이 에디오피아가 지금과 같은 에디오피아인지 지형적으로는 주석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든 구약 솔로몬 당시에 평화의 왕국으로 찬란함을 드러냈을때 먼 땅에서 찾아온 스바 여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땅끝에서 여왕이고 그래서 예수께서도 마지막날에 그 사람들이 이 세대를 심판하리라고 말하면서 그때 스바왕이 솔로몬에게 와서 지혜의 말씀을 들었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때 보면 가장 먼 변방에서 예물을 가지고 와서 모든 예물을 드리고 복되도다 당신의 신하들이여 내가 소식만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넘치는 것이지요. 이처럼 솔로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스바왕이 경탄을 했습니다. 그랬는데 여기 바로 다윗에게 약속했던 나라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의 성령을 부으심으로 하나님의 영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신령한 나라 평화의 왕국이 건설되었을때 여기 예루살렘 교회가 그 자체로서 전 세계교회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계시기관으로 사도들이 공적으로 이방전도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는 그 다음에 10장부터 13장으로 쭉 진행되어도 처음에 마치 아브라함을 불렀을때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고 영광의 하나님이 거기서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고 그리고 성전이 없었을때도 가나안 땅이 성소였고 그처럼 우주적인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이 거기 나타나 있는 것처럼 여기 사도행전의 예루살렘교회도 그런의미로 아직 본격적인 이방인의 전도는 베드로를 통해서 그 다음 바울을 세우심으로 진행되어도 이미 여기 이방인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들어옴에 대한 먼저된 보증이 무엇입니까? 이방땅에서 태어난 아브라함의 씨들 곧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이 흩으셨어도 곧 그들이 하나님의 우주적인 구원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고 그들이 자기들의 고향으로 피해다니면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지난 시간에 제가 그 절수를 빨리 찾지를 못해서 미안합니다만 1119절을 보면 그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주께 돌아오더라’(19-21)고 되어 있지요. 유대인에게만 처으메 전했는데 나중에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본격적인 사역이 13장에서 바울을 세움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사이 12장에 사도들을 옥중에서 건지는 큰 권능의 역사가 있지요. 이제까지 사도행전 앞장의 구조들을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복음전파가 있으면 핍박이 있습니다. 사도들을 가두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지셔서 생명의 도를 전하게 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그의 교회를 보호하고 확장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의 권세는 교회를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제 그런 구조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1122절을 보았을때 여기 스데반과 빌립 특별히 이방전도는 빌립의 기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데 빌립이 복음을 전하는 그 의미를 아까 보았던 11:22절을 보았을때 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흩어지면서 유대인의 관점이었는데 나중에는 그들이 헬라인에게도 그렇게 했다. 여기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처음에는 사마리아인 이었는데 나중에는 에디오피아 구스사람이지요.내시에게도 전했다. 그러니까 구조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아야만 여기 나탄 기사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그렇지 않고 전도자 빌립 해가지고는 하나님이 저 광야로 가라니까 갔다. 우리 같으면 사람많은데 개척할 것인데 저 들판에 한 번 가봐라 하니까 갔다.그리고 여기 아주 큰 권세있는 장관이 지나갔는데도 성경을 가지고 알겠느냐 하고 성경을 풀었다.우리 같으면 아 이제 큰 대어를 낚았구나 그리고 그 사람하고 개척교회하면 좋겠는데 그 사람 떠나 버리면 좋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떠나라 하니까 떠났다 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배울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구스 내시를 보아라.성전에 올라갔다가 몰랐는데 하나님 말씀을 만나서 말았다. 그리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에디오피아로 기쁘게 돌아가서 교회를 세웠다.이런 저런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세계를 정복하고 있는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아들께서 어떻게 우주적인 나라를 세우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이제 계시기관으로 사도들이 공적으로 밖으로 나아가기 전에 예루살렘에 설립된 교회가 이미 자체안에 그 요소를 완벽한 방식으로 품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도 처음부터 이방인의 구원은 천하만민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고 애굽에서 불러내고 했던 모든 사건들이 내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냈다 하는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미 한 단위로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된다 하는 일이 사도들을 통해서 공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예루살렘에 세웠던 교회안에서 이렇께 그 일이 확장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여기 빌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본토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땅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지요.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세상에 흩으심이 곧 세상의 구원이 되게 하셨습니다.물론 그 흩으심은 그들의 순종에 대한 흩으심이 아니라 그들의 불순종으로 흩으셨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셔서 그들을 통해서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이 누군가를 듣도록 했고 그런의미로 여기 경건한 이방인들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여기 구스 내시도 예루살렘의 절기 때 올라와서 그도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돌아가고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이 유대인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이 어떻게 빌립을 통해서 이 사람에게 성취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더구나 신명기 23장 같은 곳을 보면 내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산될 수 없습니다.사생자도 그렇고 신랑이 상한 자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에 보면 예수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차이가 없다고 하지요.구약에서는 말하자면 여자는 남자와 연합해서 언약에 참여하지 자기 자체로 하나님의 기업을 받는 방식으로 처음에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나중에 그 약속의 확증으로 슬로봇의 딸들도 그 땅을 받고 있어도 그들이 시집갈때 자기 지파의 남자에게 시집감으로 그 기업이 보장되는 것이고 바로 그것이 약속하고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들도 독립적으로 기업을 분배받고 그렇게 되지를 않습니다.그러나 예수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차이가 없어요.참으로 믿고 하늘을 기업으로 받는데 하나님을 우리의 분깃으로 소유하는데 있어서 차이점이 없습니다.그런데 여기서도 그는 이방인일 뿐아니라 내시입니다.이방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도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의 뜰에서 멀리서 경배하고 돌아갈 뿐이어요.이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고 멀리 이방땅에 있는 사람들이 이 성전을 향해서 이렇게 저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는 약속들이 여기서 이미 성취되고 있는 것 들을 보여주고 이제는 여기 성취되고 있는 것들이 본격적으로 사도들을 통해서 확대되고 있는 것들이 뒤에 이어지는 장에서의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이방인의 뜰에서 예배했으며 그는 내시이기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로 귀화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산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신랑이 상한 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산될 수가 없어요. 물론 그런 것은 구약의 의식제도안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든 신랑이 상하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이고 그러면 여인의 후손이 오는 길이 그를 통해서는 끝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런의미로는 그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어요.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산될 수가 없는 것이어요. 그는 이방인입니다.내시입니다. 그는 이방인의 뜰에서 경배하고 돌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나중에 빌립이 성령의 인도로 그 사람에게 가서 그가 읽은 것을 알겠는가 물어보았을때 가르치는 자가 없어서 읽은 것을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옳은 말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 까지라도 이처럼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 은혜의 말씀 우리들이 잘 아는대로 이사야 53장의 말씀 은혜의 말씀 이제 언약의 구주가 오십니다.어떻게 오십니까? 그가 종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저주받아 죽음으로 그가 화목제물 속건제물이 되심으로 그가 그에게 속한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는데도 그들은 메시야의 영광스러움과 메시야의 고난에 대해서 함께 해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는 것은 영광스러운 메시야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었어도 고난받는 분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구원자의 고난의 의미를 그들은 바르게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세례요한도 예수께 물었습니다.물었을때 세례요한 개인이 흔들려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흔들리는 갈대를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세례요한은 갈대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좋은 옷을 입고 왕궁에 거하는 사람을 보려고 갔느냐? 아니다.세례요한은 그렇게 나약한 사람도 아니다.그러면 누구냐? 세례요한은 선지자라.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다.여인이 나은 사람 중에 가장 큰자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묻고 있어요.오실자가 당신입니까? 그것은 구약의 물읍입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와서 이제 참으로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을 친히 보고 증거를 했습니다. 구약의 증거를 보면 메시야가 오면 악한 자는 심판을 받고 자기 백성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병자들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고 병자를 고치실 때 거기에 구원의 빛은 나타나고 있는데 심판의 의미는 나타나고 있지 않아요.그래서 묻는 것입니다.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이까? 그래서 예수께서 자기가 임하신 구원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해라.오늘과 내일 내가 복음을 전파하고 또 지금은 낮이 아니냐? 하는 방식으로 말씀하고 있지요.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그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인데도 그 구원과 예수의 재림 사이에는 장구한 기간이 있고 이제 심판은 예수를 믿지 않은 심판은 임했어도 구약에서 예언한 종말론적인 심판은 역사의 시간의 끝에 있는 것이지 예수의 초림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의미를 구약에서는 파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마치 산 골짜기가 연이어 있으면 꼭대기에 올라가기 전에는 골짜기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역사의 어느 시점에 도달하기 전에는 역사의 내용을 잘 알 수가 없는 것이어요. 그래서 예수 오심이 초림과 재림이 함께 증거될 때 심판과 구원을 알 수 있는데도 그 구원이 임함으로 나타나는 세계적인 평화 그 구원의 의미 그리고 종말론적인 심판은 이제 그 시대가 임했을때 사도들을 통해서 계시된 바요 나 바울은 은혜를 입었노라고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세례요한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 직무상 구약에 속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사야가 예언했던 53장의 고난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해석하기를 이스라엘 백성 전체로 해석하고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구원을 가져오는 종으로 해석했어도 그를 참으로 메시야 완으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바르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그러기때문에 먼 이방땅에서 올라온 이 사람 뿐아니라 유대인들도 이 고난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그래서 가르치는 자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서 물었을때 그 글로 부터 시작해서 예수의 주되심을 증거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이 사람은 경건한 이방인입니다.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사도행전 이후로도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면 거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그리고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와하는 자들은 그들이 이방인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르게 파악하고 거기 돌아와 있는 사람들이고 귀화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 구스 내시도 그런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지요.그가 유대인의 약속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 가서 예배하고 그 책을 약속의 말씀을 읽고 있어도 가르치는 자가 없으니 내가 알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볼로 까지라도 그가 구약성경을 가지고 교회를 잘 가르쳤는데도 세례요한 까지만 알고 예수를 알지를 못하더라.왜냐하면 예수께서 땅에 오셨고 그것을 역사적인 증인들이 증거해야 세상이 아는 것이지 그냥 멀리서 아는 것이 아니어요. 그래서 아볼로도 처음에는 몰랐다고 사도행전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이사야 53장 고난받는 고난의 종을 통해서 어떻게 자기 백성들이 고난을 받는가 하는 사실을 예수의 복음으로 증거를 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낮일 때 땅에서 생명을 빼앗겼습니다.그는 합당한 판결을 받지 못했습니다.참으로 그리스도를 누가 가히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의로운 종을 죽였습니다. 그는 땅에서 가장 비천한 대우를 받았습니다.그래도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이셔서 그에게 상주셨고 하나님 보좌우편에 취임시키셨습니다.세상에서는 그가 버림을 당하셨어도 그는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빌립이 예수를 가르쳤다는 말씀이지요. 36절에 길 가다가 물있는 곳에 이르러~둘이 물에서 올라갈세’(36-38)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여기 이제 세례받은 것은 예수를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그에게 접붙힘의 표시이지요.이제 세례받음으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된 표지요.이제 예수안에 옮겨 심어진 표지요.이제는 죄의 삶에서 떠나서 옛본성의 삶에서 떠나서 참으로 주 예수의 삶으로 생명으로 옮겨심음이 세례의식입니다. 권위있는 사본들에는 37절이 없는데 다른 사본들에는 당신이 주 예수를 믿는가 했을때 참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고백이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고백들은 권위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만 초대교회에서는 항상 예수를 믿으면 이런 고백들이 따라 나왔기 때문에 어떤 사본들에는 그런 구절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고백하니까 빌립이 아무런 확인도 안해보고 그냥 준 것 같아서 아마 그런 구절들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권위있는 사본들에는 37절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여기 세례를 주었습니다.물로 내려가서 세례를 주고 올라오실새 하는 것이 물에서 잠수했는가를 꼭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빌립이 세례준데 대해서 빌립이 집사가 아니었냐? 집사도 세례주는데 그렇게 말하는 경우를보게 됩니다.또 천주교 같은데서는 세례가 곧 구원얻은 생명을 세례받은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니까 세례받지 않고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구원을 보관하고 있어서 세례의식을 통해서 세례받은 사람에게 구원을 전달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이해를 합니다.그러기때문에 그들은 산파들도 어린아이가 죽게되면 세례를 베풀고 세례를 못받으면 구원을 못받는다고 되어 있지요. 그러나 세례는 구원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구원은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어떤 예식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지는 질서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일을 그런 표상을 통해 우리에게 확증으로 확실한 인증으로 주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이 의식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물론 여러분들이 결혼식을 않고 혼인신고를 하면 사는 것이어요.그 합법한 부부를 깰수가 없습니다.세상의 예식까지라도 합법한 절차를 밟아서 모든 사람 앞에 부부됨이 증거되고 그렇지 않습니까?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에서 성찬과 세례의식은 주님께서 특별히 제정하신 것이어서 우리들이 그것을 불기피한 이유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면 모를까 그것을 의식적으로 무시해서는 옳은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 세례를 베풀고 있는데 여기 빌립이 소위 우리같은 집사직으로 세례를 베풀었는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지금 초데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가 그렇게 조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곱을 택했다 했을때 구제를 맏았다 하는 의미로 집사직무와 비슷할 뿐이지 그들이 알고 있는 집사직을 맏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예루살렘 교회가 조직적인 교회는 아니고 나중에 조직은 바울사도시대에 보면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고 집사직은 이러이러하고 로 되어 있습니다. 또 실제로 목사나 장로도 집사입니다.봉사자라는 의미로 집사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이 초대교회가 점점 더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집사직이 처음 예루살렘 교회에서 타나났는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곱을 택했다 했지 일곱집사를 택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모든 사람에게 증거를 받은 자로 세워서 사도들이 했던 구제를 감당할 수 있게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나중에 보면 빌립은 전도자라고 되어 있습니다.‘전도자 빌립이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때문에 혹 처음에 있었던 일곱이 집사 우리가 말하는 안수집사로 해석을 한다 할지라도 나중에 보면 전도자 빌립 이렇게 했을때 더구나 여기 사도행전 교회는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고 있는 교회여서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조직교회로 합당하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 빌립을 보낸 분도 성령이시고 말을 걸게 한 분도 성령이시요. 그리고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의 해석을 친히 빌립이 하고 있는 것이고 전부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집사도 세례를 베푼다 하는 교회정치를 여기서 끌어내서는 안됩니다. 여기 사도행전 교회는 교회정치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단지 교회의 본질 한 몸의 사랑의 교제를 나누더라. 이제는 본토 유대인과 이방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이 한 몸의 교제를 나누더라. 그리고 오히려 멀리 흩어져 있던 그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관리하는 자로 서서 한 몸의 교제를 나누더라.그들이 우주적인 복음 그들을 흩으신 본래적인 복음을 이해하고 우주적인 복음을 전하더라.이런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 여기서 교회정치를 끌어내고 있는 것은 아직 교회정치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시기 전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보지 못하더라’(38) 여기 성령께서 친히 권능으로 빌립을 인도해 가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빌립이 이 구스 내시를 따라갈 마음이 있었는데 따라갈 마음이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지금 성령이 어떻게 자기 종들을 통해서 일하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의 내용이 아닙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친히 그의 영으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그의 종들과 함께 계시며 그의 교회를 세우시고 계시는가 하는 문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빌립이 천사가 계시기관으로 서서 교회일원인 빌립을 보냈습니다.그래도 빌립이 복음을 전했고 천사들이 일반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의 사역은 사도들과 처음 예루살렘 교회에서 세우셨던 그런 교회안에서 전파했지 그 밖으로 천사들이 누구 누구에게 전파하고 그렇게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어떻든 사도행전에서 계시기관으로 서 있는 사도들과 그리고 사도적 반열에서 수고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고 있지 일반백성에게 하고 있지 않고 고넬료의 가정에서 이방인에게 말했을 때 까지라도 베드로를 청함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고 복음의 내용 자체를 천사가 설명하고 있지를 않습니다.복음을 설명할 사람들은 바로 교회입니다.그래서 빌립을 성령이 데리고 가셨다.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스 내시는 기쁨으로 자기 길을 갔습니다.이 기쁨은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성전예배에서 알았던 기쁨과는 다릅니다.물론 거기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의 기쁨이 있겠지만 그러나 이제는 주의 영이 빌립을 끌어갔던 것처럼 주의 영이 친히 내시 안에 임하셔서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증거했고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시는 의미로 이제 예수의 몸에 접붙힌 세례를 받았고 그래서 세례의 의미에서 상징하는 모든 것이 이 사람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혀 졌고 그는 참으로 성령의 기쁨으로 이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었던 것처럼 그는 큰 기쁨으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여기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되었지요.솔로몬 당시 스바여왕이 솔로몬의 영광을 보고 돌아갔던 것처럼 바로 여기 둘째 솔로몬이라 불리울 만한 신령한 평화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에 이제 그의 영을 교회에 부으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땅에 세웠거든요. 바로 그 나라에 이방땅에서 올라온 경건한 유대인이 주의 영으로 거듭나서 큰 기쁨으로 돌아갔다.이제 신령한 교회가 이미 땅끝까지 전파된 걸로 되었습니다. 빌립은 아스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40) 빌립은 자기가 오랫동안 체류하던 가이사랴에 가기까지 이전에 불레셋이 오랫동안 다스렸던 땅이지요.아스도성은 밑으지방으로 블레셋이 다스렸던 땅입니다.그런 지방으로 돌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그렇게 해서 온 땅에 편만히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되었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9장 부터 본격적으로 이방인에 대한 복음증거를 말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어떻게 바울을 예비하며 베드로를 미리 고넬료의 가정에 보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을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셨는가를 친히 구약방식으로 계시하셨지요.11장에서 사도들을 핍박하는 세상권세들을 제하고서 그들을 옥중에서 건져내셨습니다.그리고 베드로와 바울을 바꾸셨지요. 그렇게 함으로 13장 부터 보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이방선교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지요.그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십니다.이미 하나님의 교회는 태어날 때부터 우주적인 교회로 나타나 있어요.그래도 이 우주적인 교회는 교회활동을 통해서 범 세계적인 교회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그것은 교회를 떠나서는 복음이 증거되는 방식이 없습니다. 친히 성령께서 빌립을 인도하셨어도 빌립의 가르침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은 하나님을 알 방법이 없습니다.유대인을 떠나서 이방인이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알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빛은 이미 교회안에 주어졌고 이제는 교회를 통해서만 하늘의 천사들도 우리같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증거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서는 우리같은 원수를 사랑하시는 은혜의 빛을 다른 곳에 아직 나타나 있디 않습니다. 그러기때문에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면 세상은 구원을 받습니다. 여기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를 따라 이방 중에 이스라엘을 흩으셨고 바로 그것이 이방인의 구원의 빛이 되게 하셨고 여기보면 아무리 세상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어도 그는 내시라 이방인이라.그는 하나님의 집에 합당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주 예수안에서 이방인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고 남자나 여자나 차이가 없고 그리고 이처럼 성적으로 불구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예수안에서 소망없는 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분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큰 기쁨이 없어요.이 세상의 어떤 것도 주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도신 생명의 기쁨만큼 다른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자식이 있어도 우리들이 죽고 자식도 죽습니다.우리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증거가 세상에 자식을 잉태하는 일에서 찬란하게 증거해도 그것은 참 생명을 약속하는 증거일 뿐 참 생명은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아들안에 있고 그 외에 생명은 없습니다. 참된 기쁨은 예수안에 있어요.우리들이 빌립처럼 우리안에 임하신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주님을 증거하면 바로 예수의 영은 자기의 택한 백성에게 증거해서 세상에서 소망없는 자로 하늘에 소망을 두게 할 것이고 그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큰 소명을 주신 사실을 이해하고 세상의 어떤 권세도 교회를 막지 못하는 것을 알고 우리들이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어떤 환경아래에서도 복음이 증거됨이 세상을 구원하신 줄 알고 더 신실하게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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