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7:
아브라함 시대는 그 족장들의 시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 이하에서는 이제 모세시대를 말씀하고 있고 이처럼 스데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 즉 51절을 보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너희 조상~아니하였도다 하니라’(53절까지) 이처럼 자기 백성들의 죄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들은 스스로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씨라 우리는 모세의 율법을 갖고 있고 하나님의 성전이 우리에게 있으니 우리는 거룩한 후손이요. 이런 식으로 해서 그들은 아브라함의 씨며 모세의 율법이 우리에게 있으며 성전이 있음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증거와 특별히 여기 사도행전 6장 부터 계속되는 문제들은 사도들만 이렇게 증거했던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설립된 교회가 특별히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그들의 죄 때문에 이방인에게 흩었는데도 이 이방인에게 흩으심은 그냥 흩으심이 아니라 그들의 징계일 뿐아니라 세상의 구원이 되도록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심을 세상에 증거하도록 하시는 뜻이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이방인에게 복음전파가 베드로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벌써 본토 유대인과 이방땅에 태어난 유대인들 간에 화목이 여기서 일어나고 본토 유대인들 성전제도에서 모세 율법제도 아래 있었던 유대인들이 충만한 의미로 파악하지 못했던 복음의 의미를 오히려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더 바르게 이해하고 이제는 사도가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가 설립한 교회가 이처럼 증거하고 곧 그리스도의 고난에 자리에 그 종들이 서고 또 주님께서 스데반과 함께 서서 자기 종을 증거하는 방식으로 여기서 진행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사도들을 통해서 설립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재판했던 그 재판석상에서 그들이 죽였던 그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인 사실을 증거했을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자기들을 자랑하는 자기들의 의-아브라함의 씨요,모세의 율법과 성전이 있다하는 자기 의가 아니라 그들은 거듭 거듭 그 일에 있어서 조상들과 같이 범죄하고 심지어 그 죄를 이제 마지막 채워서 그 아들을 죽였다고 그들의 죄가 많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옛언약질서에서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이 그들이 아들을 마지막에 거절했는데도 바로 예수를 자기백성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셔서 그들의 구원자가 되게 하셨으니 너희들이 다시는 옛 제도로 스스로 의롭다 하지말고 너희들은 바로 그 의인 앞에 죄인이어도 너희들의 죄가 너희들의 구원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거절한 그 분을 구원자로 세우셨으니 그 분을 믿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7장의 내용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스데반은 그들의 죄를 역사적인 방식으로 말하고 있고 그들의 의가 아니라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택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자기의 종을 영광스럽게 하심으로 자기의 구원을 완성하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전 구원의 섭리를 여기서 선포하고 이스라엘백성이 자기의로 자랑하지 못하고 무릎 꿇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부분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상들의 역사,족장들의 역사,아브라함 부터 야곱까지 족장들의 역사를 말하고 있고 그리고 족장들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이 어떻게 모세시대에 성취되어서 모세시대때 그들이 모세로 부터 언약의 돌판을 받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가.그런데도 그들은 조상들때도 거절했고 모세때도 거절했고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 종들을 통해서 말씀으로 자기백성들에게 임하실 뿐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백성과 함께 하심의 교제를 하늘의 하나님이 자기백성과 함께 하심의 교제를 실물 교훈으로 사람을 통해서 지은 여러 장막제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 중에 거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것을 하나님은 자기백성들 중에 집을 지으심으로 나타냈고 그 집이 다윗때 찬란한 궁전으로 완성되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백성과 함께 계심의 표요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집안에 거하셔서 거기 들어온 백성만 만나고 그 밖에서는 거룩치 못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셔서 아니 계신 곳이 없고 사람이 지은 그런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하는 방식으로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참으로 오셨습니다.옛날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그 분이 이제는 참 사람으로 임하셨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지은 집으로 자기백성과 함께 하심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형제로 우리 중에 거하심으로 하나님이 사람 중에 거하시는 영원한 기초를 놓으셨고 이제 그가 보좌우편에 취임하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백성과 함께하시는 구원의 새시대가 열렸으니 너희들이 그런 방식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향으로 지금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이 부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1-16절 까지는 족장들의 역사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이스라엘 백성의 배교를 17-43절 까지는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했던 약속을 어떻게 모세시대때 성취하셨던가 하는 문제를 그리고 모세를 통한 약속의 성취는 하나님께서 자기백성과 한 집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실을 44절 이하에서 성전의 제도를 말씀하심으로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51절은 결론이어서 너희들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하였고 거절했다고 그러나 너희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로 너희들의 구원자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이 증거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절했던 것처럼 참으로 복음은 땅에서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종과 함께 하셔서 예수께서 원수들 앞에서 서서 증인으로 예수를 증거했던 그 증인과 함께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서서 자기 종을 증거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교회는 결단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혼자있는 것이 아니고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종들과 함께 그의 영으로 함께 하셔서 자기종들을 증거하시고 그리고 그들이 비록 자기 종들을 거절해도 세상을 죽기 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자기종들과 함께 하셔서 세상에 증거하실 것을 스데반의 마지막 기도를 통해서 그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그런 순서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8장에 보면 빌립을 통한 사마리아 전도가 있지요.사마리아 사람은 혈통적으로 이방인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씨입니다.나중에 혼족이 되고 종교적으로도 혼합되었지만 아브라함의 씨요 또 여기서는 이제 이방땅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빌립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개 취급을 당하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은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가 설립되는 것이 아니지요.나중에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서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하심으로 이제 한 성령을 마시게 했다는 증거 그리스도의 영을 마신 신령한 교회로 부르심에 대해서 사도들이 증거하고 있지만 그들이 바로 복음을 따라 하나님 나라로 편입된 사실에 있어서는 사도들이 했던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세운 교회를 통해서 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7장을 순차적으로 강론하겠습니다.항상 처음 나온 말은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 장에 있어서 서론이고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그래서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물었을때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이처럼 말씀하고 있지요.조상들의 역사를 말하고 있지요.이 조상들의 역사에 하나님의 구원약속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약속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 모세시대요 그 후 시대입니다.그런데 여기 하나님을 말했을때 영광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나타나셨다.어디서 나타나셨는가? 하나님께서 곧 바벨로니아 당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는데 그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부르셨다.그런데 그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다.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말할때 영광의 하나님이 어디서 부르셨습니까? 메소포타미아 땅인데 그 땅은 완전한 이방땅이요 거기서는 우상숭배가 가장 성행했던 바벨론 땅이었습니다.거기서 우리 조상을 부르셨다.성경은 말하기를 너를 땐 우묵한 반석을 생각하라 그처럼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교만할 때마다 바로 그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그들의 백성들이 수가 많은 것도 아니요 그들의 조상들은 강 건너 편에서 우상 섬기는 백성들 중에 거했던 사람들입니다.물론 그들이 다 우상의 종교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인의 후손의 영이 택한 백성들 안에 역사하셔서 노아 당시에 온 세상이 죄의 종으로 빠져서 그처럼 자기 정욕의 노예로 살때도 노아의 영안에서 친히 증거하셔서 노아로 하여금 의의 삶 믿음의 삶을 살게 했던 것처럼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택하신 일도 그런 일이지요. 그러나 이들은 생각하기를 가나안 땅만 거룩하고 그 중에서도 성전만 거룩하고 그리고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어서 별난 종족인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영광의 하나님이 너희를 부를때에 저기 메소포타미아에서 부르셨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물론 ‘하란 땅’하면 그래도 앗수르 지경에 있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지경과 좀 다르겠고 하란 땅은 그런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 즉 아브라함의 부인 라헬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그쪽으로 장가갔지요.라반이 그 쪽에 있었지요.따라서 하란 지방은 그래도 조금 혈통적으로 거룩하다고 이들로 보면 말할 수 있지요.왜? 자기 외가집 식구들이 쭉 거기 있으니까. 또 아브라함도 거기 머물다 나왔고 또 자기 친족이 다 거기 있어요. 그렇지만 너희들 조상은 하란에 있었지만 실은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이방의 땅에서 강건너서 우상숭배하는 백성들 중에서 하나님이 너희 조상들을 택해서 불러내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씀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거기 임하신 하나님은 누구신가? 너희들은 성전에 임하신 영광의 하나님 그러는데 하나님이 거기서 너희조상들을 부르셨다. 바로 이 사실 한가지만 말해도 이스라엘백성은 자기 조상을 자랑할수 없고 그리고 가나안 땅만 거룩하며 이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할 수 없읍니다. 이처럼 처음 나타난 도입부는 물론 역사적인 순서를 따라 말하고 있으면서도 이 7장에 스데반이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던 그 증거의 전체적인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이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너희 조상을 부르셨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뗀 우묵한 반석을 잊어버리고 마치 종족이 다르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것처럼 혈통을 자랑하고 가나안 땅만 거룩하고 특별히 예루살렘 성전만 거룩하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해석했던 것 입니다.
하나님은 온땅의 하나님이시고 온 인류의 하나님이십니다. 단지 아담이 범죄해서 온 땅과 인류는 하나님의 거처로 합당치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그가 지으신 땅 그가 지으신 인류 중에 거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리고 가나안 땅을 에덴의 표상으로 택하셔서 거기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이루시는 나라를 건설함으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신 사실을 세상에 증거해서 그 구원역사가 이루어졌을때 천하만민으로 이스라엘 하나님을 믿고 그들이 다시 하나님앞에 돌아섬으로 하나님은 온 인류로 구성된 천하만민에 흩어진 그런 교회를 세우심으로 그가 지으신 땅 그가 만드신 사람중에 다시 거하시기 위해서 하신것인데도 그들은 세상에 하나님을 봉사하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라고 이 어둠의 세계에 봉사하는 그 직무를 잊어버리고 그들은 민족적인 우월감으로 높아져서 그들의 종족을 자랑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자기의 행위의 일로 바꾸어서 율법의 제도는 하나님이 그들중에 거하심이요.그들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피로 새기고 있는 것 인데도 그들은 피흘리는 제사를 통해서 자기의 공로로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줄 알고 행위로 바꾸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거절했던 것 입니다. 가령 우리들이 기도를 많이 한다 합시다. 그럼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기도를 얼마나 많이하고 진실하게 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죄인을 자기백성의 기도하는 인격적인 교제를 회복시키셨는가? 그것을 아는 것이 기도의 영이요 곧 그것이 기도인데도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처럼 하나님 앞에 간구할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도록 했는데도 그 은혜의 길을 우리의 행위의 길로 바꾸어 버리면 그것은 가장 사악한 방식으로 교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치 그와 같았다는 말입니다.그래서 여기 2절이 도입부가 되는 거것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신데 이 영광은 하나님께만 합당한 것입니다.하나님은 창조에 있어서 그 영광이 새겨지고 빛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목표로 해서 만물을 지으셨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나타내고 그런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피조물의 방식으로 빛나고 있어서 곧 세상은 하나님의 거울이요 영광입니다.하나님의 영광이 창조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영광은 처음 지은 세계에서 아담의 범죄로 파괴되고 하나님은 그 구원의 일에 있어서 그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왜냐하면 창조가 하나님의 일이신 것처럼 구원도 하나님의 일이셔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권능이 하나님의 구원에 나타나면 우리같은 원수를 아들의 영광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그리고 그 무한하신 자비에도 불구하고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지옥불의 진노 그런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영광이 빛나도록 하십니다.그러니 새 창조의 영광은 재 창조의 영광보다 더 빛나는 것이어서 처음 창조에 있었던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이 처음 창조에서 나타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이 완전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처음 창조에는 죄가 없었고 그러기때문에 죄에 대한 진노 그리고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배푸셨어도 그것은 원수에 대한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떠났을때도 하나님은 죄에 대한 진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수를 자기교제에로 회복하는 이 은혜의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처음 창조보다 더한 영광을 새 창조에서 나타내는 것이고 그러기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은 자기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권능으로 일하시면서 그 영광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주 예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이 곧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권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그래서 여기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 영광을 위해 부르신 것이고 아므라함이 무슨 특이한 것이 있거나 단지 그를 세상에 높이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의 영광을 위해서 아브라함은 자기를 봉사하는 종으로 부르신 것입니다.이스라엘을 부르심도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3,4절)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소포타미아에서 하란으로 그리고 하란에서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가 죽었을때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을 따르는 족속들을 여기 가나안 땅으로 옮기셨습니다.하나님께서 하란에 아브라함이 머물도록 한 사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셨고 그래서 아담안에서 온 인류를 한 혈통으로 지으신 것처럼 아브라함 안에서 믿음의 새 백성을 지으심을 세상에 나타내셨기 때문에 그런의미로 아브라함은 믿는 자의 아버지이십니다.그러기때문에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죽기 까지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머물게 하신 것입니다.아브라함이 자랑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있는 것이고 또 데라가 있으면 그 위의 조상이 있는 것이고 그런의미로 조상을 자랑할 수 있겠지만 아브라함을 택하심은 곧 하나님의 영광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봉사하는 자로 아브라함을 택하셨을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죽도록 하란에서 머물도록 하셨고 그리고 데라가 죽은 뒤로 아브라함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아무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아브라함을 부르신 목표가 무엇인가? 그 계통이 거룩했기 때문이 아니라 특이한 일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증거하는 일에로 부르셨던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주지 아니 하시고~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5)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가나안 땅에 세우셨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씨’와 ‘땅’에 대한 문제입니다.그때 아브라함은 씨가 없었습니다.이 씨를 갈라디아서에서 해석하기를 ‘씨들이 아니고 씨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니 가나안 땅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씨가 그 땅의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만일 아브라함의 씨가 없으면 아브라함은 나그네요 그 땅에 살다가 죽으면 그는 그 땅에서 아무것도 발붙일 만큼도 아무 땅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씨와 땅을 약속했어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씨와 땅을 유업으로 받을 자는 아브라함이 아니고 그 씨인 사실을 실제로 아브라함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는 말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의 씨가그 땅의 상속자가 아니면 아브라함은 그 땅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소망은 그래서 그 씨에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그 씨와 땅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 씨는 우리들이 아는대로 약속을 따라 난 씨요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젖과 꿀은 그들의 번성과 평안함을 약속하는 것입니다.‘젖’하는 것은 그 당시 유목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생명인 것이요 그리고‘꿀’하는 것은 그들의 안락함을 표현하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그들의 생존권이 보장되고 평화가 그 땅을 덮을 것이고 그런 땅을 그 씨에게 준다고 했는데 그 씨는 혈육을 따라 난 씨가 아니라 약속을 따라 난 씨였고 그 씨는 아브라함이 씨가 없을 때까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씨를 약속함으로 말씀했던 것입니다.그러니 참으로 씨의 상속자는 아브라함의 약속을 따라 난 씨요 그 땅은 참 안식의 땅인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는데 아브라함은 그 씨와 땅에 대한 약속안에서 자기 태를 통해서 태어나는 씨 안에서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읍을 바라보았다.그렇게 히브리서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가 죽으면 자기도 죽습니다.그때 아무런 유업을 아직 받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고 값을 지불하고 그 땅의 묘지를 사고 죽었는데 그것은 자기는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고 자기 씨안에서 그 땅이 영원히 회복되고 상속될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이처럼 부활의 소망 때문에 이처럼 했던 것이라고 다른 서신들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러기때문에 아브라함이 조상인데 아브라함이 조상중에 가장 훌륭하지 않아요. 그러면 아브라함은 그 땅을 전부 받아야 되는 것이고 아브라함이 복을 가장 많이 받아야 되겠지요.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했으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했으니 아브라함이 복을 가장 많아 받아야 헸을 것입니다.그런데 널희 조상들은 이 땅을 상속하지 못했다.너희들은 이 땅이 거룩하고 이 성전만 거룩하고 다른 사람들은 개이고 우리들은 다 거룩한 계통이고 우리들에게는 다 모세의 율법이 있으니 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너희 조상도 너희들이 자랑하는 조상도 이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했고 여기서 나그네로 살다 갔다.너희들이 자랑하는 조상들은 실은 애굽에서 살다가 애굽ㅇ서 죽었다.그러니 그들이 행하는 약속의 땅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자랑하는 가나안 땅은 무엇입니까? 그 땅 자체의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그들은 땅을 자랑하고 조상을 자랑하고 성소를 자랑하고 있지만 조상을 자랑할 것이 아니고 이 땅도 성전도 자랑할 것이 아니고 단지 누구만 자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인도하셨는가? 영광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해서 자기구원의 길을 세상에 나타내심으로 자기영광을 나타내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봉사자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택하신 것이라.그런데도 그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자기의로 범죄했다는 말로 항상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400년 동안을~나를 섬기리라 하시고’(6,7절) 그들은 실은 우상섬긴 땅에서 불러냈을 뿐아니라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백성입니다. 400년 동안 종살이 했으면 완전히 종의 족보지 다른 말할 필요있습니까? 종살이 했다.그러면 하나님이 무엇하러 불렀는가?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영광의 하나님을 봉사하고 경배하고 세상에 증거하게 하려고 내가 다시 너희들을 부르신다고 약속했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김이 이스라엘 백성의 존재이유입니다.그러기때문에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봉사하는 것이요 세상을 봉사하는 방법입니다.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8,9절)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세우셨습니다.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고 야곱이 열 조상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때 하나님의 약속이 12조상 말하자면 혈육을 따라 난 모든 그의 혈통들에게 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야곱 까지를 족장들의 시대라고 말을 합니다.우리들은 요셉까지 족장들의 시대라 말하면 좋겠는데 야곱까지 족장시대인 것은 그 아들이 하나님의 신령한 이스라엘 즉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는 곧 구약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약속을 주셨습니다.그리고 그 약속에 참여한 자가 이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물론 아브라함도 할례를 받았고 이스마엘도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할례의 약속을 하나님의 자녀로 계산되고 있는데 그것이 처음 그 약속을 따라 나타난 것은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 하는 정규적인 방식으로 나타난 것은 이삭이어서 이삭이 약속을 따라 난 씨요 이삭의 출생안에서 새 출생의 표가 그들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에서를 택하지 않고 야곱을 택하셔서 혈통을 따라 나지 않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약속이 야곱의 12아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야곱에게 나타난 사닥다리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친히 자기백성과 함께 하시는 교제의 비밀이 야곱에게 나타났고 그리고 그 약속이 야곱의 12아들들에게 전부 주어져서 어느 아들도 제외됨이 없습니다.그들은 다 신령한 자손이요 육체의 자손이 아닙니다. 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라 났습니다.그래도 그들은 다 신령한 자손으로 계산되었고 어느 하나도 제외되지 않았습니다.그런의미로 하나님의 영이 육체와 함게 거하시는 약속 사닥다리 계시를 통해서 나타난 그 약속이 야곱의 12아들들에게 이제 성취되었고 그런의미로 야곱의 12아들 야곱과 12아들 그 12족장이 아브라함의 약속의 성취입니다.그것이 아브라함의 씨여요 그래서 12족장이 구약의 모든 기초를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구약교회를 보십시요. 12조상이 교회입니다.하나님의영이 육체를 따라 난 그들과 함게 거하십니다.그런데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자 그런데 옛족장들의 교회는 어떠했습니까? 그들로 하나님의 세우신 자를 거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은 친히 자기 택하신 종을 통해서 자기은혜의 일들을 자기 백성들에게 계시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세상에 하나님의 계시기관이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세도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택하시고 그 안에 거하셔서 자기 은혜의 길을 계시하셨을때 곧 그들이 요셉을 거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족장들의 교회에 자기들이 자랑하는 족장 때부터 거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요셉을 애굽에 팔았더니’ 야곱이 요셉에게 색동옷을 입혀 그를 장자로 길렀습니다.그는 아비의 사랑받는 자로서 특이한 존재로 길렀습니다. 그러기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요셉을 통해서 그의 형제들에게 증거하는 방식으로 요셉이 그처럼 존귀한 자리에 있었습니다.그것을 그들은 거절해서 요셉의 꿈이 무산될 수 있도록 요셉이 꿈꾸었을때 곡식단들이 자기단에 절하고 11별들과 해와 달이 자기에게 절하는 방식을 통해서 이처럼 자기가 자기형제들의위에 서는 군림자,왕 하나님이 자기형제들을 세우시는 지도자이신 사실을 꿈으로 나타냈을때에 그 꿈은 단순히 요셉의 이상이 아닙니다.하나님이 꿈을 통해 자기 종에게 계시하고 있는데도 그 하나님의 계시의 실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요셉을 죽였습니다.그래서 그 꿈이 이루어지는가 보자 그 꿈을 파괴하는 것이 그 형제들의 목표였으니 곧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길 계시의 길을 그들은 거절했던 방식으로 역사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환란에서 건져내사~치리자로 세웠느니라’(10) 그들이 거절한 자를 세상의 구원자로 세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11-15) 그들이 거절했던 요셉을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과 세상의 구원자로 세우셨다. 너희들이 거절한 그 요셉을 너희 조상들 족장들이 거절했던 요셉을 조상들의 구원자로 보호자로 세우셨고 바로 너희 조상들이 거절했던 그가 곧 세사의 구원자여서 요셉을 통해서 애굽과 세상이 기근으로 부터 보호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처음 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거절했던 백성들입니다.하나님은 그들을 우상섬기는 중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했을때 그들을 건지셨습니다. 그들을 건지신 이유는 그들의 혈통을 자랑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길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이 세상에 증거되도록 그들을 봉사자로 세우셨는데 그래도 그들은 처음부터 거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거절한 그 의인을 너희들이 거절했던 그 중보적인 직임자를 하나님은 택하셔서 오히려 그들의 배교 배반 때문에 세상의 구원이 임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 되게 하셨다고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의 교회를 통해서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산 무덤에 장사되나라’(15-16) 물론 야곱은 이 가나안 땅에 장사되었습니다.그것은 부활의 소망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고 요셉도 유언하기를 자기 유골을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 가지고 나가달라고 유언해서 그는 애굽사람으로 계산되기를 거절했고 애굽의 왕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되기를 거절했고 그렇게 되었습니다.마치 아브라함이 소돔왕과 연합을 거절함으로 가나안 백성으로 계산되기를 거절했던 것처럼 그렇게 되었습니다.그러기때문에 야곱은 죽어서도 자기 조상의 묘실에 장사되었습니다.그들이 죽었던 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물론 야곱과 요셉은 나왔지만 모든 족장들은 다 애굽 땅에서 죽었지요.또 거기서 장사되었지요. 그래서 그런의미로 보았을때는 자랑할 것이 없지요 오히려 하나님은 이런 애굽 땅에서의 죽음과 애굽 땅에서의 종살이함을 통해서 애굽의 구원을 약속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셨으니 애굽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이 나타남입니다. 곧 그것이 세상의 구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그래서 그들 조상들이 여기 값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 세겜 땅도 이스라엘 백성들로 봤을때는 거룩한 영역이 되지는 못합니다.왜 세겜땅은 자기들이 자랑하는 예루살렘 땅은 아니어요.그래서 어느 장소가 거룩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이것이 족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 부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석달을 길리우더니’(17-20) 이렇게 구원자 모세의 출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모세가 우월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의 때가 임했기 때문에 다 죽는 죽음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구원하셔서 모세를 통해서 자기백성을 구원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모세가 우월한 것이 아니요 제대로 한다면 모세도 그 가운데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구원의 일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애굽궁정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 그리고 자기백성들을 인도하는 광야에서 40년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지요. 그 종의 고난을 통해서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이 모든 모세의 일들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나타낸 것이고 모세는 자기 뒤에 오시는 의인을 약속했었고 자기자신은 그 온전한 의인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말씀했는데도 그들은 큰 빛 가운데서도 모세를 거절해서 모세가 내려오기 전에 금송아지를 섬겼고 하나님은 그 죄 때문에 그들을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너희들은 처음부터 배교한 백성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그들이 모세를 전하고 있지만 아니다.모세를 구원자로 세웠을때 네가 우리 재판장이야 하고 버렸는데 그 버린 모세를 하나님이 다시 부르셔서 너희들의 구원자로 삼으셨고 모세를 통해서 시내산에서 그 영광의 하나님이 그 찬란한 영광의 빛 가운데서 너희에게 돌판을 주셨을때도 너희들은 그 하나님을 속히 떠나서 금송아지를 섬겼지 않느냐? 너희들이 40년 동안 한 번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적도 없었고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은 너희들을 바벨론으로 옮기시리라고 그렇게 마지막 미래를 예언했지 않느냐?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조상들 때도 배반했고 모세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따라 살지도 못했고 그 판결 때문에 그들은 바벨론으로 쫓겨났던 백성들이어요. 그들의 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 하나님은 자기 종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종을 통해 은혜의 길들을 계시하셨을때 그 종을 거절했다.그리고 모세는 자기 뒤에 오시는 의인 참으로 자기와 같은 선지자 그러면서도 자기보다 더 우월하신 분이지요.그 분을 약속했는데도 너희들은 그 모세를 거절했고 그러나 거절당한 모세를 하나님은 너희들의 구원자로 삼으셨고 그리고 모세가 약속한 그 구원자가 오셨는데도 너희들은 그 의인을 버렸다고 말씀함으로 그들의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배교자요 그들의 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속하는데 있어서 그 신실함을 나타내는 것 뿐이지 자기 의로 구원받을 사람은 없습니다.그래도 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씨요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세 뒤에 수 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모세가 약속했던 그 의인의 옴을 약속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요구했을때도 그들은 모든 선지자들을 다 죽였다. 그리고 마지막 너희 조상들의 죄를 여기서 채웠지 않느냐? 예수가 말씀하시길 우리 조상때 우리가 살아 있었다면 우리가 우리 조상처럼 안했을 터인데 그렇게 하면서도 그들은 그 죄를 다 채웠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지요. 바로 갈데아 땅에서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셨는데 그 하나님이 친히 모세시대 때는 시내산 가시떨기 가운데서 영광 중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자기백성에게 가까이 오셨습니까? 이제는 사람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비록 두렵고 떨리지만 사람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 종 개인에게 들리는 방식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에게 들리는 음성으로 거기 임하셨는데도 그들은 그 영광의 하나님을 거절하고 그 음성을 거절했습니다.그들은 모세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모세를 그들의 중보자로 세웠어도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신 것인데도 모세를 거절함으로 하나님을 거절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이 영광의 빛 가운데서 임하신 것이 아니라 죄인의 친구로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양이 없는 그런 고난받는 종으로 땅위에 오셨습니다.그리고 그가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권능의 이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다 증거했는데도 그들은 그 영광을 보고도 의인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절했던 요셉을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자와 구원자로 세웠던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거절했던 모세를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자로 세우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자로 세우셨다고 지금 증거하고 있는 것이어요.이제 그 증거를 하기 전에 그들의 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너희들이 쭉 이 죄를 짓지 않았느냐? 그리고 회개하라고 할 거여요.그런데 그들의 죄됨을 증거했을때 견딜 수가 없어서 이를 갈고 그들은 합당한 재판절차를 무시하고 그를 죽였습니다. 그들의 분노가 가득 찬 것이지요.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성령을 거절한 것입니다.인자를 거역하고는 사함이 있되 성령을 거역하고는 사함이 없으리라고 말씀했는데도 그리스도의 영이 신실한 종 스데반의 영안에 임하셔서 참으로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땅의 구원이 아닙니다.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자기백성들의 구원의 일을 증거하려고 너희들의 조상들이 거룩한 것이 아니며 이 땅이 거룩한 것이 아니며 너희 조상들은 다 죄인 출신이고 노예였고 너희들도 처음부터 배교자였으며 너희들은 항상 죄를 채웠다.그리고 가나안 땅 이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바벨론 땅에서 하나님이 임하셨고 시내산 광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임하시고 애굽에서 건져내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은 이 곳에만 거하신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도 거하셨다.그래도 너희들이 하나님의 종을 통해 임하신 구원의 약속과 그 영광의 임재를 처음부터 거절했지 않는가? 실은 이 성전도 창기의 집이 되게 하지 않았는가? 그런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집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이 집에 거하면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바로 이 예배를 받으시는 그 의인을 죽였지 않은가? 그렇게 말함으로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절했던 중조자를 하나님은 참으로 그들의 구원자로 세우셨고 하나님이 마지막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서 세상에 구원이 임하도록 하셨으니 곧 그것이 영광의 하나님이 임하심입니다.그래서 곧 예수가 영광의 주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의 구원의 일은 곧 아들의 영광스러움 그의 부활 사건 앞에서 세상에 증거되고 바로 그 아들의 부활로 그 영광을 세상에 선물했기 때문에 바로 예수를 영광의 주라는 방식으로 고린도전서 야고보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아담 부터 주 예수 오시기 까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신실하게 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그의 영으로 우리안에 거하시고 그의 무한한 인내를 통해서 우리안에 그가 완성하시는 일이지 사람은 그의 은혜의 언약에 합당하게 살지를 못합니다. 물론 이제는 구약시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우리 가운데 부으셔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셨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안에 거하셔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안에 나타날 수 있도록 하셨어도 사람은 다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의 종자다. 그의 의에 합당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세상의 구원이요 영광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같은 죄인의 형상으로 임하셔서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그 영광스러운 은혜의 일안에서 하나님은 그 구원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신 것입니다.오늘 우리의 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은 이처럼 친히 자기백성과 함께 하심 그 은혜의 약속안에서 자기백성과 함께 하시고 그 약속의 실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은 그 은혜의 일은 파괴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사람이 지으신 집 어느 장소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시요 바로 이 사실을 여기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세상이 거절했던 예수를 하나님은 세상의 구원이 되게 하셨고 그의 영을 우리 가운데 부으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생명이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증거되게 하심으로 곧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생명이요 곧 우리의 구원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우리의 혈통을 자랑하지 말고 우리의 의를 자랑하지 말고 우리들이 구약방식처럼 어떤 조직이나 무엇을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친히 영광의 영께서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시고 친히 그의 영이 우리안에 거하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선물하시고 보좌우편에 추임하신 아들의 영광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심으로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오고가는 모든 세대에 증거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참으로 세상에 나타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그 영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곧 우리의 생명이고 구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사를 보면 다 자기 종파나 전통을 자랑하고 자기의 무엇을 자랑함으로 실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교회역사의 죄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우리를 주장하셔서 이 영광의 하나님을 봉사하는 방식으로 그 영광이 우리의 생명이 될 뿐아니라 그 영광은 세상에 증거헤서 바로 이 영광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일을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들이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교제로 서야 하겠습니다.
'신약 구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행전 강해 7:44-8:3 (0) | 2025.04.12 |
|---|---|
| 사도행전 강해 7:17-43 (0) | 2025.04.04 |
| 사도행전 강해 7: (0) | 2025.03.21 |
| 사도행전 강해 7:1- (0) | 2025.03.14 |
| 사도행전 강해 5:12-6:7 (0) | 2025.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