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 16:18-17:
여기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첫째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고, 그 다음 형제 중에서 세워라. 그랬지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 그 다음 형제 중에서, 이방인은 안되어요. 여호와께서 안택해도 안되고. 이 두 가지입니다. 세우기는 왕으로 세우면 왜 그러면 안됩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만일 타국인이 지배한다고 하면 그것은 어떤 상태에요. 이스라엘이 종으로 있는 상태고 여호와께서 통치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로 세우는데 네 형제 중에서 세워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형제 중이라고 하는 말을 여러번 반복하지요. 타국인이 왕으로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종으로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안됩니다. 왕에게 금하신 것과 그 이유는? 왕에게 금하신 것은 세 가지입니다. 말을 많이 두지 말고, 여자를 많이 두지 말고,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 그러면 왜 이 세 가지를 두지 말라고 그러는가? 이 문맥에서는 무엇을 말합니까? 너도 너희 중에 둘러있는 여러 나라처럼 왕을 세우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왕을 세우되 내가 택한 사람을 세우고 네 형제 중에서 세워라. 그렇게 했거든요. 그런데 그 왕은 조심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조심하는 것 같아요. 네가 둘러있는 여러 나라처럼 왕을 세우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내가 택한 백성을 세워라.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거든요. 그리고 너희 형제 중에서 세워라. 왜, 이방인의 종살이하면 안되거든요. 내가 택한 사람을 세워라. 그는 하나님을 대리한 왕이거든요. 너희 중에 둘러있는 여러 나라처럼 왕을 세우기를 원하는가? 이 나라는 어떤 나라와 비교됩니까? 둘러있는 여러 나라와 비교되지요. 왕을 세운다는 의미는 같지마는 둘러있는 여러 나라와 비교되는 것은 이스라엘 왕은 내가 택한 사람을 세워야 된다. 그리고 너희 형제 중에서 세워라. 그러면 내가 택한 왕은 어떻게 해야되는가? 말을 많이 두지 말고 여자를 많이 두지 말고 은금을 많이 두지 말아라. 둘러 있는 여러 나라는 어쩌는가? 비교되겠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요. 그러니까 둘러있는 세상 제국과는 달라야되어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봉사하는 관점이어요. 나중에 이스라엘이 솔로몬 때부터 그랬지요. 말을 많이 가지려고 애굽에서 말을 드려오고, 바로의 딸을 아내로 데려오고 그것도 부족해서 여러 나라에서 공주를 데려와서 정략결혼을 했지요. 그러면 그들이 전부 자기 나라 신들을 하나씩 가져왔지요. 그래갖고 임금을 미혹했지요. 국제결혼을 통해서 국력을 강화시켰어요. 그런데 자기 나라에서 행하면은 이런 일은 별로 없지요. 전부 여호와만 섬기니까. 그런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귀족들의 힘을 의뢰하니까 그도 세상 정책과 같은 것이어요. 그 일에 이스라엘 백성이 실패해버린 것이어요.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선지자의 말씀을 거역한 것도 있지마는 왜, 나를 의뢰하지 않고 열국을 의뢰하는가? 왜 내가 왕인데 열국을 의뢰하는가?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최후 심판 죄목이어요. 여기서 왕에게 그것을 금하신 이유는 그들은 세상 제국과는 달라야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들은 여호와께서만 통치하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말을 많이 둘려면 어디로 간다고요. 애굽으로 다시 내려가지 말아라. 애굽은 그 당시 세계적인 강국이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냈거든요. 그런데 다시 그 왕과 그 세력을 의지할려고 내려가면 안되지요.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그 당시 아라비아 말이 최고로 유명했던지, 이런 저런 말이 되겠지요. 그래도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전에 애굽의 종살이 했거든요. 다시 그 권세 아래로 그런 식으로 들어가면 안됩니다. 아내를 많이 둘지 말 이유는? 남편의 마음을 미혹한다고 그랬지요. 미혹하는 것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실은 이방 여자들을 데려와서 미혹했지요. 자기 신들을 하나씩 끌고 왔어요. 그러면 말이 결혼이지 옛날에는 인질 비슷해서 요새 같으면 대사관처럼 치외법권적인 지대에요. 그래서 자기 신들을 다 갖다 섬겼다. 이 여자들이 왕의 마음을 바꾸었다.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솔로몬은 세계적인 제국을 자기 소하에 두는 그런 강국을 이루었던 것인데 그것 때문에 결국은 망한 것이지요. 그리고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 그랬는데, 이런 것은 전두환이처럼 비자금을 많이 두지 말라 그런 말은 아니고, 그래서 부정부패하니까 그런 문제는 아니고, 은금을 많이 둔다는 것은 자기 부귀와 영화를 극대화 하는 것인데 솔로몬은 자기 왕궁을 이런 식으로 찬란하게 짓다가 불만이 많했지요. 그래서 솔로몬이 죽고난 뒤로 백성들이 찾아와 가지고 당신의 아버지가 너무너무 토목사업을 많이 일으켰으니까 조금 가볍게 하자고 하니까, 이것들이 내가 이제 왕되었다고 나를 무시하고, 우리 아버지 때는 꼼짝없이 잘 하더니 내 때는 안할려고 그러는구나, 해 갖고는 자기 친구들을 말을 듣고 잘못했지요. 머리를 빌렸는데 아들 머리를 빌렸지요. 우리 나라 식으로 하면 잘못 빌렸어요. 그래 갖고는 일이 잘못되었어요. 그러니까 은금을 많이 두는 것은 국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말을 많이 둔다는 것은 전쟁하는 의미로 그렇고, 솔로몬 때는 하여튼 음금이 길에 있는 돌맹이처럼 발에 체였고 백향목이 길에 있는 뽕나무처러 흔했다고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그동안에 국민들은 등골이 빠졌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해가지고는 안된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임금은 뒤에 보면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을 대리하는 통치가 되어야 되지 백성위에 군림하거나 자기 왕권을 극대화 하는 이방 왕처럼 하지를 말아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왕이 행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은, 율법서를 등사해서 평생에 자기 곁에 두고 읽어서 여호와를 경외해라. 이 율법서는 신명기 율법서겠지요. 이 율법서를 등사해서 자기 곁에 두라고 하고 있습니다. 왕이 율법서를 자기 곁에 둘 이유는 설명하기를, 이것을 읽으므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고, 여호와를 경외하니까 백성에게 교만하게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임금은 하나님이지 자기가 아니어요. 자기는 대리왕일 뿐이어요. 그렇게 해서 왕에 대한 규례를 지키면 받을 복은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왕으로 봉사하기 때문에 그 나라가 영원하리라. 그런 이야기지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두는 규례에요.
인제 이런 것을 우리 나라 임금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직접적인 적용은 안되어요. 이것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로서 이스라엘이지 직접 우리 나라하고 관계된 것은 아니어요. 이방 통치 이념하고 막 연결된 것은 아니어요. 그러니까 이방 나라도 하나님을 섬긴 나라는 잘되고 우상 섬기는 나라는 꼭 안되는가? 구약 같으면 그렇게 설명하지요. 이스라엘만 젖과 꿀이 흐르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무시해버려요. 신약에서는 그런 설명들을 안해요. 물론 세계사에서도 국력을 강하게 하면 할수록 실은 국가 토대는 약하고, 그래요. 물론 세상 정치에서도 이런 원리는 나타날 수 있겠지마는 직접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것은 신약 교회의 통치로 적용을 다시 바꾸어서 설명해야 됩니다. 이스라엘이 국가라고 해서 지금 우리 국가에 적용할 조항은 아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였으니까.
이제 설명입니다. 각 성의 지파를 따라 하나님의 공의로 재판할 재판장과 관리를 두면 실은 하나님의 공의와 지혜로 재판할 재판관과 관리를 두면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그 통치가 온 땅에 미치지요. 각 성에 각 지파마다 두니까. 우리 나라는 재판관이 각 성에도 안있지요. 광주에 있고 목포에 있고, 장흥에 있고 해남에 조금만한 것이 있고, 별로 없어요. 그런데 각 성에 각 지파에 이런 재판장을 두면은 하나님의 공의와 지혜가 온 세상을 통히해요. 그러고도 어려우냐? 내가 있지 않냐. 내 집에 와라. 나에게 물어라. 누구에게? 내 대표자에게. 그러니까 술길 방법이 없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그들은 외모로 사람을 보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아서 지혜롭게 의롭게 판단해야 된다. 그리하면 그들이 살고 유업의 땅을 얻을 것이다. 여기서 사람을 외모로 보는 것은 이스라엘은 여러 등급이 있는 나라지요. 그들은 그 등급이 그들의 외모입니다. 천부장 백부장, 만부장이 있지요. 그러나 그런 것을 보지 말아라. 왜? 하나님이 통치하시니까. 그렇게 말합니다. 뇌물을 받지 말고 지혜롭게 의롭게 판단해야 된다. 뇌물이라는 것은 항상 그런가 봅니다. 뇌물은 지혜자의 지혜를 어둡게 한다. 하나님의 그들의 생명이시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받을려고 하지 말라 그말이지요. 그리하면 그들이 살고 유업의 땅을 얻을 것이다. 항상 언약의 복으로 복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재판장과 관리의 직무는 백성이 오직 여호와만 섬기도록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단 곁에 절대로 우상을 끼면 안되어요. 또 여호와 앞에 보통으로 예물을 드려서는 안되어요. 여호와를 잘 섬기도록 하는 것이 실은 모든 관리들이 할 일이어요. 그리고 백성들의 송사를 판단한다. 재판장과 관리들은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만 섬기도록 하는 것이다. 유업의 땅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을 섬긴다는 말이 있으면 그 사실을 조사해라. 그런 가증한 일을 행한 자를 성문에서 돌로 쳐서 죽이라. 두 세 사람의 증거로 죽이고 한 사람의 증거로 죽이지 말아라. 증인이 먼저 손을 댄 후에 뭇백성이 손을 대라.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 악을 제거해라. 영으로 번역하면 뭇하는 것은 every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다 달려들어서 죽이라는 말이어요. 그렇게 해서 악을 제거해라. 이것이 재판하는 방식이어요. 요새 식으로 하면 인민재판 비슷하지요.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왜 온 백성이 달려들어서 죽여야 되는가? 재판장들을 세웠지마는 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봉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판결을 그들도 집행하는 것이어요. 누가? 증인과 뭇백성이. 그래서 그런 것이어요. 요새 민주주의에서도 이런 제도가 조금은 있지요. 말하자면 무엇을 잘못하면은 국민소환제도 있고,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조금 도입을 하지요. 그리고 재판장이 아무리 재판해도 국민이 데모해버리면 그 영향을 받지요. 이런 영향들이지요. 그런데 이것과는 더 달리 이스라엘 백성은 중보 직임자를 통해서 재판을 하지마는 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겨야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판결을 집행하는 나라에요. 특별히 재판장은 더욱 그래요. 그래서 이렇게 하라 그런 말이어요. 다투는 송사가 판결하기 어려울 때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의 판결을 받으라. 그냥 제사장이라고 하지 않고 레위 사람 제사장하는 것은 레위 사람은 하나님을 봉사하거든요. 장자에요. 그래서 그럽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판단으로 판결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세우신 판단자이기 때문에 그런 판단자에요. 만약 사람이 방자하여, 천하히 행하고 이런 말은 잘 모르겠지요. 그리고 유사라는 말도 우리 시대에는 잘 안쓰는 말이지요. 관리 하면은 알지만은, 어른들 때는 계도 유사가 있고, 그러지마는 우리 젊은 사람들은 이런 단어를 잘 안쓰니까 바꾸어야 되겠지요. 현저히 행한다는 말은 방자히 행한다는 말과 같아요. 무례하게 행한다. 사람이 방자히 행하여 재판장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은 그를 죽여서 이스라엘을 중에서 악을 제거해서 백성으로 듣고 악을 행하지 않도록 한다. 예수님도 이러다가 한번 혼나신 적이 있지요. 재판장에게 말했다가 네가 재판장에게 말하느냐? 해갖고는 그렇게 했지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죄가 있으면은 모르지만 죄가 없으면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렇게 하셨지요. 바울도 이 말을 한번 했다가, 아 나는 그 사람이 재판장인줄 몰랐다. 그래갖고 빠져나왔지요. 재판장에게 회칠한 무덤이요 했다가, 네가 재판장을 욕하느냐? 나는 재판장인줄 몰랐다. 재판장이면 그런 시시한 말을 하겠느냐. 그래 갖고 빠져나갔는데, 하나님이 세우신 재판장은 하나님을 대리하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나라로 하면은 공권력이어요. 그러니까 조금만한 교통경찰이, 요새 교통경찰 어리지요. 옛날 우리 어려서는 일본 순그사 온다고 하면 아주 무서웠지요. 그러니까 그때는 순사가 굉장했던 모양이어요. 그런데 요새는 교통 경찰은 조그만 하거든 어려요. 그 공권력에 대해서는 국가 권력을 대리하면 말을 얼려야 되어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어이, 자네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국가 공권력을 행하고 있을 때는 그가 국가를 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은 무례한 말이어요. 살짝 겁주어서 봐부라고 하는 데는 효과가 있는지 모르지마는 그래도 공권력에 대해서는 말을 올려야 됩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그런 할 수 없는 일이고, 국가 권력을 대신하기 때문에. 그런데 여기서는 재판장은 왕이 세우신 자이기 때문에 그 말을 안들으면은 하나님을 대항한 자라 죽여 없애야 됩니다. 유업의 땅에 거할 때 주위에 들러있는 여러 나라 같이 왕을 세울 뜻이 나거든 반드시 여호와께서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도록 세우신 자를 왕으로 세우라.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이니까. 타국인을 세워 그의 종이 되지 말고, 네 형제 중에서 세우라. 왕이 된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고, 그것을 얻으려고 백성을 애굽으로 보내지 말아라. 말하자면 국력을 극대화시키려고 애굽과 동맹을 맺으면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미국하고 미사일 동맹을 맺으면은 미사일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미국 영향을 받지요. 그렇게 종살이 하지를 말아라. 또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라.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은금을 많이 쌓아두지 말라. 이스라엘은 열국과 달리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왕은 제사장 앞에 보관하는 율법서를 등사하여, 제사장 앞에 보관했다는 말은 실은 하나님의 말씀은 돌판에 새긴 것은 법궤 안에 보관하고, 모세를 통해서 기록한 것은 제사장 앞에 보관하는 모양이지요. 그리고 왕은 등사판에 등사해서 자기 보좌 곁에 두어라. 이것을 발견해서 대대적으로 성전을 개혁했던 임금은 누구지요. 요시아 임금이지요. 요시아 임금이 성전을 청소하다가 율법의 등사판을 발견했어요. 읽어보니까 자기들은 죽었어요. 끝났어요. 그래서 대대적으로 개혁을 했지요.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서에 모든 말씀을 집행해라. 그리하면 그가 형제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을 치우치지 아니하고 지키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 나라가 장구하리라..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시며 여호와께서 행하실 자기 백성에게 세우신 왕은 여호와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말씀을 순종해야 되어요. 이것이 전기 선지서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는 안목이다. 전기선지서는 여호수아부터 열왕기까지 우리 식으로 하면 역사서지요. 우리는 역대기까지 역사서로 구분합니다마는, 열왕기서 그것이 바로 그런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합니다. 신명기적 관점에서,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은 그 나라는 번성하고 왕이 그 말을 잘 안들으면 이스라엘은 약한 나라가 되고, 만일에 이방 신을 끌어들이면 이방의 포로가 될 것이고, 그런 것이 왕들의 역사를 해석하는 방법이어요. 그래서 솔로몬이 자기 왕궁을 지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와의 성소를 짓고, 이어서 자기 집을 짓고, 그런 식으로 나와요. 그런데 역대기에서는 여호와의 성소에 대한 다양한 기구를 짓는 것으로 나오지 자기 집을 여호와의 성전은 13년 동안 짓고 자기 집은 몇 년 걸려 짓고, 이런 그 열왕기에서는 하나님의 성소와 왕의 집을 같이 언급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궁에서 자기 대리왕을 통해서 통치하셔요. 그런데 역대기에서는 레위기 문서로 이야기 하기 때문에 어떻게 다윗 성전을 지었는가? 성소의 기구의 다양함을 설명하는 것이 역대기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전부 특징이 다르지요. 열왕기는 왕의 통치에다 강조를 둡니다. 그 왕은 여호와의 대리왕이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성소를 짓는 것과 자기 왕궁을 짓는 것을 같이 언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머리로 그 아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이 17장에서는 제사장과 왕에 대한 문제이지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을 기업으로 얻었고,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낸다. 누구에게만 예비를 드립니까? 오직 우리 아버지되신 분, 누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 외에 거기 다른 신을 옆에 두면 안되어요. 그리고 흠있고 없고가 아니라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내야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판결의 빛 가운데서 살며 하늘의 천사도 판결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재판장의 판단이 아니어요. 구약 때, 이제는 하늘 보좌에 계신 분의 판단의 빛 가운데 우리가 살아요. 그러니가 땅의 교회는 모세 제도 식으로 재판하면 안되어요. 하늘 보좌의 빛 가운데서 판단을 받아야 되어요. 그것은 각자가 다 그런 판단을 해요. 꼭 목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그리고 각자가 천사를 판단하는 존엄한 가운데 있어요. 왜 신약의 교회는 하늘을 봉사하거든요. 구약의 이스라엘은 땅에 하나님 나라로 대비되어 있지마는 신약은 하늘 보좌의 나라고 그 대리자에요. 그래서 교회는 하늘에 천사도 판단할 줄을 너희들이 모르느냐? 고린도전서에서 그렇게 말씀하는 것이어요. 지금 교회에서 권징하는 것은 교회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지 신약에 있는 완전한 판결을 베불고 있는 것은 아니어요. 그것은 복음의 빛만 그 판결을 완전히 드러내지 구체적인 삶에서 정치적으로 하는 것은 그것을 완전하게 담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신약 교회도 마음으로 음행해도 판결 못해요. 바람피우기 전에는. 그러나 복음의 빛 가운데서는 그는 자리가 없어요. 그러니가 신약 교회가 아이고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하고 다르다고. 무엇이 다르냐고? 다른 교회는 이것 이것을 하는데 우리 교회는 안한다고. 그렇게만 갖고는 신약 교회를 판단하지 못한다. 신약 교회는 하늘의 영광의 빛 가운데서 판단해야 되지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 몇 가지, 구약 교회와 비교해서 몇 가지 행동 좋은 것, 그런 것으로 판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천원짜리를 다리미로 다려서 헌금하고 처음 나온 수박은 하나님의 것, 그런 정도가 아니다. 우리는 전 몸으로 하나님 앞에 산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것을 누가 판단하십니까?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이 그것을 판단해요. 만일에 여러분이 이렇게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은 우리들은 주님 판단대 앞에 설 수가 없어요. 신약은 전혀 다른 빛 가운데 산다. 교회는 주님의 판결의 빛 가운데 살며 하늘의 천사도 판단한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판단하는데 서로 옳다고 따져보았자 송사를 할 때 낯내놓고 당신은 틀리다고 판단해 보았자 구약에는 판결할 재판장이 있어요. 여호와가 계시고. 누가 맞다 할 수 있어요. 그래도 다윗 왕때는 다르지요. 특별히 솔로몬 때 달랐지요. 두 여자가 아들 하나를 가지고 서로 내 아들이라고 했을 때 솔로몬이 판단했지요. 만일에 다른 판단을 하면은 저것은 내 아들이 아닙니다. 하고 고백한 여자는 죽어야 되고 그리고 저것은 내 아들이라고 우긴 여자는 이기면 되어요. 증인이 없지 안해. 그리고 자기 입으로 고백했으니 하나님 판단을 구할 것도 없어요. 자기 입으로 고백하지 않고 서로 싸우면은 판단이 난처하니까 하나님 앞에 물어야 되겠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요. 왜 다른 여자가 내 아들이 아니라고 손들어버렸지요. 그러니까 판단이 끝나버렸지요. 그런데 솔로몬은 달리 판단했지요. 저 내 아이가 아니라고 한 여인에게 그 아이를 주고, 그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가지자고 한 여자는 안된다고 했지요. 솔로몬의 판단은 그전 율법의 판단과는 다르지요. 당사자가 고백하는데도 판단을 달리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누굽니까? 하나님의 지혜자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벌써 구약 때도 솔로몬 때는 달라있어요. 신약 때도 그래요. 둘이 와서 서로 옳다고 떠들면은 옳고 그르고를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교회가 판단할 빛은 아니다. 그는 형제에게 자기 행위는 옳을련지 몰라도 형제를 위해서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의 악함이어요. 그러니까 만일에 서로 누가 옳은가, 재판장이 따지겠는가? 판단할 수 있어요. 너희중에 그것을 판단할 자가 없느냐? 너희들이 천사를 판단할줄 모르냐? 차라리 형제를 위해서 속아버리면 좋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신약 교회는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고 우기면은 옳을 수는 있지마는 교회가 판단할 때도 아, 저 사람은 거룩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틀렸구나. 그러겠지요. 무슨 말인가 아시겠지요? 부자지간에도 어려서는 형제끼리도 빡빡 우기면은 네가 옳아. 너는 틀렸고, 아버지가 판단해요. 네가 잘못했다고 그래. 그런데 다 큰 아들이 아버지 들어좀 보십시오. 이 동생좀 보십시오. 아버지 나는 어쩌요. 그러면, 아따 너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옳다. 그러지 않지요. 예수님 비유에도, 이 탕자같은 자식,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자식이고, 너는 항상 내 집에 있었지 않냐? 그러니까 죽었다가 산 이 자식을 두고 잔치한다고 그것이 나쁘냐? 너도 이 잔치에 참여하라고 하니까 큰 아들이 꼴아갖고 문 밖에 있었지요. 그런 비유와 같아요. 신약 때는 그런 판단을 안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옳은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집행되는지 아닌지 심히 조심하라. 그런 말입니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 참으로 옳지마는 말하자면 옳은 것을 빙자해서 사랑을 없애서는 아주 위험한 것이어요. 그 점을 조심해라. 그런 말이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도 판단할 때는 객과적인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는 법적으로 판단해요. 그동안 많은 문제가 싸여서 터져버렸겠지마는 최후적인 판단은 법적인 판단밖에 못해요. 우리는 거기서 옳다는 것 밖에 더 이상 말을 못해 주어요. 가령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살았는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자기 옳음을 활용했는지, 그것은 형제를 세우기 위해서 허락했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판결받을 조항들이어요. 우리는 마음으로는 저 사람이 저러는구나, 알아도 그것으로 교회를 치리할 때 적용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법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교회는 전혀 다른 판단 가운데 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천사의 군대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를 의지하사 십자가로 말미암아 승리하셨다. 교회는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며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한다. 왕의 대한 이야기지요. 교회도 은과 금이 있어야 될줄로 이해하지 말아라. 그러니가 교회사에서는 가장 교회가 타락한 것이 중세 시대라고 그래요.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 삼았을 때 교회는 버린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가 타락하는 것은 이단 시비가 있을 때는 타락하지 안해요. 죽자사자 살아야 되고 그런 욕을 안먹어야 되니까. 그러나 교회가 제도권에 정착하면은 그때는 왕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안해요. 더구나 그 교회가 장로가 대통령 후보고 몇 명 나와버리면은 손을 못대요.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런데 요새는 교회도 그렇게 할려고 그래요. 그러나 참으로 왕되신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왕들은 많은 세상 왕들을 의지하다가 망해버렸어요. 솔로몬까지라도 그렇게 하다가 그 나라가 무너졌어요.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안했어요. 다윗은 그가 이기면은 말의 발의 힘줄을 끊어버렸어요. 그리고 여호와만 의지했어요. 그런데 그 아들 솔로몬 때는 그렇게 하지 안했지요. 그리고 뒤따르는 왕들의 거의 세상 임금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망했지요. 하나님이 마지막 때 오신 왕은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다. 그는 하늘에 있는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들, 하늘에도 열두 연단이 있어요. 땅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있지요. 항상 모세 언어입니다. 천사들 수를 센다가고 열두 연단쯤 되면은 아 천사들 숫자를 알겠구나. 그렇게 안된다 그말이어요. 모세 언어로 이야기하니까. 하늘에 있는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들을 부를 수 있는 분이지마는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 나라를 세우려 땅에 오셨을 때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을 때 그걸 부르지 안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모든 고난의 잔을 자기 받았고, 아버지를 의지했지요.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모든 권세의 주가 되도록 하셨어요. 교회는 모든 권세의 주님을 섬기는 교회에요. 지금도 죽음이 왕처럼 활동하지마는. 우리는 기꺼히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주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아직 그의 구원이 나타나지 안해요. 그는 부활을 통해서 확실히 증거했기 때문에. 교회는 은금을 자랑한다거나 세상의 세력을 자랑하면 안되어요. 교회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해야 됩니다. 교회는 구약 언어대로 하면은 성곽없는 촌락과 같아요.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키시지요. 오히려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교회처럼 칼도 가지고 있지 안해요. 구약 때는 이방과 싸우도록 이스라엘을 세웠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의 손에 칼이 있었지마는 신약 교회는 그것이 없어요. 왜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을 통해서 그 나라를 세우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유일한 무기가 죽음과 같은 사랑 분이어요.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왜 그가 그렇게 하셨으니까. 그래도 우리들은 기꺼히 그 고난에 참여한다. 왜 우리 왕이 그 무엇도 그렇게 하지 안했거든요.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승리를 장담할 수 있고 만족한다. 그것이 이 신명기 17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그런 말입니다. 항상 신약 시대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읽어야 됩니다. 신약 시대 말은 무엇이다. 은금은 무엇이다. 여자는 무엇이다. 그렇게 모형으로 끌고 들어오면 안되고, 그들은 나라를 그렇게 세웠어요. 군대를 가지고.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해요. 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그런 방식으로 세워지지를 안해요. 그러니까 유형론적으로 끌고 들어올 수가 없어요. 신약 교회는 새로운 상황에서 언급을 해야되는 것이지, 그냥 비슷하게 끌고 들어올 수 없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신약으로는 도져히 올 수 없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다운데서 구약을 읽어버리고 해석해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구약을 신약의 책으로 읽는 방식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질문이 있으면 하십시오. 예수님은 항상 말씀이 그 마음에 있다고 했지요. 옆에두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말으로 오셨어요. 그렇게 된 것이어요. 질문이 있으면 하십시오. 신약 교회도 당회에서 재판하고 어려우면 노회에 그리고 총회까지 가지마는 이것은 구약적인 의미로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연합의 의미로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확대회의지 높은 것이 아니어요. 만일에 교리적인 문제 같으면은 당회에서 판결을 하면서도 노회가 총회에 올리는 것은 그것이 온 교회가 관계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우리는 작으니까 큰대서 하십시오. 그런 것이 아니어요. 확대회의입니다. 같은 개념의 확대회의지, 형제들의 지혜를 더 구하고 있는 것이지 복음의 빛으로 판결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분이 왕이신대 우리들은 비루먹은 정도가 아니지요. 교획다 헌금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삶 전체를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되신 그리스도의 몸과 그 지체로 헌신해 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이 이 예배당 보다 훨씬 비싸지요. 그런다고 아, 하나님의 집은 전셋집이고 너희 집은 무슨 집인고, 자기 집보고 뭐라고 하지요. 그러면 교회를 짓도록까지는 교인들은 전부 전셋집에 살고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 시대 때는 구약과는 다릅니다. 단지 여러분이 몸으로 산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여러분의 전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봉사해야 된다. 그렇게 했을 때 성도가 모여서 예배하는 처소가 저 두암동에서 저 화순으로 왔다 갔다하면은 별로 안좋지요. 그러니 당연히 여러분이 그런데 마음을 쓰고 준비해야 되겠지요. 그래도 여러분 자식들의 집은 있어야 되지요. 물론 그것도 필요하면 그것도 팔련지 모르지마는 예배당 짓기 전에는 월세방에서 살자. 그렇게 신약 성경은 구분하지 않는다. 교회는 전셋집이고 여러분은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어요. 그런 차이가 아니라 단지 여러분이 몸으로 산제사를 지냈을 대는 여러분이 어떻게 할 것인지 분별해 내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옇튼 세상 일에는 우리가 굉장히 밝아요. 아직도 수무살 짜리가 직정에 들어가면은 시집갈 적금을 넣거든요. 아직 대상도 없는데. 물론 얘기낳을 것 생각하고 교육보험 든 것 못보았습니다마는 하옇튼 그렇게 한다교요. 아, 아이는 대상이 있어야 하니까 안되겠구먼요.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두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나이 때 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봉사할까 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거의 못보아요. 몰라 장로님들은 그렇게 할련지. 그러니까 자기 일에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교회의 일은 별로 그런 생각이 없어요. 단지 그런 생각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없는 사람은 못섬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를 아시겠지요. 한 예증을 들어 설명한 것 뿐이데 말하자면 여러분이 전 삶을 어떻게 천하만민이 하나님을 복종하도록 살게 할 것인지 거기다 마음을 쓰라 그런 말이어요.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를 따라 각자 다양하게 하십시오. 단지 예증을 든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인제 우리 나라는 방금 내가 말했던 것처럼 그런 한 방법을 정해놓고 그렇게 한 사람은 잘 봉사한 사람, 그것 안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 매월 십만원 적금하는 사람은 하나님 잘 섬기고, 만원 적금하는 사람은 만원 짜리 밖에 하나님 못섬기는 사람, 이런 식으로 평가하니까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되어요. 그런 평가 기준을 갖고 있지 안해요. 그런 일이 없는 사람도 섬겨요. 단지 저는 예증을 든 것 뿐이라는 말입니다. 왜 다른 일에는 이렇게 저렇게 계획을 하고 머리가 돌아가면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그런 자기가 원하는 계획과 시도가 없는가. 자기 일에 불이 떨어지면은 밤새껏 철야기도하고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무엇을 구하는지 그런 탄식들이 없는가 하는 이야기에요. 주께서 가르치신 기도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