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구속사

신명기 강해 15

찬미예수님 2024. 8. 10. 07:33

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 15

 

신명기 15장은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빚을 면제하는 것과 처음난 숫컷을 먹으라는 이야기, 이 두 가지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내용으로 봐서는 전혀 다른 것 같지마는 실은 연결하면 같은 내용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궁핍으로부터 자유와 충만한 생명이 양식을 주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실은 같은 내용이어요. 하나는 부정적으로 궁핍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최고의 식물로 먹여주는 것이어서 실은 내용은 같습니다.

1-6절은 빚진 자의 빚을 면제하라는 이야기이고, 두 번째 문단은 가난한 자에게 구제하라는 문단이고, 세 번째 문단은 히브리 종을 해방시키라는 이야기, 네 번째 문단은 처음 난 수컷을 먹으라는 이야기, 이렇게 네 문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 문단은 내용이 같다는 말이지요. 빚진자의 빚을 면제하건, 가난한 자를 구제하거나, 종을 자유케 하거나 실은 모든 궁핍으로부터 자유케 한다는 개념은 다 같은 것이고, 그 다음 마지막 문단은 처음난 수컷으로 배부르게 먹어라. 그런 이야기인데 실은 그것도 한 내용이다 그말입니다. 7년을 칭합니까? 1절을 보면 매 7년 끝에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그러면서 2절 끝에 보니까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니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7년을 이 신명기에서는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면제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7년을 면제년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처음 들어본 이야기고 대개 우리는 안식년, 이렇게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면제년이라고 그랬지요. 그러면 출애굽기 23장11절이나 레위기 25장1,7절을 보면은 그것은 특별히 레위기 25장을 보면 그것을 안식년으로 이야기를 해요. 면제년이라고 부른 적이 없어요. 그러면 왜 면제년이라고 부르느냐 신명기적인 특징이다 그말입니다. 신명기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는 언약체결인데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준다는 그런 언약적인 상황에서 7년을 면제년 그런 이름을 붙여준 것이어요. 그들의 종의 빚을 면제해 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면은 출애굽기나 레위기는 그처럼 면제년이라고 하지 않는가?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성소에서 불러서 거룩한 교제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레위기거든요. 그러니까 레위기에서는 제 7년에 땅도 안식해라. 50년이 되면은 모든 사람은 기업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해서 모든 땅이 자유케 하는 안식년에다가 목표를 두고 출애굽기 23장은 그런 무엇이 거룩한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나라로 삼으시는 언약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행동하는 대로 행동하면 되어요. 하나님이 엿새동안 일했으면 자기들도 일하고 칠일은 쉬고, 그래서 자기들은 제 7일에는 소나 나귀에게도 자유를 주어야 되고, 7년이 되면은 모든 가난한 사람으로 자유케 해야 되어요.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어야 되고. 다 쉬게 해주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행한대로 행하는 것이 출애굽기에요. 나라 조직이니까. 그러나 레위기는 나라 조직이 아니라 무엇이 거룩한가, 거룩하고 부정한 것에 대한 이야기에요. 7년은 하나님 앞에 안식하는 의미로 온 땅을 쉬게 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7년 끝은 어느 때냐 하면은, 우리 나라는 7년 끝이면 12월달인데 이 사람들은 7월달이어요. 시골로 하면 더 잘 알 수 있어요. 시골에서는 한 해 농사가 다 끝나면 말하자면 한 해가 다 지나는 것이어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옛날에 모 심을 때도 그때 말하자면 세경을 다 계산하고 새로 머슴을 둘 것이어요. 우리 같으면 미국식을 도입해서 12월 달이면 끝, 11일이면 시작, 이렇게 돼 있지마는 시골은 농사로 시작하지, 농사로 연도를 계산하지 우리 같이 달력으로 계산 안해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느 때가 농사 일을 다 끝마치고 갈무리 할 때냐 7월달이어요. 그러니까 매 7년 끝은 어느 때냐 하면은, 7월 초막절입니다. 그때가 끝입니다. 그것은 똑같은 신명기 31장의 인용구절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면제하는 이유는 왜 면제해야 되느냐 항상 교리적으로 읽을려고 하지 말고, 한마디로 하면 이론적으로 읽으려고 하지 말고 그 문장에 나타난 이유를 갖고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가령 부모가 누구고, 자식은 누구냐 학교가서 배우면 부모를 도덕 교과서처럼 배울 수 있지마는 가정에서 부모를 배울 때는 그렇게 부모를 배울 때는 그렇게 배운 적이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가정은 구체적인 교제의 삶에서 부자지간의 교제를 배우지 그것을 싹 빼버리고 아버지는 이런분, 아들은 이런 아들, 이런 것은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이야기지 가정에서 배운 이야기가 아니어요. 성경은 하나님은 누구고 사람은 누군가, 이런 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 삼으셨거든요. 그런 관계에서 나는 너에게 누구고, 너는 내게 누구냐 이런 관계로 설명하기 때문에 거기 기록된 문장 안에 의미를 읽어야 되지 그것을 확대 해석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성경대로 읽으라 그말이어요. 그러면 왜 꾼 것을 면제하라고 그러느냐 여기 보니까 2절에 보니까 형제에게는 독촉하면은 안되어요. 이방인에게는 독촉하지마는 형제에게는 면제해야 되어요. 그러니까 2절에서는 총괄적으로 면제해라. 그 해를 면제년이라고 칭하지 않느냐 그렇게 총괄적으로 말해 놓고는 3절에서는 이방인과 대비되는 방식으로 한번 말하고, 실은 똑같은 말인데 강조법이지요. 그 다음 4,5절을 보면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대로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다.또 너는 복을 받아서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남에게 꾸이지 않고 네가 여러 나라를 치리할지라도 너는 치리함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는 어떤 의미로 면제하는 것 같아요. 6절까지에서는.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어요.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할 것이니라. 이유를 설명했지 안해요. 이 문장에서는 하나님이 면제하는 해로 정했기 때문에 그래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니까 그래요. 이 문장에서는 다른 것을 설명하지 않고 그것을 설명했지요.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면제년이라고 칭했어요. 빚진자를 이방인과 달리 취급하는 것은 이 문장에서는 왜 그런 것 같어요. 하나는 형제라고 부르고, 하나는 이방인이라고 부르지요. 형제이기 때문에 그래요. 인제 이런 비슷한 구절이 어디에도 있느냐 하면은, 레위기에도 나옵니다. 레위기 25장에도 나오지요. 거기도 어떻게 빚을 면제할 것인지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레위기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고, 여기 신명기에서는 그들은 형제가 아니냐 형제의 것을 탕감해라. 이웃이고 형제가 아니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면제의 규례를 지키면 주실 복은 어떤 복이냐 하면은, 여기서는 복을 준다고 그랬는데, 첫째 4, 5절 끝을 보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그렇게 말했고, 6절에는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치리하리라.그런 말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면제의 규례를 지키면 주실 복은,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서 정녕 복을 받을 것인데 이러어러한 복을 받으리라. 유업의 땅을 복으로 받지요. 실은. 어떤 복입니까? 가난한 자가 없고, 이런 말이지요. 그러면 이런 구절을 부흥사들이 쓰면은, 여기 보라고. 머리가 되어도 꼬리는 되지 않고, 꾸어줄지라도 꾸이지 않고, 아 보니까 헌금만 잘 내면 될 것 같고, 가난한 자 구제만 잘하면 이렇게 될 것 같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그 땅을 누구에게 주었습니까? 이스라엘에게 주었지요. 이스라엘은 형제로서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만일에 이런 면제의 규례가 없으면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가난한 자가 있게 되어버려요. 이 면제의 규례가 있으면 7년만 되면 가난한 자는 하나도 없게 되어요. 어느 정도 없느냐 모두가 유업을 공평히 받아버려요. 그러니까 여기서 꾸어줄지라도 꾸이지 않고 다른 나라를 치리할지라도 치리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여기서는 미국이 부자니까 우리 나라를 종삼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유업의 땅의 복, 가나안 땅의 장자의 복, 그 언약의 복을 받는 이야기에요. 유업의 땅의 복은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도록 충만하고 그들이 유업으로 받은 땅은 장자의 땅이어서 모든 나라들을 처서 복종시키는 땅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어요. 예수 잘 믿으면 절대로 빚도 안지고 예수 잘 믿으면 강국이 되고 그런 것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에요. 그건 일단은 이스라엘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지 이스라엘 밖에는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어요. 여러 나라에 꾸어주며 치리하는 복이라는 것은 유업의 땅을 소유하는 그 나라의 복이지요. 출애굽기에서는 그걸 제사장 나라라고 그랬지요. 만일에 그들이 이 말을 안들으면 이방인이 치리하고 종삼아버리지요. 이 말을 잘 들으면 그들이 이방인을 치리하고 이기지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지 단순히 그들이 부자되리라는 이야기가 아니어요. 그렇게 해서 이런 구제를 하면 첫째는 유업의 땅에서 복을 받는데 가난자가 없다. 어느 정도 없냐 모두가 유업을 균등히 받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신 복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7-11절을 보면, 여기서는 빚진자를 탕감하라. 그런 이야기 보다도 거꿀로 가난한 자를 주제하라 하는 이야기가 7-11절까지입니다. 함께 거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할 일은 무엇인가? 여기 보면은 형제가 함께 거하거든 강팍하게 손을 움켜지지 말고 손을 크게 펴서 요구대로 넉넉히 주어라. 구제하라 그랬지요. 꾸어줄 때나 구제할 때 주의할 점은 왜 이런 부정적인 말을 먼저하는가? 꾸어주는 사람은 이것이 제일로 위험하거든요. 그래서 이말부터 하는 것이어요. 넉넉히 주어라. 이 말부터 하면 기분이 좋을 것인데 미리부터 주의하기를 인색하지 말아라. 강팍치 말고 손을 움켜쥐지 말아라. 이 말부터 먼저 하지. 이것이 구제하는 사람이 제일 조심해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 주기라는 것이 어려워요. 자칫 잘못하면 받는 사람의 인격이 상하거든요. 그러니까 주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무엇인가 주면은 상관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자기 인격도 조심해야 됩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에게 할 일은 구제하는 것이고, 꾸어줄 때나 구제할 때 주의할 점은 인색하지 말 것이다. 꾸어줄 때 면제의 규례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이 무엇이냐 9절을 보면은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여기서 구제할 때는 남의 것 주는 것도 감지덕지 할 일인데 악념을 품지 말라. 움켜쥐지 말라. 인색하지 말라. 뭐 별 소리를 다 해 놓았지요. 괜히 꾸어주고 욕이나 먹지. 차라리 안주어버렸으면 욕이나 안먹을 것인데. 그런데 그렇게 불량한 놈 취급하듯이 해 놓았어요. 그것이 그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몇번 섞어서 써놓고 9절에 하는 말이 악념을 품지 말고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웠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 것도 주지하니하면, 7-9절까지 이 세구절에서 얼만큼 불량하다고 써놓았는지 모르겠어요. 한번 찾아보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입니다. 함께 함께 거하거든 7절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고 네 손을 움켜쥐지 마라.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악념을 품지 말고, 악한 눈으로 보지 말고, 이런 말을 여러번 하고 있지요. 그런데 면제년이 구제할 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악하게 할 수 있지요. 지금 돈 꾸어주었다가 7년 되면 없어져버리는데, 꾸어주지 말자. 만일에 7년이 남았으면 그 안에 받을 가능성이 많이 있어. 그런데 올해가 6년 중간쯤 되었는데 지금 꾸어주면 몇 달만 지나면 못받을 것인데 안꾸어준다. 그런 말이어요. 그렇게 하나님이 모든 백성을 배부르게 먹도록 하는 유업의 땅을 공평히 누리게 하는 그런 면제의 규례가 악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잘못 작용할 수가 있다. 가난한 자의 구제를 명하신 이유는 그러면 왜 이처럼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자꾸 말하고 있느냐 11절을 보면은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다 하나님의 유업을 제대로 못누려요.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형제로 그것을 보상하도록 말하고 있다. 인색이 죄가 되는 이유는 물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으니까 그렇지마는 이 문장에서는 무엇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니라. 그렇게 되어 있지요. 물론 크게는 하나님의 명령을 안지켰으니까 죄인데 이 문장은 그 가난한 사람이 너를 하나님 앞에 너를 호소하면은 그것이 죄가 된다고 그랬거든요. 문장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 제일로 좋습니다. 내돈 내가 쓰는데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세상 말로도 거지라도 그 집을 지나가면서 복을 빌어야 되지 침벹고 가면은 저는 잘 먹을련지 몰라도 편히 못산다. 말하자면. 아무 것도 준 것 없는 사람이라도 그 집에 침벹고 가면은 그집은 편히 못산다. 그말이어요. 요새 식으로 하면 가난한 사람 집 옆에 부자가 있으면 너만 잘살아야, 하고 불질러버리지요. 그런데 옛날 말로는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거지라도 그집 보고 복을 빌고 가야 그 집이 복을 받지, 거지가 무슨 줄 것이 있어요. 말로라도 복을 빌고 가야 그 집이 좋지, 지나가면서 침벹고 가면 그 부자 몇 년 못간다. 옛날 말도 그런 것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도 하나님의 백성이어요. 그 가난한 자가 하나님 앞에 호소하면은 그것 때문에 이 사람이 벌을 받을 것이어요. 그도 여호와의 백성이거든요.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풍성히 구제하는 이에게 주신 복을 다시 말하기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10절 끝에 보면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했는데, 실은 이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는 일까지라도 실은 언약의 복이지요. 유업의 땅의 복이지, 그냥 만사형통 그런 이야기는 없는 것입니다. 항상 그 언약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기억해야 되지 자기 욕심대로 구해놓고 성경을 붙이면 안됩니다. 12-18절에서는 히브리 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종에 대한 규례는 출애굽기 21장 처음에도 있고 레위기 25장 중간 부분에도 있습니다. 이것과 서로 비교해 보면은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 말입니다. 출애굽기 25장을 보면 아주 매정스러운 이야기만 다 있어요. 종이 너한테 왔느냐, 혼자 왔느냐, 나갈 때 혼자 나가거라. 왔는데 주인이 아내를 얻어 주어서 아이들을 낳았으면 나갈 때는 놔두고 나가거라. 세상에 그런 법은 없지요. 그런데 그 종이 함께 살기를 원하면은 대문에 데려다가 귀를 뚫어라. 그러니까 아내를 얻어 줄 때는 언제고, 나두고 나가라는 법이 어디 있냐고. 단지 종에 대한 규례는 종이 주인 집에 와서 번성한 것은 다 주인의 몫이지 종의 몫이 아니어요. 주인 집에서 한 종의 번성은 저만 고용됐지 종이 부요하게 된 것은 전부 주인의 소유지 자기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갈 때는 원상대로 나가거라. 한 마디로 하자면 그런 이야기에요. 많이 주어서 나가거라 그런 말도 없어요 혼자 왔으니 혼자 나가거라. 이런 말이어요. 아내 있이 왔느냐, 데리고 나가거라. 이런 말이어요. 그런데 여기 신명기 같은 데는 다른 이야기에요. 신명기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나갈 때 풍성히 주어서 보내라. 그리고 처자식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풍성히 주어서 내보내고 아깝게 생각지 말아라. 그가 형제로 배나 일을 많이 했지 않느냐 이런 말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출애굽기와 신명기만 비교해 보아도 굉장한 차이가 나지요. 그러면 왜 이런 차이가 나느냐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조직하는 신분 확인 문제에요. 그러니까 종은 종일 뿐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 다른 모든 문제는 다 놓아두고 히브리 종에 대한 규례를 십계명이 끝난 뒤로 제일 먼저 앞에다 두는가 묘하지요. 별 볼일 없는 문제인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런 것이 출애굽기의 특징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거든요. 그러면 종으로 팔린 이스라엘은 어쩔 것인가, 하는 문제지요. 그는 주인 집에서 종일 뿐이어요. 일단은. 그러나 6, 7년이 되면 해방을 해야됩니다. 나갈 때는 그는 종으로 왔기 때문에 다 놓아두고 나가야 되어요. 갖고 나가면 안됩니다. 백성들의 신분을 확인해아 문제가 출애굽기라 그런다 그말이어요. 그러나 신명기는 가나안 땅의 유업을 두고 함께 누려라. 이것이기 때문에 종을 혼자 쫓아내는 이야기 없고 종이 나갈 때 한 살림 차려 보내라. 그리고 그것을 아깝게 생각지 말아라. 풍성히 주어 보내라. 마치 빚진 자를 탕감하는 것처럼 종도 가난하게 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처자식 이야기를 싹 빼버리고 없고. 신분 이야기는 상관이 없으니까. 인제 레위기는 그런 문제보다는 이방인은 종으로 삼아도 히브리인들은 종으로 삼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가 인제 레위기의 강조점이어요. , 히브리인은 거룩하고 이방인은 거룩하지 않거든. 내 백성은 절대 종삼지 말아라. 종은 이방인 중에서 삼아라. 그리고 내 종은 어쩌냐, 50년 째는 해방시켜라. 여기 레위기에는 7년 마다 해방시키라는 말은 없어요. 50년이 되면 해방시켜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 하고는 문맥이 조금 다르지요. 레위기는 희년에 대한 이야기고 여기 신명기는 7년에 대한 문제이니까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도 의미상은 같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인용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에서는 7년에 대한 이야기가 실은 50년에 대한 이야기다. 7년은 여호와의 안식년이니 땅으로 여호와 앞에 쉬게 해라. 다 거룩하게 해라. 7년은 이런 말이고, 종은 50년째 해방을 합니다. 거기서 강조점은 그들은 내 종이지 너희 종은 아니지 않냐? 너희 종은 이방인 중에서 삼고 내 백성은 놓아라. 그렇게 해서 거룩하고 거룩하라는 문제를 레위기에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책에 기록한 목표에 일치되는 율법으로 되어 있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가나안 땅에 유업을 주는 언약이기 때문에 너희 중에 종이 있느냐, 7년이 되면 빚도 면제하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7년이 가깝다고 아끼지 말고 풍성히 주고, 네 종도 7년이 되면 해방시키는 데 빈 손으로 보내지 말고 왔을 때처럼 본전치기로 보내지 말고 한 살림 주어서 보내라. 그런 이야기지요. 가나안 땅의 풍성을 누리도록 한 율법이지요. 이렇게 하면 가난한 사람도 다 가나안 땅의 풍성함으로 누리겠지요. 그가 비록 잘못해서 유업을 잃었을지라도 7년이 되면은 전부 해방이 되어버리겠지요. 하나님께서 면제하도록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동족 히브리인을 자유케 하는 때는 7년인데, 아마 여기서 7년은 앞에서도 7년 끝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7년 끝인 것 보다는 711일이든지, 10일이든지 그럴 것입니다. 물론 레위기 문맥으로 막 들어와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새 해를 계산하기를 71일부터 계산해요. 그리고 종에 대한 자유가 희년에 나팔을 불고, 하는 것은 실은 대속죄일가도 관계가 있습니다. 레위기에서는. 그런데 레위기 문맥과 신명기 문맥은이 다르니까 막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마는, 여기사는 7년이라고 알고 있으면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히브리 종을 놓을 때 그에게 행할 일은 무엇입니까? 13절에 그를 놓아 자유케 할 때는 빈 손으로 가지 말게 하고, 예날 번역이라 공수로 그렇게 했어요. 빈손으로 가지 말게하고, 네 양무리 중에서, 타작 마당에서, 포도주 틀에서 보니까 그냥 우리 식으로 풍성히 주어라 하면 되는데 구약 표현법이 강조법이지요. 양무리 중에서, 타작마당 중에서, 포도주 틀에서 후히 줄지니,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수확한 모든 것 중에서 여기 저기 끌어서 다 주어야 되어요. 아마 이렇게 보면은 이것도 7년 끝이 될 것이어요. 농사 기간에 해방시키면서 마침 창고가 비었네 하고 보내면 안되지요. 다 모아놓고 그 중에서 풍성히 주어서 보내야 맞지요. 그러니까 이 문맥을 7년 끝이 되겠어요. 여기서도. 후히 주어라.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그에게 주어라. 여기서는 그렇게 했지요. 히브리 종을 놓을 때 행할 일은 풍성히 주어서 보내는 것인데, 종에게 풍성히 주어서 보내는 토대는 왜 그렇습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주어라. 내가 네게 복을 주었지 않냐? 너도 네 형제에게 복을 주어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동거하기를 좋아하는 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합니까? 16절에 종이 만일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기거든이런 말인데 출애굽기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줌으로 아내가 남녀를 낳았으면은 아내와 자식들은 상전의 것인즉 혼자 나가거라. 종이 진정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식을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그러면은 재판장에게 데리고 가서 이렇게 이렇게 해라. 그리고 여종 같으면 아내 같이 취급해야 종처럼 건드려 놓고 보내면 안된다. 이런 이야기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너와 내 집을 사랑해서 이렇게 되어 있어요. 나가기를 원치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송곳을 취하여 그 귀를 대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 물론 출애굽기는 재판장에게 데리고 가서, 왜냐하면 출애굽기는 나라를 합법적으로 조직하는 신분 확인이라 그렇게 되어 있지요. 여기서는 그런 것이 아니라 주인과의 연합, 주인과 그 집의 연합만 강조가 되어 있어요. 너와 내 집을 사랑하면은 그렇게 해라. 그 종의 귀를 대문에 데고 뚫는 것입니다. 대문에 종의 귀를 대고 뚫는 의미는 어떤 의미이겠는가? 복잡하게 해석할 것이 없이 문장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보면 알아요. 17절에 보니까 그가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 그 말이어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귀를 대문에 대고 뚫으면 어째서 소가락이 아니고 귀를 대문에 대고 뚫을까 연구할 것이 없이 이 문장이 이것을 명령했으니까 여기서 그전에는 생전 이런 일이 없었드라도 여기서 그 예식을 정하면 그 의미가 바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귀뚫는 법을 연구해서 왜 요새 여자들의 귀고리가 있겠느냐 옛날 종의 표시가 아니냐? 그때 그런 풍속이 있었는데 하고 연구할 필요가 없다 그말입니다. 우리는 이 문장에 있는 이야기만 읽어내면 된다 그말이어요. 송곳으로 그 귀를 대문에 대고 뚫는 것은 영영히 그 집에 종이 되는 것이어요. 영영히 그 집에 속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대문에 대고 뚫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종족인 종을 자유케 하기를 여려워 말 이유는 왜 어럽지 말고 그렇게 해야 되느냐 무엇이라고 18절에 말합니까? 그가 육년 동안에 품군의 삯의 배나 받을만큼 너를 섬겼은즉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범사에 복을 주시리라.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종족인 종을 자유케할 이유는 그는 배나 더 일을 많이 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배나 일을 더 많이 했는지 우리는 잘 몰라요. 여기서는 형제라는 것이 제일 강조점이다. 그런데 왜 너는 배부르고 너희 형제는 가난하게 하느냐 이것이 총 강조되고 있거든요. 그러니가 이 히브리인 종은 그냥 날품팔이처럼 일한 사람은 아닐 것이어요. 히브리인 종은 형제가 부자가 되도록 뼈빠지게 일한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종까지라도 형제와 연합시켜서 설명하고 있지요. 가령 일꾼들이야 시간보내기로 일하지마는 아들은 그렇지 않지요. 그래서 부자집 머슴은 일부자고, 일만 많이 하지 더 받는 것도 아니어요. 그런데 주인이야 일이 많을수록 좋지요. 그전에 제가 시골에 있을 때 농사가 잘 안되었어요. 제가 생각에는 추수 때에도 비가 와서 가리질을 서너번 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축축해서 뜨니까. 그때 부모는 농사가 잘 안되었다고 근심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나는 좋더라고요. 일 안하니까. 아마 종은 그렇게 했겠지마는 이 히브리인 종은 형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일하지 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종까지라도 형제라는 연합 의식으로 설명해 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상 좋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배나 일했지 않냐 성경에서 배나 하는 것은 탁월함을 이야기해요. 그냥 단순히 두 세배 이야기가 아니어요. 그러니까 그가 형제를 위해서 얼만큼 뼈빠지게 일했느냐 네가 부자되라고. 그러니 너는 그를 놓아보낼 때 인색하게 할려고 그러냐 내가 너에게 복을 주었지 않냐 네 형제도 네 집에서 종살이 하면서 그렇게 일해 주었지 않냐 15장에 있는 이야기지요. 여러번 읽으면 그런 이야기에요. 동족인 종을 자유케 해야될 이유는 그가 형제에게 배나 이익을 낼만큼 수고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19,23절을 보면은 처음 난 수컷을 여호와께 드리고 그 앞에서 먹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이 앞에 있는 14장과 비교해 보면은 재미가 있겠지요. 문제입니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여호와께 드리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먹으라 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또 흠이 있는 초생물 중에 먹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이런 14장을 참고해 보라 그런 말입니다. 14장에서는 지난 시간에 설명했지마는 23절을 보면은 22절에 십일조를 드리고 여호와께 택하신 곳에서 십일조를 먹으며 처음 난 것을 먹고, 여기도 처음 난 것이 있지요. 그리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라. 이런 것과 비슷한 것이 12장에도 있다고 그랬지요. 12장6절에 보면 너희 번제, 희생, 십일조, 거제, 서원제, 낙헌제, 예물, 우양, 처음난 것들을 여호와 앞으로 가져다 드리고 거기서 먹고 즐거워하라고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12장이나, 14장이나 15장이나 엇비슷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요. 먹으라는 이야기가 쭉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는데 12장에서는 하나님 앞에 예물, 하나님 앞에 희생, 번제, 하나님 앞에 제사하라는 의미에서 내 앞에 먹으라. 하는 것이 강조점이고, 14장에서는 하나님이 풍성하게 주신 것을 함께 먹으라는 이야기로 십일조, 처음 난 것, 이런 기름진 것이 쭉 나올 것이어요. 그런데 여기 15장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고 처음 난 것 중에 수컷만 이야기를 해요. 무엇인가 차이가 나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처음난 것은 내 것이니 하는 의미로 십일조와 초생물, 그렇게도 특식을 준 것이지마는 여기서는 그 특식 중에서도 강조가 수컷이어요. 처음 난 것의 수컷, 그러니까 여기서는 먹으라는 의미가 독특합니다. 15장에서 강조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에게 가나안 땅의 복을 얼만큼 주었는데 너희 중에 빚쟁이가 있다고 그러느냐 너희 형제도 너희 집에서 뼈빠지게 일했는데 빈 손으로 보내려고 그러느냐 그러니까 풍성히 주어라 했을 때, , 너희들 내 집에 나와라. 여기서는 매년 나오지마는 내 집에 나와라. 무엇을 가지고. 처음 난 수컷을 가지고, 했을 때는 여기 있는 문맥과 맞은 음식이어요. 풍성히 주었지 않냐? 풍성히. 넘치도록. 그런 의미로 처음 난 것의 수컷이어요. 처음 난 것은 기력의 시작이어요. 그 초생물은 디 기력의 시작이고 그리고 그중에 수컷은 암컷하고 달라요. 힘이 있는 것이어요. 처음 난 수컷을 먹어라. 또 처음난 수컷도 털을 깎아버린다거나 하나도 손대지 말고 그대로 가지고 와서 먹어라. 그 말이어요. 만일에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이 멍에를 매버리면 힘이 다른 곳으로 나가버리지요. 물론 우리 운동요법으로는 적당히 달리면 힘이 더 새져요. 그런데 성경은 그런 운동 요법이 아니라 운동 안하고 살안찌는 것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요. 성경은 그런 운동요법이 아니라 구약적인 요법이어요. 하나님의 것을 다른데 힘 빼지 말고 몽땅 가져와라. 털 하나 손대지 말고 그대로 가지고 와라. 그래 갖고 내 앞에서 먹으라. 그러니가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 초생물 중에 수컷 중에 하나도 손대지 않은 것, 이것이 여기서 강조점이어요. 그러니까 상황이 다르지요. 가령 우리 같으면 몽땅 먹는다는 말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털도 안뜯고 먹어버린다고 하지요. 우리 나라 식으로 하면은. 이것은 레위기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는 쓰지 않은 새것을 드려요. 이전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한 성육신에 대해서 말했지요. 가령 하나님이 유부녀를 통해서 그를 보내도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마는 예수님의 사역은 옛 질서 안에서 일단은 이루어져요. 예수의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오지마는 그는 일단은 옛 경륜 안에 속해요. 그러니까 그가 하신 일은 옛 경륜 안에 있기 때문에 그도 쓰지 않은 여자, 처녀를 통해서 나신 것이다. 나귀도 그렇지요. 나귀도 고관을 태우려면 훈련된 것으로 태우지 망아지에다 태워갖고 사람이 떨어지면 안되는 것이어요. 말타는 사람만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도 연습을 해야되어요. 우리 어려서 보면은 봄철만 되어 밭갈려면 소를 신장로에서 무거운 짐을 달고 왔다갔다 훈련을 시키지요. 그런데 한나도 힘없는 것 쓰면 안되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셨지요. 왜냐하면 안쓰신 것을 쓰기 때문에 그래요. 만일에 익숙한 나귀를 탈려면은 오래 동안 사람을 태워본 나귀를 타야 익숙해요. 그런데 구약 개념이 안쓴 것은 거룩한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렇게 하신 것이어요. 그러니가 여기서 처음 난 것 중에 수컷은 털도 깎지 말고 그리고 한번 멍에도 매지 말고 그대로 가져와라. 그리고 나 한테 드리고 했을 때, 드린 것은 피와 기름이지요. 그리고 그 나머지는 내 앞에서 먹어라. 누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고 풍성히 주신 하나님이. 내가 너에게 이 풍성한 것을 주었지 않냐? 구제해라.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다. 그리고 너희도 내 앞에 나와라. 최고 힘있는 것으로 먹어라. 이 말이 15장에서 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읽어보면 알기 쉽겠지요. 구약은 이런 반복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먹으라는 말도 무엇을 먹으라고 하는지, 비교를 해보면 아, 여기서는 좀 뉴앙스가 달라져 있구나, 그렇게 알 수 있구나. 우리 나라로 하면 사위가 오면은 장닭을 잡아준다. 씨암탉 잡아준다는 말도 하지요. 씨암탉을 잡아준다는 것은 아주 귀한 것을 잡아준다는 말이고, 큰 것을 잡아준다고 했을 때는 장닭 잡아준다고 하지요. 오새는 아니지만 옛날 말로는 그런다 그말이지요. 그런 말이 여기서 하고 있는 말이어요. 그리고 인제 저도 아들이라고 아버지하고 한 밥상이지요. 그리고 옛날에는 쌀이 아주 귀했어요. 우리 집은 그때 괜찮게 산다고 했는데도 쌀이 귀했으면은 전복 껍질에다가 쌀을 담아서 한 것은 내 몫이지요. 그래도 제가 그때 해외 유학생입니다. 어렸을 때. 하위도서 육지에 나왔으니까. 그런데 방학 때 가면은 우리 어머니가 닭을 잡아가지고 오셔서 그래요. 동생들 하나 주지 말고 너만 먹어라. 우리는 집에서 많이 먹었다. 실은 잡수신 것이 아니지요. 말하자면은 한나도 안나가게 나를 줄려는 것이지요. 아무도 손못대게 하고. 그러면 너만 최고로 생각하겠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먹으면서 동생들 발도 주고 먹으라고 했을 때는 조금 다르지요. 이 문맥이 그런 의미라 그런 말이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머니 말은 알아들으면서 이 말은 알아 듣지를 못하느냐고요. 처음 난 것 중에 수컷을 골라라. 암컷이 아니다. 수컷을 가지고 와라. 그리고 거기다 손 하나 까딱하지 말고 가지고 와라. 그리고 나한테 피와 기름을 주고 네가 몽땅 먹어버려라. 이 말이 아닙니까? 누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신 하나님이. 이런데도 너희들이 구제를 안하겠느냐 그 말이지요. 지금. , 그 말이 지금 여기서 있는 말이다.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흠이 있는가 그러면 흠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못드리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레위기는 흠이 있는 것도 무르면 안되어요. 일단 하나님의 것으로 정해지면 다른 것으로 바꾸어치기하면 안되어요. 그대로 같이 드려야 돼. 레위기는 거룩하고 부정한 것을 결정하는 것이 레위기의 율법이어요. 레위기는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너희 성에서 정한 자나 부정한 자나 다른 고기 먹듯이 먹어라. 노루나 사슴처럼. 그러니까 이것은 왜 그러냐 하면은 부정하기 때문에 못드린 것이어요. 그럼 부정하니까 내 집에서는 못먹지마는 너희 성에서는 마음 놓고 먹어라. 그것도 정한 자나 부정한자, 일반 고기처럼 먹어라. 그렇게 해서 부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소에서 못먹지마는 자기 상에서는 맘대로 먹도록 해라. 무엇을 처음 난 수컷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먹지 못할 것이 있지요 피는 먹지 말라. 이것이 구약의 한계점이라고 그랬지요. 피는 하나님의 단에만 드리고 아무도 못먹어요. 지금 우리에게 와서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그런 복이 주어졌지 구약 때는 이런 복을 주지 안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들이 1-6절을 보니까 거래 문제가 있거든요. 그러니가 아하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되 형제에게는 이자를 못받는구나. 그래가지고 이 율법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인하고는 절대로 돈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이자를 못받거든. 이방인에게 하면은 이자를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교인들에게는 돈을 안꾸어줘요. 그런데 그 다음 것은 안읽어 보았어, 7-11절은. 가난한 자가 요구하느냐? 그 요구대로 주어라. 이것은 안읽어보고는 앞에 것만 읽어보고는 교인에게는 돈을 안꾸어줍니다. 이방인에게는 꾸어주면서. 이자 받을려고. 거거다가 우리 경험까지 보태면 할 말이 없지요. 친할수록 돈 거래는 말자. 사람이 거짓말하는가, 돈이 거짓말하지. 그러고 보니까 맞는 말이거든요. 어려우면 돈을 꾸어 놓고 실수할 수도 있지요. 그래도 안꾸어주면 이 상할 것이 없다 그말이지요. 요새 같으면 장가도 안가고 자식도 안낳겠다는 것인데, 편할려니까. 그런 것과 비슷한 이야기에요. 그런데 우리 경험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안되지요. 실은 성경에서 꾸어줄 때는 받기를 기대하지 않고 꾸어주는 것이어요. 본래 7년이 되면은 면제해야 되니까. 단지 형제가 사업할 때 투자하면은 거기 이익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소위 말하자면 그 사회에서 통염화된 것, 은행이자겠지요. 그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은행이자고, 인제 개인들은 왜 이자를 비싸게 받냐 빚을 주고도 받을 보장이 없으니까 아마 위험 부담 때문에 그럴 것이어요. 그래서 비싼 이자를 받는가 모르겠지마는 국가에서 공인된 것은 은행이자에요. 거기 정당하게 참예할 수 있지요. 그것은 투자지 가난한 자 구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여기서는 가난한 자를 구제한 것입니다. 그냥 돈 꾸어주라니까 꾸어주라는 대로 꾸어주라는 말이 아니라, 그가 가난한가,그가 와서 요구하면은 그의 가난을 와서 채워주어라. 그런 이야기지 빚주라고 하면 빚주고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오른밤을 딱 때리면서 왼 뺨도 내놓으라고 성경봐 그러면, 강도가 와서 겉옷을 줘. 속옷까지 내어주라고 했는데, 그것은 강도지 형제에게 한 말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문장을 알고 읽어야지 그대로 적용하면 안되지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형제한테 꾸어주지 않는 것은 옳지 않지요. 단지 우리들이 여기 보면은 그는 형제의 종인데 품꾼의 배나 일을 했지 않느냐 성경도 그럽니다. 믿는 형제가 네 주인이냐 형제라고 해서 업신여기지 말고 배나 수고해라. 유익을 받는 자가 네 형제가 아니냐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그 형제를 무시하지 말고 부지런히 수고해라. 오히려 형제니까 더 수고를 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요. 믿는 형제 것이라고 해서 띠어 먹어도 안되고, 또 받을 위험성이 있다고 해서 괜히 얼굴 붉히려니 하고 형제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닙니다. 경제적으로는 지혜가 있을련지 몰라도 한 몸으로 산다는 윈칙으로는 안맞아요. 그래서 제일로 사랑의 바보가 부모지요. 자식에게 판판히 알고 속고, 판판히 알고 투자해요. 왜냐하면 자식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기업가 사장이 그렇게 사원에게 투자하는 법이 없어요. 말하자면 대기업은 면접시험 볼 때부터 관상을 본다고 하지요. 쓻만 한가, 아닌가, 딱 걸려버리겠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부모는 그렇게 안해요. 경제적으로는 부모가 제일로 손해나지요. 그 돈으로 보험만 들었어도 노후 보장이 잘 될 것이어요. 그것도 시중 생활을 날마다 바꾸어 가면서. 그런데 자식은 바꾸도 못한데 별로 좋은 봉사도 안하거든요. 그런데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수고하고 죽을 때도 눈을 못감아요. 경제 원칙으로는 부모가 제일로 투자를 잘 못하지요. 그러나 교제로 산다는 의미로는 노인당에서 보충될 문제들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여기 성경은 경제 원칙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내가 유업으로 주었지 않냐 내가 유업으로 주었으면 그 유업에 가난한 자가 있어 되겠느냐 다 배불러야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7년이 되면은 실은 7완성수거든요. 다 참가하도로 해라. 그리고 너희들이 꾸어줄 때도 7년이 가깝다고 인색하게 하지 말아라. 그리고 해방할 때도 아까워 하지 말아라. 그는 형제가 아니냐 나도 네게 복을 주었고 네 형제도 부지런히 수고했지 않냐 풍성히 주어라. 그리고 너희들 내가 얼만큼 주었는지 알겠느냐 특식을 먹여 무마. 매년에 첫 것을 났느냐, 그 중에 수컷이냐, 그러면 내 앞에 가지고 와서 내 집에서 같이 먹자. 그리고 혹시 그것이 비루먹었느냐, 그것은 네 집에서 마음놓고 먹어라.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그말이어요. 그러니가 여러분들이 자기 경험을 가지고 경제원칙을 삼으면 안되고, 말하자면 형제는 한 몸의 교제의 원리지 경제 원리가 아니어요. 이방인은 함께 유업에 참여한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그 유업을 나눌 필요가 없어요. 빚주면 되어요. 빚주라는 것도 여기서는 좋은 일이어요. 왜냐하면은 민수기 같은 데는 이방인을 빚주라고 하지 않고 싸우라고 그러지요. 종삼아버리라고 그러지.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그래도 이방인에게 빚이라도 주라고 그럽니다. 그런 의미로 이방인도 참여를 해요. 그것이 신명기적인 특징입니다. 가나안 땅의 유업을 주는 것이니까. 실은 이방인까지도 이스라엘 백성의 부요함에 밎을 얻음으로 참여할 수 있지 안해요. 그것이 신명기의 특징이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을 만고불변한 법으로 알아가지고 쓰면 안되고 이 문맥은 이스라엘 백성은 형제요 경제관계가 아니지 않냐 그러니까 함께 유업을 나누어라. 그러나 이방인은 아직 형제 관계가 아니니까 빚을 주어도 좋다. 그들에게는 독촉해도 형제에게는 하지를 말아라. 히브리인이 잘못으로 자기 유업을 잃어버렸는가, 종으로 팔렸는가 7년이 되면은 네가 그 기업을 일으켜 주어라. 풍성히 주어 보내라. 그는 네 집에서 네 기업을 위해서 뼈빠지게 일했던 형제가 아니냐 다른 종과는 다르지 않느냐 풍성히 줘 보내라. 그렇게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7년 끝은 제 7년의 초막절이다. 7년은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안식을 주는 것이 출애굽기고 땅도 하나님 앞에서 안식하는 해입니다. 해를 거룩하게 구별하셨어요. 하나님은 애굽으로부터의 구원과 가나안의 풍성한 수확을 감사하는 초막절은 초막을 짓고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의 풍성한 수확을 이처럼 주셨도다. 년말이되면 기념하는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신명기는 가나안의 기업을 누리게 하는 유법인데 제 7년 초막절에 형제의 모든 빚을 탕감하여 유업의 땅에 가난한 자가 없게 하라고 명하시며, 그 해를 면제년이라고 부르신다. 모든 백성이 여호와께서 주신 복으로 충만한 나라가 여호와로부터 유업을 받은 장자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이다. 신명기에서 나라겠지요. 그렇게 말한다. 7년 면제년에 함께 유업을 얻은 형제의 빚을 탕감할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가난한 자가 요구한대로 꾸어줘라. 면제할 기간이 가깝다고 꾸어주는 일에 인색하고 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 가난한 자가 여호와께 인색한 자로 호소하면은 그가 죄를 얻을 것이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고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구제를 명하셨습니다. 동족 히브리종을 제 7년에 자유케 하라. 그를 놓을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대로 그에게 후히 주어라. 너는 애굽 땅에 종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께서 너를 축복하셨던 것을 기억하라. 종을 해방하면서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억하라고 그러지요. 그러나 종이 너와 동거하기를 좋아하거든 송곳으로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어라. 그래서 영영히 네 집에 속하여 종이 되리라. 송곳으로 귀를 뚫으면 집에 속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영영히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6년 동안 품군보다 배나 섬겼으니까 그를 자유케 하기를 여럽게 여기지 말라. 여기 품꾼과 비교되는 것이 형제지요. 형제기 때문에 품꾼보다 배나 수고한 것이어요. 자기 형제 것이라고. 우양의 처음 난 수컷을 여호와께 드리라. 그것을 부리지 말고, 털을 깎지 말고 네 가족이 매년 여호와의 택하신 곳, 성소지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으라. 처음 난 것은 기력의 시작입니다. 수컷은 힘이 있으며, 부리지 않는 것은 생며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 드린 것인데 종과 가난한 자가 없도록 명하신 규례에서 이러한 양식을 먹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누가 가난한 자를 해방하라는 주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먹으라고 복을 주셨다. 흠이 있는 것은 성중에서 정한 자나 부정한자 함께 먹도록 하셨다. 그러나 피는 먹지 말도록 하셨다.

이제 교회에 적용입니다. 이 은혜의 일을 하늘의 유업으로 상속한 교회에서 온전케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부요하심에 참여하는 자유자입니다. 그러한 교회는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셔서 그의 교회를 하늘에 부요와 영광으로 복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로서 가난한 형제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아보아 몸된 교회를 평균케 합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영광에 풍성한대로 채우셔서 형제를 구제하는 의가 영영 있게 하실 것입니다. 고린후서 8,9, 빌립보서 4장을 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교회는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유업으로 받았다. 가나안 땅의 유업은 잘못하면 잃어버려요. 죄를 지으면 이런 저런 것을 잃어서 종으로 팔리기도 하고 이스라엘 전체가 종으로 팔리기도 해요. 그러나 우리가 받은 유업은 다시는 빼앗기지 않은 유업이어서 종으로 팔리는 법이 없어요. 그런데도 아직은 그 나라가 온전히 임하지 안했기 때문에 아직은 땅에 이런저런 가난한 자가 있는 것이지요. 이 가난은 유대인이 자기 기업으로부터 가난한 것과는 달라요. 왜냐하면 우리 이방인에게는 유대인처럼 가나안 땅의 젖과 꿀이 흐르는 복을 주시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거든요. 바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이 하늘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단지 그분이 땅에 것을 주셨다는 그런 말이지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들으면은 만사형통하게 해주겠다는 말은 우리에게 보증이 안되어요. 가령 신약 성경에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지마는 그것까지라도 너도 똑같은 믿음으로 나오면은 너도 그렇게 해주겠다는 말은 아니어요. 신약 복음서는 예수님이 오셔서 행하신 일을 통해서 그가 가지고 오신 나라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 소경된 사람은 믿음으로 나오면 다 눈떠버리고, 앉은뱅이는 내게 오면 다 일어나버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지금은 우리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좋은 소망으로 일하세요. 이제는 부활의 영으로 우리 안에 임하시 때문에 앉은뱅이을 일어나기를 원치 안해요. 말하자면 죽음의 이를 때 바울처럼 오히려 죽기를 소망하지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간다고 슬피 울지 안해요. 왜냐하면 이제는 생명보다 더 좋은 사망이 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이지 우리는 부활의 시대를 살고 있지 예수님의 지상 생애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신약 복음서까지라도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해결사로 이러어러한 종목을 고쳐주겠다. 해서 병원에 진료과목을 붙이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그것은 그가 세상에 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스라엘에게 나타낸 방식대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어요. 이방인들 하고는 그런 이적이 필요가 없어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것이 부활에서 완성이 되었다.그러니까 우리들도 예수님 말씀을 잘 듣고 그러면 이런 복을 받는디, 이렇게 잃어서는 안된다. 여러분은 구제하고 가난하게 될 수 있어요. 구약에서는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어요. 그래서 욥이 원통해서 우는 것이어요. 욥처럼 과부의 남편처럼 구제하고 고아의 아버지처럼 그들을 돌아보고 그리고 돈 많이 벌었다고 돈주고 혼자 입맞추고 그런 일 없이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하루 아침에 처자식을 싹 잃어버리고 하루 아침에 재산 다 잃어버리고 몸에 병이 들어갖고 기와장으로 상처를 긁고 누워있으니까 친구들이 와서 너 죄 없이 그꼴이 되었겠느냐 나는 죄없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면 물어보아야되겠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대로 하면 욥의 고난은 이해가 안되어요. 가령 여러분 같으면은 커서는 아버지가 잘하는 아들을 더 책망한다고 알아요. 그러니까 책망을 잘 듣고 동생이 잘못해도 큰 아들이 얻어듣고 부끄럽게 생각해요. 그런데 어려서는 둘이 만 싸워도 나는 잘못 안했는디, 그러고 형을 데려다가 뭐라고 하면 동생이 잘못했는디 나를 때리고 그러고 울어버려요. 어려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에요. 모세 때는 모세 율법대로 복을 주니까 그대로 했는데 복이 안오면 이해가 안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커서는 그런 방식으로 안해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것들을 전부 우리에게 그대로 연결을 시킨다. 그러니까 우리를 어린 아이를 만드는 식이어요. 옆집 얘기가 말 잘 듣는다고 사탕 하나를 주어요. 나도 일기책을 보니까 말 잘 듣는다고 사탕 하나 주었어요. 다 큰 아들이 아버지, 나 심부름시켜, 사탕 먹게. 그러면 안되지요.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 교회는 유치원이고 전부 탐심이 가득해요. 만일에 여러분이 구약대로 섬기면 여러분은 탐심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어요. 신약 때는 그렇지 않다. 가나안 땅의 모든 것을 썩어질 것이고 이제는 예수 안에서 썩지 아니할 것을 주었다. 이것은 빼앗기지도 안해요. 가나안 땅의 유업은 썩고 빼앗기지마는 우리는 썩지 않고 빼앗기지 않을 영원한 것을 주셨다. 그런데도 아직 주님의 생명이 나타나지 안했기 때문에 여전히 썩어짐의 질서가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악한 세대에서 믿음으로 사는 백성들이 세상의 구경꺼리처럼 살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들은 그것으로 울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가난함 때문에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기뻐하고 소망하고 그의 몸이 병들면은 오히려 속사람은 새롭고, 그가 날마다 고난을 받으면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더욱 기뻐하고 이렇게 살고 있지, 아이코 나만 재수없이 걸렸구나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요새 우리 못된 교인들이 그럽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욕을 먹는데 자기만 안걸리면 아, 나는 지혜롭다고 구경하고 있어요. 세상에 얘기들도 자기 아버지 이름 부르면 싸워버려요. 우리 어렸을 때 자기 아버지 이름이 묘한 친구가 있었어요. 4*1=4, 4*2=8하고 외우면 그애 아버지 이름이 거기 들어있어요. 그리고 방죽에 들어가서 누가 더 오래 있는가 보자. 그러면 그러면 다 물 속에 들어가고 우리는 나와서 구구법을 외우는 것이지요. 그러면 물 속에서도 둘리거든요. 그러면 깨벗고 돌아다니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 이름 불렀다고, 친구도 형이고 없지요. 조그만 동생도 자기 형이 맞으면 달려드는 것이어요. 그러나 우리 나라 교회는 어쩐 일인지 예수님의 복음이 욕을 먹어도 자기에게 해가 없으면 해해웃고 있어요. 구경하고. 그것이 지혜라고. 그것은 세상에 없는 일이어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그러니가 지금 우리들이 이런 저런 고난을 받지마는 이미 우리들은 썩지 않을 유업을 받았다.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처음 난 수컷으로 먹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도록 우리가 복을 받았다. 어떻게 그가 자기 자신을 주심으로. 이렇게 우리는 복을 누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마땅히 아직도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들을 구제해야 돼. 어떻게 구제해야 되느냐 고린도후서 8,9장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부요하신 자가 가난하게 되셔서 너희들을 부요케 했지 않냐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풍성한 것으로 너희 형제도 그 풍성함에 참예토록 해라.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너를 부요케 했는가 그가 영광스러운 분이 비천하게 낮아지셔서 자기 몸의 죽음으로 그 생명의 부요함으로 올렸지 않냐 그러니 너희들이 마땅히 형제를 평균케 해서 나누어라. 많이 거둔자나 적게 거둔자나 부족함이 없었다. , 한 몸이기 때문에. 그렇게 바울은 말하고 있지요. 그러면은 그 의가 영원토록 있게 하겠다. 그 말은 한번 구제하면 천국가서 상받는다 그런 쪽으로 이해할 문맥이 아니고, 고린도후서 8장은. 한번 구제하고 그 구제할 의가 사라져버리면은 어떻게 구제하겠어요. 그 의가 영원토록 있게 하겠다. 계속해서 있도록 풍성히 주겠다. 그것이 고린도후서 8장이고 빌립보서 4장에서는 바울이 그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나를 생각하고 도와주니까 감사하다. 나는 너희들이 돕지 안해도 풍성하다. 또 믿는 자에게 느치 못함이 없다. 그는 가난하고 배부르고 모든 비법이 있기 때문에 그가 가난하다고 복음 전파를 안할 것이 아니고, 배부르다고 교만할 것도 아니어요. 말하자면은 아내가 되었으면 남편이부자라고 방종하지 않을 것이고, 남편이 가난하다고 도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그런 이애기에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는 얏 하면 사라지고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봉사하는 사역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배부르든지 배고푸든지 그런 것이 방해하지 못할 것이어요. 그런 이야기지요. 그러니가 나는 배부르다. 그러나 너희들이 나를 생각하고 그처럼 보냈으니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아니냐 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영광 중에서 너희들에게 풍성하게 채우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영광은 부활의 영광이어요. 그는 생명의 주가 되셔서 그 생명의 부요함으로 너희들을 채워줄 것이 아니냐 감사하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것이 여러분이 구제해야될 이유입니다. 그러니가 우리들은 가나안 땅의 풍성함을 받고 가나안 땅의 풍성함으로 형제를 돕는 정도가 아니라 아들의 몸의 죽으심을 통해서 그 몸의 부활의 영광에 참예했으니 그가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서 함께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데 궁핍하지 않도록 한 떡을 떼고 한 잔에 참예하도록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나 부족함이 없도록 구제를 해라. 하나님이 풍성한 대로 너희 쓸 것을 채우시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는 아버지가 사탕 나누어준 것에서 동생에게 몇 개만 나누어 주어도 잘한 것이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말해, 너는 형이라고 더 주더냐, 먼저 먹어버렸으니까 동생 좀 더 줘라. 그러면 되어요. 그러면 자기 것 세어보니가 더 많거든요. 그러면 조금 더 주어요. 네가 더 주니까 내가 그렇지 않냐? 네가 계속 그래라. 그러면 내가 너는 따루 더 주마. 그래야 동생들이 형을 존경하고 그러지 않겠냐. 그렇게 하다 보면 아들이 아버지를 살살 닮아가요. ? 사탕가지고 아버지가 연습을 했거든. 큰 딸이나 큰 아들이 부모를 훨씬 빨리 닮은 것이 그런 것이어요. 옛날 말로 철없으면 막중인갚다. 그러지요. 모든 막둥이가 그러지 않는데 우리 나라 말로 그런 것 아니겠어요. 오히려 막둥이들은 위에 상관들이 많으니까 철만 들면 더 말을 잘 들을 수 있어요. 아버지만 상관이 아니고 줄줄히 상관인데 잘 들어야지, 인제 막둥이도 막둥이 나름인데 우리말로 그렇다 그말입니다. 그러나 커서는 그런 것 갖고 안해요. 그는 아버지의 인격으로 형제를 돌아보지 내 손에 무엇이 들어왔느냐, 이것으로 안해요. 그래서 형님은 가난하고 동생은 부자될 수 있어요. 우리 어려서는 그것이 잘 이해가 안가요. 왜 우리 집은 별로 없는데 작은 아버지 집은 많은지 모르겠더라고요. 우리 집에 오면 가거든요. 그러면 성질나지요. 우리 아버지 것이 나가니까. 이해가 잘 안되지요. 그래도 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시면은 말하자면 작은 아들이 잘 살아야 할머니도 편하고 아버지 마음도 편하다. 그러니까 커서는 자기 손에 소득이 있어서 그렇게 주는 것이 아니어요. 아버지를 알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신약 백성의 구제와 구약 백성의 구제는 정도가 달라요. 구약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주신 것으로 주면은 그만이어요. 그리고 이 규례대로만 해당하면 그만이어요. 그러나 신약은 그가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되겠어요. 그 은혜의 일에 참여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구제는 한 마디로 하자면 한계가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 자신이 결정해야 돼. 얼만나 구제할지. , 여러분 자식들이 있으니까. 자식들을 학교보낼 것도 없이 남 먹으라고 줄 것인가. 물론 그런 것은 여러분이 판단해야 되요. 단지 성경 원리상 자기 식구를 돌보지 않으면 더 악한 사람이어요. 한끼를 굶고 구제한 사람은 구제한 것이 아니라 자해행위지요. 자기부터 먹어야돼. 일단은. 그러나 부모는 자기는 굶고 자식 줄 수 있거든. 그러니까 단지 요새 말하는 프르그램을 내가 비판한 것이지 신약 시대의 구제는 한계가 없다. 단지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는 자신들이 분별해라.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구약 때는 이 법칙대로만 구제하면 되어요. 그것이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윤리입니다. 그래서 신약 교회는 초창기에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성찬식 할 때 구제금을 함께 거두어서 우리가 주의 상에서 한 몸으로 먹으니 그 몸의 교제를 누리는 헝제가 빈핍해서는 안되어요. 그래서 형제들이 살 수 있도록 구제를 했다. 그것이 15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구약 때는 살은 주어도 피는 안주었지 안해요. 지금은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 자는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게 한 생명으로 복을 주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사랑이 모든 지혜입니다. 가령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부모는 사업가가 아니어요. 교육자도 아니고, 그래도 자식을 낳으면 대학갈 자금을 마련할려고 연구를 해요. 자기는 학교도 안다녀본 양반이. 왜냐하면 사랑하니까. 그런데 인제 여자들이 시집가면 시아버지 생일을 자꾸 잊어버려요. 달력에 부지런히 표시하지 않으면 위험해요. 친정 어머니 생일은 그날 되면 못가면 마음이 짬짬한데, 시어머니 생일은 달력에 표시하지 않으면 깜빡 잊어버리기 쉬워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한쪽은 사랑하고 한쪽은 의무로 하니까 그런 것이지요. 일반적인 예입니다. 여러분이 시어머니에게 그런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 나라에서 익숙히 통하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우리식으로 하면 그렇게 자기 얘기는 엎고 있어도 안무겁고, 코도 안더럽고, 울음소리도 노래 소리에요. 그런데 나도 어렸을 때 누님 얘기를 보았지마는 오줌만 싸도 똥쌌다고 불러버려야 돼. 그래야 하지 못보겠어요. 웃을 때는 보겠는데 울면 못보겠어요. 어떻게 힘든지. 그래도 그런 아이들도 시집가면 자기 얘기들은 밤새껏 엎고 견디어내요. 사랑하니까 힘도 나고 지혜들이 생기는 것이어요.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어요. 돈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이 형제를 서로 기억하는 것이어요. 천사처럼 해주라는 말이 아니라 가장 쉬운 말로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는 것이어요. 우리 나라 상식으로. 또 성경도 그렇게 하지요.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모세 율법식으로 설명을 하니까 그렇게 설명을 해요. 바울 같으면 한 몸이니 그렇게 설명하겠지요. 그러나 마태복음은 그렇게 설명하지요. 한 마디로 하자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라. 그렇게 하면은 여러분들은 형제에게 무엇이 필요할지를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교회 문제도 가끔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대해서 프로그램을 제시해서 한 5년 뒤에는 우리가 땅을 사서 예배당을 지을 것이니까 지금은 얼마쯤 저축을 해놓아야 되겠구나. 우리 교회는 가난하니까 교회도 지금 저축을 못하지요. 바쁘지요. 그런데 물론 여러분들의 생활이 어려울 것이어요. 그래도 여러분들이 그래도 여러분이 아파트를 살려면 부금을 넣거든요. 몇년 짜리 몇평, 그런 계획을 합니다. 그런 옛 질서 중에서는 지혜들이 발동해서 계획을 하고 힘을 쏟고 하는데 왜 여러분들의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는 대는대로 하고 생기는 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것이 잘 이해가 안가요. 말하자면 사랑은 지혜요 그렇게 힘을 발휘하는 것이어요. 그러면은 우리는 가난할지라도 교회는 가난하지 않을 것이고 또 교회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데도 손이 적지 않을 것이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문제는 우리의 신앙에 있습니다. 재산여부에 있는 것은 아니어요. 그렇게 했을 때 가난한 것도 가난한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이 실은 우리 구한대로 주시거든요. 여러분이 참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이어요. 여러분이 그런 문제를 그냥 있는대로 봉사하자. 다른데는 많이 해야 많이 받는다고 하지마는 우리는 있는대로 봉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여러분부터 먹고 봉사하는 것이 맞아요. 그러나 그런 것이 대는대로 살라는 말은 아니어요. 많은 힘을 써야 할것이어요. 그런 일에 있어서 형제가 가난하지 않을지라도 결핍이 없는 형제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헛점을 갖고 있거든요. 그런 일에 있어서 형제들을 잘 기억하시면은 그가 부자일지라도 형제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어요. 여러분이 서로 주님의 부요하심으로 서로를 채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십시오. 주님 가르치신 기도로 마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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