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2:12-22

찬미예수님 2025. 1. 18. 08:24

제목:사도행전 강해

성경:사도행전 2:12-22

 

이제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은 뒤로 바로 그 때문에 거기 모인 사람들이 크게 놀랬습니다. 각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시골출신인 갈릴리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자기나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12,13절에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의심에 찬 눈초리로 이것이 어떤 일인고 하고 알기를 원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아예 그들을 조롱해버렸고 하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을 대해서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이 14절 부터 2장40절 까지입니다. 이 설교는 그 구조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14-15절은 서론격이 되겠지요.그들의 비방이 전혀 가치없는 것을 말하고 그러면 지금 일어난 현상들이 무엇인가? 현상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 17-22절 까지입니다.오늘 읽은 내용의 본문입니다.바로 그 현상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인 사실을 설명하고 23-36절 까지가 소위 사도가 했던 복음의 선포, 예수께서 곧 주요 그리스도다.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어도 곧 그 분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 하는 사실을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선포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복음의 선포는 23-36절 까지가 되겠습니다.바로 그 선포 때문에 37절에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들이 참으로 두려워서 떨고 물었습니다.그래서 38-42절까지가 권고가 되겠습니다.하나님께서 친히 그 약속을 성취하셨으니 너희들이 참으로 믿어서 성령을 선물로 받고 이 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첫째부분 바로 성령강림으로 나타난 방언현상 그래서 각각 자기나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들었는데 그 현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설명한 16절 부터 살펴 보겠습니다.‘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기울이라1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여기보면 베드로가 여전히 특수한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했을때 바로 그 은혜를 처음 증거하는 사도로서 여기 나타나고 있습니다.여기 유대인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하는 유대인들하는 말은 물론 온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도 하는 말이고 또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경건한 유대인들을 두고도 하는 말입니다.그래서 그들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설교한 장소는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였어도 사도행전의 통상적인 말씀증거의 장소는 성전 뜰과 관계가 있습니다. 때가 제 3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고 사람들의 의심이나 비방에 대해서 일단 해결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제 3시니 하는 것은 우리나라 9시에 해당됩니다.? 유데인들은 해떠서 해지기까지 그런 것을 통상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기 때문에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를 하루로 계산하고 있거든요.그러니 여기 보아서 제3시니 하는 말은 9시쯤 되겠습니다.그래서 유대인들의 개념으로 봐서 이 아침나절에 또 정오도 되기전에 술에 취해서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고 논의할 가치도 없는 문제입니다.그래서 때가 제3시니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곧 선지자 요엘에게 약속했던 약속이 성취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17-21절 까지의 인용은 요엘서 2장 끝에 해당됩니다.요엘 228-32절 까지의 말씀을 그냥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성취의 의미로 해석하면서 인용하고 있습니다.먼저 요엘서 2장28-32절을 보겠습니다.‘그 후에 내가 내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이 요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기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통 이해합니다.그래서 요엘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대가 예레미야 아모스 미가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가 아닌가를 1장에 있는 배경들을 보고 대개 그렇게들 해석합니다. 그런데 여기 구조는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셨는가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것은 이전의 심판이었을 뿐아니라 만일 그들이 회개치 않으면 그런 심판이 장래에 심각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임할 것으로 과거의 심판과 미래의 심판을 12장에서 말하고 있고 그리고 그 심판으로 부터 구원을 2장18-3장에 걸쳐서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 구원을 말하는 부분에는 심판이 없고 또 심판을 말하는 부분에는 구원이 없고 하는 것은 아니지요.그런데 요엘서에 보면 그들이 참으로 전 민족적인 회개를 해야할 것을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다 나와야 하겠고 신랑과 신부도 다 자기 골방에서 나와야 하겠고 대제사장도 그래야 하겠고 또 여호와의 제단 앞에 나와서 금식을 선포하고 그처럼 회개하고 울어라.만일에 그렇지 않으면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고 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심판이 심각하게 임할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러니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 나라에 기쁨이 있을 것은 신랑과 신부 동남 동녀들이 많고 그런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보면 신랑 신부도 자기의 기쁨의 처소에서 나와라 그리고 제사장도 울고 금식하라.어린아이까지도 금식하라.심판이 전 민족적으로 임하기 때문에 그들의 법죄를 말하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18절 부터 보면 그들은 범죄해서 하나님이 심판했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 그 영원한 언약은 불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매를 떼리고 하나님이 자기 중심이 뜨겁고 마음이 바쁘지요.하나님의 열심이 참으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이제 그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말하고 있고 그 회복에 덧 붙여서 28절에 보니가 그 후에 그들을 돌아오게 할 것인데 그 후에 하면서 여기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과 함께하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의 회복을 여기 약속하고 있습니다.그러기 때문에 28절의 그 후에하는 말은 베드로 사도는 그 후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2:17)라고 해석적으로 인용하고 있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킴은 항상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가 친히 임해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와 항상 관계가 있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회복은 메시아의 나라가 임하심을 향해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 요엘서에서 그들을 회복시켜서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 땅을 허락하실 뿐아니라 그 후에 말하자면 그들을 다시 가나안 땅에 심은 정도가 아니라 그 후에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그들안에 완성될 것을 요엘서에 예언하고 있지요.그런데 그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이렇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신다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30절 부터 보면 내가 이적을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 빛같이 변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혼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없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여기서 시혼 예루살렘이라 불렀을때는 단순히 유대나라의 수도를 말하는 표현법이 아니라 거기 하나님의 집이 있고 하나님의 거처가 있습니다. 그러니 거기 하나님과 함께한 남은 백성이 있으리라 그런 말입니다. 이제 사도행전을 보면서 요엘서와 비교하면서 이 의미를 살펴봅시다.17절 부터 봅시다.‘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요엘서에서는 장래일을 말할 것이요그렇게 되어 있지요.‘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그리고그때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요엘서에서는 내 남종과 여종에게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것이며그런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러면 왜 이 약속이 마지막 날에 임할 약속이라고 이처럼 인용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보아야 하겠습니다.이것은 우리들이 창세기 처음으로 물론 돌아가야 되겠지요.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아담의 코에 생기를 호흡하심으로 아담의 몸이 성령의 거처가 되게 하시고 그렇게 해서 아담의 생과 함께 하나님은 그의 생을 역사안에서 사시고 바로 아담과 교제하는 생명으로 땅위에 그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원하신 것이지요.그것이 창세기 2장에 있습니다. 1장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로 하나님이 가라사대 지으셨다.어떻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 주로 지으셨다.이런 통치질서문제를 주로 말하고 있습니다.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지요.그러나 2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언약의 하나님으로 이름이 바뀌어져 있고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의 면류관으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지었을 뿐아니라 그 피조물을 자기교제로 세우시고 바로 아담안에서 그의 생을 사시는 방식으로 바로 아담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그 순종의 삶을 통해서 다른 피조물의 이름을 짓는 것처럼 피조물의 왕적인 역활을 하고 아담과 하와의 관계처럼 인간이 인류가 사랑의 공동체로 서로 연합하고 그런 방식으로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과 언약 교제 가운데서 진행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창세기 2장의 내용입니다.거기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기를 호흡하심으로 아담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고 그러니 하나님은 아담의 영안에 그의 뜻을 이루시는 방식으로 나타나 있습니다.그러기때문에 하나님의 영의 임하심이 곧 하나님과 함께하는 구원입니다. 그런데 창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 당시 온 세상을 심판하실때 다시는 내 영이 그들과 함께하지 아니 하리니 그들은 다 함께 육체가 되었음이라 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옛세상을 심판하실때 내 영이 저들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방식으로 옛세계의 심판을 하나님의 영의 떠나심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도 노아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바람을 부심으로 거기 새생명을 일으키심으로 거기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나타나고 있지요.이렇게 되었는데 이제 특별히 구약 선지서를 보면 우리들이 여러번 인용했던 것처럼 에스겔 36장 거기보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이스라엘을 옛언약의 땅으로 돌이키고 바로 그 언약의 백성을 파멸시키는 곡과 마곡을 영원히 진멸하고 그 백성들을 7개월동안 장례식을 하고 7개월동안 시체를 치우고 무기는 7년동안 부타지고 그런 방식으로 원수들을 멸절시키고 그리고 40장 이하에 보면 새 성전의 구조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영원히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리라. 여호와 삼마.그리고 그 보좌에서 물이 흘러 나와서 사해 바다를 소생시키는 가나안 땅의 회복을 거기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거기 끝 부분에 보면 그들을 언약의 땅으로 돌이킬 뿐아니라 그들을 물로 뿌려서 정결케 하시는데 그들에게 새 영을 부으시고 그들의 마음을 살과 같이 부드럽게 해서 그들로 내 법을 지키도록 하겠다.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회복하는 마지막으로 말하고 잇습니다.거기도 보면 물을 뿌림을 새영을 부으심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기록한 예레미야서에 보면 31장에 보면 새 언약에 대한 문제가 나오지요. 33절 부터 보면 냐가 내 법을 그들 마음판에 새기기 때문에 이제는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나를 알 것이요 이제는 서로 권하기를 여호와를 알라고 권할 필요가 없다.왜냐하면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여호와를 알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면 다 선지자 된 것이지요.그렇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심을 그들에 물과 피를 뿌림 그리고 옛고토로 돌이킴 돌이켜도 새 영을 부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옛 백성이 죽었던 것처럼 다 죽게 될 것이어요.그래서 물의 뿌림이 아니라 새 영을 부어주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해서 돌판에 법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 판에 새겨서 그들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도록 하시겠다.그러니 다시는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가지 않고 원수에게 멸망받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약속이 그 앞시대때 모세시대때는 어떻게 된 것인가? 왜냐하면 찬조의 일들이 선지서에 이렇게 나타나 있으면 항상 옛언약의 기초는 보면 모세시대때 항상 나타나 있어요.그것은 우리들이 민수기 11장에 보면 알 수가 있지요.거기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원망했지요.만나사건 때문에 원망했습니다.그래서 모세가 하나님 앞에 원망했습니다.내가 내 백성을 낳았습니까? 왜 내가 이 짐을 져야 됩니까?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 혼자 짐질 필요가 없고 70인 장로들을 네 앞에 모으게 하라.그러면 너에게 인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해서 너 홀로 짐지지 않고 그들로 함께 짐지게 하겠다.그렇게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70인 장로들이 다 모세 앞에 모인 것이 아니고 2명만 오지 않고 68명이 왔지요.그런대 오지 않는 2명에게 까지 모세에게 임했던 영이 임했고 그도 자기 장막가운데서 예언했고 그 예언이 멈춰졌습니다.그러니 그도 모세에게 임한 영이 임했기 때문에 모세가 행했던 직무를 그도 보조한다는 의미지요.그렇기때문에 잠깐 임했다가 떠났지요.물론 모세에게는 잠깐 임했다가 떠난 것이 아니라 모세가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항상 같이 있는 방식으로 임해있습니다.그때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와서 일러 바쳤습니다.당신을 무시한 그렇게 해서 우리가 왜 애굽땅에서 나왔던고 원망했던 백성들과 함께 해서 당신을 무시했던 두 명이 자기 장막에서 예언하는데 그것은 당신을 배척하는 일입니다.내가 그것을 못하도록 금지시킬까요? 라고 말했을때 모세가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에게 부어주셔서 다 나와같은 선지자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그것음 모세가 사람이 좋아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 아니라 70인 대표자들에게 모세에게 임하심 영을 임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모세가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기때문에 실은 모세가 짐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 그 백성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심으로 여러 윤리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그들에게 인도하시고 가르치신 것이지 모세가 누구길레 백성의 짐을 지겠습니까? 모세에게 임했던 영이 자기 백성을 감동시키고 그렇게 인도 하시고 계신 것인데 모세 혼자는 못하게 되었을때 70인에게 임하게 하심으로 너 혼자 짐을 짊어지지 아니한다 했을때 모세는 바로 그것을 해석하기를 내게 임한 영이 모든 사람에게 임해서 다 선지자 되기를 원한다.그렇게 바르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70인은 하나님의 사역의 수가 7이고 70했을때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수로 그래서 신약교회도 70인의 공회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70의 수를 모세는 이처럼 해석을 한 것입니다.다른 말로 말하면 70인 대표자에게 임하신 것은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모든 백성에게 임하겠다는 약속이 모세에게 임했던 것처럼 70인에게,70인에게 임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그런데 70인에게는 잠깐 임했다가 떠났거든요.그것은 영원히 임하겠다는 약속의 표지요. 그처럼 모세가 바르게 해석을 했습니다.그러니 참으로 그들이 여호와의 신이 모든 백성에게 임해서 참으로 하나님의 영이 그들 중에 거하심으로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순종할 수 없다는 말이지요.그러니 하나님의 법이 보편적으로 임하면 모든 약속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모세나 70인 지도자를 통해서 지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므로 그들은 다 선지자요 그들은 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에게 그렇게 약속했던 것인데 그것이 선지자들 안에서도 반복되었고 여기 이렇게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음 주일 밤에도 한 번 더 설명을 해야되겠습니다만 구약시대때도 아담이 범죄하므로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하는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를 호흡하심으로 하나님의 생기가 아담의 영혼 아담의 생명의 본질이 되게 하셨지요.그러기 때문에 아담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고 구체적인 율법의 선포가 없었어도 하나님의 법을 알고 그 법을 기뻐하고 그 법을 시행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범죄함으로 그 교제는 떠났지요.단지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 때문에 대표자에게 직무적으로 잠깐 임했다가 떠나는 방식으로 역사했어도 새 본성으로 부어주신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구약당시는 특별히 모세에게 그렇게 말했지요.모세가 선지자의 머리와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모세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와 대면해서 말씀하셨고 다른 선지자와같이 꿈이나 환상으로 하지 아니했다.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래서 꿈이나 환상 하는 것은 미래적인 사건은 구약당시에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심지어 예수 승천하실 때까지 제자들까지라도 주님 회복 하실 때가 언제입니까? 하고 묻고 있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예언한다 장래일을 말한다 하는 장래일은 장래에 임할 은혜 하나님의 일을 베드로서에서는 은혜를 예언했다.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장래일로 말하고 있는 것이고 선지자들 안에 거하신 예언의 영은 증거의 영이어서 곧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서 그가 받으실 고난과 영광을 증거했던 것이지 개인의 앞날을 알아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여기 너희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하는 말은 그런 말입니다.한마디로 말하면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구약때는 모든 육체위에 부어주지 아니했습니다.선지자들 영안에 거하셔서 그가 받으실 고난과 영광을 증거하셨습니다.그러나 이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마치 모세에게 임한 영이 70인 대표자에게 임했던 것처럼 분명히 12사도로 구성된 그 교회에 성령은 임했으면서도 여기 성령을 받음은 120사람이 다 한꺼번에 성령을 받고 예언을 했거든요.그렇게 되 있기 때문에 여기보니까 분명히 옛언약교회에 약속했던 12라는 수와 관계있으면서도 12사도 뿐아니라 120명이 다 함께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지금 요엘 예언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모세에게 임한 영이 70인에게 임한 것처럼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지자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 하나님을 알고 온 세상백성으로 하나님을 알게하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스라엘을 대제사장 나라 삼으심으로 모든 백성을 제사장 삼겠다는 약속이고 이제 예수오심으로 우리가 신령한 제사장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 대표자에게 임한 영은 그의 전 백성을 그와같이 만들겠다는 약속입니다.그러기 때문에 모세에게 임한 영이 70인에게 임하고 그것은 온 백성에게 임할 약속이고 그 약속이 계속 진행되었던 것입니다.그러니 여기보면 그 영이 12사도 뿐아니라 120명에게 함께 부어짐으로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한 약속이 성취된 것이라.그러기때문에 이제는 특수한 사람이 선지자인 것이 아니고 또 사도들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사도들이 분명히 교회의 기초로서 교회를 설립하고 있는데도 사도들만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영이 모든 백성에게 임하심이 곧 구원의 성취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그러기때문에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고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것은 늙은이들만 꿈꾸고 젊은이들만 환상을 보고 분해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구약의 꿈과 환상을 선지자들에게 자기를 계시하시는 방식인데 젊은이들이든 늙은이들이든 곧 모든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서에서도 보면 너희들이 만일 예언하면 방언하면 다른 사람들이 와서 너희들을 보고 미쳤다 하겠다.여기보면 큰 충만한 상태에서 다른 말하니까 모르는 사람은 미쳤다 하고 알아듣는 사람은 두려워 떨고 그러겠지요.만일에 너희들이 예언하면 너희 중에 온 사람이 너희 중에 곧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들으 죄인이로다.회개할 것 아니냐? 그러니 거기서 예언도 들어오는 사람보고 야 너 무슨 죄지었구나 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이 예언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구약때의 선지자들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거여요.그러기때문에 그들에게서 증거한 영은 대언의 영이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지요.그래서 여기보면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라 하는 말은 곧 그의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여기 사도들이 각 나라 말로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곧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 예수가 우리의 구원이시다.하나님의 구원약속이 이 분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여기 신약시대 우리 모든 사람들은 그런 의미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안에 계셔서 우리들은 세상의 죄됨과 예수의 구주되심을 증거하고 그 지식은 구약때 선지자들의 영 안에서 증거한 그 영의 교제 보다도 그 지식보다도 더 풍성한 것이어서 선지자들 영안에 거하신 분은 그 직무적인 방식으로 임하셔서 또 구약때는 소나 양의 제사 성전의 제도를 가지고 그들에게 가르치고 또 예루살렘 땅을 가지고 그 국가적인 방식으로 가르쳤지만 지금 임하신 영은 물론 똑같은 그리스도의 영이시지만 보좌우편에 취임하셔서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뵙는 아버지와 아들의 교제의 영이어서 그것은 하나님 안의 교제라.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교제의 영으로 우리의 본성으로 오셔서 그 분의 영이 우리의 본성입니다.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는 우리에게 생명이 없고 그 분을 사랑하지 않고는 우리는 살 수 없는 것이고 본성으로 오셔서 우리안에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백성이 여러가지 그림자적인 방식으로 가리워진 상태에서 보았던 것보다 우리들은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훨씬 밝은 계시의 빛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들은 구약의 모든 약속들의 성취로 우리들은 다 선지자요.그런 의미로 어린아이들까지라도 예수는 우리의 구원자시다.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구약선지자들이 확실하게 분별하지 못했던 예수의 재림의 나까지라도 어린아이들도 알고 증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엘서의 약속의 성취라고 말하고 있고 12사도 뿐아니라 함께모인 120명 형제들에게 함께 임하심으로 거기보면 그 약속의 성취를 그렇게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목사가 있어서 분명히 설교하고 있지만 여러분들이 목사 때문에만 꼭 구원 받았던 것이 아닙니다.성경은 열린 책이요.여러분들이 다 하나님 나라 증인이어서 여러분이 개인적인 환경에서 예수를 구주로 증거함으로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목사설교가 한번 펀치를 먹이도록 여러분들이 몰이꾼 된 생각을 하지 마시고 혹 그 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다른 교회에 갈 수도 있는 것이지요.그러나 하나님이 여러분 자신들을 세상의 구원의 증인으로 세운줄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신실한 증거를 해야 합니다.여러분들은 그런 일에 있어서 기름부음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 아버지되시고 하나님이 아들안에서 영원히 우리 아버지되심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8절을 보면 내 남종 내 여종 하니까 목사도 남자가 있고 여자도 있는 모양이구나 이런 방식으로 이 종이라는 말을 소위 성직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해당된 것으로 해석들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것들은 잘못된 것이지요.요엘서에 보면 남종과 여 종에게로 표현되어 잇습니다.여기 자가 붙었고 안 붙었고 해서 해석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닌데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종하면 구약의 통치의 방식으로 선지자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서 그것을 특별히 목사에게 적용을 하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나 요엘서에서 직접 말하고 있는데로 보면 남종과 여종에게 천하만민에게 하는 방식은 여기 만민에게 했던 방식은 처음 이 본문만 보면 내 자녀들을 만민이라 해석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젊은이와 늙은이를 만민으로 해석을 할 수 있어서 곧 이스라엘 백성을 대한 것만 해석하기 쉽습니다.물론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일단 언약백성입니다.그래도 요엘서의 뒷부분을 계속해서 볼 것 같으면 이제 시온산에 나믄 자가 있으리라.그것은 유다백성 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하만민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리라고 특별히 베드로는 여기서 해석을 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그러기 때문에 여기 만민에게 했던 사실은 물론 요엘서의 직접적인 본문을 보면 온 이스라엘 백성 젊은이 늙은이 이렇게 좁게 해석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거기 더해서 남종 과 여종했을때 종은 이방인이 종이요 유대인은 종이 아닙니다.그러면 안식일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함으로 내 남종과 여종과 짐승까지라도 안식에 참여하라.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을 부르심은 천하만민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일이지 이스라엘만 배타적으로 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10계명의 4계명에도 그냥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물론 거기는 이스라엘이 언약의 대상이어서 이스라엘에게 연합된 백성만 그 안식에 참여하게 되어 있지만 그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이 되기 때문에 특수한 것이 아니지요.그런의미로 보았을때도 여기서 남종과 여종에게 했던 사실은 배타적으로 어떤 소위 목사 구룹만 그런 개념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부어주리라 하는 약속에도 확대적인 의미로 그래서 이스라엘 너희자녀들 남자 젊은이 노인들 뿐아니라 남종 여종에게 까지 부어주이라 하는 의미로 우리들이 이해를 해야만 바른 해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천하만민에게 그의 영을 부어주신다는 말씀이지요.물론 지금 성령이 임했을때 베드로가 이방인의 구원을 염두해 두고 이 설교를 하고 있는가 했을때 아마 부정적인 답이 나와야 맞겠지요.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에게 빌립이 전도했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갔거든요.거기서 기도하니까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놀랬지요.아 사마리아 사람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셨구나.그 다음 더 놀랜 것은 고넬료집에 갔는데 손도 안 얹고 예수의 구원의 일을 쭉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거기 나타나고 있거든요.그때 베드로가 하나님이 깨끗케 한 것을 더럽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그때 보니까 확인하고 있어요.그런 것을 보았을때 베드로가 얼마나 이해력을 가지고 이 본문을 해석하고 있는가 우리들이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사도행전의 증거를 보았을때 남종과 여종에게 했을때는 곧 이스라엘에게 임하신 은혜가 온 만민에게 부어주리라고 해석을 해야맞습니다.

19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그런데 여기보면 영의 부어주심과 심판에 대한 기사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하늘에는 기사’ ‘땅에서는 징조물론 기사와 징조는 같은 내용인데 기사는 더욱 놀라게 하는데 강조점이 있고 징조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한 표적에 대한 것이 징조적인 의미입니다.그래서 하늘에서는 기사와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하는 말은 같은 말인데 여기보면 큰 피와 불과 연기로다.주의 크고 영화로우신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물론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에서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이 본문의 구조를 막 보았을때는 바로 이 심판에 대한 문제는 또 징조를 보이는데 그 징조정도가 아니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를 때에는 더 큰 징조 해와 달이 변하리라.이런 방식으로 연결된 것을 보면 바로 성령의 강림과 예수의 재림을 바로 하나님의 임하심으로 함께 묶어서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더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임하심 이것은 오순절적인 사건이면서도 바로 그 은혜의 일은 예수의 재림의 날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거든요.그래야 천하만민이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닙니까? 그때 그때마다 오순절적인 성령의 강림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바로 임하신 성령께서 천하만민을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연합시키는 그런 구원의 일들이 계속될 것이고 주님오시도록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으로 자기 백성의 구원을 무엇과 연결시킵니까? 심판과 연결시킵니다.하나님이 피와 불과 연기로 자기 백성에게 임하신 적이 없고 그 임하심은 구약에 보면 애굽에 임하신 방식입니다.그래서 피 불 연기는 애굽에 임하신 방식이고 또 하나님 백성에게 임하신 방식은 불과 연기로는 나타났어도 그때는 옛언약 방식으로 두려운 방식으로 거기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성령의 임하심을 하나님의 심판적인 임하심 그렇게 해서 원수에 대한 심판과 자기 백성에게 대한 구원의 일과 이처럼 연결 시키고 있습니다.그래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 이것은 주의 재림의 날이요 심판의 날 심판은 원수의 영원한 멸망과 그로 말미암는 자기 백성의 구원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여기 피와 불과 연기로다 하는말은 구약적인 방식으로 원수에 대한 심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물론 예수께서 죽으실때 해가 어두워졌지요.그때 달이 어두워진 것은 아니지요.왜냐하면 한 낮에 어두워졌으니까.그때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고 그렇게 됐지요.물론 그런 것도 한 징조가 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이 징조를 해와 달이 변해진 것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이해를 합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옛언약 백성을 심판하심 즉 하나님의 은헤의 일을 거역하는 백성을 심판하심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냈을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은 계시적으로 해와 달과 같은 존재인데 바로 기원후 70년에 로마에게 멸망을 했거든요.물론 그것도 여기의 한 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적인 증거를 보면 바로 주의 재림의 날과 이것을 항상 연결시켜서 주의 재림의 날에는 우주적인 변혁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지금 하나님이 이처럼 은혜로 임하셔서 자기 백성과 함께 계셔도 그 은혜의 일을 거절한 사람들은 영원한 진멸 그것이 기다리고 있으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여기까지가 보면 요엘서에 대한 내용입니다.요엘서도 보면 뒤에 이스라엘의 구원 뒤에 3장에 보면 원수에 대한 심판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렜 예수로 큰 기사와 이적과 권능을 너희 가운데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제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 그 분을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분과 함께 하셔서 그 분이 하나님이신 사실을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너희 가운데서 증거하시지 아니했는가? 바로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은 그 분이 보내신 것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이것이 베드로 사도께서 지금 성령이 임하신 현상들을 요엘서의 예언의 성취로 하나님의 영이 친히 자기 백성들 중에 거하시며 구약당시 처럼 어느 대표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자기 백성의 본성으로 부어져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구원의 날이 임했으니 너희들이 이 구원의 날을 거절하면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희들이 참으로 구원을 얻어라.예수께서 살아 생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많은 권능과 기적으로 그들 중에 증거했지 않는가.바로 그 분이 이 성령을 보내셨느니라.그런 방식으로 여기 설명하고 있습니다.이것이 사도께서 처음 설교했던 성령강림에 대한 현상을 예언의 성취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은 미쳤다 하는 말을 듣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여러분들이 옛 본성의 적당한 방식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이 들을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할 것이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참으로 복음을 복음적인 방식으로 설명을 하면 충격을 받든지 멍해버려서 알아듣지 못하는 방식이 그런 것입니다.이해할 수도 없고 저 사람이 말을 잘하고 가다가 뒤에서 흉보지요.막대놓고 말을 못해도 아 그 사람 말 잘하더라.변호사 되었드라고.예수믿으면 다 변호사지요.광신자지요.시도때도없이 권하니까요.그런의미로 여호와 증인이 존경받을만 합니다. 악령의 영도 굉장히 부지런 하거든요.열심도 있고! 우리들이 참으로 예수를 증거하면 옛본성의 지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왜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왜 믿는 사람들이 기쁨이 있는가를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그것은 전혀 세상의 지혜가 추구할 수 없는 것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어요.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감사하기는 유대인과 같이 바로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을 소유했던 사람들이 아니고 언약 밖에서 여전히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끄는 데로 생명이 없는 우상이 끄는 데로 어둠이 역사하는 데로 우리 옛본성에 따라 그렇게 원수로 살았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그 은혜를 따라서 인간의 배교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거두셨어도 하나님은 친히 그 찬조의 질서부터도 영원히 자비하셔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 찬조의 질서에 개입하셔서 하나님이 피조물 종의 모습 사람으로 나타나셨고 바로 그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바로 예수의 성령을 우리 가운데 부으셔서 영을 따라 사는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신령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지으셨고 우리들은 예수 안에서 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뵙는 참다은 지식을 지혜를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세상에 참 빛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처럼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신 은혜를 감사해야 되겠고 그런의미로 여러분들이 물론 목사를 통해서 성경을 배우려 하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세우신 것은 복음의 증인으로 세운 것이지 성경에 대한 훌륭한 강사로 여러분들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때문에 세상에 지식있는 분을 여러분들이 만났을찌라도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증인으로 증거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지 여러분들이 설득력을 통해 그들을 복종시킴으로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일에 있어 불안한 자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모르고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의 일이지 인간의 설득력이 아닙니다.여러분들은 누구와 변론해서 이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그가 듣든지 상관없이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증거하시면 바로 그 영이 택한 백성안에 역사하셔서 그 자신을 믿고 참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찬양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시는 것입니다.그 은혜가 120명에게 임했지요.그것은 온 예루살렘에 가득 온 로마 끝까지 번졌지요.우리에게 까지 임하게 하셨고 우리로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지요.우리도 참으로 하나님의 신령한 선지자로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 오시도록 까지 바로 교회를 통해서 바로 이 일을 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보좌우편에 취임하셔서 바로 그 영을 우리 가운데 부으셔서 혈육을 입은 사람 여전히 죄의 질서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사람 안에 거하셔서 아버지와 아들안에 있는 영원한 교제의 생명을 세상에 선물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의 내용이고 그런의미로 사도행전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언제까지입니까? 그 나라가 완성되어서 크고 영화로운 날이 임해서 해가 변하고 달이 변하고 우주적인 변혁이 임하고 참으로 주님께서 오셔서 만물을 죄가 제거된 새로운 질서로 하나님께서 완성하도록 까지 진행될 것입니다.우리들이 바로 그 주님을 신뢰하고 그 주님의 영을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의 일들을 증거함으로 그 나라를 설립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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