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2:14-41

찬미예수님 2025. 1. 25. 07:56

 

본문 : 사도행전 강해

제목 : 행 2:14-4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시여 주의 크신 긍휼하심을 입고 주의 영광에로 부름 받은 백성들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경배와 찬양을 드리려고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여기 서 있습니다. 우리 중에 임하셔서 영광을 나타내시옵고 주의 영광을 대면함이 주의 백성의 생명과 빛과 영광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많은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셨사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영광의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셔서 예수의 주 되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위해서 몸을 주신 주님의 평안에서 우리의 많은 허물들이 사함 받음 때문에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해 주시옵고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시고 영광을 얻으신 주님의 영광의 면전에서 주의 영광을 대면함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며 드러낼 수 있는 복되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은총을 더하시옵소서. 교회의 찬양과 교회의 신앙고백과 교회의 기도를 통해서 또 말씀의 증거를 통해서 주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옵고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며 주를 경배함이 교회의 기쁨과 생명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만유의 주가 되신 주님께서 주의 영을 우리 가운데 부으셔서 주님과 한 영 한 몸으로 살게 하셔서 아버지의 영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증거했던 것처럼 주님의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셔서 주님의 주 되심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우리 안에 증거하심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백성에게 이 은혜를 새롭게 하셔서 주님 오시도록까지 주님을 즐거워하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는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오늘도 주의 영으로 이 말씀을 우리 안에 새롭게 새기셔서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이 충만케 해 주시옵고 이 악하고 패역한 세대에서 예수의 주 되심을 신실히 증거하는 하나님 나라 증인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주의 긍휼하심을 넘치게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거기 모인 주님의 제자들이 다 성령에 충만해서 여러 나라 방언으로 말을 했습니다. 오순절은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절기인데 이방 땅에 흩어진 유대인들, 또는 그들의 증거를 따라서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 그런 자들이 예루살렘에 왔었는데 그들이 자가 고향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큰 일 곧 그 일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갈릴리 촌 어부들이 자기 고향말로 자기 본토말로 말할 뿐만 아니라 또 이방 나라 말을 모르는 사람들은 보니까 묘한 말을 떠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 사람들이 말하면 꼭 새 소리 갔지요. 우리는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생전 듣지도 못한 말을 그렇게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은 자기 출생한 본토 지역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놀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술 취했는가? 다 구경꾼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이 성령으로 증거한 이 현상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본문을 증거할 때 본문 자체 해석에도 많은 힘을 기울려야 하겠지만 특별히 이 말씀을 듣는 회중 때문에 강론하기가 대단히 어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문을 강독해야 하고 본문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하겠는데 우리들이 이미 자기들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가지고 왜 하나님은 저쪽은 말씀하지 않는고? 하고 의심하고 있고 그런 것도 다 해석해 주어야 하겠는데 이쪽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어느 때는 설교가 길어지고 제가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회중을 의식하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단 이 본문의 문맥에 충실하게 말씀을 증거하고 혹 시간이 되면 여러분의 의문점에 대해서도 조금은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2: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세 삼시니(오전9) 그러니 아침술을 먹을 까닭이 없지요. 그러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이런 말만 보면 아 성령이 충만하면 술 취한 것처럼 얼굴이 뻘게지고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갑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현상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이상한 소리를 듣고 허 저 사람 술 취했는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게. 이런 말 정도이지 성령이 충만하면 술 취한 것처럼 얼굴이 뻘게지고 이런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니까 그렇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가지고 취하면 모르는 것처럼 성령에 취하면 방언을 해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한지도 모르고 입신하면 더욱 모르고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런 지경에 도달한다. 그런 묘한 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 것을 설명하려면 한정이 없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현상을 해결하고 나면 아 내가 깊은 것을 깨달았도다. 하는데 그것은 전혀 깊은 것이 아니고 그런 장난 짓거리에 교회가 망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 자신을 아는데서 깊다고 하지 이런 저런 잘못된 현상에 대해서 성경에 대한 답을 아는 것으로 우리 교회는 그런 것을 안 하니까 우리는 깊고 그런 일로 속아서는 안 됩니다. 2: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인데 일렀으되 이 문맥도 성령에 취하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 사도도 오순절에 성령 강림이 요엘서의 예언의 성취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길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엘서 2:28-3:까지 이 말씀이 있습니다. 2:17, 요엘서 2:28-32 단지 차이점은 17절 시작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구약 같으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런 말씀이 되겠지요.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구약에는 그 후에로 되어 있을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말세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저는 요엘서를 읽고 있으니까 여러분은 사도행전을 읽어 가십시오. 그때에 내가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 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여기서부터는 사도행전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며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해전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거기까지만 잘라 있습니다. 메시야 성취인용 이러한 인용들은 구약 성경을 꼭 문자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을 변형시켜서 인용합니다. 왜냐하면 구약 때 예언은 이스라엘의 구원이야기입니다. 이방의 구원을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들의 이해와 상관없이 그것은 메시야께서 옛 언약을 성취했다. 하는 의미로 소위 종말론적인 기독론적인 성취 인용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 성경은 이 후에로 말하지만 요엘서에서 이 후에는 메뚜기 군대로 언약의 땅을 말갛게 쓸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면 그 후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켜줄 것이며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말세에(2:17)” 그런 말로 변형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끝 날에 큰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또 나중에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사도들까지라도 이방인이 어떻게 성령을 받는가? 어떻게 베드로가 이방인 집에서 하루 이틀 묵을 수가 있는가? 그런 일로 대단히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 그저 유대인처럼 할례 받지 않고 막 들어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해와는 상관없이 인용한 구절은 분명히 메시야 성취 구절을 인용하기 때문에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택하심을 입고 피할 자가 있을 것이다. 하는 이야기는 싹 빠져있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2:21) 로마서에 있는 것처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 말로 마무리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말하자면 사도들이 구약 성경을 인용하는 빛입니다. 구약에서 요엘서의 위치 그러면 여기 있는 말씀은 요엘서는 인용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이 요엘서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책이고 더구나 소 선지서는 그 순서도 외우기가 어렵습니다. 한꺼번에 열둘로 붙여 있는데 이사야처럼 큰 책이면 어디 붙었는지 알기도 쉬운데 말하자면 소 선지서는 이것이 저것 같고 나중에 발음도 이상해서 잘 모릅니다. 그래도 예수 믿은 지 한참 됐는데도 계속 모른다 하면 안 되지요. 단지 우리 기억력이 조금 그러니까 제가 봐 주는 이야기이고 예수를 오래 믿으면 그 정도는 줄줄 해야 하지요. 대충은 배열순서가 제일 뒤에는 학개 스가랴 말라기 포로 후 선지자가 역사적인 순서로 붙어 있습니다. 그러면 열둘 중에서 아홉 개만 남았으니까 훨씬 쉽잖아요. 일번은 아시겠지요. 호세야입니다. 그러면 여덟 개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얼마 안 되지요. 호세야 다음에 요엘서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모스서가 있습니다. 그러면 요엘서는 3장으로 된 아주 작은 책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책을 중요하게 인용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냥 성경 여기저기서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렇게 인용하는가? 이것을 우리들이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거기까지만 설교를 해야 할지? 기록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유명한 선지자인줄을 우리가 잘 알지요. 그 이전에는 다윗 왕조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선지활동들의 말들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건이 있으면 가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지 안했냐? 하고 다윗도 책망하시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이스라엘 왕조 중에서 설립하고 있는 것이 선지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왕이 그 대사를 그 속국인 다윗왕조에 파송했기 때문에 왕을 책망하고 하나님의 권리를 찾고 이것이 소위 이적 선지자들입니다. 엘리야나 엘리사까지도 거기에 포함이 됩니다. 그 후에 선지자들은 다 기록 선지자들의 활동들입니다. 그들의 활동이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선지자의 활동내용 이스라엘의 멸망와 회복의 약속 그 기록선지자들의 활동은 그냥 범죄 한 왕조에 와서 하나님의 주권을 찾는 하나님의 대사가 아니라 그들의 주어진 환경에서 이스라엘의 멸망이 어떻게 될 것이며 그리고 회복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 기록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록 선지자들은 머리가 엘리야 엘리사 이 두 사람은 알겠지요. 엘리야가 머리이기 때문에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에게 한 약속을 이룬 것은 엘리사입니다. 모세의 약속을 이룬 것은 여호수아였던 것처럼 그래서 구약에서 선지자의 후계자는 여호수아와 엘리사입니다. 나머지는 선지자에게는 후계자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새로운 언약의 중보자로 모세와 엘리야가 있고 그리고 언약은 항상 상속됨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그 상속자에게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어떤 인물인가? 이스라엘은 망하고 하나님이 신실한 칠천 명을 남기셨는데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설립해 주겠다. 한 것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했던 약속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적인 배경이 어느 때인가? 나라가 어떻게 되었길래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그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나라에 대사를 파송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역사의 인물을 다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역사의 시작과 끝 그리고 중요한 시점의 인물들은 알아주어야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 첫 왕은 알아야 하고 멸망할 때 왕, 유다는 여호야 김 여호야 긴, 시드기야 그때 사건은 조금은 알아야 하고 그리고 그 앞에 먼저 본보기로 망한 것이 있는데 이스라엘과 유다를 두 자매로 에스겔서는 비유하는데 언니가 먼저 망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고 그리고 100년 후에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소위 나라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독립국가 이지만 성전이 없다는 의미로 다윗왕조가 아니고 또 그 전에는 돌아 와서 성전은 지었지만 다윗왕조가 이방의 속국으로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회복한 것이 아니고 그런 의미로 이방인의 때입니다. 그래서 두 번 망했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가 망할 때는 대사들의 활동이 아주 빈번하겠지요. 그리고 망했을 때도 그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에 대한 소망도 주는 것입니다. 그때 말하자면 선지자들이 많이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기로는 이사야는 웃시야 때 활동했습니다. 남 유다는 웃시야 임금이었고 북쪽은 여로보암 2세가 왕이었는데 그때 두 나라가 전무후무하게 부흥해서 초대 왕 솔로몬 때의 경계를 다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2세의 아들 호세야 9년에 북 이스라엘이 먼저 망하고 전무후무하게 부흥했는데 그 다음에 아들 때 망하고 그리고 남쪽 유다는 웃시야와 히스기야 때 그때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을 했습니다. 북쪽이 그렇게 망할 때 남 유다는 앗수르 군대에 대대적으로 포위되었습니다. 그것까지는 여러분이 알겠지요. 그때 히스기야가 기도하니까 18만 명이 한꺼번에 몰살하고 그리고 히스기야가 교만했지만 기도하니까 무화가 뭉치를 붙이면 병이 낫고 하는 이사야 중반부에 끼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기억을 하셔야 합니다.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때 말하자면 선지자들의 활동이 대대적으로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선지자가 이사야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해서 세계가 새롭게 재편될 것인가? 이사야가 아주 장대하게 설명을 하지요. 이스라엘의 구원을 새로운 출애굽으로 40장 이하에 말하고 이사야 끝장에서는 새로운 에덴으로 말하고 그리고 열국의 멸망들을 그 앞부분 38장 앞에다 말해서 어떻게 세계가 재편될 것인가? 아주 장대하게 설명을 합니다. 첫 작품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말하자면 선지자들이 대대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 무렵에 요나를 앗수르에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앗수르로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 유다를 바벨론으로 보낼 때 그 성을 위해서 기도해라. 했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께 북 이스라엘을 앗수르로 보낼 때 선지자를 보내서 그들로 여호와의 명령을 듣도록 하고 그들을 돌이켰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나라에 이스라엘 백성을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이방인도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요나 선지자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 무렵의 선지자들 그리고 그 전에 있는 예언이 어느 때이냐면 이제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이처럼 크게 말했지만 그 멸망의 징조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엘리야 엘리사 때입니다. 엘리야의 북쪽 임금은 아합입니다. 그리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죽었고 그 다음에 예후의 왕조가 4대를 잇다가 예후 다음에 4대 왕이 여로보암 2세입니다. 그러니까 한 70-80년 기간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 전에 말하자면 멸망의 시작이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와 엘리사가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때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냐하면 북쪽은 바알의 왕조가 되었다고 했지요. 남쪽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고 북쪽은 여로보암이 다스렸는데 여로보암의 아들이 오므리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오므리가 다윗처럼 사마리아 성을 도성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궁을 지은 것처럼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 삼은 것처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을 세워서 그 나라를 바알에게 바쳤습니다. 그때 말하자면 엘리야가 나만 남았습니다. 그럴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대사를 철수 시켰습니다. 먼저는 시내산으로 부르셨고 그 다음에는 온 가나안땅이 더렵혀졌기 때문에 올라갈 장소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할 장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요단강을 건너고 백성이 돌아왔던 것처럼 다시 요단강을 건너고 나와서 하나님이 위로 불러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상속사 엘리사가 다시 요단강을 가르고 들어갔습니다. 이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때 남쪽은 아직 바알의 왕조는 안됐는데 북쪽 아합과 남쪽 여호사밧 임금이 대단히 성군인데 사돈이 되었습니다. 서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함께 바알 왕조가 된 것이지요. 나라 크기로 보면 북쪽은 열 지파이고 남쪽은 두 지파 뿐입니다. 유다가 작습니다. 그러니 형님하고 찾아 간 것이지요. 그때 예후가 이세벨을 죽인 것을 알잖아요. 성에서 예후 군대가 오니까 밑에서 예후가 내편 든 사람 손들어. 그래서 내시들이 이세벨을 밀어뜨리니까 땅에 떨어져 죽었잖아요. 지금 그때 사건입니다. 그때 누구도 죽었냐면 여호사밧의 아들들도 죽었습니다. 하나는 상속자일 것입니다. 전쟁하다가 아합의 아들과 함께 전쟁하러 나갔다가 죽었고 그리고 여호사밧은 죽을 뻔 했지요. 아합이 화살 맞아 죽을 때 여호사밧은 소리 지르고 도망갔지만 아합은 졸병처럼 변장하고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었으니까 전부 공격하니까 죽을 뻔 했지요. 그때 아슬아슬하게 살았는데 그 아들 때는 죽었습니다. 예후의 손에 아합의 아들이 죽었고 그리고 아합의 아들이 병들었을 때 문병 왔던 여호사밧의 아들도 거기서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양 쪽 왕들이 예후의 손에 죽은 것이지요. 아합의 집을 심판한 예후 장군에게 전부 죽은 것입니다. 그때 남쪽은 큰 병고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왕이 죽고 또 예후 군대가 진행하다가 아합의 집을 찾아가는 왕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다 움막에서 죽였습니다. 씨가 마를 뻔 했지요. 그렇게 하니까 누가 드디어 일어났냐면 궁중에 보면 황후들이 정치를 하잖아요. 황후가 드디어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이 이세벨의 딸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왕의 씨를 전부 죽였습니다. 그 피 덩어리 하나 요아스를 제사장의 아내가 숨겨서 겨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왕조를 보존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합에게 속해서 몰살할 뻔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후의 손에 여호사밧의 손자들, 몽땅 죽었고 바로 이세벨에 의해서 그 가문의 씨가 마를 뻔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나타나고 한 70-80년 후에 말하자면 멸망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보냈습니다. 본격적으로 앗수르에게 이스라엘을 맡기기 전에 이사야 같은 사람, 그리고 북쪽에는 호세야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 전에 선지자들이 요엘과 오바댜입니다. 오바댜는 에서에 대한 멸망을 선포하니까 조금은 이상할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러냐면 나중에 앗수르에게 북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아합의 왕조가 범죄 하니까 하나님께서 예후를 통해서 아합 왕조를 심판했고 그 다음에 아람 왕 베냐단을 불러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그렇게 해서 이방 나라를 일으켰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주변국이 다 독립을 얻었습니다. 그때 특별히 악종으로 활동한 족속이 에돔입니다. 요엘서에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블레셋 두로 시돈 에돔 이런 이야기들이 요엘서 3장에 나옵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대대적으로 반란을 일으켜서 그 전에 여로보암 2세밑에서 복종하고 있었는데 전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하면 잡아서 종으로 팔았습니다. 그들은 본래 한 형제인데 이렇게 앗수르에게 이스라엘이 멸망받기 전에도 하나님이 먼저 뽄대를 보였습니다. 그때 활동했던 선지자가 요엘과 오바댜인데 오바댜는 에돔의 멸망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엘 자기 백성에 대한 심판 그리고 요엘은 이스라엘의 멸망, 특별히 유다의 멸망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요엘서는 이스라엘인지 유다인지를 잘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아마도 그의 사역지가 유다 쪽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그러냐면 항상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면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심판한 것이며 그리고 나서는 심판의 도구로 썼던 이방인들을 불살라 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방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자기 집에 먼저 행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대적을 심판하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요엘서는 이스라엘 집에 대한 심판 이야기이고 그리고 오바댜는 그때 이스라엘을 전무후무하게 대적했던 그 주변국인 에돔에 대한 멸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요엘서입니다. 그러니까 요엘서가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 함께 아합집이 되었으니까 북쪽과 남쪽이 다 포함이 되겠지요. 그들을 심판할 것인가? 제일 처음 예언한 것은 요엘서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언약 백성에 대한 심판의 방식 언약의 저주 그러면 이 심판은 어떤 방식으로 되어 있냐하면 구약의 신명기 28장도 그렇고 출애굽기 모델도 그러합니다만 그들이 범죄 하면 그들을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 보낼 것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 땅은 메뚜기들이 와서 다 갉아 먹어 버릴 것이고 그리고 가뭄이 들어서 말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먼 땅으로 옮겨 갈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 백성에 대한 저주입니다. 언약 백성에 대한 심판은 언약의 저주, 언약을 거두어버리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젖과 꿀이 흐르도록 했는데 메뚜기 때가 전무후무한 심판으로 다 갉아 먹어 버릴 것이며 군대처럼 와서 쓸어버릴 것입니다. 이런 모델들을 계시록에서도 황충의 군대로 무저갱에서 나온 군대 모습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먼저는 언약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그 땅에는 비가 끊어지기 때문에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의 땅에서 그들이 유업이 되지 못하고 먼 이방 땅으로 옮겨 갈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그들에 대한 저주입니다. 언약의 회개 = 언약의 땅을 회복, 성령을 부어 주리라. 그러면 그들이 다시 회복하면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복을 줍니까? 요엘서는 말하기를 너희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울어라. 신랑도 신부도 다 와서 울라고 해라. 제사장도 와서 금식하고 울라고 해라. 왜냐하면 메뚜기가 와서 다 먹어 버렸고 흉년이 들어서 하나님 앞에 기쁨의 예물을 드릴 것도 없고 굶게 생겼으니 다 울어라. 울면 내가 너희들을 보살펴 주겠다. 요엘서는 그렇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 가운데 2:18절을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회개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언약의 땅으로 불러 드리실 것이며 그전에 메뚜기가 먹었던 것보다 갑절은 갚아 줄 것이며 그리고 다시 비를 줄 것인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줄 것이며 그리고 그들을 다시 언약의 땅으로 불러 드리실 것인데 그들을 새 사람으로 지어줄 것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요엘서의 성령을 부어 주리라 하는 약속의 문맥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땅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회복은 그 뒤에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뒷 이야기가 회복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요엘서의 내용입니다. 에스겔 : 새 영을 주어 새 성전을 회복 그리고 이와 비슷한 구절을 에스겔서에서 말합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새끼가 바람이 그중에 들어가면 그들이 큰 군대가 되어 돌아 올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 영을 주어서 그들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세기며 다시는 범죄치 않도록 다윗 왕 같은 왕을 세워서 그렇게 보존해 주겠다. 그러면 그 땅이 다시 생수가 여호와의 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성전 구조로 회복될 것이다. 그렇게 에스겔서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구조와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 그의 영으로 산 영이 되게 하심 왜냐하면 항상 하나님께서 그 영을 부어주신 것은 창세기로 돌아갑니다. 여호와의 신이 수면에 운행해서 여호와의 신이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그 신을 누구에게 주어서 일을 하십니다. 신이 일하시면 여호와께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고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고 그렇게 해서 여호와의 신이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언약의 대상으로 지으셨을 때 여호와께서 그 생명의 기운을 흙으로 지은 사람 코에 호흡하니까 그가 산 영이 되어서 에덴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항상 하나님은 그의 영으로 일하십니다. 여호와의 영을 호흡하니까 그가 산 영이 되어서 그가 하나님의 언약의 땅의 상속자로서 에덴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서 살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았는데 그들이 범죄 하니까 하나님께서 옛 세계를 심판해 버렸을 때 다시는 내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 그렇게 창세기 6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전에 인류는 여호와의 영이 호흡된 인류였는데 그들을 쓸어버릴 때는 다시는 그렇게 짓지를 아니하셨습니다. 그전까지는 특별한 통치자를 두고 한 질서가 아니고 여호와의 영이 친히 지배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들이 큰 영웅들을 따르느라고 네피림 같은 장사들을 따르느라고 모든 사람들이 범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인데 그들이 다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는 홍수로 심판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는 노아 식구를 구원해서 새로운 세계를 지으셨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호흡해 준 것이 아니라 언약 하셨지만 이제는 피는 피로 갚아라. 통치적인 질서를 주셔서 그 나라를 경영하셨습니다. 그것이 나라가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 친히 함께 하시고 통치하셨는데 그 다음에는 사람 대리자를 통해서 통치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임한 영을 칠십인 장로들에게도 부어주심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그 나라를 구원하실 때는 여호와의 영이 모세에게 임하셨고 모세는 여호와의 영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지자를 택하셔서 그의 영으로 잠시 거하시면서 그의 일을 하도록 칠십인 장로에게도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 했을 때 그들로 범죄치 않도록 할라면 지도자를 많이 주셔야 하겠는데요!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임한 영을 칠십인 장로에게도 주어서 그들도 잠깐 동안 예언함으로 그들이 모세와 함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말하자면 여호와의 영이 임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이며 그들은 백성위에 군림합니다. 특별히 그 나라가 나라로 조직되었을 때 모세를 선지자로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함께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왕조에게도 그 선지자를 보내셔서 영으로 증거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입이 되어서 증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의 백성입니다. 선지자는 그들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사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 그러나 구약은 항상 맛베기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함께 하리라는 약속을 대표에게서 약간 시작하지 백성에게는 온전히 집행하지 않는 것이 죄 가운데 집행된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필요하면 선지자를 가끔 부르시고 다윗왕조는 상설왕조이기 때문에 그 왕조에 상설선지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것은 나라가 돈독히 된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의 영이 사사를 직접 불러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항상 함께하는 다윗 왕 그리고 다윗왕조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 왕에게 그 나라를 위탁했습니다. 네 아들은 내 아들이며 이 나라는 영원히 멸망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성소를 다시 설계하고 제사장을 다시 임명하고 우리는 꿈에도 설명하지 못할 일이지요. 여호와께서 내 손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하면서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언제 하나님이 다윗에게 가르쳐 주었는가? 전혀 나오지를 않습니다. 모세는 이동식 천막을 지었는데 다윗은 든든한 큰 성을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조가 바꾸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 발전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영을 누구에게 보내신다. 하는 말은 모세가 말하기를 다 나와 같은 선지자 되기를 원하노라. 그러면 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지요.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말세에 영을 부어주시리라. 그러면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서 범죄 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해 준 것입니다. 2:17 내가 말세에 내 백성에게 내 영을 부어 줄 것입니다. 누구에게 부어줍니까?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여기서 모든 육체는 신약성경의 문맥은 모든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문맥이지만 아마 사도의 이해를 그렇게 되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한 것을 보고 놀랬거든요. 그러니까 아직 이해를 아닐 것입니다. 항상 이해하는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따라서 그것을 누림으로 이해가 되지 먼저 이해력이 생기는 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에서 이 모든 육체는 그 다음이 받습니다.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러면 여기서는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 때문에 모든 육체는 뒤에서 설명하기를 어떤 의미로 모든 육체입니까? 자녀들, 젊은이들, 늙은이들, 한마디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구약의 문맥입니다. 2:18 그 다음에는 그 보다 한수 더 강조해서 그때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예언할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이것은 반복구조입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자녀들, 젊은이들, 늙은이들입니다. 이것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획기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영이 임하며 늙은이들에게 임하면 됩니다. 그들은 장로들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영이 임한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은 꿈에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에게만 탁월하게 임한 것이지 백성들에게는 아닙니다. 아 그런데 보니까 자녀들, 젊은이들, 노인들, 그래도 여기까지는 조금은 낳습니다. 왜냐하면 본토 이스라엘 출신들이니까. 그것을 한 번 더 강조합니다.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리니 부어준 결과는 환상을 보고 꿈을 꾸리라. 예언할 것이다. 이것은 같은 말들입니다. 꿈과 환상을 보고 예언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때는 선지자에게 꿈이나 환상으로 보여주시면 그들은 그것을 예언하는데 단순히 미래 일을 말한다는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대언자로 말하는 것이 예언한다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대리자로 말한다는 말입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남종과 여종은 어떤 것의 반복이고 강조입니까? 너희 자녀들, 젊은이들, 늙은이들 이것을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이지요. 내 남종과 여종, 내 남종과 여종에 대한 잘못된 해석 그런데 우리들은 아직도 우리 신약 교회가 구약적인 의식을 가져서 내 남종과 여종에게도 부어 주리니 했으니 내 남종은 목사이고 내 여종은 여자목사이다. 아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문맥은 아이들, 젊은이들, 노인들, 구약 때는 노인들도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택한 선지자들만 예언하는데 보니까 몽땅 다 줍니다. 이것을 한 번 더 강조하기를 할라면 어떻게 해야 강조가 되겠습니까? 더 높아져야 강조가 되겠습니까? 더 낮아져야 강조가 되겠습니까? 당연히 낮아져야 하지요. 그런데 자가 붙었으니 여호와의 종은 모세인데요. 아 구약 때는 여호와의 종들은 여호와의 영들이 임해서 예언했어요. 그것은 물어 볼 것이 없어요. 내 종들,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머슴과 식모들에게도 주겠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꿈에도 꾸지 못할 일입니다. 흐름을 보라는 말입니다. 지금, 그런데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목사님에게 부어주어야 하겠지요. 그렇게 해서 이 본문으로 여자 목사를 세우지요. 그래가지고는 여자들이 주로 방언을 많이 합니다. 하여튼 점쟁이도 여자가 많습니다. 대나무만 잡으면 흔들흔들하는 것이 여자 같은가 봅니다. 많아요. 미혹도 여자들이 훨씬 많이 받습니다. 여성을 낮추자는 말이 아닙니다. 이 문맥을 보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준다. 그전에 심판할 때는 너희들이 나에게 범죄 하니까 메뚜기 때를 부를 것인데 각종 메뚜기를 다 불러서 말갛게 쓸어버립니다. 군대처럼 하늘이 캄캄하게 오고 메뚜기가 씹는 소리가 군인들 군화소리 같아요. 완전히 쓸어버립니다. 그러면 그 땅을 회복해 줄 때는 어떻게 합니까? 먹어버린 배로 갚아 줄 것이며 그리고 때를 따라 비를 줄 것이며 그리고 이제는 그들을 새 사람으로 지어 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해 주겠다. 했을 때 이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그들이 왜 죄를 범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떠나서 그런 것입니다. 그들이 선지자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아합이 전쟁하러 갈 때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말렸습니다. 그때 여러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서 우리들은 전쟁하자. 독도는 우리 땅 하면서 횃불 만들고 야단이었습니다. 시드기야 같은 사람들이 그랬지요. 보니까 여호사밧이 아합의 집, 큰 집 가서 보니까 아따 김일성 군대처럼 하는 것을 보니 굉장합니다. 애국심이. 그런데 전부 똑 같이 하니까 이상하요. 이 사람들만 예언자입니까? 하면서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했더니 한 명 있기는 있는데 그 사람은 꼭 반대 소리만 해서 기분 나빠서 안 불렀다. 아합이 그럽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오라고 하자고. 그래서 그 사람을 불렀습니다. 너 딱 하나님이 보여준 대로만 말하라고 하니까 아 알았다고 그 사람보고 예언하라고 하니까 또 말합니다. 왕이 전쟁을 나갔는데 왕은 죽고 백성은 산 위의 염소 때처럼 흩어졌는데 다 돌아가라고 한다. 아 그 말보다 앞에 그런 말을 했구나. 말하자면 나가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거짓 선지자들이 우리가 만장일치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너는 어디서 보았냐? 아 하고 야단입니다. 그러면서 전쟁이 끝나면 그 사람을 알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가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보았는데 하나님의 보좌에서 어전 회의가 열렸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꼬드겨서 죽게 할꼬?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거짓 선자지들이 나타나서 내가 아합의 거짓 선지자의 입에 들어가서 아합을 꾀겠나이다. 이렇게 말하더라고. 그러면서 백성은 다 도망치고 왕은 죽을 것이다. 왕이 야단이지요. 너 내가 살아서 오면 죽을 줄 알아라. 왕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런 이야기들이지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안했습니다. 만일에 참으로 여호와의 영이 그들 안에 거했으면 애국심을 빙자해서 그런 일을 안 저질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들이 범죄하고도 우리나라가 빼앗겼으니 우리 여로보암 2세 때는 다 찾았는데 땅을 잃어서 되겠는가? 그들 죄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을 시작했는데 그렇게 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메뚜기의 군대를 보내서 그들을 심판해 버립니다. 그러면 다시 그들을 회복할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을 풍성히 주어서 다 선지자 삼으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지요. 그 당시는 그런 회복의 약속입니다. 그것은 종말의 미래의 일을 말하기보다도 지금 단박 메뚜기 군대가 재앙을 보냈는데 이 재앙을 면할라고 울고 회개하면 너희들에게 그 은혜를 주겠다. 하는 것이 일단은 그 당시 구원에 대한 약속입니다. 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 포로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당시 에돔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팔아먹어 버렸지요. 그리고 블레셋 두로 시돈, 그런 곳으로 많이 끌려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서 돌아 온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맛베기이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 앗수르에게 북 이스라엘이 완전히 잡혀가서 혼족이 되어 버렸고 나중에 유다는 백 여년 후에 바벨론에 끌려가서 70년 동안 황무지가 되어 버렸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전에 아합이 죽고 그 다음에 후손들이 항상 아들 때입니다. 그 아들 때에 하나님께서 주변국들에게 많이 팔아 버렸기 때문에 많이 잡혀가 버렸고 백성은 아주 큰 재난을 당했습니다. 그때 했던 예언입니다. 그러니까 심판과 맞물려서 축복을 말하는데 그들을 여호와의 영이 함께 하는 선지자처럼 지어줄 것이면 그들을 범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영을 소위 머슴 식모에게도 다 부어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나라가 다 선지자의 나라가 되며 이스라엘 백성이 사모하고 사모했던 선지자들, 아버지 같은 사람들, 그런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큼 복이 되겠습니까? 그 전에 먹어 버렸던 것보다 배나 준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풍성한 생명을 주리라. 그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때는 하나님께서 다시는 하나님께서 영이 함께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통치 질서를 통해서 노아의 나라를 지배했습니다. 나중에 함 족속에서는 말하자면 바벨탑을 쌓을 만큼 그렇게 큰 조직을 갖추었습니다. 왜냐하면 함 족속에 영웅이 나타났었거든요. 큰 나라를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흩을라고 말들을 혼잡케 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했었지요.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영이 임하셔서 선지자를 일으켰었는데 이제 그 약속을 여기서 성취한 것이라고 베드로가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뒤를 보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이전에 이스라엘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이 범죄 해서 망했는데 하나님이 선지자의 영을 풍성히 주셔서 그들을 구원했는데 이 구원은 이 구원으로 끝이 아니라 본문을 보면 나중에 해가 변하여 달이 변하여 피가 되고 해가 어두워지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우주적인 심판으로 강림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 전에 세운 나라가 성령을 한량없이 주어서 세운 나라이며 그러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이처럼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는데도 만일에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 이 문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설립을 말하는 것이지 개인의 경험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지자 나라 삼았습니다. 그들이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망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회복할 때는 다 선지자 되도록 하심으로 그들을 풍성히 줄 것입니다. 이제 그 약속이 여기서 성취된 것이라고 베드로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뒤에 본문을 보면 그전에 이들이 선지자를 죽이더니 마지막에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셔서 모든 선한 증거로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강림하셨고 요한복음도 성령이 그 위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의 말씀으로 말씀하시고 아버지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그렇게 살으심으로 자기를 증거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이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죽으심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팔았습니다. 그것도 법 없는 이방인의 손에 팔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그렇게 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은 본디오 빌라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새 성경을 아느니 교회를 개혁하느니 하는 사람들이 그것도 고쳐야 하겠다 말하면서 대단히 밝은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사람을 죽일 권한은 로마에 있지 유대인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판 것입니다. 자기들의 왕을 이방인의 손에 팔았고 이방 왕이 하나님 나라 왕을 죽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자기 왕을 팔아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 누구에게 핑계 댈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도신경은 옳은 이야기입니다. 이전에 선지자들을 죽여서 그들이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성령을 한량없이 준 참 선지자,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가 확실한 많은 증거로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법 없는 자의 손에 팔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죽으심을 통해서 순종하는 아들을 통해서 새로운 왕조를 세우실라고 그렇게 하셨지만 그들은 죄 없는 자를 팔아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하늘 보좌의 왕이 되도록 하시고 끝 날에 구원자가 되도록 하셔서 바로 그가 아버지께 받은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구약 때는 여호와께서 친히 종들에게 영을 주시지 모세가 그 영을 칠십인 장로에게 나누어 준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그렇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아버지의 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그 나라를 상속 받았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렇게 말씀하신 분이시며 그가 아버지께 받은 성령을 그의 이름으로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이름으로 약속하신 성령을 아들의 이름으로 받은 것이며 아버지께 약속을 받아서 부어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백성의 대표로 그 나라를 상속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선지자여서 시편을 짓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예언하고 예수의 부활을 시편에서 예언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던 것처럼 이제 이 하나님의 아들이 전권을 가졌기 때문에 아버지께로부터 받아서 그의 영을 교회에 부어 준 것입니다. 어떤 영입니까? 만민의 언어로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전에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는 히브리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이 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방인은 히브리 말을 알 수가 없습니다. 동일하게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끊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선지자가 없었고 그들은 바벨론 왕의 명령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구약의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어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만국의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이스라엘 백성이 흩어졌던 그 땅의 언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한국말이나 일본말이나 미국말도 없었겠지요. 왜냐하면 구약 때는 중동을 중심한 이스라엘 나라만 설명하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있는 것이 하나님이 거기 가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옛 성전을 흩어 버리고 포로 된 자기 백성의 잠깐 성소가 되리라. 다니엘서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기 백성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들이 자기들이 태어난 말로 하나님의 큰 구원의 일들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오순절에 성령을 부으심은 하나님께서 천히 만민을 자기 백성으로 부르시는 부르심의 은혜를 확정하는 것이며 그것이 오순절의 성령 강림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류를 하나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기 영으로 함께 하시는 새 백성을 짓는 것이며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만국을 정복하는 능력 있는 나라를 세우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선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는 선지자가 증거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르심은 만국에 여호와의 통치를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부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실 때는 이스라엘 백성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보냈지만 그가 부활하신 후로는 예수님 자신이 행하지 않았던 큰 일, 만국 백성을 부르신 일을 그의 제자들에게 위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순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나라 말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시작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표적의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여러 나라 말로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모였을 때 느닷없이 영어로 말합니까?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홍해로 갈랐을 때 자주 자주 갈라주어야 합니까?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예수님 지금 우리를 위해서 그때마다 부활하셔야 합니까?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우리에게 나타나야 합니까?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시작하시며 자기 종들과 함께 역사를 경영하십니다. 증인들과 함께 역사를 경영하십니다.

이제 신약교회는 만국백성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꿈을 꾸는데 그냥 가나안땅의 낙원의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약 교회는 하늘의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 그 영원한 영광을 노래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영을 주셔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아들이 그 영으로 말미암아 부활했던 것처럼 그 부활의 영을 우리 가운데 부으셔서 아들과 함께 왕 노릇할 수 있도록 만국 백성을 부르는 왕 노릇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 영을 부으셨습니다. 이제 바로 그 영을 부음 받은 그들이 각 나라로 흩어지면서 증거해서 교회가 확대되었었는데 바로 이 증거가 두루 두루 돌아서 우리에게까지 증거되었고 우리도 그들의 증거를 통해서 예수의 주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우리들도 생명 없는 우상을 주라고 절했습니다. 거기에 모든 정성을 바치고 우리 마음을 모으고 우리 기원을 설명할라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으로 사는 우리들이 생명 없는 우상 앞에 그렇게 했습니다. 모든 정성을 다해 그렇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다. 이스라엘 밖에 우리들은 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방 땅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자기나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들었던 것처럼 이제는 그들이 흩어진 더 넓은 우리들까지라도 그 음성을 들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만민이 주님께 복종할 수 있도록 그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증거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니 모든 신들은 가짜니 그렇게 증거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하나님이 살리신 예수, 이스라엘이 버렸고 빌라도도 죽였고 지금도 세상은 이 주님 앞에 빌지 않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십자가는 매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죽으신 이 분이 만민이 부인한 이 분이 하나님이 살리셨으며 그 분이 우리의 구주이시며 구약 때는 가나안땅만 메뚜기로 심판했지만 이 분이 장차 오시면 이 성령의 증거를 받고 예수를 주라 시인하면 구원을 받겠지만 만일에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무릎 꿇지 아니하면 장차 해가 변하여 캄캄하게 될 것이고 달이 변하여 핏 빛이 될 것이며 계시록 언어대로 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이며 베드로의 증거대로 하면 하늘이 종이 축처럼 말라질 것이며 땅이 진동할 것이며 우주적인 심판을 통해서 멸하시리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행전 뒷 본문은 전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으니 이제는 돌이켜라. 백성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우리의 왕을 죽였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너희들이 알지 못하고 그런 줄 안다. 하나님이 그 길을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돌이켜 회개하라. 너희들이 죽인 예수가 하나님이 세운 왕이시며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러니 그분에게로 돌이켜라.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 예수께 속한자로 씻음을 입어라. 씻고 예수께 속한자로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먼저 역사해서 하늘의 것을 알게 하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증거를 듣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그렇게 말씀했고 사도행전의 그런 증거는 이런 이방 언어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교회가 하나가 되었구나. 한 것을 인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서의 방언과는 약간 다릅니다. 그러니까 이 성령은 다른 제자들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주님을 증거할 자로 다 투표까지 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전에는 예수를 주가 아니라고 죽였지만 돌이켜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그에게 속한자로 씻음을 받으면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니 그 백성이 된 증거로 왜냐하면 그 백성은 만국 백성을 정복하는 백성입니다. 그런 의미로 그들도 하나님의 대리자로 만국 언어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에 주신 선물입니다. 만일에 우리가 필리핀 선교를 가면서 영어를 못하면 어떻게 선교를 하겠습니까? 이제 신약 교회는 그런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즉각적으로 갑자기 언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를 깨달았기 때문에 형제를 위해서 많이 연구를 했습니다. 지금처럼 녹음기도 없는 시대에 미국 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워서 성경을 번역한 것이 옛날에 성경 번역이고 개혁 성경은 거기서 별로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사랑이 언어를 익혔던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의 말을 다 알아 듣는 것처럼 그렇게 선교사들이 탁월하게 언어 능력이 발달되어서 얼마 있으면 옛날 언어를 하고 이제는 거의 만국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될만큼 그렇게 된 것은 그들에게 여호와의 영, 만국 백성을 부르시는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그렇게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외국어를 잘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항상 처음에 있는 일은 표적이며 그것이 꼭 반복된다는 그런 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도시대에 특별히 사도행전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에베소에서 열두 명 구약 신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셔서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그것을 확증하는 시대에만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지 그 후에도 항상 이런 은사가 나타나서 갑자가 외국어로 말하고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만국 백성을 부르시는 확증의 은사였습니다. 사단은 항상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바꿉니다. 못 바꿀 위조품이 없습니다. 사단은 그만큼 거짓의 아비입니다. 사도행전은 전무후무한 성령의 강림을 예수의 주 되심을 증거하는 확증하는 증거로 그리고 그 증거의 현장으로 삼았습니다. 주 되신 그리스도께서 만국 백성을 부르시기 때문에 그 언어를 우리에게 주어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소식을 너희에게 전파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돌이켜라.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삼천명이나 돌이켰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모여서 전심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엎드려 간절히 기다렸던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 때문에 엎드려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교회가 태동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열매입니다. 성경이 분명이 이것을 말씀하고 있는데도 이 귀한 본문, 천하 만민을 부르는 이 귀한 본문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을 받고 방언하면 술 취한 것처럼 달달 떨고 갑자기 자빠지고 별 장난을 다하고 지금도 성령이 임하면 성령 시대이니까 누가 성령시대가 아니라고 합니까? 주님도 지상생애 부활하신 후 시대 각자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도 성령으로 사도들이 일 하신 것, 사도들 다음 시대에 일 하신 것,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 각각 다르지요. 똑 같은 것이 반복된다고 거짓말을 해서 지금도 교회에 군림하는데 묘하게도 함께 짰는지? 예수의 주 되심은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말만 예수의 이름을 부르지 그들이 예수의 이름에 주 되심의 증거가 거의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래 놓고도 성령을 받았다고 사람을 종으로 삼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의미로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언어로 예수의 주 되심을 고백합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가져올 것입니다. 구약 백성은 꿈도 꾸지 못하는 환상과 꿈을 꾸고 우리의 입으로 증거합니다. 모세도 그런 영광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다윗은 선지자여서 예수의 부활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보는 방식으로 확실한 방식으로 그렇게 알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것이 우리가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시대 사람이 예수의 주 되심을 고백한 사람이 있습니까?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라고 그렇게 말한 종교가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도덕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람이 도덕적으로 착해도 그가 남편에게 배반자이면 그의 모든 것이 음행이지 그 도덕은 괜찮으니까 봐주고 그런 법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언약밖에 있었으며 우상의 종이었으며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이 값없이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범죄 한 백성을 위해서 그의 영으로 함께 거하시려고 아들에게 영을 한량없이 주셔서 그를 왕으로 취임시키셨는데 그는 우리의 범죄를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저주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범죄 한 왕조는 왕의 죽음 외에 속죄하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왕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에 이르도록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왕을 살리셔서 하늘 보좌를 그의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왕을 그런 목표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 왕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자기 몸을 드렸고 하나님은 그 신실한 약속을 따라서 아들을 살리셔서 확실한 많은 증거로 이제는 천하 만민을 부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힘을 내십시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이 없고 우리는 방언도 못하니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예수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들은 그 전에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예수를 살리셨는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 분이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가 왜 죽으셨습니까? 그가 왜 죽으셨습니까? 그 분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니 이것을 알고 예수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면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씻음을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그가 장차 강림하셔서 만국을 심판할 때 우리는 그의 영광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그렇게 증거하면 그것이 세상을 진동하고 지옥의 권세를 진동시켜서 여러분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불러들이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만민을 불러 드리는 증인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충만한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증거하는 것처럼 성령은 예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구주로 보내셨다. 하나님이 확실히 증거하셨습니다. 살리셔서 증거하셨습니다. 세상은 부인했지만 하나님은 확증하셨으니 이 증거를 확실히 붙들고 주님 오시도록까지 우리가 꿈을 꾸고 환상을 보십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십시다. 지금 만민이 주님 앞에 복종하지 아니할지라도 우리는 만국을 통치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힘 있게 증거하십시다. 주님 오시도록까지.아멘.

거룩하신 아버지 누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보았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그 구원의 도를 가지고 올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심지어 죽은 우상을 섬기면서 그리고 마음에 도덕을 더듬으면서 그것이 영원한 것인가?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선행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날 만큼 종교적으로 우리를 훈련함으로 하나님을 비웃을 만큼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비하신 아버지께서 끝 날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온전한 사랑을 나타내셔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확실한 증거로 증거하셔서 이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예수께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며 바로 이 일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수의 주 되심을 고백하고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확실한 증거로 우리 안에 증거하셨사오니 주님 오시도록까지 이 증거 가운데 굳게 서서 오직 주님께 복종하며 만민에게 주 예수의 주 되심을 증거해서 천하 만민이 주님께 복종하는 새 창조의 구원을 신실히 감당하는 증거하는 백성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해 주시옵고 우리의 증거를 효력 있게 하셔서 만민을 주님께로 돌이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며 만국 백성 중에서 우리를 부르셔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아래 속해서 세상 풍속이 끄는 데로 갔사옵고 심지어 생명 없는 우상 앞에 절하도록까지 하나니의 진노의 자식으로 살았던 저희들이었지만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단번에 끝내시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여시고 이제는 생명의 왕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보내셔서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섬길 수 있도록 영원한 구원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처럼 교회가 만국백성을 복종시키는 주의나라가 되었사오니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셔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증거하신대로 예수의 주 되심을 확실히 믿고 세상이 주님을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알았사오니 예수의 주 되심을 만국 백성에게 증거해서 우리의 설득력이 아니라 성령의 증거로 만국 백성을 주님께 복종시키는 믿음의 증인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꿈꾸었던 가나안땅의 에덴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하늘의 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사옵고 영광의 나라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사오니 우리가 미래를 꿈꾸고 하나님의 영광을 꿈꾸면서 아직도 만물이 주님 앞에 복종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보았사오니 항상 믿음과 소망 가운데서 일깨워서 주님의 증인으로 신실한 증거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설득력이 아니라 우리의 덕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증거하신 증거를 따라서 예수의 주 되심을 고백할 때마다 성령께서 권능으로 친히 함께 하셔서 듣는 자의 마음을 변화시키셔서 그들도 이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들로 믿는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증거를 주님께서 능력 있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어린 자녀들을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옵소서. 저들이 세상의 학문이 아니라 교회에서 또 부모를 통해서 믿음의 증거를 주님께서 들을 때마다 성령께서 저들 안에서 친히 증거하셔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확실히 믿고 저들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에게 속한 백성임을 확실히 알고 항상 주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저들을 인도해 주시옵고 세상의 모든 더러운 죄악이나 악한 모든 유혹에 물들지 아니하고 오직 신실한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로 커 나갈수 있도록 주님께서 저들에게 지혜를 더하시고 모든 긍휼을 더하시며 저들을 주님 쓰시기에 합당한 길로 저들을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존귀케 해 주시옵소서. 또한 이런 저런 모양으로 고통 중에 있는 백성들, 특별히 몸의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백성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만물이 아직 주님 앞에 복종하지 못하며 죽음이 세상의 법칙이나 되는 것처럼 모든 것들을 쓸어가고 있사오며 우리 몸에도 죽음의 권세가 들어와서 우리가 고통을 당할지라도 주님께서 대신 고통을 당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단번에 끝내시고 영원한 부활의 세계를 여시며 부활의 영을 우리 가운데 두셔서 주님의 부활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부르셨사오니 이 믿음 가운데 굳게 깨어서 우리가 연약할수록 우리가 후패할수록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주님의 강하심을 자랑하고 체험할수 있는 믿음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저들과 함께 하시고 저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의모든 고난을 몸으로 체휼하시고 지금도 주의 백성을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보살피는 주님, 주의 백성의 모든 필요를 잘 아시오니 저들의 선한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저들을 치료하심으로 저들이 이 일로 교회 앞에 감사함으로 온 교회가 함께 감사하고 온 교회가 함께 평안할수 있도록 주의 백성을 모든 고난과 질병으로부터 구원해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셔서 주님 오시도록까지 주님의 증거를 증거할 수 있도록 교회를 세우셨사오니 우리가 은과 금은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있는 예수의 이름으로 만국 백성을 축복하며 만국 백성을 주님 앞에 복종시킬 수 있도록 주님의 군병으로 신실한 증거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의 백성과 함께 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모든 평강의 길로 교회를 인도하시며 가정을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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