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구속사

신명기 강해 10:12-11:

찬미예수님 2024. 7. 21. 08:38

제목:신명기 강해

성경:신명기 10:12-11: 

 

10장12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어디서 읽었던 비슷한 말이지요. 신명기 6장을 시작할 때 이스라엘아 들으라. 거기 나온 말과 비슷합니다. 5장에서 십계명을 선언하고 나서, 6장에서는 하나님을 순종하라는 말을 11장까지 반복합니다. 그리고 12장부터는 그들이 지킬 규례들을 주로 말씀하시는 데 오늘 읽은 본문은 그 순종하라고 명령하는 결론 부분입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마음과 뜻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라. 그리고 쭉 그런 규례를 말하고 끝에 와서 내가 너희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 결론 부분이 도달했다 그런 말입니다. 9장부터 10, 11장에서는 범죄한 백성을 위한 언약 갱신을 말씀하셨지요. 이 앞 시간에 공부한 것은 언약 갱신이었습니다. 너희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범죄했다. 시내산에서 범죄할 때 모세가 중보해서 용서받았지 않냐? 그러니까 너희들은 잘났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그 신실하심 때문에 그 땅을 얻은 것이지 너희들이 의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놓고 나서 자, 그러니까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들어라. 그것이 10장12-11장까지 결론이다. 그런 말입니다. 10장12절부터 11장에서는 여호와의 백성으로 택함받은 이스라엘이 지킬 법도와 가나안 땅을 언약의 땅으로 성별하는 식을 가지도록 명하심으로 순종에 대한 말씀을 마친다. 내가 너희들에게 해준 것처럼 너희들도 잘해라.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리심 산과 에발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맹세해라. 그래서 언약체결식을 갖도록 말함으로 끝맺는다 그런 말입니다. 그것이 11장까지의 내용입니다.

 10장12-22절까지는 여호와의 백성된 자가 지킬 명령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라고 그랬다. 여호와를 마음으로 순종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이처럼 하나님을 순종하라고 요구하십니까?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데, 14-15절에서 설명해 주고 있지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지으셨지마는 그 중에 네 조상을 사랑하셔서 그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 택했지 않느냐? 즉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순종하고 나를 사랑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지킬 언약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하면은, 이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지킬 명령은, 12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여기서는 명령입니다. 구체적인 명령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나그네를 사랑해야될 이유는? 19절에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되었음이니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18절을 보니까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고 나그네를 사랑하고, 그러니까 19절에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지요. 20절에 그 이름으로 맹세해라. 여기서는 두 가지 종류로만 말합니다. 나그네를 사랑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해라. 하나님으로 맹세해라. 그러는데, 그러면 왜 다른 것은 여러 명령으로 말하지 않고 여기서는 나그네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가? 이 명령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여호와는 누구시냐 하면은, 이스라엘이 나그네를 사랑해야될 이유는 왜 그러냐 하면은, 그들도 이전에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신대로 너희도 다른 사람에게 행해라. 그런 말이어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건져냈지 않냐? 그러니까 너희들도 나그네에게 잘해라. 그런 말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해야 됩니다. ,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시거든요. 이 명령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여호와는 누구시냐 하면은, 21절에 보니까 그는 네 찬송이시오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했는데 그 하나님은 누구냐 하면은, 17절에 보면 너희 하나님은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오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그런 말씀을 하셔요. 왜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하신 대로 잘 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일 뿐 아니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라고 봐주고 다른 사람이라고 안봐주는 분이 아니지요. 구약에서 외모로 본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특별히 취급해 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신데 이스라엘만 특별 취급 안해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이방 백성과 다르다고 해가지고 의로운 줄로 알고 있어서는 안되어요.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한대로 나그네에게 행해야 되고 하나님 앞에 언약을 지켜고 맹세적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한 가지는 22절에 보면 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별같이 많게 하셨느니라.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셔서 그들에게 큰 일을 행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세요. 그러니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행한대로 나그네를 사랑하고 잘해 주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22절에 70인이었는데 별처럼 많게 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대로 백성들로 행하게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장1-7절은 이제 다시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10장12절부터 끝절까지는 처음에 내 말을 잘 들어라. 나를 사랑해라. 그런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결론적인 말이고 11장은 이 총 순종하라는 말에 결론적인 경고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1절을 보니까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 직임과 법도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다시 순종하라는 말을 하고 시작하고 있는 것이지요. 2절을 보면은 하나님이 어느 누구도 체험하지 못한 큰 일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하셔서 바로와 그 나라를 심판하셨지요. 홍해 물로 그들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광야를 통과해서 여기까지 쭉 인도하셨습니다. 여기서는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애굽을 심판했지 않냐? 그 말을 하고 있지요. 거기까지는 우리가 기분이 좋은데, 6절을 보니까 르우벤 자손과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에게 하신 일, 즉 이스라엘의 한 가운데서 땅으로 입을 열어서 그들과 그 가족과 그 장막과 그를 따르는 모든 생물을 삼키게 하신 일. 그런 일을 너희가 친히 눈으로 잘 보았지 안냐? 무슨 말을 하면서 그 말을 합니까?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들어라. 그 말을 하면서 이 말을 하고 있어요. 조금 전에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했지요. 애굽만 하나님을 대항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인 루우벤도 하나님을 대항하다가 죽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사실을 잘 알겠지요. 이제까지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지마는 그것이 그들의 생을 그대로 보장하지는 안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니까 말을 잘 들어야 되겠는데, 너희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했는지 눈으로 잘 보았고 오는 길에 장자인 루우벤 자손들이 광야에서 죽는 것을 잘 보았지 않냐? 그러니 너희들이 이것을 잘 기억하고 내 말을 잘 들어라. 그 말을 하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1장1-7절은 여호와의 심판들을 말하는 데, 너희들이 그 일을 눈으로 똑똑이 보았지 않느냐? 그 일을 잘 기억하고 명령을 지키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명령을 지킬 때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심판했던 사실을 명심해라. 그 말이어요. 7절까지입니다. 그 다음 8-12절은 그 명령을 지키면은 주실 복을 말씀합니다. 그 복은 다 언약의 복인데, 여호와의 명을 지키면 이스라엘이 받을 복은, 내용들을 쭉 보면 그냥 언약의 복인 줄을 알겠어요.

이스라엘이 얻을 복된 땅은 주로 어떻게 묘사를 하고 있느냐? 8절을 보면 그 땅에서 강성한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장구하리라. 언약의 복을 말하는데, 그 땅은 어떤 땅이냐? 하면은 10절에 애굽 땅과 같지 않다. 한 마디로 그 말이어요. 어떤 의미로 같지 않느냐 하면은 애굽에서는 발로 물을 댔지마는 11절에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적당한 때 비가 내려와요. 어떻게 비가 오냐 하면은 12절에 년초부터 년말까지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어서 보살피셔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얻은 복된 땅은 어떤 땅이냐 하면은 첫째, 부정적으로는 애굽 땅과 같지 않고, 일년 내내 하나님이 보살피시고 때를 따라 비를 주는 땅이다. 그렇게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애굽 땅은 내내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일강이 넘치면은 그 강에서 물을 대서 농사짓는 땅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때가 되면 적당한 때 비를 주시는데 일년 내내 하나님이 보살피는 땅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은 줄 알고 잘 지키라고 이전의 심판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잘 지키면 받을 땅을 언약의 땅과 그 복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언약의 땅이 그럴 뿐 아니라 그 땅에 주실 복은 어떠냐? 13-17절까지에서 말합니다. 처음에는 그 땅에 대해서, 그 다음에는 그 땅에 주실 복에 대해서 말하니까 실은 반복법이지요.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듣고 나를 사랑하면은 그렇게 해서 마음을 다해서 나를 섬기면은 그 땅에 복을 주는데 그 땅은 하나님이 일년 내내 보살피는 땅입니다. 인제 구체적으로 14절에 설명하는데,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 내리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고, 육축을 위해서 들에 풀이 나고, 내가 배불리 먹고 그런 말을 하고 있지요. 여기 보니까 그 산물이 다양하지요. 앞에 문장에서는 하나님이 일년 내내 보살핀다. 농사하는 방법이 애굽 땅과 같지 않다. 그렇게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고, 지금 읽은 문단에서는 구체적인 복을 이야기 하는데 그 땅에 이른비 늦은지, 곡식, 포도주, 기름, 육축을 위한 풀, 또 너도 배부르고 그런 말을 쭉 하고 있어서 다양한 산물이 풍성하지요. 여호아의 명을 지키면 그 땅에 주시는 복을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한 마디로 그 땅에 산물이 풍성하지요. 다른 신을 섬기면 임할 여호와의 진노를 무엇이라고 말씀하느냐 하면, 16절에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에게 절함으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언약의 땅의 복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땅의 복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땅이 비를 내리지 않습니다. 토산을 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으로부터 쫓겨나고 멸망합니다. 그러니까 언약의 복으로부터 배제할 것을 말한다. 구약에서는 직집 지옥 형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하늘이 열렸기 때문에 이제는 천국과 지옥이 대비되지요. 그때는 가나안 땅에 그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가나안 땅과 그 밖이 대비되는 것이어요.

18-25절입니다. 이처럼 잘 지키라는 명령과 복을 이야기하고 나서 그 다음에 지키기 위한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18절에 보니까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해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그러니가 명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말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실은 이 말을 보면은 18절 처음을 보면,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했으니까, 마음과 뜻에 둔다는 말이나 손목에 기호를 삼고 이마 사이에 표를 삼으라는 말이나 실은 같은 말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은 문자적으로 이대로 했지요. 그러나 이 문장에서 손목에 매고 이마에 붙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즉 마음과 뜻에 두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명을 구체적으로 지키는 방법은 손목에 붙이고 이마에 붙이고 대문에 붙이고 기둥에 붙이고 그렇게 하라고 했지요. 그뿐 아니라 일어날 때든지 잘때든지 길을 걸을 때든지 쉬지 않고 그 말씀으로 자녀들에게 가르치라. 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그 자녀들로 그 말씀에서 떠나지 않도록 마음과 뜻에 두라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그 의미는 마음과 뜻에 두라는 말이고, 구체적인 방법은 손목에 이마에 기둥나무에 문에, 그리고 앉았을 때 누었을 때, 걸을 때 잠잘 때, 하옇튼 쉬지 않고 자녀들에게 가르쳐라. 그 말입니다. 명을 지키면 그들에게 주실 복을 강조해서 말하는데,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 날도 장구하고 너희 자녀들도 날이 많은 데 얼만큼 많냐? 하늘이 땅을 덮는 것처럼 날이 길 것이다. 그러니까 언약의 땅의 복을 굉장히 강조해서 말하고 있지요. 이 복도 언약의 땅의 복, 장수의 복입니다. 그리고 뒤에 설명한 것을 보니까 이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사랑하고 부종하면은 모든 나라 백성을 쫓나내실 것이고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것은 너희 땅이 될 것이다. , 첫째는 그들의 생명이 길리라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장대한 백성을 쳐서 복종시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생명과 안식에 대한 복이지요. 언약의 복입니다.

, 26절부터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성별하는 식을 가져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6절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으니까 너희들이 살기 위해서, 복을 받기 위해서는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러나 나를 떠나면은 저주를 받으리라.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축복과 저주에 대해서 맹세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복과 저주를 얻는 길은 여호와를 순종하면 복을 받고 여호와를 거역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것은 순종하면 천국가고 거역하면 지옥간다는 구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식 간의 문제에요. 말을 잘 들으면 아버지가 약속한 복을 주실 것이고 안들으면 매 밖에 맞을 것이 없어요. 그런데 이것은 왕과 백성 간의 언약이어요. 내 말을 잘 들으면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고 안식을 누리리라. 내 말을 안들으면은 그 언약의 땅에서 멸망하리라. 저주는 그 언약의 땅 밖으로 쫓겨나고 죽는 것이 되겠지요. 그 생명을 잃고 항상 불안에 떨고 심하면 언약의 땅 밖으로 쫓겨나고, 그런 것이 저주에요. 그것은 순종의 길에서 얻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언약의 땅으로 성별하는 식을 가지라고 했는데,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고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27장에서는 이런 방식보다도 이제 레위지파가 에발산과 그리심산 그 중심에서 율법을 선포하면은 그리심산에 있는 여섯 지파는 축복의 말씀에 대해서 아멘하고 그리고 에발산에 있는 여섯 지파는 저주의 말씀에 대해서 아멘으로 화답하고 그렇게 해서 맹세의 예로 대답하라. 그런 말이지요. 이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은, 길갈 맞은편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않냐.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처음 할례를 행한 땅이지요. 거기서 가나안 땅의 첫 곡식을 먹었지요. 이처럼 정복하고 나서 바로 그 앞에 보이지 않냐? 물론 지형적으로 세겜 좌우편에 있는 땅입니다마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길갈로 건너가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해라. 그러니까 온 땅을 언약의 말씀이 시행되는 식을 갖고 있는 것이어요. 들어간 즉시 그렇게 하라. 기갈 맞은편에 있지 않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금 읽은 10장12-11장까지는 순종하라는 데 대해서 결론적인 말입니다. 그 결론은 맹세의 식을 갖도록 하므로 축복과 저주에서 맹세하는 식을 갖도록 하므로 끝맺음하고 있지요.

12장부터는 이제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은 그들이 구체적으로 지킬 규례들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의 조상과 그들만 택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며 지금까지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려간 사람이 70명인데 이만큼 번성했다. 그렇게 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킬 법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대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행하며 그리고 여호와를 가까이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라는 말은 이 앞에도 나왔었는데 여기서 특별히 나오는 것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 대해 나와 있지요. ? 그런 비천한 자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도 그들이 입은 사랑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행하라. 그런 말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심판을 기억하고 그 법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셔서 그 땅을 주셨지마는 죄를 결단코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이어요. 여호와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기 때문에 여호와는 그를 거역한 애굽을 심판하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 루우벤의 아들들도 심판하셨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여호와의 명을 지키면 여호와께서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을 주실 것이며 거기서 강성하고 장구할 것입니다. 그 땅은 어떤 땅이냐 하면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한 땅입니다. 어떤 의미로 같지 않느냐? 그 땅은 여호와께서 항상 그 위에 두시고 권고하시는 땅이며 하늘에서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산물을 풍성케하십니다. 그렇게 언약의 복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면은 이 모든 복을 거두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을 마음과 뜻에 두고 모든 행위에 드러내며 그 자손을 이 말씀으로 가르쳐서 그들만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손 대대로 번성하도록 해야됩니다. 이렇게 하면 효과가 있겠지요. 손목에다 매고, 이마에다 붙이고 거기다 요절지 함을 가지고 다니다 빼서 읽어보기도 하고 또 입춘대길 하는 것처럼 대문에다 붙여 놓고, 하옇튼 자나깨나 이 말씀으로 강론해라. 그러면 너와 네 후손이 장수하리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이 말씀은 한마디로 마음과 뜻에 말씀을 두고 그 모든 생활에서 여호와를 드러내라. 그런 말이어요. 잘때도 여호와를 빼놓고 잘 수 없고 거를 때도 여호와를 강론하지 않으면 걷는 법이 없고, 출입할 때도 여호와를 빼놓고 출입하는 방법이 없어요. 그러라는 말이지요. 그것을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이렇게 하면 효과는 있지요. 그러나 효과가 있다고 해서 성경 그대로 하는 것은 아니어요. 우리는 이런 식으로 안하지요. 이것은 어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고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수련회에 갔을 때 일용할 거룩한 양식을 먹을려면은 밥을 먹을려면 거룩한 양식을 한절씩 외워야 되겠지요. 그러면 수련회가 끝나도록 많은 요절을 외우니까 효과가 있을 것이어요. 그렇지만 성경은 그런 식으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을 때도 여호와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여호와를 빼놓고는 행동하는 방법이 없어요. 손이라는 것은 행동을 대표하는 것이면 이마는 인격을 대표하는 것이 이마에요. 이마에 이름을 새긴다. 제사장이 이마에 거룩한 표를 붙인다. 이마에 666의 표를 박는다. 이마하는 것은 사람을 대표하는 곳이어요.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살아라. 맹세하고. 그런 말이지 우리처럼 그런 것을 프로그램화 해가지고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어요. 그러니가 화장실에도 성경 한권씩 있으면 좋지요. 공중 변소에 요절도 붙여 두면 일을 보면서 읽으면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일로 경건하다는 말은 아니어요. 요새 식으로 하자면 항상 믿음으로 살라는 말이어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어떤 것도 해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것을 구약을 빙자해서 프로그램화 해가지고 여기 저기 요절을 붙이면 효과는 있겠지만 그런 것은 어린 아이 방식이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필요하면 단어장 외우듯이 요절지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십시오. 단지 그것이 제일로 경건한 것처럼 성경대로 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 그런 말이어요. 하루에 세 번 성경을 읽으면 제일로 거룩하고 이 삼일에 한번 읽으면 거룩하지 않고 그런 규례를 신약은 갖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갖고 있어요. 그는 먹든지 마시든지 모든 것을 주의 이름으로 할 것이어요. 믿음으로 살 것이어요. 지금 여기서 하는 말은 그 말이어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것을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화 시켜서 하루에 성경 몇 장 읽기, 인제 프로그램을 주어요. 하루에 신약 몇 장, 구약 몇장, 그래갖고 일년에 성경 한번 읽기 목록이 쭉 나오지요. 그러면 좋기는 좋아요. 대충 내가 성경을 읽으려니 하는 것보다 자기를 체크하니까 효과는 있겠지마는, 그것을 모르겠어요. 자기 자신이 하면 좋은데 그 읽은 표를 또 한분씩 받습니다. 그래갖고 또 많이 읽은 사람 상도 주어요. 물론 아무도 감독할 사람이 없지요. 자기가 많이 읽어다고 표시해도 보는 사람이 없어요. 성경 읽었는가 시험칠 일도 없고 상을 주겠지마는 그것을 교회에서 거둬갖고 그것에 맞추어서 상줄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머리가 나쁘시면 다른 사람 한번 읽을 때 열번 읽으셔야 되고, 그렇지 않겠어요. 모르면 많이 읽어야 되지 몇장 읽었으니까 내 할 일을 다했으니까 상타고 해서는 안되지요. 그러니까 효과를 거두는 것을 그것이 곧 믿음인 것처럼 요해하지 말라는 말이어요. 여기서 한마디로 모든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도록 해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복과 주저를 선택해야 합니다. 언약 백성으로 선택하는 것이어요. 구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언약에 매여 살면은 복을 받을 것이고 언약을 배반하면 벌받을 것이어요. 그러니까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요. 계속 언약의 복으로 양육을 받겠는지 안그러면 죽을지 결정하라 그말이지요. 명을 지키면 복을 받을 것이요 거역하여 다른 신을 섬기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길갈 앞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복과 저주를 선포하여 그 땅을 언약의 땅으로 선별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모든 명령을 집행합니다. 그러면 교회에는 이것이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늘에 속한 백성은 교회 뿐입니다. 왜 교회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켜야 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입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명령은 직접 이방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어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는 윤리는 구약 백성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구약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애굽에 행하신 일이어요. 그러니까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되어요.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큰 일을 행하셨어요. 우리에게는 하늘에 권세를 정복시켰어요.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나를 사랑하라고 그래요. 그러니가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모든 일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해 주어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게 요구하는 높은 윤리는 교회에게 요구하시지 다른 데는 요구한 적이 없어요. ? 교회에 행하신 일을 다른 시대에는 행하신 적이 없거든요. 자꾸 내가 약혼과 결혼의 비유를 들지마는 약혼했으면 약혼에 따른 요구를 하는 것이고 결혼했으면 결혼에 따른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결혼했기 때문에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어요. 다른 사람에게 그런 요구를 안해요. 그런데 결혼했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과 같다 그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늘에 속한 백성, --하나님의 사랑을 행해야 됩니다. 교회는 썩지 아니할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것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심을 깊이 기억하고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렵고 떨림으로 지내고 거룩함을 이루고 구원을 이루라고 그렇게 베드로서와 빌립보서에서 말씀하고 있지요. 너희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를 구속한 것은 은이나 금으로 썩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그리스도의 피로 한 것이 아니냐? 그렇게 베드로전서 2장에서 말씀하고 있고, 또 빌립보서에서도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의 심판이 임한다. 그렇게 이야기 해요. 하나님의 윤리적인 요구는 지금 교회에 요구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가 믿는자고 자랑할 것이 없다. 유대인도 자랑할 수 없었든 것처럼 우리도 자랑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식으로 하니까 한번 구원을 받으며 어떠튼 천국은 자지,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이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경도할 때 봐라, 루우벤의 아들들을 보아라. 땅을 땅을 벌려 죽여버렸지 않냐? 그리고 그 이름이 그 이름이 이스라엘 족보로부터 제외되어버렸거든요. 애굽과 똑같이 심판했거든요. 그러나 하나님의 이스라엘, 새로운 육십만은 가나안 땅을 얻었어요. 그러나 그 회원들은 많이 바꾸어졌지요. 지금 교회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교회가 하늘 보좌에 있다는 의미로 영원합니다. 쫓겨나는 법이 없어요. 영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의미로 하면 안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말은 확실하지마는 그때 아버지가 네가 복을 받을려면 내 말을 잘 듣고 내 말대로 해라. 알았느냐? 네가 내 말을 안들으면 쫓아낼 것이라고 했다 치면은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분명히 약속이 불변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아버지 거짓말쟁이 아니요. 내가 숙제 안하면 나를 쫓아내버리면.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하겠지요. 아들이 아들 노릇을 못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 못하면 쓰겠소. 하고는 제 마음대로 가서 돈쓰고 살면은 그래도 인제 아버지라 쫓아내지는 않고 죽이되든 밥이되든 또 어떻게 불러들이겠지요. 자기 자식이라. 그러겠지마는 가령 이것은 언약의 맹세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개인 운명론으로 해석해 가지고 나는 내 맘대로 사는데 하나님을 불변할 것이다. 그러니가 나는 천국은 간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언약적인 맹세가 아니라 그말이어요. 언약적인 맹세는 아버지는 아버지의 일을 하고 아들은 아들의 일을 하는 것이 언약적인 맹세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셨어요. 그러나 범죄한 이스라엘은 죽었어요.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너희들 조심해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일을 행하셨어요. 이 완전한 빛 가운데서 우리가 넘어지면은 우리는 벌받는 것이어요. 개인 운명론을 설명할려는 이야기가 아니어요. 다른 말로 하자면 문맥을 맞추어서 해석하라 그말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할 일을 하는데 아들이 놀아도 좋겠구나 하는 것은 전혀 둘이 언약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말이지요. 그런데 이제까지 우리들은 그것을 구원론으로 해석하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인간의 자유, 하나님이 다 하면 우리는 할 일이 없지 않느냐? ? 하나님이 다한다는 데 왜 우리에게 요구하느냐?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할 수 있느냐? 이렇게 기능론으로 전부 따져버려요. 이것은 기능론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두 당사자가 언약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거역하면은 쫓겨날 것이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지마는 회원들은 바꾸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새 인류라는 교회에 대한 문제에다가 언약을 맞추고 있지 개인의 운명론을 맞추려는 것이 성경의 해석이 아나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이 하늘에 속한 영광의 빛 가운데 살고 있고 우리와 함께하신 분은 모든 권세의 주가 되시기 때문에 그분의 손으로부터 우리를 빼앗을 권세가 없어요. 모세가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어요.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지마는 이런 큰 영광의 빛 가운데서 넘어지면은 다시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영원히 끝이다. 영원히 불못에 들어간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고 있어요. 개인의 운명론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하시면 구원의 확신이 있는데 우리보고 무엇을 하라고 하면은 자신이 없거든요.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한다고 하면 자신이 있지마는 너 하는데 보아서 내가 해주마. 그러면 자신이 없지요. 아이들은 항상 넘어지게 되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알미니안주의가 아니냐? 이렇게 공격하기 쉬워요. 그러나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아까 말해지만 인간을 기능적으로 대비하니까 하나님이 다 하시는가? 인간이 어느 정도 할 수 있는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가 없어요.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반대 극에 서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인간의 자유는 조화할 방법이 없는 것이어요.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말은 그런 기능을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인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이고 너희들이 어떻게 하면은 하나님은 체면 불구하고 너희들을 죽일 것이다. 하는 말이 가능하다 그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지금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니어요.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분이고 천지 창조하신 분이 이제는 새로운 창조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이 큰 권세를 보고도 아이코 나는 자신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어요. 그건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어요. 바울은 그것 때문에 빌립보서 4장에서 말하기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6.25 때 아내를 건드릴 사람도 없다고 그랬지요. 그 여자가 태권도 선수고 총을 잘 쏘아서 그런 것이 아니어요. 남편을 사랑해서 생명을 바치기로 결정했으면은 어느 누구도를 그를 꺽을 수가 없어요. 그런 의미로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이어요. 언약의 맹세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법이 시행되는 나라로 이 문구입니다. 신약의 언어 표현법으로는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 이제 12, 13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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