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사람 예수
마2:13-23, 사53:, 요1:46
* 설교 개요
1. 애굽으로 이거함(호11:1)
2. 베들레헴의 유아 학살(렘31:15)
3. 나사렛 동네에서 사심(요1:46)
마태복음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는자들, 또는 그와 함께 믿는 이방인들, 그들을 향해서 예수는 이스라엘이 비록 거절했지만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세상의 구주이시라고 증거하는 것이 마태복음의 기록 목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이 예수님은 이스라엘 역사중에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신 하나님이셨는데 지금은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영광의 주님으로서 천하만민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그들중에 영원히 함께하시니 그를 순종하고 따르라 하는 것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2장 13절부터 2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이제 출생하신 예수를 보고 동방의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러 왔지만은 그 언약을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동하고 놀랬으며 나중에는 예수를 죽일려는 그런 핍박이 대대적으로 집행된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베들레헴에서 한 왕으로 나실것을 약속하셨고 그것은 어두움의 권세 이방의 권세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할 큰 왕을 지시하신 것이며 또 발람의 입을 통해서 유대인의 한 별, 한 왕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별도 미디안 백성을 쳐서 즉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려고 했던 우상의 권세를 쳐서 자기 백성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한 왕으로 약속했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헤롯은 실은 마음속으로는 예수를 죽이려는 계획을 마음속으로 가지고 있었지만은 예수께서 어디서 나신 줄을 잘 몰랐기 때문에 박사들을 보냈고 만일에 유대인의 왕으로 새로 출생된 사람, 어린 아이를 만나면은 자기에게 연락해주고 그렇게 하면은 자기도 가서 경배하겠노라고 그처럼 박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서 어린아이 예수께 갔고 그들은 그들의 귀한 보물을 드려서 그를 경배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이전에 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통해서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동방의 박사들이 떠난 후에 이제 하나님께서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셔서 헤롯 임금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서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는데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주로 이런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는 말씀이 특징인데 그런 말씀이 한 열번 쯤 나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헤롯의 핍박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가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다고 그처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난하는 것과 그리고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렀다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런 말씀은 어떻게 약속과 성취를 이루는가 하는 문제를 먼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 인용의 말씀은,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는 이 인용의 말씀은 호세아11장 1절의 말슴을 보라고 그렇게 관주성경에 되어 있지요. 관주성경에 보면은 인용보면은 호세아 11장 1절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는데 그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셔서 품에 안으시고 그들을 가르친 이 은혜를 거절하고 거듭 거듭 이방의 권세들을 의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해서 이제 그들을 내 자식이 아니라 그들을 버릴것이라고 호세아서에서는 말씀하고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사랑때문에 내 백성 그 곳에서 저희를 내 백성이라 하리라 부르시리라고 그처럼 말씀하셨지요. 바로 그런 문맥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부터 사랑하셨는가 하는 말이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 그런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그들을 품에 안으시고 사랑하셨는데 그들이 나를 거절하는가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 사랑했던 장면은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그렇게 호세아 11장 1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보통 애굽 그러면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어두움의 권세의 대표적인 나라로 애굽을 이해하고 애굽의 바로 임금 애굽의 임금은 사탄의 모형, 그런 식으로 보통 이해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 문맥을 보면은 헤롯임금,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헤롯임금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특별히 그 임금은 이 예수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은 먼 이방 빵의 사람들은 와서 예수를 경배했고 오히려 예수님은 자기 땅에서는 생명의 거처를 발견하지 못했지만은 먼 애굽땅으로 피난해서 거기서 생명의 보호를 받았다 그것이 이 문맥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애굽은 나쁜 곳으로 표현되어 있지 아니하고 좋은 곳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성경을 그 문맥을 따라서 읽으셔야 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복을 천하만민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어서 가나안 땅에 아브라함의 백성을 중심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지만은 이방은 그냥 지옥가는 방식으로 버린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약속을 따라 그들도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장자로 택한 것이라는 것이 구약의 근본적인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조상의 야곱이 애굽으로 이사갔을 때에는 그냥 무슨 신앙이 타락하고 나빠서 이사가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어서 살 방법이 없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앞서서 요셉을 보내셨고 그리고 요셉을 통해서 애굽과 세상을 구원하도록 그처럼 하셨고 요셉의 형제들 즉 야곱의 아들들을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보내서 큰 기근동안에 그 백성들이 생명을 얻고 거기서 번성하고 번성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은 왜 그들을 애굽으로 보내시는가? 아직 가나안 땅에는 죄가 가득차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의 백성의 죄가 가득차면은 그들을 다 심판하시고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의 땅으로 주시겠다고 그처럼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에 큰 사망의 기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까지 그 땅을 상속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땅의 주인은 가나안 백성이요 그들은 아브라함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따랐던 백성들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들의 죄가 가득차서 이제는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이 가득차서 그들을 심판하실 때 가나안 백성의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을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기시겠다고 그처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데도 아직도 원수가 있습니다. 이방 땅은 언약밖에 있는데도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브라함과 그 족장들안에서 애굽백성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조상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앞의 아브라함은 큰 흉년을 당해서 애굽에 내려가서 자기 아내를 빼앗길뻔한 큰 고통을 당했지만은 거기서 거부가 되어서 돌아온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지요? 이처럼 애굽이나 또는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데도 아직은 아니어서 원수가 있었고 이방은 아직 하나님의 약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는데도 조상들을 통해서 그들이 은혜를 입고있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방 백성도 온전히 돌이켜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 연합된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 즉 애굽에 구원을 가져다 주는 야곱의 아들을 잊어버리는 새로운 임금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전부 죽이려고 그렇게 했고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권념하셔서 가나안 땅으로 옮기셨습니다. 이제 애굽에는 큰 핍박이 일어났고 애굽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도 죄가 가득차서 하나님께서 애굽의 권세를 심판하셨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의 모든 백성들을 다 죽게하시고 그리고 자기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셔서 거기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거기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은 애굽과 가나안 땅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던 것이고 곧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방땅과 유대인, 다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여전히 핍박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중에 반복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지역으로부터 아브라함을 불렀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의 아브라함의 약속을 상속할 자 야곱이 났을 때 에서가 얼만큼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언약의 땅에는 거짓된 장자 에서가 있었고 그리고 진짜 장자로 하나님앞에 약속을 받은 야곱은 그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그가 바벨론 땅으로 쫓겨나서 거기서 열두 아들을 낳고 큰 가문을 일으셔켜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데도 여전히 거짓된 왕이 거짓된 백성이 그 나라를 상속하는 일을 방해하는 어두움의 권세가 이렇게 처음부터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의 기원은 바벨론 땅이요 이스라엘 백성이 큰 흉년을 당해서 큰 민족으로 번성한 것도 애굽 땅이었고 그리고 그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열 둘로 조성되는 곳도 바벨론 지역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방땅에서 번성케했고 그리고 가나안 땅의 죄악이 가득찼을 때에 이방 땅과 가나안 땅을 동시에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상속케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나라를 건설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반복되는 모델들입니다. 이제 그 약속의 성취자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약속을 완성시킬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왕같은 하나님의 백성이어서 하나님의 뜻이 그들의 삶에서 이루어지고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들의 삶은 통해서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제사장 민족으로 부름을 입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범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 땅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남은자들을 번성시켰고 그리고 바벨론의 모든 보화를 들고 돌아와서 하나님의 전을 짓게하셨고 그리고 가나안 땅을 다시 상속케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이방의 권세아래 있었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셨을 때에 그 아들도 여전히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헤롯임금의 핍박을 받아서 애굽 땅으로 피난갔다고 그처럼 말씀하고 예수께서 애굽땅으로 피난가심이 내 백성을 애굽에서 불렀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시는 것이라고 그렇게 마태복음의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은 가나안에는 헤롯임금이 있었습니다. 헤롯왕은 로마의 권세를 대행하는 그런 임금이었고 족보적으로 하면은 에서의 족보이었습니다. 그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있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의 임금이 출생했다는 말 때문에 가서 경배한 것이 아니라 놀라고 소동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의 팝박을 받은 예수님은 애굽으로 피난갔습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에는 예수의 거처가 없었어도 애굽땅은 예수의 생명의 보호지가 되어서 예수는 거기서 어린 시절 얼마동안을 보내고 그리고 헤롯이 죽은뒤로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메세시라고 여러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를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를 거절했지만은 이방인은 그를 영접했고 또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는 백성을 통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분이라고 그처럼 마태복음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 임금과 백성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아니했을 뿐 아니라 그 임금은 참다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땅에 그 아들의 거처를 마련하셨고 거기서 생명의 보호를 받게 하셨고 그리고 거기서 다기 부르셔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셔서 거기서 그 나라를 설립하게 하셨다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기 백성과 함께 계셨고 이전 역사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본 가나안 땅에서는 쫓겨났었고 이방땅에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자기 백성과 함께하는 생명의 나라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이제 오셨을 때에 옛 구약에서 언약백성이었던 자기 백성이 예수를 거절했고 그리고 애굽 백성은 그를 영접해서 그의 생명의 보호자가 되었으니 이것은 가나안 땅은 하나님앞에 심판을 받을 땅이요 애굽 땅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곳으로 그렇게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지만은 이스라엘 백성은 그를 거절했지만은 누구든지 그를 믿고 영접하는 자는 천하만민이 그의 백성이 되는 것이라 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이처럼 예수의 어린시절을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꿈에 지시를 받아서 애굽으로 피난가셨습니다. 이 일때문에 헤롯임금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대단히 분노해서 군대를 보내서 베들레헴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박사들에게 알아본 그때를 기준해서 이쯤 되면은 그 어린아이를 찾아서 죽일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방법으로 두 살 이하로부터 다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동방 박사들의 경배를 받으시고 하는 시간은 출생부터 상당한 시일이 지난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린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마태복음의 기자는 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이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이 관주를 보면은 인용, 예레미야 31장 15절 그렇게 되어 있지요? 15절부터 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희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 오리라 (렘31:15-17)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면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앞에 범죄해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제 그 포로의 집결지가 어디냐 하면은 소위 라마지역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라마, 그 부근으로. 그런데 그 부근에는 누구의 묘지가 있느냐면은 라헬의 묘지가 있습니다. 라헬은 밧단 아람에서 돌아와서 벧엘로 올라가는 길에 그 베들레헴 부근에서 마지막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거기서 죽었지요? 거기에 라헬의 묘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특별히 야곱의 아내로서 아이를 낳을려고 언니와 많이 투기했고 그 일 때문에 자기 남편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아내를 네명 얻었는데 두명은 형제간이고 두명은 종이지요? 그런데 언니는 인물은 못났는데 아들은 많이 낳고 라헬은 동생이었는데 아주 예뻐서 언니보다도 더 사랑을 입었습니다. 야곱이 그 라헬을 얻기 위해서 칠년동안을 수일처럼 그렇게 수고를 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은 입었는데도 아이를 낳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게해서 남편한테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졸랐지요. 하나님이 너로 아이를 못낳게 하는데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는가? 하고 대단히 책망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아이를 낳으려고 수고를 많이 한 사람이 라헬이고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라헬을 권념해서 두 아들을 낳는데 요셉과 베냐민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낳기를 소원했는데도 막내를 낳다가 자기 생명이 잃은 바 되었습니다. 마지막 라헬이 죽으면서 베냐민을 낳았을 때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제 완성된 것입니다. 만일에 창세기의 기록대로 하면은 라헬이 마지막 베냐민을 낳지 않았으면은 열둘은 완성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라헬은 이스라엘의 야곱의 아들 낳는 일에 있어서 아주 큰 관계가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아들, 야곱의 아들을 낳기 위해서 그처럼 수고하고 또 마지막 자기 생명이 끊어지는 지경에서 마지막 말째를 낳았던 라헬인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해서 그들이 먼 이방 땅으로 잡혀가게 되었고 그 야곱의 아들들이 다 포로 수용소에 집결되어서 이제 먼 이방 땅으로 옮겨가 있으니 만일에 라헬이 살아있을 것 같으면은 그 슬픔이 얼만큼 크겠습니까? 바로 이것을 두고 선지자는 그처럼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 졌느니라 조상의 모든 소망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땅으로 포로 잡혀감으로 어머니의 모든 소망이 끝나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바로 이 말씀이 이제 어린아이들을 다 죽이는 베들레헴 핍박에서 완성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은 어느 한 절을 인용했을 때에 그 절만을 우리가 해석해야 될것인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방금 예레미야 31장 15절부터 17절까지를 읽었습니다. 분명히 15절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여기는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16절, 17절을 이어서 보면은 거기서는 너는 소망이 없다고 울지를 말아라 마지막 소망이 있는데 너의 자식이 돌아오리라 그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된 지경에서 먼 이방땅에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리라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라헬이 자기 생명을 다해서 낳은 아들, 야곱의 아들들, 가나안 땅을 상속하도록 가나안 땅의 상속자 야곱을 이어서 낳은 아들, 이 아들들이 범죄해서 어머니의 소망은 끊어진 것처럼 되었지만은 너는 낙심하지를 말아라 내가 그들을 먼 땅에서 돌아오게 하리라 그처럼 예레미야 31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큰 핍박을 통해서 핍박이 완성되었다고 그렇게 말할 수도 있고 다른 한가지는 가장 큰 핍박이 있었지만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수님을 애굽으로 옮기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소망했던 소망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은 구약 본문을 인용했을 때는 그절만 인용할 것이 아니라 그 문맥을 인용하는 경우들이 더욱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보면은 어린아이들을 두 살 이하로 다 죽였습니다. 만일에 이 두살 이하로 다 죽여서 거기에 만일에 예수님이 포함되었을 것 같으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리고 그 후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이 함께했던 약속은 이제 베들레헴 핍박에서 영원히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 핍박은 여기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이 항상 염두해두고 있는 출애굽기에서도 있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는 작전이 무엇입니까? 남자 아이들을 나일강에 다 던져 죽이도록 하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그때에 한 사람, 모세를 구원하셨고 그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만일에 거기서 어린아이들이 다 죽어버렸으면은 그런 의미로 한 세대가 끝나는 것이고 그런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은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모세를 사망에서 건져내었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것처럼 베들레헴의 어린 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애굽으로 피난시키셨고 그리고 그 아들을 다시 애굽에서 불러내셔서 핍박하려고 가장 큰 모든 궤계를 다 부렸는데도 하나님의 그 권세로 자기 백성을 지키셔서 이스라엘의 소망이 되셨다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에수님께서 헤롯이 죽은 후로 하나님께서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서 아기와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 임금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하심이라 여기서는 관주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 22절, 이 모든 일의 된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하니까 나사렛 사람이라 하는 말의 관주는 아니지요. 단지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는 말에 관주를 달아서 잘못 오해되기 쉽겠습니다. 왜냐하면은 나사렛 사람이라 하리라 하는 이말은 구체적으로 예언된 구약 구절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헤롯의 핍박을 피해서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서 생명의 보호를 입었습니다. 그 사이에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들은 예수님때문에 두 살 이하로 다 생명이 빼앗긴바 되었습니다. 모세 당시에 바로왕이 유대인들의 어린 아이들을 다 죽일려고 했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감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땅에서 끊으려고 했는데, 이제 그 약속의 성취자로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셨을 때에 가나안 땅의 임금, 이스라엘의 임금이 참되신 하나님의 이스라엘 임금이신 예수를 죽이려고 어린아이들을 다 죽게해서 그런 의미로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끊을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의 주님이시요 또 신실하신 하나님이셔서 이전에 모세를 죽음으로부터 건져 내셨고 이스라엘을 바벨론 땅으로부터 돌아오게 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바벨론으로 피난가게 하셨고 생명의 보호를 입게하셔서 이제는 구약의 어머니가 이스라엘 백성이 다 잡혀갔을 때에 슬피울며 탄식했던 그런 탄식을 위로했습니다. 왜냐하면은 이제 마지막 핍박이 있었지만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생명을 보호하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셨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 마태복음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헤롯을 죽게 하셨지요. 헤롯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헤롯이 죽었기 때문에 요셉은 예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헤롯의 아들이 임금으로 있었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했고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요셉에게 지시하셔서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도록 그처럼 하셨고 요셉은 예수를 데리고 갈릴리 나사렛동네에 와서 살았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의 고향이 나사렛이 되었습니다.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사가서 나사렛 동네에 사신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인용 구졀이 없지만은 요한복음 1장 46절을 보면은 이제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을 전도 했습니다. 그때에 1장 46절을 보면은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해서 하는말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사람을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에수라 그러니까 나다나엘이 하는 말이 나사렛 촌에서 무슨 선지자가 나겠느냐? 그렇게 말했지요. 그러니까 나사렛 사람 예수, 이것은 한마디로 촌사람 예수이고 하나님의 구원은 베들레헴에서 나는 것이지 나사렛에서 나는 약속은 없습니다. 구약 어느곳에서도 약속된 적이 없고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사셨고 그래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사셨으면은 그의 활동에 있어서는 그는 다윗의 후손으로 쉽게 인정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분명히 베들레헴에서 출생했지만은 그의 고향이 나사렛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해서 멸시와 천시를 받았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헤롯 임금에게 핍박을 받아서 애굽에 피난 갔을 뿐 아니라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헤롯을 이은 그 아들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에 그는 베들레헴 자기 고향에 살지를 못하였고 먼 시골에 피난가서 촌 사람으로 숨어서 비천하게 살았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제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아서 광야에서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바로 이 세례요한이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증거를 받아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나심이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자기 백성에게 출생 때부터 거절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는 성장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는 이스라엘의 핍박아래에 있어서 나사렛 촌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는 선지자로서 아름다운 모양이 없고 구원자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나사렛 이라는 분명한 이름으로 칭호된 그런 예언은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그 종을 보내시고 그 종이 다른 열왕의 그 왕들처럼 큰 권능으로 권세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이 순종하지 못한 죄의 짐,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을 받고 순종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이사야서 52장부터는 여러군데에서 쭉 말씀해 왔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을 보십시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설명할 필요가 없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의 구원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는 어린아이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으로 부터 버림을 받았고 헤롯왕의 살해계획을 피하여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와 함께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은 다 죽었습니다. 이처럼 구약 처음부터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함께하셨고 자기 백성들은 고난을 받았는데 마지막 자기 땅에 왔지만은 그 백성들과 임금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렛 촌으로 피하여 거기서 성장하였고 그리고 갈릴리 지방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자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분이기 때문에 그는 베들레헴과 관계있고 예루살렘과 관계가 있지 먼 변방 촌과 관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일 때문에 예수님은 어려서 부터 이처럼 핍박을 받아서 자기 땅에 거하시지 못했지만은 그는 그가 내내 사역하는 동안에 나사렛 촌 사람으로 멸시와 천시를 받았습니다. 마태복음은 그 사실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서 권능을 행했지만은 그는 저주를 받았고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에게 버림을 당했지만은 실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죽음을 맛보셨고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영광을 주심으로 이제는 천하만민이 믿어 구원받을 구주로 세우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분만 우리의 구원자요 달리 구원자가 없습니다. 죄값은 사망이어서 다 죽음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사람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그는 참으로 멸시와 천시를 받은자로 고난받은자로 시골에 사셨을 뿐 아니라 자기 백성의 모든 고난을 자기 몸에 짊어지시고 그는 구약의 저주를 자기 몸에서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에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구원의 길이 열렸고 예수의 죽으심을 당해서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캄캄하고 잠자는 성도들의 무덤이 열려서 죽은자들을 내어줌으로 예수님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신 생명의주가 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예수를 거절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놓고 무덤의 큰 돌을 굴려넣고 로마의 군병들을 세워놓고 그들이 평화로우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욕구를 다 거절하고 예수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그리고 그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자로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교제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는 세상에서 거절을 받았지만은 이방 백성에게 저주받은 죽음을 받으셨지만은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이제는 천하만민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새 백성으로 살게 할려고 천하 만민의 구원을 아들을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세상은 예수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루 햇빛과 비를 주시고 지금도 이처럼 그가 지으신 모든 생명을 보호해도 사람들은 만든 물건 앞에 절하면 절할지언정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생명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에게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이제는 그를 순종하고 그를 따르는 백성으로 사는 백성들이 많지를 않습니다. 우리나라에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로는 예수를 시인하면서도 예수를 믿지않고 예수를 죽였습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교회도 말로는 예수를 시인해도 우리의 행함을 통해서는 실은 예수를 거절하는 것이 오늘 우리나라 교회입니다. 안믿는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말로는 믿는다는 사람들도 꼭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과 그 조상들을 통해서 약속을 받았지만은 그 약속을 따라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오시는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저주를 받아서 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에 우리들이 세상에서 예수의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할 것 같으면은 나도 아버지의 나라에서 천사들앞에서 너희들을 부끄러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너희들이 내 말을 듣고 그리고 나를 순종하고 내말을 지키지 않을 것 같으면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만일에 우리들이 우리 조상들 때에 살아있었으면은 선지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인데 우리 조상들은 왜 잘못하여 선지자들을 죽였던고?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크게 쌓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을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례요한을 죽였고 그리고 세례요한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서 조상들의 죄를 가득 채웠습니다. 우리들은 이 사실의 증인입니다.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고 범죄해서 쫓겨난 사실을 잘 알고 그리고 우리들은 그렇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만큼 세상 교회들이 타락했는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일에 우리가 그 당시에 그렇게 살았으면은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고 우리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앞에서 우리들이 주님을 시인하고 있습니까? 세상에는 멸시와 천시를 받았지만은 그는 생명의 주님이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분이시요 우리중에 영원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우리들이 참으로 그분을 영광스럽게 복종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을 순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영으로 우리안에 함께 계셔서 새로운 능력을 주셨고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생명의 교제를 주셨는데도 날마다 주의 상에 앉아서 먹고 마시면서도 우리들이 주님의 상에 앉는 백성으로 합당하게 사셨습니까? 마태복음은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절을 받았지만은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우리들도 세상처럼 예수를 멸시하고 천시하고 세상을 따르면은 함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리신 예수, 무덤문을 여시고 부활하신 예수, 죽음의 권세를 영원히 정복하신 예수, 바로 이 예수안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이스라엘 새로운 교회를 세우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고 순종하는 백성은 어두움의 권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끊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대표자인 예수는 죽음의 권세를 영원히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예수를 찬양하십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하신 형제로 오셨을 뿐 아니라 죽음의 몸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그는 멸시와 천시를 다 받으셨고 마지막에 우리가 지은 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다 받으셔서 죽음의 권세를 끝내시고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는 부활하셔서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은 이제는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사는 새로운 백성이며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은 주님과 함께하는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승리하는 능력있는 백성으로 새롭게 지음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다 이처럼 지음받은 백성으로 그리고 아직까지 믿지 않는 분들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를 우리의 구주로 믿으시고 이제까지 하나님을 말랐던 죄를 회개하시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친히 죽음을 맛보셨으나 영원히 생명의주님이 되신 부활하신 예수를 영원한 생명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신 주님
주님은 참으로 우리의 생명의 주님이셔서 죄의 권세가 주님의 생명의 약속을 끊지 못하며 주님께서 영원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택하시고 가나안 땅을 생명의 땅으로 선택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복을 주셔서 그들과 함께하셨지만은 그들이 하나님앞에 온전히 순종하지를 못해서 이방의 권세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약속에 신실하셔서 친히 그 아들로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으로 보내셔서 친히 우리 죄를 위해서 죽게하시고 또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셔서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나라로 교회를 세우셨음을 참으로 감사들 드립니다. 주님께서 생명의 주님이 되셨사오매 이제는 이전에 있었던 모든 핍박이 이제는 죽음의 권세까지라도 하나님의 교회를 끊지 못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죄의권세가 이방의 권세가 이스라엘을 흔들었지만은 이제는 음부의 권세가 주님과 함께하는 신약 하나님의 교회를 영원히 끊지 못할 줄로 믿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 생명의 주님께서 참으로 이 영광의 주님께서 자기 백성중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들에게 거절을 받으셨고 이방인과 함께 연합해서 세상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은 하나님은 고난받는 그 아들을 통해서 우리 죄를 대신하게 하였사옵고 이제는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나라를 우리를 위해서 세우셨음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보좌에 계시며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으로 우리안에 함께 임하셔서 친히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받게 하셔서 주의 백성이 되게 하셨을 뿐 아니라 이제는 부활하신 주 예수의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생명의 교제를 우리에게 허락하셔서 여전히 우리안에 죽음이 활동하고 있으나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를 복 주셨음을 인해서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 생명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생명의 주님을 봉사할 수 있도록 의의 백성으로 우리를 지으셨사옵고 오늘도 이처럼 고루 햇빛과 비를 주셔서 참으로 주께서 지으신 모든 생물에게 생명을 새롭게 할 뿐 아니라 주의 교회를 기억하셨음을 인해서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감사함으로 드린 예물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더 크게 확장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복주시옵고 주의 백성들의 손의 수고를 복주셔서 주님오셔서 만물의 생명을 새롭게 하도록까지 생명을 주신 주님의 일을 봉사할 수 있도록 주의 백성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세상이 지금도 주 예수를 거절하고 예수를 멸시하지만은 우리는 세상에서는 멸시를 받았으나 하나님앞에는 높임을 받은 주 예수를 우리의 생명의 구주로 기억하고 모든 사람앞에 예수를 시인하며 모든 경우에 예수를 복종하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새 백성으로 주의 말씀을 지키는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아버지! 주를 믿는 백성들과 어린 자녀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우리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생명의 주님 가운데서 날마다 부활의 생명으로 주 예수의 능력을 증거하는 새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주의 백성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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