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도행전 강해
성경: 사도행전 7:
여기 6장 이하에서는 핍박을 통해서 교회가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런 방식으로 유대지경을 넘어서 교회가 설립되기 전에 바로 그 기초가 여기 6장 7장에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음은 유대인만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세우심은 유대인의 하나님이 곧 천지를 하나님이시요 세상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이심을 세상이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을 봉사하도록 그들을 세웠던 것이지 그들만의 어떤 특권을 위해서 세웠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곧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율법의 빛을 따라 세상에 증거 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의 땅 밖으로 옮기셨어도 하나님은 아담의 죄에도 불구하고 곧 그 죄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첫 창조에 나타나지 아니하는 죄인을 용서하는 그 무한한 은혜가 찬양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역사를 진행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 언약에 영원히 진실하셔서 이스라엘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언약의 땅 밖으로 옮겨짐이 곧 세상에 구원의 빛이 증거 되게 하셨고 그러므로 바벨론 궁전애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높으신 하나님으로 증거 하는 사실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흩으심이 곧 이방 땅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증거 되는 방식으로 역사가 진행되었던 것이었고 특별히 알렉산더 대왕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 가지 특권을 소유하고 알렉산더가 정복한 도시를 건설하고 그렇게 흩어져 있었는데 그것까지라도 하나님이 구원역사 가운데서는 곧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증거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들이 증거 했을 때도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면 거기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따라 그 예비한 언약 백성이 거기 있고 그리고 그 언약백성의 증거를 따라 다신교로부터 돌아와서 이스라엘처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돌아서는 경건한 이방인들이 있고 그것이 사도들의 전도의 무대였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은 이처럼 그의 구원역사 천하 만민을 자기 교제로 회복시키는 구원역사가 진행되었을 때 그것이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 도달하면 그것이 역사적 사실로 나타나서 모든 사람이 보고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되지만 그 씨는 처음부터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아주 중요하게 하나님의 구원역사에서 획기적인 전기로 설명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새 인류의 조상으로 성별하시기 전에도 하나님은 천하 만민 중에 그의 구원의 은혜를 증거 했던 사실을 우리들은 아브라함 이전의 시대에서 먼저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시점은 역사의 출발점이면서도 그것은 역사의 모태로서 못자리로서 역사의 종말을 거기 품고 있는 것이어서 오히려 역사의 처음에 역사의 종말이 더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마지막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에덴의 질서를 가지고 설명을 하고 거기 생명수가 길 가운데로 흐르고 생명나무가 길 가장 자리에 기득하고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6장 7장에서 하는 말씀도 그런 내용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약속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어서 하나님의 영이 친히 사람과 함께 거하는 그래서 사람이 옛 본성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의 새 생명의 본성이 되는 방식으로 새 인류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옛 언약질서에서 약속하신 것이어서 옛 언약질서에서 하나님이 자기백성과 함께하는 그런 표상으로 오순절 다락방에서 하나님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그리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형상으로 임하셨고 그리고 각 나라에서 모인 경건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자기나라 말로 들음으로 이제는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 안에 한 혈통으로 새롭게 지어지고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는 새 인류가 거기에 나타남을 증거 했습니다. 구약 때는 그런 약속이 하나님께서 새우신 중보적인 직임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셔서 그가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증거함으로 나타났지만 이제는 그런 대표적인 직임자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께서 참 중보자가 되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백성에게 그의 영이 임하여서 이제는 영을 따라 사는 새 인류가 나타나서 이제는 각자 자기 말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보았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일들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도달했다고 바울이 설명을 했었습니다. 그것은 새 인류의 나타남이어서 사랑의 공동체로 그래서 여러 환경적인 차이가 있는데도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신실하게 헌금함으로 부족함이 없이 그런 사랑의 공동체를 떡과 포도주를 나눔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으로 서로 한 몸의 교제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졌고 그 사랑의 공동체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으로 친히 임하는 성전의 구조여서 마치 아론의 두 아들들을 성전에서 죽였던 것처럼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땅 언약의 당 가나안에서 아간을 죽였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심판하심으로 곧 그의 영을 부음 받은 교회는 새 인류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 성전인 사실을 거기 그렇게 증거 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친히 그의 영으로 교회에 임재하셨을 뿐 아니라 자신이 땅위에서 행하셨던 그런 권능의 일들을 사도들 안에서 시행하심을 통해서 바로 12족장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구약의 교회였던 것처럼 바로 주님께서 친히 12사도로 설립되는 그의 교회 안에 함께 하시는 사실을 그의 권능의 역사를 통해서 그처럼 증거했었습니다.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사는 새로운 질서 가운데 들어섰기 때문에 이제는 이전처럼 그렇게 실패하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께서 죽기까지 신실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일들을 증거하고 했던 것처럼 바로 그리스도의 영을 다라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했던 이스라엘의 공회 앞에서 신실하게 증거 하는 그런 신실한 승리하는 교회로 거기 서 있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여기 6장에 보면 그 교회에 이런 저런 분쟁이 생겼는데 그것은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 분쟁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도들이 편파적으로 구제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그들 마음에서 그런 생각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 사도까지라도 이방인을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부름 받은 일에 열쇠 역할을 해놓고도 나중에 그 진리를 따라 신실하게 서지 못함으로 바울 사도에게 면책 받은 일도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다 같은 아브라함의 혈통이기 때문에 아마 베드로에게 그런 실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백성들 안에 있는 불만이었고 바로 그 불만 때문에 교회는 서로 이것 저것을 나눔으로 일어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친히 권능으로 역사하심으로 새로운 인류 새로운 가족으로 지음으로 교회가 되는 것이지 만일에 그것이 약해지면 그들이 아무리 먹고 마심을 함께 나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참으로 하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사실이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 더 나타났고 이제는 사도들이 세웠던 교회가 사도적 직무를 대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교회에서 세움으로 이제 하나님이 친히 불러 세웠던 사도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뜻을 교회가 받들고 그렇게 해서 주의 영이 임한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사도적 직무를 대행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7명을 택했던 사실을 여기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가 이제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런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새우신 그리스도의 종들이지 사도들을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보면 사도들은 자기들의 직무는 곧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무해서 참으로 하나님의 신령한 교회를 세우는 일이 그들의 일들이요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그런 새로운 인류로 성숙하는 것이 여기 일곱 명 구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세움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 세운 일곱 명은 히브리파 유대인 보토 유대인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당했다고 스스로 느꼈던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들 중에 이런 신실한 자들을 세움으로 이제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벌써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 되는 기초가 이방 땅에 있는 유대인들이 이제 본토 유대인들을 봉사할 수 있는 그런 신령한 자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이런 사건에서 토대가 놓여져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도행전의 구조는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설립되고 발전하는가 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이 옛 언약질서에서 어떻게 유대인들을 다스렸는가, 그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았을 때만 여기 일곱을 세운 의미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유대인들 사이에서 땅의 경계가 없어졌습니다. 그것까지라도 이들에게는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한 성령을 마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 안에 무엇인가 알력이 생겨서 이방 땅에서 왔던 유대인들이 본토 유대인들을 원망했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골은 얼마나 깊은가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구원섭리를 따라서 여기서 배경이 다른 유대인들을 하나로 연합시키고 오히려 멸시받았다고 느꼈던 그런 형제들을 형제의 짐을 짊어지는 신실한 종들로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충만히 부으셔서 세우심으로 그리고 이제는 교회가 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그런 형제들을 구별하고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랑이 형제들의 수고를 통해서 감당될 수 있도록 함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지체로서 거룩과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교회로 여기 설립되고 있는 사실을 증거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이 일 때문에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날로 흥왕해서 더 많은 수의 제자가 늘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확대되었는가. 무엇 때문에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해서 그렇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질서에서도 ‘있을 지어다’ 하는 권능의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친히 교제의 말씀으로 말씀하심으로 그를 하나님과 교제하는 언약질서 안에 세웠던 것처럼 여기 하나님의 교회를 새롭게 지으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 권면의 말씀 곧 권면의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그들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게 함으로 하나님의 새 창조의 말씀 복음의 말씀이 이처럼 허다한 원수들의 무리들을 정복하고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복음이 확대되는 이유들은 천하 만민을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났던 모든 대적자들을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의 권능을 따라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새 인류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를 운행하시고 완성시키실 것인가 하는 사실들을 여기서 이러한 방식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일에 있어서 수고했던 사람들을 여기서는 스데반과 빌립을 대표자들로 들어 설명하고 있고 그리고 나서 언약의 땅 밖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음을 확대 시키셨는가 하는 문제를 베드로를 중심해서 고넬료를 부르시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바울을 세우셔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대대적으로 받아들여 지게 되는가 하는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데반과 빌립이 수고했던 영역은 어떻든 사마리아 땅까지여서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 아브라함의 혈통이요 그런 의미에서 다 아브라함의 혈통에 포함이 되었던 백성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마리아 백성들이 먼저 잡혀갔고 그랬지만은 그리고 돌아온 사람들은 유대인을 대적해서 거기서 그런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경배했고 그런 의미로 통해서 성전으로 경배하러 왔던 경건한 유대인들 그 경계를 넘어서서 이제는 사마리아 사람들 거기까지는 어떻게 보면 다 유대인들이 수고했던 영역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7,8장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제일 처음에 수고했던 사람으로 스데반을 특별한 대표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와 바울을 설명하고 있는 이유도 베드로는 갈라디아서 2장에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에게 보내신 사도요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보내신 사도여서 바로 그 복음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증거 되는가를 하나님이 세우신 그 종을 통해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고 모든 사람들의 행적을 다 기록하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의 목표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개인들이 어떻게 경건했는가를 먼저 말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하나님의 계시기관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하는 계시기관으로 왜냐하면 사도시대 가지는 계시시대이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그들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영으로 일하셨는가를 먼저 살피고 그렇게 했을 때만 바로 그들 안에서 일하셨던 그리스도의 영의 증거를 따라 그들의 삶의 방식을 우리가 바르게 파악하고 설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스데반을 말로 예를 들고 있는 것은 스데반이 제일로 훌륭했다는 그런 의미로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든 여기서 하나님의 복음전파를 위해서 그 복음전파가 이제는 사도가 아니라 그 교회에서 신실하게 증거된 방식은 유대 땅에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이방 땅에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복음의 처음 전파는 사도들이어도 교회가 하나님의 복음전파를 대적했던 이스라엘의 공회 앞에서 그들의 주를 고백했던 것은 이방 땅에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어요. 왜냐하면 참으로 어느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친히 언약을 새우시고 그들을 인도하셨어도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봉사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초대교회에서 많은 장애요소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더 이해하는 방식에 성숙하지 못해서 그들은 예수 안에서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 사실을 알지 못하고 주후 70년에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를 따라 성전을 파괴하고 그들을 흩으심으로 옛 제도를 다 그들을 흩어 버리기 전까지 그들은 여전히 옛 제도와 함께 주 예수를 구주로 그렇게 경배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복음이 복음의 의미로 그리고 천하 만민이 하나님의 교제에로 회복된 그런 복음의 의미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을 거룩한 땅으로 구별하시고 아브라함을 새 인류의 조상으로 성별하셨을 때 그것은 온 땅을 다시 하나님의 거처로 그리고 천하 만민들을 자기교제에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약속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형태로 그렇게 주어졌던 것이지 그것이 완성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완성은 오히려 이방 땅에서 출생하고 그 문화배경에서 커나갔던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주적인 하나님으로 자신들을 구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성소에만 계시지 않고 참으로 자기백성과 함께 하셨던가 하는 문제들을 설명하는 사실에서 성경은 확실하게 증거를 하고 있고 이제 그 일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세움을 받은 분이 바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스데반의 증거는 그런 의미로 복음의 완전한 변호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별히 그 복음의 변증도 구원함의 은혜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보다도 이제는 유대 땅을 넘어선 구원 그리고 성전의 제도를 넘어선 구원의 의미가 여기 이방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을 통해서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증거함을 통해 그 토대가 확실히 놓여지고 바로 이 스데반의 증거에 주님께서 보좌우편에 서셔서 그의 신실한 증인을 하나님 앞에서 증거하고 그의 증거에 친히 그가 역사하심을 통해서 그 증거를 여기서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기 7장의 의미를 조금 보십시다. 6장 15절에 보면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하는 사실은 스데반이 아주 훌륭하고 그가 성령으로 충만해서 보좌우편에 계신 주님을 뵈었기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하면 그런 환상도 보는 것이고 그러면 얼굴 빛도 환한 것이고 혈색도 좋고 그런 의미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마치 구약에서 하나님게서 천사들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에게 자기 은혜를 알리셨던 것처럼 이제 주님께서 친히 그의 신실한 종을 천사와 같이 그런 존귀한 모습으로 세우시고 배반하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증거 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바릅니다. 7장을 보십시다. 그러면 스데반이 고소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율법을 거스렸으며 이 거룩한 곳을 훼방한다. 바로 예수께서 고소를 받았던 그런 이유가 스데반이 고소받았던 이유입니다. 바로 이 두가지 이유 때문에 여기 7장에서 스데반이 변증하고 있습니다. 변증하는 방식의 중심점은 7장 51절에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하는도다’. 여기 51절부터 53절까지가 결론이고 따라서 이 결론이 스데반이 변증하는 중심입니다. 너희들이 대대로 하나님을 거역했도다. 어떤 면에서 거역했는가? 세우신 지도자를 거절함으로 거역했고 그 거역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한다는 표로 주어졌던 그 은혜의 제도까지라도 너희들에게는 무익하도다. 예수께서 장사하는 집이요 강도의 굴혈이었도다 한 것처럼 너희들이 말로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시요 모세의 율법아래 있도다. 이방인에게는 그런 율법이 없지만 우리는 그 율법아래 있도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이 있어서 이 곳은 이방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곳이요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그들 조상과 그들에게 율법 있음과 성전 있음 이 세 가지가 그들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스데반을 고소한 이유도 율법을 훼방하고 성전을 더럽히는 방식으로 모독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씨라 하는 사실은 스데반도 같기 때문에 그런 말은 안 하고 있어도 말하자면 그들의 자랑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고소했고 재판하고 있는 것이어요. 구약에 보면 예레미야도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도록 심판하셨을 때 그 당시 봉사한 사람이 예레미야인데 예레미야도 고발당한 이유가 이것이었습니다. 이 거룩한 곳을 훼방하는도다. 예레미야도 하는 말이 ‘이곳이 거룩한 전이다’하는 것을 잊지 말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구원을 얻었나이다. 무엇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가. 마음 놓고 죄를 지으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그러니 어떤 죄를 지어도 그들의 구원에는 상관없지 않아요. 그리고 이 곳이 거룩한 전이다. 아니다. 창기의 굴혈이다. 그래서 시위대의 뜰에 갇혔습니다. 왕의 특별 옥에 갇힌 것이지요.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다 핍박을 받았던 이유가 다 이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의 제도 아래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죄악을 짓고 있었을 때에 믿음으로 따라 산 적이 있느냐? 또 너희들이 이것이 거룩한 성전이다. 거룩한 성전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집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요 너희들이 멸시하는 이방 땅에서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애굽에서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집을 지어주었지만 너희들이 범죄했을 때 너희들을 바벨론 땅으로 옮겨 버리지 않았느냐? 그 집도 다 불사르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희들은 이 집에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하느냐? 너희들이 하나님께서 중보직입을 통해서 너희에게 알리셨을 때 바로 그 하나님과 바른 교제 질서 가운데서 살면 그 집이 유효하겠거니와 그렇지 못했을 때 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넘어짐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은 역사의 처음부터 사람이 만든 집에 있었던 것이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시는 증거도 거기 자기의 임재의 표를 두었던 것이지 하나님이 그렇게 어떤 집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희 역사를 보았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이라도 하나님을 순종한 적이 있었는가? 그 죄를 너희들이 채워서 모세와 선지자들이 증거 했던 그 분을 죽였고 지금 그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중보자로 세웠지요. 요셉을 거절했어도 요셉이 그들의 구원자였던 것처럼 모세를 거절했어도 모세가 그들의 구원자였던 것처럼 너희들이 거절한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러니 그 분을 섬기는 일이 옳은 일이고 너희들이 우리들이 말로는 율법을 따른다. 이 전에 거한다 하면서도 너희들이 전반적으로 그 제도의 의미를 거절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방식으로 설교했기 때문에 그들이 그들의 양심의 찔림 때문에 견딜 수 없어서 이를 갈고 그래도 그전에 예수를 심판했을 때는 너무 유명한 인물이라서 말하자면 합법적인 질서를 밟았습니다. 또 예수는 그 합법적인 질서로 세상으로부터 정죄 받은 것입니다. 그냥 우연히 죽은 것이 아니라 사악한 사람들이 자기 분노 때문에 죽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합법적인 재판을 받아서 이 세상이 그를 거절했습니다. 유대인의 공회도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한다 해서 신성모독죄로 정죄했고 당시 세계제국이 로마법정이 예수를 죄인의 괴수로 정죄를 해서 그는 이 세상으로부터 온전한 질서로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까지라도 큰 권능과 이적이 있어서 그런 데로 보호를 받았는데 여기 교회가 복음을 증거했을 때 보면 어떻게 보면 스데반은 교회 안에서는 유명해도 유명한 인물이 아니고 본토 유대인도 아니고 그들의 죄가 이제는 거듭 거듭 찼어요. 인자를 거역하고는 사하심을 받아도 성령을 훼방하고는 사하심이 없다고 그랬는데 이제 주께서 그의 영을 부으시고 사도들을 통해 증거하시고 그렇게 해도 회개하지 않은 심령은 더욱 사악해 지는 것이고 죄의 본성이 제대로 발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너무 너무 흥분해서 재판이고 뭐고 할 겨를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본래 사형선고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통치 밑에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판결은 자기들이 해도 시민의 권한에 대한 문제는 로마정권이 할 일이지 유대인들이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런 저런 묵계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 기록을 보아서는 그들은 그런 로마 정권 밑에 있는 판결의 절차도 무시하는 방식으로 이를 갈고 그리고 성밖으로 끌어내서 죽였습니다. 어떻게 봐서는 사형성고를 이미 허락받았다고 말할 수 있지요.왜냐하면 우리의 대표자인 예수께서 로마법으로 사형선고에 합당한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도 판례에 따라서 이미 판결을 받았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어떻든 보면 그런 절차 없이 그들의 분노에 따라서 그를 성밖으로 내어 치고 돌로 쳤습니다. 참으로 그들의 주를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어내서 그리고 땅위에서 존재하지 못할 저주받은 자로 나무에 달아서 죽였던 것처럼 스데반을 신성모독죄를 지은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는 방식으로 그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그들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신 그리스도의 영이 친히 스데반 안에서 자기 자신을 증거하셨기 때문에 바로 그 영을 따라서 그의 주가 그들을 우해서 기도했던 방식데로 그도 그들을 우해서 기도하는 방식으로 그것이 교회가 주님오시도록 까지 봉사하는 길입니다. 판결자는 주님뿐이시고 우리들은 세상을 위해서 자기 몸을 주신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그런 사랑의 수고로 봉사하는 것뿐입니다. 교회가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죄에 대해서 분리하는 것은 교회의 거룩성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성 때문에 하는 것이지 말하자면 그들에 대한 저주하는 심리로서 할 수 없고 세상을 판결하실 자는 주님뿐이시요 주님께서 모든 권세를 그의 발밑에 복종시키시는 그 나라가 완성되도록까지는 우라들은 우리 안에서 자기를 증거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봉사할 것이고 그러할 때 교회는 결코 홀로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참다운 보혜사로 우리의 중보자로서 그의 온전한 피로 온전한 제물이 되셔서 그의 수고를 마치시고 이제 그의 수고를 교회가 누리도록 보좌우편에 앉아 계시는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그는 자기 교회와 친히 함께 계시고 자기 증인들의 곁에 서셔서 자기증인들을 붙드시고 마치 변호사가 서서 재판장 앞에 변호 받을 자를 위하여 변호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그의 증인들과 함께 하셔서 자기를 증거 하는 것이지 결단코 우리가 증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왕들 앞에서 말할 대 말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때 말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요 너희가 아니니라. 주님께서 친히 그의 영으로 자기증인들과 함께 하셔서 그를 증거 하시고 세상은 그를 거절할지라도 그는 그런 능력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시라고 7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죽었습니다. 그 핍박에 사울은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죄인의 괴수를 친히 권능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신실한 종으로 세우셔서 우리 같은 원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복음. 바울은 말하기를 내 뒤에 믿는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게 하려고 나 같은 죄인의 괴수를 부르셔서 신실한 증인으로 삼으셨으니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예수께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도다. 그렇게 바로 유대인이 거절했을 뿐 아니라 그 대표자는 바울인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죄인들을 바꾸셔서 참으로 원수로 자기 백성 되게 하시는 그 구원의 은혜를 이제 바울을 통해서 원수 된 이방인들에게 증거 하는 방식으로 사도행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여기 사도행전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7장의 전반적인 개관을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시간에 조금 조목조목 말씀을 드리면 왜 이처럼 구약의 역사를 쭉 설명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일들을 설명하는 바른 방법인가? 하는 문제들을 구체적인 분해를 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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