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구속사

신명기 강해 16:1-17

찬미예수님 2024. 8. 18. 08:21

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 16:1-17

 

신명기 16장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1-8절은 아빕월을 지키라고 했고, 9-12절은 칠칠절을 지키고, 13-17절은 초막절을 지키는 규례입니다. 그후 18절부터는 뒷 장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17장도 보면은 재판장들의 규례, 왕에 대한 규례, 이런 중보직임에 대한 규례들이 쭉 나오기 때문에 18절 이하는 17장으로 묶어서 해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소위 삼대 절기는 출애굽기 3, 34장 그리고 레위기 23, 민수기18, 29장 그리고 여기 신명기 16장에 명령되어 있습니다. 이 절기들을 서로 비교해 보시고 이 본문을 풀면은 훨씬 쉽고 좋을 것입니다. 출애굽기라는 것은 본래가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 백성 삼으시는 그런 윤례거든요.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 삼으시는 것이 출애굽기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절기에 대한 것도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을 일년 세 번 내 앞에 나타나거라.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가지고 나아라. 신명기하고 비슷합니다마는 일년 세 번 절기를 지키라는 데가 강조가 되어 있어요. 34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섬겨서 범죄한 뒤로 언약을 갱신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삼대 절기를 이야기했을 때까지라도 34장에서는 세 번의 복된 모임을 주신 그 은혜의 확실함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되었기 때문에 그때 네가 세 번 내 앞에 나오면은 내가 네 땅을 지켜서 어떤 적군도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 그런 안식의 보증이 주어지는 내용이 더 있지요. 그것이 언약 갱신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범죄한 백성이 다시 언약을 새롭게 했을 때 이 말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삼대 절기, 큰 세 번의 수확의 절기에 하나님 앞에 얼굴을 뵙도록 하는 일에 내가 너희를 지켜주겠다 하는 그 언약에 대한 보증이 더 붙어있어요. 레위기는 모든 것을 성소에 속한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는 것이 핵심인데, 23장에서는 실재 절기가 나옵니다. 안식일부터 유월절, 무교절, 초수절 이렇게 해서 쭉 나오지요. 거기서는 일년 세 번 절기를 지키라.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년 중 절기를 말하는데 이 삼대 절기가 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년중 절기이기 때문에 강조점은 성회로 모이라.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고 성회로 구별하여 모이고, 그것이 이 절기의 강조점입니다. 그러니까 각 부분들은 전체적인 강조점과 서로 색깔이 같아야 되겠지요. 전혀 다른 것을 말해버리면 안되지요. 그래서 레위기는 성소에 계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먹고 마시는 모든 것, 땅에 모든 것을 성소에 속한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구별해 주는 윤례인데 23장에는 7대 절기가 나오는데 어떤 날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성회인가? 그래서 주로 날자를 지적하고 그리고 그 때는 성회로 모이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려라. 그런 것이 강조가 되어 있어요. 민수기는 하나님의 백성을 군대로 조직하고 모든 불신앙과 싸울 뿐만 아니라 그들로 가나안 땅을 소유케 해서 하나님을 봉사케 하는 것이 내용이어요. 원수에 대해서는 싸우고 하나님께는 봉사하고, 그것이 민수기거든요. 그러니까 민수기 28, 29장은 새로운 백성을 26장에서 계수하고 나서 28, 29장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 많은 예물을 드릴 것인가? 그런 특성을 갖고 있어요. 여기서는 많은 예물드림이 강조되어 있어요. 그때는 아침 저녁이 다르고, 안식일 날이 다르고, 초하루 날이 다르고, 그래 갖고 절기 때마다 제물이 점점 누적되어요. 그래서 초막절 쯤 되면은 제물이 굉장히 많해요. 그것이 민수기의 특징이어요. 거기는 날자가 어떻고 강조가 아니라. 거룩하고 그런데 강조가 아니고, 물로 그 날에 쉬라는 말은 나오지마는 읽어 보면은 제물도 많이도 드리는구나, 그걸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그래서 레위기는 날자를 정하고 그 날에 하나님 앞에 드릴 예배와 성회로 쉬라는 것이 강조면은, 민수기는 많은 예물로 하나님을 봉사하는 것이 강조가 되어 있고, 출애굽기는 일년 세 차례는 만나자. 34장은 세 차례 만날 때 내가 네 땅을 지켜주마.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 말입니다.

신명기 16장에서는 이 절기에 대한 명령을 끝낼 때는 16절에 보니까 일년 삼차 모든 남자들은 무교절, 초막절, 칠칠절에 하나님 앞에 나타나라. 결론의 말을 되어 있지마는 출애굽기처럼 너희 모든 남자들은 일년 세 차례 내 앞에 나타나라. 그렇게 주제적으로 추작은 안해요. 그래서 출애굽기와 비슷한데도 출애굽기에서 강조점은 세 번 만난다는 그런 이야긱보다는 그 절기에 주시는 복이 강조가 되어 있어요. 그 절기에 얼만큼 많은 복을 주시는가? 그것이 강조가 되어 있어요. 그러나 출애굽기는 세 번 만나자. 그때는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내가 너에게 준대로 가지고 나와라. 그래서 축제의 절기를 말하는데도 거기는 신명기처럼 세 번이 강조가 되어 있지, 여기 그 절기에 어떻게 하나님 앞에 풍성히 드리고 먹는지,그런 문제는 강조가 안되어 있다. 그러니가 그런 것을 비교해 보면은 훨씬 알기가 좋아요. 여러분은 비교해 보면은 복잡한줄 아는데 그렇지 안해요. 여러분이 누가 나에 대해서 하는 말이 알아 듣기 어려우면 그 사람이 여기 저기 하고 다니는 말을 종합해 보면 그냥 알 수 있어요. 그건 복잡한 것이 아니어요. 한 두 명 말을 들었을 때는 모르겠는데 여러 명 말을 들어보니까 그냥 알겠지요. 그런데 여기는 모세 오경 다섯 권 밖에, 또 창세기는 성격이 다르니까 네권 밖에 안되어요. 그것만 비교해 보면 그 특징이 그냥 드러나요. 똑같은 출애굽기에도 23장에 시내산에서 언약체결하고 나서 세 번 내가 네게 풍성한 수확을 줄 때 나타나라. 한 것 보다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범죄하고 나서 언약을 다시 체결했을 때 내 앞에 세 번 나와라. 했을 때는 말이 달라져 있어요. 그때는 내가 네 땅을 지켜서 어떤 적군도 넘보지 못하도록 보증까지 되어 있어요. 언약이 갱신되니까 그런 것이지요. 그래서 신명기는 그 3대 절기에 주시는 복이 많이 강조돼 있다. 세 번 만나기는 데 주시는 복이 많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 신명기가 언약의 땅 가나안을 유업으로 주시고 그 땅에서 하나님을 순종하고 풍성히 복받아 누리는 것이 핵심어거든요. 그러니까 이 율법대로 지키면은 그들은 이 절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뿐만 아니라 이 절기에 모든 백성이 풍성히 먹고 즐거워하도록 되어 있어요. 절기를 지키면은. 가령 우리들이 오늘 이런 약속을 한다고 치십시다. 생일날은 반드시 교회에서 잔치를 하자고 했다 치십시다.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할 사람도 있고 안할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별로 생일을 잘 안지냅니다. 할 사람도 있고 안할 사람도 있는데, 가령 자기 친족들만 초대해서 먹이느니 내가 한 짐에 조금 더 해가지고 주일날 갖고 나가서 우리 교인들하고 먹어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가 규칙을 정했다 치십시다. 우리 일년에 한번은 생일이든지 말든지 특식을 해갖고 오기로 결정했다 치십시다. 그러면은 그것도 생일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하면은 어쩔까요. 그 규칙만 잘 지키면은 모든 교인들은 모든 사람의 생일에 축복에 참여하겠지요. 그런데 자기만 잘 먹어버리고 하나도 안갖고 오면은 교인들은 그 축복을 못누리겠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처럼 이런 법을 정해가지고 우리 교회는 생일 때는 각자 특식을 한 가지씩 가져오자. 그러면 우리가 가져온 반찬에다 특식을 섞어 놓으면 뷔페보다 만치요. 그러면은 우리들은 년 중 생일잔치가 되겠지요. 교인이 몇 명입니까? 우리 교인들이 몇 명입니까? 얘기들은 빼버리고 어른들만 세어도 40 가정은 되거든요. 52부니까 그것도 부부끼리 나누어버리면은 일년 내내 생일잔치를 하겠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런 규칙이 신명기적인 규칙이라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인제 우리 나라는 교회에 가져오는 법은 별로 없어요. 헌금으로 하고 목사를 주로 초청을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일도 없으니 고혈압 걸릴 일도 없습니다마는, 큰 교회에서는 그런데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어요. 그러면 생일 뿐입니까? 추도식한다고 하지요. 결혼식도 하지요. 그런 사람들은 얼만큼 한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마침 그런 것이 없어서 편하기는 한데 여러 교인들이 여러분에게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들을 가지라 그런 말이어요. 어떻게 하면 주의 교회와 함께 기뻐할지. 그런 생각들은 가질 수 있지 안해요? 단지 그것을 하는 사람은 신앙이 있고 안가져오고 집에서 자기 친족들 끼리 먹어버린 사람은 신앙이 없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어요. 자기 형편 따라 할 것이어요. 그런데 왜 교회는 전혀 기억을 안하느냐 그런 말이어요. 그리고 누가복음을 보면 너희 생일잔치에 부자를 초청하지 말고 가난한 자를 초청해라. 부자는 갚아버리면 그만이지마는 가난한 자는 갚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것이 아니냐? 그것이 복이 아니냐?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들은 푸마시식이어요. 너좋고 나좋고 식이지, 내게 주신 부요함을 어떻게 형제와 나누겠는가, 이 생각이 아주 둔해요. 사랑이라는 것은 관심이고 그런데서 지혜가 나오는 것인데 그런 것이 둔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 나라 교회는 그럴 때 복받는다고 목사만 초청한다. 디고해달라고. 그리고 가난한 교인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말이지요. 여러분이 초청했을 때 바쁘면 못가요. 그런데 묘하드라고요. 제가 초청해도 바쁘다고 안오더라고요. 그러면 세상 식으로하면 상관이 초청하면 예, 하고 가는 것이 맞는데 우리 교회는 묘하지요. 나 바쁜께 못간다고 하면 끝이어요. 우리 같으면 목사님이 초청했으니 다른 일 제처두고 가보자. 그러겠는데 안해요. 바쁘면 못올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너무 일상화되어 있어서 제가 보기에 좀 이상하드라고요. 16장에 말하는 절기가 그런 것과 비슷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만일에 이런 절기 때마다 하나님의 집에 가지고 나와서 모든 가난한 자를 초청해서 함께 먹으면은 이스라엘 백성은 일년 세 번은 초청을 받고 거기서 섬에 사는 얘기들이 먹는 판이어요. 모든 이스라엘 백성 남자들은 다 나오라고 했거든요. 그것도 어느 때냐 하면, 셋 번 다 수확의 절기에요. 물론 유월절은 수확은 아닙니다. 칠칠절과 초막절은 수확의 절기고,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출생의 절기에요. 이때 다 내 집으로 나와라. 내 집에서 먹자. 그리고 올 때 레위인도 오고 고아와 과부와 객들을 다 데리고 와라. 내 집에서 먹자. 그것이 이 16자에서 말하는 것이라. 그런 말입니다. 여기서는 유월절을 지키라 하지 않고 아빕월을 지키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1월달을 지키라는 말이어요. 그리고 1월을 지킬 때 유월절을 지키는 의미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절기를 절기인데 달에 대한 문제가 강조가 되어 9절을 보면은 7주를 계수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주를 계수해라. 수확하고 나서 일곱 주를 계수하고 그리고 13절을 보면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틀의 소출을 다 갈무리한 후에 7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라. 그러니까 1월달 그리고 첫 수확을 하고나서 일곱 주 뒤에 그리고 모든 수확을 마친 후에 절기를 지키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유월절을 지켜라. 또는 무교절을 지켜라. 그렇게 말하지 않고 아빕월을 지켜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유월절 예식을 지키라는 이유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은,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고 했는데, 유월절에 그렇게 않고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이 사람들 말대로 하면 신년절기여. 출애굽기는 유월절 그 달을 첫 달을 삼으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유월절을 지켜라. 칠칠절을 지켜라. 칠칠절도 이렇게 않지요. 레위기에서는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지요. 맥추절을 지켜라. 그 다음 수장, 초막절을 지켜라. 이렇게 할 것인데, 여기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아빕월을 지켜라. 칠칠절을 지켜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왜 아빕월을 지키는가? 아빕월 그 날에 너희들이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유월절이 아니냐? 그렇게 해서 실은 달에 시작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유월절이 있었지 않냐? 그래서 아빕월을 1월달에 그들이 지키는 것은 유월절에 그들이 해방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달을 첫 달로 삼고 축제를 행하라. 그런 말입니다. 유월절 예식을 행하는 곳은 어디냐 하면은,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해라. 2절에 그렇게 되어 있고, 5절을 보면 유월절 제사를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네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그렇게 해라. 그렇게 반복하고 있지요. 대개 짧은 문단에도 반복 설명이 있어요. 그러서 여기 반복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하는 곳은 성소입니다. 광야에서 유리할 때는 사막에서 했지요. 사막에서. 그러나 가나안 땅의 안식을 주면은 내가 내 이름을 두려고 예비한 그 처소로 와라. 그렇게 초대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유월절 제사의 제물을 보면은, 출애굽기에 보면 일년된 어린 양이지요. 그런데 그런데 여기서는 2절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무엇으로 유월절 제사를 지내라고요. 소나 양으로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묘하지요. 여기서는 일년된 흠없는 수양, 그런 말은 싹 빠져버렸어요. 출애굽기 12장과 다르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왜 다르게 되어 있는가?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집의 축제로 먹고 마시도록 모이게 할려는 것이어요. 언제? 맥추절, 그때는 곡식을 낫을 대고나서 일곱 주일이 지나면 다 수확이 됩니다. 첫 곡식 거두었을 때 막 갈무리하고, 그 다음 마지막 연말에 갈무리하고 두 번 모이거든요. 그리고 한 번은 그들이 구원받은 아빕월 첫달에 모여요. 그러니까 이것은 축제로 모이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 양 한 마리, 그런데 강조가 안주어져 있고, 유월절 제물은 소나 양으로 제사를 지내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교해 보면은 좋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제물과 함께 먹을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3절에 보니까 유교병을 먹지 말고 칠일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먹으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출애굽기는 무교병에 대한 이야기는 강조가 안되어 있고, 무엇이 강조냐? 이 고기를 어떻게 구어 먹습니까? 반디시대문에 피를 바르고 먹고, 구워서 먹으라. 또 이 고기와 함께 출애굽기는 무엇을 먹으라고 했어요. 쓴 나물과 함께 먹어라. 또 신을 매고 지팡이 짚고 먹어라. 그런 말이 출애굽기에는 강조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 신명기에는 그런 말이 싹 빠져버리고 쓴 나물도 없고, 무교병과 함께 먹어라. 그런데 출애굽기는 12장에서 유월절이 있으면, 초태생은 하나님 앞에 드리고 너희들은 무교병을 먹어라는 말은 13장에 나와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먹는 것이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지요.

민수기 9장에도 민수기 규례가 있는 데 거기서는 그 무교병을 먹느니 그런데 강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뒤에 먹으라고 강조하지요. 그 달에 못지키는가? 그 다음 달에 먹어라. ? 광야에서는 부정을 타기 쉽거든요. 부정할지라도 유월절에 참여하라고 하니까, 그 정한 달에 못하느냐? 그 다음 달에 해라. 그것이 민수기에서 말하는 방식이어요. 그런데 출애굽기에 쓴나물을 먹으라고 하면은 그것은 별로 맛이 없는 것이어요. 쓴 것은 저주입니다. 여기서는 무교병을 먹어라. 그러면서 그때 너희들이 배부르지 못했지 않느냐? 고난의 떡이다. 고난의 떡이라고 여기서 설명했지요. 왜 고난의 떡인가? 하면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기 때문에 고난의 떡을 먹으라고 말합니다. 물론 출애굽기 13장에서도 그런 것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아빕월에 새 백성으로 구원되고 지어졌는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처음 양식은 무엇이었습니까? 무교병이었지요. ? 급히 도망치니라고 발효가 덜된 것을 가지고 나왔어요. 그래서 누룩없는 떡을 먹었어요. 그러니까 그것은 맛도 하나도 없는 고난의 떡이어요. 그걸 먹어라. 왜냐하면 애굽에서 나온 날을 기억하라고 그런다. 요새 6.25 주먹밥을 먹는 것 비슷한 식이지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부자들이 말하자면 별미로 주먹밥을 먹는 것이고, 이 사람들은 그런 것이 아니어요. 그들은 그들의 출생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기억하지요. 그래서 1월달에는 출생했기 때문에 무교병을 먹고, 그리고 첫 곡식을 수확하고 나서 7*7=49가 되면은 그때는 하나님 앞에 칠칠절을 지키고, 연말에 마지막 곡식을 갈무리 하고는 초막절을 지키고, 이렇게 즉 하나님이 그들을 출생한 절기에 맞추어서 그들의 삶이 유지되어요. 그러니까 유월절이 되면은 아직은 아무리 부자여도 이것 먹어야 되고, 그리고 칠칠절이 되면 아무리 가난해도 곡식의 수확에 참여하고, 초막절에는 아무리 가난해도 연말의 수확의 풍요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이 절기의 복에 그들의 삶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살도록 되어 있어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는 의미는, 그들이 애굽에서 급히 나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월절 제물과 함께 먹는 것은 무교병이고, 7일동안 무교병을 먹는 것은 7은 완전이지요. 7일 한 주간이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단위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7일 주기로 살았지요. 그러니까 그 완전한 단위를 무교병을 먹어야 되어요. 그 무교병을 고난의 떡이라고 부른 이유는 그들이 급히 나왔기 때문입니다. 무교병을 강조하는 규례는 4절에 나와있는데 네 사경 내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했는데, 유월절 첫날부터 아주 삿삿히 디져서 없애버리라고 말하고 있지요. , 무교병을 없애라는 것은 누룩까지 없애라는 데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그 다음 날 아침까지 두지 말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다음 날 먹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물론 레위기 같으면 부정하니라, 그 말을 하겠지요. 여기서는 부정하다는 말은 없는데, 그 날에만 먹으라고 한정을 짓고 있어요. 이 앞에서는 피를 먹지 말라고 했지요. 그런 것처럼 여기서도 그 날에 먹고 다음 날에는 먹지 말아라. 그러니까 유월절은 떡고 무교병으로 고난의 떡이고, 또 소나 양을 먹으라고 해서 굉장히 강조되어 있지마는 그날 밖에 못먹어요. 그리고 그들이 먹을 것은 일주일 동안 무교병이어요. 그러니까 다른데서는 이 절기를 아애 무교절이라고 설명하지요. 그러면은 12장에서는 하나님이 애굽은 심판하시되 유월절 양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구원하는 절기로 말하기 때문에 피를 바르고 먹으라고 그러고, 먹는 것은 제단의 방식으로 구워서 먹어야 되고, 그래서 아직도 완전한 양식이 아니기 때문에 쓴나물과 함께 구워서 먹으라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출애굽은 도망쳐야 되기 때문에 신을 신고 띠를 띠고 먹는 것이어요. , 그 장면이 그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다 유업을 주고 유월절을 지키라고 했어, 너희들 들판에서 왔다갔다 하지 말고 내 집으로 와라. 그리고 소나 양으로 제사를 지내고,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들의 출생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무교병을 먹으라. 그 날에만 먹어야 된다.

또 출애굽기는 뼈를 꺽지 말고 먹으라고 그러지요. 그리고 양 한 마리에 맞추어서 사람 수를 모으라고 그러지요. 양이 강조가 되어 있지요. ? 이스라엘은 한 마리 양에 참여하는 백성으로 나누어지지 않거든요. 한 제물에 참여하도록 그렇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13장에서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에 강조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탈출한 뒤로 너희들이 어떻게 내게 예물을 드릴 것인가, 특별히 언약의 땅에 들어가면은, 그러니까 신명기하고는 여기 출애굽기 13장이 더 맞아요. 초태생은 내 것이요, 무교병을 먹으라.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생명을 주신데 강조를 두고 있어요. 그것을 고린도전서 5장에서는 고난의 떡이라고 말하지 않고 어떻게 합니까? 너희는 누룩없는 자인데 새 덩이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5:7-8>. 그렇게 해서 교회 안의 죄를 제거하도록 말하고 있지요. 왜냐하면 그들이 무교병을 먹는 것은 고난의 떡이면서도 그전에 반죽이 잘 된 떡을 먹는 것은 바로의 종으로 있을 때 먹은 떡이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도망칠 때의 떡은 고난의 떡으로 맛은 없어도 새 백성의 양식이어요.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5장에서는 교회 안에 죄를 제거하라고 하면서 너희들은 새 덩어리가 되게 할려고 하나님이 구원했지 않냐? 유월절 어린 양되신 예수께서 죽으셨지 않냐? 교회 안에 죄를 제거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의 떡인데도 실은 이스라엘 백성의 새 양식이기 때문에 아빕월에 무교절을 지키는 것이어요. 그 다음 4절부터 보면은 누룩은 첫날부터 제거하고 그날 당일에 먹어라. 성에서 드리지 말고 내 집으로 와라. 초저녁 때 그렇게 하고 그리고 그 고기를 구워먹고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제일 끝에 너는 6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그러니까 두 번 반복하는 구조지요. 그리고 7일에 여호와께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거룩한 절기로 말하는데 강조점은 무교병을 먹으라는 것이어요. 아빕월을 지키는 것은 한 마디로 무교병을 먹는 것이어요. 그들에게 새로운 양식은 고난의 떡이었습니다. 9-12절을 보면은 칠칠절을 지키는데 여기서는 칠주를 계수하라는 말을 앞에 두고 있지요. 1절에서는 아뵙월을 지키라 했던 것처럼 칠주를 계수하라. 언제부터? 곡식에 낫을 데는 첫날부터 칠주를 계수해라. 그러니까 칠이라는 데도 완성수가 있으면서도 언제부터입니까? 곡식에 낫을 덴 날부터. 여기서는 수확에다가 강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는 유월절 후 안식후 첫날, 곡식 첫 단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 전에는 아무도 먹으면 안되어요. 그때부터 칠주를 계수해야 되어요. 오순절이지요. 그렇게 언급합니다. 그래서 곡식에 낫을 댄 날부터 일곱주를 계수하면은 어떤 의미이겠어요. 낫을 대는 것이 일곱 주간 반복되는 것이지요. 낫을 대는 의미가 일곱 주간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첫 곡식에 마무리어요. 우리 나라 같으면 봄철에 보리 거두면은 가을에 나락 거두지요. 그런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그것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곡식에 낫을 댄 날부터 그 행동을 7*7=49 반복하는 것입니다. 칠 주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들려라. 그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고 모든 가난한 자를 함께 데리고 와서 거기서 먹고 즐거워 해라. 12절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행할지니라. 누가 지금 이 명령을 합니까? 종인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고 풍성한 산물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명령을 하신 것이어요. 칠칠절은 어느 때입니까? 곡식에 처음 낫을 댄 날부터 일곱 주를 계산한 때입니다. 칠칠절에 행한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 집에서 모든 가난한 자와 먹고 즐거워 하는 것이어요. 칠칠절을 명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종되었던 곳에서 해방시켰고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출애굽기 23, 레위기 23, 민수기 28장과 이곳의 기사를 비교해 보라. 칠칠절도 출애굽기 23장은 세 번 절기를 지키는 것이 강조고, 레위기 23장은 그 절기가 거룩하다는 의미, 거룩한 성회로 모이는데 강조가 있으면은, 민수기 28장에서는 많은 예물을 드리는 것이 강조다. 그리고 여기 신명기 16장에서는 내가 너에게 복을 준대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고 모든 가난한 자를 먹이라. 하는데 강조가 있지요. 13-17절입니다. 초막절을 지켜야되는데, 출애굽기에는 세 번 말하는데, 연말에 네가 수확한 뒤로 그렇게 말하면 초막절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기에서는 어떻게 말하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풍서한 수확을 주셨음과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을 연결시켜서 말씀하고 있어요. 그날 거룩한 성회로 지켜야 되고, 칠일 동안 지키고 칠일 후에 한번 더 지켜야 됩니다. 성회의 최후 정점이 여기입니다. 물론 민수기 29장을 보면은 7일 동안 제물을 제물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드립니다. 그리고 여기 신명기에서는 그 수장절도 애굽에서 구원했다는 너희들이 초막에 거했느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셨고, 가나안 땅에 심으셔서 안식을 주셨는가? 그런 데다 강조를 두지 않고, 처음부터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틀에 소출을 다 거두어서 갈무리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켜라. 애굽에서 건져서 여기까지 왔느니 그런 말은 싹 빼버리고 수확을 다 마친 뒤로 그렇게 해라. 그러니까 여기서는 수확 많은 데다 강조를 두고 있지요. 절기를 지킬 때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는 것이 강조에요. 그러나 무교절은 제일 끝에다 칠일 동안 지켜라. 제 칠일에도. 육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제 칠일에, 그 끝에다가 간략하게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처음부터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켜라. 칠일 동안 내 집에서 지켜라. 내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 하라. 칠칠절은 복주신 것을 감사했는데 여기서는 복주실 것을 즐거워 하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나서 16절이하에는 절기에 대한 총좔적인 명령을 합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여기서 모든 남자 하면은 20세 이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삽차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에 여기 보니까 아애 무교절이라고 했지요. 처음에는 아빕월을 지켜라. 해놓고, 그 달 시작에다가 강조를 두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결론할 때는 절기로 이야기해서 유월절이라고 하지 않지요.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내 하나님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레위기에서는 초막절도 초막에서 7일 동안 거하는 것이 핵심이어요. 7일이 지나야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 하나님이 그렇게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셔서 자기 백성을 거룩한 소유로 삼으셨거든요. 그런데 민수기는 많은 예물을 드림이 강조고 여기 신명기에서는 그런 것보다도 내가 너희에게 힘을 준대로 예물을 드리고 앞으로 복주실 것을 기억하고 즐거워 해라. 결론에 빈 손으로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대로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구약의 이런 것을 가지고 신약 헌금에다가 막 붙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제사드리는 것과 신약의 헌금은 직접 그렇게 연결해서는 안되지요. 그러나 그 원리는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그런데 문제는 구약 때는 하나님 앞 성소로 가지고 간 것만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이어요. 그런데 신약 때는 교회에 드린 것만 하나님 앞에 예물이 된 것이 아니어요. 구약 때는 성소에서 먹는 것과 집에서 먹는 것이 차이가 나거든요. 신약 때는 주의 상에서 먹는 것이 여러분의 일상의 양식이 안되면 저주에요. 같은 것이어요. 그러니까 구약의 이런 규례를 신약 교회의 예식으로 붙여버리면 안맞아버려요. ? 지금은 모든 것이 거룩하고 전체를 드리는데 예배시간에 드린 것만 거룩하다고 해버리면은 우리는 여전히 저주 가운데 있는 것이어서 옳은 일이 아닙니다. 부부간으로 예를 들면은 약혼했을 때는 만나는 시간만 같이 있는 시간이면은 결혼하면은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시간이지요. 같이 없는 시간이 없지요. ? 전체로 사니까. 그런 것과 비슷해요. 무엇인가 아주 가치있는 시간이 따로 있고 가치없는 시간이 따로 있으면은 그것은 가치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이 구별되기 때문에 가치있는 것도 아니고 완전한 것도 아니어요. 그러나 그런 것이 구별이 없을 때 모든 것은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완전한 것이어요. 결혼하면은 그렇다. 그러니까 여기 하나님 성소에 갖다 내라는 것을 교회에 내는 헌금으로 그대로 붙여버리면은 예수 안에서 완성된 새로운 질서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하면은 쉽게 배우기는 해요. 그 정신은 그렇게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초막절을 지키는 때는 모든 산물을 갈무리한 후에 절기 기간은 7일동안이고, 함께 참여할 자는 모든 가난한 자고, 초막절에 행할 일은 여기서는 하나님 앞에 드려라. 하는 문제는 강조가 안되고, 같이 나누어 먹으라는 말만 강조가 되어 있지요. 초막절을 지키며 즐거워할 이유는, 온전히 즐거워해야되겠는데, 내 모든 일에 복주실 것을 인해서 즐거워 해라. 그렇게 돼 있습니다. 결론적인 언급에 있어서는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키라는 말하고, 그 절기는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기 때문에 빈 손으로 오지를 말아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힘껏 예물을 드려라. 그것이 실은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는 것이다. 그때 절기 내용은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를 모두 데리고 와서 함께 먹자.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 말입니다. 절기에 대한 모세의 율법들은 각각의 목적에 일치되게 내놓았습니다. 출애굽기는 언약의 백성으로 조직하는 율례이고, 레위기는 성소에 계신 여호와께 속한 거룩함으로 구별하는 율레이고, 그리고 민수기는 여호와를 위해서 헌신하며 싸우는 율례이고, 신명기는 하나님이 주신 유업의 땅에서 풍성함을 누리는 율례입니다. 신명기에서는 절기 때에 여호와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여호와께서 주신 풍성한 것으로 예물을 드리고 그것으로 온 백성이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고 명하신 것이 신명기의 강조점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유업의 땅에서 풍성한 산물로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 모든 복을 하나님도 잡수고 백성도 축제하라 그런 말입니다. 아빕월은 그 달의 시작이며 그 달 유월절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었고 그때 그들이 급히 나오느라고 발효되지 않은 반죽을 가지고 나왔다. 그들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어 처음 새로 먹은 양식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이었다. 유교병은 바로의 종으로 살 때 그들의 양식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먹지 말도록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에 여호와의 백성으로 구원된 유월절을 지키고 기뻐합니다. 그때 여호와의 성소에 찾아와서 소나 양으로 제사를 드리고 그 제물을 먹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계속해서 7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또 제 7일에는 성회로 모입니다. 시작하는 달입니다. 곡식에 낫을 댄후부터 7주가 지나면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대로 여호와께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모든 가난한 자도 함께 성소에서 먹고 여호와 앞에 즐거워한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풍성한 첫 수확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 다음 타작마당에 소출을 갈무리한 후에 7일동안 초막절을 지킨다. 함께 거하는 모든 가난한 자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거하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함께 기뻐하고 다음 해에도 복주실 것을 인하여 기뻐한다. 여기서 다음 해라는 말은 없지마는 이것이 연말이지요. 연말을 지키는데 이 모든 산물에 복주실 것을 인해서, 그러면은 지금 연말을 마치면서 그러니까 다음 해에도 주실 것이어요. 이것은 헌금을 미리 내면은 그 다음에도 복준다는 말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질서를 그렇게 정해주고 있는 것이어요. 시작할 때는 하나님 앞에 유월절을 지키므로 시작해야 됩니다. 그리고 수확을 갈무리할 때는 하나님 앞에 드리고 같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해야 됩니다. 연말이 되면은 그 풍성을 함께 즐거워 해야되는데 다음에도 복주실 것을 기뻐해야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래요. 외상 헌금은 안되고 보라고. 미리 줄줄알고 드리면 복준다고 안했냐고. 그러니까 농협에서 빚내다가 그렇게 하면은 주는 것인데 그렇게 작정헌금하면 되겠느냐고. 그것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의 만나가 지나면은 다음에도 만나를 주시지요. 7일은 안주실 것이어요. 그것을 자기 백성을 시험했어요. 그런 것처럼 한 해가 끝마치면은 새로운 해가 있어요. 다음에도 복을 주실 것이어요. 그러니까 모든 것을 갈무리하고 함께 기뻐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남자는 일년에 세 번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에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그들에게 주신 풍성한 복을 따라서 힘대로 여호와께 드린다. 이 모든 절기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신 절기이다. 무교병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생해서 주셨던 처음 양식이고, 그리고 칠칠절은 가나안 땅의 풍성한 첫 수확이고, 그리고 초막절은 마지막 수확이다. 이 모든 것은 그들에게 생명의 풍성한 양식을 주신 그런 절기이다. 그러니까 풍성한 수확이 없을 때 이런 절기를 지키라는 것이 아니지요. 그때 지키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늘에 속한 자유에로 구원받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새로운 양식으로 받았다. 교회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은혜의 선물로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인 형제들을 봉사하고 함께 기뻐하며 몸으로 산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니가 교회는 몇 가지 헌금 해놓고 하나님 앞에 드렸나이다. 그런 것으로 되어 있지 않다. 가난한 자를 구제할 때도 힘껏,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도 힘껏, 그는 몸으로 전체로 하나님을 봉사하지 이스라엘 백성처럼 몇 가지 절기 때만 내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절기의 완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됐다. 이제는 특별한 절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 완전한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에. 구약 때는 달을 따라서 수확이 다르지마는 우리들은 그런 것을 먹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살과 피에 참여하기 때문에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양식을 받았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어느 수확이 많을 때만 감사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없고 그런 것이 아니라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전체로 봉사한다. ? 예수께서 절기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이처럼 전체로 봉사하는 것은 주의 교회를 위해서 그럴 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를 위해서도 주께서 자신의 몸을 주셔서 우리로 그 몸의 교제로 참여토록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것, 일용할 양식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해서 그가 나에게 주신 생명의 양식을 형제도 먹도록 해야된다. 그렇게 해서 가난한 자가 없도록 해야된디. 공평하게 나누어 먹으라는 말이 아니라 가난한 자가 없도록 해야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입니다. 여기서는 직접 헌금을 많이 하라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어요. 우리들은 이보다 더 많은 절기를 지킬 수 있습니다. 삼대 절기를 지키라고 하니까 이것을 지금도 지켜야된다는 말이 아니어요. 이 모든 완성이 예수 안에 있다. 우리들은 가나안 땅의 달을 따라 양식을 먹고 달을 따라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은 하늘 성소에서 날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감사하고 우리들은 우리의 전 몸을 헌신하는 예배질서를 가졌기 때문에 이런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나라 교회는 이 절기 때 헌금을 많이 해야 교회 유지가 되어요. 그래서 삼대 절기를 지키라. 강조하고. 새벽 시도회 때 집사님들 손들라고 해서 작정하게 하고, 집사 이상은 오천원, 그래도 부족하면 그 다음 주일에 또 작정해야 되어요. 장로는 더 내야 되지요. 그러니까 돈이 없으면 직분도 하기 힘들어요. 하여튼 부족하면 재 작정을 해서 채워야 되어요. 예산을 세워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가지고 구열별로 전부 나누기 하지요. 우리 구역은 얼마 해야 되겠구나. 그것을 잘해야 유능한 구역장이고 유능한 전도사지요. 그것을 성경을 말하지 않는다. 헌금은 하나님 앞에 자원해서 하는 것이지 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부자여도 먹는 입이 많으면 적게 드릴 수 있어요. 요새 보면은 회사 사장할 것이 아닙디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자기 월급 받으면 편이 사는데 사장들은 부도났니 마니 해갖고 정신이 없드라고요. 자기 월급은 받고 부도가 나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은. 물론 우리나라 기업을 기업은 망해도 사장들은 잘 삽니다. 그런데 신문에 난대로 하자면 재미없겠드라고요. 그러니까 꼭 부자라고 자기 쓸속이 많은 것은 아니어요. 그러니까 각자 자기 힘을 헤아려서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교회에 낸 것만 하나님 앞에 드리고, 가난한 자를 구제한 것은 아니냐? 가난한 자를 구제할 때도 꼭 교회를 통해서만 할 것이냐? 내가 주면 생색내니까. 그건 생색낸 그 사람이 잘못이지 개인이 주면 생색내고 교회가 주면 생색 안내고 그런 말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개인이 주면 생색내니까 전부 교회로 내라. 교회가 나누어줄 것이니까. 그런 말은 옳지 안해요. 개인도 힘써 구제라고, 개인의 구제가 힘이 못미치면은 교회가 합심해서 구제할 것이어요. 그때는 교회가 또 헌금을 요구하면은 그는 덕을 위해서 또 할 것이어요. 나는 개인으로 했으니까 하고 안내면은 옆에 사람은 시험을 받아요. 어째 저 부자가 안내는고. 무슨 말인가 알겠지요. 당연히 교회가 힘을 합하는 것이 지혜지요. 외식하라는 말이 아니라 형제의 덕을 위한 지혜에요. 그렇게 해야되겠지요. 어떤 교회는 부자가 앞장선 데도 있어요. 내가 다 할 것이니까 집사님들은 구경이나 하라고. 그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형제 간에도 큰아들이 다해버리면 둘째 아들은 종살이 하기 쉬워요. 교회는 몸의 연합이기 때문에 전부 합심해서 하는 것이 좋고, 그리고 정 그런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됐을 때 부자가, 교인들이 너무 힘이 없어서 엄두를 못내면은 내가 얼마는 감당할 것이니까 한번 힘을 내보라고, 격려할 수는 있고, 그리고 각자 개인이 하고 나서 부족하면은 나머지는 자기가 조용히 뒤에서 내서 하는 방법도 있고, 부자가 돈쓰기가 훨씬 어려워요. 겸손하게 써야되고, 덕이 되게 써야되고 훨씬 어렵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그런 융통이 없지마는 부자는 훨씬 어려워요. 그러니까 그렇게 지혜롭게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각자 힘을 헤아려 하기 때문에 누가 많이 했는지 적게 했는지 교회는 판단할 기분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 때는 그들의 기업의 양이 있고 그들의 수확의 양이 있으니까 그냥 아는 것이어요. 그러나 신약 때는 그런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 자기 신앙 양심상 고백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은 지금은 삼대 절기는 없지마는 아, 여러분도 우리 시골에서 보면은 부자집도 보리농사 때는 보리밥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째서 엇그제만 해도 일꾼들은 쌀밥을 먹었는데 보리밥 주냐고 그러면은, 농사 때는 그런단다. 그렇게 대답하면 된다. 그리고 모심을 때는 한참 어려울 때인데 그래도 그때는 말하자면 쌀밥주고, 시골에서는 일하고 집에 갈때는 그것 가지고 갑니다. 집에 식구들 있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맞겠어요. 어른들이 일나가면 얘기들은 굶고 있겠지요. 그러니까 끝나고 나서 이고가는 것이 맞겠지요. 그때 보면은 영 짭짭하드라고. 그 쌀밥 누롱지 맛있지 안해요. 모내기 할 때 누룽지 맛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싹싹 긁어가지고 가면 아깝드라고요. 그런데 그때도 시골 사람들은 모를 심으면서는 일꾼도 쌀밥 주어야지 보리밥을 주면 안된다. ? 모내기에 참여하니까. 구약에서도 그렇지요. 곡식을 터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아라. 그도 함께 나누어야 될 것이 아니냐? 이방인도 그런 지혜를 다 갖고 있어요. 그때는 소도 죽을 쭈어 주지요. 소도 아주 잘 먹습니다. 논을가니까. 그런데 당연한 상식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 농경 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자기 생활과 수확과 얽혀 있어요. ? 땅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굶어 죽어요. 땅으로부터 나와야 함께 먹고 즐거워해요. 그런데 우리는 월급을 받아서 그런지 그런 재능이 없어요. 그러면 그때는 지방이 공동사회라 함께 일해야 함께 먹으니까 부자라도 일꾼 안오면 농사 못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전부 같이 어울려 사는데 우리는 월급이라 그런지 그런 개념이 없어서 농경사회의 안믿는 이방인들보다도 우리 삶에 질이 소위 차별화 되어 있고 철학화되어 있고 실재와 연결이 되어 있지 안해요. 그러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밥먹을려고 직장 가지 하고 그 월급을 받는 것이 얼만큼 소중한지 그 월급을 걷도록 삶의 질서에서 봉사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지, 그런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안해요. 살려고 일하고 월급받지 별 것 있어요. 월급만 많으면 요새는 전부 어디로 갑니까? 다단계로. 자기 직업 놔두고 전부 그쪽으로 가버려요. ? 몇 명안 잡아 놓으면 가만히 있어도 수입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 기능하고는 상관없이 회원 모집하는데로 전부 빠져버리지요. 그러니까 삶의 질이 훨씬 떨어져 있어요. 직업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먹고 사는 것을 아주 가치없게 생각해요. 그리고 더운 여름에는 밥 안하고 화장실 안가면 살만하지요. 더우니까. 요새는 시설이 젛으니까 상관이 없지마는 그전에는 먹는 것오 힘들고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듭니다. 그리고 넌닝구 입고 찬밥에 물말아 먹지요. 잠자고.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어요. 그런데 월급받는 산업 사회에서 사니까 그런 개념이 쭉 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은 모든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것으로 받은가 동시에 하나님의 것으로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손을 펴야 됩니다. 당연히 교회에 대해서는 더 그러겠지요. 왜냐하면 교회가 그것으로 먹고 그것으로 복음전파하는데 봉사하니까 더구나 신령한 것으로 뿌렸으면 육체의 것으로 거두는 것이 합당하다. 염려없이 일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수고를 다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것은 목사가 많이 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생활에 염려없도록 수고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있을 때 이야기를 했던가요. 심방만 가면 우리 조사님 오셨다고 좋은 것을 다 내놓습니다. 내가 전도사 때입니다. 주의 종이 왔다 그말이지요. 그리고 기도해 달라는 말입니다. 부자들이 우리 집에는 안가지고 와요.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시장에 갔다 오면 가져와요. 조사님 이것이 시장에 나왔더라고. 그러면 그것도 짬짬한 것입니다. 이것이 초생물이라고 가져왔다냐? 그냥 맛있는 것이라고 가져오면 되는데, 첫 것이니까 조사님 안드리면 먹으면 벌받을까 봐서 가지고 왔다냐. 그렇게 먹으면 또 안되거든요. 구약 때는 첫생물이 있지마는 신약 때는 그런 것이 없어요. 다 예수의 살과 피에 참여하지, 첫 것이 있고 다음 것이 있는 것이 아니어요. 단지 우리들은 옛날부터 어른에게 먼저 드리고 먹는 것이 상식이어서 그런 것 뿐이지, 그러니가 예의 범절이지 구약 은혜는 아니어요. 그렇게 가져와도 성경적이 아니면은 미신적이어서 꼭 좋은 것은 아니어요. 그래서 새벽 시간에 했더니 그해는 제가 잘 먹었습니다. 나는 주의 종이 왔다고 잘하고, 집에 가면은 돼지 새끼같은 얘기들이 졸졸이 있는디, 나보고 다 먹고 가라고요. 딸린 자들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여자들의 시집가면은 남편 때문에 시댁 사람들에게 나하지 안해요. 그것은 상식적인 일인데, 그것이 종교적으로 잘못되면은 주의 종, 주의 종하고는 심방가면 목사만 떠받들지 그런데는 생각을 안해요. 그래서 그때는 쓸대 없는 솔기 해갖고 그해는 잘 먹기는 했습니다마는, 그것은 상식적인 일이라 말하면 챙피한 일이어요. 그러면 지금 우리들이 절기를 안지키지마는 아 여러분 보십시오. 세상 남편들도 보너스 타면은 야, 이 달에는 좀 써보자. 그리고 안믿는 사람들도 오늘은 내가 한잔 사겠네. 왜냐하면 우엣돈이 생겼거든. 많이 생기니까 많이 쓰는 것이 상식 아닙니까? 또 여러분이 적금을 들 때도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고. , 많이 오니까. 그런데 평소 때는 안사도 욗하지 않겠지마는 그날 자기가 보너스를 탔다거나, 판매사원으로 판매왕이 되어 갖고 특별수당을 탔는데 그냥 들어가면 사원들이 보고는 욕한다 그말이지요. ? 평소에 안쓴 사람도 그날에는 쓸줄 알고 기대하거든요. 그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 그가 많이 받았으니까 우리들도 함께 즐거워하자. 그런 것은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가 우리들은 구약 때는 이렇게 정해주므로 그렇게 했지마는 신약 때는 그 정신에 따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마는 풍성히 받았을 때는 그 풍성함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 상식이 맞아요. 그러니까 삼대 절기만 지킬 것이 아니라, 헌금을 많이 거둘려고 이렇게 하면 안되겠지마는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하심에 참여코자 한다고 하면은 시골 교회 같으면, 나 같으면 딸기 감사주일도 있고, 수박감사주일, 포두감사주일, 여러번 하겠어요. 그리고 가을되면 호박추렴, 많이 있을 때 많이 거두어다 먹으면 좋지요. 그리고 많이 먹을 때 동네 사람들 초청해서 내가 올해 부자가 되었으니 같이 먹자고 나누어 주면 좋지요. 교회만 먹을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것이 우리 상식에 맞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풍성히 거두어서 많이 먹고 다른 사람은 가만히 놔두면은 그건 한 몸의 교제로 안맞다. 더구나 이웃끼리도 그런 것은 기분 나쁜 판에 , 형님은 잘먹고 동생은 못먹으면은 싸움나버린다. ? 형이라 당연히 줄줄 알거든. 동네 사람들도 욕해버리고.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다. 그가 자기 생명을 주셔서 우리를 복주셨는데, 우리는 가진 것을 가지고 손을 움켜쥐면은 합당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교회가 봉사해서 복음 전파에 장애가 없도록 해야 될 뿐만 아니라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아서 그들로 편안케 하고 자기 개인이 구제하기에 힘들면 형제에게 알려서 함께 힘을 합하자고, 그렇게 해서 주의 몸의 지체들이 가난함이 없도록 해야된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각론입니다. 오직하면 웨슬레 같은 사람은 여러분 돈주머니가 회개하지 안으면 여러분의 회개를 못믿겠다. 그렇게 말하느냐 그말이어요. 그리고 부자는 내가 모았다가 연말에 구제할께요. 해도 가난한 사람은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 죽어요. 그러면 부자가 연말에 줄 것도 모으면서 필요할 때 주어야지, , 생일날 잘 먹으려고 몇일 굶는다고 그렇게 하면 안되겠지요. , 구제는 가난한 사람의 요구가 무엇인가 주어야지 내가 어떻게 줄 것이니까 그도안 참아라. 하는 것은 옳지 않지요. 그런데 그 가난이 꼭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가난인지, 안그럼변 불편한 가난인지 분별해야 되겠지요. 모든 불편은 감내해야 되지 그런 불편을 벗어날려고 형제에게 도와달라고 해서 안도와주면 아이고 아무도 나를 안돌아본다고 말하면 안되지요. 그러나 형제나 꼭 필요한 도움은 그가 요청하기 전에도 분별하고 도와주어야 되어요. 그리고 그런 도움을 받는데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세상에 홀로사는 사람은 없는 법이어요. 마땅히 그렇게 해야된다. 지금 이 16장에서 절기의 메시지가 그런 것입니다. 교회도 이런 절기를 많이 만들어 두고 성경에 있는 절기는 의무적으로 하고 나머지는 우리 아이디어로 해서 먹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놓으면은 가난한 교인은 주일날 교회만 나와도 일주일에 한번은 잔치하겠지요. 그런데 교회는 그런 규례는 갖고 있지 않지마는 주님게서 몸을 주신 그 사랑으로 형제를 돌아보아야 된다. 그러니까 성찬에 참여하는 것과 헌금과 구제는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풍성히 주신 것으로 상을 차리는 것이지요. 함께 먹고 마실려고. 주님이 거기 임하셔요. ? 한 상에서 먹고 마시니까. 것은 말하자면은 집장에서 준비하는 이유가 그것이어요. 교회 재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함께 먹는 것이지요. 인제 성찬이나 헌금이나 구제는 한 상에서 먹고 마시는 교제에요. 그런데 아라비아 쪽 사람들은 보면은 기독교인은 아니지요. 그래도 그들도 구약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떼부자 많습니다. 석유 부자가. 그래도 데모 안해요.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소를 한 마리 잡아서 자기도 먹고 대문에 걸어 놓으면은 지나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마든지 잘라다 먹을 수 있다 그말이지요. 이번에 이락크 사람들이 요르단 쪽으로 피난갈 때 어떤 큰 부자가 자기 재산을 풀어가지고 먹이지 안해요. 형제니까.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은 아니어도 아랍 형제들이지요. 굉장한 단결력을 갖지고. 빈부 차가 심해요. 그래도 사회가 소요를 일으키거나 데모 안해요. 왜냐하면 그들 중에 부자가 있는 것이 그들의 복이거든요. 하옇튼 옛날에는 부자집 사람이 죽으면 동네가 좋아했어요. 소위 건 초상이 났거든. 먹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요새 같으면 장의차 벤츠에 싣고 핑 가버리면 옆집 사람도 못먹어요. 오히려 꽃다발 줄줄히 놓으면 자기집 대문만 가려서 기분이 나쁘지 그런데 옛날 시골에서는 그러지 안했다 그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때 옷감도 생겨요. 그러니까 사람이 죽은데 좋아했다고. ? 먹는다고.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 것을 염두에 두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깨어 사셔야 됩니다. 그런 의미로 교회가 가난하다는 말은 이해가 안되지요. 그런데 실제적으로 그렇게 힘을 다해 봉사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교인이 60명이면 나는 1/60하면 내 의무는 다했구나.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 이런 식으로 한 조직의 일원으로 한 부분만 감당하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가 어려운 것이어요. 교회는 특별한 부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힘을 합치면은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그렇게 어렵지 안해요. 세상 말로 십시일반이라고 어렵지 안해요. 그런 것이 잘 안되어서 그렇지요. 그러니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최선을 다하고 이런 의무가 있는 것이지 꼭 부자만 구제할 의무가 있고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재산을 벌도록까지는 구제는 안해도 되고, 그런 법은 없는 법이어요. 물론 자기부터 안정되어야 되겠지마는 필요한 때는 손을 펴야 됩니다. 내 살림이 안정되지 안했으니 기달려라. 그래서는 안되고 필요할 때는 손을 펴라. 그리고 인제 자기 일에 충실하면 좋은데 우리 나라는 성도들 끼리 이집 저집 왔다갔다 하고, 거기다가 시어머니 흉, 남편 흉을 살살 보면 우리는 성도 교통이 잘되는구나. 그리고 하루 종일 왔다갔다해요. 자기 일에 충실하고 필요하면 방문하고 해야지 괜히 시간을 낭비하고 우리는 간격이 없고 허물이 없도다. 그러면 안되어요. 서로 간격이 있어야 되어요. 딸도 자기 친정 어머니에게 가서는 남편 말을 잘 안한다고. 챙피하니까. 적당히 집에 온 변명만 하고는 진짜는 챙치한줄 알고 안해요. 그리고 자기 친정집이 가난하면은 빚내갖고라도 떡해갖고 가지요. ? 시댁에게 챙피 안당할려고. 한 가족인데도 말하자면 그 인격 때문에 자기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이어요. 그러니까 서로 한다고 성도 교제가 아니어요. 성도 교제는 한 몸으로 사랑하라는 말이지 비밀이 없는 것이 성도 교제가 아니어요. 제가 하는 말의 으미를 알겠지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서로 돌아보고 힘을 다하셔야 됩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주셔서 우리를 부요케 하셨는데, 그가 자기네 가난한 백성을 위해서 주의 이름으로 손을 펴는 자를 가난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만일에 그가 가난하게 되면은 그전에 부자였을 때 멋모르고 구제했던 것을 이 구제가 얼만큼 가치있고 소중한가를 알고 구제케 할려고 혹시 그를 가난하게 할련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결코 자기 백성이 선을 행하려고는 데 선의 물줄기를 잘라버리는 법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부지런히 수고하시면 될 것입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로 마치겠습니다.

'구약 구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명기 강해 18  (2) 2024.08.31
신명기 강해 16:18-17:  (0) 2024.08.24
신명기 강해 15  (1) 2024.08.10
신명기 강해 14  (0) 2024.08.03
신명기 강해 12,13  (0) 2024.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