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2

찬미예수님 2025. 1. 2. 05:45

제목:사도행전 강해 2

성경:사도행전1:12-26

 

이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했는데,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으심으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해서 그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피흘리신 몸으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복음은 예수의 행하심과 그 가르침 이어서 그가 세례받고 참으로 공적인 사역을 출발해서 그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 앞에 갈때 까지의 일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도 부활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혈육을 입고 땅위에 오시고 그가 교회 대표로서 승천하신 이유는 참으로 죽기까지 순종하신 아들안에서 하나님을 순종하는 새 인류를 지으시기 위해서 새로운 인류의 머리로 둘째 아담으로 땅위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곧 하나님 나라 왕이셔서 그가 혈육을 입으심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새 인류를 지으심을 거기서 나타내셨고 그가 교회의 대표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으심으로 영을 따라 사는 새로운 인류를 지으심으로 주님께서는 그의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를 그를 순종하는 새 인류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혈육을 입으시고 오시고 순종하시고 하나님 앞에 가심은 곧 하나님을 순종하는 새 인류를 지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예 언약백성이 하나님 나라로 성별되고 거기 하나님의 법이 있어서 그들을 통치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과 생명의 교제를 누리심을 제단에서 나는 고기를 드심으로 또 보편적으로 새 인류인 온 이스라엘에게 유월절 양의 고기를 주심으로 거기 생명의 교제를 나타내셨어도 그리고 그들을 참으로 물과 피로 정결케 하셨어도 하나님 앞에 나오는 거룩을 거기 나타내셨어도 그들마음이 깨끗케 되는 그런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구약때는 물의 세례를 통해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성별시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종교의식으로 거룩케 해서 그 보좌 앞에 나오도록 하셨어도 마음을 깨끗케 하는 거룩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구약에서 약속했던 물의 세례 물의 세례는 그들을 깨끗케 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겠다는 정결법이지요. 에스겔서에서는 특별히 물의 뿌림을 하나님의 영의 부으심으로 직접적으로 약속하고 있고 이제 예수는 세례요한처럼 물세례가 아니라 참으로 성령으로 그들을 새롭게 하셔서 이제는 아담안에 부패한 본성에 물을 뿌림으로 정결케 하는 그런 약속을 주신 정도가 아니라 참으로 성령으로 그들을 세례시켜서 성령으로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이셔서 새 생명으로 그들을 새롭게 하셔서 그들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령한 삶,바로 성령이 그들의 생명의 원리가 되게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온전케 지으실 것을 거기에 약속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같이 안식 후 첫날 정기적으로 모여서 주님의 살과 피를 그들의 생명으로 허락하시는 그런 교제로 모이셨을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약속은 곧 하나님의 아들의 영의 부으심이 구약약속의 목표였습니다. 그래고 제자들은 예수 올라가실 때 그 나라가 여전히 땅위에서 그냥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육체적인 나라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나라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예루살렘만 하나님 나라로 구별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온 세계를 하나님의 통치에로 돌이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구원약속이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것이고 이제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 백성의 죄악된 관계를 모두다 마치시고 그 대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심으로 이제는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새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가 예루살렘에서 모여있는 이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 세상에 확장될 것을 거기 약속하셨습니다. 어느 때까지 입니까? 가신 그대로 그가 오시리라. 그가 인격적으로 임재하셔서 그가 만물을 새롭게 하시도록 그는 하늘 보좌에서 성령으로 통치하셔서 천하만민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힌 새로운 피조물로 지으셔서 신령한 통치 성령이 임하심으로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실 것을 거기 그처럼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로 1-11절 까지가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내용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도행전은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이지요. 그가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수고했고 그는 그 일을 마치고 하나님 보좌에 취임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 그의 성령을 교회에 부으시고 그리고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 땅위에 그의 신령한 나라 그의 교회를 지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일을 지금 기록하고 있는데 언제까지입니까? 그가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도록 까지 그는 하늘 보좌에서 그의 성령을 교회에 부으셔서 바로 그 일을 이루십니다. 바로 그 내용이 사도행전의 내용이지요. 이제 주님께서 이처럼 승천하신 뒤로 제자들이 그 날에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거기는 안식일에 가기에 알맞은 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안식일에 얼마나 길을 걸어야 하겠는가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안식일에 가기에 가까운 거리 그것은 보통 3킬로미터 정도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증거를 보면 하나님의 성소를 둘러 진치고 있는 레위인이 있지요. 물론 그것은 에스겔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만 그렇게 했을때 그 레위인의 성읍의 넓이를 2,000규빗 그래서 레위인의 거처가지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즉 다른 백성이 아니라 구약의 장자들이 살고 있는 거기까지. 거기를 주로 거룩한 영역으로 이해해서 보통 3킬로미터로 이해를 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람원이라는 산과 예루살렘 까지의 거리는 약 3킬로미터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있어그러니까 가룟유다 한 사람 빠지고 11명이 다 거기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들의 이름은 항상 이런 순서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그룹으로는 기록되고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해서 한 그룹을 이루고 그리고 둘째그룹은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해서 한 그룹을 이루고 다른 야고보 시몬 유다 죽은 가룟유다해서 한 그룹으로 나오고 이렇게 해서 네명씩 세그룹으로 보통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가 세례요한의 제자로서 처음 주님의 부름에 응답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물론 이 처음에 있는 네명도 3복음서가 기록한 순서가 달라서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그 차이점들의 이유를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이제 사도의 사역에 있어서는 특별히 베드로가 머리로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그리고 요한도 요한계사록 제일 끝에서 죽지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으로서 특별한 그리스도와 친교가운데 있고 야고보는 첫 순교자로서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특별히 이 세명은 주님이 가신 곳에 항상 같이 있었고 특별한 증인으로 세우신 것도 사실입니다. 왜 이렇게 세 그룹으로 되어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 그런 구약의 방식대로 할 것같으면 세명씩 해서 네 그룹으로 되어 있으면 아마 그것은 구약의 진치는 족장 각 지파가 진치는 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인데 신약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고 4명씩 세 그룹으로 되어 있습니다. 14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여기 여자들은 누구인지 예수 살아계셨을때 봉사했던 여자들인지 고린도서에서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베드로 바나바 등만 자기 부인들과 같이 다니고 나는 그럴 권한이 없느냐? 하는 것을 보면 베드로만 사역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부인도 베드로의 사역에 항상 순종하고 수종했던 것을 알 수 있고 또 바나바도 자기의 부인과 함께 다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든 주님께서 이처럼 승천하시고 참으로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처럼 고백했을때 남편된 사람들이 언약의 머리로서 그 아내를 함께 이 생명의 교제에 참여하도록 인도했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여자들 했을때 이 사도들의 아내들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고 물론 거기 예수 살아계셨을때 봉사했던 여인들도 포함 되겠지요. 그 다음에 거기 보면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그 아우들이런 관계들을 보았을때 특별히 여기서 새로운 인류 새로운 가족으로 예수의 가족들이 다 있지요. 또 사도들과 사도들의 아내들이 다 있지요.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주님께서 참으로 성령을 그들에게 부으심으로 그들로 새로운 인류로 지을 약속을 그들에게 하고 있고 그들은 그 약속을 대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기서 사도들과 그 아내 그리고 예수의 가족들 그런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에 전혀 힘쓰니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기서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는 말은 구약의 모든 탄식이 여기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에서 기도를 강청하도록 가령 어떤 사람이 밤중에 찾아와서 떡을 달라해고 친구됨을 인해서는 주지않해도 그 강청함을 인해서는 주리라 그런 기도문을 말했을때 바로 여기서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때의 약속은 그의 영의 부으심이요 인류의 탄식은 참으로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의 영으로 새롭게 지음을 받기 전에는 참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구약의 모든 약속 모든 정결법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의 부어주심이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이 예수께서 침히 승천하심으로 약속하고 있고 그는 참으로 승천하심으로 그가 자기 백성과 함께된 사람일 뿐아니라 그의 하나님되심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약속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이처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는 신자의 기도는 어떤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참으로 땅위에 이루어지는가 참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 바로 그런 것을 위해 기도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여기 사도들은 그런 의미로 여기 모여서 함께 하나님의 영의 부어주심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명이나 되더라여기보면 120명이 항상 모여서 기도했는가. 우리는 그렇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3절에 보면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했을때 여기보면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으로 새로운 인류로 여기보니가 사도들과 그 가족 예수의 가족이 여기 다락방에 유했다는 것을 보면 바로 거기가 그들의 정기적인 예배처소인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안식후 첫날에 그들이 모였던 곳이 주로 거기였고 그곳이 그들의 새로운 거처가 되다싶이 거기 모여서 기도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120명정도가 모였다는 것은 그것은 굉장한 수입니다. 다구나 여기서 120명이라는 숫자를 셌는데 구약방식처럼 남자어른만 세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빼고 있는지 그런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고 남자들만 세서 120명이라면 그 장소는 괴장히 넓어야하는 것이고 그 장소에서 약 10일동안 걸쳐서 계속 기도하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숙식을 같이하는 방식이었겠는가.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항상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에 전적으로 힘썼던 사람들은 거기가 자기들의 새로운 터처럼 되었던 사람들은 사도들과 그 가족 그리고 예수의 가족들일 것이고 그리고 120명은 특별히 베드로가 여기 사도를 뽑고있지요. 그런 교회적인 일을 당해서 그 당시 교회를 불러모았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모인 무리가 120명 정도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수시로 여기와서 기도했을 것이고 함께 모였을 것이지요. 여기 베드로가 일어나서 이제 성경을 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물론 그가 주님을 배반하고 실패했지만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약속하시기를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고 약속했고 부활하신 뒤에도 그가 사심을 증거하라했고 어떻든 베드로는 사도 중에서도 머리적인 위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다 똑같은 그리스도의 증인이어도 각각의 일하는 직무가 다릅니다. 예수께서 살아계셨을 때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그가 행하신 일을 보여주었던 것이 아니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죽은 자를 살릴 때 변화상에도 이 세명은 함께 갔지요. 그래서 베드로는 특별한 직무를 지금 수행하고 있습니다. 16-17절에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맡았던 자라그리고 20절에 시편에 기록되었으되, 하였도다는 말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18-19절의 ( )속에 이 사람이 불의의, 피밭이라는 뜻이라는 말은 여기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1절에 있는 것처럼 바로 누가가 사도행전을 써서 보내는 데오빌로가 구체적인 사건을 알 수 있도록 지금 삽입해서 쓰고 있는 것이고 베드로의 직접적인 말은 아닙니다.

‘~의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시편에 기록되었으되 ’~의 베드로의 설교는 연관되어 있는 것이고 18-19절은 데오빌로가 복음의 사건을 더 이해하기 좋도록 누가가 설명을 부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에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이렇게 말씀하고 있거든요. 여기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또 일렀으되시편의 두 곳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의 거처로 황폐케 하시고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하는 것은 시편 69편을 인용한 것이고 여기 인용된 절은 69장25절이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하는 곳은 시109편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다를 두고 한 말이 응했다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시편은 직접 유다를 두고 하는 것인가? 물론 여러분들이 자세한 것을 알려면 마27장에 자세한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27장3절 부터 보면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같으니라 하였느니라(10)’ 여기서는 예레미야가 하신 말을 이루었느니라 했는데 나중에 설명을 하겠습니다만 구체적인 구절로는 스가랴서 1장에 바로 이런 구절이 잘 나와 있습니다. 목자의 수고한 값을 은 삼십으로 계산하고 그런 11장의 메시야에 대한 거부에 대한 구절이 있지요. 여기 27장에 보니까 어떻게 유다가 죽었고 예수의 피값으로 산 밭일 뿐아니라 유다가 자살해 죽어서 양쪽면으로 피밭이라고 인용하고 있네요. 그런데 시편69편이나 109편을 보면 거기 직접적으로 유다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다윗이 쓴 시편인데 다윗이 자기가 받는 고난 중에 자기를 핍박하는 원수들을 저주하는 시편입니다. 특별히 시편 69편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셔서 못박히셨을때 신포도주를 주고 하는 것까지 기록되어 있지요. 아마 시69편처럼 예수의 고난의 기사가 잘 나와 있는 것이 없습니다. 거기 문자적으로 응하는 방식으로까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보면 그 당시 역사적인 상황도 다윗이 자기를 핍박하고 조롱하는 자들 그것도 이방인이 아닙니다. 이방인이 아니고 자기와 함께 있었던 자들이 다윗을 비방하고 조롱하고 수취한 자들도 다윗을 두고 노래하고 그런 방식으로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런 사람들을 저주하는 내용으로 시편이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그렇게 말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저주의 시편은 다윗이 자기 개인으로 자기를 대항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벌주라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서 다윗의 직위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왕권을 계시하는 계시의 수단으로 서있어서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다윗의 영안에서 나타내셨고 그러기때문에 예수를 둘째 다윗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자리를 쫓겨나고 물론 자기 죄가 있습니다만 하나님이 다윗을 쳤을때 다윗을 쫓아내고 쫓아다녔던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윗 안에서 통치하는 그 통치를 거절하는 반역이었습니다. 마치 솔로몬이 범죄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국을 분리했을 때도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통해서 그들의 반역정신을 나타냈던 것이고 그런 방식이지요. 그러기때문에 다윗은 그 왕의 보좌에서 쫓겨났을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징계했음을 깨달았을 뿐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셨을때 원수가 얼마나 조롱하고 좋아하는가. 바로 그리스도의 왕됨을 거절하는 원수의 역사를 거기서 본 것이고 바로 그리스도의 왕권을 대신하는 왕권을 땅에 구현하는 다윗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그리스도의 통치를 거절하는 하나님 나라의 원수를 거기 저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그렇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여기 예수잡는 자를 지로한(길을 인도한)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했는데 다윗당시도 그리스도도 그의 백성과 함께하셨고 다윗의 영안에 계셔서 그의 왕권을 증거하셨습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혈육을 입고 땅위에 오셨습니다. 다윗당시 다윗의 왕권을 거절했던 원수 하나님 나라의 원수 바로 그 원수의 앞잡이로 나타났던 그 모든 대적들 바로 그것이 유다안에서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나타나서 바로 그들의 주를 팔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유다에게 응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바른 원리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항상 자기 백성 중에 계시고~바로 그것이 예수 당시에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이처럼 나타났기 때문에 바로 다윗의 원수는 다윗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의 원수여서 바로 그 영의 역사가 여기서 유다안에 역사해서 유다로 곧 그의 주를 팔도록 했지요.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가니라고 복음서에서는 그처럼 했지요. 그러니까 다윗의 왕권을 거절하도록 뒤에서 조종했던 바로 그 어둠의 영이 여기서 바로 그 유다안에 역사해서 둘째 다윗으로 오신 바로 그 분을 거절하도록 했기 때문에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잡는 자들을 인도했던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으하였으니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유다는 누구입니까? 아마 시편에도 다윗의 왕궁에 거했던 사람들 압살롬도 그랬고 다윗의 제사장 아비아달도 그랬고 요압도 그랬고 아도나아도 그랫고 전부 왕궁에 거했던 사람들이 다 다윗의 생명을 찾았습니다. 이방인들이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고 먼데 있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고 다윗의 왕궁에 거했던 사람들 또 구약역사로 보면 장자지파인 에브라임의 지파들 그런 지파들이 보통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여기에 보면 유다도 이 사람이 본래 우리수 가운데 참여해서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다윗의 왕궁에 거하던 자들이 다윗을 거절했고 그 법궤를 맡았던 제사장이 다윗을 거역했던 것처럼 여기 유다도 우리와 같이 한 직무를 맡아서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고 예수의 상에서 함께 떡을 떼었던 자인데 바로 그가 발 뒤꿈치를 들었지요. 바로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인데 바로 그가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거듭거듭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했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둘을 끝까지 보존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늘의 사닥다리 계시로 하나님이 참으로 그들과 생명의 교제를 허락하심을 거기에 약속하셨고 야곱의 12아들이 구약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인류의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바로 그들중에서 다윗의 왕권을 거역하는 반역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결국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방식으로 그 왕국이 파괴되었어도 하나님은 결단코 하나님의 이스라엘 12을 한 부분도 파괴되게 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을 지금 베드로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영을 부으셔서 영을 따라사는 새인류를 지으시는데 이제 사도들은 세인류의 기초들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12족장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12사도가 있는데 그 존귀한 직무를 유다가 맡아 했었는데 유다는 그 직무를 거절하고 갔습니다. 마치 구약의 12족장들 안에서 그 나라안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반역이 계속되었던 것처럼 그래도 하나님은 12을 보존했던 것처럼 여기 다윗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시편에 보니까 그 거처를 황폐하게 했다. 또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셔서 그렇게 안했는가. 원수는 멸망해도 하나님의 역사는 멸망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때부터 그가 그 사역을 완성하시고 그 몸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올라가실 때까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을 세워서 우리와 같은 직무 곧 예수의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야할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그들이 복음을 증거하면 세상은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12은 파괴될 수 없는 것이고 1명을 보충하는 것이 성경에 나타나고 있지 않느냐고 베드로가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중에 두 명을 천거했는데 거기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제비뽑는 방식으로 한 명을 택했는데 맛디아를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 제비뽑는 방식은 구약의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식이지요. 그렇게 해서 맛디아가 이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그래서 12이 되었다. 그리고 2장에 오순절에 성령의 임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물론 여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한 일이 옳은가. 물론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했을때 그것을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권리인가. 그런 것은 이제 해석자에 다라서 많은 차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베드로가 잘못되었다. 아직 성령이 부어지기 전에 사도들은 예수의 뜻을 아직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 당시 교회를 불러 모으고 거기서 성경을 인용해서 그렇게 했어도 아직 12중에 한 명을 이방을 대표하는 바울을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있는 것인데 그가 이처럼 뽑았다고 해석하는 한 가지가 있고 그것도 일리가 있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성령을 부으심은 물론 이방인 까지 포함하는 것이 새로운 이스라엘이지만 하나님의 영의 부어지심을 약속했을때는 항상 구약 12족장으로 구성된 옛언약 때와 결단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12을 구성하고 있어도 그들은 이스라엘 12중에서 택함받은 백성이지 다른 백성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의 부어주심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던 것이고 이스라엘에게 부어지신 영은 온 세계의 백성이 함께 그 성령을 마실 수 있도록 부어지신 것이기 때문에 여기 베드로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바른 준비를 한 것이다. 그런 두 가지 해석으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두가지 해석이 하나님의 구원진리 예수안의 구원을 파괴하는 의미로 서로 대립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역사적인 관점으로 보았을때는 후자의 해석이 즉 하나님은 옛언약백성에게 그의 영의 부으심을 약속했고 이제 옛언약 백성 12족장들이 거듭거듭 범죄해서 그들은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지금 로마의 속국으로 있습니다. 그 강력한 원수가 유다 안에서 나타나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팔므로 이제 그 열매가 꽃피웠습니다. 그러니 말하자면 유다는 제 길로 갔지요. 그래도 하나님은 자기 이스라엘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의미로 이것이 옛언약 백성에게 약속했던 영의 부으심이기 때문에 이것이 이미 영이 부어지시기 점에 12을 갖추는 것은 구원섭리적으로 봐서 옳은 것이라는 해석을 우리가 더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12 하나님의 이스라엘로서 12이 터로서 여기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120명은 모였던 것이지요. 이제 이런 것을 우리들이 말하자면 개인적인 문제로 해석을 해서 우리 중에 무엇이 부족한고 또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니까 잘못은 유다가 했어도 자기들이 잘못을 회개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니까 임했다. 그런 말들을 우리가 더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고 여기 12로 예비된 하나님의 12사도로 예비된 여기에 오순절이 임하매 하나님의 영이 부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떻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로 보았을때 당시에 다윗의 왕적인 통치를 거절했던 것처럼 그 나라가 언제까지 그처럼 거절됐습니까? 북이스라엘이 완전히 이방에 사로잡히기 까지 다윗의 왕국으로 돌아온 법이 없고 또 하나님이 한 등불로 남겼던 다윗의 왕국 까지라도 참으로 다윗의 왕적인 통치 곧 그리스도의 통치로 돌아온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다 하나님께서 버려야 맞지요. 유다처럼 직접 파는 사람은 이처럼 강력한 방식으로 나타났어도 구약의 역사는 다 그리스도의 영의 통치를 거절했던 어둠의 왕국의 비밀이 곧 거기 있었던 것입니다. 거듭거듭 유다 왕국에도 그런 것이 있었지요. 그래도 하나님은 옛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버린 적이 없고 마태복음에 보면 바로 예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의 계통을 통해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교회를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새 인류의 터로 12사도를 택하셔서 물로 뿌려서 정결케 해서 자기 교제로 부르시는 그런 옛 언약 질서가 아니라 이제는 그의 영을 부으셔서 참으로 성령으로 교제하는 새 인류로서 그들을 짓고 그것을 기초로 증인으로 12사도를 세웠는데 유다는 그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기에도 배교가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12은 파괴되는 것이 아니고 12족장으로 구성된 이스라엘 거기에 약속했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 약속을 여기에서 해석하고 12중의 하나를 보충하므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스라엘의 수로서 12. 바로 12사도로 구성된 교회에 하나님의 영의 부으심이 임했다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떻든 하나님의 교회의 통일성은 파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12로 구성된 여기에 그의 영을 부으심으로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새로운 피조물로 땅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령을 통하셔서 땅위에 그의 신령한 인류인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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