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구속사

신명기 강해 26

찬미예수님 2024. 10. 26. 07:48

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26

 

신명기1-11절은 기업의 땅에 들어가서 편안히 살 때에 모든 토지 소산의 첫 것을 여호와께 드리라는 명령입니다. 레위기 19:21이하 그랬는데, 19장23-25절로 기재를 하십시오. 그리고 레위기 23장9-14, 레위기19장23, 25절에는 무슨 말이 있느냐 하면은 땅에 들어가면은 3년 동안 먹지 말고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먹지 말고 제 4년 것은 여호와께 드리고 5년부터 먹으면 되어요. 아마 그런 식으로 되어 있을 것이어요. 레위기 23장9-14절은 초수절에는 하나님 앞에 곡식의 첫 단을 드리고 그 전에는 아무도 곡식을 먹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가 나와 있어요. 드리라는 말은 엇비슷하게 되어 있는데 어떤 차이가 나는지, 레위기에서는 항상 거룩함, 구별이 핵심이라고 그랬지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몫인가, 그런 것이 핵심이어요. 그러니까 3년 동안에는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취급하고 먹지 말아라. 정하고 부정한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신명기를 보니가 들어가서 거두면은 첫 것은 여호와께 드리고 그렇게 해 놓았지요.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곡식을 심으면은 3년 동안에는 먹지 말고 이렇게 해놓았거든요. 그러면 차이점이 무엇인가? 23절에는 첫 단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 전에는 먹지 말아라. 첫 단에 대한 문제만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여기서는 토지 소산의 모든 것을 거두면은 여호와께 드려라. 그렇게 되어 있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은, 레위기는 거룩한 구별이 레위기의 핵심이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식물까지도 깨끗치 못하니까 심으면은 3년 동안에는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그 다음부터는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첫 단은 하나님 것이어요. 그러기 전에는 저희들이 맛보지 말아라. 그러면 레위기도, 여기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가, 들어가서 첫 것을 거두는가?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 감사의 예배에다 강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셔서 충성하게 누리도록 한데 대한 감사예배, 그것이 이 신명기의 특징이어요. 강조점들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땅에 들어가서 토지 소산의 맡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가지고 가서 제사장에게 하는 말이 당신의 하나님 앞에 고하소서. 우리가 언약의 땅에 들어왔노라고 그래서 내가 첫 것을 가져왔노라고 그리고 네가 또 하나님 앞에 직접 말을 해라. 어떻게 말합니까? 우리 조상들은 소수의 사람들로 애굽에 내려갔는데 거기서 번성했는데 많은 고난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인도하셨다. 그리고 이 가나안 땅에 우리를 심어서 우리가 첫 것을 하나님 앞에 가져왔노라.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말을 해라. 그 말을 들어보니가 첫 곡식을 가져온 의미가 그냥 드러나지요. 하나님이 언약을 이처럼 성취하셔서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의 흐름의 복을 주셨으니 내가 그것으로 아버지 앞에 가지고 나왔나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라. 그말이지요. 거기서는 하나님이 크신 권능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해요. 그리고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성취하셨다고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가서 거두면은 첫 것은 전부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감사의 예물을 드리라는 말이지요.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이 언약의 땅의 풍성한 것을 거두도록 언약을 성취 하셨으니 하나님 받으시라고 가져온 것이어요. 그 다음에 함께 즐거워할 사람은 여기서는 고아나 과부는 안들어 있고 레위인과 그리고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 하라고 했지요. 여기서는 가난하고 풍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무엇이 핵심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모든 나그네 길을 끝맺게 하시고 가나안 땅에 안식을 주었다. 가나안 땅의 풍성한 것을 주셨다는 것이 여기 16장에서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누구와 함게 계십니까? 제사장과 레위지파와 함게 계심으로 이스라엘과 함게 계시고 그리고 이제는 여행을 다 끝마쳤지요. 그러니까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도 함께 즐거워 해라. 거기다 강조를 두어 놓았어요. 가령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부자가 됐으니 가난한 사람을 먹이라고 할 때는 가난한 사람을 초청하라는데 강조를 둘 것이어요. 그러나 여러분이 객지에 가서 잔치를 했으면 어떻게 할 것이어요. 여기 객지 생활한 사람 없느냐, 오라 해서 먹겠지요. , 처지가 비슷하니가. 그러니가 인제 애굽에서부터 여행을 다 끝내고 가나안 땅의 것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왔을 때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제 우리가 언약의 땅에 들어왔나이다. 우리는 아주 미약한데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셔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했나이다. 감사의 예물을 가지고 오고 그것으로 누구와 함게 즐거워 하느냐? 레위지파,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통해서 함께 하시니까. 그리고 누구와 함께 즐거워합니까? 거기 함게 우거하는 나그네가 있는가? 오라고 해서 즐거워 해라. 그렇게 말한다 그말입니다. 그 다음 12-15절은 14장28-29절에 있는 것과 내용이 비슷합니다. 3년에 십일조를 거두어 가지고 성읍에 보관했다가 그 성읍에 사는 레위인, 고아나 과부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과 같아요. 신명기 14장과 비교해 보는데 신명기 14장은 무엇이냐 하면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전에 와서 먹고 드리고 가고, 그리고 제 3년에는 십일조를 거두어다가 가난한 자를 먹여라. 신명기에서는 제 3년의 십일조, 그쪽에다 강조가 주어져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거기다 강조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십일조를 어떻게 잘 냈는가, 거기다 강조를 두고 있어요. 신명기 14장은 성전에 십일조를 내고 제 3년의 십일조는 보관했다가 가난한 자를 먹이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3년에 낸다는 데 강조가 주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제 3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인데 그 내용을 쭉 보면 십일조를 대충대충 띠어논 것이 아니고 아주 성실히 띠어 놓고, 또 급하다고 해서 그것을 축낸 것도 없고 아주 열심을 내서 띠었다가 내가 가난한 자에게 이렇게 먹였으니, 많은 사람에게 먹였다는 데에 강조를 두고 있어요. 왜냐하면 26장은 무엇입니까? 가나안 땅의 안식에 드디어 참여해서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쪽에다 강조를 두어 놓았다. 3년에 드리는 십일조는 가난한 자들을 먹이는 것입니다. 십일조 성물을 드리고 여호와께 아뢰 말이 있는데 그런 말이지요. 애곡하는 날에 내가 먹지 않고 부정한 몸으로 드리지 않고 죽은 자를 위해서 쓰지 않는다 그렇게 말을 해라.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는가? 내가 이렇게 했으니 하나님,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이 흐르는 복을 주소서. 그렇게 말을 해라. 그렇게 했지요. 내가 이렇게 가난한 자를 먹였으니 하나님, 이 땅에 복을 주옵소서. 그런 말이어요. 어떻게 먹이느냐? 이 하나님 앞에 하는 말에 다 그러났어요. 가난한 자를 먹이려면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십일조보다는 대충 드리기 쉽고 부정타기가 쉬워요. 그런데 그 일을 위해서 부정한 몸으로 떼어두지 아니하고 자기가 슬픈 일을 당했다고 해서 아이고 이것이나 먹어보자 하고 먹었다거나, 우리 시골에서도 초상이 나면은 주로 팥죽을 쑤어다 줍니다. 한 동이씩 쑤어다 주어요. 우리 아버지 말씀이 아이놈아 슬픈디 밥먹을 정신이 있겠냐? 그러니까 살살 마시라고 쑤어다 주는가 보는데, 이런 시골은 어쩝니까? 그냥 돈만 내고 와버립니까. 그런데 우리 시골에서는 초상이 났다 하면 많이 해다 주어요. 또 우리 시골은 무엇이 한 가지 특징이냐 하면은 밤새기 한다고 놀아요. 그래 가지고 우리 동창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조금 부잣집이라고 목포에서 가수들 데려다가 놀거든요. 그러니가 초상집에서 노래 부르고 놀구나 놀라버리지요. 이런 데서는 노래는 안부르고 화토만 치지요. 밤세기 해준다고. 하옇튼 우리 시골에서는 초상이 나면은 팥죽을 쑤어다 주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아마 누가 죽고 그러면 위로하기 위해서 무엇을 갖다 주어야 되겠는데 내가 이것만큼은 손댄 일이 없다. 그말이어요. 누구를 위해서 떼었습니까. 가난한 자를 위해서 십일조를 뗀 것이어요. 이것만큼은 손댄 일이 없다 그런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장날이 될수록 헌금이 점점 줄어든다. 장끝나고 이익 보니까 이번 주일에 헌근해야겠다고 주머니에 넣어 놓았는데 점점 장날이 다가오니가 계산이 달라져요. 장을 한번 더 보면 돈을 더 벌겠지요. 그래서 징날 직전에는 헌금할 돈이 하나도 없어져요. 계산상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쿠 마귀가 들어왔구나. 하고는 교회에다 헌금 주머니를 두었다던가. 갖다 내버리고 갔다던가. 왜냐하면 계산이 자꾸 바꾸어지니가. 사람 마음이 오락가락해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내는 십일조야 거룩하게 떼어졌겠지마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가지 성읍에 보관한 것이야 그렇게 안하기 쉽지요. 그래서 이것을 뗄 때 부정하게 뗀 것도 없고 하옇튼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하고 정결하게 뗀 것입니다. 또 내가 슬프다고 해서 그걸 먹었다거나 누가 초상났다고 해서 그걸 먹였다거나 그런 적이 없다. 하옇튼 딱 보관했다 그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가난한 자를 먹였으니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더 주시라 그런 말이지요. 그러니가 하나님 앞에도 감사헌물을 첫 것을 드렸고, 그리고 가난한 자도 모든 힘을 다해서 정성껏 먹을려고 준비했으니 복을 주시라 그말입니다. 가난한 자를 먹이면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주어서 복을 준다 그말입니다. 나중에 설명해 보면 알겠습니다.

그 다음에 16-19절은 26장에만 포함된다고도 할 수 있고, 그 앞에 전체에 포함된다고도 할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여기서는 언약을 확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의 법을 지키라고 그처럼 명하고 있지요. 16절에 그처럼 되어 있지요. 그리고 너희들도 잘 지키겠다고 17절을 보니까 그렇게 확언했다. 그리고 18절에 여호와께서도 너희들을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그 명령을 지키게 하시려고 확언하셨다. 백성도 확실히 말하고 하나님도 확실히 말했습니다. 만일 이렇게 잘하면은 하나님의 성민으로 복을 주실 것인데 칭찬과 명예와 영광을 모든 민족에 뛰어나게 하는 것이 성민의 복이지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전의 시내산 장면을 회상하는 장면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다 듣겠나이다. 그렇게 맹세했지요. 그리고 하나님도 너희는 거룩한 내 제사장 나라됐으니 이 말을 지켜라. 그렇게 했지요. 안지키면 벌받을 것이다. 둘이 약속을 확실히 단단히 했다 그말입니다. 무엇을 내용으로, 말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 이것을 가지고 양쪽다 대답을 했다 그말입니다. 만일에 이 약속을 잘 지키면은 하나님이 그 백성 보배로운 백성으로 택한 복을 주는데 그것은 모든 민족에 뛰어난 것이 그들의 복이어요. 칭찬과 명예와 영광이 뛰어나요. 그것이 제사장 나라로 보배로운 백성으로 이스라엘의 복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시내산 언약장면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말씀하고 있지요. 가령 아들은 듣겠나이다. 하는데 아버지가 들을라면 듣고 말라면 말아라. 그러면 아버지 노릇을 해줄까요 못해줄까요. 못해주지요. 그러니까 아들도 다 듣겠나이다 해놓고 아버지가 너 안듣기만 해보아라. 매 맞는가 안맞는가. 약속을 단단히 했다 그말입니다. 말한 잘 들으면 내가 너 다해주마. 했다 그말이어요. 그것이 서로 약속을 확인한 것이지요. 백성도 확실히 말했고 하나님도 명령을 지키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러니 지키면은 보배로운 백성으로 그 칭찬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어떻게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서. 그러니까 여기는 그런 의미로 26장까지는 앞에 4장부터 이제까지 총 종합하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여기서 마지막 끝맺으면 끝인가? 끝일 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또 끝맺음에 강조점이 있지요. 27장에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언약 채결식을 해라. 아멘, 아멘 화답을 해라. 언약 채결식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따른 복을 28,29장에 말하지요.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은 이제 끝나지요. 그리고 30장에 다시 또 설교를 시작하고 있지요. 그런 의미로 끝맺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 말입니다. 26,27장은 4:44에서부터 모세가 선언한 언약의 끝입니다. 그런데 끝인데 어떻게 다르냐 하면은 26장에서는 언약이 성취된 기업의 땅에서 감사와 헌신과 사랑의 교제와 언약의 신실할 것을 명하지요. 방금 내용은 그 내용이고, 27장에서는 기업의 땅에 들어가 행할 언약채결식을 말함으로 실은 끝맺고 있다. 이스라엘은 기업의 땅에 들어가서 토지 소산의 모든 맡물을 여호와께 드립니다. 맡물은 여호와께서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언약을 성취하사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을 감사하는 예물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땅의 맡물을 드릴 때 그들이 여호와께 말해야 되는데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저들의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고난에서 큰 권능으로 건지시고 이처럼 언약을 성취하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음과 그들이 그 땅에 들어가서 수확하였음을 하나님 앞에 아뢰이는 감사의 예물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제사장과 함게하시고 레위인의 봉사를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언약의 땅의 맡물을 제사장의 하나님께 드리고 그리고 그들에게 주신 복을 레위인과 함게 즐거워합니다. 이전에 애굽에서 그들이 나그네로 우거했던 것처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들과 함게 즐거워하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께 나아가서 당신의 여호와 하나님께 아뢰소서. 이렇게 말하지요. , 제사장과 함께 함이 그들의 함께함의 핵심이어요. 3년은 가난한 자를 위한 십일조를 드리는 해입니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드리기를 마친 후에 그 십일조를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먹어 배부르게 해야 됩니다. 여호와의 성물로 가난한 자를 먹이는 일을 여호와의 명대로 잊지 않고 충실히 행했다고 말을 해야됩니다. 거기 본문에 그렇게 나왔지요. 어떻게 했냐 하면은 성물을 뺄때부터 거룩하게 하고 어떤 급한 경우에도 그것을 축내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해서도 축내지 아니하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 완전하게 구별하였노라고 그렇게 여호와께 구하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대단한 열심히 한 것이지요. 가난한 자를 여호와의 성물로 온전히 먹인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에 복을 주십니다. 가난한 자도 여호와의 성물로 먹어 배부르도록 그 땅에 복을 주신다 그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얻었고 그들이 가난한 백성을 하나님의 성물로 먹이면은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더욱 복주셔서 그러면 가난한 자도 십일조를 넉넉히 먹겠지요. 그렇게 된다 그말이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나 가난한 자나 전부 여호와의 성물로 먹어서 배부르도록 복을 주신다 그런 말입니다. 이 언약의 말씀은 조상들과 맺은 것이 아니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모압 평지에선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실 때에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리라고 확언하였고, 또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그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이 확언한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모든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들을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전에도 됐고 앞으로도 되게하겠다 그런 말이지요. 그전에는 안됐는데 앞으로 되게 하겠다는 말이 아니지요. 그전에 시내산에서는 언약의 나라로 언약 백성이되게 하였으면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을 먹고 모든 민족보다 높고 복된 의미로 여호와의 백성으로 삼으신다 그런 말이지요. 어렸을 때도 아들삼고 커서도 아들 삼아요. 그런 말이어요. 그전에는 자격이 없었는데 나중에 자격을 준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언약을 확언했다. 시내산 장면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런 말입니다. 실은 이것은 모압 평지에서 맺은 언약이지요. 신명기 처음에 말했지요. 조상들과 맺은 것은 살아있는 너희와 맺은 것이 아니냐. 4장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시내산 장면을 하느냐, 그들이 언약의 후손이어요. 그래서 그 말을 하고 있다. 그러면 이 은혜의 일이 신약에서는 어떻게 완성되고 또 교회에 적용되는가? 그런 말이어요. 적용된다 그 말은 이해한 것을 의지적으로 적용한다 그 말이 아니라 교회가 그것을 누리는가, 그런 말이어요. 누리지 못한 것은 적용될 수없어요. 누리지 못하면 적용될 수 없고 누리지 못하면 해석될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해석한다 적용한다 하는 말은 소위 헬라 철학적인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 히브리적인 사상이어요. 그것은 그들에게 시행되기 때문에 해석되고 적용되는 것이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맹세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질서로 성취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신 정도가 아니지요. 이전 아브라함이 보았던 것은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으로 완성을 했다. 그리고 만민 중에 택하신 교회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을 거기 세우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만민 중에 택하신 교회를 거기 세우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된 그의 교회에 자기 안에 있는 영생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이 흐름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영생을 주셨습니다. 교회는 이제 몸으로 산제사를 지냅니다. 그냥 첫 것을 가지고 하나님 왔나이다.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산제사를 지내고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일에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서 함께 참여합니다. 가난한 자를 3년의 십일조로만 먹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게서 몸을 주셔서 그들을 사랑하신 사랑으로 그가 우리에게 생명의 선물로 준 것으로 그 일에 참여한다. 그러니까 고린도후서 8,9장 헌금론에 나와있는 이야기지요. 그렇게 우리는 한다. 그리스도를 순종하여 그의 새 계명을 지키는 자를 그의 나라의 영광으로 복주신다. 그의 새 계명은 사랑의 계명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인데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지금도 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오시면은 참으로 그 영광에 참여하는 백성으로 온전케 복을 주시겠지요. 그렇게 복을 주신다. 그렇게 적용을 한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때도 벌써 십일조가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을 레위지파가 먹는다는 그런 민수기적인 의미도 있지마는 신명기에서는 14장에 보면은 십일조를 하나님 집에 드리고 거기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되 너희 집에 있는 가난한 자를 전부 데리고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해라. 3년마다 십일조를 거두워서 성에 보관했다가 네 성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먹여라. 벌서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의 성물인데도 제사장과 레위인만 먹는 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온 백성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요. 왜냐하면 신명기에서 옛 언약이 완성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지금도 우리들은 그러니까 신명기 갖고 설교한 부흥사가 없겠지요. 그것 갖고 설명했다가는 십일조 갖고 구제금으로 쓰라는 이야가 되고 하나님 전에 내라. 그러면 예배당에 내라 알겠는데, 네 집에다가 보관했다가 찾아오는 가난한 사람을 먹이라 그러면은 아이 거 자기 생색내라는 말로 해석하거든요. 그러니까 부흥사들은 신명기 갖고 설교를 못할 것입니다. 십일조는 인제 복받으라는 말은 28장으로 설교를 하는데, 아마 십일조 내라는 본문은 신명기 본문은 못택할 것이어요. 아마 민수기를 택하면 좋을 것이어요. 십일조 손만 대면 큰일나거든요. 또 레위 지파가 낸 것은 제사장을 주어야돼요. 제사장이 가는 곳에 레위지파는 가면 안되어요. 레위 지파가 가는 곳에 백성은 가면 안되어요. 십일조도 그렇게 되어 있어요. 얼만큼 층층이어요. 그쯤 해놓아야 효과가 있을 것이어요. 신명기는 그렇지 안해요. 더구나 신약에서는 그런 본문은 없다. 몸으로 산제사를 지낸다. 하늘의 생명을 얻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생명이 되신 사랑으로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그 생명의 일을 봉사해야 그의 몸의 일에 참여한 것이다. 그렇게 바울이 헌금에 대해서 말하면서 고린도후선 8,9장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것이 우리 하는 일이다. 어려서는 동생에게 사탕 하나 주어도 큰 생색이지요. 나야 사탕 먹고 동생이냐 손가락을 빨든지 말든지 각자 아버지가 나누어준 대로 먹으면 그만이고 거기서 입에 있는 것을 하나 내어 주어도 큰 생색이지요. 요새는 입에 있는 것을 안먹습니다마는 우리 때는 사탕도 그렇고 껌도 입에 있는 것을 빼앗아 먹었어요. 그런데 다 큰 아들이 그러면은 동네 사람들이 웃어버리겠지요. 큰 아들은 동생은 형편 없어도 아버지 노릇을 해주어야 큰아들이라고 칭찬을 받아요. 어렸을 때는 그렇게 살면되지마는 어렸을 때는 저 먹을 것을 동생에게 빼앗기면 에이 짜잔함 놈아, 네 입에 있는 것도 못지키냐. 저걸 뒀다 었다 쓸까. 하고 오히려 책망듣기 쉬워요. 그러나 커서는 그렇게 하면 도둑 되어요. 사람 사는 것도 어렸을 때와 컸을 때가 달라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생명의 일도 다르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것을 가르치지는 못해요. 그러니까 실은 구제라는 것이 여기서 하나님 앞에 초태생을 드린 것, 십일조를 드린 것이 연결된 것처럼 실은 신약교회에서도 성찬 예배와 연결되어 있다. 자기의 몸을 주셔서 우리의 생명을 하늘의 부요함으로 부요케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셔요.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모였을 때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으로 그의 몸된 가난한 백성이 그의 몸의 지체로서 먹을 수 있어야 되어요.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헌금론이어요. 그런데 우리는 예배와 구제는 아주 별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단지 구제는 예수 안에 몇 프로, 그런 개념이지 어떻게 주의 몸으로 나누는가 하는 개념을 잘 가지고 있지를 않다. 그러니까 우리 보수파는 십일조 내는 것, 주일날 안빠지고 예배당에 나오고, 그것도 인제 몇 개 뭐 안하면 더 고상하고 이렇게 되어 있다. 그것이 보수파하고 자유주의하고 큰 표시가 될 것이어요. 그러니까 성경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거의 유대화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아시겠지요. 물론 여러분이 이렇게 하는데 그래도 아, 나는 그냥 나를 믿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데는 몸으로 산제사를 지낸다니까 다 거룩하지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면은 거룩하지 않은 영역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면은 다 거룩하고 믿음으로 안살면은 다 부정합니다. 그렇게 해 놓고는 다 거룩하지요. 가령 남편 같으면 아내에게 대한 의무도 있고 자식들에게도 의무가 있겠지요. 마땅히 우리의 분깃들이 있어요. 할 일들이. 마땅히 주의 교회를 위해서 우리들이 맡은 일들이 있어요. 그런 것을 몸으로 산제사를 지낸다고 여러분이 가족에게 안내놓고 다 먹어버리는 양반이 없거든요. 가족에게 줄 것, 아내에게 신 사줄 것, 얘기들 학비 낼 것, 다 준비한다 그말이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에 낼 것만큼은 말하자면 몸으로 산제사를 지내지요. 그리고 맘대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 삶의 영역이 있는데. 그리고 인제 가난한 자 구제한 것도 몸으로 산제사를 지내지요. 한 몸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 다 먹고 나누어 준 것이 없어요. 그런 식으로 대충 살아서는 안된다. 그런 개념을 여러분에게 어떻게 적용할지는 여러분이 계획할 것이지 교회에서 여러분의 생활비 중에 몇 프로는 떼십시오. 그렇게 규례를 다시 정해줄 수는 없다. 그런데 그래도 여러분의 생활에는 전부 몫이 있어요. 써야될 계획들이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헌금부터 계산하겠지요. 그런데 그전에는 그 몫을 안떼어 놓으면 벌받을 줄 알고 떼었어요. 십일조 뗀 것처럼. 지금은 그런 개념은 없어요. 그래도 여러분의 생활을 절제하고 규모있게 하라 그말이어요. 그런데 그런 계획을 안세워놓고 믿음으로 살지, 해놓고는 실은 자기 마음대로 산다 그말이어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그말입니다. 왜 다른 일에 대해서는 품목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없이 몸으로 산제사를 핑계대 놓고 대충대충 사냐 그말이어요.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합당하지요. 그런 의미로 여러분이 나는 교회 봉사는 1/10로 하든지 2/10로 하든지 안그러면 월 얼마로 하겠는지 여러분이 계획을 세우는 것은 사려 깊은 행동이고 구약을 본따라 그 말이 아닙니다. 사려 깊은 행동이고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해서 예비하는 것도 사려 깊은 행동이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장차 어려운 일을 계산해서 예금까지 하지요. 아직 일은 안벌어졌지마는. 그러니까 그런 일에 있어서 사려깊게 행동하라 그말입니다. 예금하지 말라 그말이 아니라 사려 깊게 행동하라 그말입니다. , 우리가 주의 교회를 봉사하고 있기 때문에 몸으로 산제사를 지낸다는 말을 가지고 여러분이 방탕한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단지 그런 것을 구약 규례를 가지고 이런 식으로 하라고 그렇게 권위적으로 부과해서는 안된다. 여러분 자신들이 분별하고 계획하라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근본 개념은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내고 주의 몸의 일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신약 성도의 믿음의 삶, 하늘의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는 믿음의 삶입니다. 그런 말입니다. 주께서 가르친 기도로 함께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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