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사도행전 강해
성경:사도행 2:37-42
여기 2장에서는 오순절 성령강림과 그 일을 설명하고 또 그 은혜의 일로 권고하는 베드로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그런 단순한 초대교회의 역사개념이 아니라 혈육을 입고 땅에 오셔서 이적과 권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했고 가르쳤던 그리스도께서 그는 이스라엘의 배교 때문에 죽으셨어도 그는 영원히 살아계신 하늘의 그리스도셔서 그는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그의 구원사역을 베풀고 계신다 하는 사실을 말하는 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복음서가 땅위에서 행하신 그리스도의 행적이면 사도행전은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그리스도의 행적으로 이해를 하면 옳은 일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의 성령을 그의 교회에 부으시고 이제는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새로운 인류를 지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고 1장 후반부에 보면 사도들이 모여서 유다가 결원 되었을때에 성경을 인용해서 그 결원을 보충했습니다.이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도를 임명하는 것은 사도회가 할 일이 아니고 예수께서 할 일인데도 제자들은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고 그 일을 했습니다. 이것은 잘못 행했다는 개념이 아니고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12족장으로 구성된 하나님 백성에게 참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 그의 영을 부으심으로 물로 정결케 한 것이 아니라 새 영을 부어서 그들로 완전히 하나님나라가 되게 하겠다는 그 약속의 성취를 이루신 것을 1장에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12족장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옛언약 교회였던 것처럼 새 언액교회는 12제자들을 머리로 하고 또 그들로 부터 하나님의 교회가 생산되는 방식을 통해서 이제 신령한 이스라엘이 지어짐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보면 사도들 회의에서 유다를 대신해서 맛디아를 보충하고 바로 12로 구성된 새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참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로 지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장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장면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새 생명의 약속의 성취로서 오순절을 말하는 것이고 그 새생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그의 영의 부으심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스라엘을 새로운 인류로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애굽에서 구별하셨을때 유월절 피를 흘리심으로 그들을 심판에서 대속하시고 그리고 유월절 양고기를 먹는 친교 생명의 교제에로 그들을 성별하셨습니다. 그때에 유월절과 함께 주셨던 것이 유월절을 이어서 7일 무교절기를 지키는데 첫날과 마지막 날을 안식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의 규례에 안식을 주셨던 것처럼 여기 이스라엘을 새인류로 창조하셨을때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서 피흘리고 새롭게 지으셨을때 거기 안식의 제도다 있고 그때 주셨던 것이 무교병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은 하나님이 주셨던 것보다 그들이 급히 애굽에서 나올때 아직 발효되지 않은 밀가루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새 양식의 표상으로 쓰였던 것이고 하나님께서 유월절 안식 후 첫날에 초수절 곡식의 첫단을 하나님 앞에 흔들어 드림으로 그들로 가나안 땅에서 양식을 먹게 할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의 성취가 이제 완전하게 된 것이 초수절로 말미암아 수확을 시작한 뒤로 7안식일을 계수하고 제 50일째 그들은 하나님께서 새 양식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누룩섞은 떡 두 덩어리를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감사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애굽에서 도망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언약의 땅 안식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은 땅의 회복자인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풍성한 산물을 얻고 그들이 종의 삶이 아니라 안식의 삶으로 편안하게 살 것을 오순절 맥추절에 그처럼 새기셨던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맥추절은 가나안 땅에서 새곡식을 먹는 안식의 삶의 완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것이 구약에서 언약백성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목표였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데서 건져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적들이 다 진멸된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안식의 삶을 누리는 것 그것이 구약에서 구원의 목표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러기때문에 이제 그런 것은 표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이 곡식을 먹는다고 새롭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들이 애굽의 종살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따라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을 삶으로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났어도 그것은 완전한 생명은 아니었고 참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교제의 영 성령을 부으심으로 이제는 참으로 하나님의 계시자인 아들의 생명이 그의 교회안에 주어져서 참으로 세상에 하나님을 반영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성령의 임하심은 바로 누가 이 성령을 부으셨습니까? 그가 승천하시면 그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낼 성령인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심으로 곧 아들의 이름으로 그 성령을 부으신 걸로 요한복음에서는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구원약속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마태복음 제일 끝에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요한복음에 보면 영이 임하심이 아버지와 아들이 그의 백성안에 그의 거처를 함께하심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항상 아버지의 일은 아들안에서 성령을 통해서 이루시는 것이어서 여기보면 아들의 중보사역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부으시는 것으로 되어 있고 곧 그것은 구약계시의 방식으로 하면 하나님의 임하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성경에서는 성령의 임하심 그것을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고 노아홍수때는 바람을 불어서 그 땅에 새생명을 주신 방식으로 나타내는 것이고 바로 그 하나님의 임하심이 새로운 백성으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구별하셨을때 불의 임하심으로 거기 나타나 있습니다.‘강한 바람같은 고리’‘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이것은 구약계시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의 임하심 곧 그것은 하나님의 임하심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때 그들은 여러나라 말로 하나님의 큰 일 그 구원의 일을 찬양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심은 피조물의 머리로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그 은혜의 일을 찬양하는 제사장적인 직무에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에 아담은 범죄함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을 봉사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인류는 부패한 본성 가운데 떨어졌지만 사람을 지으신 목표가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찬양하는 신령한 존재 교제하는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여기보면 그의 영을 부으심을 통해서 이제는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의 일 구원의 일을 찬양하는 방식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술취했다고 비방했을때 이 사실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그 사실에 근거해서 말씀을 듣는 백성들을 권고하는 것이 베드로의 설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처럼 방언하는 것이 이후에 내 남종과 여종에게 이 사도행전의 인용을 따라 말세에 내 영으로 모든 육체위에 부어주리니 곧 구약 하나님의 옛 언약 백성의 구원의 약속의 성취 그것이 훗날에 이루어질 구원이고 여기서는 말세에 히브리서에서는 ‘세상 끝날에’ 로 표현되고 있는데 바로 이 영을 부으심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했던 그 구원약속의 종말론적인 성취라고 설명하고 있고 곧 그것은 다른 사람이 부은 것이 아니라 바로 다윗의 후손이면서 다윗의 주이신 그 분이 부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실들을 바르게 잘 파악하지 못해서 그들에게 구원자가 오신다는 약속은 믿었어도 구원자가 받으시는 고난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약에는 보면 그 구원자의 영광을 다니엘서에서는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인자 그렇게 해서 영원부터계신 분 앞에 나아가서 그 나라를 상속받고 그 나라는 영원 무궁하리라고 했던 인자로서 나타나 있고 선지서 특별히 이사야서에는 고난받는 종으로 나타나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그 구원자의 영광은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그들을 구원하시는 그 분의 고난에 대해서는 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의 죽으심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설명할 때까지라도 그 의미를 바르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베드로의 설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이제 영을 부으심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던 구원약속의 완전한 성취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물을 뿌리고 피를 뿌려 언약백성으로 성별해서 그들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자로 그의 대표자를 지성소에 부르심으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는 백성으로 성별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법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그 거룩한 의지를 돌판에 새겨 알리심으로 세상에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그들로 증거하는 제사장 만족으로 삼으셨습니다.하나님의 거룩을 세상에 반영하는 존귀한 민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돌판에 새긴 법을 주시고 그리고 그 법을 자기 백성에게 이루시는 통치자를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가 부패한 옛본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안에 이루어지도록 하셨어도 그들의 본성안에 그들의 거룩이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틈만 있으면 이런 저런 범죄를 통해서 악을 채웠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거듭 거듭 심판을 받았고 종말에 이방의 종으로 끝나버렸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런 길로 접어들었을 때에 바로 그것이 완전하게 꽃핀 것은 북 이스라엘의 아합 전권에서 이세벨이 금송아지가 아니라 바알성전을 그 수도 사마리아에 세움으로 완전히 꽃피웠는데 그때부터 하나님 나라의 멸망과 그 멸망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멸망받을 그런 방식의 구원이 아니라 바로 그 구원을 완전케 하시는 그런의미로의 새 구원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 구원은 애굽으로 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바벨론으로 부터의 구원이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권능으로 구원하심이 아니라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해서 그들을 다시 돌이키는 방식으로 그렇게 해서 내 백성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는 내 백성이라 하리라.바로 이방땅의 성화까지 그런 방식으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물과 피를 뿌리는 물론 물을 뿌려서 그들을 정결케 하고 또한 불로 정결케함을 받고 하나님의 기구를 다시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러나 불로 정결케 한다고 참으로 그들의 본성이 정결케되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겔서에서 약속하기를 하나님께서 물을 뿌린 정도가 아니라 새생명을 주어서 그들 마음을 살과같이 부드럽게 해서 하나님의 법을 그들 마음에 새기고 그들로 순종케 하리라고 에스겔 36장이나 예레미야 31장에 약속하신 것이고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그 구원의 완성이 그 영을 부으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옛 언약백성 질서에서는 아직 죄가 역사 안에서 제거되기 전이기 때문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백성에게 증거했지만 이제는 모세에게 임한 영이 70인 대표자들에게 임했던 것처럼 이제는 참으로 중보자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교회에 부어지심을 통해서 이제는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하나님을 알 것이고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알 것이고 그리고 구약때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지만 친히 그의 영이 임하심으로 자기백성안에 기름부음이 있어서 친히 성령이 증거하시기 때문에 이제는 구약방식의 꿈이나 환상으로 선지자들을 통해서 백성에게 임하는 은혜가 아니라 그의 영이 임하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은혜의 일을 찬양하게 되리라고 요엘이 예언했는데 바로 그것이 성령의 부으심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예수 오시기 전에도 세례요한이 먼저 나타나서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리라.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어서 너희들로 회개케 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너희를 용서하신 표로 너희에게 주고 있어도 내 뒤에 오시는 분은 그런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너희안에 선물하실 뿐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거절하는 모든 백성을 영원한 불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참으로 세상에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요 심판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다고 세례요한이 증거했느데 바로 그 약속의 성취로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부으심으로 지금 남종과 여종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약선지자들의 영안에서 증거하셨던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서 바로 예수는 우리의 하나님이요 우리 구원자라고 그렇게 은혜의 일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바로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침히 우리에게 성취되었으면서도 그것의 완성은 아직도 미래에 있어서 여기보면 하나님께서 기사와 잔노를 베풀 것인데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우주적인 격변이 있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약교회가 바라보고 있는 바지요.그의 영이 참으로 우리에게 임했습니다.우리는 우리의구원자가 누구인줄 알고 그 분이 어떻게 만물을 새롭게 하는 불도 압니다. 그러기때문에 이처럼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이 곧 하나님의 임하심이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의 영으로 자기백성안에 거하심으로 영원히 자기백성과 함께하는 그런 구우언의 역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는 혈육을 입으신 하나님 우리와 같은 혈육을 입으신 하나님의 영광으로 재림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만물은 참으로 새롭게 되고 그때 우주적인 구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들이 바로 하나님의 영을 부으심으로 옛조상들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이 성취되었고 그 약속은 이제 종말에 심판을 향해 진행되는 것이니 너희들이 참으로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라. 그렇게 해서 구원을 얻으라고 권면했던 것이고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이 영을 부으심이 합당한 사실을 다윗의 증거를 통해서 그처럼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나라왕으로 세우심을 입었고 하나님은 다윗의 왕권을 통해서 그의 왕권의 영화로움을 나타냈습니다.그래도 다윗은 참으로 사람중에서 택한 하나님의 계시도구일 뿐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왕권을 땅위에 온전케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서 그의 영원한 왕국을 땅위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다윗의 왕국이 결단코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그처럼 약속했고 다윗은 그 죽음에 임박해서도 죽음으로 그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질서가 이기지 못하는 영원한 부활 생명으로 사시는 자기의 주를 뵈었던 것이었고 그 분은 분명히 다윗의 왕권을 이용해 땅위에 이르신 분이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신데도 그 분의 육체는 음부 가은데 버려지지 아니하고 참으로 영원한 생명의 충만함가운데 이르실 그 분을 다윗은 보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영이 다윗안에서 그 나라의 영광스러움을 증거했던 것입니다.그랬는데 보면 분명히 다윗도 자기 우편에 계신 주 그 분은 분명히 31절에 보면 ‘미리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더니’ 분명히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하나남의 나라를 영원히 땅위에 이루시는 그 분은 여기 다윗의 증거를 통해서 볼때도 그는 낮아지심을 통해서 그는 영광스럽게 되리라고 그처럼 다윗도 예언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자기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음이 자기의 생을 끝내지 아노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자기를 통해서 영원한 왕권을 구현하시는 그 분이 고난받으심을 통해서 친히 영원한 생명으로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도 그 안에서 영원한 승리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바로 그가 이처럼 낮아지시고 높아지심을 통해서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그의 이름으로 부으셨다고 이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36절이 결론인데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시니라’ 이것이 사도가 증거하는 설교입니다. 이것이 소위복음의 선포입니다. 이스라엘 집이 정녕 알지니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너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어도 곧 그 분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으니 너희들이 참으로 이 분을 믿고 죄사함을 받으라.그렇게 지금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어도 그는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그는 죽은 것이고 그리고 그는 죽으심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밟는 승리자가 되셔서 참으로 하늘 보좌에 나아가셔서 그 영원한 나라를 상속받으셨습니다.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는 구름타고 땅위에 오셔서 그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은 다니엘 7장에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영원부터 계신이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 나라를 상속받을 왕에 대한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그러니 예수는 참으로 자기백성을 위해서 고난받으셨어도 그는 죽음의 권세에 메여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보좌우편에 영광스럽게 하셨으니 곧 그가 자기백성의 죄를 위해서 고난받으실 분이요.자기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보좌에 취임하신 중보자라. 바로 그 분이 하나님이시요 세상에 구원을 베푸시는 구원자라. 그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37절에 보니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그것은 역사적인 증거여서 그들이 그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분명히 예수는 그들이 아는데로 얼마전에 오순절로 세면 50일 전이겠지요.죄인의 괴수로 십자가에서 로마관리들의 집행으로 사형받아 죽었습니다. 분명히 사도들이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으로 주 예수의 은혜를 증거했을때 참으로 하나님의 영은 택한 백성들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그 말씀 때문에 마음에 찔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이전에는 바로 그들의 주가 죽었을때 그들도 두려워서 도망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을 증거하고 특별히 성령을 통해서 바로 하나님의 영의 임하심을 증거하고 그 영을 부으신 분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죽음의 질서에 낮아지셨어도 그는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하나님이시요.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요 구주이신 사실을 증거했을때 그들은 마음에 찔려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구원의 길을 물었습니다.그때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앋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여기보면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마지막에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여기 베드로의 증거는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태복음 28장의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리니 그렇게 약속하고 있지만 아직 성령을 부으시기 전이지요. 그런데도 그는 승천하실때도 이 약속을 하고 있고 이 약속이 사도행전 1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어서 설명되고 있지요.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아들안에서 구원을 베풀어 주셨으니 그것은 곧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그의 영을 부으셔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 백성으로 지음이고 그는 승천하시면서 그 약속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라.꼭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여기도 보면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서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그러니까 예수가 승천하셨을때 그가 승천하심으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 그렇게 해서 이제 그들이 원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친히 아들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심으로 그의 영을 교회에 부으셔서 이제는 하나님과 함게하는 새 인류를 지으실 것을 그렇게 그는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그러니까 여기 베드로는 너희는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기는 ‘주’도 빠져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라는 것은 여호와에 대해서 인칭대명사로 부르는 방식이 구약에 아도나이 하는 방식인데 그것이 신약성경으로 번역될때 ‘주’로 번역되었습니다. 사도들의 증거는 예수는 구약의 주 여호와이시다.예수는 구약의 여호와 곧 그 분이 주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시내산에 인간에게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불꽃 가운데 우리에게 임하신 분 그 분은 혈육을 입으시고 우리가 만져볼 수 있는 방식으로 임하심이어서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곧 아들의 나타나심입니다.하나님은 아들을 떠나서 자기를 계시하시는 방식이 없고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자기를 계시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구약에 임하신 하나님 구약에서 사람과 교제하셨던 그 하나님은 곧 신약에 혈육을 입고 우리가 만져보고 함께 먹고 마시는 방식으로 임하셨던 곧 그 분이라고 지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그는 곧 하나님이라는 말인데 여기는 그 말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특별히 그의 사람되신 일에 더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예수는 혈육을 입고 나신 분에 대한 이름입니다. 그래도 그 이름은 약속의 이름이어서 저희 백성을 저희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 하리라고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어쨌든 그는 사람이 낳은 인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는 호적초본에 예수라 올라 있지요.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의 직무적인 이름입니다.그는 사람이신데 자기 백성의 구원자라는 말입니다.어떻게해서 구원자입니까?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너희들이 죽인 예수 곧 혈육을 입고 오신 그 분 곧 그 분이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되어 있습니다.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곧 모든 족속으로 하나님의 소유를 삼으신 소유로 인치심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하는 것도 너희들이 참으로 이제는 원수에게 속하지 말고 주 예수께 속한 자가 되라. 곧 그리스도의 것이되라.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세례를 베푼다는 말이 아니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도록 하라.그렇게 해서 그들이 홍해에서 세레를 받으므로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않고 곧 모세에게 속해서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던 것처럼 그런의미로 그들이 구원과 바다 가운데 있어서 세례를 받음으로 모세에게 속했던 것처럼 이제는 너희들이 원수에게 속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도록 해하. 그런 의미로 세례는 무엇으로 부터의 정결 그리고 무엇이 되게함 그것이 잘 나타난 곳이 로마서 6장의 말씀인데 너희들이 예수의 죽음과 연합해서 세례를 받고 예수의 부활과 연합해서 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사는 새 생명의 질서 가운데 들어섰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바로 성령으로 보좌우편에 취임하셔서 우리가 그에게 연합되었기 때문에 그의 생명으로 산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너희들이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말은 너희들이 죽였던 예수를 하나님으로 시인하고 너희 마음을 그에게로 돌이켜서 참으로 그의 소유가 되고 그렇게 함으로 너희들이 죄사함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고 그리고 죄사함이 곧 성령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성령의 선물은 자기백성에게 베푸신 종말론적인 구원의 확증이어서 물뿌림이 아니라 그의 영을 부으심으로 그들로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된 사실을 확증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사도행전에 보면 말씀을 증거할 때에 세례를 받기전에 고넬료에게는 이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빌립이 전도했던 사마리아 세계에서는 사도들이 가서 기도하고 안수하매 성령이 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에 베풀었던 성령의 세례는 그들이 세례를 받기 전에도 나타나기도 하고 후에도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것은 믿는 신자에게 임하신 방식으로의 성령.물론 이 사도행전에서 부터 시작이 되고 있지만 사도행전의 위치는 독특한 위치여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으심으로 새로운 인류를 지으셨습니다.여기보면 그들이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사도행전 교회 이후에 예루살렘 교회를 제외하고 다른 교회가 말하자면 자기들의 소유를 다 팔아 나누어 주고 한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면 빌립보 교회같은 교회가 이 예루살렘 교회보다 더 타락해서 그런가! 빌립보 교회도 굉장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래도 다른 교회는 이런 일이 없지요.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가 가장 훌륭하고 다른 교회는 그렇지 않는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진행되면 그것은 그 언약질서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러기때문에 모세시대에 시내산에 임하심이 모세시대의 전체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이 사도행전에 성령이 부어졌던 시대는 이 성령이 부어진 시대에 이루어질 교회의 완전한 모습을 나타나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오셔서 참으로 그의 영이 우리의 새생명의 원리로서 이제는 먹고 마심이 아니라 그의 영이 우리의 생명의 원리로 완성되는 그 시대에 보편적인 사랑의 공동체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여기는 독특한 사실이어요. 그 이후에는 또 이런 방식으로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사실을 잘 기억을 해야겠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그들이 믿고 회개하고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고 회개하고 그의 소유가 되고 그렇게 하면 죄사함을 얻으리라.그렇게 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여기 사도행전은 구원역사적인 관점에서 성령을 구원의 선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아들이 보좌우편에 취임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이제는 성령을 교회에 부으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한 성령을 마심으로 참으로 그의 영이 우리의 본성이 되는 방식으로 삽니다. 그런 의미로 교회에 성령을 부으셨다는 의미로 사도행전 2장은 독특하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의 기사는 그런의미로 독특합니다. 우리들은 교회에 부으신 성령을 마심으로 한 성령에 참여했다고 에베소서에서 설명하고 있고 이 사도행전은 성령을 부으셨고 그 성령의 부으심은 구원의 증거로 부으심이어서 그들이 예수를 하나님을 믿고 그의 소유가 됨으로 죄사함의 확증으로 부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사도들의 증거에 있어서도 우리안의 구원의 보증이 무엇인가? 그의 영이 우리안에 거하심이라고 말하는 사실에서도 증거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성령의 부으심은 우리들이 교회시대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안에 영이 침히 임하셔서 그 구원을 선물하고 이루시는 우리 개인에 대한 문제보다도 하나님의 교회에 그의 영을 부으심으로 하나님의 용서가 땅위에 이루어지는 확고한 선물로 나타나서 이제는 그의 영이 임하심이 물과 피의 뿌림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히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법이 자기백성에게 이루어지는 새인류가 지어지심의 증거로 이렇게 나타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분명히 12사도로 구성된 새 언약교회에 여기 성령을 부으셨는데 여기보면 다른 의미로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구약때는 아브라함의 후손만 하나님의 자녀요 그들은 다른 사람은 할례받음으로 아브라함의 백성으로 가입됨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복에 참여하는 것이 구약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12제자에게 12제자로 구성된 이 교회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부으셨는데 그 교회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혈통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의 성취인데도 이제 그 약속은 보편 인류로 확대되어 있어서 혈통을 따라 난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자녀 모든 먼데 사람.여기보면 너희와 너희자녀를 먼저 말하고 그리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처럼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 새로운 인류가 이처럼 나타나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시는 새 이스라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 뿐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천하만민으로 구성되고 있는 사실을 말하고 있고 그것이 여러 나라로 부터 모아든 사람이 자기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증거했을때 그 표증으로 거기 나타나 있습니다. ‘또 여러말로 확증하여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여기보면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그런 의미로 이 구원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 구원인데도 하나님의 구원은 아직도 이 세대로 부터의 구원이고 말하자면 하나님의 구원이 땅위에서 완성된 방식으로의 구원이 아닙니다.골로세서에서도 이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겼으니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으니 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고 그런의미로 우리들은 이 악한 세대 바로 아담이 범죄해서 어둠의 권세가 통치하는 이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 세대 가운데 살면서 이 세대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여기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에게 구원을 베푸심은 다른 말로 구원을 베푸심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거듭거듭 반복되서 사람들이 그런 것을 보고 마음에 감동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여러나라 방언으로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베드로의 말을 다 알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베드로가 설교했던 것은 이렇게 놀라운 장면들.여러나라 말로 방언함으로 각각 자기 나랄 말로 듣게했던 것이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던 성령 이 성령을 이스라엘의 언어로 이처럼 설명했을때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친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시내산에 임했을때도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사실은 친히 하늘의 음성으로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친히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의 영으로 사도 안에서 증거하시고 택한 백성 그가 부르신 백성 안에서 역사하셔서 그 말씀이 그들의 생명이 되도록 하셨습니다.그러니 사도행전에 하나님 나라가 설립되고 번성함은 그 말씀이 날로 흥왕하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더라.말씀의 흥왕함으로 그처럼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흉악한 이리들이 교회들을 파괴할때 교회들을 지키시는 분도 내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께 너희들을 부탁하노니 그 은혜의 말씀이 너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너희들을 견고케 하시리라고 그처럼 사도행전 2장에서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분은 친히 그의 영으로 교회안에 임재하십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고리,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곧 그것은 구약방식으로 하나님의 임하심이요 참으로 하나님은 그의 영으로 우리안에 임하셔서 이 구원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처럼 허다한 많은 무리들이 구원을 받았는데 여기 숫자가 3,000명 5,000명 하는 숫자들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우리들은 잘 모르고 그것은 역사적인 숫자로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여기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하는 것은 곧 누구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들이 사도들의 권면을 받는 것 곧 그것이 하나님의 권면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서 자기를 증거했기 때문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은 옛언약 교회가 돌판에 새겨진 법을 가르침 받았던 것처럼 그들이 참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백성이요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니라.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해서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진리로 새로 지으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외할 뿐아니라 생명되신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올라가서 70인 장로들이 먹고 마셨던 것. 그런 방식으로 여기보면 그런 가르침을 받을 뿐아니라 서로 교제하며 떡을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언약체결이 있었고 언약체결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교제함이어서 70인 장로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방등상에서 먹고 마심으로 즐거워 했습니다.여기 보니까 새 언약 백성이 나타나 있는데 그들은 사도들을 통해서 증거하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고 있고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교제하고 있는데 그 교제는 70인 대표자가 아니라 참으로 그를 믿는 모든 백성의 교제로 말씀하고 있고 그 교제도 하나님의 발등상 밑에서 교제함이 아니라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것은 내 몸이요 이것은 내 피니 주님께서 몸과 피를 신령한 양식과 음료로 주었던 것처럼 나를 먹는 자는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던 것처럼 참으로 참 생명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새 언약 공동체로 나타나 있고 새 공동체로서의 특성을 나타낸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이 악한 세대로 부터의 구원이면서도 이 구원이 예수오심으로 완성되면 이제는 사랑의 공동체로 완성될 것이고 그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배운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햘육을 입으신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뵙고 그 분과 교제하고 이제는 참으로 그의 생명으로 사는 사랑의 공동체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 사도행전의 처음 기사에서 우리들에게 증거해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교회가 땅위에 서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하나님은 참으로 구원의 선물로 그의 영을 교회에 부으셨습니다. 우리들은 믿음으로 한 성령을 마심으로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의 교제를 누리고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서 이 지혜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역사해서 바로 그 도를 믿고 우리의 비참한 죄인됨과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약속을 믿음으로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안에 있는 하늘의 평강으로 기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 때문에 우리가 모입니다. 참으로 교회는 하나님과 교제할 뿐아니라 그 분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의 통치가 그의 영의 임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새겨짐으로 이제 그 법을 따라 사는 새로운 인류가 나타났습니다. 다시는 멸망되지 않을 인류로 이제는 그 인류는 하나님의 영의 임하심이어서 그의 영을 통한 새로운 출생을 통해 보편적인 언약 공동체로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교회로 나타나게 되었고 주님 오심으로 사랑의 공동체로 완성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은 이런 방향입니다. 우리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은혜의 약속을 이루셨고 주님은 보좌에 추임하셔서 땅위에 하나님의 약속을 배반했던 사악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 은혜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이런 저런 배교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의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은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뵙고 교제를 누리는 데도 믿음의 방식으로 뵙기 때문에 우리의 어둠 때문에 이런 저런 배교도 있고 여러가지 어둠이 망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한 성령을 마셨고 한 지체로 연합되어 있어서 우리가 한 성령으로 호흡하고 있는데도 우리의 교제는 머무나도 수준이 낮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은 이런 방향이고 이런 일을 통해서 땅위에 교회를 세우신 사실을 이해할 것 같으면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 구원약속 가운데서 그 은혜를 배우고 그 구원약속 가운데서 생명의 교제를 나누는 일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야할 것인가를 잘 분별을 해야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저 모여서 단순한 예배드림,이런 저런 일이 생기면 간단한 문안,그런 정도가 아니라 한 성령을 마시게 했느니 참으로 형제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알고 웃는 자와 함께 웃고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그리고 사람 앞에서 배워도 참으로 우리가 경배하는 방식으로 배우고 우리가 바버지와 아들 안에 아무런 간격이 없는 것처럼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생명의 교제 가운데서 그의 영을 따라 우리가 한 몸의 교제로 우리가 교제를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교회를 그렇게 완성하실 것입니다.
'신약 구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행전 강해 3: (0) | 2025.02.15 |
|---|---|
| 사도행전 강해 2:41-47 (0) | 2025.02.08 |
| 사도행전 강해 2:14-41 (0) | 2025.01.25 |
| 사도행전 강해 2:12-22 (1) | 2025.01.18 |
| 사도행전 강해 2:1-11 (0) | 2025.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