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구속사

임마누엘

찬미예수님 2021. 6. 12. 06:25

임마누엘

마태복음 1:18-25, 이사야712

 

* 설교 개요

1. 하나님이 친히 보이신 징조

2. 예수 = 임마누엘

3.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

 

마태복음의 기자는 구약성경을 여러번 인용합니다. 그런데 인용할 때에는 특별한 형식이 있는데 마태복음 122절에 있는 것처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하심이니하는 것이 마태복음에서 구약성경을 인용한 형식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마태복음은 선지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분으로 예수님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구약의 성취여도 누가복음에서는 누가복음의 제일 처음에 성전에서 봉사하는 세례요한의 집안이 나오고 바로 그 세례요한의 증거를 따라서 예수님께서 땅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그가 이루신 일도 부활하신 뒤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그리고 제자들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 그렇게 누가복음은 처음과 끝이 성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도 이제 성령이 강림하셔서 교회가 신령한 성전이 되고 먼저는 유대인에게 이 복음이 전파되고 나중에 땅끝까지 전파되어서 바울사도께서 왕의 궁전에서 복음을 전파했는데 아무도 막는자가 없었다 그가 로마 제국의 중심부까지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막는 자가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심으로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구원의 일이 이제 교회안에서 땅끝까지 확장된다는 그런 연속선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연속은 연속이어도 단순한 시간적인 발전이 아니라 예수 오심에서 새로운 단계로 진행된 것이어서 모세제도를 통해서는 의롭다함을 얻지 못했어도 이 사람을 믿어서는 온전한 의를 얻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연속시키면서 동시에 불연속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은 그런 시간에 대한 역사적인 발전 그런 문제보다도 구약에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 예수안에서 이루어졌는데 그 이루어진 것은 그냥 시간이 쭈욱 진행되는 시간 발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했던 약속이 예수에게서 이제 마지막 시대로 이루어졌고 그들이 구약에서 하나님을 뵈었던 것이 이제 예수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보고 그를 하나님으로 경배하고 곧 그것이 그들의 구원이라고 그런 관점에서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연속적인 문제보다는 오히려 구약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에 대해서 모든 것이 이제 그들이 예수를 경배하고 그를 따르는 것 가운데서 성취되었다고 그렇게 말씀하심으로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치시키는 것으로 신약의 교회를 세우시는 분으로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 구약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뵈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땅에서 모든 권세를 행하시는 예수님을 뵙고 경배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그렇게 마태복음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이러 이러한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는 그런 구절들이 다른 복음서보다는 더 훨씬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의 여기 있는 것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령으로 잉태한 아들을 낳을 것이고 이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칭하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인데 이것은 선지자들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임마누엘 설명이 어렵기 때문에 오늘은 구약성경과 신약 성경을 대비시키면서 그것이 어떻게 예수안에서 성취되었는지 증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방금 읽기는 이사야 7장만을 읽었습니다만은 전체적으로는 실은 7장부터 12장까지 읽으셔야 옳습니다. 이사야 6장에서 보면은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이제 이사야가 하늘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전을 보았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 중의 특별히 성전을 보는 선지자들은 제사장 가문에서 나온 선지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제사장가문은 성소를 봉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사야, 또 에스겔, 그런 사람들은 제사장가문에서 나온 사람들이고 또 서기관인 에스라 같은 사람도 제사장 가문이고 그렇게 해서 그런 사람들은 성소와 관계되고 특별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그 영광의 성소중에서 보았다 그들의 사역은 그렇게 특징지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도 제사장가문인데 웃시야 왕이 죽던해에 영광스런 하늘의 성소, 높이들린 보좌를 보았습니다. 거기서는 천사들도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고 그리고 연기가 자욱했습니다. 이사야가 제사장가문인데도 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 그 영광의 보좌위에 앉아계신 그 영광을 가득채우는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그 하나님을 보고 자기가 얼마만큼 죄가 많은 백성중에 있는 백성인가 자기가 망하게 되었도다 그렇게 부르짖는 내용이 이사야 6장에 나오고 있지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부르셔서 자기 백성에게 보냈는데 보내는 것이 그들의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눈을 멀게하고 귀를 막히게해서 선지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언제까지 그러는가? 이 성읍이 황폐하게 파멸되도록까지 그렇게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그럴찌라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거룩한 씨를 남겨서 그 그루터기가 남은자가 거룩한 씨라, 그렇게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과 함께 남은 백성들을 예비할 것을 여기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가 보았을 대 하늘에 계신 거룩한 하나님, 그 영광스러운 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을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앞에 많은 재물을 드려도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같은 백성이고 멸망할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도 듣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런데도 웃시야 임금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큰 부흥을 가져와서 이제 북 이스라엘도 이전에 잃어버렸던 그 땅들을 거의다 되찾고 아마 솔로몬 이래로 그렇게 국가가 번성한 때가 없었습니다. 남 유다가 그렇게 되었었지요.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생각하기를 그들이 하나님앞에 아주 잘해서 복을 받은것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했지요. 이제 그렇게 해서 그들이 망하고 이제 언제까지 망하는가? 그땅이 다 황폐하도록 망하고 그러나 남은 그루터기를 세우셔서 그땅을 회복시킬것을 약속하고 있는데 이제 7장이하에서는 왜 그러면 그 나라가 망하는가?하는 구체적인 이유들을 더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남은자 사상은 구속사적 의미를 함축할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구원이라는 신앙으로 확립되어 나타납니다. 히브리어 아하리트는 장차 미래를 위해서 남겨둔 자를 뜻합니다. 이말은 곧 구속사의 여러단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이 행하여질때까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의 신실하심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중 택하시기로 작정하신 적은 수의 택한 백성, 즉 남은 자로 하여금 새로운 단계의 구속사를 전개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계속 전개시키기 위하여 보존된 사람들이 곧 남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7장이하에서는 북 이스라엘과 유다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멸망하리라 하는 이야기를 이제 12장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남 유다, 북 이스라엘과 앗수르, 그런 권세의 나라들이 망하고 그리고 세상 권세는 망하지만은 하나님께서 친히 임마누엘로 그들중에 임하셔서 그 임마누엘로 말미암아 우주적인 평화를 이루시고 이제는 무너지지 아니하는 다윗 왕국을 건설하시리라고 그렇게 말씀함으로 12장이 끝나고 있고 그리고 13장 이하에서 이제 35장까지는 거의 그것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만은 그 앞부분은 세상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마 25장까지 그렇게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시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35장까지 말하고 있고 그 다음에 36장부터 39장까지는 직접적으로 남 유다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했을 때 그것이 북과 남을 연합해서 설명할 때가 있고 어느때는 둘로 나누어서 설명할 때가 있고 그렇습니다. 36장에서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히스기야 임금 이야기가 있어요. 아마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사람이 죽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바르라해서 나았지요. 왜냐하면 그 병낫는 이야기는 교인들이 잘 알거든요. 그렇게 해서 죽을 임금이 나았습니다. 그때 그 임금을 위문하기 위해서 먼 바벨론 땅에서 특별사절들을 보냈는데 그때 히스기야가 기분이 좋아서 왕궁의 창고를 전부 열어 보이면서 내가 얼만큼 힘이 센가 보아라. 봐라 앗수르가 망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하룻저녁에 망하게 했거든요. 그랬는데도 자기 힘이 커서 망한 것처럼 그렇게 바벨론 임금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즉각 보내어서 하신 말씀이 당신이 바벨론 사자한테 창고의 모든 것을 열어보였으니 이 모든 영광이 바벨론으로 옮겨가리라. 망하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나서 우리가 아는대로 40장이하부터는 회복에 대한 큰 노래들이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 이것이 이사야서 구조예요. 7장이하에서는 왜 그러면 이스라엘이 망하고 또 그와 더불어서 남쪽 유다도 망하고 앗수르도 망할 것인가? 또 다메섹도 망할 것인가? 그 문제를 지금 말하고 있는 시작의 설명이 7장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기사를 말하고 있느냐하면은 이제 북과 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나뉘어져있었는데 북이스라엘이 그당시에 아람군대와 연합하여 가지고 남쪽 유다를 공격하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남쪽 유다는 어떻게 했느냐하면은 그 당시 세계적으로 번성하고 있는 국가가 앗수르 군대였어요.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습니다. 밑에가 남쪽 유다가 있고 그 위가 북쪽 이스라엘이지요. 그 뒤에가 아람 군대가 있습니다. 다메섹의 수도가. 그리고 그 뒤에 앗수르 군대가 있어요. 그러니까 지가 국가 가까이에 있는 이스라엘이 그 강력한 군대, 아람 군대와 연합하여 자기를 칠려고 그러니까 남쪽 유다는 그들 배후에 있는 앗수르 군대, 당시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그런 신흥 강대국이었습니다. 그 국가와 연합을 해 가지고 이제 자기들을 치려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대를 칠 계획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지금 7장에서 설명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하스 임금이 세탁자의 밭 아마 여기는 이스라엘을 방어하는 전진기지쯤 되겠지요. 그곳으로 선지자와 그 아들을 보냈습니다. 이 아들 스알야숩은 포로된 자가 속히 돌아오리라 하는 그런 이름인데 그 아들과 함께 가서 임금을 만나 설명을 잘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네가 보기에 북쪽 군대들이 굉장히 강력해 보이는가? 그러나 그 두왕은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 하여 연기는 팔팔나도 타는 불은 없다 그러니까 염려하지를 말아라 결단코 너희들이 무너질 것이 아니다. 만일에 믿지 아니하면은 평안치 못할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했어요. 그러면서 이 임금에게 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앞에 한 징조를 구해라 높은데서든지 깊은데서든지 아무데서나 하나님의 징조를 구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남쪽 유다 임금 아하스이지요 그 임금이 하는말이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하고 선지자한테 징조를 구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맥을 보면은 이 임금은 어떤 임금이냐면은 실은 자기 할아버지때에 큰 국가를 이루었거든요. 아주 번성했어요. 그런데 지금 국가적인 위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위 유능한 임금이어서 저 멀리있는 강력한 군대와 연합을 해 가지고 자기를 치는, 가까이 있는 적군들을 이길 비책을 다 세웠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와서 하는 말이 야, 그 두임금은 별 볼일이 아니다. 네가 세상권세를 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해라 네가 세상권세를 의지하고 만일에 나를 의지하지 아니할것 같으면은 이 말을 믿지 아니할 것 같으면은 네가 평안치 못할것이다. 내가 너를 도와 줄것이니까 징조를 구해라 어떤 곳에든지 징조를 구해라 그는 높은 곳을 총괄하시는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니까 이 임금이 하는 말이 내가 어찌 하나님을 괴롭게 하리요. 내가 하나님을 시험치 않겠나이다 하고 구하지를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미 대책을 다 세워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바라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안 구하렵니다. 앗수르 군대와 이미 동맹을 맺었으니까 하나님이 안 도와주어도 됩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 안되겠지요. 그러니까 성경을 인용해서 내가 어찌 하나님을 시험하리요 구하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처럼 하나님앞에서 깜짝 놀랄만한 징조를 구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은 출애굽부터 자기 백성과 함께 하셨을 때 항상 징조와 이적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그들의 구원이어서 곧 그들의 영광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는 어떤 의미로 하나님의 징조의 역사여서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을 위해서 원수와 싸우셨고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국가가 풍전등화와 같은 이런 위그를 당하여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시리라고 내가 너를 어떻게 도우면 좋겠는가? 구해라. 너희 구하는대로 도와주마. 그런 말씀을 하는데도 그래도 그 임금이 구하지를 않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의 집이여 왜 너희들이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여호와 하나님을 괴롭게 하느냐 그렇게 말하면서 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리고 그 아이가 커서 철들기 전에 그땅에 큰 번성이 오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버터와 꿀을 먹으리라 이것을 그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그렇게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이제 가나안 땅에 정착했기 때문에 아주 큰 평화를 누리고 있는데 다시 다 망해가지고 양치기나 해서 버터나 꿀만 먹을 것 같으면은 얼마나 빈한한 식사냐? 나중에 보니까 세례요한도 광야에서 거하면서 버터와 꿀을 먹었으니 이것은 아주 검소한 식품이고 국가가 망했을 때 먹는 것이다 그렇게 설명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22절을 보면은 그 내는 젖이 많으므로 버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땅 가운데 남아 있는 자는 버터와 꿀을 먹으리라하는 것은 축복의 약속이지 그 빈곤하게 되리라 그런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도 젖과 굴이 흐르리라 하는 것이 가나안 땅에 있는 약속이기 때문에 이것은 임마누엘이라 젊은 여자(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 아들이 커서 철들기 전에 그 땅에 큰 평화가 있고 그리고 그 나라는 망하겠지만은 남은 백성들은 그 땅에서 큰 평화를 누리리라 이런 말로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단지 이제 어려운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면은 17절을 보면은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 네 아비 집에 임하게 하리니 곧 앗수르 왕의 오는 날이니라 즉 앗수르 왕이 와서 에브라힘을 멸망하게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때를 어느때로 말하느냐하면은 16절을 보면은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줄 알기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 이 아이가 철 들기 전에 백성은 번성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두 강대국들의 적들은 망하게 될것이라 남 유다는 번성하게 되고 북쪽의 두 임금들은 망하게 되고 그리고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난 이래로부터 이제까지 당했던 모든 일들을 그 나라가 당하리라 왜? 앗수르 군대가 올것이니까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것은 분명히 가까운 때를 예언하고 있고 그 앞에 보면은 65년이내에 에브라임이 망하리라(79)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게 되어 있을 때 이런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아들이 아닌것은 지난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확정적으로 정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한가지 가능성은 이 아하스 임금의 아들로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하나님의 복은 자손들이 번성하는 것이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가족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과 그 구원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먼저 주셨는데 이 임금은 그런 표적을 구하지를 않아요. 자기는 망하리라 생각하고 있고 강력한 군대를 지금 원조를 청하고 있어요. 그렇게 했을 때 망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이 임금의 왕비중의 젊은 여자가 한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그 해석 방법상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또 가까운 근일내에 이 아이가 낳게 될것이고 이 아이가 철들기전에 남은 자들이 번성을 누리리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가능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임금이 하나님앞에 표적을 구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표적을 구하지 않는자에게 표적을 줄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이신 표적이기 때문에 준다고 해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단지 이런것은 어떻게 해석을 확정해야 될지 그것은 알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전반적으로 예언적인 구절로 해석을 해서 그냥 그당시 왕은 하나님의 표적을 구하지 않았지만은 하나님이 친히 보이신 표적으로 말씀하셔서 이것을 아하스 궁전과는 상관이 없이 그냥 미래의 예언으로만 해석을 해 버릴 것인지? 그는 표적을 구하지 아니했어도 하나님은 그 왕궁에 표적을 행하셔서 그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완결시키는 분으로 말씀하고 있는지 그 문제가 해석하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어떻든 이 임금은 하나님앞에 표적을 구하지를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표적의 하나님이셔서 출애굽부터 하나님의 구원은 다 구원의 표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중에 함께 계시며 원수와 싸우신다는 것이 곧 그들에게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출애굽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고 원수와 싸우셨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속해서 싸우셔서 그것이 그들의 구원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대리왕들을 통해 싸우셨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리왕으로 세우셨고 그래도 하나님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다윗왕도 이렇게 싸웠습니다. 그가 적군중에 싸웠을 때, 달려갔을 때까지라도 그는 자기 칼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력한 적군과 싸웠던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의 모든 구원은 곧 하나님의 구원이었고 자기 힘의 권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도 말의 힘줄을 다 끊어서 자기 힘의 권세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제 다윗의 왕국이 멸망당할 그런 무렵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표적을 구하라고 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표적이었습니다. 이전에 이 하나님께서 돌아가는 해를 멈추게하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백성들을 진멸하도록까지 그 해를 멈추지 않도록 하신 그런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 권세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 권세를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아하스 임금에게 친히 징조를 보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상 권세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지만은 하나님은 그들중에 영원히 함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막중에 그들과 함께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임마누엘로 친히 그 아들을 출생시키셔서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리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9장에서 잘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보면은 우리가 마태복음에 있는 것처럼 스불론 땅과 납달리 당에 구원의 큰 빛이 비췬다고 9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큰 구원은 무엇때문에 오는 것인가? 6절에 보면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그렇게 다윗의 후손으로 한 왕을 보내시는데 그 왕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시며 평강의 왕이시며 그는 평강과 의로 온 세계를 지배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결론이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렇게 이사야 9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니까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그분을 보내시는데 그분의 오심이 세상의 구원이며 그분의 오심안에서 다윗의 왕국은 이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완결되고 이것은 자기 백성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11장을 보시면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니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때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11:1-5) 그리고 9절끝에서부터 보면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10)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12장에 보면은 구원의 찬양이 거기 나타나 있지요. 이처럼 자기 백성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세상의 권세를 의뢰했습니다. 북 이스라엘만 세상의 권세를 의뢰한 것이 아닙니다. 북 이스라엘은 세상 권세를 의뢰하고 자기 뒤에 있는 아람 군대를 의뢰해서 하나님의 성 거룩한 예루살렘을 치려고 그처럼 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집을 떠난 이래로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길을 따르지 않고 일반인을 세워서 제사장을 삼고 남 유다와 비슷하게 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대적하는 그런 원수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남 유다를 떠난 뒤로는 사마리아성에 바알의 신전을 세워서 남쪽 유다가 다윗의 후손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처럼 북쪽 이스라엘은 그 수도 사마리아에 바알의신전을 세워서 완전히 바알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세를 의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여러번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가장 큰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돌이키셨어도 그들은 세상과 연합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를 아니했습니다.

여기 이제 남 유다가 망하리라고 6장에서 말씀하셨는데 왜 그들이 망하는가? 그들의 망하는 것은 북 이스라엘과 그 위의 아람 군대와 앗수르 군대가 망하는데 똑같은 원리인데 그들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세상을 의뢰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역사적인 장면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든지 깊은 곳에든지 그는 참으로 만군의 하나님이셔서 세상이 다 그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의 태양을 멈추게하시고 권세를 행하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권세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리라 그랬는데도 이 임금은 하나님의 권세를 의뢰하지 않고 세상의 권세를 의뢰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망시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만 뒤에 있는 아람군대를 의지했기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세상 권세인 앗수르도 망하고 앗수르를 의뢰한 남 유다도 망하리라. 단지 하나님께서 남은 그루터기를 세우시고 그들을 위해서 구원을 베푸실 것인데 이 구원은 무엇인가? 자기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했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셔서 친히 징조를 보이셨는데 친히 구원의 하나님으로 그들중에 임하셨는데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한 아들을 보내시는데 이는 임마누엘 그들중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이름하시고 이분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데 그의 기원은 상고에 있고 그는 하나님의신으로 충만하고 그는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그리고 만민을 통치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여기 이사야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주된 주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배교에도 불구하고 친히 자기 열심, 자기 언약의 진실함, 자기의 사랑을 통해서 친히 하나님이 사람으로 그들중에 임하실 것입니다. 그는 다윗의 후손이신데 그는 자기 백성중예 계신 영원한 하나님이시요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가 친히 임하셔서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앞에 배교하는 백성이 아니라 공평과 의로 그들을 다스리고 천하만민이 그에게 구원의 소망을 둘 수 있도록 가난하고 빈핍한 자들 남은자들을 위해서 구원을 베풀것이라고 그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이제 여기 이루어졌다고 신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입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하셨는데 이름을 예수라 그렇게 붙일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신데 이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옛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데 그분이 곧 임마누엘 세상에 임하신 하나님이라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예수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친히 임하신 그분,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분을 믿고 그분을 경배하면은 영원한 구원을 받고 만일에 그분을 의뢰하지 못할 것 같으면은 영원한 멸망을 받으리라 천하만민을 그의 구원으로 부르심 분은 다윗의 후손 왕,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그것이 마태복음에서 증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리고 구약을 성취하게 한 것인데 임마누엘이라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함께 했던 하나님께서 친히 배교하는 백성과 한 몸을 입으시고 자기 백성중에 거하러 오셨습니다. 그는 참으로 천하만민이 구원을 받을 수 잇는 구원의 왕이시요 가난하고 버림 받은 자들에게 자기 구원을 베푸시는 왕입니다. 세상의 권세를 의뢰하는 자들, 세상을 의뢰하는 자들은 심판해도 하나님은 자기를 의뢰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이 되게 하시려고 자기 열심, 자기 사랑, 자기 진실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친히 사람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니까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계시다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번역은 구약에서는 번역되었으니 그런 말로는 행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냥 설명하는 구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다 그런 말씀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보니까 번역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니라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히브리어를 쓰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번역입니다. 임마누엘 이런것은 히브리 언어이고 그리고 이 히브리어 언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것은 히브리 밖에 있는 이방인들을 위해서 번역된 것입니다. 이런 구절 때문에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위해 쓰여졌는가? 그런 해석들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언어와 함께 이방인 언어로 기록되어 있으면은 어떤 의미로는 천하만민을 위한 그런 번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 내용상 단순하게 우리가 그 중심을 잡는 방법이 되겠습니다. 만일에 이것이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런 번역이 아닐것 같으면은 이것은 세상을 위한 구원이 되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물론 이사야서에서는 그렇게 번역된 구절이 아니라 천하만민이 그에게 구원의 소망을 두리라 만민이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에로 들어 오리라. 그렇게 해서 이제 이스라엘 뿐 아니라 그를 의뢰하는 모든 가난한 백성들 남은 자들을 통한 세상의 구원, 그런 구원으로 이사야서에서는 설명을 해주고 있고 마태복음의 증거에서는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계시다 함으로 번역함으로 우리 이방인들이 바로 임마누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불러도 자주 부르는 이름때문에 그 의미를 모릅니다.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렇게 번역해 줄 뿐만 아니라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임마누엘은 구약의 약속이었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하는 것이 옛언약의 생명인데도 이를 천하만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렇게 번역해 줌으로 예수의 오심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면서도 이 구원은 천하만민을 위한 구원이요 그냥 다윗의 보좌의 구원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평화의 왕, 마태복음의 증거대로 하면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왕, 죽음의 권세를 영원히 파멸시키는 권능있는 왕, 그 구원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마태복음의 증거대로하면은 옛 언약에서 함께 계시는 하나님일 뿐 아니라 친히 그 언약의 진실하심을 따라 다윗의 후손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셨고 자기의 낮아지심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교했어도 하나님은 자기 사랑, 자기 열심, 자기 진실하심을 통해서 친히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분은 자기 백성에게 버림을 당해서 죽음을 맛 보았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가이사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세상의 권세아래에서 자기 권세를 보존했고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그리고 부활한 예수에게 나아가서 열두 제자들이 그의 발을 붙들고 경배했습니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시며 지금도 교회에 임마누엘로 함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원히 권능으로 교회에 임하십니다. 구약때 휘장으로 가리우신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 구약 때 주변국가로부터 자기 백성을 보존했던 그 하나님이 이제는 죽음의 권세를 영 단번에 정복시키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중에 함께 계십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우리와 같은 형제로 임하셨고 자기 백성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셨고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자기 백성은 그를 거절했지만은 그는 권능의 하나님이셔서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고 무너지지 아니하는 의와 평강의 왕국, 무너지지 아니하는 권세의 왕국을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의 아들 임마누엘 그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주님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도록까지 교회에 함께 계셔서 영원한 구원을 베풀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우리의 구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어서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들도 이제는 요셉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예수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영원히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는 권세있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믿고 비록 그가 세상에서는 버림을 입었어도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셔서 자기 백성의 대표로 영광의 보좌우편에 앉으셔서 영원히 함께 계심을 우리가 찬양하셔야 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세상의 권세를 자랑하고 주님을 의뢰하지를 않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권세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은 비천한 일처럼 되어있습니다. 가이사만 왕이요 영광의 보좌 우편에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왕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지금 세상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불신실함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교회에 함께 계십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영광의 몸으로 우리중에 임하셔서 이것이 새 언약의 피요 이것이 너희를 위한 양식이라고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의 교제로 우리중에 함께 하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공급하신 피, 그분이 우리에게 공급하신 몸은 죽음의 권세를 영원히 이기신 부활의 몸이어서 우리로 주님과 함께 영광의 생명을 누리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심히 연약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낙심해서는 아니됩니다. 세상의 권세아래에서 교회는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우리가 임마누엘 하나님 이분을 배반하고 만일에 아하스 임금처럼 세상 권세를 의지할 것 같으면은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영광의 나라에서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는 자들을 나도 부끄러워 하리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육체와 함께 영혼을 심판하신는 분이십니다. 만일에 이분을 거역할 것 같으면은 어두움데에 쫓겨나서 슬피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분과 함께 고난을 받고 이분의 이름으로 복음을 증거하면은 주님오시는 영광의 그날에 주님과 함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아서 그 나라를 다스리라고 분명히 마태복음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세상에서는 버림을 받았지만은 주님은 권세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영원한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이분은, 영원히 죽음을 이긴 권세있는 왕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곧 그분이십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앞에 신실하지 못하고 범죄해서 하나님은 영원히 신실하시고 자비하셔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영광의 성소에서 함께 하셨던 하나님,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을 생명의 근원으로 시인하고 고백하지 아니하고 세상 권세를 의뢰해서 세상과 함께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진실하시어서 그들중에 남은 백성들을 택하시고 그들의 구원을 통해서 천하만민을 구원하시는 우주적인 생명의 왕국을 세우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친히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아들을 보내셨고 그냥 혈육의 출생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의 언약을 따라 처녀의 몸을 통해 잉태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가 되셨사옵고 자기 백성에게서는 버림을 당했으나 친히 죽은자 가운데서 일어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왕으로서 이제는 모든 권세가 복종하는 우주적인 권세있는 왕국을 우리를 위해 세우셨음을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스라엘은 그를 버렸지만은 하나님은 참으로 예수의 하나님이셔서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영광의 보좌에 올리시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계신 하나님으로 삼으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사오니 참으로 평강의 하나님,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이제는 교회를 공평과 의로 통치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를 통해서 주의 뜻을 이루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은 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이사외에 임금이 없다고 부르짖는 것처럼 오늘 모든 사람들도 참으로 주님을 생명의 하나님으로 의지하지 않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세상의 영광만 그들의 신이요 그들의 하나님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교회가 이처럼 주님의 권세를 거역하는 세상가운데 있을찌라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셔서 세상의 권세를 의지하지 말게해 주시옵고 세상에서는 버림을 당했으나 죽음의 권세를 영원히 깨뜨리신 권세있는 왕,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주님과 함께 믿음의 교제가운데 살게하시며 주의 상에 앉는 것을 기뻐하며 세상에서 멸시와 천시를 받을지라도 주님앞에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귀한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지금도 세상은 부요하며 교회는 곤고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다 버리고 참으로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릴찌라도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음으로 영광스런 주님을 봉사하는 저희들이 다 되게해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이 주님께서 오늘도 이 생명의 능력으로 교회를 복주시려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회를 주의 상으로 모이게 하시며 주님의 살과 주님의 피에 참여하는 영원한 생명의 교제를 허락하셔서 권세있는 주님과 함께 권세있는 아들로 살 수 있도록 교회를 주님보좌 우편에 앉게 하셨음을 인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교회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모였사오니 거룩하신 주여! 우리의 믿음을 더욱 새롭게 하셔서 보좌우편에 취임하신 주 에수의 얼굴에 비취는 주님의 영광을 항상 뵙게 해 주시옵고 이 부활의 빛 가운데서 세상의 권세를 해석하고 우리의 고난을 해석하고 날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믿음의 백성들과 우리 어린 자녀들을 복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풍성히 허락하여 주셨사오매 우리가 생명의 은혜를 하나님앞에 감사하고 우리의 드리는 것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의의 열매를 맺게 하셨음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들이 주님과 함께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다 할찌라도 우리를 위해서 몸을 주신 주님을 따라서 우리들도 주의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주의 구원의 역사에 동행하는 저희들이 되게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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