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 28장
신명기 28장입니다. 28장은 모세가 설교한 두 번 째 설교의 끝입니다. 그리고 29장에는 새로운 설교가 시작됩니다. 29장1절에 보면은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운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하고 새로운 시작이 있지요. 신명기의 중요한 특징은 말씀이 이러하다 하는 것이 특징인데 그래서 세 번째 설교는 29장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28장이 두 번째 설교의 끝입니다. 27장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언약 채결을 했지요. 그 땅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땅으로 드리는 언약 채결식을 갖도록 27장에서 말씀했습니다. 이제 28장은 그 언약을 따른 축복과 저주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신명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언약은 뒤에 복과 경고들이 따라 있지요. 여기서도 그렇게 돼 있습니다. 축복에 대한 이야기는 14절까지 있고, 15-는 저주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저주가 훨씬 더 길지요. 27장에서도 아멘하고 맹세했을 때 전부 저주를 받으리라. 그렇게 돼 있었지요. 이것이 구약의 언약의 특징입니다. 장은 굉장히 길고 복이나 저주의 항목이 무지하게 많은데 그걸 다 내다가는 안되고요 복잡할수록 간략하게 하면 되어요. 그래서 간략하게 묶었습니다. 순종하는 성민에게 가나안 땅에서 주시는 축복이 14절까지입니다. 그냥 문패만 붙이면 축복하면 좋은데 무슨 축복인지 가나안 땅에서 순종하면 복받으라 하는 것이 신명기기 때문에 그렇다고 붙였습니다. 이스라엘에 복받는 길은 항상 처음이 중요하다고 그했지요. 말씀을 삼가 듣고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이러 이런 복을 주시리라. 그런 말이 되어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주는 복은 어떤 복이냐? 한 마디로 하면은 처음에 있는 것이 대표적인 주제적인 복이어요.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그것이 복을 준다는 주제적인 선언이어요. 그 뒤에 나오는 복은 그런 설명이어요. 그래서 2절에 보니까 또 1절하고 똑같은 말이 있지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여 미치리니, 1절 처음에도 지키면 복주리라. 뛰어난 복을. 2절에도 또 복을 주리라. 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쭉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1절의 복과 3절 이하의 복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1절의 복이 주제적인 복이고, 즉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복을 줄 것이다. 그러면 그 복은 무엇이냐? 3절 이하에 있는 복들이 그런 복이라 그말입니다. 그래서 이 복의 구조를 한번 쭉 보면은, 가령 7절에 보니까 굵은 글자로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단락이 나누어진 것처럼 되어 있지요.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면 단락을 나눌 것이 없지요. 여기 8절이 아니고 9절입니다. 1절에도 보면은 지키면 복을 주리라. 그렇게 되어 있고, 그 복이 무엇입니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는 복이지요. 9절에 보니까 무슨 말이 있습니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같은 말이지요. 성민 되게 한다는 복이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복, 장자의 복을 준 것이어요. 그러니까 1절하고 9절이 시작절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있는 것들은 그 절을 풀어주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에게 주신 복은 소위 성민의 복,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복은 성민의 복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1절과 9절이 서로 같은 내용이어요. 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복은 성민으로써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복을 주시고 모든 민족위에 뛰어난다는 의미는 장자지요. 장자가 구약 개념으로 뛰어나지요. 제사장이 뛰어나지요. 출애굽기 20장에서 언약 채결할 때 보면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삼으리라. 거룩한 백성은 성민이고 곧 그것은 제사장 나라지요. 그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복은 1절과 9절이 주제적인 선언이고 그 이하들은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복에 대한 말씀을 끝맺는 말씀을 쭉 보니까 14절에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지키면은 복을 주리라. 그렇게 했지요. 그런데 이것도 무엇과 비교됩니까?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않고, 항상 언약적인 문제이지 하나님의 절대법을 두고 이 법의 기준에 도달한 사람, 그런 개념이 아니라 나 여호와냐, 가나안 신이냐, 둘 중에 선택해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셨거든. 가령 그전에는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를 섬겼으면은 우리 나라를 미국이 해방시켰다 치십시다. 너 그전에 일본 종살이 할 때 살만 하드냐? 그러니까 인제는 내 신민해라 그러면 내가 그렇게 해주마, 그런 의미지 나는 이렇게 절대적인 하나님이니까 내 기준에 도달하면, 네가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 그 말이 아니라 나 빼놓고 눈을 딴데로 돌리지 말아라. 나만 신이고 가나안 신은 신이 아니다. 그런 가나안 땅의 언약 채결이 핵심이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14절에 보니까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나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나만 섬기면은 마지막 마무리를 그렇게 해놓았지요.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다. 하는 언약의 법을 지킨다는 말입니다. 절대법 개념이 아니어요. 복에 대한 끝맺는 말도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시작과 끝이 내 말을 잘 들으면 복주겠다. 그런 말로 되어 있다. 왜 나만 너희 신이니까. 그 복은 무엇입니까? 다른 민족은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내 성민삼고 성민은 무엇입니까?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복은 무엇이냐?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그러면 끝이겠지요. 그런데 그 앞을 보니까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아주 복잡한데 모르겠고, 그런다 그말입니다. 이 복이 한마디로 무엇이냐? 가나안 땅의 복이지요. 실은 신명기 복을 말하고 있지요. 가나안 땅 복이어요. 그래서 이런 것은 인수분해 보면 알 것이어요. 그러니까 7절은 새로운 문단을 나눌 때가 아니라 그말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의 복중 제일 큰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대적으로부터 안식을 주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자식들이 복을 받고 짐승이 복을 받고 다 번성하고 장수하지요. 병도 안들고, 그러면 가나안 땅 복이지요. 만일에 하나님이 범죄하면은 원수에게 빼앗기고 인제 땅도 황무지가 되고, 전부 병이 들 것이고, 그래서 너무너무 배고풀 것이고, 그런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땅에서 너희를 토해 내처버리리라. 그러면은 신명기 저주예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벌을 줄 때도 그 상황에 맞는 벌을 주지 안해요. 얘기들이 아이스크림 먹다가 싸우면은 너는 먹지마. 그러면 그것이 제일 큰 벌이지, 너 그것은 형벌 몇개에서 몇개 맞을감 그렇게는 안하지요. 그것으로부터 제외시키면 그것이 제일 슬픈 일이고 벌이어요. 그러니까 신명기에서는 가나안 땅의 저주지 말하자면 끝 죽어라. 그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의 모든 것을 잃는다. 그리고 결국은 너희들을 이방 땅에 던져버리겠다. 그러면 가나안 약속은 끝나버리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로 저주다 그런 말입니다. 지금 저주는 어쩝니까? 지금 여러분이 잘못한다고 다리 안뿌러지지요. 손도 괜찮고. 다 괜찮지요. 아, 나는 벌 안받았구나. 그러면 안된다 그말입니다. 구약 때는 그렇게 직접 나와요. 지금은 그렇게 안하시지요. 하나님이 오래 참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런 의미로는 이방과 싸우지 안해요. 섬기셔요. 그것이 우리들의 방종이 되어서는 안되지요. 왜 마지막에는 만물이 불의 체질에 녹아지고 의의 하늘은 믿는자만 받고 나머지는 영원한 불못이어요. 그러니까 지금 구약의 증거가 우리 안에 없다고 해서 웃고 있으면 안된다 그말입니다. 지금은 복주는 방식과 저주하는 방식이 다르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성경이 만고불변하다고 해가지고 구약에 복받은 사람처럼 우리도 그렇게 복받을 줄 알아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아버지가 불변하니가 나이 서른살 된 뒤로도 아버지 한테 사탕 사주라고 그러십시오. 아버지가 말 잘 들으면 사탕사 주셨는데 나이든 뒤로 왜 변해버렸느냐고, 사탕 사주라고 울어 보십시오. 아주 좋겠지요. 아버지는 불변하지요. 그러나 아버지가 자식을 대하는 관계가 어렸을 때와 컸을 때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컸을 때는 어렸을 때의 영광은 없는가 몰라도 사탕 안사주니가. 오히려 심부름만 죽어라고 하거든.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를 닮은 영광이어서 어렸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취급을 해주고 있는데 그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관리해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것은 내 돈이 아닌줄 알아요. 그러고 현금이 얼마 있어야 되겠다. 아이들처럼 자기 주머니에 있는 것만 계산할려고 그래요. 구약을 그렇게 해석하니까 교회가 미혹을 받아요. 그리고 교인들이 편안해버리고. 아무런 재앙이 없거든. 그렇게 살지 말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복의 항목들을 열거해 보아라. 그 말입니다. 7절을 보니까 큰 글자로 써놓은 것을 보니까 중요하기는 한가 보구먼. 하여튼 적들에게 이긴다 그말이지요. 얼만큼 힘이 쎄냐 하면은 여기 한길로 처들어 왔다. 도망칠 때는 일곱길로 도망쳐버려요. 그러니까 그냥 순식간에 이기겠다. 그말이지요. 그냥 땅에서 현장에서만 복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쌓아 놓고 복받지요. 창고에 쌓아 놓고 있으니까. 그 앞에는 창고에 쌓아 놓은 것은 아니고 복받는 항목들이 여러 개 있지요. 소생이 복을 받고, 소산에 복을 받고, 짐승이 복을 받고,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하면 다 끝나지요. 나는 발음이 좋지 않아서 빨리 못하겠어요. 나는 우리 나라 판소리를 모르는데 아마 이런 빠른 박자가 있어요. 천천히 하는 것도 있지마는 빠른 박자가 있어요. 이것에 잘 맞는 박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반복되는 말이 많이 있지 안해요. 복을 받고 복을 받고 그러면 쿵작 쿵작 그것이 우리 나라 노래 아닙니까. 우리 나라 노래는 4절까지 악보가 있는 것도 아니지요. 부르면 계속 부르는 식이지요. 그런 식이어요. 그런데 복 항목은 별로 안되어요. 그 다음에 9절을 보면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해놓고도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다른 이방인과 관계에서 더 강조를 두었지요. 12절에 보면은 다른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이지 아니하고, 너는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만 있고 아래는 있지 않고, 이것은 무슨 복입니까? 성민의 복이지요. 만일에 그들이 가난하게 되면 꾸어야되지요. 힘이 없으면 종노릇해야 되지요. 이 앞에는 이런 저런 구체적인 복의 항목, 여기서는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하시면서 민족적인 우월성에 더 강조를 두고 있어요. 이것을 갖고는 집사님이 십일조만 잘내면 이 복이 임할 것인데, 남에게 꾸어줄 지언정 꾸이지 않을 것이요. 미국을 보라고, 십일조 내는 국가라 세계에 꾸어주지 않느냐고. 이렇게 읽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약속이어요. 바울은 꾸어준 것이 아니라 내내 주야로 일하고 먹고 살았어요. 어느 때는 빈궁에 처할 줄도 알고 해서 고생을 죽게 했지요. 이 본문하고 안맞지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맞는 복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복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인제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어요. 소위 정신적인 복도 신령한 복은 그 사람 정신입니다. 하지마는 물질적인 복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시니까. 그런 이론으로 하면 맞아요. 다 하나님이 하시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데 어린 아이로 주느냐? 어른으로 주느냐? 그런 차이라니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는 신학적인 이론은 우리에게는 필요가 없어요. 물질적인 복은 하나님이 상관하지 않으니까 안준 것이 아니라 주시기는 다 상관하는데 모세 때는 가나안 땅의 복으로 주셨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의 복으로 주신다. 그러니까 마태복음도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 선물이지 그것이 복 자체가 아니어요. 그러나 구약 때는 거기가 전부 새겨져 있어요. 자꾸 제가 어렸을 때와 어른을 비교해요.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책망만 해도 묘한 것이어요. 그러나 어른 때는 전혀 다른 해석이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구약을 자꾸 신약에다 그대로 적용하니까 우리들은 실은 이방인처럼 산다. 그래서 우리가 가난하면 좀 증거가 안되어요. 미국을 봐라. 증거가 되어요. 크게 보니가. 개개인을 보니까 증거가 난처한데 국가적으로 보니가 좀 된 것 같거든 그러면 일본을 봐라 하니까 난처해 세계 2등 부자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일본은 장차 몽둥이로 칠려고 바벨론을 부흥시킨 것처럼 부흥시켰지 누가 복주었다냐. 그러면 그도 그럴 듯해 그런데 세상 역사를 그렇게 적용 못해요. 구약 때는 그런 적용이 가능해요. 이스라엘만 중하고 이방은 그렇게 하니까. 신약 때는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를 경영하지 어떤 한 특정한 국가를 부자되게 할려고 역사를 경영하지 않으니까 그런 비교가 안된다. 그전에 우리 민방위 훈련을 가면 가끔 목사들이 와갖고 해요. 그 목사들은 나보다 야문가봐요. 그런데 줄도 대고 강연하는것 보니까.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는 복음은 잘 아는데 역사는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 설명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세상 강국이 된줄 아느냐고. 단결해서 그런다고, 아라비아 사람들은 전쟁하면 도망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부 국가로 간다고. 그러니 그 조그만한 국가가 저 큰 아랍을 이긴 것 아니냐고. 우리도 단결하면 살고 인제 이승만 식이지요.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 그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역사를 알고한지 모르고한지 몰라요. 이스라엘이 망할 때 죽어라고 연합했어요. 그러고도 망해버렸어요. 그것 꼭 분쟁만 일어나서 그런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더구나 이스라엘을 해석하면서 성경도 몰라. 그래 놓고 느닷없이 우리 나라와 똑같이 해요. 그러면 우리 나라가 이스라엘하고 같냐고. 우리 나라는 언약 밖에 있었는데, 그렇게 적용이 안됩니다. 지금은 일반적인 통치 원리는 적용되고 그리고 국가의 흥망성쇠를 복음적으로 설명 못해요. 단지 우리가 감사할 수는 있지요. 왜냐하면 국가가 가난하면 전도 못하거든. 그러니까 부자되면 훨씬 좋지요. 그러면 감사는 할 수 있지요. 또 국가가 편안하면 교회가 경건한 일을 추진할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로 분석할 수 있지요. 그러나 국가 지엔피를 갖고 비교하고 그렇게 비교하지 못합니다. 붙이면 붙여질 것이어요. 근거가 없다 그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복을 받았다고 하면 불교 신자들도 받은 복이 많해요. 비교해 보면 기독교인들이 쏙 들어갈 일이 많을 것이어요. 그러면 그것하고 비교하면 솔로몬은 예수 오시기 전인데 율법 지켜 갖고 복받은 일이 무지하게 많해버려요. 그러니까 비교가 안돼. 그러니까 그런 것으로 증거하면 안된다 그말입니다. 구약 때는 그런 증거가 가능해요. 그래도 그 증거는 완전한 증거는 아니어서 이방인이 이스라엘보다 부자 국가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위협을 받은 것이어요. 지금은 우리가 죽게 되었어도 위협을 안받는다. 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했으니가. 전혀 다른 증거가 있어요. 그러니까 성경을 그렇게 적용하면은 그래도 일정에 맞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완전히 어린 아이로 먹고 마심의 종으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항목들을 한번 적어 보십시오. 불순종하는 성민들에게 저주가 15절부터 끝절까지 있는데 저주가 굉장히 깁니다.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것은 저주를 받으리라. 하는 말이 15-19절에 여러번 반복되어 있지요. 그것도 어떤 구조를 따라서, 앞에 복준다는 구조를 따라서 그렇게 되어 있지요. 성민이 되리라. 그런 말은 싹 빠져있어요. 왜, 나중에 성민이 안될 것이니까. 던져버릴 것이니까. 뒤로 돌아가 있는데 복받는 항목은 앞에 저주받은 항목은 복주리라는 것이 꺼꿀로 된 식이어요. 그래서 꺼꿀로 말한 식이 되었습니다. 하여튼 온데 간데 없이 다 저주를 받을 것이어요. 다른 데서는 손을 짚으면 지네가 물고, 하여튼 이래도 저래도 저주지요.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어 있어요. 제일 끝에 들어가도 저주 나가도 저주, 그러면 완성되겠지요.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더 구체적인 방식으로 다른 여러 문제를 설명합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저주를 받느냐 하면은, 모든 면에 저주를 받는데 20절을 보면은 다시 말합니다. 나를 잊고 악을 행하면은 저주와 두려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라. 안식이 없어요. 여기 보니까 염병을 주는데 어떤 염병이냐? 27절에 보니까 애굽의 종기가 들지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마라의 쓴물을 달게 하고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라. 그렇게 했지요. 왜 애굽의 질병을 말하느냐. 애굽에는 그냥 위생 상태가 나빠서 질병이 많은 것 보다도 하나님이 세상의 병은 애굽에다 다 쏟아버렸지요. 심판하실 때. 그래서 지금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종기로 치게 하겠다. 전부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마치 29절도 「소경이 어두운데서 더듬는 것과 같이」 애굽에서도 캄캄해서 더듬었지요. 전부 애굽에 있었던 심판의 모양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계시록도 그런 하나님이 이전에 싸웠던 애굽에서 주로 싸웠지요. 그런 언어들을 주로 쓰고 있다. 그래서 30절을 보니까 이전에 신명기 약속이 싹 없어져 버리지요. 약혼하면 다른 사람이 살아버리고, 집을 지으면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리고, 심은 것도 다른 사람이 거두워버리고, 그런 일이 절대로 없겠다고 앞에서 약속했지요. 그런 것이 싹 없어져버립니다. 그리고 자식을 빼앗겨도 찾을 방법도 없고 그리고 보이는 것마다 저주 뿐이어서 35절에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저주 뿐이다. 말하자면 그 모든 병과 그리고 축복을 빼앗기는 초조함과 두려운 공포, 이런 것들을 애굽을 모델로 해서 쭉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6절에 보니까 어쩝니까 왕과 백성이 먼 나라로 끌려가요. 우상 섬기는 나라로. 끌러갈 뿐만 아니라 땅에서 복받을 것이 하나도 없어요. 43절을 보면 이방인은 점점 높아지고 뛰어나고 이스라엘 백성은 점점 낮아져요. 성민의 복은 이런 것이지요. 44절, 너는 꾸어주어도 너는 머리가 되고 꼬리가 안될 것이어요. 이런 구절을 갖고 예수 잘믿으면 전부 일등이라고 우리 교회에 누구도 있고, 누구도 있고, 그런데 지방 학교에서 일등아니어. 말하자면 누구는 부자고. 미국가면 아파트도 못얻어. 그러니까 비교를 할려면 정확하게 해야되겠지요. 조금만 논리적인 생각이 있어도 그 비교가 얼만큼 어리석은가를 금방 알지요. 그걸 모르고 따라간다고. 이번에 김대중씨 보니까 노인이어도 정신이 총총하드먼. 누구요. 사상검증한다고 한 사람. 그 사람이 어째서 노태우 박정희는 욕하고 김일성이는 욕안하냐고, 그것이 공산주의인 증거 아니냐고, 한번 여기서 욕해보라고, 그러면 내가 그러면 내가 설득당하냐고, 아주 웃기는 이야기지요. 말은 고상하게 했어도. 그러니까 김대중씨 논리적인 분해, 김일성이는 정적이 아니어요. 외교할 대상이어요. 그러나 박정희는 정적이어. 그러니까 죽어라고 싸워도 둘이 멀어질 것이 없어. 그러나 국가가 다르면 싸웠다 하면 전쟁이지 멀어져. 상황이 달라. 그런데 거기다 마이크 데고 욕하라고. 그러면 대통령된 뒤로 통일하지 마라고. 무슨 쓰잘데 없는 말이여. 그러니까 대상이 무엇인지, 말하자면 요새 수학 배우는 식으로 하자면 철학적인 영역이 무엇이요. 대상이 달라. 다르면 다른대로 적용해야 되는 것이지 똑같이 욕해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런 논리적인 상식도 없어요. 보니까 전부 군인 졸병이드먼. 군인 졸병은 그런 생각해요. 그래도 사령관만 되어도 전쟁을 그렇게 안해요. 완전히 소총수드먼. 우리 나라 보수파는 전부 그런 사람들이어요. 그래도 김대중 씨는 그래도 나보다 말을 좋게 하드만. 많이 배웠다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신 분이 있는 줄을 인제 알았다고, 앞으로 잘 할란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드라고. 그런데 기고만장을 하지요. 그것이 우리나라예요. 그사람들이 공상당입니다. 제일로 공산주의를 이롭게 해요. 총만 잘쏜다고 민주주의가 아니어요. 괜히 간첩 처들어오는데 총쏘아 갖고 숨어버리면 그것이 이롭게 하는 것이지 그렇지요. 가만히 있다가 잡아야 상수지 어째서 막보고 총 안쏘았냐 그러면 쓴가? 안쏘아야지. 기다렸다 뒤에 사람오는가 보아서 지나가도록 놔둬버려야지. 그랬다가 큰놈 잡아야지. 그런데 아에 우리 나라는 그런 식이여. 그래 갖고 잡는다고. 하여튼 그 국민이 정신을 바짝 차리면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데 우리 나라는 동네 여자들 싸움 같이 통해.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막 말만 많이 해버리면 들어가버려. 흉만봐도 워매 그랬당깨 하면 다 흉봐부러요. 그러니 이걸 참말로, 대중씨가 오대가 먹었으면 영삼이는 요, 그런데 대중씨는 먹었어도 반대급부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영삼씨는 대통령 하면서 반대급부를 주었어요. 그것이 한보사태예요. 그러니까 그는 잡아야 되요. 그런데 이 사람은 보험금만 받았다 뿐이지 아직 반대급부할 기회가 없거든. 권력이 있어야 되지. 그것은 비교가 안되는 것이고, 우리 나라처럼 지정기탁금 하면 여당만 다 먹어버려요. 야당한테 지정기탁금 주었다가는 지금 숨어서 주어도 걸리는 판에, 내놓고 주었다가는 그건 하루 아침에 당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그런 제도를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까발려 놓고 정치하자, 깨끗하자 하는 말은 그건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고, 내가 볼 때는 기존 정치 세력에게 혐오감을 주어서 새로운 신진 세력있지요. 누구 닮은 사람, 그쪽으로 가자는 것이어요. 영삼씨가 주낙을 여러개 놓았어요. 주낙이라는 말을 낚시질 안하는 사람은 잘 모를란가. 낚시를 여러개 놓아 갖고 걸리면 아무 것이나 걸리면 되어요. 내가 볼 때는 그런 식이어요. 그러지 않으면 대선자금 밝힌 영삼씨가 걸리는데, 무슨 원조가 거기 있는데 둘이는 감옥에 들어갔으니까 놔두고, 다 양해 해야 될 것이어요. 그렇게 국민을 속이면 안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냥 아는 것을 언론들이 그런 것을 가지고 떠들어요. 그러니 걸린 것만 도적놈이지. 영삼씨는 아직 증거가 없고 대중씨는 증거가 있으니까 너부터 잡자 그말이거든. 법리상은 맞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제까지 안잡았을 뿐이지 증거가 다 있습니까. 그런 정보정치는 이제까지 공갈정치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당이 결국 낮에는 야당이고 밤에는 여당한 것이지요. 서로 안짜면 안되니까. 그런 것을 끊어야 돼. 절대 권력이 끊어져야 악순환이 무너집니다. 이보다 더 나쁜 정권이 들어서드라도 계속해서 권력을 잡는 일이 없어야 이런 일이 없어집니다. 보십시오. 저 신한국당도 경선하니가 막 해창이 욕도하고 서로 이길려니까. 자체 안에 정화작용이 일어나지 안해요. 그러니까 제일로 급선무가 정권교체에요. 하여튼 지금보다 더 나쁜 정권이 들어서도 정권교제만 가능하면은 국가는 좋아질 기미가 보여요.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급선무인데 큰일입니다. 그건. 내가 지금 누구 지지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나도 그분을 좋아하지마는 그분이 대통령되면은 그것이 곧 교회가 구원받은줄 알고 좋아해요. 김대중씨하고 교회가 같은줄 알고, 그러니까 그때는 인제 그때는 그양반이 성경적으로 어떻게 틀린지 열심히 이야기를 해야 되겠지요. 왜냐하면 그래야 교회가 그런데 안빠져들어가거든요. 정치는 비교적인 선택이지 절대적인 지지가 아니어요. 그것을 모르고 대중씨가 되면은 교회가 좋아지는 것처럼 막 공의가 강같이 흐르는 것처럼 그냥 그런데 속으면 안되어요. 비교적인 선택이어요. 어쩔 수 없습니다. 저주받은 이유는 불순종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 대신 다른 신을 섬겨서 그래요. 저주를 끝맺는 말과 그 의미를 한번 볼까요? 제일 끝에 무어라고 되어 있는가. 68절에 보니까 「너를 배에 실으시고 애굽에다 던져버릴 것이다. 그때 너를 종으로 팔려고 해도 아무도 살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전에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면 먹고는 살았거든요. 종살이하고 가마 곁에서 편히 먹고 살았어요. 그런데 제일 끝에 하는 말이 배로 다시 실어다가 애굽에 던저버리면은 너는 종살이도 못해요. 그러니까 완전히 원점으로 돌려버린 식이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벌이 얼만큼 크냐 하는 그런데다 강조를 둘려는 것이 아니라 언약 파괴자를 언약을 범한 자에게 벌을 준다는 것이 핵심이지요. 제일 끝에 말은 그렇게 되어 있다.
저주의 항목과 내용을 보면, 아까처럼 가나안 땅의 언약, 신명기 언약을 잃는 것이어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일로 길게 말한 것은 무엇입니까? 너를 애굽에다 던져버리겠다. 이방 땅에. 바벨론 포로된 것을 제일 길게 강조되어 있어요. 앞에 복도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가나안 땅의 복을 말하고 나서 성민의 복을 강조해서 설명했지요. 너는 꾸어주어도 꾸이지 않고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리라. 그걸 강조했지요. 여기서도 가나안 땅의 구체적인 복들을 말하고 나서 성민으로 특권을 읽는 것, 너희들이 잡혀갈 것이다. 왕도 잡혀가고 백성도 잡혀갈 것이다. 잡혀가면 너희를 종으로 살 것도 없다. 너희들은 바람에 낙엽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떨릴 것이다. 밤이 되면 언제나 낮이 올꼬, 낮이 되면 언제나 밤이 올꼬, 불안해서 숨도 못쉴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세상에 멸시와 천시를 받을 것이다. 왜 너희들이 나를 버렸기 때문에. 그것이 여기서 저주의 말이어요. 언약 파괴에 대해서 가나안 땅의 언약으로부터 던져버리는 것이어요. 그것이 저주의 핵심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안하고 복의 항목들만 말해. 이것도 복, 저것도 복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러니가 성경의 의미는 싹 없어져 버려요. 또 이런 말을 우리에게 한 적도 없지요.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한 말이어요. 우리는 예수 안에 불렀지 모세 안에서 부른 것도 아니거든요. 이것은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니어요.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자 말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어버려요. 이것을 우리들이 다시 읽어하는데 어떻게 읽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복으로 부르심을 입었지요. 예수는 죽음에 이르도록 순종하셨지요. 구약의 어떤 사람도 완전한 순종이 없어요. 하나님을 그렇게 순종하셨지요. 이제 하늘을 기업으로 우리에게 주셨어요. 이것은 빼앗기는 기업입니까? 빼앗기지 않는 기업입니까? 빼앗기지 안해요. 우리보다 더 높은 권세가 없어요. 예수께서 만유의 주가 되셨기 때문에 교회도 주님과 함께 권세의 자리에 앉았어요.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보다 강력한 이방인이 있지마는 우리는 어둠의 권세는 끝났어요. 우리가 받은 복은 여기가 있지요. 이것을 이스라엘과 비교하면 안된다 그말입니다. 우리는 전혀 다른 상황이어요. 그러면 먹고 마심은 우리하고 상관이 없는가? 상관있지요. 누가? 우리를 위해서 몸을 주신 분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셨지요. 그것도 많이 먹고 창고에 싸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교제로 먹으라. 그렇게 주셨지요. 내가 몸을 준 것처럼 너도 내것 가지고 형제를 먹이라고 그렇게 주셨지요. 그리고 우리 복은 무슨 복이어요. 창고에 쌓놓고 먹는 복이 아니라 그 선한 일이 계속될 수 있도록 누구만 이 복의 설득을 당하느냐? 탐심이 가득한 사람, 어렸을 때는 자기 것 자기가 먹어도 어른이 보면 아이쿠 욕심도 많다. 그래요. 구약은 전부 주신 복이지마는 완성된 복에 비하면 탐심이다. 이렇게 구하면, 이방인이 구한 것이다. 왜 그리스도 밖에서 유대인들이 이방의 장자였거든.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으로 마태복음에서는 이야기를 해요. 너희들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라. 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 구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아신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묘하게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 해갖고는 돈은 막 주라고 그러는데 얘기는 그만 주라고 그래요. 우리 나라 산아제한 슬로우건을 교회로 싹 받아들여가지고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 그러면 돈도 있고 건강한데. 잘 기르려고 그러요. 일리는 있어요. 무화과 나무도 가을에 맺는 열매야 별 것 없으니까. 젊어서 많이 낳아서, 초벌 무화과는 굉장히 달지요. 그런 것도 있을 것이어요. 30대 자식, 40대 재물 그런다던가. 옛날 말에 그런 것이 있어요. 자식은 남이 웃을 때 낳는 것이 좋다는 것이 옛날 말이어요. 그건 우생학적인 이유 때문에 그런지. 요새는 귀찮으니가 그러지요. 그러면 돈도 많이 주고 얘기도 많이 주면 좋지. 안믿는 사람이 기르니 내가 기를게 돈 다 나줘, 얘기들 다 내게 맡기라고 그러면 오즉 좋을까. 안한다고. 또 자기 애기는 조금 낳고 유아방을 합니다. 돈벌이가 되니까. 애기 키우는 것이 무척 힘들거든. 물론 다른 애기들 키우는 것은 자기 애기 하나 키우는 것보다 덜 힘들련지 몰라요. 애정에 강도가 다르니까. 덜힘들련지 모르겠는데.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됩니다. 자기 건강도 분별하고 재산이나 돈버는 방법도 분별하고, 그 일종의 가능성이 있어요. 미래는 모르니까. 그리고 분별하고 자식도 낳는 것이 상식이어요. 그전에는 그냥 무조건 낳는 것이 상식이었어요. 생육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했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배웠어요. 하여튼 선볼 때도 믿사오니 하고 장가 가면 좋고, 보고 선택하면 이건 수상한 젊은이어요. 우리는 묘하게 살기는 살았습니다마는 정상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기 양심껏 분별해야 되지요. 몸이 약한데 낳아서 잘 기르자고 낳아 놓으면 자기도 고생 애기도 고생이고, 여간 힘들어요. 건강이 회복되도록까지는 절제했다가 회복되어서 낳으면 더욱 좋고, 그건 지혜로운 방식 아닙니까? 다른 것은 다 지혜를 발휘하는 데 그것은 그냥 믿사오니 하는 것은 안맞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자기 정욕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자기 양심껏 대답할 수 있어야 되겠지요. 그러면 많이 났든 적게 났던 간섭할 것 없어요. 자기 자신이 알 것이어요. 그런데 우리는 지래 겁을 먹는 경향이 있거든. 그럴 필요는 없다. 그것도 누가 정해주면 못해요. 이럴 경우는 낳고 이럴 경우는 났지 말라고, 모세처럼 앉아서 선을 정해줄 장사는 없어요. 각자 하나님 앞에 자기 책을 따라 산다. 그러니까 요새 복을 신명기 복을 갖다가 교회에다 그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라고 막 들이대면 안된다. 지금 이런 모든 복이 하늘의 복으로 바꾸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이 먹고 마시지마는 그것은 하늘의 질서를 따라 쓰도록 되었지 이스라엘 백성은 창고에 쌓아 놓고 쓰도록 그렇게는 지금 아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깊이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선행은 주어진 기회에 하는 것이어요. 지금 당장 누가 도움을 구하는디 이것을 나중에 투자해 갖고 돈번 뒤로 할 것이니가 조금 기다리라고, 그것도 나는 정해줄 방법은 없어요. 그럴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느니까. 그러나 도움은 필요한 것만 주지 내가 평생 이자로 부자될 것이니까 조금 기다리라고 원금 모아지도록, 그럴 것 없지 안해요. 그리고 주어진 형편에서 구제하지 내가 적어도 백만원은 구제할 것이니까 지금은 조금 참으라고, 그럴 필요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을 어떻게 해야될지는 자기 자신이 분별해야 되어요. 지금 도와야 될 것인지, 지금 안도와도 되고 다음에 다른 방식으로 도와야 될 것인지. 그런 것은 자신들이 분별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전에 가난한 사람 돕는 이야기를 많이 했더니 꺼꿀로 가드라고요. 하도 부자들이 안도우면 그쪽에다 강조를 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 구제한 것이 최고예요. 그래 갖고는 나보고 누가 가난한데 왜 안돕느냐고 그래요. 안도와도 되요. 가난한데 그러냐고, 아이 자기 손발 성성하고 돈벌 기회가 있고, 가난하면 가난하게 사는 것이어요. 그런데 이것도 정해줄 장사는 없어요. 당장 돈깨나 있다고 아이고 가난한 사람 갖다 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은 부모들도 자식에게 그렇게 안해요. 너 조금 고생좀 해보아라. 그리고 돈 준비는 딱 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도와주는 것이어요. 어느 때는 짤끔짤끔 도와줄 때도 있도 어느 때는 장사 밑천을 도와줄 수도 있고, 그에게 유익하도록 조절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당장 어렵다고 똑같이 먹고 살아야 될 것 아니냐고, 나누기 몇 하면 안되지요. 왜냐하면 가난한 자도 있고 부자도 있거든요. 그러나 그가 가난 때문에 그의 인격이 상하도록 하나님 형상으로 존귀함이 상하도록 그렇게 해서는 안되어요. 그가 악할지라도 그건 도와야 되어요. 우리가 그렇게 섞어져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정해줄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의 것을 분별할 방법이 있어요. 그건 틀리드라도 여러분 자신의 권한입니다. 누가 해줄 사람이 없으며, 그런데 다른 사람의 눈에 보기에도 아이구 어째 저 양반은 저런고, 그런 소리가 자꾸 나오면은 덜 좋다. 자기는 양심이 깨끗한가 몰라도. 남에 눈에도 보인다니가. 물론 남들은 쉽게 판단해버릴 위험성이 있지요. 그것도 조심해야 되겠지마는 여러 사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은 안좋다.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 일은 깊이 조심하셔야 될 것입니다. 없는 사람이야 구제한다고 누가 안보니가, 그러나 있는 사람은 조심해야 되어요. 없는 사람도 자기보다 더 어러운 사람 도울 방법이 얼마든지 있어요. 단지 비교해서 편않다 뿐이지. 나는 없으니가. 그러면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 면죄부는 안될 것이어요. 왜 없는 사람은 오히려 더 많이 도와요. 어려운 점을 잘 아니까. 저주의 항목도 가나안 땅의 언약에 대한 파괴 때문에 언약으로부터 제외되는, 결국 무엇이 겠어요. 언약의 땅 밖으로 던져버리는, 어떻게 애굽의 종살이로. 그러면 원점으로 돌아가지요. 그런 언어로 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도 지금 어기면은 그러느냐 일단은 그것은 아니다. 가나안 땅의 복은 이런 축복과 저주의 율법을 따라서 그들의 그 복을 지키도록 했어요. 이 율법이 그들을 복주도록 지켜낸 것이어요. 이 저주의 경고가 그들을 지켜낸 것이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율법을 따라 복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것을 받았다. 지키지 못하면 저주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들은 자기 백성의 저주를 감당하심으로 복을 주셨다. 그러니까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은 비교가 안된다. 구약은 이런 일을 안하면은 저주하지마는 하나님은 저주 아래 있는 백성, 누굽니까? 이스라엘 백성도 이방의 권세 아래 있었지요. 가나안 땅으로 돌아는 갔지마는 이방의 권세 아래 있으면은 신명기 언어로 저주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제일로 가난하고 병들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근본 문제가 무엇입니까? 성민으로 특권을 이룬 것, 다윗 왕조의 영광을 이룬 것, 이방의 권세 아래 있으면은 그것이 가장 본질적인 저주예요. 그래서 다니엘이 개인적으로는 바베론 궁전에 출세했지요. 그래도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회복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나와 우리 조상들이 범죄했나이다. 왜 이스라엘이 이방의 저주 아래 있거든. 지배아래 있어요. 그것이 신명기가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하나님께서 그 아들로 율법의 저주를 받게 했다. 율법 아래 낳게 하셨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 아래 있고, 율법은 그런 의미로 어기면은 죽으리라 하는 저주의 법이 율법이어요. 거기 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에 불순종해서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아 이방의 종으로 있었다. 그런 저주된 백성의 왕으로 오셨다. 그런 저주 밖에 없어요. 자기 몸으로 저주를 감당했다. 그런데 그는 죽음에 이르도록 순종하셨지요. 그렇게 해서 아버지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셨지요. 그것은 인제 마태복음 이야기지요. 누가복음은 그런 것이 아니지요. 생명을 버릴 권세도 있고 얻을 권세도 있다. 그러면 요한복음 상황이 훨씬 다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로 하늘에 복으로 주셨다. 축복과 저주의 말씀으로 경고해서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아들을 보내심으로 이제는 이런 방식의 복이 아니라 아들 안에서 하늘을 누리도록 복을 주셨다. 그러니까 구약을 유형적으로 해서 신약으로 못올라오지요. 전혀 상황이 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오셨다. 그래서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기업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은 하나님 안에 있고 어두움의 권세가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우리들이 이 은혜를 받고도 범죄하면은 언약의 땅 밖으로 쫓겨나서 이방의 권세 아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불못 밖에 없겠지요. 신약의 상황이 그러니까. 그것 밖에 없어요. 그러면 우리들이 이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지요. 그리스도의 사랑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지요. 사랑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이어요. 그렇게 적용하면 된다. 구약 때는 무엇을 잘못하면 당장 무엇이 오지마는 신약 때는 십일조 안낸다고 당장 손해가 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십일조는 법정적인 의무도 아닐 뿐만 아니라. 어려서는 잘못하면 매가 당장 떨어지지요. 너 몇대 맞을래. 그러고. 그러나 크고 나면은 그것 없어요. 크고 나면은 부모에게 얻을려는 것이 아니라 부모 때문에 염려하기 시작하고, 부모 때문에 사랑의 봉사를 못하면 자식 마음이 편치를 못해요. 사황이 전혀 달라져 있어요. 신약 백성들은 자기에게 무슨 재앙이 떨어지냐 안떨어지냐 그런 문제가 아니라 만민이 주님 앞에 복종치 않는 것이 마음에 큰 고통이고 그리고 전 몸으로 주님을 봉사하는 것이 생명이지 아이쿠 이것은 내 몫이구나. 안심하고 먹자. 십일조 떼었으니까. 그런 것은 신약 복음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어요. 그건 구약 표현도 아니고. 그런 것은. 완전히 이방 종교에요. 그런데 그것이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보편적인 상황이어요. 교인들의 의식이고. 그러니가 지금도 복음을 따라 살다가 고난을 당하면은 저 집사님은 새벽에 기도를 많이 해도 저렇게 복을 많이 받는가, 나도 한번 해보자. 주여, 주시옵소서. 하겠지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먹고 마실 것이 떨어지면 달달 떠는 어린 아이어요. 지금 부활의 생명이 와있는데. 그리고 그 사람도 기도해도 복받았으니 나도 기도해보자. 그리고 구약을 보니가 그렇게 한 사람이 많거든. 기도만 해서 안되겠다. 일천 번제를 드려야 되겠다. 돈으로 하면 얼만고. 솔로몬처럼 받을려면. 그렇게 해서 안되겠다. 또 별미 축복이 있어요. 에서가 이삭에게 복받을려고 별미 축복, 그런데 별미 가질로 갔다가 받도 못했는데. 별미 축복이 있어요. 먹어보아야 복을 주지. 하옇튼 별놈의 복이 있어요. 그래갖고 아멘 하고 야단들이어요. 그건 조금 좋게 봐주면 유치원이어. 제대로 보면 가짜고. 그렇게 밖에 안되어요. 그런데 여려분들은 지금도 여러분의 생활에 그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한다 설득하면 안되어요. 지금은 죽음이 여러분을 조롱해도 주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신다고 그렇게 담대한 능력있는 군인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어요. 구약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망하고 가난하면은 이방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이 최고다 그 말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지금은 글안해요. 그것이 우리가 누리는 복입니다. 그렇게 사시면 되어요. 그러니가 이 복을 어떻게 적용할지 아시겠지요. 이 복을 말할려고 여러 항목을 가지고 구약 교훈법이 반복법이 아닙니까. 여러 항목을 가지고 반복해서 하는 것이지, 복의 항목을 쭉 뽑아서 아, 이것은 성경이 준 복, 이 항목에 없는 것은 하나님이 안주신 것, 그런 것을 구별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더구나 지금은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가지고 들어와도 받지 말라고 했지요. 신약에는 이런 복이 약속이 안되어 있으니가. 그런데 우리는 성경은 만고불변하다고 끌고 들어가거든. 전도로 끌든지, 은사로 끌든지, 복으로 끌든지, 교리로 끌든지 하니가 이제까지 교회가 미혹을 받는 것이어요. 그것을 잘 분별하지면 됩니다. 여러분은 최고로 복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산에 모인 그 병자들, 가난한 자들에게 복되도다. 천국이 너희 것임이라 했을 때 현금으로 받은 것이 없어요. 가난한 자들이 복받은 것도 없고, 여전히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복되도다. 천국이 너희 것임이라. 엇그저깨 병 하나 고쳐주고는 자, 이제 우는 자여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복되도다.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그것이 그것이어요. 약혼했을 때는 꽃도 사주고, 호빵만 봐도 사주고, 다 사주겠지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일년이 다 가도 무얼 사주기를 한가, 차라리 처녀 때 번 돈보다 이 남자가 덜 벌어. 손해가 막심하지. 아무 것도 없어. 그래도 무슨 뻔뻔한 낯짝인지 내가 자네 다 주었네. 그런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것이 결혼이어요.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하고 결혼한 식이어요. 결혼했는데 장부갖고 오늘 수입이 얼마 남편에게 계산할려고, 그건 아내가 할 계산이 아니어요. 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는 그렇게 산가 몰라요.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최고로 복받고 부요한 자들입니다. 하늘의 천사도 여러분처럼 복받은 것이 없어요. 그렇게 사시면 되어요. 주님 가르치신 기도로 마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