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12,13장
12장을 보면 전부 먹는 이야기입니다. 다 빼버리고 6절을 보면은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먹으라고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리고 8-에서 다시 그 말을 반복해 주고 있습니다. 반복법이어요. 8절에 보면은 오늘날까지는 각기 소견대로 했지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그렇게 하지를 말아라. 왜 그렇습니까? 9절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거기 이르면 그러지 말아라. 그렇게 해서 두 번 반복하지요. 첫째는 명령적으로 내 집에 와서 먹으라. 이제까지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내 집에 와서 먹으라. 먹으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해서 하고 있습니다. 14절까지입니다. 그 다음 15절을 보면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으라. 정한 자나 부정한 자나 마음대로 먹으라. 그러나 피는 땅에 쏟으라. 이처럼 맘대로 먹을지라도 십일조나 처음 난 것이나 낙헌 예물 거제 예물, 그런 것은 성에서 먹지 말고 내 집으로 갖고 와라. 올 때 자녀와 노비와 레위인도 함께 먹으라. 여기도 먹으라는 이야기지요. 그 다음 20절에서는 그 사상을 한번 더 반복하는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땅이 너무 넓어서 내 집에 오기가 한참 머냐? 그래도 맘대로 먹되 성물은 내 집에 갖고 와서 먹어라. 26절에 보니까 「오직 네 성물과 서원물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거기서 먹어라. 번제는 다 불살라 드리고 다른 희생을 드릴 때는 피는 단에 붓고 고기는 먹으라. 그러면 영영히 복을 주리라. 여기 보니까 전부 먹으라는 이야기지요.
첫째는 무슨 이야기입니까? 첫째는 이러이러한 것들은 내 집으로 가져와라. 그리고 너희 가족끼리 먹으라. 한번 명령했습니다. 그 전에는 너희 마음대로 했지마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는 내 집으로 가져와라. 하면서 그 식구들도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요. 식구들, 노비, 레위인들을 다 데리고 와라. 그렇게 하고 있지요. 그 다음에는 너희 집에서는 마음대로 먹어도 거룩한 성물을 꼭 내 집으로 가져와라. 하고 그 다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내 집으로 오기가 머냐 그래도 거룩한 것은 꼭 내 집으로 가져와라. 와서 피는 단에 드리고 고기는 네가 먹어라. 너희 식구가 함께 먹고 즐거워 하라. 먹으라는 이야기를 세 번 반복하고 있지요. 똑같은 사상들이어요. 그리고 그 앞뒤에 보면 무슨 말이 있느냐 하면, 그러나 가나안 신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신들에게 드리는고, 그런 방법을 도입하지 말아라. 그리고 그 신들에게 드렸던 것은 금이든 은이든 전부 아끼지 말고 불살라버려라. 그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과 뒤에 있는 우상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은 누구에게는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까? 나한테는 그것이 지금 12장에서 하고 있는 말입니다. 가령 4절을 보면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에게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아라.」 그 앞에까지는 우상은 전부 찍어버리라.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고 내 집으로 먹을 것을 가지고 와라. 그런데 그 집은 5절에 보니까 어디입니까?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그러니까 성소라는 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면, 자기 이름을 두신다.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했다. 거기 거하신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 자기 거처를 두셔요. 그곳으로 와라. 그런 이야기지요. 이것이 12장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청와대로 초청한다는 말이지요. 일반 음식을 너희 성에서 먹되 첫 것이나 십일조나 특별한 것이 있어요. 그런 것은 너희 성에서 먹지 말고 내 집으로 와라. 그 집이 어디냐? 내가 내 이름을 너희 지파서 택한 곳 거기 살마. 그러니가 그동안 너희들이 광야에서 돌아나닐 때는 내 집에 오직 않고 여기서 먹었어도 이제 안식을 얻으면은 내 집에서 축제하자. 피는 너희 집에서 먹을 때는 땅에 쏟아라. 내 집에 왔냐? 나에게 드려라. 고기는 맘대로 먹어라. 올 때는 너희 식구들을 다 데리고 와라. 종들까지. 그리고 특별히 레위인을 빼지 말라. 그런 말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우상에 대해서는 찍어버리고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기 신을 어떻게 섬겼는고 연구하지 말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이 12장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하고 있는 규례는 무엇일까요? 이제는 그들의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성소의 것으로 축복해 주고 있는 것이어요. 이제는 하나님이 영원히 이스라엘 지파 중에 계실 것이어요. 그러니까 먹거리 갖고 자기 집으로 와야 되어요. 일반 음식은 자기 상에서 마음대로 먹어라. 좋다. 거룩한 것은 내 집에서 먹자. 한 마디로 하면 맘대로 먹는 것이 핵심인데 일반적인 것은 너희 집에서 먹고 특별한 것은 내 집에 와서 내 상에서 먹자. 그 말이지요. 가령 십일조 같으면 민수기나 레위기에서는 일반 백성이 손대면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지요. 특별히 민수기를 보면은 레위지파의 십일조까지라도 대제사장에게 드려야 되어요. 백성이 십일조를 레위지파에게 드리면은 레위지파는 그 십일조를 대제사장에게 주어야 돼요. 그것이 민수기에 거룩의 간격을 나누어서 하나님 앞에 안죽는 방법이어요. 하나님은 거룩하셔요. 진중에 계셔요. 하나님은 진중에 계시는 데 근위병으로 레위 지파가 진치고 그 밖에 열두 지파가 있지 안해요. 십일조도 그렇게 간격이 있으면 민수기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안해요. 십일조와 초태생은 전부 하나님 것이다. 하는 것이 하는 것이 레위기와 민수기의 강조점인데 신명기에서는 그것을 너도 먹고 네 종도 먹고 네 자식도 먹고 레위지파도 먹자. 그러니까 여기서는 레위지파가 장자로 선별된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사람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면 왜 레위지파는 먹는가? 내가 그들의 기업이 되니까, 그들은 내 상에서 먹어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레위지파가 가난한 자로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너희 자식들, 종들과 함께 레위지파 가난한 자로 되어 있어요. 더구나 십일조나 초생물은 백성은 절대로 손대서는 안되는데 여기서는 내 집에서 먹자. 번제까지라도 피는 나에게 드려라. 번제는 태워드려야 되겠지요. 남어지 제사는 피는 나에게 드리고 고기는 너희들이 먹어라. 어디서 내 집에서.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도 그 땅이 너무도 넓으냐? 아무리 멀어도 내 집으로 와라. 이렇게 되어 있지요. 특별 초청을 해주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신명기는 무엇입니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것인데 그 기업은 무엇이겠어요. 특별히 초태생 하나님의 것을 자기 백성이 먹도록 그들을 자기 집으로 초청해요. 함께 거하시니까. 그것이 12장에서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이 규례를 지키면 그들 뿐 아니라 그들에게 속한 종들까지라도 하나님의 상에서 먹는 특권으로 먹는 것이어요. 그것이 구약에서 생명의 복을 말하는 방식이다. 그것이 12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2-26장은 언약의 땅에서 행할 규례들입니다. 그래서 12장1절을 보면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얻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하면서 다시 시작하고 있지요. 그 시작인 12장에서 언약 행식의 방식으로 그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26장까지 그렇지마는 12장을 언약체결적인 그런 모양세로 한번 말씀하신다 그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32절 보니까 이 모든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지켜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어요. 언약에 대해서는 가감하면 안되거든요. 그 첫 다위를 언약체결적인 방식으로 말씀하고 이어서 여러 규례들을 말씀한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12장 처음에서는 언약의 땅에서 지킬 규례가 이러하니라. 제일 끝에는 가감하지 말고 지키라. 언약체결적인 형식을 취한다 그런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얻을 땅에서 평생 행할 규례는 가나안 족들의 신의 성소와 그 신들은 멸하고 오직 여호와의 성소에서 복주심을 인하여 예물을 드리고 함께 먹고 즐거워 하는 일입니다. 또한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가나안 족들의 방식을 절대로 도입해서는 안됩니다. 기업의 땅을 얻기까지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다고 했는데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성소에서 먹지 못했다는 의미로 각기 소견대로일 것이어요.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 거하게 하실 때에는 즉 사방에 대적을 이기고 안식을 주시고 평안히 거하게 했을 때에는 광야에서 여기 저기 돌아다닐 때 켐핑한 것처럼 먹지 말고 인제는 내 집으로 와라 그 말이어요. 왜 하나님께서 거하게 하실 때에는 성소에 찾아와서 거기서 번제를 드리고 명하는 것을 모든 것을 성소에서 행하라. 여호와의 성소는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고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이며 여호와의 거처다. 하나님 집으로 와라.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마음대로 모든 것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누구나 부정한 자까지 다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생명의 복으로부터 제외된 자가 없지요? 그러나 피는 먹지 말고 땅에 물같이 쏟아야 됩니다. 그러나 레위기는 부정한 자는 먹지 말라. 그런 말이 반복되지요. 부정해도 못먹고 음식이 부정해도 못먹고, 왜 레위기는 거룩한 성별이 핵심이거든요. 그러나 신명기는 그렇지 안해요. 부정한 자도 다 먹어라. 그 대신 피는 먹지 말고 땅에 쏟으라. 그러나 십일조, 초태생, 서원 예물, 낙헌 예물, 거제물,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가족과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먹고 손의 수고에 복주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즐거워 해라. 지경을 넓혀서 성소가 멀 때도 성물과 서원물은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 택하신 곳으로 가라. 가지고 와라. 그러나 성에서는 마음에 좋아하는대로 먹으라. 그러나 먹을 때에도 크게 삼가서 피는 먹지 말고 땅에 쏟으라. 피는 생명인즉 피를 고기와 함께 먹지 말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의요 너와 너희 후손이 복을 누리리라. 피는 생명인제 아직은 안준 것이지요. 성소에서 먹는 복을 주셨을 때까지라도 참 생명인 피는 아직 안주었어요. 이 피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되어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에게 내 피와 내 살을 먹고 마시라고 그러지요. 구약 때는 제사장까지라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성소에서 번제를 드릴 때는 그 피와 고기를 여호와의 단에 드리고 다른 희생을 드릴 때에는 피는 여호와의 단에 붓고 고기는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눈 앞에서 너희의 선과 의며 영영히 복을 누리리라. 즉 하나님 앞에 전적인 헌신, 그 앞에서 즐거워함, 그것이 그들의 의로움이라 그런 말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여호와의 말슴을 가감하여 멸절한 민족들의 방식을 도입하면 그것이 이스라엘을 넘어지게 할 것이다. 가나안 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방식은 여호와께서 가증이 여기신다. 그들이 심지어 그 자식을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린다. 이방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는 말이어요. 이방의 방식은 모두가 가증한 것입니다. 교회에 어떻게 적용될 것입니까? 가나안을 안식의 기업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그들을 생명을 성소에 속한 것으로 복주신 것이다. 이것이 12장에서 말하는 주제이지요. 가나안 땅의 모든 특별한 것을 먹으라고 했거든. 기업으로 주셨는데, 안식을 주셨는데, 어떻게 선물을 내 집에서 먹으라는 방식으로 안식을 주신 것이다. 온저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의 안식과 기업을 주셔서 교회는 그의 상에서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린다. 그리스도 안에서 먹고 마시는 삶을 해석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방식으로 살아라. 구약 때는 하나님의 집에서 먹을 특별한 것이 있고, 자기 집에서 먹을 것이 있어요. 하나님 집에서 먹지 못할 피가 있어요. 이런 구분이 있지마는 지금은 집에서 먹는 것이나 교회에서 먹는 것이 전혀 차이가 없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한다. 만일에 어느 한 가지라도 집에서 먹는 것과 자기 가정에서 먹는 것이 차이가 나면은 그것은 구원이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가나안 땅의 성소에서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의 영광스러운 상으로 초대받고 그 상에서 먹고 마신다. 그것이 교회가 먹고 마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가령 지금도 수박 처음 난 것은 목사님 갖다 드린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른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복음으로 수고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은 좋다. 바울도 말하지요. 내가 신령한 것으로 뿌렸으니 육체의 것으로 거둔다고 과하다 하겠느냐? 그런 것은 좋은 일이다. 단지 미신 때문에 그런다거나 구약 때문에 그렇지는 말라. 그런 말이어요. 우리들은 자연적인 상식으로 좋은 것이 있으면 어른에게 먼저 갖다 드리고, 우리 어렸을 때는 손님들이 집에 가져온 것도 먹는 법이 없었어요. 요새는 아이가 아빠 것, 엄마 것, 딱딱 나누고 자기 몫을 먹어버릴 것이어요. 왜냐하면 지금은 분배를 잘하거든요. 그전에는 가족으로 먹는다는 개념이지 지금처럼 칼로리 섭취하는 것이 아니어요. 어른이 숱가락을 들기 전에는 안들었는데 요새는 각자 넌닝구 입고 라면 끌여먹고 나가버려요. 가족으로 먹는다는 개념이 없어요. 옛날 사람들은 미신 섬기는 사람들도 요새 하나님 섬기는 사람들보다 예의가 발라요. 왜? 모든 것을 신들을 생각않고 산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믿음으로 산다고 해도 이론적으로 그리스도를 이야기하지 전 영역을 하나님께 드리지 안해요. 그러니까 믿음이 무엇인지를 몰라요. 이방인보다도 신적인 세력을 의식않고 살아요. 그러니까 몹시 잘못되었지요. 그리고 이런 성경을 빙자해서 교회에다 맞추어요. 교회로 십일조 가져오고, 교회로 초태생 가져오고, 교회로 가져오는 것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안해요. 교회는 성도의 교제 단체이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는 것이 교회 자체에 내는 것하고는 달라요. 그렇게 연결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처음 나와서 꼭 목사에게 드리고 먹어야 설사가 안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잡수고 싶으면 잡수십시오. 또 여러분 집에 어른이 계시면은 어른 먼저 그리고 잡수시고, 어른이 서울 가셨는데 어른 맛보기 전에 내가 먼저 맛보겠냐? 하고 딸기철이 지나도록 두지 말고 먼저 잡수십시오. 그래도 목사님 오시기 전에는 초태생을 나두어야 되겠다고 해서 썩일 필요가 없어요. 그전에 어떤 사람은 달걀도 하나님 것 해갖고 놓고 썩여요. 그래갖고 전도사라도 오면 먹이겠는데 오지 않으니까 두고 썩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레위지파 사람들 것은 전도사 이상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신령한 제사장이어요.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상에서 먹고 마셔요. 여러분이 다 취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일반 상식으로 연세가 많은 분에게 드리는 것이고, 또 복음 안에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드리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시골 가면은 그쯤 안해요. 자기들은 노인들만 살고 먹다보니까 입맛은 없고, 전도사집에 보니까 얘기들이 많거든요. 그집은 얘기들이 많으니까 처리를 다 해주겠구나. 조금 남으면 전도사님 집에 갖다 줘라. 그 집은 입이 많아서 다 처리해 주거든요. 그러면 안되지요. 그건 자기 집에서 할 일이고, 항상 먹을 것은 먹을만할 때 주어야 예의가 바르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 나라 사람에게 인기 없는 것이 초코렛을 던저 주면서도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두 손으로 주면서 잡수십시오. 하면 좋은데 차에서 던저주고 지나가니까 먹고도 뒤로 욕하는 것이지요. 왜 우리 나라는 던져 주는 법이 없거든. 그런데 미국식은 던져주거든요. 우리나라 같으면 그러면 안되지요. 차에서 내려서 적지만 받으시라고 그러면 가난한 사람이 받고 기분이 좋을 것인데, 지나가면서 던져주니까 이건 불사스럽지.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 예의법이 있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런 일에서 예의를 갖추되 이 본문에서 핵심은 이 모든 것이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복주심으로 먹고 마셨다. 이제는 여러분 가정에서 먹고 마시는 것도 주의 상에서 먹고 마시는 살과 피의 교제로 간격이 없다. 만일에 간격이 있으면 그건 저주다 그런 말이어요. 단지 교회 식구가 향하기 때문에 세례받지 않은 사람은 참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어요. 여러분의 가정은 세례로 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의 아버지가 믿으면서 주님께서 주님의 살과 피의 교제로 우리를 위해서 이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니냐? 우리 같이 먹자. 하면은 안믿는 아들도 거기서 먹을 수 있다. 그런 의미로 그도 거룩하다. 안믿는 남편도 먹을 수 있다. 그런 의미로 거룩하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 하는 말이지요. 그는 교회에서는 세례받지 않았기 때문에 거룩하지 안해요. 그러나 가정에서는 믿는 가장에 속한다는 의미로 그도 그 복에 참여를 해요. 그가 믿고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13장입니다. 13장은 한 마디로 여호와를 미혹하는 자는 전부 죽여라. 그런 말이어요. 처음에 1-5절까지는 거짓선지자를 죽이라는 말이고, 그 다음 6-11절까지는 네 아내까지도 그러면 죽여라. 네 자식이라도 그러면 죽이라는 말이고, 그 다음 12-끝절까지는 어느 개인이 아니라 한 성읍이 그런 일을 하냐? 성읍까지 불살라버려라. 그런 이야기에요. 이런 것은 6-11장까지 설명하는 방식과는 굉장히 쉬어요. 거기서는 순종에 대한 언약적인 맹세를 반복하니까 일일이 풀어야 되지마는 여기서는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말하니까 하기 쉽다. 반복법이거든요. 거짓선지자는 죽여야 되겠고, 그런 거짓선지자의 말을 네 친구든, 네 자식이든, 네 품에 있는 아내라도 그를 죽여라. 개인이 아니고 한 성읍이 그러냐 좋다 불살라버려라. 그것이 13장이 하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런 규례를 집행하면은 이 가나안 땅에 거짓선지자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지요. 미혹하는 자가 없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자식까지라도 하나님보다 사랑하면 안되고, 그렇게 해서 만일에 심판을 집행하면은 이 땅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미혹의 영이 활동할 방법이 없어요. 그것이 지금 13장이 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13장을 해석할 때 이제 비교해 볼 것이 있어요. 18장에 보면 다른 이야기다. 거짓선지자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거짓선지자가 자기 마음대로 이적을 행해도 만일에 거짓선지자가 애굽에서 너희를 건져낸 여호와 외에 다른 선지자를 섬기도록 유도하는가? 그를 죽여라. 거짓선지자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18장에서는 그런 말을 안해요. 만일에 그 선지자가 말했는데 그 말한대로 응함이 없으면 거짓이다. 여기 13장은 말대로 응하는가? 그래도 거짓이다. 여호와를 대항하면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 비교를 해보십시오. 항상 문맥을 보라고 그랬지요. 18장의 문맥과 13장의 문맥은 달라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사람의 말대로 안이루어지면 거짓말쟁이에요. 말대로 이루어지면 진짜, 이 생각만하거든요. 그래갖고 어디 갔더니 그 사람이 손얹고 기도하니까 낫어버리데요. 어떤 사람에게 얏, 하니까 쓰러져버리데요. 진빠 보았네요. 체면술을 가지고 가짜로 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러더라고. 그러니까 그건 진짜베기인가 보다고. 이렇게 설명하기 쉬워요. 그런데 13장은 그래도 가짜다 그럽니다. 누가 여호와를 대항하면 가짜다. 이 말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18장은 그 말대로 응함이 있으면 진짜고 응함이 없으면 가짜고 그래요. 문맥이 그러니가 비교를 해보시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차이점을 18장을 강론한 때 답을 줄렵니다. 오늘은 양이 많으니까 그때 설명을 길게 하면 좋을 것이어요. 여기서 한 가지 설명할 것은 무엇이냐, 여호와께서 조상들에게 명세하신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함께 거할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하시고 가나안 땅을 인식과 생명의 땅으로 주신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만 섬겨야 하며 여호와를 대적하는 모든 것을 진멸해야 한다. 그 여호와는 조상들의 하나님인데 애굽에서 그들은 건져내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함께 거처를 주신 그 하나니만을 섬겨야 한다. 이스라엘이 섬길 하나님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여호아시며 그분은 조상 때부터 섬겼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은 마음을 다해 여호와만 섬기고 미혹하는 자들을 다 멸해야 한다. 어떤 선지자가 일어나 그 말대로 이적을 행할지라도 여호와를 떠나 새로운 신을 섬기도록 말하면 그는 거짓선지자이다. 여호와께서 거짓선지자를 이스라엘 중에 허락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참된 마음으로 여호와만 섬기는지 시험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은 애굽 땅 종되었던 곳에서 그들을 인도해 내신 여호와를 배반케 하는 이런 거짓 선지자를 죽여서 그들 중에서 악을 제하여야 한다. 미혹하는 자는 그가 혈육일지라도 죽여야 하면 성읍일지라도 불살라 멸하여 여호와께 드려서 다시는 건설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이 일은 그 일을 먼저 목격한 자가 먼저 행하고, 온 백성이 함께 행하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야 한다. 죽을 때도 그 사람이 먼저 하라 그런 말입니다. 성읍을 불살라 여호와께 드릴 때에 그중에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손대서도 안되며 이 일에 정직해야 한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 진노를 그치시고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더하사 열조에게 맹세하심 같이 그들의 수효를 번성케 하실 것이다. 성읍을 불사를 때 은금이 많지 안해요. 그러니가 그것들을 몰수히 불사르라. 그런 말이어요. 이 규례를 행하면 가나안 땅에서는 여호와를 미혹하는 죄가 있을 수 없다. 그렇지요. 이 앞에 12장에서는 명령한대로 먹으면은 하나님의 상에서 먹는대로 그들의 생명이 주어지지요. 그들은 하나님이 주셔서 먹고 마시는 백성이지 먼 변두리에서 먹고 마시는 백성이 아니어요. 그전에는 가나안 땅에 못들어갔을 때 나그네처럼 광야를 빙빙 돌면서 먹었지마는 이제는 하나님의 안식의 거처, 하나님의 거처에서 같이 먹을 것이어요. 12장에 그랬지요? 13장에서 그를 행하면은 거짓 선지자가 그 땅에 발붙일 수가 없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을 애굽 땅에서 구원하사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여호와만 사랑하고 그 외에 다른 복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미혹을 받습니까? 가나안 땅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신데 이적을 행하면서 이 신을 섬기면 더 복을 받을 것이 아니냐? 그래 갖고 미혹을 받는 것이어요. 여호와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시므로 조상들에 대한 언약을 성취하시고 확증하셨다. 이것을 거스리는 모든 것은 아무리 권능있는 이적과 친밀한 교제와 수가 많을지라도 거짓이다. 권능있는 이적은 거짓 선지자의 이적이고, 친밀함은 자기 품에 있는 아네요, 수가 많은 것은 한 성읍이지요. 그래도 따르지 말아라. 이스라엘은 그러한 것을 진멸함으로 그러한 죄를 제거해야 된다.
이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참과 거짓에 대한 판단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한다. 그리스도 안에 구원의 새로운 것과 반대되는 모든 것은 교회에서 거짓이다. 구약에 증거까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새 것의 의미로 증거되지 아니하면 거짓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우리는 그것이 진짜로 일어났냐, 안일어났냐? 그것을 가지고 참이다, 거짓이다 그래요. 그러나 요한복음의 언어대로 하면은 땅에 있는 것은 그림자고 하늘에 있는 것은 참이지요. 그렇게 대비하고 있지요? 이런 개념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르면 참이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면 거짓이어요. 가령 여러분이 디모데후서를 보면은 모세를 대항해서 얀네와 얌브레가 이적을 행했지요. 그들이 행한 것도 진짜 이적입니다. 그런데 편을 것기 위해서 그 이적을 모세 이적과 비교해 보면은 문제가 있습니다마는 한 수 적은 것이어요. 이적의 의미가. 가령 신명기 이적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여호와로부터 떠나게 할려는 것이 이적의 목표고, 출애굽기의 이적은 모세가 행하는 이적과 같다고 할려는 것이어요. 그런데 한 수 뒤지지요. 그것이 출애굽의 이적이어요. 진짜로 그런 일을 했어요. 그런데 모세의 뱀이 그들의 뱀을 삼켜버리지요. 그러니까 모세의 수에 미치지를 못하지요. 권세를 비교하고 있는 것이 출애굽기의 이적이고, 신명기는 언약의 신실함을 말할려는 것이 거짓 이적의 목표에요. 언약의 신실함에 매이겠는가? 그것이 핵심입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께만 매이겠는지, 다른 복을 구하겠는지 그것이 신명기 문맥이라는 말입니다. 항상 문맥을 보고 해석을 해야됩니다. 그러면은 그들이 행한 것이 진짜여도 모세를 대적한다는 의미로 거짓이지요. 그러면 지금 어떤 사람이 얏, 하니까 우르르 쓰러져버렸어요. 보았거든요. 진짜구나. 그런데 그것이 거짓이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이 우르르 쓰러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일을 행하신 것과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차라리 새 언약은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주면 좋겠지마는 느닷없는 사람을 쓰러지게 하면은 이것은 마술이지 그리스도의 은혜와는 상관이 없다 그런 말입니다. 가령 신명기 문맥을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신 하나님을 대항하는가, 그러면 가짜로 이야기하지요. 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일을 확증하셨거든요. 더 이상 증거를 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만 섬기면 되어요. 그런데 이적을 행하면서 내가 다른 복을 주리라. 움직이면 따르지 말아라. 그런 것이 신명기 이야기에요. 그러면은 지금 가짜들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했다는 이야기는 진짜지요? 하나님이 행했으니까 물어볼 것 없이 진짜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거짓 선지자들을 일으킬 때 가령 그 시대에 행하신 은혜의 일에 대항하는지, 그것이 거짓 선지자가 미혹하는 틀이지 진짜냐 가짜냐가 그 핵심이 아니어요. 그러면은 구약 때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으로부터 미혹케 할려는 것이 거짓 선지자면은 지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늘을 기업으로 주셨지요. 그 은혜의 일로부터 멀어지게 하면은 그것은 비록 구약을 갖고 우리에게 증거한다 할지라도 거짓이라 그런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 죽였지요. 그만큼 거짓이다 그런 말이어요. 그러니가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십니다. 옛날에 하나님이 지금은 못가르시겠습니까? 지금도 여러분이 기도하면 홍해를 가르실 것입니다. 거짓말이라 그런 말이어요. 지금은 홍해 안갈라요. 지금은 홍해를 가르므로 증거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 일으키심으로 자기 증거가 확실해요. 우리들은 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다른 것을 구하지 안해요. 그러니까 지금 현신애 권사가 어쨌다 누가 어쨌다 할 때 아이고 그건 꾸민 것도 많고, 손바닥을 치다보면 수지침 이론으로 낫기도 하고, 그러니까 나섰겠지요. 가짜라 그런 말이 아니라 진짜니까 따르겠지요. 물론 돈받고 따른 사람도 있게지마는 진짜로 나섰으니가 따르겠지요. 그것이 혹시 그 사람과 상관 없이 자기 믿음의 결단일지라도 어떠튼 나섰으니까 따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다 사실일지라도 그러나 그가 나섰는데도 그 신앙고백이 아, 내가 기도했더니 나았더라. 이 말만 해갖고는 거짓말이라 그런 말이어요. 무슨 말이냐 한 마디로 하자면.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러면 권능은 다 하나님이 행하신다고 그러는데 거짓 선지자들의 권능은 누가 준 것이냐? 마귀가 준 것이냐? 성경은 그런 이야기를 안해요. 권능의 출처가 어디냐, 그런 이야기를 안한다. 단지 무엇을 말합니까? 왜 교회 안에 거짓 선생이 있느냐, 거짓을 심판할려고 그런다. 장차는 어느 정도 권세가 나타나느냐?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방식으로 거짓 선지자가 역사한다. 왜 예수는 신적인 권세로 오셨거든요. 그래서 적그리스도에요. 예수께서 행하신 신적인 권세를 행함으로 교회를 미혹할 것이라는 말이지요. 누구를 미혹할려고 그리스도 안에 신실한 자를 시험할려고. 그런 말이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것이 계시록에서 시험하는 방식이어요. 그러니까 구약에 증거까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사실인데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상황으로 해석해 오지 않으면은 그것은 교회를 어린 아이로 만드는 것이어요.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일하시지 홍해 가에선 모세로 일하지 않으셔요. 어떤 경우도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에게 오지 않도록 해라. 그런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지금 교회 안에서 이런 저런 표적들을 분별하는 방식은 그 사람들은 성경에 있으니까 진짜라고 그래요.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을 구별할려고 이것은 진짜고 이것은 가짜라고 그런 목록을 제시할려는 것이 성경 본문이 아닙니다. 성경의 은사들은 그 문맥에 합당한 은사에요. 고린교회의 은사 같으면은 그것이 제일 문제지마는 교회에서 나타난 것은 예배적인 질서와 은사들이어요. 그때는 아직 예언자들이 있고 영을 분별하는 분별자들이 있을 때 아직 성경이 완결되기 전이어요. 그러니까 거기는 예배에 나타난 질서와 은사들이 다양하게 나타나요. 그러나 로마서 같으면은 예베에 나타난 은사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 역사에서 교회에 주신 은사들이기 때문에 요새 말하는 소위 항존직, 목사, 장로, 집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쭉 나와요. 구제하는자, 다스리는자, 이런 문제들이 나와요. 에베소서의 은사 같으면 지금 하나님이 어떻게 교회를 세우시는가, 그것은 사도들의 복음전파를 세우거든요. 교회에 주신 은사는 사도와 선지자, 또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그런 은사를 말하고 있는 것이어요. 또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윤리까지라도 에베소서나 골로새서는 몸의 윤리이기 때문에 부부질서 가정질서 주종질서를 이야기를 해요. 다른 곳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안해요. 항상 문맥을 따라서 해석을 해야되는 것이지 성경에 나오는 은사는 진짜고 안나오는 것은 가짜라는 말이 아니어요. 성경에 나온 것도 지금 어떤 사람이 내가 사도라 그러면 가짜입니까, 진짜입니까? 가짜지요. 어떤 사람이 내가 계시록 그대로 짝 보고와버렸다. 바울은 기록했지마는 나는 녹음해 갖고 왔다. 너희들 들어보아라. 진짜일까요 가짜일까요? 가짜지요. 왜 이제는 사도 시대가 끝났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성경을 끌어오자 말자 그런 것은 거짓이라 그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그 거짓에 속아요. 아,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목사님이 기도하면 된다고 그러더라. 착 되었어요. 순천에서는 목사가 복권을 샀는데 되었어요. 예배당 지었어요. 그래 갖고 목사들이 북권 사느라고 바빴다고 그러지요. 주의 뜻이 아니면 뽑혔겠지요. 성경에 보면 제비는 하나님이 뽑는다고. 아, 맞지요. 성경을 전부 그런 식으로 인용합니다. 왜 그러느냐?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기 몸을 생명의 선물로 주셨는데도 이것 외에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미혹을 받는 것이어요. 무엇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그러니까 이방 종교가 미혹하는 것 보다도 거짓된 기독교가 미혹하니까 훨씬 위험해. 만일에 중이 그러면 가짜인줄 아는데, 목사가 성경을 보십시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와도 복을 받고, 보니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받은 복은 진짜 복, 안믿는 사람이 받은 복은 가짜 복, 아주 확신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요새 교회가 어린 아이 교회지요. 미혹을 받으니까. 우리에게는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하늘의 기업을 주심으로 확증하셨다. 지금 준 모든 것도 그분이 주셨지마는 여전히 썩을 질서 안에 있기 때문에 거기 매이지 말아라. 썩지 않을 새로운 것을 구해라. 하늘에 것을 찾아라.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 마음을 두지 않고, 먹고 마시는 모든 일을 부활의 빛으로 새롭게 해석해서 살지 않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주신다고 꿀꺽꿀꺽 받아 먹어요. 그래서 그래서 유괴를 당하는 것이어요. 그런 이야기가 13장에서 하는 이아기다. 무슨 말인가 아시겠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는 이런 가짜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부흥회 때는 초청해요. 해결사를 데려와야 되거든. 그리고 품에 있는 아내라도 죽이라고 그러는데 아니어요. 우리 아내는 영이 밝아요. 대개 우리나라 교회는 목사 아내가 부당회장이어요. 그런데 그 부인은 목사의 부인일뿐 교회에는 아무 권한이 없어요. 여러분이 단지 교회의 일을 목사가 알 수 있도록 상의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은 좋지마는 나한테 반드시 보고해야할 권한은 없어요. 그런데 거의 말하자면 어떤 교회는 목사가 당회장이면은 그 아내는 회계집상에요. 그러니까 그 교회는 분쟁이 있을 까닭이 없지요. 회계를 거기서 맡은데 뭐. 그 여러분이 목사 부인의 신앙이나 경력 때문에 존중하고 이런 저런 문제 때문에 존중하고 이런 저런 직책은 안맡았어도 목사 부인이니까 교회 돌아가는 일은 잘 알아야 되겠지요? 그런 일로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 예의가 되겠지마는, 목사 부인이 나에게 안 알리고 그럴 수가 있냐? 하면 그런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안해요.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군대나 정치나 교회는 항상 아내는 직함이 없는 부통령이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죽이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전부 암소로 바꿉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어려우면은 기도원에 가서 이런 부훙사들에게 기도받을 것이어요. 그러니, 부흥회 때는 그런 강사를 다 초청하고 광주를 성시로 그러면 그런 부흥사들을 데려다가 해요. 그래 놓고는 다락방은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니까 웃어버리지요. 왜 자기 교단에 해를 끼치면 이단이고 자기 교회에 이익을 가져오면 하나님의 종이어요. 성경을 따라 구별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아무리 그가 보수 교단의 목사여도 우리를 포함해서까지 내가 가짜로 지옥간다는 의미로가 아니라, 나를 포함해서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셨다. 구원 역사적인 기독론적인 해석을 안하면은 그것은 거짓 증거다 그런 말이어요. 한 마디로 대표적인 거짓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 신앙고백서라고 그랬지요. 왜냐하면 구원의 일이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달리 대하시는데 똑같이 이야기하면은 그건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니어요. 우리들도 거기서 태어났지요. 그러나 그것이 옳아서 그런 것이 아니어요. 거기 있는 복음적인 요소들이나 단어 때문에 가랑비에도 웃도 젖고 싹이 나는 것이지 그것을 체계대로 하면 성경이 아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많은 경험이 있겠지마는 경험은 개인적으로 감사할 뿐 그것이 교회를 가르치는 계시적인 특성을 가져서는 안되고 여러분의 경험까지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서 해석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입 다물어야 되어요. 경험은 다양할 수 있지마는 그것을 성경을 빙자해서 남을 가르치면 안되어요. 가령 어떤 사람이 약을 안먹고 병이 나서버렸어요. 약을 먹을 때는 언뜻하면 병원신세를 졌는데, 예라 약을 던저버리고 기도원에 가서 낫자. 산에 갔으니 병원에 갈 수도 없지 안해요 그래서 죽자 살자 하니까 낫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약을 쓰면 신앙이 없고 약을 안쓰면 신앙이 있도다. 그건 자기 경험으로는 진짜에요.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거든요. 그러나 그 사람으로 교회를 가르치게 하면 안되어요. 사람 많이 죽일 것이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부요하게 주셨거든요. 그 사람으로 교회를 가르치게 하면 안되어요. 그는 믿음이 큰자가 아니라 진실되게 하면 믿음이 작은자에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개인이 진짜냐 가짜냐 가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아무리 진자고 그동안 잘 가르쳤어도 성경에 틀린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이 스톱해야 되지, 그래도 목사님이 그 동안도 잘 가르쳤는데 맞겟지, 이하 동문하고 봐주면 안된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을 따라 교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러분이 거짓을 그렇게 구별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도 부활의 빛 가운데 살지 않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런 방식으로 살면은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거짓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죄를 안지어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자, 13장까지 마쳤습니다. 13장은 제일 끝에만 읽겠습니다. 종말에는 적그리스도가 신적 능력으로 교회를 미혹할 것이다. 구원 역사의 시대마다 그 시대에 상응하는 거짓을 허락하십니다. 거짓은 그 시대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역사해요. 그래야 일이 되겠지요. 허락하신 이유는 거짓을 사랑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다. 양동시장에 가면은 물품이 다양해요. 자기 입맞대로 사면 됩니다. 그래 놓고 속았다고 하면 안됩니다. 지금은 교회의 교훈이 다양하고 공개되었기 때문에 자기 원하는대로 찾아갈 수가 있어요. 몰라서 그랬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공개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속았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오직 거짓을 사랑하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함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있지요. 오직 그리스도를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아버지되신 하나님만을 순종하고 사랑하는 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밖에 어두움을 미워하고 그리스도만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스도 밖의 어두움을 미워하라 그런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부활의 새 빛이지요. 그리스도 안에 것은 하늘이 것이니까.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은 썩어질 것이어요. 거기에 매이지 말아라. 그것이 진리로 사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구약 때는 이런 거짓을 전부 죽여버리면 진리에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마음에 있는 거짓까지 미워하고 정복해내야 되어요. 이제는 이런 법적인 재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런 일을 해요. 누가 여러분을 죽일려고 찾아와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그 일을 해요. 왜? 지금은 하늘에 속한 새로운 신령한 시대거든요. 그래서 고린도 교회가 한참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았지마는 나중에 그것을 슬퍼하고 울고 가슴을 쳤지요. 바울이 그들을 쫓아가서 죽여서 그런 것이 아니어요. 그들 안에 진리의 영이 있기 때문에 분별해서 그런 것이어요. 그러니까 교회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된다. 13장이 끝났으니까 다음 14장부터는 그날 그날 맞춰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새 거짓된 자들은 그것을 중이 하면은 가짜인줄 알겠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거든요. 그런데 그 예수가 어떤 예수냐?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이 새 것을 주는 예수가 아니라 바로 그것을 주는 예수에요. 그래서 거짓이어요. 그러면 하나님은 그보다 더한 일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십일조도 안내고 기도할 때는 별로 복이 없더니 십일조를 내고 기도하자 말자 복이 터지도록 오고, 그 다음 예배당을 빚을 내서 짓고 나니까 복이 넘치고, 그러면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닐 수 있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 선을 행하도록 축복을 주시거든요. 헌금했는데 가난한 집은 어떻게 헌금 하겠어요. 가난한 자를 구제했는데 가난해지면 어떻게 구제하겠어요. 그러니까 계속 구제할 수 있도록 복을 주실 것이어요. 그런 의미로는 타당하겠지마는 그것을 안냈을 때는 복을 안주더니 그것을 내니까 복을 주더라. 너도 내놓고 해봐라. 그것은 거짓말이어요. 인간 부모도 가난한 딸에게 더 주어요. 그런데 우리는 돈놓고 돈먹기로 가르치는데 그것은 성경이 하는 이야기가 아니어요. 거기다 아무리 예수의 이름을 붙어도 그것은 예수가 아니어요. 그건 그렇게 풀지 말라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짓만 거짓이 아니라 교회에서 기독론적인 해석을 하지 않자말자 우리가 합법적인 직무를 갖고도 거짓으로 갈 수 있다 그런 말이어요. 그런 거짓을 여러분이 분별하고 미워해야 됩니다. 그래도 우리가 항상 해석을 백점으로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도 가끔 틀려요. 그래도 근본 틀은 구원역사적인 맥락에서 해주어야 되어요. 질문이 없고 더 알기 쉽지요. 내가 건너뒤어버리니까. 길게 풀수록 어려워질 것이어요. 다음 장부터는 이런 식으로 조금 쉽습니다. 왜냐하면 규례들이 법조문으로 나오면 풀어야 되는데 앞에 6-11장은 순종하라는 말을 여러 이야기를 하니까 그 차이들을 풀어주지 않으면은 그 강조가 안들어가니까 어려웠어요. 그런데 오늘 12, 13장은 풀기 쉽지 안해요. 인제 다음 장도 그렇게 쉬울 것입니다. 주님 가르친 기도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