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4:1-31

찬미예수님 2025. 2. 21. 07:14

제목:사도행전 강해

성경:사도행전 4:1-31

 

땅위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일이 복음서라면, 하늘 보좌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일이 사도행전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는 참 사람이 되셔서 낮아지신 위치에서 그리스도로서 중보자일 뿐 아니라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보좌 우편에 취임하심으로 이제 천하 만민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부르는 중보직에 그가 취임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따로 떼어서 해석할 수 없는 것을 사도행전 1장 서론에서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그가 죽으셔서 죄를 온전히 제거하시고 보좌 우편에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서 취임하심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교제의 영이신 성령을 선물로 받으셨고 그가 얻으신 모든 것을 그의 교회에 베풀므로 이제는 성령이 친히 교회 안에 임하셔서 참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참다운 교제가 땅위에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이제 그 일을 위해서 그가 승천하신 것이고 그의 승천은 모든 원수들을 그 발아래 무릎 꿇게 하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도록 그는 보좌에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오셔서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설립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가 교회 시대요. 그런 의미로 사도행전은 여기 사도행전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시도록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그리스도께서 이제 사도들을 통해서 세우신 교회를 통해서 사도적 사명 곧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명을 교회를 통해서 진행시킬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1장에 보면 12사도로 유다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떠났기 때문에 한 명 맛디아를 선택해 세움으로 12사도회가 조직되어 있는 것을 1장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거기 보면 하나님은 옛12족장으로 구성된 옛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약속을 하셨던 것이고 그 하나님의 12로서의 이스라엘은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파괴될 수 없는 새 인류의 단위여서 여기 보면 사도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맛디아를 선택하여 세움으로 어둠의 권세가 유다를 유다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나라 12로서의 완전함을 파괴하려 했어도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서 한 명을 보충함으로 12로 된 새로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서 옛 언약이 성취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영의 임하심은 그것은 구약의 모든 약속의 성취여서 우리들이 시내 산에서 임하셨던 하나님의 임하심 불로 임하시고 강한 바람으로 임하시고 우리들이 그런 장면들을 구약에서 알 수 있는데 성령의 임하심은 곧 하나님의 임하심이요 하나님이 임하신 새 인류가 거기 출현함으로 이제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구원하신 큰 은혜의 일들을 증거하고 찬양하는 인류가 거기 나타나 있다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옛 언약의 모든 목표의 성취여서 곧 그것이 구원의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선물이고 그렇게 함으로 구약시대처럼 어느 대표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구약 때처럼 간접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이 임하심으로 기름부음이 자기들 안에 있어서 각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구원의 일이 완성된 것이라고 2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죽으셨어도 그는 죽으신 분이 아니고 그는 참으로 보좌 우편에 취임하셔서 그가 약속의 성령을 부으신 것이라고 이제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가 성취된 것이라고 2장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십자가에 죽인 그 예수가 곧 보좌우편에 취임하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는 자기 백성의 중보자일 뿐 아니라 자기백성의 완이요 또 자기백성의 대표자일 뿐 아니라 곧 하나님이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증거를 통해서 그때 믿는 사람이 3천명이나 되었었고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세례를 받음으로 이제는 그들이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심어지고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져서 그들이 하나님의 새 인류로서 교회를 형성했다고 말씀하고 있고 교회의 삶은 종말론적인 새 인류의 삶이어서 서로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 져서 서로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말하지 않고 서로 공유함으로 거기 큰 기쁨이 있었고 이처럼 형제가 한 몸의 교제를 나누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항상 모이기를 힘썼고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예식으로 떡을 떼며 기뻐하고 했기 때문에 이제 사도들의 증거 뿐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서 설립된 교회를 통해서 날마다 구원받는 수가 더하게 되었다고. 이처럼 교회를 통한 세계정복을 2장에서 말씀했습니다. 여기 초대교회에 나타난 그런 교회 상은 주님 오심으로 완결되겠지만 그 원리는 항상 교회 안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셔서 자기 몸을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에 참여한 것처럼 바울의 교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형제에게 공급함으로 그렇게 한 몸의 교제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를 보면 그렇게 공동체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회는 더 타락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역사에서 새로운 진행이 있으면 그것은 특이하게 종말론적인 현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주님 오셔서 완성될 그런 교회의 삶을 이런 방식으로 여기 주님께서 나타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꼭 모든 재산을 한 군데 모아놓고 같이 써야만 그것이 꼭 풍성한 사랑이고 각자가 하나님의 청지기로 관리자로 살고 있으면 타락한 것이고 그런 것은 아니고 그 정신은 우리가 주님의 몸에 참여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것으로 형제에게 공급함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정신에 있어서는 같지만 나타나는 방식은 주님 재림하시면 이런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어떻든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를 설립하셨고 그리고 사도들의 복음증거를 통해서 변화된 새로운 인류들의 삶을 통해서 여기 날마다 구원받은 수가 더하게 하시니라 그렇게 2장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처럼 친히 자기백성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서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함으로 그의 교회를 설립했을 뿐 아니라 땅위에서도 친히 가르치시고 그가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 했을 뿐 아니라 친히 그가 이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그들 중에 임하심을 증거 했던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3장에 이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성전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나이 많은 사람을 치료하심으로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죽임을 당하셨어도 그는 참으로 생명의 주요 생명의 하나님이시요 그는 보좌 우편에 취임하셔서 지금도 그 생명의 은혜로 이 병든 형제를 고친 것이라고 사도들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3장에서는 성전에 모인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증거 하는 것이요 4장에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스라엘의 대표자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몰라서 이 생명의 주를 죽였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그들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한 선지자를 주셨습니다. 구약 때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말씀하심은 우리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람이고 하나님은 아닙니다. 모세의 영안에 계셔서 자기 은혜의 일을 증거 했던 하나님께서 친히 혈육을 입고 땅위에 오셔서 모세는 그림자인데 예수는 참 은혜의 영광의 실체로 오셔서 그가 땅위에 하나님을 계시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죽였어도 하나님은 언약에 진실하셔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종 예수를 보좌 우편에 취임하게 하시고 그의 영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으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으니 곧 그것은 그들만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약속을 그들에게 성취시킴으로 천하 만민으로 복받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니 너희들은 선지자들의 후손임을 믿어라. 너희들은 그처럼 배반했어도 하나님이 그 은혜를 너희들에게 이루었으니 너희들은 돌이켜서 죄 사함을 받으라. 그렇게 3장에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알지 못해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셔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한 약속을 이처럼 성취시켰습니다. 옛 언약질서 안에서 모세와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친히 아들 안에서 사람 중에 임하심으로 이제는 참 빛이 사람 중에 거하심으로 이제는 그 완전한 진리를 땅위에 나타내셨고 그렇게 해서 그들을 구원하신 빛이 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4장에서 보면 이런 설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성전이 아마 시끄러웠겠지요. 그래서 여기 2절에 보면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이적을 행하는데 대해서 싫어 한다 그런 것이 아니고 물론 그들도 이런 저런 이적이 있지요. 병자를 고치고! 그것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도들이 기도하러 갈 때가 오후 3시쯤 되었기 때문에 해질 무렵이 가까워서 재판을 하지 못하고 옥중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5절에 보니까 ‘~안나스와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여기 산헤드린 공회가 모였습니다. 이 회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도록 정죄했던 회지요. 여기 6절에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이 두 사람은 복음서에 나와 있기 때문에 안나스는 가야바의 장인입니다. 그리고 가야바가 공식적인 대 제사장입니다. 그 당시에는 대제사장이 죽어야만 다른 대제사장이 임명되는데도 로마 정권과 결탁해서 매관매직을 하는 그런 시대라서 안나스도 대제사장이고 가야바도 대제사장이고 그런데 여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또 두 사람이 돈을 주고 그 직위를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복음서에 나와 있지 않고 또 성경역사에서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든 여기 대제사장을 총 머리로 한 산헤드린 공회가 모여서 묻기를 7절에 보니까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예수께서도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처럼 성전을 청결케 하였느냐? 물었던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권위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제 8절부터 보면 베드로가 사도들의 머리로서 여기 보면 이스라엘 종교 대표기관 앞에서 예수께서 생전에 그들 앞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 했던 것처럼 바로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사도들을 통해서 그 자신을 증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9절에 보면 만일 범인에게~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이다 하였더라’(9-12) 그렇게 공회 앞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네가 참으로 찬송 받을 자의 아들인가 그렇게 물었을 때 주님께서 바로 자기를 그렇게 증거했지요.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증거합니다. 그러니 이 증거는 성령이 충만하여 그렇게 했다(8)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너희들이 왕과 총독들 앞에 끌려가서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 말하게 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라. 내가 그때 너희 입에 할 말을 주리라. 그처럼 약속하셨는데 여기 성령이 충만하여 하는 것은 사도의 직무수행을 위해서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도의 직무수행을 위해서 성령이 충만하여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성령의 세례가 무엇이고 성령의 충만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들은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가령 에베소서에 있는 믿는 신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그것은 신자들의 어떤 직무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이렇게 증거하고 또 바울 사도도 성령이 충만하여 자기의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점쟁이의 눈을 어둡게 하고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그 직무수행을 위해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도 성령이 충만하여 바울 사도가 점쟁이의 눈을 어둡게 한 것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지요. 그러기 때문에 사도시대와 교회시대는 다른 것이고 또 이 문맥을 따라서 이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우리가 해석을 해야 합니다. 여기 사도는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그렇게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 왜냐하면 산헤드린 공회가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기관입니다. ? 하나님의 우림과 둠빔의 판결법이 곧 대제사장에게 주어졌고 하나님은 대제사장을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그의 은혜의 일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대제사장은 참으로 그들이 어떤 권세로 그런 일을 행하는 것인가? 성전을 예수가 청결케 했을 때 그 권세를 어디서부터 받았는가? 그런 말씀이지요. 예수는 성전보다 더 크신 이로서 그런 일을 행했다고 우리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사도들은 그 증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9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물론 이 구원은 병으로부터의 구원이라고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그 증거는 단순한 그 구원에 대한 개념보다도 예수께서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시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렇게 했을 때 참으로 세상에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분임을 증거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사도의 증거는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우리에게 질문하면 10절의 내용을 볼 것 같으면 이것은 죄로부터의 구원 바로 예수께서는 너희들이 죽였어도 그는 생명의 주 하나님이다 는 사실을 그 증거를 가지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너희 앞에 섰느니라.’ 다른 것이 아니라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행했는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행했는가? 그것은 다른 사람의 권세가 아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인데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바로 그가 이 일을 행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름으로하는 것은 그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우리 앞에 섰느니라. 이처럼 그의 건강은 곧 예수께서 그들이 십자가에 죽였어도 사망의 권세를 벗으시고 보좌우편에 취임하셔서 생명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을 이처럼 낫게 하셨다고, 곧 그가 이스라엘 백성이 죽인 그 분이 곧 이 사람을 낫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11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머리돌이 되었느니라.’ 그럼 이 예수께서 이 사람을 고쳤는데 그러면 예수는 누구신가? 너희들이 죽였는데 그 말을 여기 11절에서는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이렇게 말씀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 118편에서 인용된 구절인데 그리고 마태복음 21장에서도 예수가 인용하셨습니다. 시편 118편을 보면 22절부터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영원함이로다’(22-29). 이 시편 118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올라갈 때 읊은 시이고 특별히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했던 말이 여기 25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호산나 하는 말은 여호와여 우리를 구원하옵소서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25절의 말씀이 반복되고 있지요. 시편 118편의 말은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감사하는 시편인데 시편의 기자가 10절에 보면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저희를 끊으리로다’(10-11) 하는 것처럼 원수의 압제 밑에서 그런데도 그가 끊어버림을 당하지 않고 21절부터 보면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머리돌이 되었나이다.’(21-22) 하고 승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는 어느 개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원수의 핍박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스라엘의 왕은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열방이 둘러싸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으로 응답하셔서 열방을 끊으시고 무너지게 된 이스라엘 백성을 참으로 새롭게 했습니다. 그러니 여호와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렇게 쭉 말하고 있는 내용이지요. 그런데도 다윗이 왕으로 있었을 때 개인적으로 왕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냈을 때 그 왕권을 구현하는 메시야적인 인물로서 서 있기 때문에 여기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은 그 왕의 구원이요 그런 의미로 예수께서 이 구절을 자기에게 그대로 적용시켰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포도원 주인 비유가 있지요. 세를 받도록 소작농에게 주었는데 세를 주지 않습니다. 종들을 보내면 죽입니다. 나중에 아들을 보냈는데 아들도 죽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들이 대답하기를 그 포도원을 다 빼앗아서 열매 맺은 백성에게 주어야 겠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마21장에 보면 이 말씀을 그대로 하시고 계시지요.2142절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흩으리라’(42-44) 이렇게 여기 구약에 보면 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이 돌은 여기 44절에 있는 것처럼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는 말은 우리들이 다니엘서 2장을 보면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않은 뜨인 돌이 그 신상의 발가락을 치매 그 신상이 다 부셔지고 날아가서 흔적이 없고 그렇게 해서 그 돌이 떨어지니까 흔적이 없어지고 그 돌은 태산을 이루어서 온 세상에 가득하고 그렇게 이 하나님 나라 완성의 문제가지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그러면 여기서 건축자들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인 지도자들입니다. 물론 그들은 대제사장 선지자 왕 그런 기름부음 받은 직분이겠지요.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그 세 직무 중 특이하게 중요한 직무는 대제사장 직무입니다. 왜냐하면 레위기적인 모세율법제도 하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함께 하신 특징은 곧 성전의 제사제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이런 저런 제도가 있고 다른 나라에 왕이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만 하나님이 함께하신 성전제도 아래서 자기백성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특별히 건축자들은 그들의 제사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한 것처럼 그들은 한 돌 위에 하나님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런 의미로 집 맡은 자들입니다. 곧 집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하나님의 교회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어디에 임하시면 거기에 돌단을 쌓고 하나님께 경배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이스라엘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한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들이 의뢰해야할 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 중에 임하여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그 터를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구약에서 건축자들의 버린 돌 했을 때 제단의 의미가 전면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로 그런 돌을 버리고 자기들 스스로 다른 방식으로 건축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버렸다고 말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집 맡은 자들 하나님의 교회를 건설해야할 자들은 그 돌을 떠났어도 하나님은 그 돌로 집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게 하셨고 그 돌은 산돌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을 주시는 돌이라고 베드로전서 2장에서 말씀하고 있지요.그래서 너희들도 산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서 신령한 집으로 지어지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돌이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어디에 임하시면 하나님이 임하심이 곧 그들의 생명이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참으로 땅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하도록 임하신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구약에 모든 하나님의 임하심은 하나님의 성육신적인 의미예요. 그런데도 하나님의 거룩한 임하심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있었는데도 그들은 그것을 버렸고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를 버렸어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통해서 그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산돌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그 분이 곧 집 모퉁이의 머리돌이고 그 분이 곧 그의 교회를 유지하고 세우는 분이기 때문에 그 분으로 말미암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 분이 곧 그의 교회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고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12). 바로 그 분이 세상에 구원을 주는 유일한 돌이요 그 돌을 떠나면 이 돌이 그 돌 위에 떨어지면 그들은 가루가 되리라고 마21장에 말한 것처럼 이 분을 떠나서 세상에 구원받을 이름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는 모퉁이 돌이요 모퉁이 돌이신 주님께서 그의 사도들을 교회의 기초들로 삼으시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그의 교회가 설립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분을 버렸어도 하나님은 그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보좌우편에 취임시킴으로 그는 참으로 생명의 주로서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분이요 그 분이 땅위에서 구원의 이적 긍휼의 이적을 행했을 뿐 아니라 그 분이 지금도 사도들을 통해서 이 병자를 고쳐서 너희 중에 세웠다고 성전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공회 앞에서 성전의 주인이신 성전에서 영원히 자기백성과 함께 하도록 약속하셨던 그 분이 너희들은 버렸는데도 그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성전에서 그의 권능으로 청결케 했던 것처럼 여기 보면 사도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증거 했고 그리고 거기 모인 이스라엘의 공회 앞에서 생명의 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이 분 외에 구원받을 이름이 없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아니할 수 없다 하니’(13-20) 여기 보면 사도들의 증거 때문에 그들이 놀랬습니다. ? 그들은 랍비학교에서 정식으로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의 말에 권위가 있어 사람들이 놀랬는데 그의 제자들도 이렇게 사람들을 통해서 훈련을 받은 제자들이 아니고 주님께서 친히 진리의 성령으로 자기제자들에게 거하셔서 자기를 증거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을 잘 풀어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증거에 대해서 그들이 할 말이 없었고 더군다나 병 나은 사람이 거기 증인으로 서 있기 때문에 그들이 부정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어떤 공적인 죄를 지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죽인 예수가 곧 하나님이 세우신 그들의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는 것 뿐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고 또 거기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을 두려워 해서 어떻게 손 댈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그들의 권위로 말하기를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게 하지 말도록 하자.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도록 해자 의논하고 사도들에게 엄명했을 때 .사도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고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곧 십자가에 죽임 받은 예수 그 분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지요. 너희들이 무슨 권세로 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했느냐고 했을 때 그들이 분명히 예수께서 집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다고 말하고 그 분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분이 그들에게 보이시고 그들 안에서 말한 그 모든 문제를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싫어하는 문제는 기적 행함이 아니고 부활의 도전함 곧 예수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에 대해 그들은 심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고 그런데도 이 본문의 구조를 보면 예수의 부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만일 부활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만한 한 가지 틈만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이들을 엄히 벌했을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내가 거룩한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을 때 네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자칭하는도다. 하고 그를 죽였지만 이제 이들은 자기 자신들이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고 증거하고 있고 그러한 사실은 예루살렘에 소문이 파다하게 일어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다가 그들이 죽인 예수의 이름으로 이 병자가 낳았다고 하니 구약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정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는 것이고 그러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한 그 분이 이 일을 행했다고 하니 그들을 어떻게 법으로 걸만한 흠이 없습니다. 만일에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것 같으면 여기 사도들을 벌할 근거가 있겠는데 그런 것은 여기에서 발견할 수가 없고 단지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원수의 일하는 방식은 똑 같습니다.어떤 이적을 행하는 것 그런 문제가 아니라 부활의 복음전함 왜? 복음이 세상의 구원이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 되지 아니할 것 같으면 우리가 천하 사람이 놀랠 이적을 행해도 어둠의 권세는 놀래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증거될 때만 지옥의 권세는 흔들리는 것이고 그래야만 세상은 구원을 받아요. 사도들을 통해 처음 그들이 구원을 받았을 때도 복음증거 때문이지 이적을 행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원수들의 핍박도 이적 행함에 대한 금지가 아니고 예수 이름으로 다시는 가르치지 못하도록 다른 말로 하면 주 예수께서 그들의 그리스도 되심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그리스도를 대적하신 이로소이다’(23-26) 여기 보면 시편 2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기 그들이 모여서 그들의 동류에게 가서 원수들의 핍박을 보고하고 그것 때문에 그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대상은 대 주제여!’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대 주제여 하는 말은 주관자 그런데 어떤 의미에 있어서 주관자입니까? 창조와 구원에 있어서 대 주제여 그런 말이지요.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셨고 그 뿐아니라 주의 종 우리의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이스라엘 중에 설립하셨고 하나님 나라 왕 되심을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천하 만민이 다윗에게 복종케 하심으로 그의 왕권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니 다윗은 사람이어도 하나님의 왕권을 땅위에 대행하는 자로서 그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함이 곧 하나님의 왕권에 순종함이요 곧 그것이 그들의 하나님의 구원약속을 바라보는 방법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거절했기 때문에 가나안 백성들은 다 죽었던 것이지요. 누구든지 다윗의 왕권에 다 복종하고 다윗의 하나님 앞에 다 복종하면 기생 라합이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그리고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 당시에 살았던 것처럼 그들도 함께 하나님 앞에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시2편에 다윗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다윗은 자기 왕권에 도전하는 열방의 세력들을 보았을 때 자기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거역하는 어둠의 세력들을 보고 다윗의 주로 오시는 그리스도 그 분의 권세에 대항하는 어둠의 권세에 대해서 그렇게 예언하고 있고 참으로 천하 만민이 구원받는 방법이 무엇인가? 참으로 복받는 백성이 무엇인가? 바로 이 하나님의 아들에 입 맞추는 것이라. 그에게 복종하고 그에게 화목 하는 것이라고 시편 2편에 예언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들이 기도하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누굽니까? 천지를 지은 창조주입니다. 그 분은 누구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이십니다. 창조와 구원에 있어서 대주제시여!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찬조에 있어서만 주관자가 되시고 구원에 있어서는 주관자가 되지 않으시면 그들은 이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은 주이실 뿐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셔서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권능자 전능자 일 뿐 아니라 친히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구원자 이시기 때문에 바로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고 이제 주님께서 그 약속대로 자기의 메시야를 영광스럽게 했습니다. 참으로 천하 만민이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26)고 되어 있는 것처럼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 이방인과 이스라엘이렇게 합동해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받은 거룩한 종 예수 그리스도를 거스려 죽였습니다. 그리고 땅에 오신 그 분을 죽였을 뿐 아니라 친히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예루살렘에 큰 이적을 행해도 이전에 예수를 죽였던 그들이 지금도 모여서 주 예수를 거절합니다. 그러니 사도들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바로 거룩한 종 예수를 거절한 것이라고 이전에 십자가에 죽였던 사건과 계속해서 연결시켜서 그 분에 대한 반역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고 말씀했는데 사도들은 사도들 개인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기관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들의 복음을 거절함은 곧 하나님께서 영화스럽게 하신 주 예수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그들을 기도하고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28절에 보면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이전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그 일을 행하되 지금도 그렇게 모였다고 말씀하고 있지요.‘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여기서도 먼저 구하는 것은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사도께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때에도 자기가 사슬에 매인 바 되었을 지라도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증거는 곧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상에 자기구원을 증거 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사람의 두려움 때문에 막혀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 앞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인으로 서 있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해서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종 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기 때문에 여기 사도들이 구한 처음 것도 복음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그러면 여기 표적과 기사 그런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의 권능으로 이적으로 표적으로 증거하는 것이지 이적이 먼저는 아닙니다. 지금은 사도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고 또 이적이 나타나야만 세상이 구원을 받는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사도들은 주님의 계시기관으로 서서 교회를 설립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복음을 증거 하시고 그의 권능으로 복음을 확증하셨던 것처럼, 사도들을 통해서 친히 그의 복음을 증거케 하시고 또 사도들을 통해서 그의 권능으로 이적을 행하게 하심으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그의 교회를 설립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빌기를 다하매 저희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 여기 결론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하는 사실이 성령의 충만함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계시기관으로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거했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여기 보면 기도했더니 그 기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오순절 사건에서는 모인 곳이 진동했다는 표현법은 아니어도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그리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있더니, 방언으로 말했다고 되어 있지요. 그런데 여기 보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하는 말은 더욱 종말론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만국을 진동하실 것이고 그리고 진동케 하는 영원한 나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물할 분이십니다. 구약에서도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런 진동으로 임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하나님이 시내 산에 강림하실 때 땅이 진동했고 그리고 시편들의 기사를 보면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찢어지고 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엄위하신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이제 포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왔을 때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하실 것을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증거했을 때 바로 거기 새로운 성전을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참으로 만국을 진동해서 진동케 할 나라를 거기 증거했고 특별히 히브리서 12장을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2:25부터 보면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25-29) 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구약 학개서 2:5부터 보면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2:5-7). 여기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성전을 지을 때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새 성전을 지으실 것을 격려했을 때에 한 내용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시내 산에 임하시고 거기 성전제도를 주려 임하실 때 거기 땅이 진동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와서 다시 성전을 지을 때 거기 언약갱신이 나와 있는데 이제 시내 산에 처음 임하셨을 때 땅을 진동한 그런 진동정도가 아니라 여기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2) 그런 방식으로 이제 천하 만민을 하나님의 집으로 모아서 천하 만민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교회를 지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7) 그러니 첫 구원이 애굽에서의 구원이요 둘째 구원이 바벨론에서의 구원이었을 때 바벨론의 구원은 첫 구원의 역사에 이스라엘 백성이 합당치 못했어도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어도 하나님은 참으로 만국의 보배가 그의 전에 이르도록 천하 만민으로 구성된 그의 교회를 설립하실 것이고 거기보면 더 큰 진동이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나 여기 히브리서 12장을 보면 이제는 진동치 아니할 영원한 나라가 있을 것임이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땅을 진동시키시고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말씀만 듣지 안 해도 그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땅을 진동시키고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이신 아들을 통해서 참으로 자기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 분입니다.그러니 이제 주님은 오셔서 요동치 아니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로 여기 사도들이 기도하기를 마쳤을 때 성령이 충만했고 모인 곳이 진동했다. 바로 거기 주님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시내 산에서 진동하시는 방식으로 불꽃 가운데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그 분 그 분이 이제 만국을 진동시키실 것이고 그리고 진동치 않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설립할 것인데 바로 그 분이 거기 임하셔서 바로 그 터를 진동시키시고 그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하셔서 말씀을 담대히 증거 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보다도 부활하신 주님 곧 그 분이 진동치 아니할 하나님 나라를 영원히 설립할 생명의 주이십니다. 바로 그 분의 복음을 증거 하면 세상은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허락을 받아서 된 것이 아니라 그가 생명의 주여서 그의 권위로 증거 하면 세상은 구원을 받고 요동치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든 세상이 제일로 싫어하는 것은 복음의 증거이고 증거 되면 이처럼 핍박이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 두 가지가 완연합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물론 복음의 대적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회에 들어와서 광명한 천사와 같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만 어떻든 태도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든지 아니면 거절하든지! 그러나 교회는 이런 일에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의 동생들까지라도 예수를 처음에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쩔수가 없지요. 그럴 뿐 아니라 교회는 사람의 단체가 아니라 주님은 모퉁이 돌로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분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생명의 주이시요 산 돌이시요 교회는 그로부터 생명을 받습니다. 그 돌이 떨어지면 우상을 쳐서 가루가 되서 천하만국을 심판했던 것처럼 그는 심판하는 돌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그런 의미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시내 산에 임하셨을 때 땅의 터가 요동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돌아 왔을 때 만국을 요동케 한다고 했는데 바로 그 권세로 만국은 흔들려서 천하 만민으로부터 구성된 교회가 설립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이처럼 요동하는 터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면 우리들은 요동치 않는 영원한 나라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나 우리가 그 나라를 바라보고 두려워하고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야 될 것이고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할 진데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증거 하면 지옥의 군세는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모인 곳이 아니고 곧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의 지체된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정복하고 그의 나라를 설립하고 이제 재림하시면 이 세상의 권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의 나라가 온 세상을 가득차는 돌로 세상을 가득 채웠던 것처럼 그의 나라가 세상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오셔서 요동치 아니할 그의 나라는 죄 중에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런 질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합당한 처소로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도록 까지 그가 보좌우편에 계셔서 그의 교회 안에 임하시고 그의 권능으로 교회를 설립하실 줄을 믿고 우리가 복음으로 교회를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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