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7:1-

찬미예수님 2025. 3. 14. 07:00

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7:1-

 

67장 까지는 교회발전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습니다. 4복음서가 땅위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행적이면, 사도행전은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그리스도의 행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예수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친히 재림하시도록 까지 하늘 보좌에 취임하셔서 그가 선지자요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말씀과 성령으로 자기 백성 안에 임하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보존하시고 확장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자기백성을 통치하시는 것이었는데, 이제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 취임하셔서 그의 성령을 부으심으로 예루살렘 다락방에 이루어진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성령이 교회에 임했기 때문에 본토에 있던 유대인 뿐 아니라 15개 국가에서 모여든 디아서 포라 유대인들이 각각 자기나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들었습니다. 거기 하나님께서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세상에 흩어졌던 인류가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이 거기서 성취됨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여기 하나님의 교회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전이 유대인들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지성소가 거기 있어서 거룩치 않은 것은 어떤 것도 거기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론의 두 아들들을 죽였던 것처럼 여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심판함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 친히 임재한 거룩한 전임을 친히 증거 하셨습니다. 물론 그것은 예수가 재림하셔서 우주적인 성전으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거기에는 거룩치 못한 어떤 것도 들어가지 못할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천하 만민으로 구성된 거룩한 교회요, 이제 하나님이 친히 그들 안에 영으로 임하셔서 한 성령을 마시게 함으로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져서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졌고 그래서 그들이 주님의 몸에 참여할 뿐 아니라 한 몸의 교제로 서로 연합함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랑의 공동체가 거기 설립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께서는 자기 사도들과 함께하셔서 그가 땅위에서 행했던 그런 여러 가지 이적을 사도들을 통해서 행하시고 그리고 사도들안에 증거하셔서 그가 가르쳤던 교훈들을 깨닫게 하시므로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그의 권능과 지혜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핍박했어도 이제는 교회가 그의 영을 따르는 교회여서 예전처럼 외적인 핍박 때문에 무너지는 교회가 아니라 그의 성령이 부어져서 하나님의 신령한 요구가 그들의 마음 안에 나타나는 그런 성숙된 교회가 나타나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주 예수의 고난에 기쁨으로 참여했고 예수를 재판해서 사형선고에 넘겨 주었던 그런 회 앞에서 바로 그들이 죽였던 예수를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담대히 증거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 함으로 이방 땅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교회 안에 들어왔어도 유대인들의 대표자는 주 예수를 거절하기를 끝까지 거절해서 바로 그가 인자로 땅위에 있을 때 그를 거절했을 뿐 아니라 그의 성령으로 사도들을 통해서 증거 해도 그 성령을 훼방하고 받지는 안 했습니다. 그래도 사도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좌에 취임하신 그리스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그들이 생명의 도를 끝까지 증거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이 처음 임하셨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들었던 것은 15개 국가로부터 모였던 유대인들 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난 유대인 하나님을 사모해서 나아 왔던 경건한 유대인들 이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처음부터 이처럼 예루살렘에 이미 임했을 때 바울이 이방인에게 이처럼 복음을 증거 하기 전에도 또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을 열기 전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바로 아브라함의 복이 천하 만민에게 미쳐서 온 땅의 백성을 자기의 교회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유대인들의 역사에서 진행된 것이어서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자기나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듣는 것으로 나타나 있었고 여기 6장에서도 그 사실이 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가운데 불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다 아브라함의 씨인데도 그들의 출생지나 문화적인 환경 때문에 이렇게 알력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아브라함의 씨가 아닌 이방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로 구원의 큰일을 듣게 했을 뿐 아니라 여기서 그들 둘을 온전한 하나로 결합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임한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서 천하 만민이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교회로서 성장해 가는 문제들을 여기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제 문제 때문에 분파가 생겼을 때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리라고 함으로 자기들의 직무의 존귀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요구로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온 회중이 뽑아서 사랑의 봉사를 담당함으로써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의 알력관계가 해소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울 사도가 이방교회에 복음을 증거하고 가난한 유대인 교회를 위해서 헌금하려고 했을 때 이방인 성도들에게 이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물이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유대인 교회의 교인들의 마음을 열어서 이방인 형제들의 선물을 기쁨으로 받음으로 복음을 따라 그들이 한 몸 된 증거가 이 가난한 유대인 교회를 위해서 헌금함을 통해서 확증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합니까? 그런데도 바울은 이 구제헌금을 전달하기 위해서 로마로 가는 길을 늦춘 것은 여기의 사도들이 했던 말과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같은 형제들입니다. 다 같은 아브라함의 씨인데 역사적인 상황에 의해서 그들은 이방 땅에 흩어져 있었거든요. 그런 상황 때문에 알력이 생겼는데 하물며 이방인들과는 얼마나 큰 알력이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위해서 하는 헌금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것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들은 복음 자체에서 아주 중요한 일 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로 접어들기 전에 이 본문의 구조를 보면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과의 알력관계. 그리고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서 여기 스데반과 빌립의 유명한 증거가 나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유대 땅에 있는 유대인들 중에서 주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고 여기 이방 땅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아니지요. 그런데 그 사실이 8장에 보면 스데반의 증거가 사울로 연결되고, 하나님이 사울을 변화시킴으로 핍박이 사라지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자유로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도록 범세계적인 복음전파가 가능하게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도행전의 목표는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해서 땅 끝까지 증거 되는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 나라가 범세계적으로 확장되는가? 하는 문제를 목표로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 스데반, 그를 핍박했던 사울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사울을 변화시킴을 통해서 이제 본토 유대인과 이방 땅의 유대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순수한 이방인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가? 바로 사울을 변화시킴을 통해서 천하 만민을 위한 복음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 흐름으로 여기 사도행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여기 우리가 알고 있는 일곱 집사 선택 문제를 생각하셔야 되겠습니다. 아직 교회가 조직적인 방식으로 직분자를 뽑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디모데서에서 본격적으로 지시되어 있고 초대교회에는 아직 그런 상태는 아닙니다. 여기서는 교회조직에 대한 문제보다도 하나님께서 유대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에게만 성령을 부었던 것이 아닙니다. 여기 초대교회를 보면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도 성령과 은혜가 충만했고, 바로 그들이 사도들의 사랑의 구제를 대신해서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의 봉사를 본토의 유대인들이 받도록 함으로 여기 사랑의 공동체가 더 강력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 특별한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사도들을 세우신 목표는 그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어서, 여기 예루살렘에 설립된 교회에서는 이미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 중에서 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하나님이 뽑으셨고, 그들을 통해서 복음이 이방 땅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증거 되는 것을 여기 8장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바벨론에 흩으시고 알렉산더 대왕 때 소아시아 지방에 흩으셨던 것은 그들의 심판이 오히려 세상 구원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호세아서에서 내 백성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를 내 백성이라 하리라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신 그 곳에서 저희를 내 백성이라 하리라. 즉 유대인들의 부르심을 바울은 이방인들의 구원으로 해석을 해서 바벨론의 포로 된 백성을 다시 하나님의 언약의 땅으로 부르심이 곧 이방을 부르시는 방식으로 바울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 사도행전을 보면,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이 대대적으로 교회에 들어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집사로 뽑으셔서 사도적 구제 사역을 대행케 하심으로 지역적인 알력을 해소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 이 스데반을 죽이고 나중에 바울을 끝까지 핍박합니다. 바울도 발의 먼지를 털고 내가 이 복음을 이방에 전하리라. 그런 방향으로 사도행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예수의 제자들과 형제들에게 성령이 부어지고, 사도들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 되어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자기나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듣고 대대적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던 알력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따라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을 통해서 교회가 든든히 서고 하나님의 말씀이 더 왕성하게 되어서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세례를 줌으로 이방에 구원의 문을 열었고, 사도들 앞에서 증거 했어도,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안디옥에서 이방인 신자들과 함께 식사하다가 유대인 열심장이들이 오니까 베드로와 바나바가 외식하다가 바울에게 책망을 받습니다. 복음의 진리대로 설 수 있도록 복음의 의미가 정립되고 증거 되기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을 통해서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통해서 일을 하셨어도 복음에 대한 이해와 그 자유는 오히려 이방 땅에서 들어온 유대인들을 통해서 더 확증되고 있는 것이 여기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7장 스데반의 설교 내용은 그런 것입니다. 족장시대와 모세시대 그리고 성막을 세웠던 시대를 쭉 나누어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리 조상들을 이방 땅에서 부르셨다. 본래 우리 조상들은 이방 땅에서 종노릇 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려고 세웠던 모세를 거절했다. 그들이 말로는 모세 율법을 사랑한다고 했어도 율법을 끝까지 거절했다.

또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할 처소로 전을 지으셨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일 뿐 하나님이 본래 사람이 지으신 집에 거하지 않는다고 선지자들이 분명히 증거 했다. 그래도 그들은 말로는 선지자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 집에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우상의 방식으로 돌아서지 않았는가. 그리고 예수께서 인자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은 것은 것을 보리라.’ 증거 했던 것처럼, 바로 스데반이 그들이 죽였던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증거하지요. 예수의 복음을 바울이 증거했던 복음의 빛 가운데서 완벽한 방식으로 여기 스데반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공회가 스데반을 동일한 방식으로 죽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스데반의 기사는 그렇게 함으로 처음 예루살렘에 설립된 교회에서 이미 완벽한 씨가 다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면 아브라함의 역사에 모든 씨가 있는 것처럼, 이 교회가 이방 땅에 흩어져 있기 전에도 이미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이방인과 하나 됨이 완벽한 세트로 나타나 있고, 이 복음이 이제 밖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지요. 항상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약속하신 백성에게서 완벽한 방식으로 나타나 있고, 이 복음이 완벽한 이해를 통해서 세상에 증거 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스데반의 기사를 보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며 스데반은 헬라파 유대인,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멸시받기 쉬운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이 기사와 표적을 행했던 것처럼, 그는 사도가 아닌데도 사도적 사명이 이방 땅에서 태어난 이 유대인을 통해서 증거 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라는 말은 사도시대에 나타난 용어들입니다. 교회를 설립하는 시기에 나타난 은사들이지요. 그런데 그가 어떻게 복음을 증거 했는가?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레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회당이라. 주석을 보면 리버디노 하는 것을 보면 이방 땅에서 태어난 자유인들이라고 보면 되어 있습니다. 또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유인들로 해석되어 있어요. 그러나 어떻든 이방 땅에서 유대인으로 왔던 사람들로 해석하면 큰 차이가 없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길리기아와 아시아는 바울의 출생지와도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어떻든 이방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모인 회당에서 스데반이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마치 바울이 이방 땅으로 가서 전도하기 전에, 팔레스타인에 회당을 가지고 있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한 것처럼 스데반의 증거는 바울의 이방선교와 비교가 되겠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였지요.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공회에 잡혀가면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지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영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증거 했기 때문에 그들은 랍비학교에서 배우지 안 했어도 산헤드린 회원들이 그들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스데반도 지혜와 성령으로 친히 증거 했기 때문에 그 말을 감당치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론적으로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지만 스데반의 증거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세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 제사장의 가문들에게만 대대적인 반역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벌써 이방에서 팔레스타인 땅으로 와서 회당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서도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 대대적인 반란이 있기 전에도 벌써 전반적인 배교가 진행되고 있음을 여기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죽였던 자들을 충동해서 스데반을 잡아다가 재판을 받게 했다고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거짓증인을 세워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 하는도다.’ 고소하는 내용을 보면 나세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는 것이 그의 죄목입니다. 공회 중에 많은 사람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하는 말은 스데반이 기도를 많이 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는도다한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과 지혜로 스데반에게 충만케 하시고 그를 통해서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옛 언약질서 안에서 천사들을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계시했던 것처럼 여기 스데반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대표기관에 증거 하기 때문이지요. 여기 스데반의 복음전파의 내용을 보면, 물론 거짓증인들을 세워서 말을 바꾸었지요. 왜냐하면 성령의 바른 증거를 따라 스데반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식을 따라서 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바른 증인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스데반의 바른 증거를 그들의 고소를 따라 보고, 7장의 스데반의 자기 변호를, 믿음이 강한 자들이 있었는데, 믿음이 약한 자는 항상 유대인들 중에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이방인들 중에서도 그들의 옛 규례 때문에 이런 저런 약한 점이 있겠지만, 유대인들은 대대적으로 모세의 규례 아래 있었고, 그 규례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오심으로 그 규례가 끝나는 것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사도들까지라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식에서 쉽게 잘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바울은 물론 연약한 형제들을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도 말하자면 그것에 대해서 완벽한 자유를 잘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도 시간이 뒤면 그들도 정기적으로 옛 규례를 따라 성전에 올라가고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더니한 것처럼 심지어 사도들까지 그 옛 규례를 잘 떠나지 못했어요. 하물며 일반 유대인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대인들 중에서 예수를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복음을 훼방하는 팀들이 나타났고, 곧 그런 행동에 베드로도 동참했다가 바울에게 큰 책망을 받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 7장을 보면 스데반의 증거는 완벽한 방식으로 복음의 자유를 말합니다.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성전의 제사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본토 유대인들은 항상 성전의 제도와 관계가 있었지만 이방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그 제도와 멀리 떨어져 있었거든요. 그들이 1년에 세 번씩 예루살렘에 올라와도 그들은 성전의 제도와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섭리의 진행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는 그들은 성전 제사가 예배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70년간 성전이 없이 살고 돌아와서는 여기 저기 회당을 짓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지키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이 종교적인 상태가 더 진행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장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닌 것은 솔로몬의 기도에도 날 나타나 있지요.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의 약속을 주시고 자기 백성과 교제하신 곳을 우상의 섬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전을 불태우고 유대인들을 흩으신 것입니다. 그 약속에 따라 이방 땅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복음의 자유를 더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이 더 복음대로 나타나면 큰 핍박을 받습니다. 말하자면 성전제도에 같이 참여하고 율법을 지켰으면 그렇게 심판 핍박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모든 문제들이 이처럼 완벽하게 나타나서 예수를 모든 율법의 성취자로서 예수가 오심으로 율법의 기능은 이미 그 기능이 정지된 것입니다. 더 이상 율버의 제도가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자기백성과 함께 하심의 표요 증거요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일 뿐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온 우주를 채우시는 분이지 단지 거기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이제 예수께서 땅에 계실때 말씀했을때도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3일만에 다시 세우리라.자기몸의 죽으심과 부활로 세우실 신령한 성전 곧 교회를 주님께서 거기서 말씀하셨던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 옛제도는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사람이 만든 집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바로 예수께서 오심을 통해서 처음부터 선지자들이 증거했던 그 증거 자체가 예수를 지시하고 있고 그랬을 뿐아니라 바로 처음부터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이 그 집에 거하신다는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거함으로서 예수께서 오심으로 율법의 제도는 그 성취로서 그 기능이 끝났고 이제는 사람이 만든 집에서 하는 그런 옛방식의 예배방식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예수,그들이 죽였던 그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 좌정하시고 거기서 일하신다고 말씀함으로 그 분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바르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복음전파는 사도들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그 기초를 놓았는데도 그것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이 아니라 천하만민을 구원한 복음이어서 바로 하나님께서 이 구원약속을 이루기 전에도 이미 옛언약질서 가운데서도 유대인들을 그런 방식으로 세우시고 운행하셨기 때문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자기나라 말로 복음을 듣고 또 그들과 본토 유대인들과의 알력이 제거되고 또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봉사토록 하는 능력있는 직분들을 맡기시고 또 그들을 통해서 산헤드린 공회 앞에 증거케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천하만민을 구원하시는 그 복음의 의미를 여기서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참으로 모세가 증거했던 의인이요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 취임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사모했던 메시야라고 증거함으로 곧 땅위의 유대인만으로 구성된 성전에서 예배하는 예배가 아니라 우주적인 예배 천하만민이 하나님을 봉사하는 신령한 시대가 열렸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증거가 본격적으로 유대땅 밖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바울사도를 통해서 그렇게 증거됨을 지시하는 방향으로 이 사도행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섭리는 묘합니다. 먼저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된다.어느 누구도 자랑치 못하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찬양되도록 그렇게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있어서도 그럴 뿐아니라 우리 개인에 있어서도 그런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가령 우리들이 현재적으로 교회를 봉사해 보아도 이런 교회의 제도에 익숙해 있던 분 참 그것은 기적같은 일이지요.참으로 옛제도를 잘 벗지를 못합니다. 묘하게요.그 제도에서 이미 하나님과 교제했던 자기 의에 빠졌던 것과같은 인상이 들어요.그걸 쉽게 잘 벗어 나질 못해요. 그리고 오히려 말하자면 새로 배운 사람들 또 어떻게 봐서는 이런 저런 옛날의 자기의 고상했던 자기의 행적이 없었던 사람들 어떻게 봐서는 험악했던 사람들이 자기를 설명하지 않고 복음의 은혜만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더 빨리 이해하는 경향들이 많아요.그런 것은 이 사도행전에서 우리들이 조금 교훈을 받아야할 조항이 될 것입니다.우리들도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대로 증거하는 것이지 옛제도와 결합시킴을 통해서 그것이 참으로 복음되는 것은 아닙니다.물론 옛제도와 하나님의 복음은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오심으로 전혀 새로운 성취시대가 임했기 때문에 새 술을 새 부대에 하는 예수의 말처럼 그것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되는 예배지 옛제도 방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지금 우리교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도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 십일조를 합니다. 왜냐하면 다 구약에 그런 말들이 있거든요.오히려 그것 때문에 우리들이 누리는 복음의 자유 복음의 본질을 잘 이해가 되지 못해요. 오히려 구약성경을 안다는 것 때문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참으로 어려운 현상들이지요. 그러기때문에 오늘 우리들도 그런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가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었던 일들이 하나님의 복음이 복음대로 이해되고 증거되는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참으로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교회를 세우도록 그의 은혜를 세상에 베푸시는가를 우리가 바르게 파악하고 복음의 진리 가운데서 굳건히 서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그의 구원역사를 위해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고 모태로 부터 나를 택정하신 하나님이라고 바울이 갈라디라서 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죄 까지라도 유대인의 흩어짐 까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그렇게 크게 증거되고 찬양될 수 있는 방식으로 역사하고 운행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부르심을 통해서 이제 참으로 이방인을 구원하는 그 기초를 놓으시고 바울을 택하시되 이방인에게로 복음을 확장시키고 있는 사실을 볼때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도 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시고 우리의 죄 까지라도 하나님을 찬양케 하는 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으시고 우리들이 복음의 자유를 따라서 봉사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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