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강해
신명기 4
거룩하신 아버지 저희 피곤함을 붙드시고 은혜의 영으로 충만히 역사하시어서 이들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하시고 그들을 복주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원히 자비하시며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심을 우리가 함께 알고 감사하고 이 은혜의 일로 주님 영광을 우리가 눈으로 보도록까지 믿음으로 신실히 봉사하는 귀한 백성들로 살게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명기 4장입니다. 1절부터 8절 까지는 여호와의 법도를 지켜 행하라. 하는 언약적인 말씀이 주제입니다. 1절을 보시면은 듣고 준행하라. 그렇게 나와 있지요. 물론 2절 가감하지 말란 말도 준행하란 말입니다. 2절에도 특별히 가감하지 말고 들으란 말이 있고 5절 보면은 규례와 법도를 가르쳤나니 그대로 행하게 하라함임즉 지켜행하라. 이렇게 나와 있지요. 그러니까 여기보면은 최소한도 2단락으로 나눌 수 있겠지요. 1절부터 4절까지, 5절부터 8절까지. 그렇게 나눌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지켜 행하란 말이 여기서 주제되는 말이어요. 법도를 지키라 명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누구라고 이름을 붙인거죠. 어떤 분으로. 설명을 해 보십시오. 멋있게 붙일라고 하시지 말고요. 내용을 쭉 보니까 여기서 말씀하신 여호와는 누구냐면, 기업의 땅을 기업의 땅으로 복 주시는 그런 하나님이시구만요. 그렇지 않으면 1절에 보니까,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렇게 되어 있지요. 조상들의 하나님이신데, 그 조상들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시지요.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말이예요. 법도를 지키면 얻을 축복은 무엇입니까. 1절에 봤을 때 축복은 준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요.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서 땅을 얻으리라. 처음에 선언적인 1절에서는 그렇게 되어있고. 그 다음에 두 번째 단락에, 법도를 지켜 행하라. 5절, 6절 지켜 행하면은 열국앞에 지혜요, 지식이라, 큰 나라라. 공의로운 큰 나라라. 8절에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법도를 지키면 얻을 축복은 무엇입니까. 그 언약 안에 살고 언약의 땅, 가나안 땅을 얻은 것이지요. 또 더 설명하자면은 그리고 의로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것을 둘로 나누면은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첫째는 너희가 산다. 안 죽고 산다. 가나안 땅을 얻은다. 그럼 가나안 땅을 얻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그 나라가 하나님의 의가 집행되는 큰 나라로써 가나안 땅을 얻는다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여러분이 답을 쓰기 달렸습니다만은 그냥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산다 이래도 좋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 그렇게 해도 좋고. 어떻든 언약 백성으로 복을 누리고 사는 것이어요. 말씀하신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하나님이고, 그리고 백성들이 누리는 복은 언약의 복을 누리는 것이어요. 바알브올의 일을 언급하신 이유는. 여기서 보니까 언약을 잘 지키라는 말씀을 하는 서론적인 주제에서, 3절에 바알브올의 일을 너희가 알지만은 바알브올을 좇은 사람은 다 죽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4절에, 오늘 날까지 다 생존했다. 이 말을 하고 있어요.
그럼 왜 여기서 바알브올에 대한 일을 말하고 있는가. 바알브올의 일은 민수기 25장, 31장에 있는데 왜 여기서 바알브올의 일을 말하고 있는가. 예를 들면, 이제까지 불순종한 백성들은 죽고 순종하는 백성들은 살았다.한번 예를 들면 이제까지는 어떤 경우의 예를 들었습니까.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 했을 때 순종했는가 안 했는가. 거기를 주로 예로 들었지요. 가령 순종하는 백성은 살았고 불순종한 백성들은 죽었다. 그렇게 예를 들면은 그 전에는 예를 들때 바알브올을 예로 들지 않고, 가령 가데스바네아에서 들어가라 했을 때 안들어갔다. 그 말을 신명기 앞에서 인용을 했지요. 너희들이 들어가라 하니까 아니요 정탐꾼 보내주십시오. 너희 말로 하지 않았냐. 너희 대표자를 뽑아서 너희 눈으로 보고 왔어도 안 들어갔지 않냐. 해 놓고, 너희 까닥에 나도 못 들어가게 하고. 불순종이면은 바로 그것을 예로 드는데, 왜 신명기 여기서는 제일 대표적인 그 불순종을 예로 들지 않고 민수기에만 조금 나와 있는 미디안 백성들과 음행해서 백성들이 죽었지요. 발람이 저주하려고 그랬는데 저주가 안돼요. 하나님이 막아서. 그래서 음행하고 우상을 섬기면은 하나님이 진노하실 것이어요. 발람이 그래서 이런 꾀를 가르쳐 줘가지고 미디안의 여자들하고 이스라엘의 백성이 범죄해가지고 그 날에 몇 만명이 죽었지요. 염병에 걸리고. 왜 그 말은 여기서 불순종의 대표로 인정에서 인용하는가. 신명기 앞에서는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범죄를 인용했었는데, 왜 여기서 언약 체결의 중요한 장면에서는 그 큰 배교를 말하지 않고 민수기에만 약간 나와있는 브올의 바알, 브올 지방의 바알 그러니까 바알 신을 섬기고 죽은 사람들을 예로 들고 순종했던 사람들은 살았다는 말을 여기서 예로 드는가. 왜 그런 것 같아요.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무슨 말할 때도 거기에 맞는 예를 들지 않아요. 가령, 누구하고 싸우는데. 그전에 무슨 싸운 건이 있으면은 거기에 맞는 건을 들지요. 그런데 다른 싸움이 있으면은 큰일은 놔두고 다른 일을 예로 들어오지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왜 하필이면 브올 지방에 있는 바알을 섬겼던 일을 갖고 예를 들어서, 순종하란 말을 듣고 있는 것인가. 그럴려면 우리가 풀 때 미디안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신을 섬기고 죽었던 그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을 알아야 여기서 인용한 의미를 알겠지요. 그때 미디안 전쟁은 실은 종교적인 전쟁이라 그랬지요. 대장이 누구였어요. 비느핫세였지요. 왜 염병이 그쳤어요. 비느핫세가 창으로 찔러 죽여서 염병이 그쳤지요. 이 전쟁은 실은 광야에서의 전쟁이면서도 실은 새로 계수된 백성들이 이 전쟁에 졌었거든요. 실은 새로 계수된 백성들이. 그러니까 이 새로 계수된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을 백성들인데, 이런 일에 이렇게 실패가 되어요. 그러니까 실은 이것은 가나안 땅 종교 전쟁과 관계가 있다고 그랬지요. 가데스바네아에서 전진해라하는 것은 믿음의 싸움과 관계가 있어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원수는 하나님이 떠난 줄 알고 싸움하면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 보냈던 일을 예로 들것인데. 여기서는 가안땅에 들어가서도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들어라. 안 들으면 죽으리라 했을 때, 이런 전쟁을 먼저 해 본 적이 있어요. 가나안 땅 들어가기전에 바알과 싸웠던 일인데, 미디안 전쟁에서 그들이 바알과 연합해서 범죄하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해 버렸어요. 그것을 여기서 예증을 들고 있는 이유가 지금 가나안 땅의 언약적인 삶을 두고 언약을 체결하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에 종교적으로 그들이 범죄했던 그 당시 심판과 구원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아시겠지요. 그냥 순종하면 살았고, 불순종하면 죽었다. 아무데서나 예를 끌어온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법도를 지키면은 그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처음에 복을 살것이요, 그 땅을 얻으리라. 1절의 복은 총론적인, 또 복을 개괄적으로 설명한 것인데, 그 다음 6절에서는 그 복을, 5절에 순종하라 해 놓고는 6절에서는 그 복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고 있어요. 그 구체적인 복은, 이처럼 큰 나라가 세상에 어디있는가. 이방 사람들이 놀랠 것이어요. 이방 앞에서 큰 나라인데, 이 큰 나라는 어떤 의미로 큰 나라입니까. 지혜와 지식이 있는 큰 나라지요. 어떤 것이 그들의 지혜고 지식입니까. 8절을 보면은, 규례와 법도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의 법이 시행되는 나라예요. 하나님 나라지요. 가령 우리들이 인권제도가 나쁘면은 미국이 자기들 인권을 전부 수출하려고 그러지요. 인권제도를 막 공격하고. 그렇게 해서 그런 인권제도들을 받아들이면은 우리도 미국과 같은 인권 나라에서, 미국과 같은 그런 나라의 특성을 드러내겠지요. 그 제도를 수입하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저런 제도를 주신 것은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여기 통과하면 천당 통과 안 하면은 지옥 그걸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법을 지키므로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그 나라에 집행되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복이 집행되고. 그런 나라를 이룰려는 것이 지키라는 언약의 말씀이어요. 그러니까 어느 나라에 속국이 되면은 속국이 된 나라는 그들을 지배하는 나라의 제도를 수입해 오지요. 그렇게 해서 그들을 지배하는 나라의 특성을 드러내지요. 만일에 중국과 우리나라가 있는데, 중국이 우리나라한테 너희는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하고 명령을 내리면은 그 명령은 중국 천자가 소히 우리나라를 친히 지배하는 식이 되겠지요. 동방에 있는 중국과 같은 나라가 될거란 말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중국의 속국이 되었던 것은 다 반발 없이 받아 들이니까. 그리고 사극에 나왔다면 전부 그런건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일본이 나오면 안하지요. 꼭 일본하고 싸운 이야기해서 그래도 속국은 속국이여도 골목에서는 돌로 던져서라도 맞췄으면 맞췄지. 그냥은 복종을 안하니까 별 신감이 안가요 잘. 더구나 미국은 우리나라 구원자처럼 막 이해가 되니까 반미 운동하면 요샌 묘한 학생들처럼 이해가 잘 안가고. 단지 중국은 옛날 이야기라 그런지 우리를 지배했다 그래도 아무런 반발 감정이 없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기가 좋다 그 말이지요. 지금 하나님이 이 명령을 지켜라 했을 때는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이제는 애굽이 대통령이 아니라 내가 너희 왕이다. 이 명령을 지켜라. 이 명령을 들으면 내 백성으로 살것이고, 그리고 가나안 땅을 너희 영지로 주어서 거기서 번성하도록 살게 하겠다. 그런 조약 형식이라 그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은 곧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와 같은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그 나라는 국가 영토가 크다는 말이 아니라, 세상에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그렇게 큰 나라가 없다. 그 말을 하고 있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어쩝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법, 그리스도의 새 생명의 법, 새 계명을 따라 살면은 우리를 보는 이방인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소위 악한 권세들이 보고 우리를 보고 누구를 봅니까. 그리스도의 영광과 찬양을 본다. 에베소서에서 하는 이야기지요. 왜 우리에게서 그 ?이 나타나니까. 만일에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은 거기서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움을 보지 못해요. 그럼 우리처럼 지혜있는 사람이 없지요. 우리처럼 높은 사람이 없고. 공부를 잘 한단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니까. 세상하고 전혀 다른 것을 드러낸다. 그런 것과 같다. 그런 말입니다. 9절부터 14절입니다. 여기서는 여호와 경외함을 대대로 알게 하라는 내용이 주제입니다. 첫째는 내 법을 잘 지켜라. 그 다음 이것은 대대로 지켜라. 지금 언약 체결을 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여기 9절을 보니까, 스스로 삼가며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 눈으로 본 것은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사는 날 동안에 네 마음에서 그런 일들이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자손들에게 알게하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그들의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마음이 지켜집니까. 9절에 답있는 걸로 하세요. 거듭 반복되는 답이 있잖아요. 네 눈으로 보는 것을 잊어버리면은 마음이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그 일들이 내 마음에서 떠나면은 마음이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그 일들을 내 아들들과 자손들에게 알게 안 하면은 그 아들들이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눈으로 본 그 일이어요. 9절 대로만 답을 하자면은. 그럼 눈으로 본 그일이 무엇인지. 이제 더 설명이 되겠지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마음이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눈으로 본 일이 있는데, 대개 우리나라 교인들은 자기 체험으로 거의 해석을 해요. 그 전에도 하나님이 꿈에 보여 주셨으니까 이 번에도 보여 주시겠지. 그리고 막 기도하면 보여 주실것이어요. 그대신 자기 정욕대로 볼 것이어요. 자기 마음대로 보는 거니까요. 우리를 또 우리 마음을 항상 깨어있도록하는 토대가 있지요. 우리는 못 봤지만, 사도들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바가 있지요. 그것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것이니까. 그일을 잊지 말라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눈을 뜨는 것은 항상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의 빛 가운데서 모든 것을 해석해야 된다. 아직 그 부활의 영광이 안 나타났어도 부활의 주님이 오실 것이니까. 그 부활의 빛 가운데서 모든 것을 해석하면은 이것은 지혜다. 야곱보서 1장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왜 이 세상 행적은 지나가지만은 하나님 말씀은 세세도록 있거든요. 그러니까 보이는 질서를 따라 살지 않고 부활의 빛 가운데 따라 살면은 하늘의 속한 지혜로 살고, 아무리 도덕적으로 옳아도 보이는 질서를 따라 그 모든 것을 움직이면은 어둠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어요. 왜 보이는 모든 것은 흥망성쇄로 결정되어있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도 대대로 이제 이 언약을 지켜라. 언약 말씀이지요. 이것을 지켜라. 복 주마. 지키면 복준다는 말씀의 언약이지요. 복을 주마. 너희들이 이것을 지키면은 내 나라로써 이방인 앞에서 탁월한 나라로 될 것이다. 신명기에서는 이런 말로 하지 않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그 신분에 대한 언어로 출애굽기는 이야기 하는데, 신명기에서는 신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누리는 복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요. 지혜와 지식있는 나라, 하나님의 의가 시행되는 나라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언약 체결 방식도 출애굽기와 신명기는 표현법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경외함을 대대로 알게 하려는데 대대로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마음을 잘 지켜야 되겠는데 그것은 그들이 보았던 일을 잊지 않는 것이어요. 그리고 그들이 보았던 일을 대대로 가르치면은 대대로 잊지 않을 것이어요. 그러니까 본 일이 무엇인지, 호렙산에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모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0절을 보면은,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고 하려하시매. 그렇게 했다. 백성을 모으신 이유는 뭣하려고 모았냐면은 하나님을 경외케 하려고 모았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사는 날동안에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할려고 모았다. 너희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배우게 할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으로 불러 모으신 것이죠. 하나님 나라로 불러 모은 겁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여기서는 직접 답을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은, 여기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앞절에서는 1절부터 8절까지는 어떻게하면 여호와를 경외합니까. 그 말씀을 잘 지키면은 경외하는 것이었죠. 여기서도 13절을 보니까, 언약을 반포하시고 지키라 명하셨는데. 즉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어요. 어떻게 하면 법도를 지키겠는가. 그들이 이제까지 보았던 일을 잘 잊지 않아야되요. 이 보았던 일은 나중에 보면은,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시내산의 불꽃 가운데 강림하셔서 말씀하셨던 장면이어요. 그것을 잊지 말아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겁니다.
호렙산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면은,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다. 그 때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로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하게 하려하심이라. 언약의 모법은 십계명이고 그 시행령이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신 규례와 법도들이지요. 여기서 규례는 무엇이고 법도는 무엇인가. 단어 풀이해서 이원화 시킬 필요 없습니다. 같은 가치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도하는 것은 선포된 법의 명령 이런 것이면은 규례하는 것은 이런 저런 의식법들에 대한 강조가 주어져 있는데 그런 것은 차이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무엇인가는 몰라도 명령한 것을 지키면 되겠지요. 거기에 전부 포괄되는 말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법, 여기서는 곧 십계명과 그것의 시행령들을 지키면 그것이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곧 이 언약의 법입니다. 십계명은 모법이고 나머지는 시행령이어요. 가령 십계명이면, 국가 조약식으로 하면은 조약도 어떤 조약이 성립되면은 그 다음에 그 조약을 시행할 수 있도록 실무자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작업을 하지요. 그러니까 대사들이 교환하는 문서는 근본적인 성격만 규정해서 교환하면은 그 다음 실무자들이 모여서 그것을 시행하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합의 않하면은 시행 안되버려요. 그런것과 같다. 그 말입니다. 어떻든 신명기는 국가 조약 그 형식을 갖고 하나님의 언약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어요. 말씀하신 여호와는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까. 11절을 보면은, 너희가 나와서 산 아래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충천하고 유황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무슨 말인가는 몰라도 여하튼 불이 탔고 캄캄한 구름이 가렸다. 이것은 알겠지요. 그런 말들을 반복적으로 쓰는 것 뿐이어요. 여호와께서 화염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 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 하였느니라. 말씀하신 여호와는 불 가운데서 말씀하셨는데 아무도 보지 못했고 음성으로만 들었다. 하나님은 볼 수 있다, 볼 수 없다. 어떤 것이 맞아요.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은 전부 피조물의 성격이라는데 천사도 안 보이는데. 그리고 볼 수 있는 것은 다 과학 기계로 전부 검증이 가능해서, 마음도 안 보이고. 마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볼 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니까 안 보이고, 피조물은 보이고, 그런 이분법을 쓸 수가 없다. 그럼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신다 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디모데에서 하는 말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다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모세 문맥인데. 그것은 죄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 근본 문맥이어요. 빽빽한 구름가운데. 소멸하는 불 가운데. 가까이 오지 말아라. 출애굽기는 그렇게 오지 말아라. 오면 죽은다. 산에다 금 쳤지요. 들어 오지 말라고. 모세 언어 개념이 그렇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생명의 말씀을 보았고, 만져 보았다.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입니다. 도마는 그렇게 이야기했지요. 그러면 하나님을 보았지요. 자, 천사들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는 못 본다는 것이 과학적인 방식이지요. 구약 언어를 보면 천사들 보았습니까. 못 보았습니까. 많이 봤지요. 같이 밥도 먹고.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런데 또 예수님은 영은 먹을 수 없으되 나는 살이 있느니라. 만져 보아라. 또 그랬지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우리들이 자연 과학적인 그런 방식으로 정의해서는 읽을 수가 없는 겁니다. 구약 개념은 어떤 의미로는 요새 식으로 하면 신확적인 세계여서, 하나님이 아브라함 집에 찾아 같이 잡수시기도 하고 눈에 보였다가 없어 지기도 하고 그래서 세상 우리는 모르는 이야기어요. 구약만 그러냐. 신약에서도 말하자면 베드로에게 천사가 찾아와서 예수 부활하니까. 베드로는 천사인줄 알고 그렇게 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구약적인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하고는 상당히 달라요. 그러면 그것은 옛날 이야기라 우리나라 단군 이야기 있는 것처럼 신화적이고 과학적으로는 헛된 세계인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헛된가 안된가. 그런 문제가 아니고, 신약 때는 왜 천사 출현이 없는가 하면은 이제는 천사를 통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해서 일 하시는 시대어요. 구약 때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면 천사가 있고. 사람은 그 휘장 밖에 있었어요. 모든 전달은 천사를 통해서 전달되고,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도 전부 천사적인 영광이어서 시내산 떨기 가운데 나타난 그 천사, 시내산에서 우리 조상 모세에게 말씀하신 그 천사, 율법은 천사로 말미암아 모세에게 준 것이다. 전부 사도행전 7장에 그런 언어를 써요. 그런데 이제 복음이 완결된 시대 가운데서는 그런 의미로 천사 활동은 나타나지 않지요. 그러면 왜 하나님은 가끔 안 나타난가. 구약 때는 휘장으로 가리고 계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 중에 함께 계신 방식을 여러 모양으로 나타내셨어요. 그런 의미로 종말론적인 상황입니다. 그런 말은.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데 우리는 지금도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모세 언어를 토대로 해석하라. 그 말입니다. 지금은 하나님 사이와 우리 사이에 가리운 것이 없지요. 하나님과 우리가 한 방에, 한 성소에 살고 있지요. 항상 주의 얼굴을 뵙지요. 가리운 법이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우리 개인 체험에서 뭣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데 구약 때는 하나님은 휘장으로 본래 가리우고 계신 분인데 사람에게 가까이 오신 상황이 가끔 나타나요. 그런 상황은 구약에서는 특이한 현상이어요. 구약에서는. 소위 종말론적인 현상이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가나안 백성은 다 죽여라. 그럼 도덕적으로 안 맞지요. 십계명에 살인 하지 마라. 했는데. 그런데 가나안 백성을 다 안 죽이면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겠지요. 완전히 묘한 이야기지요. 그럼 십계명을 가지고는 해석이 안 되지요. 시내산 십계명은 살인 하지 말아라. 그랬는데. 가나안 백성의 애기들도 남기지 말고 다 죽이라고 그러거든. 세상에 그런 혹독한 전쟁이 어디에 있답니까. 있을 수가 없지요. 그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요. 모세 십계명을 가지고는. 왜 그런가. 가나안 전쟁은 종말론적인 상황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 재림하시면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은 아이고 뭐이고 상관없이 대항하는 모든 자들은 불못에 들어가겠지요. 말하자면 구약 때는 가나안 정복에서 종말론적인 상황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그런 명령이 가능한 것이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런 것은 불가능 해버려요. 그런 것은. 또 어느 때는 자매의 하체를 범하지 이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해놓고는 나중에는 형제가 안이를 못 낳고 죽었는가 그 아내를 데리고 살아서 기업을 물려주고. 뭐 몽고 유목민에게나 있을 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그것도 가까운 친족을 건드리지 말란 말하고는 안 맞아버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 도덕법으로 풀면 안되고, 심지어 거짓말도 가나안 아이 전쟁할 때 완전히 작전을 썼지요. 매복했다가 쳤거든요. 그럼 거짓말하고 지들은 나한테 거짓말 했는데 다윗 족보에 들어있고, 사무엘한테는 하나님이 거짓말까지 시켰다고요. 너 사울이 겁나냐. 내가 제사 지내러 간다 가서 다윗한테 기름 부어버려라. 완전히 이것은 거짓말쟁이 만들어 버리는 것이잖아요. 거짓말 하지 말라고 그래놓고. 그것도 방금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관계가 들어서니까 그것은 이전에 있었던 일반 법에 적용이 안되는 것이어요. 왜냐면은 다윗에게 기름 부었을 때 이미 사울은 하나님 나라 왕의 자격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런 것은. 그래도 사울한테 정정당당히 말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인데. 뭣이 겁나가지고, 가령 이북하고 전쟁할 때도 주여 하면 대포가 싹 피해 갈 것인데. 싹 숨어가지고 그럴 것 있냐고. 그렇게 말하는 어리석은 것과 같은 이야기어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법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상황이 그러니까 전혀 달라 버려요.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아내한테 의무를 다 해야하는데 종말론적인 상황이 들어오면은 아내있는 자는 아내 없는 자처럼 살고 그렇게 되어 있지요. 전혀 이원화되지 않지요. 충분히 의무를 다 하는데도 메이지 말고. 그러면 우리는 어째야 메인줄 아냐. 그런 마누라 죽은 뒤로도 평생 혼자 살고, 마누라 죽을 때 당신 나 죽으면 화장실에서 웃을 거요, 안 웃을 거요. 안 웃을 거라고. 맹세할 거냐고. 맹세할 거라고. 그러면 아 죽어도 나눌수 없는 사랑. 하고 좋아하겠지요. 아 우리는 그 정도 생각해요. 그런데 성경은 아내가 눈 뻔히 뜨고 있는데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처럼 살 것이요. 바울이 그랬단 말입니다. 그래놓고 내가 너희를 헷갈리게 하려고 그런 것 아니다. 이렇게 살아야 맞다. 때가 가까이 오므로. 그러면 이것은 도저히 이해 안 될 이야기지요. 완전히 이중 마음 품고 살아. 아내있는 것을 거추장스럽게 그렇게 해서는 안되어요. 충분히 사랑하면서도. 그러니까 성경의 역사는 역사인데도 그 구원은 종말 상황을 그 당시 방식으로 끌어 오기 때문에 종말론적인 해석이 안되면은 완전한 해석이 안되는 것이어요. 말씀하신 모양은 하나님은 불 가운데서 음성으로 말씀했다. 이 불은 항상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로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은 보이는 우상과는 다르다. 이렇게 대비시키고 있지요. 여기서는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정의해서 아 하나님은 불속에 계신 분, 그리고 얼굴을 못 보신분. 그렇게만 정의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그렇다 그 말이예요. 우리에게는 이렇게 안 나타나시지요. 우리는 예수의 얼굴에 비치는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을 본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존재론적인 정의가 아니라, 우리 중에 오신 하나님을 보았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예수의 힘 이 없지요. 예수의 힘이 없다. 15절부터 24절은 여호와를 대항하여 우상 섬기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법을 지킬 것인가. 하는 이야기어요. 첫째는 내 말을 잘 들어라. 지켜서 복을 받아라. 그래야 너희들이 열국 앞에 큰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 탁월한 나라가 될 것이다. 신분적인 이야기 보다는 그 지혜로움에다 강조를 둔 것이 출애굽기와 차이점입니다. 그 다음에 그럼 어떻게 하면은 이 법을 잘 지킬 것인가 했을 때, 나다 나. 내가 너희들에게 행했던 일들을 잘 기억해라. 그 행했던 일에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셔요. 나다. 그리고 나서는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말씀하셔요. 너희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봤지 않냐. 내가 불꽃 가운데서 음성으로 말씀했는데, 너희들이 어디다 다른 신을 만들어 가지고 비교하려고 그러냐. 이런 언약에서 자기를 나타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그런 말이지,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을 그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하나님이 불 가운데 계시겠어요. 그러나 구약때는 불가운데 계신 분으로 말씀하죠. 소멸하는 불이. 사람이 죄가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고 그 얼굴을 대면하고, 아버지는 내안의 나라 아버지와 함께 산다. 항상 같이 있지 떨어져 있지 않다. 그것이 신약에서 정의 하는 방식이어요. 그러니까 존재론적인 그림을 그릴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입니다. 여호와를 대항해서 우상 섬기지 말라고 그 다음에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들한테 이제까지 죽 이러이러한 일을 했지 않냐. 그러면은 너희들이 보았던 일을 잘 깊이 명심하고, 내 말을 잘 들어야 되겠는데. 어떤 말이냐. 그것이 15절부터 24절에 있는 말이어요. 그러니까 지킬 말은, 십계명이란 말은 있어도 이 본문에서는 구체적인 예들은 15절부터 24절에 있는 것이 여기서만 명령하신 겁니다. 여기서 명령하신 것은 뭐냐면, 다른 모든 문제보다도 한마디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강력히 말을 해요. 그리고 십계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5장에서 이런 말을 해요. 그러니까 국가 조약에 비교하면은 높은 도덕을 지키라 그 말이 아니라, 어떤 중국이 우리나라를 정복했으면은 자 너희들은 내 말을 잘 들어라. 가감없이 들어라. 그러면 비록 너희들은 동방 오랑캐여도 탁월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내 창고에서 좋은 것은 다 줄것이니까 잘해라. 그리고 너희 나라 경계는 압록강까지다. 여기 살아라. 그렇게 정했다 치십시다. 그 다음에 말 하겠지요. 너희들 내가 누구냐. 내가 너희 나라를 위해서 얼만큼 좋은 일을 많이 해 줬냐. 거란족이 쳐들어 올 때 막아주었고, 왜구가 쳐들어 올 때 함대 보내고 다 해 줬지 않냐. 너희들이 내 부하가 안 되면 너희들은 세상에 죽을 것인데, 내가 너희들을 보호해 주고 잘 되게 해주마. 너희들은 다른 나라 오랑캐하고는 다르다. 내 친위부대로 살아라. 이렇게 했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한 일을 죽 말하고 나서, 곧 너희들이 보았던 것을 잘 듣고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리고 이제 드디어 명령하는데 첫째 명령은 무엇입니까. 나만 섬기고 다른 임금은 섬기지 말 것. 나만 섬기고 다른 나라하고 조약 맺지 말것. 이렇게 말하면 되겠지요. 그러니까 이런 것을 높은 도덕률로만 이해하면은 설명이 잘 안되는데, 조약 관계로 이해하면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대리자로 지어진 사람의 윤리어요. 사람이 물건보고 절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형식은 국가 조약적인 관계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 백성으로 살게하는 것이어서 국가적인 조약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겠지요. 형식은 그래도 조약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이라. 그러니까 그들이 지켜야 될 것이 무엇이냐. 나를 대항해서 우상을 섬기지 말아라. 그 말을 하는 것이 15절부터 24절에 있는 내용이어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우리는 하나님을 여러 도덕률로 이해하는데 국가 조약은 뭣이 겠어요. 임금을 대항하는 것이 큰 죄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만 섬기고 절대로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요새는 우상을 안 섬기잖아요. 사람들이 대충. 그럼 괜찮은 것인가. 그런 말이 아니라, 그 당시 여호와를 대항하는 이방신이 전부 우상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은 우상은 이렇게 물건 만들어서 섬기는 것이다 하더라 하니까 물건 안 섬기고 어떻게 합니까. 마음 우상을 섬긴다. 여기서는 그 당시 이방인이 신을 섬기는 방식을 두고 하는 이야기어요. 오직 나만 섬기고 애굽사람이 자기 신을 섬기거나 가나안 사람이 자기 신을 섬기거나 그런 방식으로 나를 대신해 섬기지 말아라. 나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핵심이다. 왜. 하나님은 왕이시고 이스라엘은 그 왕의 구원을 받은 백성이거든요. 이제는 애굽이나 가나안 백성으로 살아서는 안될것이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이방신을 섬기는 방식으로 나를 섬기지 말아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호와를 여호와 대신 경배하지 말라고 깊이 경배한 것은 형상 숭배지요. 여기서 문자만 봐서는 우리들이 난처한 것이 15절을 보십시요. 호렙산에서 말씀하시던 날에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지 않냐. 그런데 왜 너희들이 다른 형상으로 나를 만들려고 하느냐. 두렵건대 아무 형상이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 여자 형상 만들던지 땅위에 있는 아무 짐승, 하늘에 있는 새, 땅위에 기는 곤충,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아무 형상을 만들까 하노라. 두렵건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성신, 하늘의 군중 곧 천하 만민을 위해서 분정하신 그런 하늘에 있는 일월성신 이지요. 그런 것을 보고 미혹할까 하노라. 이것은 전부 이런 것만 우상숭배라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이방 사람들이 자기 신을 섬기는 방식을 두고 하는 말이어요. 그런데 요새보니까 동아일보 보니까 현철씨도 사주 보더만. 저만 사주보는 것이 아니라, 저한테 들어오는 정보가 맞겠는가 안 맞겠는가도 사주 보드만. 그러고도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양심것 대답한다고 그래요. 이방인보다 못해요. 장세덕이는 지금도 유명한 인물이어요. 막 붙어버렸거든요. 똑똑하다고. 큰일이어요. 그 두려운지 뭣인지를 몰라요.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여기서 있는 것들은 이런 것만 우상숭배고 다른 것은 아니라고, 그런데 천주교 가면은 마리아 석고상에 놓고 하지요. 말하자면 이방인들은 전부 사람이 모든 만물의 지배자인데도 보이는 형상숭배를 그렇게 했어요.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믿음으로 시행 못 하면은 그 종이 되는 것은 상식이어요. 그래서 전부 형상숭배인데 그런 것 뿐만 아니라, 하늘의 일월성신을 두고도 경배한다. 너희들이 나를 누구로 아느냐. 나다. 나는 너희들을 대면해서 말했고 음성으로 말했고 나를 형상으로 보지 못했는데 무엇과 비교해서 나를 두고 그렇게 하려고 그러느냐. 하지 말아라. 그것이 첫째 말한 중요한 사실이어요. 왜냐면은 이것은 국가 조약적인 형식인데 나 임금 외에 다른 임금을 섬기지 마라한 것과 같은 이야기어요.
여호와께서 택하신 이스라엘과 모세에게 진노하사 가나안 땅에 기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이 됩니까. 20절에 보면은 여호와께서 너희들을 택하시고 쇠풀무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으로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이렇게 은혜를 베풀었는데도 여호와께서 너희까닭에 내게 진노하사 요단를 건너지 못하게 하며 내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아름다운 땅에 들어 가지 못하게 하리라. 그렇게 맹세하셨은즉 나는 이 땅에서 죽고 요단을 건너지 못해도 너희는 그 땅을 얻으리니 삼가서 언약을 잊어버리지 말아라. 우상 섬기지 말아라. 중국 임금외에 다른 임금 섬길 궁리하지 말라 그 말이어요. 그런 말과 같은 것이어요. 나만 섬겨라하는 이야기어요. 그러면 여기서도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못 들어간다고 그랬거든요, 여기서는 어떤 사건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 앞에 사건은 무슨 사건이었냐면, 1장 37절이나, 또 3장 23절에는, 1장 37절을 보면은 여호와께서 너희까닭에 내게 진노하사 너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렇게 했다. 여기서는 무슨 사건을 염두해 두고 있습니까. 갈렙 이야기하는 것 보니까, 정탐꾼 이야기를 두고 하고 있지요. 여기서는 분명히. 3장 23절도 같은 문맥이어요. 그것도. 그런데 여기서는 어떤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아요.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못 들어가게 했다. 맹세하고 못 들어가게 했다. 어떤 뜻으로 한 것 같아요. 여기서는. 우리는 그냥 단번에 정탐꾼 보내고 배교한 이야기만 떠오를려고 그러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문맥이 어떤 문맥같습니까. 언약체결의 장면이지요. 여기서는. 믿음으로 싸워라한데 문제가 아니라, 언약 체결 문맥이지요. 언약체결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럼 언약체결하는 장면에서 이스라엘의 배교는 언제 있었던 것 같아요. 형상숭배했을 때가. 금송아지 섬겼던 때죠. 그럼 그 때 모세도 못 들어간다 안 했고 실은 출애굽기를 보면은, 네 백성은 싹 죽어도 모세가 기도하니까 너를 두고 새로운 백성을 만들거나 할만큼 모세를 사랑하셨거든요. 모세야 다시 한 번 올라와봐라. 그리고 모세 기도를 들으셨거든요. 그리고 더 큰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리고 너도 못 들어가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단지 나는 오래 참기는 참지만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겠다. 그 말은 했었어요. 자 참기는 참겠다. 나는 여호와다. 그렇지만은 결단코 죄있는 자는 없다고 말하지 안겠다. 그리고 본때로 죽은 사람이 레위지파가 삼 천명 쯤 죽였지요. 그랬는데 여기서는 모세는 내가 봤을 때는, 시내산 장면을 염두해 두고 하는 이야기어요. 이것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 보낸 문맥이 아니어요. 내용 전체가 믿음으로 전쟁하란 이야기가 아니라,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겠는가. 시내산 말씀에 다른 신을 섬기겠는가. 그러면 못 들어간다. 죽은다. 들어가도 죽고. 그런 이야기거든요. 그럼 여기서는 시내산 장면이어요. 그럼 출애굽기는 모세 못 들어간단 말이 분명히 없어요. 신명기 문맥이라고 그랬지요. 신명기에서만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중보적 교체시기지요. 그 다음 나는 못 들어가도 너희들은 들어간다. 여기서는 여호수아 이야기는 직접 안하고 있지만은 나는 못 들어간다. 너희 때문에 그런데 너희들은 들어간다 했을 때 새 백성이 된 이야기입니다. 지금. 모압평지에서는. 신명기에서만 언약 후계자에 대한 상속식이 있어요.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 뒷 부분가면 더 많이 나오지요. 29장 이하는 언약의 계속성이 핵심인데, 계속성의 핵심은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를 준다는 것이 반복적이어요. 그러나 민수기 같은데서도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를 주고하는 것은 강조점이 아니어요. 신명기가 강조점이어요. 왜냐면은 국가끼리도 그 조약이 영원하려면은 가령, 지배한 나라도 이 왕 죽으면은 이 세자를 섬기려면은 세자 즉위식때 우리나라가 예물가지고 가겠지요. 가서 또 맹세를 하겠지요. 자 섬길련다고. 가령, 이번에 중국이 등소평이 죽고 나니까 누구한테 아주 충성 서약을 선두 주자로 하고 있지요. 그래서 마지막 누가 충성서약 안한가 한가 봐서 이 국가가 안정되겠는지 안되겠는지 해서 마지막 충성 서약자가 있으면 아 이 국가는 안정되는구나.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니까 모세대신에 여호수아 끌고 갈 것이어요. 만일에 모세 대신에 여호수아가 없으면은 하나님은 자기 왕자가 잃어진 것이어서 언약이 영원히 유효치 않아 버려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나는 너희 때문에 못 들어가는데 너희들은 들어갈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도했는데 이렇게 했는데 못들어간다. 너희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단번에 신명기 앞에 문맥에서는 여기서는 정탐꾼에다 신명기는 문제를 두었죠. 그리고 다른데서는 민수기에서는 모세는 자기 죄 때문에 못 들어갔지, 정탐꾼 사건 때문에 관계되서 못들어간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신명기는 가나안 땅 정복이 핵심이거든요. 정복 언약에서 언약의 첫 주자는 모세어요. 그러니까 너희 때문에 나도 못 들어가고 그리하여 여호수아가 대리고 들어갈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신명기다. 신명기는 언약 체결, 가나안 땅의 언약 체결이니까. 그러나 민수기는 하나님 앞에 순종했냐 불순종 했냐. 믿음으로 싸웠냐 싸우지 못했냐. 모세도 믿음으로 순종치 못했다. 너도 못 들어간다. 자기 죄 때문에 못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 신명기 이 문맥에서는 이제는 가나안 땅의 정복 문맥, 그런 문맥이 아니어요. 가나안 땅 정복 문맥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순종 안하면은 죽었다.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을 섬기는 자는 죽으리라.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죽으리라. 보아라. 하나님이 이제까지 너희를 복 주셨어도 너희 때문에 나도 못 들어간다. 무엇 때문에. 실은 시내산에서 우상 섬겨서 돌판이 깨뜨려져버렸지요. 새로운 돌판을 써 주셨지요. 그리고 범죄자는 반드시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이제까지 참으시고 새 백성을 끌어들이셨지만은 옛 백성의 한명도 없지요. 그런데 그것과 자기를 실은 연결시키고 있다. 문맥을 어떻게 읽어야 될지 알겠지요. 그러면 이것은 전혀 없는 말 아니냐. 여기서 그 말을 새롭게 끌어들어 줬다. 모세가 죽으리라. 그 말 안 끌어줬다. 왜 이는 옛 언약의 대표자니까. 옛 백성의 대표자니까. 여기서 그대로 끌어도 상관없다 그 말이어요. 그 전 민수기나 이 앞을 참고 안 해도 좋다. 그 말입니다. 이 문맥 자체는 타당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출애굽기에서는 언약의 두 돌판은 깨뜨려졌어도 하나님이 모세를 자기 대리자로 세우셨기 때문에 그 때는 모세가 자기 백성의 대표자로 깎아서 올라갔지요. 처음에 두 돌판은 하나님이 깎아서 친필 사인했고 두 번째는 모세가 깨뜨린 돌판 대신에 깎아 드린 것을 하나님이 써 주셨고. 그렇게 했지요. 처음에는 언약 체결의 주도자가 하나님으로 되어 있어요. 직접 승리한 후에 명령한 것으로.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배반하는 백성 대신에 왕자가 중국으로 가서 엎드려서 뭐 써가지고 온 식이어요. 그렇게 갔지요. 거기서는 새로운 언약 갱신, 언약 체결이 강조되고, 여기서는 이제는 누가 가나안땅에 들어가냐 했을 때, 불순종 했던 옛 백성들은 못 들어가는데 그들은 시내산에서 언약의 법을 깨뜨렸던 그런 백성이다. 나도 못 들어간다. 그것 때문에. 거기다가 이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모세오경을 조화적인 방식으로 묶어가지고는 도저히 안 맞는 이야기어요. 제가 지금 하는 설명이 억지로 해석한 겁니까. 여러분이 보기에 타당합니까. 신명기는 언약을 영원케 하는 것이어요. 그래서 이제는 언약백성이 죽었지 않냐. 나도 못 들어간다. 너희들이 내 말을 잘 들어라. 절대로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그 전에 여호와대신에 금송아지를 섬겼다고 멸망 받았던 백성, 나도 거기 연류되어 못 들어가지 않냐. 잘 기억해라.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 때문에 모세에게 진노하신 이유는 그가 옛 세대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강력히 금하신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을 대신해 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냥 우상 숭배가 죄라는 교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을 대항해서 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어요. 그러니까 국가 조약적인 형식이 ?다 이 말입니다. 이건 반란이어요. 그래서 제일 처음에 우상 숭배를 큰 조목으로 열심히 권고하고 시내산 사건까지 언급하면서 열심히 권면하는 이유가 만일에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그건 반란이다. 죽을 줄 알아라. 이것이 성경 계명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하늘에 속한 영원법. 요렇게 우상숭배 섬기는 사람 별로 없어요. 별로. 불교신자들도 가서 눈감고 이것은 그냥 정신통일 하려고 앞에 세워놓은 것이지 여기가 뭐 있더냐고. 뒤에 돌아가 보면 부처님 ?부처님 앞에는 금붙이로 번쩍번쩍하는데 뒤에는 석고상이라 텅 비었고 더럽고 거미줄이 쳐졌고. 그래서 이제 그런 이야기지요. 나 정신통일 하려고 그런다고. 그런 의미로는 기독교와 같다. 기독교도 무슨 정신통일 하려고 십자가 걸고 다니지요. 마음 안정할려고. 그런 것이지. 이게 별거 있겠냐고. 이게 물건이지. 다 말은 하지요. 지금 사람들은 이렇게 안 섬겨요. 그러면 이것은 안 걸리는가. 그런 말이 아니어요. 지금은 부활하신 예수를 섬기지 아니하면은 부활하신 예수를 섬기지 아니하고 실은 모세를 섬기더라도 그는 범법자여요. 그것이 신약에서 하고 있는 말이지요. 부활하신 예수안에 임하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모세 대대에서 일했던 하나님을 섬겨도 그는 범법자여요. 왜 다 큰 아들이 어린아이처럼 살라냐고. 정신병원가야돼요. 그런 이야기어요. 아무리 말 잘 듣은 어린아이도 다 큰 말 안 듣는 어른하고 달라요. 말 안 듣는 어른을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살게 하면은 그것은 효자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소망도 없이 정신병원가버려야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역사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상숭배를 그 만큼 강력히 금지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친히 자기들을 대면해서 말씀하시는 여호와를 대항하는 반란자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금송아지 만들었을 때는 가나안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신이시니라. 하고 딱 만들어서 금송아지가 나왔죠. 애굽에서 자기들을 건지신 신이신데 섬기는 방식은 금송아지로 애굽신 방식으로 섬겼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은 친히 불꽃 가운데 강림하셔서 말씀하셨으니까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그들은 달리 했지요. 그것 때문에 그들은 다른 신을 섬기는 죄처럼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신 분이 아니라, 부활하신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분외에 다른 것을 섬기면 전부 우상숭배어요. 전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어요. 그렇게 설명을 해야된다. 그러니까 우상숭배를 강력히 금한 이유는 신학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뭐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을 섬겨야만 되는데 물건을 섬기면은 물건의 종이 되어 형상을 읽어 버리지요. 이처럼 하나님인가 물건인가 모르고 아무데나 절하는 사람은 남의 마누라인지 자기 마누라인지 몰라요. 그러니까 모든 죄를 다 지을수 있어요. 태양을 보고도 모르면 형광등은 더는 안 보여요. 이렇게 신학적인 이론을 전개하라는 말인 아니라, 구원 역사적인 문맥에서 설명하라 했을 때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그들을 가까이 부르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런 죄를 짖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강력히 금한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조그만 아이가 말을 안 들었다고 이 녀석이 애비를 모르네. 그렇게 말하면 성질나서 말 할는지 몰라도 말 해놓고 자기도 웃을 것이어요. 모르지. 왜. 아이니까 잘 모르는 것이어요. 다 큰 아들이 그러면은 그 말이 딱 맞겠지만은 아버지 말을 안 듣는다는 의미로는 작은 아들이나 다 큰 아들이나 똑같이 평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어려서는 어째서 내가 말한 내 말을 안 들었냐. 거기다가 강조가 주어지지 인격적으로 아버지를 모욕했니 하는 말은 그 때는 문자적으로 적용될 때가 아니어요. 화가 나니까 하는 이야기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니까 이것을 신학적으로 풀 것이아니라, 그 당시 언어 개념, 그 당시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하는 그 개념으로 풀어야 된다. 그 말이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리고 지금도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 인격적인 관계에서 모든 죄들을 정죄하고 있지, 신학적으로 우상숭배는 무슨 죄가 있으니까 그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어요. 우리를 사랑해서 몸을 주신 그 분만 하나님이셔서 그 하나님을 떠나면은 모든 죄로 가득차요. 그것이예요. 항상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서 일하신 그것을 잊지 말아라. 그 관계를 누려라. 그 쪽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설명하지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설명 안 한다. 항상 문맥에 주의 하셔야 됩니다. 그 다음에 우상숭배를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질투는. 24절 보니까 내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니인데 질투하는데 어떻게 질투하냐면 소멸하는 불로 질투할 것이어요. 그러니까 죽어버리지요. 이 질투는 어떤 질투인 것 같아요. 십계명에 나오는 질투인데. 이것은 언약 백성에 대한 질투어요. 아내에 대한 질투와 같고. 왜. 에스겔서에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결혼했다 그러지요. 이 핏덩어리를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데 내가 소금을 뿌리고 깨끗게 해서 아름다운 옷을 입혀서 내 아내를 삼았지 않냐. 그런데 너희들이 범죄하냐. 언약관계를 결혼했단 말로 이야기 하고 있어요. 가령, 중국이 왜 우리나라를 군대를 쳐들고 들어오겠어요. 그것은 저 유럽사람들이 욕하면은 그렇지 않고 왜 우리나라가 그러면 그러겠는가. 이제까지 일본에서 보호해 주고, 어디서 보호해 주고. 해만 되면은 뇌물도 가져오긴 하지만은 중국에 있는 귀한 들려보내서 문화국가로 살게 하고 그래서 동방의 꽃을 피우도록 했는데, 이것들이 은혜를 모르고 배반하면 못 참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다른 나라를 정복할 때는 그 만한 군대를 안 끌고 들어와도 우리나라 쳐들어 올 때는 조그만 나라 쳐들어 오는데 막 쓰러버릴 듯이 쳐들어 올 수 있죠. 왜. 가령 우리들이 다른 사람하고 싸우면은 죽자사자 안 해도 마누라하고 싸우면은 이차대전 보다 고약하지요. 잘못하면은 째째한 일가지고 너 죽고 나 죽자고 그런다고. 왜. 아내니까 그래요. 그런 질투는 언약 백성에 대한 질투입니다. 그냥 죄를 신학적으로 해서 네 죄가 제일로 크니까 이제는 안 봐줘. 그 말이 아니라, 말하자면 속국이 왕을 거역하면은 이건 안 봐줘요. 다른 죄들은 봐줄지 모르지만 반란군은 안 놔줘요. 그래서 여기서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어요. 심판도 먼저 교회에 임한다는 말도 그런 이야기어요. 법적으로야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벌이 커서 먼저 심판하겠지만은 하나님이 자기 교회를 먼저 판단하신다는 말은 왜 교회가 언약백성이고 이 교회 구원을 오시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그 때 모든 불신자들은 멸망될 것이어요. 그것은 교회를 판단하러 오신 것이지, 이방인을 판단하러 오신 것이 아니어요. 근본 개념은. 그러니까 항상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관계해서 질투하는 하나님 이렇게 설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시겠지요. 하나님이 여러분만 사랑하셔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 가는 상관없어요. 여러분만 사랑하셔요. 그래서 문제라고. 다른 사람은 놔 두고 장로라는 사람이 일전도 안 받았다 한 데다가 그 아들도 이하동문이라고 하고. 큰일이예요. 그런데 교회는 권증을 몰라요. 물론 국가적인 일에 교회가 직접 관여 하지 않아요. 그러나 거짓말에 대해서는 교회가 권증하는 것이어요. 국가 판결이 유죄 판결나면은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우리가 한다. 그 말입니다. 가령 정치범으로 감옥에 들어가면 교회가 권증 안 할 수 있어요. 그대로. 그건 정치적인 사건 이니까. 이것은 도덕적인 사건이면은 그런 것은 국가 판결이 교회가 판결하는 것이어요. 그런데 권증을 안 해요. 왜. 거물이라. 그거 참 큰일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난처한 것이어요. 이북이 우리보다 훨씬 나쁘니까 그 사람들은 망해도 우리나라는 교회가 몇 명이냐. 안 망할 것이다. 동양의 예루살렘인데. 기도원에 가 봐라. 기도하고 금식하는 종들이 몇 명인가. 금식하고 내려가서는 오리지날 손으로 잊어버리고는 돈 갖고 오라고 그래. 망할 짓거리가 우리나라에 있는데 우리는 괜찮다고. 왜 수가 많으니까. 꼭 바벨론에 멸망하기전에 이스라엘과 비슷해요. 아브라함은 한 명이어도 우리는 숫자가 몇 명이냐. 우리는 안 죽는다. 하나님은 말하자면 비유고 먼 훗날의 일이고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힌 너희들이나 복없으니까 떠나가지 우리는 너희들이 버리고 간 땅 전부 25절부터 31절 이처럼 언약의 말씀은 여기서는 핵심적으로 나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란 이야기지요. 한마디로 하자면은. 그것만 있고 다른 건 없어요. 언약 체결 장면이니까 그렇습니다.
그 다음 구체적인 시행령들은 다음에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나다. 내가 왕이다. 내가 너희들한테 어떤 일들을 했는가, 내가 누구인지 잘 듣고 절대 나를 잊어버리지 말아라. 나외에 절대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라. 이 말만 하고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냐면은 이 법이 어떻게 영원히 유효할 것인지, 그 조항을 붙여야만 언약이 확실하겠지요. 가령 중국이 우리나라와 조약을 맺어서, 너희들 한 건만 걸려봐라. 멸망. 큰일 나버려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제 잘못하면은 군대가 쳐들어와서 왕을 포로로 잡아갔지요. 아니면 왕자를 잡아가던지. 그래놓고 왕위를 교체할 수 있지요. 그 다음 누구 대신 왕. 그 전 처럼 자유를 안 주고 군대를 상주시켜 한 참 혼나겠지요. 그리고 나서도 한참 그렇게 하면은 별로 안 좋지요. 그래서 이 세자 왕이 말을 잘들으면은 있었던 군대도 철수 시키고 그리고 그 동안 내가 너희들한테 고약하게 했던 것은 너희가 반란 일으켜서 그랬지. 다른 나라보다 내가 너희를 특별히 사랑 안 하냐. 그리고 등급을 높여 줄 수도 있겠지요. 그래야 한 번 범죄하고도 그 국가가 안 망하지, 잘못됐다가는 망해버리겠지요. 그런 언약의 유효성, 언약이 어떻게 계속 유효할 것인가. 그 문제를 말씀하시므로 지금 언약 체결을 하고 있다. 그래서 후일에 배교할 말씀을 하셔요. 왜 여기 후에 배교를 미리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은 정감록보다 더 앞날에 밝으니까 알아 맞출려고 그렇게 한 것이아니라, 언약을 영원히 유효케 하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입니다. 지금 언약체결 장면이어요. 이 언약을 유효케하는 말씀은 그 다음 전체적인 설교는 29장 이하에 나와요. 제대로는. 그런데도 이 한 설교 안에, 1장부터 4장까지 한 설교안에 언약의 유효성까지 완전히 한 단위를 이루고 있다. 그 말이어요. 이건 진도나가는 것이 아니지요. 한 설교에 한 단위가 있어요. 그러면서도 언약의 유효성에 대한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은 29장 세 번째 설교에가 주로 강조가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 말씀을 하고 있다. 너희들이 후일에 잘 살다 보면은 범죄할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나님이 미리 말했다가 나중에 그런 일이 생기면 아 하나님이구나. 진짜로.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유효성, 계속성을 말씀하는 말이다. 배교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은 한마디로, 여러 복잡한 말이 있지만은, 언약 백성으로써 그 특권을 상실하는 것이어요. 복이 언약백성의 복. 언약 백성으로 살고, 기업으로 가나안 땅을 얻고, 그리고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탁월한 지혜를 드러내고. 다 언약백성의 복인데. 만일에 범죄하면은 어쩝니까. 그 뒤에 죽고. 숫자가 번성할 까 안 할 까. 숫자도 줄어들고. 이방인 중에 높을 까 안 높을 까. 안 높고. 이방의 종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 섬기고.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저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백성의 복을 잃는 것이어요. 천당가고 지옥가는 귀족을 뽑아내는 과정이 아니라는 그런 말이어요. 그럼 언약 백성의 복을 이루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그 전에는 번성하고 번성했어요. 이 보다도 일 천배나 더 숫자를 많게 하시길 원하노라. 모세가 그랬지요. 그런데 수가 적게될 것이어요. 죽어버리고. 나중에 이런 복을 신명기 끝에 가면 애굽의 모든 질병이 다 들어와 버리고 그 전에 애굽에서 살았을 때 마라의 쓴물에서 하나님의 고쳐주시고 애굽의 질병이 들지 않게 하리라. 그랬지요. 출애굽기에서. 쓴물을 달게 해놓고 물이나 달게 했으면 그만인데, 하시는 말씀이 애굽의 질병이 들지 않겠다. 그랬지요. 애굽에는 모든 질병과 재앙으로 쳐 버렸지요. 나중에 28장 그런 다음에는 너희들이 이 말씀을 안 지키면은 이 율법에 없는 재앙을 내리리라. 그정도까지 말해 버리지요. 전부 그런 것은 언약백성의 복을 상실하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수가 적고, 언약의 땅을 잃고, 언약의 땅 밖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그들이 이방나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보다 작은 나라가 되서 그들의 종이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없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를 못 맡는 우상을 섬기리라. 하는 이야기지요. 그들이 사모하는 것의 종이되리라. 그런 이야기어요. 그러니까 만일에 우리나라가 중국을 안 섬기고 중국한테 독립을 해 보겠다. 그래가지고 살살 일본 세력을 끌어들이면은 일본도 그냥 우리를 도우려는 것이 아니겠지요. 이익 보려고 그랬지요. 그럼 일본의 종으로 사는데 중국 황제는 사람같으면은 일본 황제는 귀신같다. 그 말이지요. 그런 이야기어요. 한마디로 하자면은. 너희들이 나를 안 섬기겠는가. 너희들이 나중에 안 섬길 것이다. 어떻게 되겠는가. 너희들은 귀신족이 될 것이다. 우상 섬길 것이다. 너희들이 언약의 땅을 쫓겨가서 포로 잡혀갈 것이다. 너희들은 생명이 있고 번성하여 수가 줄어들 것이다. 전부 그 언약의 ? 저주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핵심이. 성경이 말하는 축복과 저주는 전부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 교회에서 제일 큰 벌은 무엇이겠어요. 주의상에 못 안게 하는 것이어요. 수찬정지가 제일 큰 벌이어요. 뭐 장로, 집사 그만 둔다고 해서 큰 벌이 아니라, 수찬정지가 들어가면은 그게 제일 큰 벌이어요. 그런데 우리는 뭐 먹나 나마하는 것 가지고. 여럿이 먹는데 가만히 있으면 챙피하기는 하지만은. 그런데 밥 굶으면 죽지요. 밥 굶으면 벌이 될 것인데 교회에서 조금한 것 먹으니까 굶어도 뭐 별별일 없지. 먹으나 마나.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상에서 먹고 마시는 신약 백성의 특권인줄 알 것 같으면은 만일에 그 특권에 참여하지 못하면은 그가 집에서 먹고 마시는 모든 것도 생명이 없어요. 그것이 신약때는 제일 큰 벌이어요. 여호와 심판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나중에 환란중에 회개할 것이어요. 여기서 회개는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되었다. 그 말이 아니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데. 여호와께로 돌아서는 것이지요. 도덕성의 완전을 지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만 내 하나님이다 하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 여호와는 어떤 분이십니까. 31절을 보면 여호와는 자비하시다.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내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그는 자비하시고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만일에 지키면 복, 안 지키면 저주. 단순히 그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일 것 같으면은 살 사람 별로 많지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지요. 그러니까 모세 율법이라는 것은 죄 가운데 집행되는 하나님의 경륜이어도 그것은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사이에 끼여준 것이지, 그것은 어느 때인가는 제거될 것이어요. 그런 것이다. 32 부터 40절, 이처럼 후일에 하나님이 그들을 돌이켜 주시리라는 언약의 유효성, 계속성을 말씀하고 나서 다시 언약의 관계를 확증하고 그리고 언약 관계를 영원히 보증하시는 도피성을 줌으로 4장에서 언약 체결을 끝내고 있다. 32절부터 40절에서는 언약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증해 주고 있는 것이어요. 그것은 영원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과 특성은 무엇입니까. 이 문제가 애매하면은 뒤에 것을 읽어 보면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이같이 행하신 이유는 여기 본문을 읽어보면은 뭐라고 하냐면은 한마디로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냐.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냐. 무슨 일인데. 하나님이 친히 불꽃 가운데 대면해서 말씀해도 안 죽은 백성, 또 하나님이 이방의 권세로부터 큰 표적과 권세로 구원해 낸 백성. 그 백성이 세상에 누가 있는가 손 들어보라고 해라. 천지간에 이런 일이 있었는가.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과 특성이어요. 하나님의 대면해서 말씀하시고 악한 권세로부터 건져내신 일이어요. 그 특성은 세상에 이런 일이 없었다. 하늘과 땅 중에 이런 일이 없었다. 그런 이야기어요. 그것이 특성입니다. 교회를 위해 행하신 일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우리를 하늘의 권세자로 올리신 일인데, 이것은 역사상 우리에게 그런 일을 했지 모세에게도 그렇게 해 준 일이 없고, 이 세상 누구에게도 그런 일을 해 준 적이 없다. 하는 일이 우리에게 나타난 독특한 일이어요. 이것이 구원이어요. 그렇게 지금 설명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이같이 행하신 이유는 뭐 할려고 그랬냐면은 35절을 보면은,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그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하심이니라. 이것은 단순히 존재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만 그들의 하나님이셔요. 그외에 다른 신들은 없어요. 존재론적으로 많은 귀신이 있지요. 그러나 여호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셔요. 참 신이셔요. 그것을 알리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여호와만 섬기라는 말이지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39절 이하에도 있고 35절에 있는 것인데, 오직 여호와만 하나님이시고 다른 신이 없는 줄 알아서 내 명령을 잘 지키고 순종해라.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순종케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은 무엇입니까. 이 본문은 40절에서는 너와 내 후손이 복을 받아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언약 체결적인 장면에서 마치 1절과 상응하지요. 1절, 너희들이 살고 그 땅을 상속받으리라 했는데, 여기서도 그 말을 하고 있지요. 왜 구약에서는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이 하나님 사역의 목표어요. 가나안 땅이 기업이거든요. 하나님이 주신 것은 복을 주고 가나안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게 하는 것이어요. 그럼 몇 살쯤 살겠는가. 모르는 이야기지요. 한 없이 오래 산다. 생명이 길리라. 그런 이야기어요. 완전히 구약 언어개념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어요. 생명과 가나안 땅의 복 이야기입니다. 앞에 1절에서도 그랬지요. 살고 들어가 가나안 땅을 얻으리라. 1절과 상응하는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논문 방식을 했을때도 처음에 주제적인 것과 제일 끝에가 맞아들어가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렇게 해서 언약체결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산다고만 해 놓고 살 보장을 안 주면 안돼지요. 그러면은 말을 잘 듣는 사람만 살면 좋은데 너희들이 안 들을 것이다. 후일에. 그래도 나중에 돌이켜주마. 너희들이 회개하고 했는데. 그럼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것이어요. 그러니까 부지중에 범죄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성을 구별해 줬는데, 여기서는 도피성이란 말은 안 썼어요. 특별히 여기서 이상한 이야기는 무슨 말을 하고 있냐면은. 42절에 이는 과거에 원혐이 없이 부지중에 오살한 자로 그곳으로 도피케하기 위함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지만은 이전에 그런 범죄를 지은 사람도 이제는 들어와라. 그런 이야기처럼 되어 있지요. 왜냐면은 이제까지 요단강 동편에는 도피성이 없었어요. 이제 기업을 얻었는데 그전에는 광야 유리하고 전쟁하다 보니까 자기 백성중에 범법자를 골라낼 길이 없었지만은 이제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으면은 법범자를 골라낼 수가 있겠지요. 잘못하면은. 그러면 그전에 재판 안 받은 사람도 재판 받아 죽을 수가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서는 과거에 부지중에 범죄한 자가 있는가. 그곳으로 들어가거라. 그러니까 요새 보면 정치자금을 그렇게 한다고 그러지요. 앞으로도 안 먹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먹었던 것은 이후로 안 먹기로 선언적인 방식으로 정리를 해 주겠다. 이것을 지금 청와대가 연구하고 있지요. 그전에 다 같이 먹었으니까. 그런데 같이 먹었다고 범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물론 법 형식상으로는 한도가 넘은 사람은 다 걸리겠지만은 지금 국가가 문제가 되는 것은 여권 정치자금이어요. 왜 여권만 정치자금으로 반대 급부를 주는 것이고 국가 질서가 혼란되거든요. 만일에 야당이 먹어놓고도 반대급부만 안 줘버리면은 그것은 국가의 혼란은 안 가져와요. 단지 법 형식상 금액을 넘었다는 의미에서는 같이 걸리겠지만은 실제로 국가를 혼란시키지는 않은 것이어요. 문제는 여권 정치자금이지. 영삼씨가 1조원은 먹었다니까 대중씨가 6백억은 먹었소. 같이 먹었구만.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돼어요. 그것이 정치가들이나 신문이나 그런 것은 중심되는 것과 지엽적인 문제를 혼란시키는 방식이어요. 지금은 3김 정치하자면 영삼씨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지 다른 두 김씨 상관없어요. 종필씨가 그전에는 나빴다하더라도 지금은 상관없는 이야기어요. 이제 영삼씨하고 결탁해가지고 뭐 해 먹어버리면은 다시 나쁘지만은. 부부싸움 같으면은 마누라가 싸나우니까 남편도 성질내가지고 했다고 하는 것이 좀 일리가 있지만은 이런 정치는 그런 이야기하고는 상관 없는 것이어서 지금은 여당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어요. 일단은. 그런데 너도 똑같지 않냐. 섞어가지고는 이하동문. 그것은 완전히 정치적인 의욕을 상실케하는 것이어서 이것이 아주 더 나빠요. 같이 썩었으니까 말하지마. 이것처럼 나쁜 것이 없어요. 교회에서도 그럽니다. 누구 범법한 자를 잡으려고 하면은 죄없는 자가 나를 돌로 쳐라. 성경에 있지요. 요한복음에. 왜냐면은 예수님이 그랬다고요. 간음하다 현장에서 걸린 여자 끌고 오니까 죄없는 자가 돌로 쳐라 하니까 전부 도망쳐 버렸거든. 그 말 인용해서 그런다고요. 그럼 조용해요. 다 죄인인데. 그러니까 도둑질한 순경도 도둑놈은 잡아라. 그러면은 되는 것이어요. 그럼 훈장도 받을 수 있어요. 나중에 자기 죄 걸리면 감옥에 가더라도 훈장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지금처럼 정치의욕을 없애버리면은 안 맞지요. 그런데 여기보니까 이전에 원한 없이 살인한 사람이 있느냐. 이 성으로 들어가거라. 그러니까 미래보증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전에 죄까지도 여기서 해결해 주니까. 그렇게 해서 부지중에 범죄해서 살인자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한 자가 없는데 그런 자를 살길을 열어주는 성을 말하므로 첫 설교를 마치고 있다. 그러니까 자 42절, 43절 오살자의 생명 보전을 위한 도피성 문제인데 민수기 35장, 신명기 19장, 여호수아 20장과 비교하면서 답을 해봐라. 비교해 봐라. 그 말입니다. 요단 동편의 세 성읍을 구별한 목적은. 여기 이 본문에서는 과거에 부지중에 범죄한 자가 생명을 보전하도록. 문장대로 답하라. 그 말입니다. 그래야 특징이 드러나니까. 그런데 민수기 35장에서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중에 오살한 자가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도록까지 생명을 보전하도록 하는 것이 민수기 이야기어요. 기업에서 쫓겨나지 않을것이어요. 범죄했어도. 민수기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라 하는 전투 명령이지요. 그런 문맥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범죄한 자도 도피성에 피했다가 제사장이 죽으면은 자기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것이 도피성에 대한 강조점어요. 똑같은 신명기도 가령 여호수아 20장은 각 지파가 기업을 얻었는데 얻은 기업에서 도피성을 구별해 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기업 분배 방식으로 도피성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여호수아 19장은 과거에 원혐이 있는 자가 생명을 보전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한 자의 피를 언약의 땅에서 흘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19장의 핵심이어요. 어떤 부재자입니까. 부지중에 범죄한 자가 길이 멀어서 죽으면은 이는 무지한 자가 피를 흘리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이 피를 흘려서 땅이 더러워지면은 안돼요. 신명기 19장은 그렇게 설명은 해요. 그러니까 온 땅을 세 구분해라. 그리고 고속도로를 닦아라. 그렇게 설명하고. 또 그 정도가 아니라, 너희들이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하면은 그 세 성읍에다가 세 성읍을 더해라. 다른데는 전부 여섯 성읍밖에 안되는데 신명기는 아홉 성읍이 생겼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요단 동편에 셋, 서편에 셋인데 오히려 서편에 여섯 성읍이 있어서 마치 요단강 동서편에 있는 것이 서편에 옮겨진 것처럼 그런 언어개념으로 말한 것이 19장이어요. 여러분이 비교해서 읽어보십시오. 그러나 여기 4장에서의 언어는그런 개념이 아니라, 과거에 원혐이 없이 사람을 죽였는가. 그 사람의 생명을 보전하도록. 그렇게 말하고 있고. 세 성읍을 구별한 방식은 한 지파에 한 성읍씩 줬어요. 전용 피난처를 줬다. 그 말이지요. 한 지파에 한 성읍씩. 그런 개념이 실은 19장에서도 다른 방식이 적용되야 돼요. 그러니까 온 땅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그렇게 언급되어 있지요. 그리고 완전히 정복한 후에 이 셋에 셋을 더해라.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자 설명했으니까 무슨 말인지 다 알겠지요. 글자로 읽은 내용들은 전부 그런 말을 문장으로 꾸며 설명한 것이어요. 여호와께서 조상들과 언약하신대로 이스라엘을 호렙산으로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이 지켜 행할 법도를 명하셨다.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지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처럼 여호와께서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그들을 위해서 열국과 싸우시고 권세를 행하시는 일은 세상에 없었던 일이다. 이스라엘이 호렙산으로 그들을 불으시고 명하시고 그들의 여호와를 항상 기억하고 여호와의 명하신 법도를 지키며 열국앞에 하나님의 의와 지식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의로운 나라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여 그만 섬기고 그만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고 애굽이나 가나안을 따라서 여호와를 빙자하여 그들의 신을 섬기면 이전 부올의 바알에게 속한자를 멸한 것처럼 그들도 멸할 것이다. 백성이 호렙산에서 언약의 하나님을 빙자하여 금송아지를 섬긴 까닭에 여호와께서 백성의 대표자인 모세에게 진노하사 요단을 건너지 못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깊이 명심하고 호렙산에서 자기 기업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여호와만 섬겨야 한다. 그들이 언약의 땅에서 번성하고 오래 산 후에 여호와를 잊고 그 땅의 신을 섬기면 여호께서 그들을 멸할 것이다. 멸한다는 말은 싹 쓰러버린다는 말이 아니라, 그 뒷 말이어요. 그들은 수요가 적을 것이며 기업의 땅에서 쫓겨나서 그들이 순종하여 섬긴 이방신의 나라에서 생명이 없는 그 신들을 섬기며 종으로 살 것이다. 그러나 그 환란을 당한 중에 백성이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이키고 구하면 조상들을 사랑하사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는 그 언약의 신실하시기 때문에 다시 그들을 사랑하실 것이다. 이처럼 언약의 계속적인 유효성을 말하므로 언약 체결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과거에 오살한 자의 생명을 보전토록 각 지파에 한 성읍씩 구별해 주시므로 그 언약을 보증하셨다. 설명되지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사와 권능을 행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교회를 위해서 그 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권능을 행하셨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그 음성을 듣고 그 상에서 먹도록 부름받은 백성은 역사상 교회밖에 없다.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사 그 권세와 생명을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교회를 하늘에 속한 의의 나라로 세우셨다. 우리는 죄의 권세아래 있지 않아요. 능히 지킬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셨다. 지금 교회을 위해 행하신 일은 아들안에서 행하신 일이다. 그것을 깊이 명심하고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누리고 봉사해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사랑은 영원하 사랑이어서 취소되는 법이 없다. 왜. 우리가 원수되고 죄인되었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해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여 주지 않겠는가. 그러니 환란에 인내를, 오히려 인내에서 우리가 더욱 소망을. 그렇게 이루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로마서는 말씀하고 있지요. 그 하나님을 기억해라. 이렇게 큰 일을 행하신 적은 이제까지 없었다. 그리고 이보다 큰일을 행할 일이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속죄하는 길이 없어요. 이 분을 하늘에 속한 권세와 생명으로 누리고 섬겨라. 왜. 지금 교회는 땅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 권세의 보좌위에 있는 그런 권세있는 나라거든요. 그전에는 하늘의 권세에 순종했지만은 이제는 그 모든 어둠의 권세를 밟아버린 주님과 함께 보좌우편에 앉았다.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10절까지 설명하는 것이 그것이어요. 예수는 만주의 주가 되시거든요. 그런 백성으로 살아라. 하는 것이 지금 교회가 받은 메시지입니다. 질문있으면 하십시오. 신명기 특징이 얼만큼 스며들어 있는지 알겠지요. 그리고 그 땅에서 장수하고 영원하라는 복을 어떻게 언약의 계속적인 유효성으로 보장해 주고 있는지 알겠지요. 이런 것이 이제 29장 이하에서는 더 전면에 드러나서 이야기 된다. 아예 거기서 노래까지 불러줘요. 너희들이 이렇게해서 범죄하면은 하나님이 돌이켜 주시리라. 노래를 불러서 기억해라. 그렇게까지 해줘요. 그런데 신명기를 이렇게 풀기가 복잡합니다. 그냥 역사적인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은 요점만 쭉 뽑으면 되는데 이렇게 율법적인 말씀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 말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구조를 보고 해야되기 때문에 그전처럼 본문 요약하듯이는 좀 어려워요. 문제를 내고 전체적이 개념을 설명하는 수 밖에 없어요. 주님가르쳐 주신 기도로 기도하고 마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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