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
마2:1-12, 미5:, 민24:7
* 설교 개요
1. 베들레헴에서 나신 언약의 왕
2. 왕과 온 에루살렘이 소동함
3.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함.
마태복음이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주 하나님으로 그들중에 오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거절했지만 그를 믿는 백성들로 교회를 지으셔서 이제는 영원히 함께계시는 나라를 세우셨다하는 것이 마태복음의 주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중에 성막을 짓고 함께 계셨는데 이제 그약속의 성취로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에 오셔서 친히 권능을 행하시고 친히 자기를 증거하시고 가르치시는 이 예수를 믿는 것이 곧 그들중에 임하신 하나님을 영접하는것이요 그를 거절하는 것이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하면서 유대인들의 배교와 그리고 이스라엘 중의 남은자와 그리고 이방인들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로 교회를 지으시고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마태복음의 내용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마태복음의 처음부분에서는 족보를 통해서 이제 하나님의 구원의 새시대를 열으셨다고 말씀하고 요셉의 집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신 이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신데 그는 친히 그들중에 임하여 계신 하나님 곧 임마누엘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2장 1절부터 이제 말씀하시기는 그의 태어나심을 통해서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는데 베들레헴에서 나셔서 옛 언약을 성취하셨고 그리고 온 예루살렘은 소동해서 그를 경배하지 않았지만은 먼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그를 경배했다고 그렇게 말씀하심으로 이제 자기 백성중에 오신 주님을 이스라엘은 거절했지만은 그를 믿는 천하만민이 경배했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이 1절부터 2절이 방금 읽은 1절부터 12절까지의 서론이요 주제가 되겠습니다. 헤롯왕 때에 베들레헴에서 예수께서 나셨는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거기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계시는가?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분은 유대인의 왕일 뿐만 아니라 천하 만민이 경배하는 왕이라 하는것이 여기서 선언하는 내용입니다. 여기 보면은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박사들의 말을 듣고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놀랬고 왕이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서 이제 이스라엘의 구원자 메시야가 어디서 나겠느냐 이처럼 물었더니 그들이 성경책을 펴서 말하는 것이 여기 미가서 5장을 보면은 유대땅 베들레헴에서 나신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은 미가서 5장을 보면은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그렇게 성경을 인용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베들레헴에서 나실것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나셨는데 천하만민이 경배하는 왕이신데 그는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이라 하는 것이 여기 2장에서 말하는 강조점입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대로 누가 복음의 예수님의 출생기사와 비교해 보면은 예수님은 본래 나사렛이 고향인데 그당시 로마 아우구스 황제가 모든 사람을 다 호적하라 그렇게 말을해서 자기 고향으로 호적하러 고향으로 갔다가 그냥 가는길에 아이를 낳은것이라고 그래서 그의 고향은 나사렛 사람이라고 그것이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나사렛 사람인데 그의 고향은 베들레헴이다. 그래서 약속의 성취때문에 베들레헴에 나셨어도 그의 고향은 본래 나사렛 사람이다. 그렇게 누가복음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사렛에서가 어떻든 강조가 주어져 있지요. 그러나 이 마태복음에서는 나사렛이라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를 않고 그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언제? 헤롯왕 때에, 또 이 왕의 이름도 그 당시 로마 황제 아우구스 때에 천하사람을 호적하라 했다 또 그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로마 총독은 누구이고 하는 로마제국과의 관점에서 그 출생시기를 말하지 않고 그냥 유대인의 왕, 헤롯왕 때에, 그냥 헤롯왕만 지시하고 있고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렇게 직접 베들레헴 출신으로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고향이 어디이며 요새 처럼 설 무렵이 되어서 먼 고향에 가다가 그냥 아이를 낳았다는 그런 표현법이 아니고 유대인의 왕 헤롯왕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예수께서 나셨다 그의 고향은 본래 유대 베들레헴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이제 2장 제일 끝에 보면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2장 제일 끝에 나사렛 사람이라는 이름은 나와도 예수의 출생 기사에서 나사렛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고 베들레헴만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장 제일 끝의 23절에 나사렛 사람이라 하는것도 그의 고향이 그렇다는 말의 표현법이 아니라 이제 헤롯왕이 죽어서 다시 돌아왔지만은 헤롯왕의 아들이 후임자로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서 예루살렘으로 그렇게 가지는 못하고 저 변방 시골 땅에 가서 숨어 살았다 하는 그런 표현법으로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그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가 이 문맥에서는 그는 본래 베들레헴에서 약속하신 왕으로 오셨는데도 헤롯왕이 죽이려고 그랬고 또 그 백성들도 그를 경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국에 저 변방에 살았고 그가 변방에 사는것이 곧 이스라엘의 구원역사의 시작이라고 4장에서는 그렇게 시작하고 있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예수는 베들레헴에 나신 왕인데 이스라엘은 그를 거절했다 하는것을 처음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은 어떤 왕이냐 하면은 미가서 5장을 보면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그러므로 임산한 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여기서 그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이말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주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 미가서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숭배와 그리고 그들의 불의함 그것에 대응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을 심판할 뿐 아니라 그들을 구원할 자를 보내시겠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우상의 세력을 땅에서 다 끊어지게 하겠고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백성을 지어내겠다 하는것이 미가서에서 말하고 있는 중심입니다. 이 미가 선지자는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 선지자 또 아모스 선지자와 같은 시대에 일했던 선지자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권세를 의지한다는데에 강조점이 두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는 의의나라를 이루시겠다 하는 것이 이사야서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모스서는 그들의 불의함, 의가 없음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그들의 불의함을 따라 심판하시고 의로운 나라를 이루시겠다 하는 것이 강조점이고 미가서에서는 그들의 우상 섬김, 거짓신을 따름, 거짓 선지자를 따름, 그렇게 해서 그들이 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짓신을, 거짓 선지자들을 다 끊어버리고 그들에게 한 목자를 주실것인데 그는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이며 그의 기원이 상고에, 태초에 있는 하나님이 친히 그들중에 오셔서 그들을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그의 출생을 통해서 이제 이스라엘과 남은자들이 돌아 오리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미가서의 내용입니다. 물론 예수의 고향이 지시되었던 의미로도 미가서가 인용되지만은 미가서의 내용이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에서 그들중에 나타나셔서 모든 거짓 선지자와 거짓 신들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이 친히 함께하는 나라를 건설하시겠다, 의로운 나라를 세우시겠다 하는 것이 미가서의 중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중에 주신 왕인데 그는 그 기원이 태초에, 상고에 있는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그가 오심을 통해서 이제 그는 평강의 왕으로 하나님이 친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뿐만 아니라 그의 오심에서 모든 거짓 선지자와 거짓신의 세력은 끝난다는 것이 미가서의 흐름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들이 이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을 이해를 해야 될것입니다. 왜냐하면은 구약 본문을 신약성경에서 인용할 때에는 어느 한 절을 인용했을 때에 그냥 한절을 독립적으로 인용한 것 보다는 그 문맥을 따라서 인용하는 것이 많고 어느 한 문단의 중요한 사상을 인용하면은 그 사상에 따르는 문단의 전체의 사상에 따라서 해석해야 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예수의 고향에 대해서도 여기 예언은 되어있지만은 그가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이라는 왕은 다른 왕이 아니라 이제는 모든 거짓 신들을 끊어 버리고 모든 거짓 선지자들을 끊어버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배우며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참 평강의 왕국을 이루시는 그런 왕으로 오시겠다 하는것이 이 미가서에서 약속하신 그런 언약의 왕이었습니다. 이 마태복음 전체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도 그런것입니다. 곧 예수를 아는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예수의 음성을 듣는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5, 6, 7장에서도 잘 말씀되어 있습니다. 이제 예수의 말씀을 듣는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예수를 경배하는데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이제 예수님은 친히 자기 백성중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이 참 평강의 왕국을 이루는 것이라고 마태복음 전체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하였으니 이 목자는 그들중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중의 목자가 되는 것이어서 이제 유대 땅 베들레헴은 작은 고을이 아니라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는 이처럼 문맥을 인용할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한 절을 인용했을 때도 차이점을 가져오는데 미가서에서는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 가장 작을찌라도 가장 작을 찌라도 비록 작지만은 너희 중에서 한 목자가 나리라 그렇게 되어 있고 여기 마태복음에서는 너는 유대 고을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이렇게 변형시켜서 인용하고 있습니다. 구약 본문은 작을찌라도, 작다는 데에 강조점을 두고 있고 여기 신약에서는 너는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이제는 이전 시대는 지나갔도다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왜냐하면은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변형시켜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보수파가 가지고 있었던 소위 영감개념, 일점 일획 어김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 개념을 가지고 이 본문을 보면은 구약 구절과 그것을 인용하고 있는 신약구절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어서 참으로 해석하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감되었다 하는 말은 일점 일획 어김없다 하는 형식 논리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그것이 그리스도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신령한 말씀이요 신령하게 영감된 것입니다. 거기서 신령하다는 말은 무슨 정신적이다 그런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으로서의 영감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는 이처럼 변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셨는데 그는 그의 기원이 태초에, 상고에 있는 하나님이시고 그가 임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모든 어두운 것, 거짓신과 거짓 선지자들은 끊어지고 그가 친히 통치하시는 평황의 왕국이 건설됩니다. 그는 이처럼 높으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높으신 왕이기 때문에 만민이 복종하고 경배하는 그런 왕이기 때문에 이제 유대 땅 베들레헴은 결코 이제는 작은 고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은 예수의 출생에서 베들레헴은 이제는 이스라엘 중에 나신 하나님의 아들 왕의 그런 출생지로서 높아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베들레헴의 출생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중심이 아니라 물론 다윗도 베들레헴 출생이지요. 그러나 예루살렘이 통치하는 시대가 아니라 이제는 새롭게 베들레헴에서 출생한 다윗의 후손 왕, 이 예수의 출생을 통해서 이제는 유대 땅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가장 큰 임금의 수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마태복음을 보아서는 베들레헴은 결코 수도가 되도록 되어 있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으셨는데도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장소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수도로 두는 다윗 왕국이 아니라 이 베들레헴으로부터 이제는 예루살렘을 넘어선 우주적인 왕국을 세우는 새로운 임금이 출생하였다는 의미에서 이제 베들레헴은 옛날의 단순한 다윗의 고향이 아니라 그 후손 왕의 고향으로서 구원역사에서 새로운 지위를 차지하고 높아지게 된것입니다. 이처럼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신 예수의 출생에서 구약에서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신 다윗, 그리고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취임하는 그런 왕국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출생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영광의 자리에 취임하신 우주적인 나라를 건설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 오셨다고 그렇게 마태복음에서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는가?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 이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이 나심을 전했을 때에 이 소식을 들은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어디서 나겠는가 해서 성경을 인용해서 그의 출생지는 알았어도 그들은 그를 경배하려고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닙니다. 물론 왜 그들이 그를 경배하지 아니했는지 하는 문제는 이제 처음에는 잘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나중에는 점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저주받은 죄인으로 그처럼 정죄했지만은 처음부터 그들의 배교는 이렇게 기록된 방식으로 확정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나타나 있지 않았지만은 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하는 이런 마태의 기록을 통해서 그들의 배교를 이미 확정지어 놓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베들레헴에서 출생해서 예루살렘에 보좌를 두었던 다윗 왕국, 그 다윗 왕국은 끝나고 베들레헴에서 출생해서 친히 그들중에 계셔서 권세를 행하시고 친히 자기를 증거하시고 죽음을 통해서 영원히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 이분을 중심한 우주적인 나라를 세우신 분으로 마태복음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 임금이라고 그처럼 마태복음 2장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왜 소동했습니까? 그들은 분명히 언약백성이어서 그들의 구주가 어디서 날 것인지 하는 그런 약속을 가지고 있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가이사외에는 우리에게는 왕이 없나이다 하는 그런 고백들을 통해서 그들은 세상 권세를 의지했고 세상 권세아래에서 평화를 느꼈습니다. 그들이 민족적인 자존심을 통해서는 이방의 권세에서 해방되기를 원했지만은 이방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도 참으로 새로운 구원의 주가 무엇인가 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은 온전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것처럼 마태복음은 말씀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가이사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하는것이 곧 그들의 공적인 고백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약속의 구주가 오셨다는 구원의 큰 기쁜 소식을 이방인으로부터 듣고도 그들은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분의 오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증거를 듣고도 그들은 소동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분께서 친히 자기를 여러 모양으로 증거해서 그들중에 생명의 하나님으로 권능을 나타내시고 그들중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자기 자신을 증거하셨어도 그들은 그의 가르침이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더욱 소동했고 나중에는 예루살렘에 모여서 가이사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이런 고백을 통해서 그들의 생명의 왕을 거절하고 세상의 권세에 의지해서 그들은 영원히 죄의 권세로 팔렸습니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은 그분을 경배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찾아와서 예루살렘에 와서 물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증거를 통해서 구약성경의 증거를 따라 베들레헴이라는 곳의 인도를 받아 갔습니다. 그들이 성경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신다는 사실을 증거했어도 어느 누구도 동방의 박사들과 함께 가서 경배하도록 따라간 사람이 없었고 임금은 말하기를 가서 찾으면 내게 고하면은 나도 가서 경배하리라 말은 했어도 이 뒤의 본문을 보면은 찾으면은 그를 죽이려는 계획이었지 그를 경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든 이 본문에서는 동방의 박사들이 이 별의 인도를 받았고 동방의 박사들과 가는 사람은 예루살렘의 사람들중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이 예루살렘에 갔을 때에는 상당히 낙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은 온 예루살렘이 그들의 증거를 듣고 놀랬습니다. 전혀 생소한 소식을 듣는 것처럼 놀랬고 부랴 부랴 성경을 찾아와서 예수께서 어느 곳에서 나겠는가 장소는 알았어도 실제로 그것을 믿고 경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책을 지시해서 어디에서 나겠다는 것은 지시했어도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그들을 인도해서 왕을 경배하도록 인도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왕의 말을 듣고 그 왕의 말은 간교한 계획의 말이었습니다. 찾으면 내게도 말하라 나도 가서 경배하리라 하는 것은 그를 죽이고자 하는 말이었고 그들이 왕을 떠났을 때에 드디어 별이 그들을 앞서 인도했고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섰기 때문에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다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이런 별의 인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점성술도 이용하시는가? 점성술하는 것은 우리들은 그냥 전부 점치는 것, 그런식으로 사람의 운명을 알아 맞추는 것, 그런식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성술도 이용하시는까?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이방 백성들은 그냥 우상의 백성으로 그냥 전락된 것이 아니라 모세율법을 따라서 언약밖에 있는 백성이라고 여러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모세 율법시대부터 하나님은 친히 그들중에 계셨는데 가리운 영광, 빽빽한 구름 가운데 계셨고 원수된 가운데 계셨고 이 간격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도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온 세상에 임하여 계셨을 때에 가나안 땅을 성소로 삼으셨고 예루살렘을 성소로 삼으시고 그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성전을 성소 삼으시고 그중의 지성소를 자기 보좌로 삼으셔서 함께 계셨을 때에 지성소는 캄캄한 어둠이었습니다. 아무도 그 가운데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휘장밖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곱등잔으로 켜진 등불이 있어서 거기서 하나님앞에 향을 사르고 하나님의 상에서 떡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휘장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리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에서는 제사장이 봉사하는 자리요 일반 레위지파는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휘장밖에 있어야 되고 성막 뜰에 있어야 되고 성소안으로 들어 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까지라도 성소의 뜰로 무시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솔로몬 성전은 여인들의 뜰도 있고 이방인의 뜰도 있고 점점 확장되어 있지만은 그러나 거기에 많은 간격들이 있어서 누구도 그 간격을 넘어서서 앞서 들어가면은 그들은 죽임을 당해야 되었습니다. 이런 여러 원수된 간격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간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하나님의 제사장 백성으로 구별했지만은 이방 백성들은 그 밖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냥 이방 백성은 저주받는다 그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들의 대표 민족으로 뽑힘을 당해서 그들은 모세율법 밖에 있는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하나님의 성소를 봉사함을 통해서 다른 차자들은 이제는 성소 밖에 있는 것처럼 그런 관계가 민족적으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그들중에 있는 계시의 빛이 있지만은 더욱 진전된 방식으로는 유대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제사장 민족, 선지자 민족으로 그렇게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동방박사들이 보고 찾아온 별은 그냥 단순히 소위 점성술에 의지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민수기 24장을 보면은 나타나 있습니다. 민수기 24장 17절을 보면은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렇게 민수기 24장 17절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점점 진행되었을 때에 발람을 통해서 예언된 것입니다.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는 사실을 듣고 놀랬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롯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들로 롯의 백성들과 전쟁하지 말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은 롯도 아브라함의 계통이어서 하나님께서 후손에게 그 기업을 주었끼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지나간다 할찌라도 길을 지나갈 때도 샘물을 마실찌라도 다 통행세를 낼 것이고 물값을 낼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오는 큰 소식을 듣고 모압왕이 놀랬습니다. 놀래서 그들중에 있는 유명한 선지자를 불렀는데 그가 발람이었습니다.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면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주저하게 될것이고 그러면은 그들이 이기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처럼 발람을 불러서 저주했던 발락, 바로 이 모압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큰 대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처음 시내산에 이르기 전에 아말렉과 전쟁했지만은 시내산에서 출발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전에 가장 큰 적은 이 모압 백성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이 모압 백성들은 그냥 칼의 권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를 불러서 종교적인 저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백성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저주가 통하지를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은 발람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려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앞에 예물을 드리고 그리고 눈을 감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에 하나님은 이 악한 선지자, 탐심을 품고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고 고용된 이 선지자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중에 함께 계시니 이스라엘 진 이편을 보아도 저편을 보아도 끝을 보아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영광스러운 거처여서 저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드렸던 민수기 24장 17절의 예언들이었습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와서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들을 저주하는 모압 백성을 진멸하는 한 임금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나오는데 이때도 아니라고 그리고 먼 훗날의 일이라고 그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방에 살고 있는 선지자의 눈을 열어서 어느 누구도 저주할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광을 말씀했는데 하나님이 친히 그들중에 함께하시는데 어느날 한 임금이 그들중에 나실 것입니다. 그는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다 쳐서 멸망시키리라고 그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민수기에 예언되어 있어도 그것은 이방선지자가 예언했던 그런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중에 자기 선지자를 일으키는 것인지 우리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인중에 자기 선지자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또 이방에 가서 증거하도록 자기 선지자를 이방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나 선지자도 이방땅에 보내심을 받은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 사실을 이해하셔야 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셨어도 이방인은 다 지옥가는 어두움으로 버림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민족으로 부르셔서 그들중에 함께 계시고 구원역사를 진행시키시며 이스라엘 중에 계신 하나님을 이방인이 바라보고 경배를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전에 모압백성과 자기 백성이 좋아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악한 선지자의 눈을 열으셔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약속, 그들을 저주하는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어두움의 권세를 심판하시는 한 홀, 한 별을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이 약속을 동방의 박사들이 이해하고 붙들었다고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보니까 한 별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여기 민수기에 보면은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이 문장의 해석은 한 별이나 한 홀이나 이런것은 그냥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것 보다도 임금에 대한 그런 표상법이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임금은 임금의 권세로서 지팡이를 잡고 있는 것이고 그런 의미로 한 별, 한 홀을 같은 위치에다 쓰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마태복음에서는 실제적으로 한 별이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 그냥 쉽게 점성술을 인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을 보면은 예수님 재림하시면은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우주적인 변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께서 새 시대의 임금으로 오시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예수님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것이 전부 그냥 상징적인 표현법으로 쓸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우주적인 새로운 변혁의 징조로 오시는 것인지 우리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온전히 해석할 방법은 없습니다. 어떻든 하나님께서 이처럼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 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심판하시리라고 모압이 고용했던 발람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서 모압의 멸망을 예언했는데 그것은 거짓 종교, 거짓 신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자, 이런 문제때문에 나중에 모압과 전쟁했을 때에는 전쟁하는 사람이 여호수아가 아니라 그당시 대제사장으로 있었던 비느하스가 그 전쟁의 책임자 였습니다. 나중에 발람 선지자가 꾀를 내어서 그들로 우상의 큰 잔치를 베풀게하고 이스라엘의 유력한 자들을 초청해서 그 잔치에서 우상의 떡을 먹게 해서 하나님이 염병으로 이스라엘을 치도록 했습니다. 바로 그 염병을 그치게 했던 사람이 아론의 아들 비느하스였습니다. 그 사람이 일어나서 창으로 이방의 여인을 데리고 와서 음행하였던 사람들의 장막에 들어가서 그 남녀를 찔러 죽였을 때에 하나님의 분노가 그쳤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원수를 심판했던 비느하스에게 영원한 평화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민수기에서 비느하스에게 평화의 약속이 주어진 것입니다. 다른 통상적인 전쟁은 모세의 후계자로 세운 여호수아가 전쟁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압과 전쟁했을 때에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아니라 아론의 후계자로 세운 비느하스가 그 전쟁의 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종교적인 전쟁이요 하나님께 속한자로서 이스라엘의 전쟁이기 때문에 모압과의 전쟁은 비느하스가 선봉장이었습니다. 이처럼 여기서 한 별이 일어나리라고 했을 때 이별은 이 민수기에서 그 전쟁의 의미는 분명히 왕은 왕인데도 그 왕은 제사장 왕이어서 그 왕의 전쟁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비느하스가 그 전쟁을 주도해서 비느하스의 그 전쟁때문에 하나님의 심판, 염병이 그쳐서 하나님의 백성이 살았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처음에 말씀했던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 이 미가서에 있는 왕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우상 숭배로부터 그리고 모든 거짓 선지자로부터 거짓 종교로부터 구원하는 왕이 베들레헴에서 나신 왕이라고 미가서에서 말씀한 것처럼 민수기에서도 한 별, 한 홀은 이스라엘을 모압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왕, 모압을 심판하시는 왕, 이스라엘을 저주했던 거짓 종교를 심판하시는 왕, 참으로 왕은 왕이신데 제사장적인 왕,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왕 그런 왕으로 민수기에서 에언되어 있고 여기 마태복음에서도 말씀하시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여기 보니까 동방의 박사들, 그들은 이방의 어두움에 있었던 그런 박사들입니다. 그 박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와서 묻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그를 경배하러 왔노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증거하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중에 나신 임마누엘 하나님 예수, 그분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는데 그분의 출생에서 베들레헴에서 새로운 나라가 진행됩니다. 이 왕은 예루살렘에 보좌를 두고 우상의 권세에 매여있는 그런 이스라엘, 어두움의 권세에 매여있는 그런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는 그들중에 계시는 참되신 하나님이셔서 그들안에서 모든 어두움을 다 제거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참다운 생명의 하나님이셔서 모든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한 별이어서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는 분이시요 그는 광명한 새벽별이어서 그가 오시면은 모든 어두움의 권세는 무너질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백성중에 오신 왕은 왕이시며 참으로 제사장 왕이신데 그분안에서 이제는 옛시대는 끝났는데 어두움의 권세가 끝났고 모든 우상의 시대가 끝났고 모든 거짓 선지자들의 시대가 끝났고 이제 그분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새 시대가 왔다고 그렇게 마태복음의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집에 들어가서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길로 고국에 돌아갔다고 그처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증거를 통해서 박사들이 세명일 것이라고 보통 이해하고 있고 또 찬송가를 보면은 항상 예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굿간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태복음은 마굿간에 있는 분이 아닙니다. 마굿간에서 목자들의 경배를 받는 분이 아니라 베들레헴 집에서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고 여기 존귀한 예물을 드려서 경배를 받는 높으신 분으로 그처럼 증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마굿간에 나시면은 가슴이 찡하고 예수께서 어린아이인데 영광을 받으신다 그러면은 잘 이해하거나 그런것이 어려운 모양인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찬송가들도 그런 의미로 가사가 많이 교정되어야 할 것이어요. 여기서 예수님은 낮은 분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동하고 그를 경배하지 않았지만은 동방의 박사들은 그를 경배했는데 이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찬송가를 보면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해석합니다. 황금은 왕께 드린것이고 유향은 제사장에게 드리는 것이고 그리고 몰약은 죽은 몸에 바를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예수께서 어떤 분으로 죽을 것인가를 나타낸다 그렇게 해석할려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여기 있는 본문은 그는 경배를 받으시는 왕이시요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 말뿐 그가 어떤 일을 하시는가 하는 사역은 전혀 증거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는 경배를 받지 못했지만은 그는 이방 백성들로부터는 경배를 받으셨다 하는 의미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박사들이 세명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도 아니고 예수께서 어떤 사역을 감당하시는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가장 귀한 예물을 드렸다는 단순한 의미로 해석을 해야 될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모든 귀한것으로 경배를 받으실 분이십니다. 이방의 모든 영광이 그의 발앞에 드려져야 될 그런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으로 그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동방의 박사들은 먼 땅에서 와서 별의 인도를 받고 어린 예수께 귀한 모든 것을 드려서 그를 그들의 왕으로 이제는 모든 어두움의권세로부터 모든 귀신의 권세로 부터 모든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시는 왕이요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처럼 고백했다고 이 본문은 말슴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보다 더 밝은 빛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이방의 선지자가 증거했던 야곱의 한 별, 그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인도 받기를 원했지만은 유대인들은 그들보다 더 큰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서 그를 경배하지를 않고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중에 자기를 증거하신 예수를 끝까지 거절하고 그들은 어두움의 권세에 팔려서 그들은 영원히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천하만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을 맡기셨어도 이 약속은 천하만민을 구원하시는 약속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약속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작은 약속을 받고도 그들은 돌아왔습니다. 와서 에수를 믿었습니다. 그들이 구약의 성경,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지만은 그들중에 임하신 하나님의 아들, 야곱의 한 별로 임하신 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생명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 큰 빛가운데 있습니다. 어린아이 예수가 아닙니다. 땅에서 이런 저런 증거로 자기를 증거했던 권세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는 죽음을 맛 보셨지만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제자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신 영광스런 주님이십니다. 마태복음이 증거하고자 하는 목표는 곧 거기에 있습니다. 그냥 이 동방박사들의 행적만 보고 동방박사들의 행위를 따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는 이 보다 더 큰 빛으로 주님께서 증거하여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시고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곧 신약의 교회에 계시는 영원한 주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나셔서 친히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거기 계셨던 그분, 동방의 박사들의 경배를 받으셨던 그분은 베들레헴을 통해서 새로운 구원역사를 진행시키셔서 땅위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의 왕국을 건설하시고 우리로 그분에게 경배를 드리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제자들이 경배했던 것처럼 동방의 박사들이 와서 어린아기 예수에게 경배했던 것처럼 부활하신 주 예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경배하기를 이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나 여러분이 구약 보다는 더 큰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백성들이 증거를 받고 있어도 그들의 증거를 통해서 그들 자신만 경배할 뿐 아니라 그리고 이방인들을 경배하도록 인도함을 받을 위치에 있는 백성들이 배나 지옥자식이 되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예수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셔서 땅아 언덕아 무너져라 하는 큰 애곡이 있기 전까지는 그들은 예수를 알지 못하리라고 마태복음은 그들의 비참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보다 더 큰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이 이런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활하신 예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베들레헴의 약속의 왕으로 오셔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은 가나안 땅 예루살렘에 그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보좌우편에 계신 영광스러운 나라를 건설하신 이 왕을 경배하지 않고 이 왕께 무릎을 꿇지 않고 세상의 권세를 의지해서 사람앞에서 여러분이 예수의 이름을 거절할 것 같으면은 우리가 받을 저주는 참으로 비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땅에 세운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되었지만은 주님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그 영광의 나라에서 우리는 영원히 배제될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이 바로 모압 백성들에게 연합해서 염병이 걸려서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한 홀, 이제는 다윗의 새 별, 영광스런 주님께서 오셔서 이제는 어두움의 모든 권세를 다 제거해 버리시고 우리와 친히 함께 계시는 영광스런 빛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데도 이 주님을 우리가 영접하지를 못하고 지금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런것에 매여서 세상을 추구하고 그렇게 해서 어두움을 따를 것 같으면은 광명한 새벽별로 주님 재림하시면은 우리는 영원한 어두움에 내어 쫓겨나게 될것이고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것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경배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참으로 다윗의 별이시며 광명한 새벽별이십니다. 그분은 오셔서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열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부활하신 분이신데 그분이 재림하시면은 이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그를 대적하는 만민들을 심판해 버리시고 친히 함께하시는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실 것입니다. 그를 거역하는 모든 사람들은 어두움 가운데 내어쫓겨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이름을 시인하고 우리의 생명을 다 드려서 죽은자로 죽은자를 장사하게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교회를 봉사하는 일에 우리의 모든 심혈을 다 기울여서 세상에서는 멸시를 받을지라도 주님을 섬기는 가난한 자들, 주님을 섬기는 작은자들, 주님을 섬기는 배고픈 자들을 주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주의 교회를 섬길 것 같으면은 참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서 주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은 존귀한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거절하고 말로는 성경을 알면서도 행위로는 경배하지 아니하고 말로는 경배하면서도 경배하는 모든 사람의 장애물이 될 것 같으면은 배나 지옥자식을 만들것 같으면은 받을 벌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이스라엘 심판을 통해서 명심해야 될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받은 심판보다 더 큰 심판, 영원한 심판을 교회가 받게 될것입니다. 우리 모두다 이 사실을 깊이 명심하시고 다윗의 광명한 새벽별로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 친히 우리와 함께하셔서 모든 어두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이분을 믿는 믿음안에서 이제는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의 왕국을 봉사하는 신실한 백성들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주께서 친히 세상에 임하셨어도 주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셔서 이제 예수께서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 나심으로 이제는 예루살렘에 세운 왕국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에 세우신 영원한 생명의 왕으로 오셔서 이제는 우리로 어두움에 잡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 가운데 살 수 있도록 우리의 광명한 새벽별로 임하셨음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주님께서 친히 죽음을 맛보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이제 영광의 아들이 되셨사오매 거룩하신 아버지여 이제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우리들은 주께 속한 백성이 되어서 이제는 어두움이 지배할 수 없는 생명의 왕국의 백성이 된 줄로 믿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제는 우리로 세상을 봉사하지 않고 주님만 봉사할 수 있도록 생명의 주님이 우리의 왕이 되셨사오매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삶에서 우리의 전 생명을 하나님께 봉사하게 해 주시옵고 우리의 생명도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아니하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얻고자 하는자는 잃으리라고 말씀하셨사오매 거룩하신 아버지여, 이 생명의 주님을 봉사함으로 땅에서 우리가 주님과 함께 멸시를 받을찌라도 주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영원한 생명을 상속할 수 있도록 주께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동방의 박사들의 경배를 받은 것처럼 이제는 천하만민이 주께 인도를 받아서 주를 겅배하는 새 백성으로 교회를 지으셨으니 참으로 감사를 드리며 우리들도 어두움으로부터 인도하셔서 이제는 주 예수를 섬길 수 있는 새 백성이 되게 하셨사오매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은 옛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소유하고도 경배하지 않고 어두움에 속한 모압백성의 잔치의 상에 앉은 그런 우상 섬기는 백성이 되지말게 해 주시옵고 참으로 주의 상에 앉은 것을 우리의 생명의 기쁨으로 알고 세상의 왕들의 상으로부터는 배제를 받을지라도 영원한 왕이신 주의 상에 앉아서 먹고 마시며 주님과 함께 생명의 교제를 누리며 주님께서 사랑해서 주의 상에 부른 귀한 백성들을 위해서 주께서 몸을 주신 생명의 봉사를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먹고 마시는 모든 것으로 주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새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저희들을 끝까지 붙들어 주시며 우리의 이 사랑의 봉사를 통해서 만민들이 어두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생명의 주께로 돌아서서 이제는 우상을 섬기지 않고 생명의 주님을 봉사하는 참다운 왕국을 건설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께서 영광의 왕으로 광명한 새벽별로 재림하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면은 우리가 주의 영광중에 함께 영광을 뵙겠사옵고 주의 영광의 보좌에 함께 앉겠습니다. 세상에서는 버림을 당할찌라도 주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봉사를 통해서 주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참여하는 귀한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날마다 주의 영광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주의 영광을 봉사하는 믿음있는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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