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5:12-6:7

찬미예수님 2025. 3. 7. 07:18

제목:사도행전 강해

성경:사도행전 5:12-6:7

 

여기 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성령의 전으로 성결케 하심과 그리고 이제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확장되어 가고 있는가 하는 사실에 대해서 말합니다.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 대한 죽음은 표적이어서 이런 일을 한 사람마다 그때 그때 죽는다는 말이 아닙니다.가령 나사로를 살린 것도 표적이어서 나사로만 그렇게 살았고 다른 여러 사람을 그렇게 해준 것도 아니고 지금도 그 일이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다.만일에 반복되면 그것은 주님께서 온전한 구속을 이루지 아니했다는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그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무덤에 가서 소리지른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묘하게 다른 소위 우리들에게 유익되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이 똑같이 하신다고 함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책으로 풀지않고 자기 이익의 책으로 푸는 것이 참으로 문제입니다.사도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언역사는 마무리 되었고 이제 성령이 교회에 부어져서 하나님의 영을 따라사는 새인류가 교회에 완성되었고 이제 주님오시면 궁극적으로 이 교회가 영을 따라 영이 새생명의 원리가 되는 방식으로 그들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 그 목표요 이제 다른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진행되지 않습니다.그런의미로 우리들이 사도행전도 풀어야 할 것인데 우리들은 이런 저런 죄를 짓는 사람들은 단 번에 무슨 일이 벌어져야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고 그런 방식으로 성경을 이해해서는 안됩니다.그래서 누구가 이런 저런 일이 생기면 성경에서도 그런 일을 한 사람은 벌받았는데 그 사람 벌받은 것이다.물론 벌받는 경우도 있지요.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자녀를 징계하시고 사생자를 징계하신다고 아니했고 악이 심판을 받지 않고 악인이 번성함으로 참으로 의인이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의심없이 의인들이 믿을 수 있도록 의인들을 연단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성경에 나온 것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어떻게 판결하시는가 하는 표적이요 항상 반복되는 것은 아니고 가장 큰 심판은 하나님의 버려두심 하나님이 버려두심 그리고 하나님의 징계가 없으심 마음이 완악함으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어두움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신약시대의 심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지금도 헌금을 가지고 이래 저래하면 하나님이 벌을 주는가? 그전에 어떤 신실한 성도가 그런 고백을 하더랍니다.그전에는 십일조제도가 철저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헌금을 해야하겠다 하면 장날이 되면 헌금 액수가 점점 줄어들더랍니다.쓸돈이 자꾸 자꾸 생기거든요.이번 장에 무엇도 사야 되겠고 줄어드는 것은 헌근 뿐이어요.그래서 그냥 돈이 들어오면 처음부터 헌금을 해버렸다고 그러던가! 자기 마음에 시험이 없게 하려고. 그러면 그런 사람도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식으로 하면 벌받은 것이 맞지요.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것은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 친히 임하여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여서 그것은 사람끼리 조직한 단체가 아닙니다.특별히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계시기관으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거기 교회를 설립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처음 하나님의 나라가 시내산에 설립되었을때에 아론의 두 아들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거기 나타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때 아간을 죽임으로 그 나라의 완성을 거기 나타내셨고 이제 하나님의영이 부어졌을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죽임으로 교회를 정결케 하고 있습니다.지금은 교회가 외적인 고백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은 모르고 또 우리 마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했다가도 속상하면 뒤에 자기 마음데로 해석을 해버림으로서 이전의 봉사가 의미없는 방식으로 낮아짐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신약교회는 고백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목사들은 말씀으로 봉사하는 방식으로 봉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직관적인 판단력은 없습니다.이제 예수오사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언약공동체로 부터 배제된 것처럼 불의한 자는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고 동시에 우리안에 있는 모든 죄악들도 완전히 제거되고 온전히 정결케됨으로 그 나라는 완전한 빛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그섯을 신약교회가 설립되는 여기 마지막에 교회의 특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제 이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구별되었습니다.하나님의 영이 친히 임하셔서 하나님의 장막에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하셨던 것처럼 이제 그런 형식은 없지만 하나님의 영이 친히 교회안에 임하여서 하나님의 백성과 생명의 교제를 나누심을 거기 그처럼 나타내셨고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는 성도안에 참 사랑의 교제 한 영을 마시는 생명의 사랑의 교제여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것으로 형제에게 봉사함으로 참으로 사랑의 공동체로 나타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512절 이하에는 교회가 이 거룩한 교회가 어떻게 확대되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이제 사도들을 통해서 많은 이적이 나타났고 심지어 베드로가 지나가면 그 그림자도 뉘게 덮일까 하여 그렇게 함으로 그 병자가 낫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여기서는 베드로를 중심해서 12사도의 행적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꼭 베드로만 그러했다.그렇게 배타적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됩니다.그런데도 어떻든 베드로가 사도의 대표자로 있어서 베드로가 열쇠를 가진 자로 있어서 베드로를 통해서 이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기 사도들을 통해서 많은 이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32절에 설명하고 있는데로 말하면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 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여기 순종한다는 말은 말을 잘 들으니까 하나님이 무슨 선물을 주셨다는 제 2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을 그렇게 묘사합니다.그것은 로마서 1장에서도 믿어 순종케 하려 함이라. 참 믿음이 나타나는 것은 순종이어요.? 하나님만 창조자이고 우리들은 피조물이어요.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고 우리가 구원받은 죄인이면 참으로 하나님만 존재자요 우리는 하나님을 반영하는 의미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면 참으로 하나님을 순종함이 믿음의 본질입니다.그래서 믿는 자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는 말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 성령이 무슨 일을 했는가? 여기 사도들을 통해서 많은 권능을 행하셨다 그런 말이지요.여기 베드로를 통해서 일하신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었습니다.땅에서 친히 긍휼의 이적을 보이시고 참으로 예수께서 세상에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던 주님이 그의 영으로 교회안에 임하시고 사도들과 함께 하셔서 땅에서 행했던 이적을 다시 반복함으로 바로 땅에서 자기자신을 증거했던 주님이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사실을 그의 이적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이런 이적도 그저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만상을 지으신 우주적인 놀라움 가운데 살고 있어도 사람은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이런 이적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충격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택한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거기 나타내고 인치는 것입니다.주님오시면 완성될 나라는 창조된 세계를 완성하고 이 창조된 세계의 질서를 다른 차원의 높은 질서로 올리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방식이 아니라 참으로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에 그의 영으로 사시는 방식으로 이처럼 완성되있고 시간과 공간도 지금처럼 이런 것이 아니라 영원세계와 결합될때는 시간세계는 여전히 시간세계이면서 영원의 의미를 이 시간세계에서 나타내는 방식으로 그렇게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그러기때문에 지금은 중력의 법칙으로 무엇이 위에서 떨어지지만 만일에 주님께서 올라가셨던 것처럼 그것이 중력의 법칙을 넘어섰으면 그것은 단순히 놀랍다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과는 다른 질서로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을 거기 보여주고 있는 것이어요.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연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이적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되는 것이고 이 자연질서를 완성해 가는 것이 곧 이적입니다.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첫 창조를 지었습니다.아담의 죄로 인해 파괴적인 세력이 우주에 임했습니다.주님오시면 그가 지으셨던 세계를 그의 목표로 완성시킬 것이고 거기 완성된 목표는 처음 창조질서 보다 다른 차원의 생명 즉 에덴의 질서로 말하면 생명과에 나타났던 생명의 질서로 그렇게 완성될 것이고 이 창조의 세계의 완성과 그 본래적인 의미를 펼쳐보이는 것이지 자연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 많은 이적들을 행했는데 대제사장들 사두개인 당파들의 시기가 가득하여 그렇게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지만 주의 사자가 밤에 옥 문을 열고 끌어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주의 사자는 천사를 말하겠지요.사도시대까지는 천사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활을 하고 있어서 계시가 완성되도록 까지는 이렇게 친히 천사가 사람들에게 나타나서 역사하는 시대이고 이제 사도행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가 온전히 설명됨으로 마무리 된 뒤로는 이제 교회시대에 천사가 나타나서 무엇을 전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그래서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끌어내서 모든 사람에게 이 생명의 복음을 다 증거하라고 했습니다.여기 가서 계속해서 이적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데서 우리들은 많은 교훈을 받아야 되겠습니다.왜냐하면 이적은 말씀을 확증하는 언어요 표요 하나님은 사람괴 닌격적인 교제 가운데서 부르시고 교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심지어 우리들이 성찬식을 행할 때까지라도 성찬식의 의미가 설명되지 않으면 그것은 단순히 포도주요 떡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지금도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참으로 하늘이 밤은 밤에게 날은 날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이처럼 증거해도 그런 것이 사람에게 말씀의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사람은 우상섬김으로 법죄하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전파를 위해서 옥문을 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기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권세도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막지 못하도록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님이 침히 그의 사자들을 통해서 그의 교회를 보호하시고 그리고 그의 교회가 완성하도록 진행하는 사실을 여기 사도들을 석방시킨 사실에서 우리들이 알 수 있고 그리고 4장에서도 그들이 기도했을때 모인 곳이 다 진동하여 그들이 다 성령이 충만하여 시내산에 임한 주님께서 땅을 진동시켰지요.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로 합당치 않습니다.주님 재림하시면 진동치 않을 영원한 나라를 새우실 것입니다.그 분이 처음 거기 임하셨음을 진동하므로 나타났고 여기서는 옥문을 여심으로 그리고 생명의 말슴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하심으로 주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그의 교회와 함께 하는 사실을 여기서는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제 옥문에서 나와 성전에서 가르친 것을 보고 잡아다가 재판을 했습니다.재판하는 내용들을 보면 이적을 행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고 28절에 보니까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언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여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고자 함이로다그들의 죄를 부정하기 위해서 항상 그런 것입니다.세상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도 주님께서 세상을 죄있다고 정죄함으로 그렇게 된 것이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니까 자기가 하나님 앞에 정죄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함으로 출발합니다.그리고 교회가 죄인과 참으로 만나는 자리도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저외받을 자리요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자리에 있다고 하는 것이 곧 교회가 세상과 만나는 자리입니다.우리들은 그런 것을 피해서 사람을 교회로 살살 모으고 또 기분 상하지 않게 살살 말함으로 그를 기분 좋게해서 변회시키려 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요 성경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밖에 전할 것이 없다 하였는데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십자가에 죽으심은 인간의 심판을 하나님이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하나님의 의는 짐승의 죽음으로 나타나 있지만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이 가장 밝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들의 죽으심입니다.하나님의 의로우심 앞에 천사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천사도 아무리 죄지었다고 또 죄를 짓지 아니했다 할지라도 그도 하나님의 은혜로 지음을 받았고 은혜로 서 있는 피조물일 뿐 그가 거룩한 본질인 하나님 앞에 인간 천사라도 피조물은 설 수가 없는 것이지요.그래서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은 하나님의 아들만 그 의로운 판결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고 천사라도 그 의로운 판결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그래서 예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사람의 이해력이 어떻게 됐든지 간에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에서 자기의 의로운을 완전히 나타내셨고그렇게 함으로 세상에 구원의 길을 그렇게 열으신 것입니다.그러기때문에 세상은 곧 이것을 부정합니다.그래서 다 양심을 깨끗케 하고 종교적인 노력을 하고 지금은 안되지만 나중에는 될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 자기가 점점 노력하면 무엇이 되리라 하는 기대 가운데 살고 있지 인간은 하나님 앞에 정죄받은 죄인이요 원수요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그의 생명으로 접붇힘으로만 새롭게 되었다는 그런 구원에 대해서는 세상은 완전히 부정합니다.오늘 교회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가 부족한 것도 곧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주 예수의 복음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사랑이 완전히 대비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께서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확실하게 증거되지 아니하기 때문에 죄에 대한 개념도 희박하고 감사한 것도 없고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기 그들이 하는 말도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예수의 이름이 천하만민이 복종할 그런 구원자의 이름으로 증거되는 것을 그들은 싫어했던 것입니다.그들은 말로는 하나님 나라를 맡은 대표자들이어요.또 법적인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약속을 맡고 있는 백성이어도 그들은 혈육을 따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거듭 거듭 죄를 짓고 마지막에 죄를 지었던 것처럼 마지막에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처럼 그들의 죄를 가득채웠고 우리들이 고난주간에 배웠던 기사대로 하면 아들이니 죽이고 우리가 주인의 것을 상속하자 함으로 아들을 죽였다.이제 주인이 나타나면 이 농부들을 다 진멸할 것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아 열매맺는 백성에게 주리라 했던 것처럼 여기서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들이 아직 성령이 교회안에 부어지기 전 시대요 또 아들은 그런 일로 땅위에 오셨기 때문입니다.그러기때문에 인자를 용서하고는 용서를 받겠거니와 성령을 거역하고는 오고 가는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하리하 하는 사실이 지금 이스라엘의 대표자에게 적용됨으로 이스라엘의 미래를 여기서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제 하나님의 영이 친히 임하셔서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고 그리고 땅위에서 권능과 이적을 행했던 분이 이처럼 비천한 어부들을 통해서 땅위에서 행했던 그 권능을 같은 방식으로 반복해서 행하심으로 그가 참으로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해도 그들은 그 성령의 역사를 확고하게 부정해도 그들은 주 예수의 일을 완전히 거절하고 있는 것이고 그의 왕됨을 완전히 거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사도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항상 베드로와 사도들이 하는 말은 베드로가 사도의 대표자로 항상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 있는 것이고 이 사도행전은 유대인의 사도로서 베드로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 어떻게 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교회를 땅위에 세우고 확장시키는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행적이 중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사의 하나님이 실리셨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ㅎ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여기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는 말은 예수께서 마10장에서 이미 이런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016절 부터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들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심이니라.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니라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도는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 사도들안에 역사하셔서 그리스도의 행하심과 교훈을 일깨우시고 그렇기때문에 사도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이는 하나님의 영이시지 그들 자신의 이해력과 웅변술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바울 사도도 갈라디아서 1장 에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아들 자기 아들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때에 혈육의 형제와 의논하지 아니하고그렇게 말하고 그 복음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서 받았다고 그렇게 바울도 말하고 그 도에 대해서 저항하는 사람은 하늘의 천사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했습니다.그러니까 사도들의 말씀하심은 사도들의 단순한 경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는 성령이 증거하십니다.그러기때문에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마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여기 나무에 달아 죽였다 하는 말은 갈라디아서의 표현대로 하면 저주받은 죽음을 죽었다 하는 말과 같습니다.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괴 구주로 삼으셨느니라여전히 여기 사도들의 증거는 이스라엘을 향하고 있습니다.이제 바울 사도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증거되고 이방인을 하나님 나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끝까지 거절했을때 바울은 이 복음을 이방인에게 주신 줄을 아노라.그리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발의 먼지를 털었지요.끝까지 너희 죄를 채우는도다.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오셨고 성령이 임하신 것도 예루살렘에 임하셨고 처음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이어요.그리고 복음이 증거된 곳도 바로 이스라엘의 성전이요 회당에서 진행되었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아브라함과 그 씨를 중심해서 진행되었고 그 구원역사가 세상에 증거되도록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해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사도들의 증거를 보면 저주받은 죽음을 당한 예수,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지요.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갈라디아서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는 저주받아 죽었습니다.그래도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우리 조사의 하나님이 살리셨다.이렇게 말씀하고 있고 4장에서도 그들이 핍박했을때 3장 끝 25절에서도 그렇게 말씀했지요.‘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위의 모든 족속이 너희 씨를 인하여 복을 빋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먼저 전파괸 곳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이처럼 이스라엘은 어떤 혈통상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서 성별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이스라엘에게 보전되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에 증거되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의미로 특권적인 백성입니다.그들만 특수하게 다른 방식으로 구원받았다는 말이 아닙니다.그러기때문에 그들은 특권이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징계도 아주 심각해서 그들과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백성이 없지요.그래서 여기도 보면 참으로 저주받아 죽은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그전에 누가 그게렇게 했습니까? 그들이 그 죄를 지었지요.하나님은 아들로 십자가에 달아 저주받은 죽음을 죽게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셔서 자기백성의 죄를 끝내셨습니다.그런데도 그것은 그들이 그런 일을 행했습니다.그러니 그들은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아들의 죽으심 안에서 끝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예수께서 저주의 죽음을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은 그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진노를 완전히 충족시켰다는 하나님의 확증입니다.만일에 그가 여전히 자기백성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으면 그도 죽음의 권세에 갇혀있고 죽음의 질서를 벗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즉 조상에게 약속하신 구원이 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서 죄를 채웠어도 조상들의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셔서 그것이 그들에게 구원이 되게 히시려고 예수를 참 임금 곧 구원자가 되게 하셨습니다.곧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임금 메시야 구원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는 그냥 임금이 되고 그냥 구원자가 되신 것이 아니라 자기백성을 위한 죽으심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죽으심에 대한 완전한 보상을 통해서 그는 죽음의 질서를 완전히 넘어서고 그의 죽음이 자기백성의 죄를 대신한 것처럼 그의 부활의 생명이 자기백성의 생명이 될 수 있도록 그는 참으로 보좌우편에 취임하셔서 하늘과 땅위의 모든 뛰어난 이름 위에 높은 권세를 가지셨고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구주가 되셨고 바로 그 분이 우리를 톤해서 이런 일을 하신다고 32절에 말씀하십니다.‘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사도들도 증거했을 뿐아니라 사도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도 그 권능으로 증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요한복음 1526,27절에서도 주님께서 그처럼 미리 말씀하셨습니다.20절을 읽고 26절 부터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키리라’(20)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 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참으로 예수께서 땅위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은 그 분을 모시고 먹고 마셨던 사도들이요 그리고 성령은 친히 사도들안에 역사 하셔서 사도들을 통해 권능을 시행하심으로 친히 그 권능으로 증거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162절을 보면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그런 일을 지금 당하고 있지요.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치 않게 하려 함이니’ 16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복음이 증거되면 많은 사람이 회개할 줄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그래서 베드로가 기도를 많이하고 설교를 하니까 3천명 5천명이 회개했으니까 그래서 산에 가서 40일쯤 기도하고 내려오면 무엇이 이루어질 줄 알고 눈이 부리부리해서 내려오지요.그런 것은 모두 신성모독적인 죄요.참으로 믿음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예수가 40일 금식하신 것은 백성의 중보자로 대표자로 시험을 받으신 것이고 아담이 첫 시험을 받으신 자면 예수는 둘째 아담으로 시험을 받으심이고 그리고 그 앞에 있었던 모세나 엘리야는 곧 예수를 표상하는 인물로서 하나님 나라의 설립자로서 그때 중보족인 직임이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그 실제는 예수안에 이루어진 것이고 다시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우리가 80일을 굶어도 마귀가 놀랄 것이 없지요.그러니 예수가 행했으니 나도 행하자는 방식으로 그 행하심이 곧 우리의 구원이요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금식할 필요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신랑으로 오셨는데 마치 굶어야만 무엇을 받을 것처럼 하는 것은 실은 복음에 풍성한 것이 아니라 더 낮아지고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옳은 일이 아니어요. 그리고 베드로가 이처럼 큰 권능으로 행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설립되고 우주적인 방식으로 확대되는 표적적인 방식이요 복음의 설교가 될 때마다 꼭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실은 바울 사도처럼 가는데 마다 세상의 연병장이로 두둘겨 맞고 도망친 사람이 없고 그리고 바울이 설교했을 때 까지라도 조롱하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돌아서는 무리가 있고 항상 그런 양쪽의 방향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여기 택한 백성들은 많은 사람들이 들었지만 성경을 잘 아는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은 끝까지 그들의 죄를 채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세상이 구주를 거절합니다.이 세상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참으로 신령한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알지를 못합니다.그러기때문에 복음이 선포되면 택한 백성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증거로 택한 백성만 감사하고 눈물흘리고 돌아오고 그 나머지 사람은 그 도가 마치 자기들과는 무관한 듯이 이를 갈든지 그런 방식으로 반응을 달리 보이는것이고 지금 우리들이 복음을 설교해도 참 그런 저런 반응이 약한 것이 우리 설교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그러기때문에 죄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크게 회개함도 없고 묘하게 되어 있어요.그런 것은 오히려 복음선포가 잘못된 것이고 복음이 복음데로 증거되면 옛본성은 견디지 못하고 복음이 복음대로 증거되면 복음이 옛본성을 심판해 버리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다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참으로 그것은 두려운 일입니다.예수오시면 죄의 질서가 다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증거되면 옛본성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그러니 참으로 복음을 듣고 택한 백성으로서 회개치 아니하면 오히려 복음은 인간을 더럽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율법의 기능이 옛본성을 일으켜서 죄로 심히 죄되게 한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그렇게 완악하게 함으로 옛본성을 심파해 버리는 것이어요.그러니 우리가 누구 말을 듣고 있는가를 조심해야 하고 그리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무감각할 때도 그 죄가 악한 마음으로 나타나지 않느니까 나는 중립이리라.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사랑하신 은혜를 말할 때까지 우리 마음이 낸냉하면 곧 그것이 어두움의 방법임을 깊이 잘 생각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중간은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대해서 마음의 감각이 무덤덤함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도덕적인 죄르르짓지 않고 있으면 마치 자기는 중립이나 되고 괜찮은 것으로 자기를 판단하는 것이 어둠의 비밀입니다.하나님과의 교제는 기쁨이요 생명이요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은 결단코 없습니다.그러니까 나쁜 본성만 드러내는 것이 죄고 그냥 무덤덤하니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괜찮은 걸로 해서는 안되고 우리가 그런 삶을 살기 때문에 주일 오후의 삶이 그렇게 피곤한 것입니다. 옛본성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옛본성은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그러기때문에 생명력이 소멸되는 것처럼 오후 내내 누워서 잠을 잘 지라도 힘이 쭉 빠져 버리지요.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면회만 해도 기쁨이 넘치는 것인데 왜 우리가 그렇습니까? 왜 우리가 교회로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도 그러는가? 그섯은 복음을 잘못선포했든지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하나님을 예배했는데도 자기자신이 잘못되었든지 그런 이유들입니다.참으로 두려운 일이지요. 어떻든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사도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성령의 가르침으로 이제 합당하게 증거하고 그리고 사도를 통해서 친히 주님께서 친히 권능을 행하심으로 성령이 증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렇게 해서 땅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그냥 이 사람들이 열이 났습니다.왜냐하면 자기들의 죄를 완전히 판결하고 있거든요.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습니다.그런데도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구주와 임금으로 삼으셨으니 그들이 회개하고 믿으면 조상들의 약속 영을 따라 사는 새 생명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요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가 있는 것입니다.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드 말을 듣고도 회개할 수가 없었습니다.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이익과 소망은 끊어진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그들의 죄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오히려 그 말이 그들을 겸손케 하고 회개케 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일으켜서 사도들을 없이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주도적인 인물들은 17절에 보니까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당파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성전 맡은 자들입니다.그런데 여기 변호하고 있는 사람들은 34절에 바리새인 가말리엘은바리새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베드로가 증거하고 있는 것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그저 우리들이 죽였다.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들을 위해서 죽으셨으니 얼마나 아프셨겠는가? 그런 감정을 자극해서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로 하나님의 신령한 통치가 임한 것이고 예수의 부활로 새생명이 주어진 것이라. 이제 우리들이 옛 조상들의 옛날 방식이 아니라 지금 새로운 생명이 질서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아들안에 있는 새 생명으로 우리를 구원하심이라.그것이 곧 복음의 진리입니다.그의 죽으심은 그의 부활을 위함이고 곧 그 부활이 곧 참 복음이어요.그런데 우리가 부활의 의미를 부활절 때만 조금 생각하고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만 조금 짠하다는 의미로만 생각하고 있지요.못박히셨으니 얼마나 아프셨을까? 아파서 우리를 구원하심이 아니라 그가 법정에서 하나님의 판결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심이지 그가 많이 아팠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어요.그런데 고난주간이 되면 밥이나 한 끼니 굶고 그 굶은 것으로 누구를 구제하자.그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먹어야 되지요.누가 하나님이 우리보고 굶고도 다른 사람을 구제하라고 그랬습니까? 물론 어려우면 굶고도 나눠 먹을 수 있겠지만 그런것은 소위 외식자로 만드는 방식이고 옳은 일이 아닙니다.그 한끼 굶어 가지고 되겠어요.자기 집에 돈이 얼마나 많은데! 얼마나 가증한 방식을 교회가 만드는지 몰라요.그래서 그 종교성을 기분 좋게 해서 무엇인가 한 것처럼 그것은 아주 사악한 방식입니다.그렇게 해서는 안되지요.차라리 부활절이나 교회절기가 되면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구제헌금을 하면 좋겠다.보통 헌금을 해서 교회제정을 보충하는데 물론 교회제정도 중요합니다.복음을 봉사하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지요. 여기보니까 바리새인 가말리엘이 변호하고 있습니다.나중에 바울 사도의 행적들을 보아도 변호사들은 바리새인입니다.바울이 증거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이거든요.그래서 그 때 잡혀서 죽을 뻔했습니다.그때 바울이 말했습니다.부활의 소망 때문에 내가 이 꼴을 당하는도다.그러니까 거기 모여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 사두개인 두 파였거든요.그때 바리새인들이 천사가 저 입을 통해서 말한다면 어쩌겠느냐? 그래가지고 사두개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 하도록 바울을 빼앗았습니다.그래서 바울이 그 위기를 벗어 났어요. 여기서도 보면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이렇게 진행되고 있어요.악이 한꺼번에 연합되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가 견디겠습니까? 물론 예수가 오시기 전에는 이스라엘만 하나님 나라요 운 세계가 어둠의 권세 가운데 있었습니다.그때 까지만 하더라도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을 지키셨기 때문에 그리고 세상 권세들이 서로 자기 경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꺼져가는 등불로라도 남아 있었던 것이지요.그리고 오히려 바벨론으 심판하고 페르시아는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지요.물론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쓴 것도 있지만 그들이 정복했던 피지배국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자기들의 통치적인 방식 때문에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어떤 나라 사람들은 이 나라 사람을 정복하면 이 나라 사람은 더 멀리 이민 시켜서 뿌리를 없애 버리는 방식들도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자기 나라에 살게 하고 모든 종교적인 지위를 주고 그러면서도 국가신을 섬기도록 로마가 국가신을 섬기도록 한 것처럼 국가신을 섬기도록 하는 방식들도 있고 그런 통치적인 방식 때문에 이전에 있었던 원성들을 없애고 국민들을 화합시키려는 방식으로 그런 방식들이 있지요.

예수가 죽으실 때는 헤롯 당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이 한 패가 되어 가지고 예수를 죽였지요.그들의 죄를 가득 채웠지요.그러나 여기서 보면 주님 오시도록 까지는 죄가 그렇게 통일된 방식으로는 교회를 핍박하지 못합니다.이제 주님 오시기 전에 악한 사람이 나타나면 악의 비밀이 나타나면 즉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선한 통치질서는 사라지고 오히려 이 통치질서가 악의 화신으로 인류를 재 규합하는 빙식으로 정권이 진행되면 그때는 의로운 질서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어요.그때는 악이 한 인격 안에 통일되고 그렇게 하므로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그 전까지는 악은 그렇게 연합하는 방식으로 교회를 핍박하지 못할 것입니다.교회가 선교적인 기관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세상의 세력들은 공중의 권세잡을 자는 이미 그 머리가 밟혔고 아직도 그 잔당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있지만 우주적인 세력으로 왕적인 통치로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여기 사두개인들이 예수의 제자들을 죽일려고 그렇게 했어도 여기 변호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예수믿는 사람이 아닙니다.그는 바리새인 가말리엘 로서 그는 교법사이고 유명한 학자인데 그들 중에 일어나서 이런 저런 말을 했다.그러니까 하나님이 자기 교회를 보살피는 비밀은 친히 자기 권능으로 옥문을 열 뿐아니라 원수의 입을 통해서 까지라도 그들을 조절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자유케 해서 이처럼 교회로 선교케 하시는 것입니다. 단지 이런 저런 꾀를 교회가 내서는 안됩니다.만일에 여기서 너희들이 다시는 이 이름으로 증거하지 말라’ ‘예 알았습니다그리고도 나가면서 갈릴레오처럼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것은 교회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가령 여인들이 정조를 지킬 때 까지라도 생사를 걸고 하는 것이지 남편 얼굴 안 보이니까 그런 척하다가 남편 얼굴 보이니까 여보 여보 부르고 이 사람이 그랬다고 하는 방식으로는 여인들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할 것 같으면 나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너희를 부인할 것이고그렇게 분명히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선배들도 말하자면 신사참배 당시에 백지를 내놓으면서 여기 손도장만 찍고 가거라.가서 신사참배 하내 마내 말하지 말고 손도장만 찍고 가거라.그런 일에 있어서도 거절했던 것이지요.왜냐하면 거기에도 그들의 요구하는 바가 있었거든요. 그러면 그들도 신사참배 안한다고 약속할 것이 없이 그냥 도장만 찍고 나가니까 얼마나 돌아가면 좋아요.돌아가면 처자식이 있고 이북같으면 얼마나 감옥이 춥겠습니까? 다 감각이 있는 것이지요.그래고 다 그 일을 거절했던 것이지요.악한 일에 있어서는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는 일에 있어서는 순수했습니다.조금이라도 어둠이 없이 완벽한 방식으로 고백을 했어요. 그래서 다 핍박과 고나들을 받은 것이어요.

그러기 때문에 교회가 스스로 꾀를 내서는 안됩니다.참으로 참새 한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라도 떨어짐이 없느니라.너희들은 머리카락 까지라도 세신바 되었으니 염려하지 말라.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너희 영혼을 지옥 불에 떨어 뜨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마태복음 10장에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제자들이 당할 고난과 하나님의 보호를 그렇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그리고 너희들이 귀에 듣는 것은 큰 소리로 그리고 어두운데서 듣는 것을 지붕위에서 전파하라.그들이 주님 살아계셨을때 듣는 것은 어두운데서 듣는 것과 같고 귀속으로 듣는 것과 같습니다.그러나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진리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이 그들에게 설명이 되고 증거될때 귻은 지붕위에서 그리고 여러 사람이 듣는 것과 같은 것이어요.그러니까 그들은 이처럼 확실한 말로 증거했던 것이어요.

가말리엘이 이야기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여러번 거짓 메시야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이방민족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바로 메시야의 약속을 믿는 열렬한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당을 만들어서 그가 이스라엘 구원자라 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면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들떴습니다.이 사람이 우리의 구원자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능력있는 구원자를 원했거든요.또 이방인의 권세에서 민족을 구원할 자를 원했습니다.죄로 부터의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고 자기들은 죄가 없는 줄을 알았습니다.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일어났을 때마다 로마의 권세가 더 크지요.그래서 그들이 다 죽었고 또 그들을 따르먼 사람들이 다 흩어지고 그 도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38절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말고 버려두라.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하니 이 가말리엘의 말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산헤드린 공회는 이런 판결권을 갖는 권위가 있어요.그래서 이스라엘로 부터 거짓된 선지자를 구별해서 죽이고 그리고 신명기를 보면 어느 성읍이 거짓 선지자를 받아들였는가 그것을 사실해서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그 성읍을 불 질러라.그렇게 하나님이 친히 이 회의를 통해서 통치하고 계셔요.그렇게 막강한 권위를가지고 있습니다.이들이 실은 예수도 판결해서 십자가에 내어 주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놓고도 여기서는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따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죽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그 지도자를 죽이면 끝나는데 이 도는 더 숫자가 불어나고 이제는 야단입니다.그래서 그런 핍박을 면하고 그렇게 하려고 해서 꾸며낸 타협책이지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는 아닙니다. 그런데 가말리엘은 이 사두개인들에게 대한해서 증거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왜냐하면 베드로가 부활을 증거하고 있으니까요.그리고 다른 모든 도들은 지도자가 죽으면 다 없어졌는데 이 도는 그렇지가 않거든요.그래서 이 결과를 더 두고 보자.그런 방식으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어떻든 이렇게 가말리엘은 원수의 회중에 있어서 사도들을 살리는데 한 역활을 했지만 오히려 그 입의 잘못된 말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새우는 것이 아닙니다.예수는 단순히 땅위에 있어서 권능과 이적을 나타낸 사람이 아니라 그는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서 그의 교회는 참으로 세상을 덮을 것입니다.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심판하고 뜨인돌이 태산을 이루었던 것처럼 이 세상의 나라는 망할 것이고 이 세상의 나라가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그러기때문에 이도는 세상에서 없어지지 아니하고 이 세상이 새롭게 되기까지 하나님의 나라는 확대될 것입니다.복음은 매이거나 파괴되는 법이 없습니다.

이처럼 원수의 입을 통해서도 그 나라의 특성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지금도 제가 안타깝게 느끼는 사실들이 그것입니다.지금 우리가 물론 상대적인 해석을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하나님의 복음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교파적으로는 타락해도 복음으르증거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있지요.신실한 남은 백성들은 있는것입니다.단지 우리가 판단하는 것은 법적인 것이어서 교파적으로 그러면 아니라고 구분짓는 것 뿐이지 38선 이북에는 다 공산당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그런데도 거기도 민간인이 있다고 내 마음데로 판결하면 안되지요.그런것 때문에 우리들이 교파적인 것도 있는 것이고 교제에 있어서도 조심할 것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그래도 여기저기 하나님의 백성들은 있는 법이어요. 그런데도 이 복음의 도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꾸준히 진행되면 말하자면 우리가 쫓아냈던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와 교제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우리와 교제가 없더라도 하나님은 여기저기 자기백성들을 두시는 것이거든요.꼭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그런의미로 우리들도 우리가 아니면 세상이 망할 것처럼 놀랠것이 아닙니다.여기저기 신실한 백성들이 있어서 만나보면 참 감사하지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복음은 비천한 어부들을 통해서 증거괴었어도 그들의 주님은 영화로우신 주님이십니다.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시요.그는 참으로 이세상의 임금을 밟는 주님이십니다.이 세상의 임금이 예수의 죽음으로 공중의 권세잡은 자리에서 쫓겨났고 그 권세는 파괴되었습니다.보좌우편에 취임하신 그 분은 하나님의 권세를 시행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셔서 그가 만물을 지으신 분이요.그가 만물의 완성을 위해서 그의 교회르르 부르시고 지키시고 확장시키시는 그 분이십니다.하나님의 교회를 파괴시킬 세력이 없습니다.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것을 금하고 놓으니아마 사도들이 예 그러겠습니다 하고 나온 것은 아니겠지요.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저희가 날마다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교회는 핍박 때문에 없어지지 않습니다.오히려 사도들은 핍박을 기뻐했습니다.그전에는 예수가 고난을 당했을때 계집종이 책망했을때 비굴해서 도망쳐 버렸지요.그 비굴한 나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충성스러운 종으로 삼으셔서 특히 요한복음을 보면 베드로가 얼마나 말씀했습니까? 여러번 주님께서 권고했습니다.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치도록 의탁했습니다.주님은 사랑의 주로서 영원히 저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이제는 그가 쫄병이 아닙니다.이제느느그가 주님의 고난에 그의 몸으로 참여할 만큼 그를 신실한 종으로 여기셔서 이 고난을 받게 했으니 예수가 당했던 그 재판의 자리에 예수의 제자로 서서 그를 증거하도록 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이 이제는 이처럼 종 취급을 해주는가! 그는 너무 감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것이 복음을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렇지 못합니다.처음에는 고난을 잘 당합니다.그 다음 다른 일을 당하면 자기는 이미 재대한 사람이어요.그전에는 내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이렇더라고 이제는 괜찮아요.그러니 옛날 추억담이지요.6.25추억담.그러면 비슷하게 되어 있어요.그리고 자기는 이미 모든 시험을 다 끝내고 천당에 가 있는 것처럼 왕이나 되어 있어요.재대군인이어요.몹시 잘못 되어 있어요.선줄로 생각한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되고 우리들은 이런 육체적인 핍박이 아닐지라도 고난의 영을 따라 삽니다. 우리안에 거하시는 영은 세상에서 거절당한 영이어요.세상은 예수 앞에 경배하지 않습니다.그러므로 우리안에 계신 영은 고난의 영이어서 고난이 곧 우리의 상급이어요.그래서 우리는 그 영광에 참예하는 것입니다.영광받으신 주님이 세상에서는 거절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안에 계신 주님은 자기를 거절하는 세상에서 탄식하시며 눈물 흘리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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