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구속사

신명기 강해 18

찬미예수님 2024. 8. 31. 10:32

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 18

 

신명기 18장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야기가 1-8절까지에 있고, 9-14절은 점치는 자, 길흉을 말하는 자를 죽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그 다음 15-19절까지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운다는 이야기, 20-에서는 거짓선지자를 구별하는 내용,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15-를 한꺼번에 묶었습니다. 제사장에 대한 칭호를 보면은 1절에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여기 보면 제사장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레위 사람 제사장, 그리고 레위의 온 지파, 강조점은 레위에 계통에 있지요. 그렇게 해서 제사장의 칭포를 레위 사람 제사장, 이렇게 붙여서 레위 지파를 강조합니다. 레위 사람의 마땅한 응식은 1절에 보니까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으라. 그렇게 되어 있지요. 레위인이 여호와의 화제물을 먹는 이유는 1절을 보니까 그들은 기업이 없고,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는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제사장을 받을 응식은 어떻게 되어 있냐? 2절이었고, 그 다음 3절을 보면 제사장이 백성에게 받을 응식은 이러하니, 무엇무엇을 받습니까? 드리는 제물의 우양을 물론하고 그 앞에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를 제사장이 받는다. 4절을 보면은 처음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처음 깍은 양털을 그에게 주어라. 제사장이 받을 응식과 그 의미는 무엇이냐 하면은, 응식은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의 우양의 넓적다리, 두 볼과 위, 처음 익은 곡식, 포도주와 기름, 처음 깍은 양털이 제사장의 몫이다.그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왜 이것을 주라고 그러는가? 레위기 7장에도 보면은 제사장이 받을 몫이 있어요. 그런데 이것 하고는 달라요. 거기서는 오히려 흔든 가슴, 등 뒷다리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거제물과 요제물을 먹으라는 것이 레위기 7장 이야기에요. 그런데 거기서 든 다리는 오른쪽 덥적다리입니다. 뒷다리에요. 그러니까 상당히 크지요. 앞다리는 조그만 하지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앞 덥적다리와 두 볼, 위 하니까 갈지짝도 빼져버렸지요. 거기서는 가슴, 가슴을 흔들어 드리는데 그것은 제사장 것, 그렇게 하고 있는데 여기 보면은 상당히 차이가 나지요. 그러면 왜 그런 말을 하는가? 그런 이야기에요. 거기서는 하나님의 예물에 참예하는 것이 제사장의 응식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흔들어 드리고 올려드리는 것은 제사장의 것이어요. 왜냐하면 레위기는 하나님 앞에 거룩함으로 구별하는 것이 레위기거든요. 거룩한 구별, 레위지파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제사하는 것이 제사장의 직무에요.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 앞에 드린 것에 참예해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흔들어 버리는 것, 올려드리는 것은 전부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이거든요. 그건 제사장 몫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이렇게 드리면 되는데 소나 양을 물론하고 드린 제물의 앞 덥적다리, 두 볼, 그리고 위, 레위기에서는 위같은 것은 안주어요. 우리 같으면 천엽이 맛있는데, 레위기에서 내장은 전부 태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보니까 그걸 제사장에게 주라고 그랬거든요. 또 곡식의 첫 것과 양털의 첫 것을 주라. 이것은 하나님 앞에 드린 그 예물에 참석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이 삯을 주는 식이어요. 하나님이 자기를 봉사하는 자에게 삯을 주는 식이어요. 왜냐하면 레위지파는 하나님을 봉사하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업이 되시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낸 것 중에서 받아야 되어요. 여기서 왜 그런 것을 주어야 되느냐 하면, 5절에 설명하기를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으로 영영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하나님을 섬김에 대한 삯이 되는 것이지요. 레위지파와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겨요.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사제물과 기업을 먹는다. 하나님의 사제물은 하나님 앞에 드린 제물이고, 그 기업은 초생물이나, 첫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지요. 그 중에서 먹는다는 말이어요. 그러니까 제물 중에는 우양을 물론하고 앞 넘적다리, , 두 볼이고, 그리고 그 기업 중에서는 곡식과 포도주, 기름 이런 첫것 그리고 양털의 첫 것을 먹으라는 말이어요. 실은. 물론 레위지파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안했지마는 레위 지파의 장자가 실은 대사장이어요. 그러니까 제사장 문제에서 함께 이해하면 될 것이어요. 그러니까 레위기에서는 하나님에게 속한 것, 하나님께 속한 것이 무엇이냐? 어떤 것이 거룩하냐? 제사장은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직무를 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드려진 것을 먹어요. 그래서 거제물이나 요제물은 전부 제사장의 것이어요. 또 하나님 앞에 한 웅큼을 태워드리면 나머지는 제사장의 것이어요. 하나님의 단에 드려지는 것을 먹는데, 신명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땅의 기업으로 봉사하니까 땅의 기업으로부터 받으면은 레위지파는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업으로부터 먹는다. 그런 말입니다.

성을 떠나 성소에 이른 레위인의 권리와 의무, 1-5절까지는 레위지파와 제사장에 대한 응식을 이야기하고, 6-8절은 그러면 그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성읍을 떠나면은 어떻게 먹고 살것이냐 그런 이야기에요. 레위 지파도 각 기업으로부터 성을 받고 성으로부터 2천 규비씩 들을 받고 그렇게 살지 안해요. 만일에 레위 지파가 자기가 살고 있는 성을 떠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 사람은 특권이 있는데 만일에 그가 간절한 소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소원이어요. 내용을 읽어보면 알겠지요. 그래서 만일 그가 성소에 가면 당신은 이번에 당번이 아니니까 당번을 못한다. 그리고 당신은 암섬겼으니까 밥도 못먹는다. 그러고 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나도 가서 하나님의 성소에서 섬기리라 하고 레위지파가 오면은 그는 지금 성소에서 섬기는 레위지파와 똑같은 권리와 하나님을 섬기는 데도 똑같은 권리가 있고, 먹는 데도 똑같은 권리가 있다. 그러면은 당신은 당신의 성에서 떠나서 여기 왔으니까 당신 성에서 재산 다 팔아서 여기 왔으니까 그걸 먹어라. 그런 것이 아니라 그건 우외로 두고 성소에서 섬기는 사람과 똑같이 섬기고 똑같이 먹을 수 있다. 그런 말입니다. 이런 말은 목사가 부자면은 그 재산은 놔두고 교회에서 나오는 것으로 먹으라는 그런 교회 행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재산 많은 것으로 먹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서 준 것을 먹을 수 있어요. 자기에게 유익하기는 교회에서 주는 것으로 사는 것이 제일 좋아요. 목사가 자기 재산을 의지하지 않고 교회와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제일 좋은데 여기서는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입니다. 어떤 목사가 부자인데 나는 이 교회에서 공짜로 봉사를 할렵니다. 그래서 자기 부동산이 많으니까 이자만 해도 많고 하니까 나는 이 교회에서 하나도 안받고 그냥 봉사만 할렵니다. 하고 봉사하면은 그것이 교회에 유익하고 목사에게 유익한가? 별로 유익하지 못해요. 여기서는 그런 교회의 제도를 도입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레위 지파는 자기가, 여러분이 민수기 같은 데를 보아도 레위 지파의 성읍이 있지요. 자기 성읍을 얻으면 양쪽으로 2천 규빗은 레위 지파의 성읍이어요. 그러면은 자기 것만 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기업을 떠나는데 무슨 의도로 떠나느냐 하면, 나중에 다윗 때 보면은 레위 지파가 24반열로 돌아가면서 섬기지 안해요. 자기 차례가 아닌데도 나도 성소에서 섬겨야 되겠다고 하면은 그는 언제든지 그 권리를 똑같이 가진다 그런 이야기에요. 지금 이 말은 무슨 말을 할려고 그러는 것이겠이요? 레위 지파는 언제든지 성소에서 섬기고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말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어요. 성소에서 섬기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거든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그 특권을 가지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레위지파는 당번이든 아니든 그 권리가 똑같지요. 누구든지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누구든지 성소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다.

그 다음 9-14절을 보면은 이런 저런 쫓아낼 이야기를 많이 해요. 유업의 땅에 있는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는 무엇이냐? 9절에 보니까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지니 하면서 10-에서 가증한 행위를 쭉 설명하고 있지요.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대로 지나게 하는 일, 점치는 일, 요술하는 일, 무당 이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용납하지 말아라. 그것이 10-11절까지 그들의 가증한 행위입니다. 이것은 이런 일만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는 죄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얻을 가나안 땅의 백성들이 이 일을 하고 있어요. 항상 성경은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경영하시지, 죄 중에 제일 큰 죄는 무엇이냐? 우상 섬기는 죄,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그 땅에 들어가면은 그들이 이런 못된 짓을 하고 있지 않느냐? 너희들은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에요. 어그저께도 누가 내게 전화로 묻드라고요.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담은 둘 외에 아무도 다른 사람이 없었는데 그 다음 아들 딸들이 어떻게 자식들을 낳겠느냐? 형제끼리 결혼하지 않았겠느냐? 노아 때도 온 세상을 다 쓸어버리고 노아의 세 아들만 남았는데 그들은 사촌 끼리 결혼하는가? 그렇게 했지 않았겠느냐. 그리고 인제 레위기 18,19장을 보면은 이런 저런 죄들을 많이 말하고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을 묻고 있는데.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윤리, 그런 규칙을 제시할려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말하는 의미에요. 그러면 일단은 레위기 18, 19장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을 심고 가나안 백성은 부정하지마는 너희들은 거룩한 내 백성이 아니냐?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들 같은 짓을 하지 말아라. 이것이 레위기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지 몇촌까지 결혼하면 죄가 안되는가? 그런 이야기를 할려는 것이 아니다. 거기 보면 상당히 수주 낮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요. 이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고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그러면 고모만 안범하면 되는가? 별 볼일 없네요. 우리가 동방 예의지국 몇 촌까지입니까? 사돈내 팔촌까지 있지요. 우리는 한참 거리가 먼데 거기는 보니까 아주 별 볼일 없는 것 같지요. 동물과 그런 일이 없도록 해라. 별 말을 다 써놓았어요. 그것은 결혼 질서가 어느 것이 합법하고 어느 것이 불법한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가나안 백성들처럼 그런 가증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거기서 말하고 있는 문맥이어요. 그러면 아담 때는 형제끼리 결혼했지 않냐? 거기서는 결혼질서를 설득할려는 것이 아니라 부부는 한 몸이고 온 세상 온 사람은 몸이다. 하나님 연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담 문맥이지 거기서는 결혼 질서를 말하고 있지를 안해요. 우리는 그 결혼 질서는 만고 불변한줄 알고 있거든요. 모든 시대가 똑같아야 될 것이 아닌가? 그런 개념을 갖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미국 사람은 팔촌까지이고 우리는 10촌까지인가 한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식이면 괜찮고 그런 틀을 직접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말입니다. 물론 레위기 18,19장에 있는 촌수는 분명히 안되겠지요. 그러면 고모는 범치 말라. 했으니까 고모보다 조금만 촌수를 넘기면 괜찮겠는가? 최하의 수준을 거기까지 겠지마는 거기서는 몇 촌까지는 결혼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가령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면 너 이것 하지마, 그러면은 거기까지는 금지된 것은 알겠지마는 그 안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직접 언급하지 않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것을 하지 말하고 했으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혼 촌수다. 바로 직접 읽을 필요는 없다 그말입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 백성의 가증한 것을 본받지 말라는 것이 핵심이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보면은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행하고 있는데 우상 섬기는 죄가 가장 나쁜 것이구나.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가나안 백성들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섬겨요. 그러나 너희들은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레위지파를 언급하면서 그런 말을 하고 있지요. 여기서는 백성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문맥에서 하고 있지 않고 레위 지파가 어떻게 하나님을 봉사하는가, 그 문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신명기 13:6-17:2-와 이 본문을 비교해아라. 13:6-에도 거짓 선지자는 죽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17:2-에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여기 18:9-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각각 문맥이 다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13장에서는 거짓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자들이지요. 만일에 네 품에 있는 아내가 살살 그런 일을 하는가? 그를 죽여라. 어느 한 성읍에서 그런 일을 하는가? 말하자면 거짓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선지자가 일어나는 항목에서 하고 있는 것이 13장에서 말하는 강조점이어요. 17장에서 하고 있는 말은, 만일에 백성이 그런 일을 하는가? 재판들은 재판장 문맥에서 하고 있지요. 16장18절을 보면 재판장을 세워라.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재판을 해야 된다. 그 문맥에서 지금 쭉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16:21-에 아세라 상을 여호와의 단 옆에 세우지를 말아라. 17장2절에 만일에 남자 여자나 언약을 어기고 이런저런 나쁜 짓을 하는가? 백성이 이런 일을 하면은 재판장이 이런 일을 판단해라. 그 문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여기 18:9-에서는 거짓 선지자가 일어났다거나 백성들이 그런다거나 그런 문맥이 아니라 어떻게 레위 지파가 백성 중에 뽑여서 하나님을 봉사하는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먹을 것이 무엇인가? 그 문맥에서 말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실은 여기서 레위지파가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어요. 그들이 가증한 일을 본받지 말아야될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내어 쫓지요. 가증해지니까. 언약의 땅으로부터 쫓겨나는 것이 그 때는 저주지요.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13절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그러면 이 항목만 띠어 가지고 도덕적으로 완전함, 그렇게 읽으면 안됩니다. 여기서는 어떤 일에서 완전하라는 말입니까? 점을 친다거나, 귀신을 불러들인다거나 이렇게 이방인처럼 하나님을 섬기면은 안됩니다. 소위 이방 굿쟁이들처럼 하나님을 섬기면 안됩니다. 누가, 레위지파가. 그렇게 섬기면 안됩니다. 그 일에 있어서 완전하라 그 말이지요. 완전하라 해 가지고 도덕적을 전반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무 상관이 없고, 이렇게 이방인들이 자기 신을 섬기는 방식으로 레위지파야 너는 그렇게 섬기지 말아라. 그에 대해서 너는 완전하라. 그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세우신 선지자 하나를 너희를 위해서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누구냐 하면은, 나와 같은 선지자, 모세 같은 선지자를 세우시리라고 말하고 있지요. 그런 선지자를 세우시는 이유는? 호렙산 날의 기사를 비교해 보면은 왜 그런 선지자를 세우다는지 확실히 알 수가 있겠지요. 총회의 날에 기사는 출애굽기 19장에 언약채결할 수 있지요.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요단강 동편에서 언약채결을 말하면서 신명기 5장에 있지요. 그리고 여기 신명기 18장에 있어요. 하나님이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이스라엘 총회를 모으시고 이런 저런 했던 이야기가 이런 세 군데 기사에가 나옵니다. 이것을 비교해 보면은 왜 이런 선지자를 세운다고 하는지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 거꿀로 풀면은 여기 신명기 18장에서 총회의 날을 이야기할 때는 무슨 말을 할려고 그러냐 하면은,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리니, 그 말을 할려고 총회의 날에 있었던 기사를 인용하고 있지요. 새로운 선지자를 세우는 일에다가 총회의 날의 기사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은 어떨 때 총회의 날입니까? 하나님이 강림하셔서 그 나라를 세우실 때 총회를 모으셨지요. 하나님이 그 나라를 세우실 때 총회를 모은 것이 출애굽기 19장이지요. 신명기 18장은 새로운 선지자를 일으키리라 말하면서 지금 총회의 날 기사를 언급하고 있지요. 항상 본문에 있는 이야기만 하면 됩니다. 신명기 5장에서는 어떨 때 총회의 날을 말하고 있습니까? 신명기 5장도 출애굽기 19장과 비슷한데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들어서 복받으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새로운 선지자를 일으키리라는 장면은 아니어요. 여기 18장은 무슨 말을 할려고 총회가 열리고 있습니까? 15절에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리니이것이 총회의 날에 호렙에서 너희들이 하나님 앞에 구했던 것이 아니냐? 여기 18장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운다는 것을 말할려고 총회의 날에 대한 기사를 언급하고, 출애굽기는 강림하셔서 돌판에 새긴 법을 주시고 그 나라를 조직했을 때 총회 기사가 있고, 신명기 15장은 너희들이 내 말을 잘 지켜서 복받으라. 그때 십계명을 말하지요. 그때 총회를 모았었지요. 사람되라는 말도, 공부 잘하라는 말과 시부름 잘할 때 사람되라는 말하고, 그 사람되라는 말도 그 문맥에 한정되지요. 무엇을 말할려고 사람되라고 하는가에 따라 문맥이 한정되어요. 그것은 알기 쉽고, 네가 어려서는 공부를 참 잘했다. 이 말을 한다 치십시다. 그러면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것 같아도 그 말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가에 따라서 너 어려서 공부 잘했다는 말은 변화되지요. 뭣할려고 이 사람이 공부 잘했다는 말을 하는고? 그 다음에는 다른 말을 할려고 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실은 공부 잘했다는 말은 아무 상관이 없는 말을 하는 것이어요. 강조점이. 그래도 계통은 같겠지요. 순종을 잘했다든지, 무엇을 잘했다거나. 가령 너는 공부를 참 잘했어야. 하면서 돈좀 잘 써라. 하면은 공부 잘하는 것과 돈쓰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인 것 같아도 실은 공부 잘하라는 말이 변화를 가져온 것이어요. 무엇으로. 돈 잘 벌라는 말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전초작업으로 변화를 가져오지요. 그 말을 할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어요. 무슨 말인가 알겠지요. 사람되라는 말은 보편적으로 하는 말이니가 쉽게 알겠는데, 구체적인 예증을 들어버려도 그것이 어떤 말을 할려고 끌어 오느냐에 따라서 의미 변화를 가져온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너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한참 했다가 너 돈좀 잘 벌어라. 그러면 기분이 확 버려버리겠지요. 실은 돈 잘 벌라는 이 말을 하기 위한 것이니까. 보통 우리 부모들 말이 그렇지요. 뉘집 얘기들은 공부도 잘하고 요새 얘기들은 머리도 좋더라. 공부 못하는 자기 아들이 눈에 띄거든. 그러면 옆집 아이들 공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자기에게 화살이 돌자말자 기분이 나빠버리겠지요. 요새 얘기들 버렸더라. 한참 이야기 하다가 너도 조심해라. 그러면은 이제까지 동네 얘기들 버렸다는 말은 자기를 두고 한 말 같아서 기분이 아주 나쁘지요. 의미가 어떻게 바꾸어지는가 알겠지요. 그러니까 총회의 날에 있는 기사도 똑같이 말을 해도 이것을 무엇을 말하려는 문맥에서 이 말을 끌어오는가에 따라 의미 변화가 있다 그말입니다. 나는 지금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어요. 우리는 성경이 굉장히 어려운 책인줄 알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상식적인 표현법이 아니면은 그것은 어려운 책이어요. 지금 성경 해석법은 상식적인 해석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총희의 날을 모르니까 다른 곳을 다 비교해 보아도 몰라요. 이 문맥에 있는 이야기만 읽으면 되어요. 여기 나온 이야기만 읽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총회의 날의 기사가 세 번 나와도 여기서는 모세와 같은 새로운 선지자를 일으키겠다. 하는 그 문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선지자를 세우는 이유를 더 알 수 있을 것이어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직무와 권위는 무엇이냐 하면은, 백성들은 무엇이라 했어요? 총회의 날에 하나님 앞에 구했는데, 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소서.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말이 옳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게 벌을 받으리라. 여기서 그 선지자의 직무는 어쩌냐 하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다 말하는 자이지요. 마치 모세가 했던 것처럼. 만일에 그를 거절하면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어요. 그러면은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이런 말이 있느냐? 없어요. 출애굽기 19장에 빽빽한 불 가운데 말했지요. 백성들이 두려웠어요. 죽을까 하나이다. 하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말이 맞다. 너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겠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의 말이 맞다. 왜 내가 불꽃 가운데 강림한 줄을 아느냐? 오히려 내가 거기서 무시무시한 말을 할려고 그렇게 했다고 말을 해요. 백성들이 너를 믿고 내가 너하고만 상대한 줄 알게 할려고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 나왔다. 너는 나하고 말할 수 있어요. 그들은 보면 죽는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가까이 오면 전부 죽는다는 말이 강조되어 있지요. 가까이 오지 말아라. 모세는 홀로 가서 말하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하면 모세가 백성에게 말해요. 모세가 왔다갔다 해요. 백성은 겁나서 두려워 떨어요. 그들의 말이 맞다. 왜 내가 너하고는 불 가운데 대면해서 말하는줄 아느냐? 백성이 너를 믿게 할려고 그런다. 너만 내 상대고 나머지는 아닌줄 알게 할려고. 그것이 19장에서 하고 있는 말이어요. 하나님 나라를 조직하는데 중보자는 모세 뿐이어요. 백성들은 가까이 갈 수 없어요. 그것이 출애굽기 19장에서 말하는 강조점이어요. 여기 신명기 5장22절에도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그랬을 때,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듣고 지키게 할려고 그런다.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내가 왜 불꽃 가운데 강림한줄 아느냐?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듣고 지키게 할려고 내가 불꽃 가운데 강림했다. 백성들은 두려워 떨거든요. 그러니까 신명기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너희들은 내 말을 순종해서 복받으라. 왜 내가 이렇게 온줄 아느냐? 내 말을 잘 듣고 복받으라고 왔지 않냐? 그러면 신명기 5장이어요. 우리는 그 음성도 들으면 죽겠고, 불만 봐도 죽겠고, 우리는 죽겠나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말이 옳다. 그러면 분명히 역사적인 기사는 출애굽기 19장이어요. 처음에 있었든 기사이니까. 거기서는 내가 너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는 말이 일체 없어요. 신명기 5장에서도 그런 말이 일체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느닷없는 말을 끼워 놓았어요. 백성들이 두려워 떠는 것이 옳다. 그러니까 내가 너와 같은 선지자 한명을 세울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 선지자의 말을 잘 들으라고 그래라. 그가 내 이름으로 하는 말을 안들으면 죽을줄 알라고 그래라. 느닷없이 중보자 세우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러면 그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신명기 18장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바꾸져 있지요. 무슨 일로 바꾸져 있습니까? 새로운 선지자를 세우리라는 그 문맥에서 바꾸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처음에 나오는 것이 주제에요. 너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해놓고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실은 언약 갱신적인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모세를 통해서 말씀했으면 새로운 모세를 주시면 그의 말을 들어라. 새로운 모세가 임하면 새로운 나라가 임하는 것이지요. 그런 언약 갱신적인 의미가 여기는 주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전혀 없는 기가사 여기 끼어져 있어요. 상황이 바꾸어져 있어요. 이전에 그들은 모세를 통해서 들었어요. 앞으로 모세 같은 선지자를 새로 세울 것이어요. 말하기를 하나님 보면 죽을까 하나이다. 해서 모세를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새로운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실 것이니 너희들은 그 말을 잘 들어라. 그렇게 말해 주고 있다. 그러니까 처음 호렙산에서 말하는 것과는 세로운 나라가 진행될 언약 갱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법이 있는데, 13장1-3절까지와 비교해 보라 그말입니다. 13장1-3절은 그 거짓 선지자가 무슨무슨 말을 하는데 그 말이 사실대로 이루어지는가? 그래도 믿지를 말아라. 왜냐하면 그는 애굽에서 너를 건져낸 하나님을 배반케 할려고 무슨 말을 하고 그 말대로 이적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여기 20-에서는 그런 말이 아니라 꺼꿀로 되어있어요. 만일에 어떤 선지자가 내 이름으로 무슨 말을 하느냐? 그리고 그 말을 이루는 힘이 없느냐? 그러면 그는 가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완전히 꺼꿀로 되어 있지요. 그러면 왜 그러느냐? 항상 문맥적인 의미를 살피라고 그랬습니다. 이것을 두 본문을 합쳐가지고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법, 그러면 다 거짓 선지자지요. 어떤 사람은 말대로 안되니까 거것 선지자, 어떤 사람은 말대로 되니까 거짓 선지자, 다 거짓 선지자지요. 그러니까 근접 문맥이 권위가 있다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신명기 13장을 읽어 놓고 이상하네. 18장을 보니까 꺼꿀로 되어 있네. 하고 그것을 합쳐 보았자 되는 것이 아니어요. 그전에 그것을 합쳐서 칼빈이 해석한 소위 조화적인 해석방식이어요. 그러나 조화적인 해석 방식은 각 문맥의 의미를 떠나버리기 때문에 옳지 않다. 그러면 13장에서는 백성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가 일어난다는 문맥이지요. 그런 사람은 권세적으로 일어날 것이어요. ?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대신해서 자기 권위를 동입을 시켜야 되거든요. 마치 안네와 얀브레가 모세를 대적해서 이적을 행했든 것처럼, 그러니까 그를 죽이라고 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말이 아니라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는 문맥에서 선지자 이야기를 해요. 실은 모세는 단순한 선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선지자지요. 그런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울 것인데 그 사람도 실은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선지자가 아니면은 가짜에요. 그것을 말하려니까 만일에 선지자가 내 이름으로 말하고 그 일을 실현을 못하는가? 그를 두려워 하지 말아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어요. 오늘 예수께서 표적을 보인 것도 그는 하나님이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세우신 분이기 때문에 오셔서 자기 백성의 생명을 새롭게 치료하신 것이어요. 만일에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는데도 그런 표적을 못보이면은 백성이 물어요.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표적을 보이라. 못보이면 가짜에요. 세례 요한은 자기를 그런 선지자로 말하지 안했기 때문에 표적을 보일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이 보낸 아들이라고 그러거든요. 이 성전을 헐라고 그래요. 새로운 성전을 짓는 사람은 메시야에요. 그러니까 그러면 표적을 보여라. 이렇게 자꾸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왜냐하면 당신이 모세가 약속한 그 선지자입니까? 세례 요한은 나는 그 선지자가 아니라고 그랬지요. 바로 예수님께서 그 선지자에요.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문맥의 의미를 아시겠지요. 그 문맥을 따라 해석하는 의미를 취하시면 됩니다.

모세 오경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와 응식에 대한 언급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조직하는 출애굽기에서는 제사장은 언약 백성의 대표자로서 성소의 영광을 옷입고 어깨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름을 두고 여호와를 대면하는 자로 묘사합니다. 언약 중보자는 모세고, 모세만 가까이 나가고 아무도 가까이 나가면 죽어요. 그래서 모세를 믿게 할려고 그렇게 했지요. 그러면 백성의 대표자는 누구냐? 아론을 데리고 올라와라. 19장도 그렇지요. 그러나 멀찌기 섯으라고 그래라. 아론이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대표자는 누구냐? 하나님이 자기 집을 짓고 거하시는데 대표자가 거기서 봉사하지요. 거기서 아론을 묘사할 때는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 어깨와 가슴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보석을 달고, 그리고 하나님을 대면해 서는자, 하나님이 거기서 아론과 말씀하겠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거기서 제사장과 레위지파는 어떤 일을 하느냐 하면은, 특별히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는 자입니다. 언약 체결 장면이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와 말씀하시는 것처럼 이제는 성소에서 제사장을 대면해서 말씀하실 것이어요. 이제는 제사장이 우림과 둠빔의 판결법으로 판단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그는 백성을 대표하기 때문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어깨에 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런 자가 아론이어요. 그가 받은 복은 하나님의 단에 참예해요. 하나님의 단에 드린 것에 참예하는 것, . 하나님은 단에 임하셔서 백성을 만나시지요. 19장에도 보면은 너희들이 토단을 쌓아라. 내가 그 단에 임해서 복을 주마. 단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집을 짓는데 그곳에는 하나님의 단을 두는 자리이지요. 그렇게 해서 언약 체결적인 의미가 강조되는 것이 출애굽기다. 거기서 레위 지파는 언약궤를 매지요. ? 하나님은 언약궤를 자기 보좌로 삼고 계시기 때문에. 레위지파는 언약궤를 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여호와의 단에 참예하여 하나님 앞에 올려드림, 그 단에 드린 제물을 먹습니다. 그것이 출애굽기입니다. 레위기는 성소에 속한 거룩과 안식을 주는 율법입니다. 무엇이 성소에 속하고 무엇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안식인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에요. 제사장만 물과 피를 뿌려서 하나님께 속하지요. 물과 피를 부림은 제사장이지요. 출애굽기에서는 영화로운 옷을 입으면 제사장이지요. 구약에서는 물과 피를 뿌리면 제사장이지요. 거기서는 영화로운 옷을 입은 것하고는 상관이 잘 없어요. 강조점이 다르다 그 말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영화로운 옷은 성소의 내부에 있는 영광스러운 것이어요. 성소 내부에 있는 영광스러운 색깔로 옷으면 제사장이어요. 그런데 레위기는 그런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부정하고 무엇이 정한가? 무엇이 하나님 성소에 속한가?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레위기다. 그러기 때문에 제사장은 성소에 속한 거룩한 자입니다. 백성 대신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고 그는 성소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백성을 축복합니다. 성소에 드리게 하고 성소에 속한 하나님의 축복을 백성에게 전달하는 자는 제사장이지요. 레위기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그는 여호와께 드린 예물을 먹습니다. 하나님의 단에 참예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 앞에 드린 예물을 먹는다. 하는 것이 레위기입니다. 그다음 민수기는 여호와를 봉사하며 싸우는 것이 민수기에요. 하나님은 백성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들이 아무리 범죄해도 인도하십니다. 무엇할려고? 백성으로 하나님을 대항하는 원수와 싸우고 하나님을 봉사케 하실려고. 그것이 민수기지요. 거기서 제사장은 그만 여호와께 가까이서 섬겨요.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면 어떻게 합니까? 죽여요. 레위지파는 그들도 가까이 섬기는데 제사장이 나가는 자리까지는 못나가요. 그러니까 민수기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진 중에 계시며 레위 지파와 제사장은 가까이 와서 섬기게 하고 이방인은 죽이게 하고 자기 백성은 섬기게 하고, 이런 이야기거든요. 그러니까 제사장은 그만 하나님 가까이서 섬기고 레위 지파도 가까이 오면 죽여야 됩니다. 그것이 민수기에서 제사장과 레위지파를 설명하는 방식이어요.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하는가? 그들은 하나님 앞에 드려진 것을 먹어요. 레위지파의 1/10은 대제사장에게 주어야 되어요. 그것이 민수기입니다. 제사장이 섬기는 곳에 레위인은 갈 수 없고, 대제사장은 레위인이 받았던 것에서 1/10을 또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그들이 살아요. 그렇게 많은 간격을 두고 하나님이 계시고 가까이 오면 죽여요. 그것이 레위기지요. 고라의 자손들도 가까이 갈려다가 죽지요.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신명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신명기는 그 강조점이 땅을 유업으로 주시니 거기서 순종해서 복을 누려라. 하는 것이 신명기의 강조점이 아닙니까. 실은 제사장과 레위지파에 대한 이야기도 그 문맥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줄 것이니까 그 땅에서 복받고 잘 살아라. 이것을 말하려는 신명기에서 느닷없이 민수기같은 이야기를 해서 가까이 온 사람은 죽여버려라. 너희들만 가까이 오고. 그러면 백성들은 못가버리지요. 그러니까 신명기에서는 하옇튼 먹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어요. 먹고 즐거워해라. 그리고 거기서 두고두고 살아라. 그러면 신명기에요. 왜냐하면 신명기는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는 언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유업의 땅에서 언약의 복을 누리라는 언약입니다. 18장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몫인 무엇을 먹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 이후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기는 그들의 직무를 말한다. 실은 여기서는 먹으라는 점이 강조점이지요. , 이렇게 섬기니까 먹으라는 것이 아니냐? 그 말이어요. 먹는데 무엇을 먹습니까? 소나 양이나 하옇튼 어떤 제물이든지 하는 이야기입니다. 소만 먹으라고 해도 별 강조점이 아니어요. 물론 크니까 좋지마는, 소나 양이나 어떤 제물이든지 나에게 드린 제물을 너희들이 먹고, 그러면 먹을 것이 많해지지요. 그 표현법도 우양은 물론하고 하는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에요. 그리고 내 기업을 먹으라. ? 내가 너희들을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해서 나를 섬기도록 했지 않냐? 다른 지파는 가나안 땅에서 그들의 하나님을 섬기면 너희들은 나를 섬기지 않냐? 그러니까 내게 드린 제물과 그리고 내 기업을 먹으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 알기 쉬운데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긴다고 그러거든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긴다는 것은 여호와 앞에 무엇을 드린다는 개념보다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긴다는 말은 여호와를 대신해서 섬긴다는 말과 같지요. 그들의 하는 일에 여호와의 일이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는 무슨 문맥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까? 이 앞에까지 쭉, 재판자이나 그런 이야기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최고 재판장은 누굽니까? 제사장이지요. 어려운 판결은 제사장에게 물어라. 그렇게 됐기 때문에 여기서는 지금 그런 문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레위 사람 제사장이라고 부름으로 제사장과 레위인의 형제됨을 강조합니다. 민수기는 형제됨이 아니라 차이점을 강조했지요. 가까이 오지 말라고. 그런데 여기서는 형제됨을 강조한다. 다른 지파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셔서 거기서 하나님을 봉사하도록 했기 때문에 거기서 나는 것을 먹어요. 그러나 그들에게는 여호와께서 친히 기업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께 드린 화제물과 여호와께 드린 기업을 먹어요. 이것이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단에서 봉사하는 자는 단으로부터 나온 것을 먹지 않냐? 하는 말과 같은 것이어요. 다른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기업이지요. 그런데 여호와가 기업이다. 그들에게는 여호와께서 친히 기업이 되시고 영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뛰어난 복이지요. 형제위에 뛰어난 이런 복은 모든 지파 중에서 그들을 택하여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기게 하신 여호와의 선물입니다. 여호와을 섬기도록 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것으로 주는 것이어요. 그러나 레위기에서는 그런 개념보다도 하나님 앞에 드린 예물 중에 너희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분깃을 먹는 것이지요. 제사장에게는 제물의 앞 덥적다리와 두 볼과 위, 곡식과 포두주와 기름과 양털의 첫 것을 주셨다. 이는 여호와께서 모든 지파 중에서 그들을 택하여 영영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쳐서 섬기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삯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았으면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여호와를 기업으로 받았으면 여호와께 속한 것을 먹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드린 예물과 여호와의 창고에 드린 기업, 그것을 먹으라 그말이지요. 온 땅의 레위인은 누구나 여호와 앞에 서서 그 이름으로 섬기는 것과 먹는 일에 있어서 권리가 같습니다. 만일에 레위지파까지라도 성소에서 섬기는 사람과 그 당번이 아닌 사람에게 차이가 있어버리면은 안되겠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제사장까지라도 레위사람 제사장, 차별을 두지 안했는데, 레위사람이 그 직무를 따라 차이가 있어도 먹는 복이 온전치 못하지요. 그러나 자기 당번이 아니어도 성소에 올라가야 되겠다. 그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섬기고 여기서 먹어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나누어준 것은 그대로 놔두어라. 그렇게 해서 모두가 여호와를 섬기는 복으로 배부르게 주고 있다. 그것이 지금 신명기에서 하고 있는 말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신명기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는 것은 여호와를 섬기며 또 그 이름으로 백성을 판결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고 여호와 앞에서 완전해야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섬기는 특원이 있다고 해서 이방 식으로 섬기면 안됩니다. 레위인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는 어떤 자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특권이 있어도 딴짓 하지 말라 그말이어요. 호렙산 총회의 날에 이스라엘은 소멸하는 불이신 여호와를 보고 그 음성을 듣고 죽을까 두려워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좋아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대리자고 아론은 백성의 대표자입니다.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대로 백성은 돌아가라 하시고 모세를 자기 곁에 두시고 그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5장에서 그렇게 했지요. 백성들은 다 돌아가라. 그리고 모세를 곁에 두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들로 복을 받게 하실려고. 그가 중보자이기 때문에 백성은 돌아가라고 한 것이어요. 그래서 모세를 곁에 두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5장은 복받으라고 하나님이 그렇게 나타나셨고, 여기서는 새로운 선지자를 세우리라고 그렇게 나타나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서 말씀하실 것이다. 이전에는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지요.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 모세도 얼마 안있으면 죽을 것이어요. 신명기서는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를 세웠다는 것이 제일 끝부분에 강조되고 있지요. 만일에 언약을 대표하는 직무자가 상속이 안되면은 그 언약은 영원한 것이 아니지요. 가령 국가 끼리의 조약도 어느 왕과 조약을 맺었으면 조약을 상속할 자가 있어야 그 언약이 영원하지 상속받을 자가 없으면 그 언약은 깨뜨려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신명기에서는 언약을 상속할 여호수아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거듭 반복이 되어요. , 모세는 죽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런 문맥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까지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복받으라고. 출애굽기에서는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 모세만 하나님이 세우신 중보자이니까. 다른 사람은 얼쩡얼쩡하면 안되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말이 아니라 모세도 조금 있으면 끝나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너희들이 총회의 날에 하나님 앞에 구한 것이 있지 않냐?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지 마시라고. 그리고 대리자를 세우시라고. 그전에 모세를 대리자로 세웠던 것처럼 이제는 새로운 대리자를 세울 것이다. 너희들이 총회의 날에 그렇게 안구했냐? 한 마디로 하자면 새로운 총회의 날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이야기지요. 그렇게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의 말을 들어야 됩니다. 이 언약은 종말론적인 언약갱신입니다. 새로운 모세, 그 선지자에 대한 언약을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심을 통해서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하면 아버지의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이렇게 못했지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했지, 에수님처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또 아바저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아들에게도 생명이 있느니라.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새로운 선지자를 세우셨다. 그러면 그 선지자가 당장에 나타나는가? 모세 후에 선지자는 이 은혜의 선취입니다. 그들은 선지자가 말씀하면은 이 사람이 그 선지자인가 항상 기대하겠지요. 그런 상황에 있었다 그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속해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할 수 있는 것은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중보를 주신 약속 때문에 그래요. 그 말이 맞다. 백성들은 돌아가거라. 그리고 모세는 내 곁에 있어라.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거든요. 그리고 모세가 이제 죽게 되었어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면은 모세는 갈 것이어요. , 새로운 선지자를 세운다고 그랬l. 너희들이 그 말을 잘 들으라고 했을 때 백성들은 선지자가 올 때마다 그 선지자가 아닌가, 항상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구약 예언이 가지고 있는 안목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모세 후에 선지자는 이 은혜의 선취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성취가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권세로 그런 일은 안했지요. 그들의 말대로는 이루어졌지마는 예수님처럼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한다던지, 나사로야 일어나라. 한다거나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그들은 여호와의 권위로 말했지 예수님처럼 말한 사람은 없다. 그래도 구약의 선지자들은 다 여호와께서 보낸자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했다. 만일에 총회의 날에 모세를 세우지 안했으면은 모세 후에 선지자도 없는 것이어요. 모세를 통해서 말씀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중보자를 통해서 계속 말씀하실 것이어요. 이제 모세는 죽어요. 새로운 선지자를 세운다고 분명히 한 사람을 지목해요. 그래 놓고도 20-에서는 어떤 선지자가 그렇게 말해서 그 선지자를 일반화시키고 있지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한 사람 그 선지자와 어떤 선지자, 여러 선지자가 연결되어 있지요. 그래서 모세 후의 선지자는 이 은혜의 선취여서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기 때문에 성취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자 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와 한 영 한 몸을 이루며 그의 피와 살에 참여하며 그의 음성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산 제사를 드린다. 누굽니까? 그리스도의 교회. 너희 형제 중에 한 선지자를 세운다는 약속이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를 일으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그 아들을 보내셨다. 그가 우리와 같은 혈육의 장막 가운데 임하셨다. 이처럼 이스라엘 중에 한 몸으로 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부활하셔서 이제는 교회를 하늘에 속한 그의 몸이 되도록 하셨다. 그는 언약에 진실하셔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일원으로 오셨지마는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늘에 속한 한 형제가 되도록 우리를 그와 한 몸으로 지으셨다. 그리고 우리들은 온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낸다. 그냥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봉사한 것이 아니다. 먹고 마시는 모든 삶에서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봉사한다. 그러니까 지금은 제사장 직무가 따로 없고 레위지파도 없다 그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신령한 제사장이요 신령한 레위인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형제이신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하나니ᇢ 아버지의 영광을 보며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하늘의 복을 누린다. 이제는 모세를 통해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아버지의 영광을 보고, 두려운 가운데서 그 영광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영광을 보고 기뻐하고 그렇게 산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말을 순종하고 산다. 만일에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영원한 저주 뿐이어요. 마지막 선지지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직접 보내신 분이기 때문에. 그것이 그 선지자에 대한 약속이다. 이제는 다른 모든 선지자는 필요가 없다. 선지자가 완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선지자가 없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로 사도들을 보내셔서 하늘 보좌에 취임하신 그 영광의 영으로 증거케 하신 뒤로는 다시는 교회에 이런 직무가 없다. 우리는 직접 그리스도로부터 배우고 직접 그 권능을 봉사한다. 그리고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직접 그의 살과 피에 참예한다. 하나님의 화목제물을 먹고 하나님의 기업을 먹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의 살과 그의 피에 참예한다. 가나안 땅의 유업을 주시면서 복을 누리고 살라는 복이 완결되었기 때문에 그런다. 우리처럼 완전한 빛과 생명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모세와 같은 한 사람 선지자를 세운다 할 때까지라도 직접 그리스도로 연결은 못됩니다. 이 약속은 아무리 탁월해도 모세 같은 선지자거든요. 이스라엘 형제 중에서 모세 같은 선지자에요. 그 이상 높은 것이 없어요. , 언약 중보자로 모세처럼 총회의 날에 하나님의 언약 중보자로 일한 사람은 모세거든요. 하나님 곁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달한 사람은 모세에요. 총회의 날에. 다시는 이런 총회는 안모이지요. 그런 방식으로는. 그리고 최고 탁월한 사람이 모세에요. 그 보다 높은 것이 없어요. 단 신약에서만 아들의 빛 가운데서 그런 한계를 벗어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직접 오신 분이세요. 아버지를 직접 보았고, 그는 아버지의 일을 하고 아버지의 말씀을하셔요. 그리고 우리 교회를 이스라엘처럼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새로운 백성으로 지으시고 그의 영으로 한영 한 몸으로 살도록 하셨어요. 우리가 하늘 보좌에서 그와 함게 하나님을 섬겨요. 하나님 안에 있어요. 우리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배워요.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신약의 빛 가운데서 벗겨질 일이지 구약 자체에서 벗을 수 없다. 해석된다는 말은 완성되므로 해석되지 의미를 안다는 것이 아니라 왼성되므로 해석되는 것이어요. 만일에 완성됨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그것은 해석도 아니고 구원도 아니어요. 해석이라는 것은 완성됨으로 해석되지 그냥 의미를 드디어 파악했다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의미는 주어진 의미, 누려지는 의미지 헬라 철학적인 그런 의미 파악은 성경에 없어요. 가령 아들을 장가 보내놓고 너도 장가갔으니 어른되어라. 하므로 어른된 의미를 알지, 장가도 안갔는데 장가가면 이런 것이란다. 고개 끄덕끄덕 그렇게 아는 것은 누림으로 아는 것이 아니어요. 철학은 보통 그런 앎을 말하지요. 그러나 성경은 역사적인 앎이어요.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듣는 것이 모세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는 약속의 성취여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듣고 배운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혈육으로 임하셨다. 우리로 하늘에 속한 새 몸으로 지으셨다. 우리는 그에 상에서 먹고 마시고 전 몸으로 산 제자를 지내고 그를 통해서 배운다. 그는 새로운 창조자여서 그의 말씀은 능력이다. 그외에는 선지자가 없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로 마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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