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사도행전 강해 1

찬미예수님 2024. 12. 28. 07:11

제목:사도행전강해 1

성경:사도행전 1:1-11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입니다. 이것은 1절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하는 말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도 1장1-4절을 보면 누가복음을 데오빌로 각하에게 써 보내고 있습니다. 자신은 사도가 아니지만 사도들의 증거를 자세히 연구해서 그 근원부터 차례로 써 보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가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은 언제 썼는가? 이 본문에 의하면 바울 사도가 1차로 로마 옥중에 투옥되어서 복음을 전파하는 기사로 사도행전이 끝맺고 있습니다. 2년 동안 거기 옥중에 있었습니다. 그 때를 보통 63, 64년경으로 봅니다. 그리고 바울이 석방되어서 전도여행을 하다가 67, 68년 경에 네로황제 박해시대에 죽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70년 로마군에 의해 파괴당하기 전이지요. 그러니까 사도행전이 끝나는 대목에 바울 사도가 다시 석방되어서 전도여행을 했다는 기사가 없는 것을 볼 때 바울이 로마에서 처음 투옥되고 석방되기 전에 거기서 기록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모든 사도들의 행적을 다 기록하려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그래서 단지 세상 끝 했을 때는 그 당시는 이방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의 수도입니다. 또 바울이 복음을 두루 편만하게 전했다 했을때 그가 모든 곳에 복음을 다 전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당시 제국의 수도이고 왕궁의 감옥에 갇혀서 왕궁 호위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으니까. 또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려고 거기 가 있거든요. 그렇게 해서 그가 왕 앞에 섰을 때 그는 왕 앞에서 자기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가 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했으니, 이제 제국의 수도인 로마, 그것도 왕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이제 왕에게 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사도행전을 끝내는 데는 의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옥중에서 해방되기 직전에 기록했다는 강력한 증거도 찾을 수가 없고, 단순히 사도행전의 목표 때문에 이렇게 기록된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도 정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단지 몇 년에 기록한 것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고, 대략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기록된 것이 아닌가 보통 말합니다. 만일 로마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사건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위에 쏟아짐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고, 하나님의 복음이 이방에 미친 것을 실제적으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기록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어떻든 성전 파괴 전에 기록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옥중투옥까지 기록되었으니 63년부터 70년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을 기록한 목표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곧 사도행전의 주제가 되겠지요. 언제든지 제일 처음 서론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서론이라는 것은 자기가 글을 쓰는 목적을 처음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에 따라서 풀어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우리들이 잘 분별을 해야 합니다.

1-5절까지가 서론입니다. 여기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1-2)고 되어 있지요. 이것은 누가복음의 총 요약입니다. 여러분이 누가복음 제일 끝을 보면 사도행전을 이해하기 좋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444절 부터보면(24:44-49)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렇게 예수는 구약성경을 제자들에게 풀어주시고 계시지요. 모여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이처럼 마지막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데, 그 그리스도는 고난과 부활을 통해서 이제 세상에 새 생명. 하나님과 함께하는 회개의 역사를 예루살렘으로 부터 모든 족속에게 주는 분이 아닌가 그리고 너희들은 이 일의 증인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49절에 보면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지요. 여러분이 이사야 2장 같은데 보아도 하나님의 율법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 성소여요. 그러니 예루살렘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나라요 백성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구원역사는 예루살렘으로 온 세계에 미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서 내게 약속하신 성령을 너희에게 부으도록 너희들은 이 성에 유하라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1절에 보면 하늘로 올리우신 기사가 나와 있지요. 53절에 보면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리라이런 방식으로 누가복음이 끝맺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성전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파괴되기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성전에 나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소제도 안에서 자기백성과 함께 하시는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 승천하심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행전 1장1-2절은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인데,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했다고 자기가 기록한 복음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3절부터 보면 그가 부활하신 뒤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너희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도록 이 성에서 기다리라고 말씀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서론 중의 서론은 1-5절이고 그리고 더 넓은 범위로 하면 11절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하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누가는 예수가 살아계셨을 때 증거 했던 것과 그가 승천하시면서 약속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 백성 중에서 일하신 것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살아계셨을 때 성령의 권능으로 행하시고 가르치셨던 그 분입니다. 그 분이 승천하셨고, 승천하신 후 그의 약속의 성령을 보내셔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땅에서 자기백성을 만드셨던 것처럼 하늘에 오르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셔서 새 인류인 교회를 지으시고 가르치고 계신다. 그러면 언제까지입니까? 11절에 보니까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지요. 복음서가 땅에 계신 그리스도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이면, 이 사도행전은 승천하사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땅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교훈을 한 마디로 하면 무엇입니까? 여기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나라는 이스라엘 백성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물로 정결케 해서 그의 소유로 구별하심으로 거기 계셨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 나라는 물로 정결케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부으셔서 새롭게 창조하심으로 하나님이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고, 그가 재림하셔서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됐을 때 하나님 나라는 역사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구약과 신약 그리고 예수의 재림의 날까지를 한꺼번에 연결시켜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나라는 누구와 직접 관계가 있습니까? 구약 때는 여호와께서 이런 저런 표상을 통해서 그림자적인 방식으로 거기 계셨습니다. 그러나 신약 때는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거기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땅에 계시지 않아도 그의 성령으로 영원히 자기 교회에 임하십니다. 언제까지입니까? 그가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도록 그의 영으로 침히 임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나라는 곧,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식으로 자기 백성 중에 계시는가가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이 나라가 구약 때처럼 그림자적인 방식으로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성령으로 친히 우리를 통치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하나님나라로 있는가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중에 계시면서 사람 왕을 통해서 통치하시는 방법으로 나타내셨어도, 신약의 하나님 나라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이 하늘 보좌에 취임하셔서 그 백성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것이고, 그가 재림하시면 만물이 새롭게 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제일 끝에도 28장31절을 보면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기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는 옥중에 매여있는데 금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이 세상 권세는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예수의 복음을 막을 수 없고, 그 나라가 세상을 정복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일을 말했다고요?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일을 기르치되하나님나라는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에 취임하셔서 그의 성령을 부으심으로 그 나라가 땅위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재림하심으로 완성될 때까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1-11절을 서론으로 보았을 때 여기 보면 본 그대로 오시리라.그가 부활하셔서 땅에 계셨을 때 하나님나라를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라.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나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리라.참으로 새 생명을 주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너희들만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너희로 말미암아 회개의 복음, 구원의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될 것이다. 언제까지. 내가 재림해서 만물을 새롭게 하기까지. 너희들이 그렇게 되리라는 말씀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여기 사도들이 가끔 설교한 내용의 끝 부분을 보면 예수의 재림으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너희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메시야가 예수시다. 너희들이 그 분을 죽였어도 하나님은 그 분을 높이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그 분을 모시고 회개하고 생명의 복을 받으라. 이렇게 하나님나라의 일을 쭉 설명하고 있지요. 가령 여러분이 처음 베드로가 설교했던 2장을 보십시다. 거기 보면 예수는 썩음을 당하지 않는다. 특별히 (2:32-35)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는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주 예수의 재림의 날을 말하고 그들로 그 나라에 복종하도록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행3장21절 이하에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 그가 만유의 회복자로 오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17장을 보면 더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 사도가 아테네에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거기 제일 끝에 보면 행17장30-31절까지 볼까요. (17:30-31)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만유를 회복하시는 분으로 만물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으로 31절에 결론짓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도들의 설교는 전부 하나님나라와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나라는 그 왕과 관계 있습니다. 그 왕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중에 오시는가가 하나님나라가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의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 곧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증거 했다. 그러면 예수께서 땅위에 계실 때는 그러지 아니했는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가복음 1장14-15절에 때가 찾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복음전파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것이고, 곧 그것이 자기의 임하심으로 땅위에 이르렀다는 약속의 선포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사도행전에서도 그가 부활하신 뒤로 하나님나라의 일을 증거 하셨다고 말하고 있지요. 그래서 예수의 복음을 한마디로 말하면 1절에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심입니다.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이 곧 복음입니다. 예수의 행하심은 단순히 도덕적인 선생으로 그의 도덕성을 나타낸 것이 아닙니다. 그의 행하심은 물론 성경에 기록된 이외의 것도 많지요. 그런데도 성경에 기록된 그의 행하심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 것이지 단순히 도덕적으로 그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출생부터 그가 땅위에서 행했던 모든 일은 그가 참으로 하나님나라의 왕이요 하나님이 친히 그들 중에 임하셔서 죄를 용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의 행하심은 곧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의 가르치심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는 친히 하나님으로 그들 중에 계셔서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이 곧 우리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땅에 오셔서 그의 능력을 증거하시고 가르치심으로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시는 구원역사를 땅위에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이 곧 세상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하시며 가르치심이 복음인데, 그 복음은 그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시던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것은 예수의 개인의 교훈이 아니지요. 예수는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을 내가 너희에게 말씀했노라그는 성령으로 잉태하셨고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나타내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가 친히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성령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어도 성령이 자기 백성에게 보편적으로 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로 사도들에게 숨을 호흡하심으로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생기를 호흡하심으로 아담이 생령이 되게 하셨던 것처럼>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라. 거기 분명히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어도 그것은 사도의 예표로서 그들이 받았던 것입니다. 본격적인 직무로서는 예수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오순절에 성령 부으심으로 그들이 그 능력 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땅위에서 여러 번 증거 하러 갔어도,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증거 하라고 파송 받은 것은 예수의 부활 후 성령을 부으심으로 명령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가지 말고 유대인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한 것처럼, 그들이 사도 된 예표, 온 천하의 증인될 예표로서 예수 살아 계셨을 때 그들이 유대 땅에서 참으로 하나님나라가 임하심, 하나님이 자기 영의 교제를 자기백성에게 허락하실 근거로 말씀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는 해 받으신 후에 40일 동안 친히 사심을 증거 하셨는데 그때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예수의 행적을 쭉 한마디로 말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그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은 복음인데 그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은 성령이 함께 하셔서 이루신 일들인데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저들 중에 임했다는 증거지요. ? 하나님의 영이 그들 중에 거해서 귀신들을 쫓아내니 하나님나라가 너희 중에 임하신 것이라. 그러나 성령을 훼방하고는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예수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을 달리 표현하면 땅에 계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보좌 우편에 취임하신 그리스도깨서 성령으로 행하심과 가르치심이 사도행전의 내용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복음이요 하나님나라요 예수께서 친히 우리 중에 임하심 그리고 혈육으로 보좌 우편에 취임하심이 그의 영이 영원히 자기 교회와 함께 하신 증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고 복음서의 일들을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바로 그 역사가 예수께서 승천하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가 너희 중에 임하면 너희 뿐 아니라 천하만민에게 너희의 증거로 임하느니라. 그러니 내가 땅위에서 행하고 가르쳤던 것처럼 내가 너희 안에 임해서 세상에 나의 행함과 가르침을 다시 가르치고 행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은 것처럼 천하만민을 새로운 피조물로 지을 것이다. 재림해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도록 그렇게 하시겠다. 바로 그것이 여기 사도행전의 내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히 사도들의 행적이 아니라 성령의 행전이란 말입니다. 성령이 사도들 안에서 일하심, 어떤 성령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의 영으로 교회에 임하셔서 사도들을 통해서 일하시고 가르치심, 그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은 세상의 생명이어서, 바로 이 사도들이 구원을 받는 것처럼 천하만민이 그 사도들 안에서 친히 증거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증거로 그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고 세상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지요. 언제까지입니까? 로마의 왕궁이 그를 가두었어도 어느 누구도 그 전파하는 복음을 막는 자가 없이 그는 예수의 증인으로 로마제국의 수도에서 증거하고 있더라. 그렇게 말함으로 마무리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다른 사도들의 행적은 기록하지 않고 베드로사도와 바울 사도의 행적이 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4-5절을 보면 더욱 알 수 있지요. ‘사도와 같이 모이사 하셨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물세례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주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고 회개를 촉구시켰던 사람은 세례요한이지요. 왜냐하면 그는 예수 직전에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물의 정결케 함은 그들을 죄의 삶에서 하나님 안에서 교제하도록 성별시키는 예식이었습니다. 그것이 제일 처음에 나타난 것은 노아 홍수입니다. 벧전 3장을 보면 그 때 방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지 않고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은 옛 세계의 죄악들을 심판해 버리고 그 죄로부터 노아를 구별하여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새로운 세계에 심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물은 정결법을 묘사합니다. 죄와 관계된 삶에서 죽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새로운 생명을 물의 정결케함으로 구약에서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물로 정결케 하고 피로 정결케 하고, 물과 피로 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요한 1서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정결법은 물과 피여요. 그리고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이 그 나라가 끝나고 바벨론으로 포롤 잡혀갔을 때 에스겔 선지자는 36장에 보면 내가 너희를 다시 고토로 불러 들일 것이고 내가 맑은 물로 뿌려서 정결케할 것이고그 정도가 아니라 내가 새 영을 부어서 너희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내 법을 순종할 수 있게 해주겠다. 그렇게 물의 뿌림은 곧 새 영의 주심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어서 외적으로 정결케 함으로 그들은 도덕률을 따라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어도 그들에게 새 본성을 주었던 것은 아닙니다.

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 누구를 증거 했습니까? 이 물세례의 실상인 성령의 세례를 주시는 분이 예수시라고 증거 했던 것입니다. 예수자신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이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너희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올라가심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으로 교회에 부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 곧 새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우리들이 롬6장을 보아도 세례를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해서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하나님나라가 요한 시대까지는 물의 정결케 함으로 하나님과 교제함이 나타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내가 올라가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성령을 너희에게 부어서 성령이 너희들의 새로운 본성이 되게 하심으로 지금 그런 약속을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 중에 실제로 임하신다는 말입니다. ? 내가 하나님 나라 왕이요 내가 가면 성령을 너희에게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이거든요. 그 약속은 너희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제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 나라의 회복의 때를 묻고 있거든요. 당시 유대인들의 개념이지요. 꼭 우리 나라 비슷합니다. 우리 나라는 신사참배 때 애국적인 설교를 해야 좀 펀치가 센 목사가 되겠지요. 항상 종교가 잘못하면 민족주의화 되기 쉬운데 유대인들이야 오직 하겠습니까? 수 천년간 자기들만 언약의 백성들로 구별되었으니 그럴만 하지요. 우리 나라도 복음이 민족주의적인 방식으로 변질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복음은 한국사람이 누군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누군가? 예수께서 누군가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천하만민으로 구성된 새로운 인류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소위 이 땅에 속한 교회라는 의미로 변질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심이 이 때니이까 라고 물었지요. 그들은 지금도 그가 직접 왕으로 어떻게 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희들만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너희들이 옛 언약질서 아래서는 물세례로 나와 함께 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제 내가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으시면 이제 너희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마음에 임하고 너희 중에 임할 것이요. 제자들은 보니까 그 나라는 언제 임합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내 증인이 되어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증거 하여 땅 끝까지 이르라. ? 내가 성령으로 친히 너희 안에 임하셔서 내 나라를 세우겠다. 내가 땅에서 행하고 가르쳤던 것처럼 너희 안에서 친히 증거 하시고 행하겠다. 그렇게 함으로 천하만민으로 내 나라를 만들겠다. 언제까지입니까? 다시 내가 와서 만물을 새롭게 하기까지 그렇게 하겠다. 너희들은 내 증인으로 서라. 내가 너희 안에 있어서 내 행하심과 가르침을 계속할 것이다. 그런 말씀이지요. 그런데 그가 살아 계셨을 때보다 더 큰 일이지요. ? 그가 친히 육체로 임하신 방식이 아니라 그의 영으로 영원히 임하셔서 그의 성령이 우리의 본성이 될 수 있도록 그가 부으시기 때문에 그런다고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고 그 이하에는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사도행전의 개요를 아시겠지요. 그래서 제일 끝에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증거 하는데 곧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 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 함이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거이다. 그를 증거 하면 그는 그의 증거와 함께 역사 하셔서 친히 사도들을 통해서 죽은 자들을 살리심으로 그가 그들 안에서 그의 나라를 세우심을 증거 하셨고, 친히 그 말씀과 함께하셔서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지요. 그런데 그는 비록 로마 옥중에 갇혔어도 그가 복음을 증거 하는데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었다고 그렇게 제국의 수도까지 복음을 증거 함으로 땅 끝까지 증거 되었다는 증거를 거기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기록은 없지요. 그런데 그 증거는 지금도 미치고 있지요. 주님 오시도록 땅위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사도들은 죽었어도 사도적 증거는 교회 안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사도적 증거와 함께 했던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 안에 함께 하셔서 자기 백성에게 친히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셔서 새 사람을 지으시고 그리고 그의 나라를 확장시키시고 그가 재림하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도록 그 나라는 영원 무궁토록 세상을 정복하실 것입니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로 사도행전을 교회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의 4복음서가 예수의 행적이면,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의 역사는 사도행전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서신서라고 구조적인 방식으로는 분리합니다. 사도행전을 그런 구조적인 방식으로 분리하면 여기 1장8절을 중심해서 분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의 요절을 찾으라면 1장8절이 되겠지요. 그는 친히 성령으로 임하셔서 땅 끝까지 사도들을 통해서 그 나라를 확장한다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1장8절이 소위 요절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1장8절의 요절을 따라 분리해 볼 것 같으면 사도행전을 대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유대인과 관계된 복음이 1-12장까지이고, 이방인과 관계된 복음이 13-28장이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 12장까지이고 바울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 13장 이하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서를 보면 그는 유대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그 전파된 복음이 어떻게 이방인에게로 확장되는가. 그리고 유대인은 그 복음을 어떻게 거역하는가 하는 것이 구조적인 흐름입니다. 그리고 좀 더 나누면 여기 보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성령이 임하시고 그의 교회를 세우시는가. 그리고 친히 성령께서 온 세상 사람들을 새롭게 지으시는가. 거기 방언의 증거로 거기 나타나 있지요. 성령이 강한 바람 불과 같은 형상으로 임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하심의 표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통상적인 하나님의 임하심은 불로 임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런데 여기 보니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임하셨다. 그 바람은 구약의 증거를 보면 노아 홍수 당시에 옛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고 새 세계를 지으셨을 때 하나님께서 노아를 권념하시사 바람으로 부르셨다. 그것이 그 앞에 나가면 모든 만물이 처음 지었을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물로 쌓였을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심으로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이 범죄한 뒤로는 하나님의 임하심을 형상적인 방식으로 주로 말하고 있지요. 더군다나 모세 당시에는 더 형상적인 방식으로 말하고 있지요. 물론 때가 되매 아들은 우리가 만져보는 방식으로 오셨지요. 그래서 처음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신다. 그리고 노아홍수 당시에는 새 세계로 지으셨을 때는 하나님이 바람으로 권념 하신다고 되어 있지요. 그렇게 해서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생기를 호흡하시니까 마른 뼈도 산 군대가 되고 바람이 분다고 에스겔서에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여기 바람은 하나님의 호흡하심 하나님의 생기를 호흡하심, 숨을 쉼,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새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는 방식으로 임하신다 해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과 같이 임하셨다 하는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곳입니까? 어떤 특정한 사람이 아니고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한 목소리로 찬양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천하만국의 방언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그러니 새 인류가 나타났다. 그런 말이지요. 그러니까 1-7장까지는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되는 기사입니다. 8-12장까지는 유대와 사마리아에 대한 문제입니다. 특별히 10장에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이방인에게 처음 문을 연 것을 알 수 있고 8장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런데도 사마리아까지라도 곧 거기 보면 유대인에게 거의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 그들은 본래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시작이 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거기 보면 빌립이 비록 사마리아 땅에서 수고했어도 사마리아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도록 기도해서 그들로 그리스도께서 한 몸으로 그들을 접붙이셨다 한 성령을 마셨다 하는 증거를 준 사람은 사도여요. 베드로와 요한이 갔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1-12장까지는 주로 유대인의 사도로서 사도의 머리로서 활동했던 베드로가 중심 역활을 하고 있고, 거기 요한이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또 누가 함께 나타나 있습니까? 15장에 보면 야고보가 나타나 있지요. 물론 야고보는 예수의 동생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친동생으로 우리가 이해를 해야할 것입니다. 그 앞에 다른 사도 야고보는 순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거기보면 특별히 예수의 사도 중에 세 사람에 대한 언급이 있지요. 베드로 요한 죽은 야고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 제자는 특별히 취급을 해서 특별히 증인으로 죽은 자를 살일 때도 그 세 제자를 데리고 갔고 변화산에 오를 때도 그 세 제자를 특별히 데리고 갔어요. 그러니까 사도들이라고 똑같은 역할을 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면서도 일하는 방식들은 분명히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유대 땅을 중심으로 했을 때는 베드로가 머리로 일하고 있고, 이방인의 사도로서는 바울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 연합시킨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고 있다 하는 것이 곧 사도행전의 내용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그런데 그 한 몸의 교제됨을 파괴하는 유대주의의 여러 가지 배교가 나타나지요. 유대교는 처음부터 예수를 죽였을 뿐 아니라 예수의 복음을 방해하도록 땅 끝까지 따라 다니며 방해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유대인 교회가 바울이 왔을 때 우리들은 다 예수를 믿음으로 다 한 형제라 그것이 구약약속의 성취로 그것이 다윗의 왕국이 회복되는 것이라. 그렇게 함으로 교회가 영원히 하나로 설립되고 있지요. 그런 문제들입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하면 1-12장까지는 주로 유대와 관계가 있고 13장 이하는 이방과 관계가 있습니다. 유대와 관계가 있는 것도 1-7장은 예루살렘이고 8-12장은 유대와 사마리아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1-7장도 1-5장은 교회설립에 대한 문제이고 6-7장은 구제문제 때문에 거기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간의 분쟁이 있었을 때에 거기 교회를 조직하고 있지요. 교회성장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구조로 되어 있어요.

13장 이하에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 선교사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 바울의 행적 중에서도 더 나누자면 20장까지와 21장 이하로 나누면 좋습니다. 21장 이하는 로마 옥중과 관계된 이야기지요. 어떻게 잡혀서 로마 옥중으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앞에는 교회를 설립한 기사입니다. 그렇게 구분하면 여러분들이 이해하기가 더 쉽겠습니다. 그러나 꼭 한 가지 목표는 기억하십시오. 땅위에서 친히 하나님 나라를 증거 했던 그 분이 친히 승천하심으로 그의 성령을 부으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실제가 되게 하셨고, 그의 나라를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 그가 사도들 안에 계셔서 행하고 가르치심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새 인류를 지으신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된 새 인류를 지어 나가신다.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땅 끝까지 그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그것이 사도행전이다. 그래서 그것이 곧 예수께서 그의 영으로 임하신 성령행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우리들이 여기서 한 가지 문제를 더 지적하면 이 문제를 더 잘 알 수 있겠습니다. 여기 보면 4절에 보면 저희가 모였을 때에이런 말입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말은 잘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였다는 말은 다른 성경들의 난외주를 보면 모였다는 말이 그냥 모였다는 말이 아니라 떡을 떼려 모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로 몇 번 모였는가? 복음서에 보면 그렇게 많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안식 후 첫 날에 그리고 7일 후에 한 번 그 다음 바닷가에서 한 번 이렇게만 나타나 있고 나중에 고전 15장에 보면 예수께서 몇 번 나타났는가를 여러 번 말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고전 15장의 부활의 여러 증거는 나타나 있어도 복음서는 그렇게 나타나 있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 보면 부활하신 뒤의 일인데도 사도와 같이 모이사 그런 말은 복음서에 보면 그가 부활하신 뒤로 제자들을 찾아가시면서 떡을 떼시며 교제하셨지요. 그리고 그가 부활하신 뒤로도 그는 안식 후 첫날이 되면 그 제자들을 방문하셔서 그 떡 떼는 교제를 통해서 자기백성과 함께 하셨지요.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아들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산 것처럼 너희들은 나로 말미암아 실리라는 방식으로 교제하셨지요. 그러니까 구약언약 방식으로 말하면 곧 유월절 교제가 새 언약의 교제로 대체했을 때 떡과 포도주를 주셨거든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심의 표여요. 그것이 이스라엘의 출발점이어요. 유월절이 그러니까 주님께서 그런 방식으로 부활하신 뒤로도 계속해서 보이셨다 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보아도 같이 모이사 떡을 떼는 방식으로 모이셔서 한 몸의 교제를 거기 허락하셨고 그가 친히 영으로 임하셔서 성령을 부으심으로 그는 영원히 자기 백성 안에 친히 우리의 본성으로 거하시며 그리고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먹기까지 그는 친히 우리 안에 임재 하셔서 교회를 보존하시고 확장하실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보면 사도들도 안식 후 첫날 에 모이고 있는데 여기서 모인다는 말은 그건 말입니다.

조금만 다시 요약하고 사도행전의 서론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형식적인 구조를 말하지 않고 먼저 그 주제를 말하고 형식적인 구조를 말한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살아 계셨을 때 그의 행하심과 말씀 안에서 그는 친히 생명의 성령으로 행하셨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친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으로 친히 예수 안에 가하셔서 그가 하나님 나라 왕임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그들 중에 가까이 임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뒤로 성령을 호흡하심으로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라. 뉘 죄든지 너희들이 사하면 너희들이 사함을 받을 것이요 곧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 하심을 분명히 그렇게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승천하심으로 그의 성령을 보편적으로 부으심으로 이제 참으로 하나님의 영이 새 본성이 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서 셰례 요한의 물로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임하셔서 우리 마음이 살과 같이 부드럽게 되어서 하나님의 법이 우리마음에 세겨져서 처음 창조의 법이 아담 안에 새겨진 것처럼 하나님의 법이 우리 안에 새겨져서 하나님의 법을 이루는 새로운 피조물이 땅위에 나타난다. 그러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이고 나는 너희 안에 있어서 내 나라를 세우겠으니 너희들은 내 증인이라. 그리고 그 나라가 언제 회복되는가는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고 너희들이 생각하는 나라가 아니고 주님이 오시면 그 나라를 완성하신다. 그때까지 바로 예수의 복음은 사도들을 통해서 세상에 확장된다. 어떻게 1-12장까지 예루살렘과 유대에 베드로를 통해서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을 통해서는 땅 끝까지 로마 옥중까지 그런데도 로마 왕도 하나님 나라 곧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증거하는데 아무도 막는 자가 없더라.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그가 그 나라를 세우시고 계신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만큼 핍박을 받는데도 바울이 로마 왕 천하만국의 왕 앞에서 증거 하는데 바울의 걸음을 막을 수가 없다. 그 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사도 안에 역사 하셔서 그의 나라를 증거하니까. 사도는 죽었어도 그의 복음 사도적인 증거는 교회안에 기록된 성경으로 보존되어 있고 성령은 지금도 교회 안에 임재하여 계셔서 우리의 증거를 통해서 세상에 새 생명 성령으로 자기교회를 새롭게 지으십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주님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도록 로마 옥중 뿐 아니라 지금 천하만국에 교회가 퍼져있지 않습니까? 로마옥중 공산정권까지라도 그 교회를 파괴할 수 없는 것이고 이 세상의 어떤 세력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그의 교회의 완성을 위해서 보존하시는 그 분의 손에서 교회를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 안에 임하신 성령이 세운 것이지 사도들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만일에 그런 증거가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땅에서 봉사하며 복음을 증거합니까? 친히 성령의 증거를 세상에 증거함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순종해야할 것입니다.

'신약 구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강해 2:1-11  (0) 2025.01.11
사도행전 강해 2  (2) 2025.01.02
나사렛 사람 예수  (0) 2021.06.25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  (0) 2021.06.19
임마누엘  (0) 2021.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